주간일지, 성령강림후 8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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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일지, 성령강림후 8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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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샘터교회 주간일지

2021718, 성령강림후 8

 

1) 하나님의 죽음- 설교 마지막 단락에서 제자들에게 예수 십자가 죽음은 하나님의 죽음으로 받아들여졌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죽었다는 뜻이 아니라 제자들이 그렇게 여겼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에게 죽음은 없습니다. 제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었기에 그의 죽음이 하나님의 죽음으로 받아들여졌다는 말은 당연한 겁니다. 하나님의 죽음이라는 사태를 경험하지 않으면 예수 십자가를 통한 죄의 용서가 이해되지 않습니다. 아이 하나 데리고 혼자 사는 여자가 있다고 합시다. 아이가 병에 걸려 죽었습니다. 이 여자의 희망이 사라진 겁니다. 이런 사태가 이 여자에게는 하나님의 죽음과 같습니다. 완전한 절망입니다. 절대 어두움입니다. 우주 질량의 대부분이 흑암 에너지와 흑암 물질이듯이 모든 인간에게는 그런 절대 어두움이라는 미래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사태를 직면하는 사람은 자기 인생을 성취하려는 욕망이나 남을 적대시하는 일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예수 죽음이 전혀 새롭게 경험되면서 제자들은 생명의 전혀 새로운 차원을 경험합니다. 죽음 예수의 부활이 그것입니다. 예수 죽음과 부활이 가리키는 것은 하나님의 죽음이라는 나락에 떨어지는 순간부터 하나님이 특별한 능력으로 우리의 운명에 개입한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예수를 믿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죽음이라는 경험은 오히려 은혜이자 축복입니다.

 

2) Saranam- 예배 시간에 함께 부른 에큐메니칼 노래집 86장의 제목 사라남’(Sranam)은 인도의 고어인 산스크리트어로 피난처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피난처는 하나님을 가리킵니다. 이런 내용은 시편에 많이 나옵니다. 피난처라는 표현이 소극적으로 들리긴 합니다. 세상에서의 싸움에서 패배한 사람이 자신감을 잃을 때 찾는 장소가 피난처라고 말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피난처라는 말을 이해하려면 먼저 우리의 실존이 얼마나 취약한지를 알아야 합니다. 제가 설교할 때 종종 언급하지만, 우리는 자신의 능력으로 자신의 삶을 완성할 수가 없습니다. 돈이 많고 친구도 많고 단란한 가족을 꾸려도 완성되지 않습니다. 그 방식으로는 궁극적인 만족이 불가능하다는 뜻입니다. 만족한 듯이 보이는 건 자기를 감추거나 실체적 진실에 들어가지 못했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 소유 지향적으로, 그리고 더 투쟁적으로 사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충만하게 채우시는 능력입니다. 그 충만을 경험한 사람은 무언가를 더 채우려고 공연히 애를 쓰지 않습니다. 참된 안식을 얻는 겁니다.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을 생명의 충만으로 경험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다음 주일의 예배에서도 사라남을 부를 겁니다. 집에서도 각자 불러보십시오. 가사와 멜로디가 간단해서 몇 번 부르면 외울 수 있습니다. 이런 찬송가를 외워두면 좋습니다.

 

3) 중보기도- 기도의 핵심은 다른 이들을 위해서 드리는 중보기도입니다. 저는 헌금 순서가 끝난 뒤에 헌금 기도와 더불어서 중보기도를 드립니다. 때에 따라서 그 내용은 달라집니다. 마음 같아서는 많은 내용으로 기도하고 싶으나 예배 순서를 따라가는 거라서 길게 기도하지 못합니다. 대구샘터교회와 서울샘터교회 교우 중에서 아픈 이들이 있습니다. 며칠 전에 수술한 딸도 있습니다. 잘 마쳤으니 후유증 없이 상처가 아물기를 바랍니다. 친정이나 시댁 어른 중에서 노환이나 지병으로 어려움을 겪는 이들도 있습니다. 늙고 병듦은 우리 모두에게 닥치는 일인데, 그들이 영적으로 건강하도록 하나님께서 도와주시기를 바랍니다. 청년 중에서 취업을 준비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자신의 전공을 살리고 싶으나 여건이 여의치 않습니다. 선한 길로 인하실 줄로 믿습니다. 공무원 시험을 한 달 앞둔 청년도 있고, 임용고시를 몇 달 앞둔 청년도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불안하겠으나 성령께서 위로해주실 줄로 믿습니다. 캐나다에서 연구년을 보내는 류*규 집사 가정이 있습니다. 코로나19 사태로 원래 기대했던 일들을 마음껏 펼치지 못합니다. 그런 조건 안에서라도 의미 깊은 시간을 보내도록 하나님이 이끌어주실 겁니다. 개인이나 가정적인 일로 대구샘터교회를 떠난 분들이 있습니다. 어디서 지내든지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족하지 않도록 하나님이 붙들어주시기를 바랍니다. 교우 여러분도 중보기도를 드려보십시오. 따뜻한 믿음으로 굳건한 믿음으로!

 

4) 기후변화- 지난 주간에 독일과 벨기에가 홍수를 당해서 해당 나라만이 아니라 전 세계가 놀라고 있습니다. 유럽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 중의 하나이고, 사회 안전망이 잘된 나라인데도 소위 후진국에서나 일어날 만한 일이 일어났으니 말입니다. 그들 기상청의 예측보다 훨씬 더 엄청나게 많은 비가 내려서 그런 참사가 벌어졌다고 합니다. 얼마 전에 캐나다에서는 열돔 현상으로 기록적으로 높은 기온을 보인 곳이 있다고 합니다. 이런 기상 이변이 일어날 때마다 기후변화를 말합니다. 어떻게 들으면 그들의 말이 과장된 것 같기도 하고, 어떻게 들으면 지금 상태가 너무 심각한 것 같습니다. 지구에 기상 이변은 늘 있어 온 거니까 이런 몇 가지 자연재해로 호들갑을 떨 필요가 없다고 말할 수는 있으나, 그래도 이런 기후변화로 벌어질 결과는 너무나 끔찍한 일이니까 지나치게 느껴질 정도로 준비는 해야겠습니다. 그 준비의 핵심은 지구의 평균 온도 상승 속도를 늦추는 일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탄소 배출을 줄여야겠지요. 소비 중심의 생활을 바꾸는 수밖에 없습니다. 개인 자동차 덜 타고, 에어컨 덜 돌리고, 히터 덜 틀고, 육류 소비도 줄여야겠지요. 이게 말처럼 쉽지는 않습니다. 이미 우리는 소비 중심의 생활에 길들었기 때문입니다. 경제성장에 목을 매는데, 어떻게 소비를 줄일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창조를 믿는 기독교인만이라도 생태 윤리를 더 적극적으로 감당해야겠습니다.

 

5) 무지개 외- 제가 사는 집에서 교회까지 차로 45분이 걸립니다. 그 사이에 국도와 고속도로와 시내 도로를 거칩니다. 그 풍경이 계절마다 다르고, 달마다 다르고, 날씨에 따라서 다릅니다. 저보다 더 먼 데서 오는 교우는 석*혁 집사 부부입니다. 성경봉독을 하는 셋째 주일마다 울산에서 차를 몰고 옵니다. 코로나 사태 이후 교회에서 점심을 먹지 못하게 되면서 이 부부 집사가 점심을 어떻게 해결하는지 모르겠군요. 오늘 저는 집으로 돌아가던 늦은 오후에 오랜만에 무지개를 보았습니다. 영천 IC를 빠져나와 영천-경주 자동차 전용도로에 들어서자 포항 쪽 하늘에 무지개가 날개를 펼치더군요. 색다른 풍경이었습니다. 예쁘네요. 오늘 강단 꽃꽂이에 들어간 꽃의 출처는 합천과 대구 합작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아주 화려해 보이네요. 몇몇 교우들과 오늘 칼국수 집에 갔습니다. 8명까지만 함께 들어갈 수 있다 해서 남자 5명은 2층으로, 여자 5명은 1층으로 나눠 들어갔습니다. 서로 거리를 두고 앉아서 말도 적은 소리로 나누면서 맛나게 먹었습니다. 편안하게 칼국수를 사 먹을 수 있는 때가 속히 오기를 바랍니다. 집으로 돌아갈 때 둘째 딸에게서 들으니 오늘 청년들도 방역지침에 딱 맞게 8명이 함께 점심 먹고 커피를 마셨다고 하네요. 함께 밥을 나눠 먹는 즐거움도 컸으나 청년들끼리의 대화도 아주 즐겁고 유익했다고 합니다. 대화 주제가 아주 다양하더군요. 신앙 문제, 공정이나 기후변화 등등까지 다뤘다고 합니다. 지성과 인성과 신앙을 두루 갖춘 이들이라서 열린 대화가 가능했던가 봅니다. 언제 편안한 때가 되면 저도 그 청년 모임에 참여해보고 싶습니다. 좋아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네요.

 

6) 헌금- 73주 차(718): 980,000(온라인 860,000, 현장 120,000/ 등록교인 외: *)

    온라인 통창- 농협 301-0243-3251-71(대구 샘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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