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무쇠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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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무쇠칼

대구성서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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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쓰시던 무쇠칼이다.

몇년 전 엄마집을 청소해 드리다가 부엌 씽크대 서랍 속에 처박혀 있는 걸 가져온 거다.

오래전에 엄마가 쓰시던 칼인데 날렵한 스테인레스 스틸 칼에 밀려난 것 같다.

투박한 무쇠로 만들어졌고 손잡이는 나무로 되어있는데 수공예품 같다.

칼날과 손잡이 사이의 경계를 둥근 무쇠가 감싸고 있다.

칼날에는 남원이라는 한문 글씨가 새겨져 있는데 남원의 어느 대장간 출신일까.


이 칼로 오늘 저녁 오이를 채 썰었고 토마토와 삶은 계란을 잘랐다.

투박한 모양새와 달리 꽤 잘 들어서 자주 쓴다.

단 한 가지, 녹이 잘 쓸어서 자주 닦아 물기를 깨끗이 말려두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구십을 넘기신 엄마는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후에도 계속 혼자 사셨는데

며칠 전, 같은 아파트 같은 동에 사는 언니네 집으로 들어가셨다.

이제 너무 연로하시고 기력도 쇠해지셔서 언니가 모시기로 결정했고

그래서 요즘 엄마의 살림살이를 정리 중이란다.

엄마의 살림을 정리하게 되니 무상한 슬픔이 인다.

아 ... 이렇게 엄마의 한 평생이 접히는구나.. 하는 허허로움.. 무상함.. 같은....


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할 때도 그랬지만 엄마 역시 값 나가는 물건이 하나도 없다.

한 평생 호화로운 생활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삶을 살아오셨다는 게 자식으로서 가슴이 아릿하다.

부모님은 정말 돈과는 인연이 없어도 너무 없으셨다.

그런데 어머니는 특히  말년을 정말 평온하고 감사하게 보내신다.

요즘 엄마를 만나면 만날 떄마다 점점 더 왜소해 지시는데

세상의 집착을 다 내려놓은 듯 초연하시다.

죽음이 전혀 두렵지 않다고 하신다.


엄마는 아마 내게 이 무쇠칼 이외엔 남겨줄 물건이 하나도 없으실 거다.

그래서 이 칼은 내게 유일한 엄마의 유퓸이 될 것이다.

무쇠칼에서는 엄마의 오랜 삶이 배어나온다.

생긴 모양도 엄마 성품처럼 투박하고 덤덤하다.

이제 앞으로 더 이상 엄마의 요리하는 모습을 보기 힘들 것이다.

왼손잡이인 엄마처럼 나도 왼손잡이다.

왼손으로 이 투박한 무쇠칼로 요리를 하면서 떄떄로

엄마가 만들어 주셨던 음식을 그리워 할 것이다.

그리고 이 녹슬기 쉬운 무쇠칼을 잘 갈고 닦으면서 

오래도록 엄마의 기운을 간직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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