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제국의 프로테스탄트] 7. 기후를 원상태로 되돌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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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제국의 프로테스탄트] 7. 기후를 원상태로 되돌릴 수 있을까?

과학과신학의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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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_ 김진수  (스위스 취리히 대학교 선임연구원, 과신대 정회원)

 

 

‘비가역’(非可逆)의 사전적 의미는 ‘변화를 일으킨 물질이 본디의 상태로 돌아갈 수 없음’입니다. 예를 들면, 길바닥에 쏟은 물은 다시 주워 담아 원래의 상태로 되돌릴 수 없습니다. 지난 글에서 설명한 것처럼, 지구공학이나 이산화탄소 포집과 같은 기술로 이산화탄소 농도를 산업혁명 이전 수준으로 되돌린다고 해도, 지구의 기후가 예전 상태로 되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라는 연구가 발표되고 있습니다.

온도 상승의 지연효과

일반적으로는 이산화탄소 농도가 증가하면 지구의 온도는 올라가고, 이산화탄소 농도가 감소하면 지구의 온도는 내려갑니다. 하지만 기후과학자들은 단순히 이산화탄소 농도를 낮춘다고 해서 지구의 온도가 빠르게 되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온도 상승의 지연효과 때문입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하루 중 온도가 가장 높은 시간이 햇빛(태양열)이 가장 강하게 내리쬐는 정오가 아니라, 오후 2시부터 4시 사이인 현상을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아래 그림과 같이 정오와 한낮에는 해가 머리 위에서 비추기 때문에 작은 면적에 많은 태양에너지가 모이지만, 해의 위치가 내려오면 햇빛이 비스듬하게 비추게 되면서 단위 면적당 들어오는 태양에너지의 양은 적어집니다. 실생활에서 손전등을 비스듬하게 비추면 넓은 면적을 비추게 되지만 빛의 세기가 약해지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저위도 지역보다 극지방이 더 추운 이유도 이와 같습니다. 극지방은 햇빛이 비스듬하게 들어와서 작은 양의 태양에너지만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계절이 변하는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태양이 북반구를 수직으로 비추는 계절엔 북반구가 더운 반면 남반구는 춥습니다. 반대로 태양이 북반구를 비스듬히 비추고 남반구에 햇빛을 수직으로 내리쬐면 북반구는 추워집니다.
 

img.jpg(일러스트: 이예은)


들어오는 태양에너지의 양만 생각하면 정오의 온도가 가장 높을 텐데, 어째서 정오를 지난 오후의 온도가 가장 높을까요? 온도는 들어오는 에너지와 나가는 에너지의 차이에 의해 변화량이 결정됩니다. 지면으로 들어오는 태양에너지가 정오에 최대라고 하더라도 지면을 식히며 지면이 방출하는 에너지 양은 최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흔히 ‘땅이 데워지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라고 표현합니다.

이 현상을 엄밀히 말하면 정오가 지난 시점에도 여전히 해가 중천에 있으므로 들어오는 에너지의 양이 많은데, 지면을 식히는 에너지가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에 지면의 온도는 계속 오르게 됩니다. 그러다가 태양열보다 지면에서 방출하는 에너지가 커지는 시점부터 지면의 온도는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비슷한 효과로 자정이 아니라 동이 트기 전, 즉 태양열이 들어오기 직전까지 지면은 계속 에너지를 잃어 하루 중 가장 낮은 온도가 됩니다.

지구온난화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이산화탄소 농도를 줄인다고 해도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지연효과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지구의 3분의 2는 바다가 차지하고 있는데, 바다는 육지보다 열용량이 커서 더 많은 에너지를 축적할 수 있고 지구의 높은 평균 온도는 서서히 감소할 수밖에 없습니다. 온도가 천천히 감소하는 동안, 폭염이나 다른 기상이변 현상도 발생할 것이고, 지구의 평균 온도를 다시 되돌릴 수 없다는 점에서 비가역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현재 산업구조상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배출량을 늘리지 않는 것도 매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코로나19가 확산되고 봉쇄 조치를 한 국가들이 있습니다. 그로 인해 경제적 피해가 일어나자, 각국 정부가 봉쇄를 풀고 여행 제한을 완화하는 걸 보면서 기후변화에 대해서도 전 세계 국가들이 경제우선주의의 관점으로 접근하지 않을까 우려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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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효과

나비효과라는 말은 미국의 기상학자 에드워드 로렌츠가 1972년 “브라질에서 나비가 날갯짓을 하면 텍사스에서 토네이도가 일어날까?”(Does the flap of a butterfly's wings in Brazil set off a tornado in Texas?)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하면서 세상에 널리 알려졌습니다. 로렌츠가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날씨를 예측할 때, 입력값이 0.50617이었지만 소수점을 일부 생략하고 간소화하여 0.506을 입력했더니 완전히 다른 날씨가 예측되었다고 합니다. 이에 다른 기상학자가 갈매기 날갯짓 한 번으로 날씨가 변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하면서 첨언하였고, 로렌츠는 갈매기보다는 나비의 날갯짓이 연구 결과를 조금 더 극적으로 보여주리라 생각해서 이 표현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실제로 저 역시 미래의 기후를 예측하기 위해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자주 사용하는데, 10-14 정도로 아주 작은 값을 관측값에 더해서 시뮬레이션을 하면 완전히 다른 결과를 보곤 합니다. 이 정도로 작은 값은 관측기기로 측정하기도 불가능한 값이고, 언제라도 생길 수 있는 오차입니다. 따라서 나비효과는 작은 변화일지라도 복잡한 과정을 거치면서 도미노처럼 큰 변화를 유도할 수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현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의 기후 시스템은 너무나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인간의 능력으로 모든 것을 이해하고 예측하기란 불가능합니다. 게다가 나비효과처럼 작은 차이에도 큰 변화가 만들어지기 때문에 더욱더 그렇습니다. 작은 변화로 시작된 일들은 도미노처럼 연쇄반응이 일어나 어느 순간 되돌릴 수 없는 상태가 되곤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행동 하나하나조차 소홀히 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물론 이산화탄소 농도를 낮추면 지구의 기온이 낮아지고 북극온난화와 같은 연쇄적인 증폭 현상을 막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북극온난화로 인해 죽은 북극곰은 다시 살아돌아오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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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수면 상승, 산불, 이상 기온

지구온난화가 실생활에 미치는 영향 중 가장 대표적으로 손꼽히는 현상은 해수면 상승입니다. 가장 자명하게 일어나는 현상일 뿐 아니라, 전 세계 인구 중 약 30%, 즉 24억 명이 해안가에 거주하기 때문에 그만큼 영향이 클 수밖에 없습니다. 열대 지역의 투발루나 몰디브 등도 육지가 물에 잠기면서 기후난민이 생기기도 합니다.

그런데 해수면은 왜 상승하는 걸까요? 지구온난화가 진행되면서 바닷물 온도가 상승했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열팽창, 남극 및 그린란드의 빙하가 녹아내리면서 해수면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2100년에는 해수면이 약 1-2m 정도 상승할 것으로 예측됩니다. 그때엔 많은 지역이 침수될 뿐 아니라 태풍, 폭풍해일, 쓰나미 등이 올 때 더 높을 파도로 오기 때문에 그 피해가 커질 수밖에 없고, 농경지로 바닷물이 넘어오는 등 사회 경제적으로 큰 피해가 예상됩니다.

지구온난화와 동반되는 해수면 상승과 피해 역시 비가역적입니다. 먼 미래에 이산화탄소 농도를 줄이고 지구 온도를 낮춘다고 하더라도, 해수면의 높이는 하강하지 않고 계속 상승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바다의 평균 수심은 약 3,700m인데 바다 깊은 곳에서는 계속 열팽창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지난 겨울 호주는 역대 최악의 산불을 겪었습니다. 과학자들은 지속적인 지구온난화로 인한 온도 상승과 빈번한 가뭄을 원인으로 꼽았습니다. 올 여름에는 시베리아의 온도가 30°C 이상을 웃돌면서 툰드라라고 불리는 영구동토층에서 많은 산불이 발생했습니다. 이 역시 지구온난화가 아니라면 설명할 수 없는 일입니다. 타버린 산림이나 방출된 이산화탄소는 지구 온도를 낮춘다고 해서 다시 되돌릴 수 없습니다. 지구는 끊임없이 우리에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이대로는 안 된다고, 멈추어야 한다고, 그래야 살 수 있다고.


성경의 많은 이야기도 비가역적인 사건을 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계속 범죄하고 다시 회개하는 과정에서도 전쟁에서 희생당하거나 심판받아 죽은 자들이 살아 돌아오진 못합니다. 하지만 과거 경험을 통해서 ‘범죄의 결말’을 배웠음에도 또 범죄하고 다시 대가를 치릅니다. 성경을 읽다 보면 ‘대체 왜 또 저러나’ 답답해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하지만 이산화탄소 사용과 배출을 생각하면, 우리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에 이르게 됩니다.

출처 : 복음과상황(http://www.gosco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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