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로서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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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로서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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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1-33: 위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고 땅에서 난 이는 땅에 속하여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느니라 하늘로서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나니 그가 그 보고 들은 것을 증거하되 그의 증거를 받는 이가 없도다 그의 증거를 받는 이는 하나님을 참되시다 하여 인쳤느니라.

 

31: ‘위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고 땅에서 난 이는 땅에 속하여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느니라. 하늘로서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나니.’ 위로부터 오신 이는 어디 위에 계셨던 분이냐? 만물 위에 계셨다. 만물 위에 계셨던 분이기 때문에 위로부터 오시는 거다. 만물을 만드신 것은 인간들이 이미 있는 만물을 이용 활용해서 자기가 필요한 것을 만들 듯이 만드신 게 아니라 무에서 유로 창조하셨다.

 

위로부터 우리에게 오신 이유는 인간의 구원을 위해서다. 구원에는 지옥에서 천국에 가게 하는 구원이 있는데, 이 구원은 주님 당신이 주권적으로 하시는 거다. 그리고 신령계에 들어가서 그 나라를 주님처럼 누리는 구원이 있는데, 이 구원은 예수를 믿는 사람이 이 땅에 살면서 사건 환경 가운데서 말씀을 따라 살면서 영능의 실력을 쌓은 대로 그 나라를 누리게 되는 것으로 이걸 입는 구원, 이룰구원이라고 한다. 믿는 사람이 지옥에서 천국에 가는 구원만 알면 이룰구원에 영원한 손해를 보게 된다.

 

주님께서는 이 땅에 계시면서 구원 얻은 우리의 이룰구원을 위해 언행심사 전부가 살리는 일을 하셨고, 우리로 하여금 주님처럼 닮아지는 일을 하셨고, 신령천국을 효력적으로 누릴 수 있게 하는 일을 하셨다. 우리는 주님의 정신과 소원을 가지고 사건 환경 가운데서 영능의 사람으로 만들어져 나가야 한다. 이러려면 말씀에 능통해서 모든 언행심사가 민첩하고 민활해야 한다. 이게 예수 믿는 사람이다.

 

위로부터 오신 이가 어디에 속한 말씀을 하시겠느냐? 만물을 만드신 분이 당신이 만든 만물의 역할을 몰라서 땅을 자랑하시겠느냐? 하나님께서 만물을 지어놓고 좋았다고 하신 것은 만물 자체가 보기가 좋다는 의미가 아니라 모든 만물이 우리의 이룰구원에 쓰여질 재료감이라는 면에서의 말씀이다. 천국이 얼마나 좋으면 세상을 천국과 비슷하게 만들어 놓고 그 천국을 깨닫게 해 주시겠느냐?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천국을 더 자세히 알게 해 주시려고 땅의 것을 교재로 들어서 비유적으로 천국은 이렇다하고 말씀을 해 주셨다.

 

이 세상은 우리의 이룰구원의 밥거리요 교재다. 그런데 믿는 우리가 없어질 교재를 하나님처럼 붙잡고 여기에 마음을 뺐기면 되겠느냐? 육신의 눈으로 볼 때 이 세상의 것이 좋게 보이느냐? 세상이 아무리 좋아도 전부는 임시성이니 천국을 깨달을 교재요 비유물로 세상을 보면서 영원히 가는 영적인 면을 깨달으라고 우리들에게 성경을 주신 거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교훈을 하신 거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하늘의 신령한 참 사람으로 만들어 주시려고 이적 기사나 표적을 동원하기도 하신다.

 

땅에서 난 이는 땅에 속하여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느니라.’ 배추장사는 새벽부터 배추장사를 하는 곳에 거하니 배추에 관한 말을 하게 된다. 그런 것처럼 땅에서 난 자는 땅에 속한 말을 한다. 이걸 이치적으로 보면 예수 믿는 사람이 배우기를 예수님에 대해 배우면 그것을 먹고 자랐기 때문에 말을 하면 예수에 대한 말을 하게 된다. 그런데 예수 믿는 사람이 예수 믿으면 세상에서 부자가 된다라고 한다면 이 사람은 하늘에 속한 게 아닌 땅에 관한 것을 배웠기 때문에 땅에 속한 말을 하는 거다.

 

마귀는 땅의 것을 이루라고 하겠느냐. 하늘의 것을 이루라고 하겠느냐? 땅의 거다. 그러면 예수를 믿는 사람이 예수 믿고 땅의 것을 이루라고 한다면 이 사람이 하나님께 속한 거냐, 마귀에게 속한 거냐? 이치를 생각하면 금방 답이 나오는 건데도 물질축복을 목적으로 예수를 믿는 사람은 자기가 마귀에게 속해 있다는 것을 모른 채 이질적으로 믿는다.

 

이런 신앙을 가지게 되면 사람 꼴이 뭐가 되겠느냐? 이 사람의 모든 이해타산이, 자기의 행복이 돈이고, 집이고, 차고, 전부는 물질적으로 들어간다. 이런 사람은 말로는 인간의 생사화복이 하나님의 손에 달렸다고 하지만 자기의 신앙정신이 영에 속한 건지, 육에 속한 건지를 모른다. 그러니 자기가 자기에게 속으며 살게 된다. 자기가 자기에게 속는 이 자기가 주격으로 되어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도 속게 되어 있다.

 

땅에서 난 이는 땅에 속하여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느니라라고 하는 게 늘 살림살이 얘기만 한다는 거냐? 아니다. 자기의 이해타산과 소원 목적이 전부는 땅에 속한 거라는 거다. 땅의 것만 늘 관심을 두고 보고 듣고 경험을 했기 때문에 자기의 이해타산 소원 목적 추구와 간구성 언행심사 희로애락 모두가 땅의 것으로 여물어졌다는 거다. 질적 성분적으로 세상 땅의 정신 사상 행복성 이해타산으로 만들어졌다는 거다.

 

예수 믿는 사람은 자기의 신앙을 생각해봐야 한다. 예수 믿기 전의 이해타산과, 믿은 후의 이해타산이 분명히 달라야 한다. 똑같다면 세상 것을 소원 목적하며 예수를 믿는 거고, 이러면 예수님께 세상 것을 이뤄달라고 하는 기도를 하게 된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믿는 우리들에게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을 구하지 말고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했다. 그리고 네가 의의 사람이 되고, 너의 가정이 의의 가정이 되고, 너의 교회가 의의 교회가 되면 이 모든 것을 더하겠다고 하셨다. 즉 세상 것은 하나님께서 알아서 덤으로 주기도 하고, 말씀을 따라 살아서 옳은 지식을 깨달으면 명철한 사람이 되고, 하나님께서는 이 사람의 수고대로 물질을 주시기도 하는 거다.

 

인간들의 이해타산 가치판단 평가성이 언제부터 땅으로, 세상 것으로 되었느냐? 죽 올라가서 보면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따먹은 이후부터다. 선악과를 따먹으면 저주로 들어가는데, 이 저주성은 사람이 하나님의 성품으로 하나도 안 만들어지고 영적인 면에서 영능의 실력이나 영모의 미모성이 자라는 게 없다. 하나님으로부터 지음 받은 인간이 이렇게 사는 것은 창조의 목적관으로 볼 때 짐승만도 못한 거다. 그래서 마지막 날에는 세상을 불로 쓸어버리는 거다.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에게 생명과는 먹고 선악과는 먹지 말라고 했는데, 먹으라는 생명과는 안 먹고 선악과를 따먹었다. 인간이 생명과를 따먹으면 만물을 다스릴 수 있는 지혜지식이 나오지만 말씀에 불순종해서 선악과를 따먹게 되면 인간 자기 눈에 보기 좋은 대로 살게 되고, 선악과를 먹는 즉시로 땅에 속한 자가 된다.

 

예수 믿는 사람이 자기는 성령을 받았다고 하며 예언 방언을 할지라도 그렇게 하는 이해타산이 땅의 것으로 들어 있으면 이 사람은 악령을 받은 거다. 악령이 성령인 체하는 거다. 이건 속일 수 없는 틀림없는 판단이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 안에 이런 일이 너무나도 많다. 그리고 교회 안에 자기가 모태신앙이라는 것을 내세우는 사람이 있는데, 이것은 자기의 신앙이 좋다는 의미로 말을 하는 거다. 그러나 이 사람의 속을 들여다보면 남을 속이는 말일 수도 있다. 신앙이 좋은 사람은 함부로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 자기가 엄마 뱃속에서부터 믿었다고 하면서 왜 점점 자라면서 불순종으로 나가느냐? 이방 불신자들보다 더 악할 수가 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위로부터 나신 분의 말씀을 듣고 있는 건지? 그 분의 말씀 속의 의도성을 따라가고 있는 건지? 성경을 문자적 표면적으로 지킨다고 해서 말씀에 순종하는 게 아니라 그 말씀 속에 들어 있는 그 분의 의도성을 알고 지켜야 말씀에 순종하는 거다. 목사님의 설교도 예수님의 의도성이 나와야지 맨 세상 것을 구하라고 한다면 이건 하늘에 속한 말이 아닌 땅에 속한 말이다. 믿는 사람이 천국에 속한 말인지, 세상 땅에 속한 말인지 구별 분별을 못한다면 귀머거리다.

 

32: ‘그가 그 보고 들은 것을 증거하되 그의 증거를 받는 이가 없도다.’ 누구의 말을 받는 이가 없다는 거냐?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의 말이다. 여기서 우리는 먼저 이걸 알아야 한다.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을 삼위일체라고 하는데, 이는 한 분이면서 삼위로 나뉜다는 뜻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말을 하면 예수님이 그 말을 듣고 하는 건 없는 거다. 그런데 신학적으로는 삼위 하나님이 하는 일이 각각 다르기 때문에 그 다른 것을 말을 하려니 하나님 아버지는 예정을 하시고, 아들은 와서 예정한 그대로 구속사역을 하시고, 성령님은 구속한 그들에게 성경을 깨닫게 하는 역사를 한다고 설명을 한다.

 

그러나 어떻게 설명을 하건 꼭 세 분이 각각 다른 삼위삼체인 것으로 들리는데, 그러나 우리를 깨닫게 해 주려고 이렇게 말을 하는 거지 실은 한 분이다. 이는 아버지가 학교에 가서 학생을 가르치니 학교에서는 선생이고, 집에 와서는 농사를 지으니 농사꾼이고, 동창회에서는 회장직을 맡고 있으니 동창회 회장이지만 한 분인 것과 같은 거다.

 

:에서 보면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했다. 본 절에서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으로부터 듣고 본 것을 이 땅에 와서 증거를 했지만 인간들이 그 증거를 받는 이가 없다고 했는데, 이게 무슨 뜻이냐? 예수님은 하나님이신데 왜 당신을 아들이라고 하는 거냐? 이것을 일반개념으로 생각을 해서 하나님이 아버지니까 하늘의 어머니도 있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당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면서 인간들이 아들의 증거를 받는 이가 없다고 하는 것은 이 성경을 읽고 보고 듣는 예수 믿는 나를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이다. 그러니까 예수 믿는 사람도 하나님의 아들이니, 아들이란 아버지의 것을 상속받는 자로서 하늘나라를 상속받아서 그 나라를 아버지처럼 누리고 느끼고 통치할 존재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이다.

 

그가 그 보고 들은 것을 증거하되 그의 증거를 받는 이가 없도다라고 했는데, ‘그가는 예수님을 말한다. 그리고 그의 증거를 받는 이가 없도다라고 했으니 이 자리에 예수 믿는 자기를 넣어서 생각해 보면 예수님은 하늘에서 오셨고, 하늘의 것을 말씀하시니 예수 믿는 나는 그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거다.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예수님을 통해 아버지가 하는 일을 본 자는 하늘의 일을 본 거다. 아들이 하는 일을 본 것은 아버지의 일을 본 건데, 그 분의 그 증거를 받는 이가 없다고 한다. 지금으로 말을 하면 신실한 종들이 하늘의 뜻을 전하는데 이 증거를 받는 이가 없다는 거다. 천국복음을 전하는데 받는 이가 없다는 거다.

 

바리새교인 중에 니고데모는 유대인의 관원이요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주신 율법을 가르치는 선생으로서 율법을 성문적으로 준수를 하면서도 그 속에 담긴 천국의 본질의 사람으로 거듭나는 것을 몰랐다. 예수님께서 하늘의 것을 증거하고 있는데 성경을 가지고 정치를 한다고 하는 니고데모는 천국의 본질의 사람으로 거듭나는 것을 몰랐다. 그렇다면 거듭남을 아는 마지막 시대에 예수 믿는 나는 어떤가? 예수이름을 부르면서 소원 목적적으로 이 세상에 속한 것을 구하고 있지는 않느냐? 그렇다면 이건 마귀의 시험에 걸린 거다.

 

우리가 성경을 깨달을 때 인간 자기가 땅에서 한 체험을 넣으면 안 된다. 이러면 자칫 잘못하면 마귀의 시험에 끌려 들어가게 된다. 순전히 하늘의 것으로 되는 것만을 취해야 한다. 이건 세상의 학문으로 되는 게 아니라 하늘의 신으로만 되는 거다. 하늘의 것으로만 되는 것은 영원히 가는 거고, 옳고 그름이 판단이 나고, 세상과 천국이 판단이 난다. 안 믿는 세상사람들은 이 세상을 어떻게 살꼬?’ 하는 거지만 믿는 사람이 이룰구원의 정신을 가지고 세상을 보면 살만한 세상이다.

 

말씀으로 거듭나서 새사람이 된 자는 시각과 시감성이 달라진다. 고후5:17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라고 하는 것은 말씀으로 거듭나게 되면 시감과 시각성이 달라진다는 거다. 그래서 안 믿는 사람들은 눈물을 질질 흘리며 세상을 살아도 믿는 우리는 아무리 고된 세상이라도 웃으면서 찬송을 하며 가는 거다.

 

안 믿는 사람들은 자식을 낳으면, 특히 남자아이를 낳으면 좋아하는데 믿는 우리는 남자 아이던 여자 아이던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눈에 합격되게 기를까?’ 이게 나와야 한다. 자식을 세상중심에 맞춰서 세상사람들의 눈에 합격이 되도록 기르면 그 자식은 세상의 제물로 살게 된다.

 

33: ‘그의 증거를 받는 이는 하나님을 참되시다 하여 인쳤느니라.’ 주님의 증거를, 하늘의 증거를 받는 이는 하나님을 참되시다고 인쳤다고 한다. 즉 주님으로부터 하나님에 대해 깨달은 자는 마음 속에서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믿으면서 그 뜻을 따라 살겠다고 하는 각오와 결심을 한다는 거다. 그러면 주님의 증거를 듣고 어떻게 그렇게 빨리 하나님을 참되시다고 인쳤을까? 주님의 증거가 어떻게 그렇게 쉽게 받아졌을까? 가만히 보면 주님의 증거가 쉽게 받아진 사람은 세례요한으로부터 회개의 세례를 받은 자들이구나.

 

이런 사람은 세상에 살지만 마음 속은 세상과 별개다. 그렇다고 해서 기도원에 처박혀 있다는 게 아니다. 기도원도 세상이다. 시간이 지나가는 곳은 다 세상이다. 세례요한으로부터 회개의 세례를 받은 자는, 즉 주님이 보낸 사자로부터 천국의 교훈을 받은 자는, 천국의 사상과 정신을 받은 자는 세상을 뒤로 하고 천국을 향해 나아가니 하나님의 의의 성품이 자꾸 입혀진다. 이게 교회요, 이게 자기의 신앙이 되어야 한다.

 

세례요한의 교훈을 듣고 예수님을 영접할 수 있도록 길이 잘 닦인 사람은 예수님의 천국말씀을 듣게 되고 하나님을 바로 믿게 되는 것이니 이러면 예수님께서는 회개의 세례가 정확히 놓이도록 세례요한을 당신보다 먼저 보낸 결과를 보게 되는 거다. 또한 이렇게 되면 세례요한은 옳은 일을 한 거다. 세례요한은 비록 여자에게서 낫지만 예수님이 오시면 주님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영적인 길을 닦는 일을 했으니 여자에게서 난 세상의 모든 사람들보다 더 훌륭한 일을 한 거다.

 

그의 증거를 받는 이는 하나님을 참되시다 하여 인쳤느니라.’ 요단강에서 세례를 통해 죄를 다 씻고 동시에 회개를 한 자들은 자기 중심에서 예수님의 증거가 인격적으로 영접이 된다. 인쳤다는 것은 성령님의 역사로 인해 자기가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며 살겠다고 하는 각오와 결심을 했다는 거다. 그러니까 시인은 자기가 했는데 그 자기에게 너는 내 자식이다하는 하나님의 도장이 찍혔다는 말이다.

 

이 세상의 것은 자기가 아무리 많이 가졌다고 해도 죽을 때 하나도 가지고 가지 못한다. 그러나 신령한 하나님의 성품으로 만들어진 것은 내 안에 하나님의 것으로 도장이 찍힌 것이라서, 주님의 것으로 도장이 찍힌 것이라서 신령한 하늘나라에 가지고 들어가게 된다. (계속)

 

 

 

김경형목사님의 생전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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