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노믹스20] 조공무역 = 가나안 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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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블노믹스20] 조공무역 = 가나안 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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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블노믹스20] 조공무역 = 가나안 내전

 

김민홍 2021.03.15 주간<기독교>

 

 

“공짜평화는 없어 강자에 대가 지불

강자는 우의와 친선으로 약자 보호”

 

힘은 강자와 약자를 가르는 기준이다. 강자는 그 힘에 의존해 약자를 못 살도록 괴롭힌다. 약자의 삶은 늘 어렵다. 해서 강자의 편에 들어간다. 강대국과 약소국도 그렇다. 약소국은 강대국의 우산 아래 보호를 받는다. 강대국은 주변 약소국들을 모으면서 세력권을 넓혀간다. 동시에 강대국은 세력권 내 질서와 평화를 유지한다. 이것이 바로 강자와 약자의 구도이고 삶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약소국은 강대국의 우산을 쓰는 대가를 지불해야 된다. 그것은 때가 되면 금 은 보화 등 선물을 보낸다. 수시로 사신을 파견 충성 맹세를 거르지 않는다. 강대국은 약소국의 선물을 받으면 꼭 답례를 했다. 강자의 여유와 자신감의 표현이다. 이런 국가 관계를 조공국가라 했다.

 

동아시아는 중국이 줄곧 강자였다. 한반도를 비롯해 인도차이나반도와 일본까지 상대적으로 약자였다. 죄다 중국의 조공국가로 살았다. 수천 년 동안 조공관계는 이어졌고 동아시아 평화체제를 유지했다, 더러 주변 국가들이 중국에 대들기도 했으나 중국은 그 배신을 다스리기도 했다. 전쟁이 터지는 것 이다. 임진왜란도 일본이 중국에 배신을 때린 전쟁이다. 일본의 히데요시는 조선의 선조에게 명나라를 치러 가는 길을 내 달라고 요구했다. 조공 바치러 가는 길이 아니라 명을 치기 위한 길이다. 이 전쟁은 동북아가 최초로 경험한 국제전쟁이며 조선은 그 전쟁터의 중심이 됐다.

 

아브람시대 가나안 땅도 국제전에 휘말린다. 전쟁은 가나안 땅 국가들이 서로 남북으로 갈려서 연합군을 형성하고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싸움터의 중심지는 사해바다 남쪽이다. 시기는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하기 직전이다. 당시 가나안 일대 최강자는 그돌라오멜 왕이다. 그는 바벨론 동쪽에 자리한 엘람국의 왕이다. 그는 가나안 북쪽일대 시날(바벨로니아)국 아므라벨왕, 엘라 살국 아리옥왕, 고임국 디달왕과 함께 동맹군을 조직했다. 그돌라오멜왕은 이 동맹을 바탕으로 가나안 남쪽 일대에 자리잡은 주변국들을 점령했다. 그리고 이들을 조공국가로 만들었다. 소돔, 고모라, 아드마, 스 보임, 소알 등 5개국들이 조공을 바쳤다. 조공은 12년 동안이나 지속됐다. 이들 5개국은 힘이 달렸고 싸움을 치를 준비가 안 됐기 때문이다. 가나안 남부 5개국은 13년째 되던 해 그돌라오멜을 배신했다. 조공을 보내지 않고 반란을 일으켰다. 그둘라오멜은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 북부 4개국의 동맹군이 이듬해 요단 동쪽을 끼고 가나안 남쪽 땅으로 밀고 들어왔다. 북쪽 동맹군은 큰 저항을 받지 않았다. 사해 동쪽 편을 따라 계속 남하해 엠족과 호리족까지 정벌했다. 헤브론 남동쪽 110km 지점 엘 바란에서 서쪽으로 방향을 틀어 가데스 등 사해 서쪽 해안지대까지 무차별 응징했다.

 

이 때문에 소돔과 고모라 등 남부 연합군은 북부 동맹군에 포위 당한 형국이 됐다. 남부연합군은 싯딤 골짜기(오늘날 사해 남쪽)에서 최후의 한판을 벌이기로 하고 진을 쳤다. 승패는 일찌감치 결론이 난 전쟁이었다. 그것은 북부군이 전략적인 측면에서 우위를 차지해서다. 북부동맹군이 가나안 땅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을 평정했기에 남부군은 마치 독 안에 든 쥐나 다름 없었다. 군사들의 사기 또한 남부군은 북부군을 당해 낼 수 없었다. 결과는 남부군 완패였다. 싯딤 골짜기는 역청 구덩이가 많았다. 소돔과 고모라왕은 후퇴 길에 이 역청구덩이에 빠졌다. 나머지 왕들은 산으로 도망쳤다. 전쟁에서 패자는 비참한 법이다. 소돔과 고모라는 모든 재산을 빼앗겼다. 화려한 도시는 폐허로 변했다. 북부군이 저지른 약탈의 피해가 극심했다. 이 전쟁에서 롯의 참전 기록은 없다. 다만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롯은 포로로 잡혀갔다. 당연히 롯의 재산도 약탈당했다. 심지어 가족까지 몽땅 포로 신세가 됐다. 풍요만 찾고 믿음을 배신했다가 하나님의 벌을 받았다. 롯은 소돔과 고모라가 좋았다. 하나님보다 더 달콤했고 그곳이 즐거운 낙원이었다. 롯은 자신의 영혼이 피폐해지고 타락의 길에 들어선다는 의식을 못했다. 그 대가로 롯은 자신의 가족과 재산을 몽땅 털렸다. 롯은 졸지에 거지가 됐다.

 

조공을 배신한 소돔과 고모라 왕들도 망했다. 그들은 남부 이웃 국가마저 망하게 만들었다. 임진왜란도 그랬다. 일본은 히데요시가 죽으면서 동북아에는 평화가 찾아왔다. 그 이후 일본을 통일한 이에야스는 중국과 조공관계를 회복하고 평화를 유지했다. 조공관계에서 조공품과 답례품이 오가는 행위는 국제무역이나 다름없었다. 실제로 조공은 무역으로 변질됐다. 조공무역은 공무역이나 마찬가지이다. 결코 종속관계가 아니고 지배개념도 없다. 대등한 입장에서 서로 주고받는 거래의 하나였다. 조공무역은 강자가 이득을 보고 약자가 손해를 보는 게임이 아니었다. 오히려 약자가 더 많은 이익을 챙겼다. 중국은 조공무역의 기본정신을 사람人과 신뢰信에 두었기 때 문에 그랬다. 중국은 국제외교관계를 공존과 결속에 두었다. 작은 나라는 큰 나라를 섬기고 큰 나라는 작은 나라를 지키고 사랑한다는 정신이 깊었다. 이런 맥락에서 조공은 사대주의 사상이 아니다. 오히려 주변국과 우의와 친선으로 서로 지키고 도우며 행복한 국가를 건설한다는 차원에서 만들어진 제도로 발전했다.

 

조공무역은 그 시대 경제교류뿐만 아니라 문화 기술 종교 등 문물까지도 교환됐다. 심지어 영국 등 서방국가들도 중국 시장을 두드릴 때 처음엔 이 조공무역을 사용했다. 그만치 동북아 일대는 조공무역이 일반화됐고 사실상 각국이 주요 거래로 활용했다. 조공무역이 발달한 원인은 강자보다 약자가 이익을 더 많이 챙겼기 때문이다. 중국은 이웃 조공국가에서 헌상하는 물품보다 항상 더 많은 하사품을 주었다. 오늘날 값으로 치면 조선이 100을 헌상했을 때 중국은 그 열 배쯤 되돌려 주었다. 거기다가 조공에 나선 사신들은 개인별 밀무역도 병행해 수지를 맞추었다. 조선의 조공 사신단은 인삼을 대량으로 가져가서 북경시장에다 팔았다. 그 대신에 각종 서적이나 여인 용 화장품 및 보석 비단 등을 구입했다. 이들 물품은 몇 배의 비싼 값으로 한양 양반들에게 팔아 두둑한 이익을 챙겼다. 이 때문에 조선의 조공사신단의 중심인 통역관은 늘 큰 배를 채웠다. 조선 말기에 부자들 중 역관이 많았던 까닭도 여기에 있다. 중국도 조공 무역의 폐단을 알게 됐다. 조선 사신단을 제한하려 했지만 조공무역의 달콤함 때문에 중단되지 않았다.

 

국가 간 거래엔 절대 공짜는 없다. 한쪽이 기우는 법도 없다. 손해 보는 느낌이 들면 갈등이 생기고 끝내 불을 본다. 조공무역이 중국을 중심으로 오래 지속한 까닭은 강자인 중국이 우의와 친선으로 약자를 보듬었기 때문이다. 강자가 약자를 짓밟는 약육강식은 결코 하나님의 뜻은 아니다. J

 

김민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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