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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샛강에서] 교회 오는 사람에게 돈을 준다면

박지훈 종교부 차장

  • 기사입력 2023.04.06 04:02
  • 최종수정 2023.04.06 10:16
  • 기자명 박지훈

그 교회는 주일마다 성도들에게 돈을 줬다. 사람들은 예배가 끝나면 봉투에 담긴 1만원을 받아 챙긴 뒤 집에 가거나 지하 식당으로 향했다. 비난이 쏟아질 수밖에 없었다. “돈을 앞세운 엉터리 전도 마케팅이다” “그런 식으로 부흥하는 게 무슨 소용이 있나”…. 급기야 교회 오면 돈을 준다는 전단까지 뿌리자 사람들은 이단 아니냐고 쑥덕거렸다. 하지만 A목사에겐 뚝심이 있었다. 매달 쌓이는 십일조 일부를 헐어 쓰는 방식으로 성도들에게 나눠줄 이른바 ‘배당금 기금’을 운용했다. 2015년 시작된 이 프로젝트는 A목사가 정년을 맞아 강단을 내려온 2018년까지 계속됐다. 30명 수준이던 성도는 100명으로 늘었다. 최근 A목사를 만날 기회가 있어 대화를 나눴는데 그중 일부를 일문일답 형태로 정리하면 이런 내용이었다.

-왜 성도들에게 돈을 줬나.

“십일조의 주요 용처 중 하나는 구제비다. 구제비 운용 이유는 간단하다. 이웃사랑을 실천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가장 가까운 이웃이 누군가. 바로 교인이다. 십일조 일부를 배당금으로 재분배하는 일은 교회가 벌이는 보편적 복지의 출발선이자 교회 내에 공동체 자본주의를 만드는 신호탄이 될 수 있다. 초대교회도 내가 했던 ‘배당금 교회’와 다르지 않았다.”

-성경의 가르침을 따랐다는 건가.

“그렇다. 초대교회는 교인끼리 물질을 공유했다. 갈라디아서 6장 15절엔 이렇게 적혀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 교회는 교인에게 먼저 관심을 쏟아야 한다. 교회 울타리 밖이 아니라 안부터 살펴야 한다.”

-대형교회에서도 가능하다고 보나.

“대형교회가 십일조 일부를 성도에게 나눠줄 배당금으로 돌리면 엄청난 일이 벌어질 것이다. 한국사회 양극화 해소에 얼마쯤 기여하면서 한국교회가 폭발적으로 부흥할 수도 있다.”

물론 A목사의 목회철학엔 위험하게 여겨지는 지점이 적지 않다. 돈으로 누군가를 꼬드기는 일이 전도가 될 순 없을 테니까. 아울러 그런 방식으로는 누구의 영혼도 구원하기 힘들 것이며 교회를 향한 세상의 시선이 나빠질 거라고도 예상할 수 있다. 하지만 A목사와 대화를 나눈 뒤 며칠 내내 그가 배당금 교회를 통해 구현한 예배당 풍경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과거 그가 섬기던 교회엔 배당금을 받기 위해 별의별 사람이 모여들곤 했다. 며칠째 목욕을 안 한 건지 가늠하기 힘든 노숙인, 한눈에 봐도 지독한 가난이 묻어나는 주민, 삶의 진한 고단함이 느껴지는 노인….

물론 그들 중 몇 명이나 하나님을 구주로 영접했는지는 알 수 없다. 어쩌면 대다수가 배당금만 챙기고 교회 발길을 끊었을 확률이 높을 게다. 하지만 분명한 건 A목사가 시무하던 교회에 다닌 이들 중엔 우리 사회 가장자리에 놓인 사람이 많았다는 점이다. 지금 한국교회, 특히 대형교회 예배당에서 저런 이들을 본 적이 많은가. 만약 드물다면 그들은 왜 교회에 나오지 않는가.

많은 이가 지적하듯 한국교회에 뿌리박힌 등식 중 하나는 ‘개인의 성공=하나님께 영광’이라는 것이다. 이런 공식이 만들어진 과정은 다음과 같다. 우리는 많은 걸 가져야 한다→그래야 세상에 많은 것을 베풀 수 있다→그것이 곧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길이다. 이런 분위기 탓에 사회적으로 실패한 이는 언젠가부터 교회에 발을 붙일 수 없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고도 볼 수 있다.

짐작건대 배당금 교회는 위험천만한 상상력을 밑돌로 삼은 교회였으니 다시 등장하는 일은 없을 것 같다. 어떤 목회자도 비슷한 일을 감행하긴 힘들 것이다. 하지만 배당금 교회가 구제에 대한 이색적인 접근법을 제시했다는 점은 되새겨볼 만하다. 벼랑 끝에 놓인 한국교회에 지금 필요한 것은 아슬아슬한 상상력일 수도 있을 테니까 말이다.

박지훈 종교부 차장 lucidfal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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