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되고 역겨운 생활을 벗어 던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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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되고 역겨운 생활을 벗어 던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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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양식 91-10호                                                    1991.03.10.

성서일과 ; 대하36:14-23, 엡2:4-10, 요3:14-21.

제목 ; 거짓되고 역겨운 생활을 벗어 던져라

          - 풍성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자




  십계명은 하나님과 부모, 그리고 이웃과의 올바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하나님의 법이라고 지난주에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이 율법을 온전케 하는 것이 십자가라고 했습니다. 십자가는 자기의 생각과 자기유익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길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길이 죽음일지라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을 때, 우리는 예수를 믿는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은, “하나님의 진리가 옳습니다. 그 진리에 따라 사는 것이 우리 인생이 복되게 사는 길임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가르침대로 살겠습니다” 라고 하는 순종의 뜻이 있습니다. 십자가에서 예수님께서는 자기 몸을 가지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불의한 자들의 온갖 비웃음과 조롱을 받으면서도, 한 마디 불평이나 원망도 없이 그 십자가를 달게 지셨습니다. 사람들은 바보처럼 억울하게 십자가를 지고 가는 예수를 우습게 여겼지만, 예수 자신은 십자가를 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줄 알고 좌우 돌아보지 아니하고 그 길을 가셨습니다.

  사실 십자가는 극진한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는 상징이기도 합니다. 죄를 짓고 엉뚱한 길로 가는 인간들의 잘못을 고쳐 주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당신의 몸을 치신 것이 십자가 사건입니다. 자꾸만 어긋난 길로 빠지는 백성들을 깨우쳐서 올바른 길로 인도하려고 선지자들을 보내어 경고도 하고 재앙을 내려 징벌도 가했지만, 사람들은 들은 척 만 척 자기 멋대로 죄악의 길을 달려갔습니다. 할 수 없이 마지막 방법으로 하나님 당신 자신이 인간의 몸으로 오셔서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이 크신 하나님의 사랑, 깨닫는 자에게는 복이 있습니다. 자식인 우리가 큰 잘못을 저질렀는데 아버지이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때리지 않으시고 대신 당신의 종아리를 치셨으니, 어찌 우리가 눈물겨워 하지 않을 수 있단 말입니까? 이와 같은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하는 길은 달리 없습니다. 하나님의 그 사랑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됩니다.

  오늘 제가 여러분에게 전해드리고자 하는 하나님의 말씀은,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좀더 구체적으로 알아보고, 과연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인지 말씀 드릴까 합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가 아버지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보답입니다. 다시 말씀 드리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인간의 모습을 갖추어 살아야 합니다. (엡 2:10)의 말씀에서 바울은, “우리는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 하나님이 원하시는 거룩한 작품이 되어 삽시다.

  지난 6일부터 8일까지 인천 율목교회에서 중부 연회가 있었습니다. 마지막 날 오전 10시에는, 각 지방을 관리하는 감리사 선거가 있었습니다. 김포 지방에서는 동산교회 이승철 목사님이 감리사로 피선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감리사 선거에서 아주 중요한 일이 생겼는데, 그것은 교역자들의 의식의 변화입니다. 지금까지는 목사님들이, 어느 편을 들어야 내게 유익이 될까를 생각하고, 아니면 지역이나 출신에 따라 편이 갈려 지지하는 경향이 많았더랬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가를 먼저 생각하고 눈치보는 일이 없어 소신껏 투표를 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너무나 당연한 일이지만 그동안 목사님들이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감리사 선거가 있을 때마다 목사님들은 성도들 앞에서 고개를 들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하나님 앞에서 떳떳하고 사람들에게 칭찬 받는 생활을 원합니다. 누군들 죄를 짓고 하나님의 심판 받기를 원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나름대로 정직하게 살아보려고 애를 쓰고 선한 생활을 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다 인간답게 바르게 살다가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를 원할 것입니다. 목사님들이 감리사 선거를 멋있게 치르고 나니까, 모두들 기뻐하는 눈치들이었습니다. 후보로 나섰던 경쟁자 목사님은 감리사로 피선되신 목사님의 손을 들어 축하해 주고 여러 목사님들은 박수로 환호했습니다. 얼마나 아름답고 좋은 일입니까? 우리의 생활 전부가 이랬으면 좋겠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것을 최고 목적으로 하고 각자 신앙 양심에 어긋남이 없이 떳떳하게 살아갈 수 있다면, 이 세상은 참으로 좋은 세상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마음으로는 이처럼 정직하고 바른 생활을 함으로써 좋은 세상을 이루어 살고 싶어 하면서도, 실제 생활이 하나님의 뜻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솔직히 시인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의 경우는 정말 하나님의 뜻과는 정반대의 생활을 하고 있음을 바라보게 됩니다. 그들도 처음에는 인간의 양심에 따라 바르게 살기를 원했을 것입니다. 왜 그러면 그처럼 하나님을 등지고 살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그들이




  1. 하나님의 참 사랑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인간은 잘못을 저지르고 그릇되게 살 수 있음을 하나님도 잘 아십니다. 원하는 바는 거룩한 생활이지만, 연약한 인간인지라 죄의 유혹을 받고 어긋난 길로 빠져들 수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하나님은 밝히 아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인간이 잘못 행한 것에 대하여 크게 나무라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잘못을 깨닫고 뉘우치기를 원하십니다. 혹여, 잘못을 행하고서도 핑계를 대거나 얼버무리는 것을 결코 용납치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잘못을 하고서 그 죄를 뉘우치면 용서해 주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지만, 동시에 옳고 그름을 판가름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 죄를 청산하지 않으면, 다음에 짓는 죄가 덧씌워져서 원상으로 회복하기가 힘들어지게 됩니다. 옷은 자주 빨아 입는 게 좋지, 때가 잔뜩 밴 옷을 빨려면 아주 힘듭니다. 흰옷은 삶아 빨아도 때국이 남아 있게 마련입니다. 우리의 죄도 마찬가지입니다. 죄를 지을 때마다 그 때 그 때 회개를 해야지, 모아 두었다가 한꺼번에 청사하기가 무척 힘들 것입니다. 여러분, 그동안 지은 죄가 있으면 이 순간 그 잘못을 뉘우쳐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실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처음부터 하나님을 배반하고 등져 산 것이 아니었습니다. (대하 36:14)의 말씀을 보면, “유대 백성이 다른 민족들의 역겨운 풍속을 따라 점점 더 여호와께 반역했다” 고 했습니다. 우리가 잘못하면 어떤 형태로든지 하나님은 그 잘못을 깨우쳐 줍니다. 그 때 우리는 하나님께 잘못을 고백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하나님은 사람을 보내시어 경고하셨다고, (대하 36:15)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떠했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보낸 사람들을 조롱하고 무조건 비웃고 놀림감으로 삼았다” 고 16절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어떠합니까? 과연 하나님의 말씀을 귀담아 듣고 있습니까? 우리의 발걸음이 점점 더 하나님께 가까이 가고 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을 등진 채 점점 더 멀어져 가고 있습니까? 주님께서 지신 십자가를, 나 자신도 그 십자가가 구원이 될 줄을 믿고 기쁜 마음으로 지고 가고 있습니까? 아니면 그 십자가가 지기 싫어서 이리피하고 저리 피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간섭처럼 느껴져서 애써 그 말씀 듣기를 거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오늘 여러분의 눈을 보니, 여러분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즐겨 듣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하나님을 아주 가까이 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좀더 하나님을 가까이 하시기 바랍니다. 조금이라도 여러분과 하나님 사이에 틈이 생기면, 마귀는 그 틈을 노리고 있다가 여러분을 괴롭히게 될 것입니다.

  아무튼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했습니다. 사람들은 그 경고를, 사랑하셔서 하신 말씀으로 듣지 아니하고, 구속하고 간섭한다라고 생각했습니다. (대하 36:15)의 말씀을 보면, 분명히 하나님은 “구원하실 뜻으로 특사들을 보내어 경고하셨다” 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백성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오해하고 받아들이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백성들은 오히려 하나님을 더 멀리하고 빗나간 길로 달려갔습니다.

  마침내 하나님은 분노를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죄값으로 70년간 남의 나라 종살이를 해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바벨론 군사들의 칼에 죽임을 당했고, 나라 안의 모든 물건들을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을 거역하면 그 무엇보다도 생명을 잃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떠나게 되면 사탄의 노예가 되어 거짓되고 역겨운 생활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간섭을 받지 아니하고 자기 멋대로 살려고 한 결과, 이제는 아예 남의 나라로 끌려가서 인간 이하의 종살이를 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귀찮고 부담스러워 따르지 않으면, 사탄이 가까이 와서 친구처럼 다정하게 굴다가 나중에는 아예 자기의 종을 삼아 버리고 맙니다.

  사탄의 종이 되어 죄를 짓고 살게 되면 빛을 싫어합니다. 자기의 죄가 드러날까 봐, 빛을 싫어하고 멀리하려 합니다. (요 3:18)의 말씀에, “빛 보다는 어둠을 더 사랑한다” 고 했습니다. 여러분은 빛의 자녀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찬송을 좋아하고 말씀을 기쁘게 듣고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어둠의 자녀들은 찬송 부르기를 싫어하고 말씀 듣기를 거부하고 배척합니다. 혹이라고 여러분 중에, 말씀을 들으면 왠지 기쁘지가 않고 졸음이 잘 오는 분이 있으면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그런 사람은 십중팔구 사탄이 그 마음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빨리 하나님께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 많으시고 선한 분이시기 때문에, 무슨 잘못이든지 회개하면 용서하시고 그 전보다 더 사랑을 많이 해 주십니다.




  2.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예수를 믿는 사람들에게 영생을 얻게 해 주셨습니다.




  지난 시간에도 말씀드렸듯이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당신이 약속하신 것은 꼭 지키시는 분입니다. 비록 인간은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인간과의 약속을 지키십니다. 인간이 한 짓을 보면 오로지 심판만 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하나님은 당신이 하신 약속을 지키기 위하여 다시금 인간을 구원하시기로 하신 것입니다. (엡 2:4)의 말씀에, “한없이 자비로우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죽었던 우리를 다시 살려 주셨다” 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매를 때려 잘못을 깨닫게 하기 보다는 극진한 사랑을 베푸시어 그 잘못을 깨닫도록 하는 방법을 택하신 것입니다.

  그 일을 성경에서는 새로운 작품의 창조 작업이라 표현하고 있습니다. (엡 2:7)에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셔서 하나님의 은총이 얼마나 풍성한 지를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 주시려 한다” 고 했습니다. 한꺼번에 채워주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주님 앞에 나와 어느 정도로 겸손히 무릎을 꿇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입니다. 겸손하지 못하면 아무리 오래 하나님 앞에 서 있더라도 소용이 없습니다. 이발소 의자에 아무리 오래 있어도 머리를 흔들고 있으면 이발을 하지 못합니다. 가만히 이발사가 하자는 대로 해야 이발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좋은 작품으로 만들 수 있도록 겸손히 여러분의 인생을 하나님께 맡기시기 바랍니다. 들려주시는 말씀, 잘 새겨듣고 소화시켜서 쑥쑥 성장하는 여러분의 믿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을 새로운 작품으로 만들어 은혜를 채워 주실 뿐만 아니라, 장차 하늘 나라에서 한자리에 앉게 해 주신다고 (엡 2:6)에서 바울 선생은 말하고 있습니다. 아주 소중하고 귀한 말씀입니다. 소망스럽고 기대가 가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꼭 미래적인 사건만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 우리의 생활이 헛된 삶으로 끝나지 아니하고 틀림없이 그 결과가 주어진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예수를 믿게 되면 오늘 하루하루의 삶이 의미가 있는 생활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냥 쓸데없이 시간을 죽이는 생활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보람있는 일을 이루어 가는 생활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화투를 친다든지 술을 마시는 일은 시간을 죽이는 일입니다. 생산적이지 못하고 쓸데없이 보내는 시간이 되고 맙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게 되면, 하루의 삶이, 그리고 한 시간의 삶을 소중하고 귀하게 사용하게 됩니다. 곧 다시 말씀 드리면, 죽은 생활이 아니라, 살아 있는 생명의 삶을 살게 된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모두, 그렇게 살 수 있기를 빕니다.




  3. 자비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여 예수를 믿음으로 생명의 길을 갑시다.




  (요 3:16)에, “예수를 믿는 사람은 영생을 얻게 해 주신다” 고 했습니다. 여러분과 저는 예수를 구주로 믿습니다. 이제 죽음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허무라는 말도 예수를 믿는 우리에게는 필요없는 말이 되고 말았습니다. 오직 우리에게는 생명이신 예수가 있을 뿐입니다. 절망이나 좌절이 예수를 믿기 이전까지는 아주 친한 친구였습니다만, 이제는 절교한 지 오래되었습니다. 지금 우리의 친구는 소망과 기쁨입니다. 만일 실패가 우리를 괴롭힐지라도 잠시 뿐이지, 그 실패는 우리에게 새로운 깨달음의 지혜를 가져다주는 하나님의 심부름꾼입니다.

  우리는 종말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를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라 구원하려 함이라고 (요 3:17)에서 분명히 말씀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는 것도 불신자들을 심판하시는 것이 주목적이 아니라, 믿는 사람들을 데리러 오시는 것이 참된 목적일 것입니다. 우리가 정말 두려워해야 할 것은, 종말이 아니라 거짓되고 역겨운 생활입니다. 하나님 없이 살겠다고 하는 오만한 행동입니다. 하나님 말씀보다는 자기 생각을 앞세우는 건방진 태도입니다.

  여러분과 저는 빛의 자녀입니다. 우리는 (요 3:21)의 말씀대로 진리를 따라 사는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에 빛이 있는데로 나아갑니다. 빛은 밝고 따뜻합니다. 옳고 그른 것을 구별할 수 있도록 해 줍니다. 그래서 빛의 자녀인 저와 여러분은 바르게 살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속이고 자기 자신을 속이는 거짓을 미워합니다. 저기 또 다른 빛이 보입니다. 그리로 갑시다.

  하나님의 축복이 늘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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