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작은 것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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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작은 것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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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양식 91-24호                                                    1991.06.16.

성서일과 ; 겔17:22-24, 고후5:6-10, 14-17, 막4:26-34.

제목 ; 아주 작은 것일지라도




  먼저 있던 교회에, 박 아무개라고 하는 아가씨가 1년 전부터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일찍부터 신앙생활을 하고 싶었으나, 교회를 극력 반대하는 아버지가 무서워 교회출석을 미루어 왔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어느 청년 회원의 전도를 받아 신앙 생활을 시작한 것입니다. 부친이 김포교통 130번 버스 운전기사여서, 아버지가 쉬는 날에는 교회출석을 못하고 근무하는 날에만 예배에 참석을 했습니다.

  아버지 되시는 분은 신체가 건장하고 잘 생기신 분이었습니다. 세상의 그 무엇도 두렵지 않다는 표정을 지닌 것 같은 그 분을 종종 거리에서 뵐 수 있었습니다. 위풍당당한 모습, 비록 시내버스 운전기사이었지만 위엄이 가득한 분이었습니다. 박양이 아버지 이야기만 하면 두려워 떠는 것을 보면서, 그 아버지가 집안에서 얼마나 제왕 같이 군림하는가를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 위에 하나님 같은 분은 결코 모셔들일 수 없는, 독재자 그대로의 모습이었을 것입니다.

  사실 오늘 우리 주변에는 이와 같은 구시대적 남자의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남자로서의 구실은 제대로 못하면서 호령은 있는 힘껏 치고 가장(家長)의 대우를 다 누리려는, 좀 못난 남자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아내나 자식들이 자기 소유물인 양, 자기 맘대로 하려 하고 구속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심지어는 연약한 여자를 때리기까지 하는, 시대에 뒤떨어진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는 아직도 많이 있음을 슬퍼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겠습니까? 어림도 없는 일입니다.

  박양의 아버지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자기만 최고여야하고, 그 위에 더 높은 분을 모셔 섬긴다고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믿느니, 차라리 자기 주먹을 믿겠노라고 한 번 쯤은 큰소리 쳤으리라 짐작됩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쓰러졌습니다. 제가 여기로 오기 며칠 전, 아버지가 간경화로 병원에 입원해 있노라고 하는, 박양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내가 병원으로 병문안을 가면 어떻겠느냐고 했더니, 박양은 반가워는 하면서도 주저하는 눈치였습니다. 제가 가면 박양이 교회를 다닌다는 사실을 부친이 알게 될 것이고, 그러면 노발대발할 것은 뻔한 이치였기 때문입니다.

  그 후, 소식을 들을 수 없었는데, 지난 13일 저녁에 전해온 이야기로는 원목사님과 성도들이 병원으로 심방을 갔었다는 것입니다. 박양의 아버지가 예수를 믿겠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아, 그러나 불행히도 박양의 아버지의 병세는 절망적이라고 합니다. 어쩌면 좋지요? 하지만 박양의 아버지는 예수 믿어 구원받고 죽게 된 것이 무엇보다도 기쁘다고 말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건강할 때에 예수를 잘 믿읍시다. 젊었을 때에 주의 일을 많이 합시다. 더 늙어 기력이 쇠하기 전에 하나님께 충성을 다합시다. 병들어 약해졌을 때에 가서 하나님을 찾지 말고, 지금 이 말씀 듣는 순간부터 성실하게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며 사십시오. 세상에서 즐겨하는 것을 과감히 끊어버리고, 신앙 생활을 하되 멋있게 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생활 전반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 따라야 합니다. 온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인정하고,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데 달려 있음을 깨닫고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되, 심심풀이로 장난 삼아 믿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시간이 나면 하나님을 찾아 예배하고, 바쁘면 하나님께 예배하는 일을 소홀히 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존재를 믿고 그의 섭리를 인정한다면, 우리의 생활 전부를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에스겔서 17장 24절의 말씀을 보면, 『여호와께서 한 번 말씀하신 것은 반드시 그대로 이루신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속일 수는 있어도 하나님을 속일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생활을 맘대로 할 수 있는 것 같지만, 사실 우리 맘대로 할 수 있는 일이란 거의 없습니다. 버스를 타려 해도 시간이 되어 버스가 와야 탈 수 있는 것이지요, 자가용을 타고 간다 해도 신호대기에 걸리면 초록불이 들어 와야 전진을 할 수 있습니다. 아무 때나 씨를 뿌립니까? 농사철이 되어 적절한 시가에 맞추어 씨를 뿌려야 합니다. 아무 때나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립니까? 정한 시간이 되어야 함께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아무 곳에서나 소변을 봅니까? 아닙니다. 정해진 곳에서 일을 봐야, 야만인 소리를 듣지 않습니다.

  우리 인생은 일정한 법칙을 따라야 살 수가 있게 되어 있습니다. 만일 그 법칙을 자꾸 어기게 되면 제 명(命)에 죽지 못합니다. 이 법칙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틀림없이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동쪽에서 뜨던 해가 갑자기 서쪽에 뜰 리가 없습니다. 봄이 지나면 여름이 오게 도어 있지, 갑자기 가을이 오는 경우란 없습니다.

  에스겔서 17장 22-24절의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연한 가지를 꺾어 시온산에 심으셨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독수리가 이 가지를 자기에게 향하게 하고 약하게 하여 자라지 못하게 한다고 했습니다. 이 연한 가지는 보기에 심히 미약해 보이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가지를 자라게 해서 열매를 맺는 훌륭한 나무가 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새들이 와서 깃들게 되며, 온갖 날짐승이 그 그늘에서 쉬게 되리라고 했습니다. 종종 독수리가 나타나서 그 나무를 자라지 못하게 하고 연약하게 하지만, 하나님의 손길에 의하여 자라는 그 나무는 아주 훌륭한 나무가 되어 많은 이들에게 기쁨을 주고 안식을 줍니다.

  이 말씀은 다윗 왕조를 비유적으로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또한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어떻게 전파되며 성장할 것인지를 상징적으로 보여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을 때에, 예수님의 복음은 끝장난 줄 알았습니다. 아니, 로마 황제인 네로에 의해서 기독교는 완전히 말살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오히려 로마제국을 정복하여 기독교 국가를 만들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놀랍고도 신비스러운 일입니다. 총칼 하나 사용하지 않고 기독교는 순전히 하나님의 말씀인 복음으로 로마제국을 정복했던 것입니다.

  이제는 그 복음이 우리 나라에 까지 전파되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구원하여 사람답게 하셨으며, 그 복음의 그늘에서 얼마나 또 많은 사람들이 안식을 누리고 있습니까?

  그런데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1. 이 하나님의 역사를 부인하고 인간의 힘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마가복음 4장에는 겨자씨의 비유가 나옵니다. 이 비유의 말씀은, 로마 정부를 힘으로 정복하겠다는 열심당원들과의 논쟁이 있은 다음에, 하신 말씀입니다. 가룟 유다도 이 열심 당원이었다고 합니다. 베드로가 아닌, 또 다른 시몬도 열심 당원이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는, 백성들의 힘을 모아 로마정부를 무너뜨리고 독립 국가를 세울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가지고 싸우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일부 백성들이 예수님을 따른 것은, 로마 정부를 무너뜨리는데 예수님의 신통력을 이용해 보려는 심산이었던 것입니다. 일설에 의하면, 가룟 유다도 이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자 예수님을 배반했지 않았나 싶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로마 군인에게 붙잡혀 죽을 지경에 이르면, 그 때에는 예수님도 분노하여 그 신통력을 발휘하여 로마 정부를 무너뜨리지 않겠나 하는 생각에서, 예수님을 팔았을 것이라는 학설도 있습니다.

  아무튼 요즈음에도 가룟 유다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기독교를 하나의 세력으로 세력화 하려는 사람들 말입니다. 기독교인들이 힘을 모아 세상을 정복해 보겠다는 계산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을 우롱해도 유만부득이지, 너무나 엉터리 같은 생각입니다. 하나님이 하시고자 한다면 천지개벽은 못하실까요? 해가 서쪽에서 뜨게 하실 수 있는 능력의 하나님이십니다. 히스기야와 여호수아의 기도를 들으시고, 해를 뒤로 물러가게도 하시고 머무르게도 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어떤 기독교인 무리들이 어떤 정당에 들어가 정치를 바로 잡아 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실패했습니다. 나라는 가만두고 소속해 있는 그 정당 조차 민주화하는데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또 다시 이번에는, 몇몇의 목사까지 포함하여 대거 그 정당에 뛰어 들었습니다. 먼저 들어간 사람들이 실패하는 것을 보고서도 입당을 한 것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1년도 못되어 부총재인 최 모 목사가 이번 선거가 끝나면 탈당하리라는 소식입니다.

  기독교인들이 노동계에도 뛰어들었습니다. 그래서 노동자를 도와 기업인과 싸웠습니다. 결과는 어떻습니까? 그나마 회사 내에 있던 신우회 조차 없어진 곳이 한둘이 아닙니다.

  기독교인이 세상 속으로 뛰어들어 살되, 세상 사람들이 다 되어 살아도 문제입니다. 교인인지 아닌지 도대체 구분할 수 없도록 하는 것, 분명히 잘못된 것입니다. 그러나 교인끼리 뭉쳐서 세상에서 하나의 세력으로 등장하는 것, 또한 잘못된 것입니다.

  기독교인은 소금이 되어야 합니다. 소금은 녹아져서 그 짠맛을 드러내야지, 더 크게 똘똘 뭉쳐서 짠맛을 낼 수는 없습니다. 영춘교회가 앞으로 무슨 일을 하려면, 소리 소문 없이 조용히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해야지, 나팔을 불어내며 무슨 사업을 합네 하면 안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이 땅 위에 펼쳐 가되, 재력이나 권력을 의지해서는 안됩니다. 오로지 하나님만을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라면, 인간의 형편을 돌아보지 말고 할 수 있는데 까지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빚을 져가며 하자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면 능력의 하나님이 함께 하실 줄로 믿습니다. 그러나 돈이 아무리 많아도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면 해서는 안됩니다.

  이 세상에는 힘의 논리가 판을 치고 있습니다. 이 힘의 논리가 교회에까지 파고들고 있습니다. 교회도 커야 하나님의 일을 할 수가 있고, 돈이 많아야 구제 사업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물고기 두 마리와 떡 다섯 덩어리로 오천 명을 먹인 이야기는 성경 속에나 있는 옛날 이야기이지, 우리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말씀이 되고 말았습니다. 빌립의 계산대로 돈이 있어야 빵을 살 수 있지 않겠느냐고 하는 사고방식을, 믿음으로 가지고 있는 분들이 많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질도 양도 아닙니다. 겨자씨 만한 믿음입니다. 인간의 생각과 인간의 힘을 믿는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믿음입니다.

  여선교회도 지식이나 힘을 가지고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여선교회는 세상의 조직과는 달라야 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겨자씨 만한 믿음만이 있으면 됩니다. “목사님! 그런 소리 마십시오.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라고 말하실 분이 있을지 모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현실을 믿기 위하여 교회에 왔습니까?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기 위하여 교회에 왔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2. 역사를 주관하시는 능력의 하나님이십니다




  고린도후서 5장 7절에서 바울 선생은, 『우리는 보이는 것으로 살아가지 않고 믿음으로 살아간다』고 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권력과 재력을 자랑하지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 자랑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하나님께서 살려 주실 줄 믿고 자기가 죽어지는 희생정신입니다. 하나님의 역사(役事)는 이 십자가 위에서 이루어집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베드로가 부자였습니까? 아니면 지식이 많았습니까? 그는 아무것도 없는 가난뱅이 어부에 불과했습니다. 예수를 따르는 열심히 남다르게 있는 줄 알았더니, 그러나 그것도 허상에 불과했음이 나중에 드러나고 말았습니다. 그러면 그에게 무엇이 있었습니까?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저 있다면, 많은 죄를 지은 그를 예수님께서 용서하시고 사랑하셨다는 사실, 그 사랑의 예수님께서 지금도 함께 하신다는 것을 믿는 믿음뿐이었습니다.

  그 믿음의 힘이 로마를 향하게 하는 밑거름이 되어, 죽기까지 복음을 전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실상 베드로가 복음을 전했다면 몇 명이나 전도했겠습니까? 그 큰 로마에 비하면 너무나 적은 숫자에 불과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작은 것 위에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하셔서, 로마를 기독교화 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 아주 작은 믿음을 자라게 하셔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가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힘이나 조직으로 하나님 나라를 이루겠다는 생각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기를 사랑하는 백성을 신비한 방법으로 인도하시고 새롭게 하십니다. 인간의 판단이나 생각과는 다르게 활동하셔서 모든 사람을 깜짝 놀라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신뢰하며 따르기만 한다면, 놀라운 역사를 볼 수 있음을 확신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3.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여 믿음 안에서 주의 일을 행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삽시다




  우리가 세상을 의지하고 세상의 방법으로 살아갈 때에는, 뭔가 이루어질 듯 하여 애쓰지만, 맨날 그 타령이어서 기쁨이 없는 생활을 했습니다. 내일이면 나아지겠지 하고 오늘을 참아 보지만, 내일이 오늘이 되어도 매 한가지 인생입니다.

  이제는 예수를 믿음으로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내 속에 있던 세상 중심적인 생각은 다 버리고 하나님 중심의 생각으로 채워졌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후서 5장 6절에서 『우리는 언제나 마음이 든든합니다』라고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보이는 것으로 살아가지 않고 믿음으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고린도후서 5장 16절에 있는 말씀처럼, 『우리가 세속적인 표준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지 않고 믿음의 눈으로 세상을 판단하게 된 것입니다』

  이제는 세상의 보이는 물질이 적고 많음에 따라, 또는 환경에 좋고 나쁨에 따라 우리의 마음이 좌우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속에 하나님만 계시면, 세상이 두쪽이 나도 염려할 것 없습니다. 도피적인 생각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 세상을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심으로, 그 결과는 선하신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질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사탄이 하는 일은 처음에는 좋아 보이고 그럴 듯 해 보이지만, 결과는 항상 거짓이요 악할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처음부터 끝까지 선하십니다. 잠시는, 썩어질 우리의 육신의 눈으로 볼 때에 하나님의 일이 의심이 갈 때도 있으나, 말씀을 깨닫고 보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옳았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오직 믿음으로 살되 주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후서 5장 9절에서, 『우리가 육체에 머물러 있든지, 떠나서 주님 곁에 있든지 오직 주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일만이 우리의 소원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주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일이 곧 우리 인간이 가장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일이 되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이 내 영혼이 기뻐하는 일이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날마다 새롭게 되어 살아가야 합니다. 묵은 생각과 사고방식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새롭게 거듭 태어나야 합니다. 사람의 힘이나 재력으로써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다는 낡은 생각을 버리고, 작은 믿음 위에 하나님이 크게 역사(役事)하심을 직접 경험하면서 주님의 새로운 세계를 바라볼 수 있는 새 인간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아무쪼록 성도 여러분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더 많이 경험하셔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복된 인생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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