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 함께 계시니 평안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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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10 18:43
영혼의 양식 91-25호 1991.06.23.
성서일과 ; 삼하5:1-12, 고후5:18-6:2, 막4:35-41.
제목 ; 주가 함께 계시니 평안하여라
어디를 갈 경우, 일반 버스가 아닌 교회 버스나 개인 승용차를 이용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차는 마음 편안히 타고 갈 수 있는가 하면, 또 어떤 차는 타고 가기가 심히 불안하고 걱정스럽습니다. 그것은 운전기사가 어떤 성격의 소유자인가, 그리고 나이의 많고 적음에 따라 좌우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격이 급하고 젊은 사람이 운전하는 경우는, 차를 심하게 몰기 때문에 사고가 날 것만 같아 불안합니다. 반면에, 성격이 침착하고 나이 드신 분이 운전을 하면, 천천히 차를 안전하게 몰기 때문에 편안히 차를 타고 갈 수가 있습니다.
또 이런 경우가 있습니다. 안내를 하는 사람이 가고자 하는 목적지에 대하여 아주 자세히 잘 알고 있으면, 아무 염려 없이 그를 따라갈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안내하는 사람이 그곳의 지리를 잘 모를 경우, 그것처럼 답답한 일이 없을 것입니다. 한참을 가다가 “어, 여기가 아닌데!” 하면서, 이리 끌로 갔다가 저리로 끌로 가는 둥, 갈팡질팡을 하면, 안내자는 물론이요 따라가는 사람 또한 심히 불안할 것입니다. 적어도 안내하는 사람은 목적지에 대해서 잘 알뿐만 아니라, 그와 관련된 정보까지 말해줄 수 있어야 합니다.
지난 해 가을, 김포지방 교역자들이 단체로 제주도 여행을 갔었습니다. 제주 관광을 아주 즐겁고도 유익하게 하고 왔습니다. 그런데 제주 관광을 즐겁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버스 기사 덕분이었습니다. 최집사라고 하는 분이었는데, 어찌나 친절하고 자세하게 관광지에 대한 해설을 해 주는지, 모든 교역자와 사모님들이 최집사에게 홀딱 반해버리고 말았습니다. 간간이 은혜스러운 찬송을 생음악으로 들려주는가 하면, 사 먹어서 유익한 것과 사 먹어서는 안되는 것을 잘 알려 주었습니다. 그분의 정보에 따라, 음식을 맛있게 하는 곳을 찾아갈 수도 있었고, 비싼 영지버섯과 꿀을 속아 사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더욱 고마운 것은, 차를 안전하게 천천히 운행함으로써 여행으로 인한 피로감을 덜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그 때, 저는 새삼 안내자의 중요성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가 신앙인 이었기 때문에, 관광 안내를 돈벌이로만 생각지를 않고 봉사한다는 마음 자세로 정성을 다하는 모습을 읽을 수 있었다는 것이, 여행의 즐거움 중 큰 몫을 차지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지금, 나그네 인생 길을 가고 있습니다. 찬송가에 있는 것처럼, 우리는 괴로운 인생 길을 가는 몸입니다. 걱정과 고생이 떠나지 않아, 편안할 날이 별로 없는 어려운 인생길입니다. 이 인생길을 누가 안내하느냐에 따라, 우리는 복된 길을 갈 수도 있고 불행과 슬픔의 길을 갈 수도 있습니다. 자칫 잘못된 이를 만나 따라 가게 되면, 되돌이킬 수 없는 불행의 늪에 빠지게 되어 일생을 망치게 됩니다. 어떤 경우에는, 몇 번이고 헛수고와 헛된 고생을 실컷 한 다음에야, 바른 길로 들어서는 사람도 있습니다.
인도자를 잘 선택해야 합니다. 스승을 잘 만나야 합니다. 우리를 정말 옳은 길로 인도할 뿐만 아니라, 인생길을 편안히 갈 수 있도록 인도하는 참된 안내자를 만나야 합니다. 인생의 목적지에 대하여 잘 알고 그 가는 지름길을 잘 알아서, 인생길을 즐겁고도 유익하게 갈 수 있도록 안내할 수 있는 좋은 스승을 우리는 필요로 합니다.
그런 면에서 저와 여러분은 정말 축복 받은 인생들입니다. 왜냐하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우리 인생의 스승이요 안내자로 모시고 살아가고 있으니 말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우리 주님 예수는 인생 길을 가는 도중,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그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는 능력의 주님이시기 때문에, 아무 염려나 걱정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정말, 주님이 함께 하시면 아무 염려할 것 없습니다. 아니 오히려, 주와 함께 있으면 큰 복이 됩니다. 뜨거운 태양볕을 쬐이면 더워서 저절로 땀이 흐르듯이, 주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면 저절로 축복이 됩니다. 주님이 복의 근원이 되기 때문입니다. 지식이 많은 사람과 늘 가까이 지내면 아는게 늘어나고, 예절 바른 사람을 가까이 하면 그 품행이 달라집니다. 하물며 스승 중의 스승인 예수님을 늘 가까이 모시고 살면, 어찌 그 생활이 달라지지 않을 것이며 축복이 안 되겠습니까?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주님이 함께 계시면 환난 시험 중에도 위로가 되고 힘이 되어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아무 일 없을 때에야, 누가 그리 쉽게 주님을 찾겠습니까? 흔히 사람들은 어려움을 겪어야, 찾지 않던 하나님을 찾는 것이 아닙니까? 하지만 우리 믿는 성도는 늘 주님을 모시고 살기 때문에, 새삼스럽게 주님을 찾아 부를 필요가 없습니다. 풍우대작을 하고 거센 풍랑이 일어도 하나 염려할 것 없습니다. 주님이 곁에 계시면 능히 그 모든 것을 해결해 주시리라는 것을 믿고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읽은 마가복음 4장의 말씀을 보면, 예수님의 제자들은 아직 그러한 믿음을 갖지 못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배를 타고 호수를 건너던 중에 풍랑을 만나 배에 물이 가득차게 되자, 제자들은 무서워서 주무시는 예수님을 불러 깨우는 등, 호들갑을 떨며 소동을 벌인 이야기가 35-41절에 실려 있습니다.
바로 조금 전, 예수님은 겨자씨의 비유를 들려주면서,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만 있어도 그 믿음이 자라면 아주 큰 나무가 되어 많은 이들에게 많은 유익을 주는 사람이 된다는 것을 가르치셨더랬습니다. 마태복음 17장에서는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으면 산을 옮길만한 능력이 생긴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들은 말씀을 금방 잊어버렸는지, 옆에 계신 주님을 바라보기 보다는 험한 바다 물결과 배 안에 들어차는 물을 바라보고 두려워했던 것입니다.
그동안 주님은 제자들에게 그토록 많은 능력의 역사와 기적을 행하셨건만, 제자들은 그러한 능력의 주님을 바라보지 못했습니다. 아니 제자들은 주님을 바라보고는 있었으되, 거친 파도까지 잔잔케 하실 수 있는 능력의 주님을 바라보지 못하고, 주무시고 있는 예수님만을 바라보았던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그들은 주님 곁에 있으면서도 진정 그들의 마음속에 까지 주님을 모셔들이지는 못했습니다. 오늘도 많은 사람들은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을 경외하며 섬긴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을 그들의 마음속에와 생활 속에 모셔들여 섬기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생각나면 주님을 찾을 정도지, 또는 시간이 나면 하나님을 찾아와 인사를 드릴뿐이지, 정말 그들의 생활 속에서 주님과 함께 하는 생활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1. 조그마한 풍랑에도 두려워하며 겁을 내고 있습니다
겁을 내고 두려워하면, 자기 맡은 일에 충실할 수가 없습니다. 곡예를 하는 사람이 떨어질까봐 두려워한다면 볼장 다 본 것입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시작하면 자기 능력을 다 발휘하지 못합니다. 어떤 분은 운전을 하다가 사고가 나면 어떡하냐고 미리 걱정을 한 나머지, 운전 배우기를 꺼려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무슨 일을 하게 되면 소문이 어떻게 날것이며 그 결과 어떤 피해가 오리라는 것까지 예측을 하고 상상을 해서, 아예 처음부터 일을 하지 않는 분들도 있습니다.
바다가 있으면 파도가 있게 마련입니다. 꽃이 있으면 별과 나비가 날아오는 법입니다. 인생살이를 하는데, 어디를 간들 파도가 없이 잔잔한 날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세월이 간다고 해서 바람 잘 날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어찌 상처가 없이 운동 연습을 할 수 있겠습니까? 작가가 파지(破紙)를 남기지 않고 어찌 훌륭한 작품을 쓸 수 있겠습니까? 하물며 세상을 사는데, 어찌 말이 없겠으며 욕을 먹지 않고 무슨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일부러 욕을 먹으려고 애 쓸 필요는 없겠습니다만, 뭔가 일을 새롭게 하려면 어쩔 수 없이 욕을 먹어야 합니다. 잘 했느니, 못 했느니 하면서 말을 들어야 합니다.
제자들이 파도가 있으리라는 것을 이미 예측을 했을 것입니다. 갈릴리 바다에 한 두 번 가본 것이 아니고, 그 곳에서 고기 잡는 일을 업으로 하던 사람들도 있었으니 말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파도를 그토록 두려워한 것은, 그들의 믿음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하고 책망을 하셨던 것입니다. 인생을 하나님께 맡겨 사는 것이 아니고 세상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못한 까닭에, 그처럼 호들갑을 떨었던 것입니다. “죽으면 어떠랴!” 하는 마음 자세로 주님을 의지했더라면, 풍랑 앞에서 좀더 의연했을 것입니다. “욕을 먹은들 어떠랴? 하나님이 아실 텐데!” 하는 마음 다짐을 한다면, 세상의 그 무엇도 두려울 것이 없을 것입니다.
다윗은 그동안 아비나답의 집에 있던 하나님의 법궤를 새로 건설한 다윗성으로 모셔 옮길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온갖 준비를 한 다음에, 법궤를 옮기는 도중에 웃사가 죽었습니다. 다윗은 운반하는 일을 중단했습니다. 불행히 자기에게 닥칠 것을 두려워 한 까닭입니다. 그래서 법궤를 오베데돔의 집에 모셨습니다. 그러자 오베데돔의 집에 하나님께서 복을 내리셨습니다. 석달동안 오베데돔의 집에 복을 내려 주셨다는 소식을 듣고 난 후에야, 다윗은 하나님의 법궤를 다윗성으로 옮겼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찌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되, 편안하고 아무 탈 없을 때에만 찾을 수 있겠습니까? 아니 반대로, 아무 탈없을 때에는 하나님을 찾지 않다고, 어려운 일이 생기면 그 때에서야 하나님을 찾으면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일이 잘 되었다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집안에 우환이 생겼다고 해서 하나님을 멀리하면 또 어떻게 되는 일입니까? 하나님이 우리의 노리개란 말입니까? 필요하면 꿰어차고 싫증이 나거나 귀찮아지면 떼어버리는 액세서리란 말입니까?
다윗은 어떤 어려움을 각오하고서라도, 하나님의 법궤를 모셔 오기로 했다면 모셔 왔어야 했습니다. 오베데돔의 집에 축복하는 것을 보고서야, 하나님의 법궤를 모셔오는 다윗을 간사함, 어쩌면 오늘 우리들의 마음이 그런 것은 아닌지요? 궂은 일, 욕먹는 일에는 뒷짐을 지고 구경만 하고 있다가, 칭찬 받고 상 받을 일이면 용감히 뛰어드는 우리가 아닌지요?
요컨데, 대부분 우리들의 삶은 자기 중심적인 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지 못하는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 중심, 자기 이익만을 생각하는 이기심을 극복해야 세상에 대한 두려움도 이겨낼 수 있습니다. 그래야 그 다음에, 우리 모두가 원하는 진정한 마음의 평화를 누릴 수가 있습니다. 제자들이 진정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시고 있었다면, 파도가 밀려오고 배 안에 물이 들어오더라도 두려워 떨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가 정말 예수님을 우리 주님으로 모시고 산다면, 그 예수님이 세상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시오, 지금도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섭리자 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그런 믿음만 가지고 있다면, 우리가 파도를 두려워하겠습니까?
우리는 선하시고 아름다우시며 참되신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 하나님께서
2. 우리와 함께 하셔서 튼튼한 믿음을 갖게 하시고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도록 도와주십니다.
악한 농부라면, 실하지 못한 작물을 보고 화가 나서 신경질을 내며 짓밟아 버리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착한 농부는 잘 된 작물을 보고 기뻐할 뿐만 아니라, 잘 자라지 못한 작물을 보면서 심히 안타까워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작물이 잘 자랄 수 있도록 거름을 다시 주고 물을 주어 정성 들여 가꿀 것입니다.
하나님은 착한 농부입니다.
실수와 허물 많은 우리를 야단치고 꾸짖기보다는, 불쌍히 여기시사 잘 보살펴 주시고 다독거려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멀리해서 스스로 엉겅퀴에 걸려 넘어지고 웅덩이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것이지, 하나님이 우리를 올무에 걸려 넘어지게 하시거나 웅덩이에 밀어 뜨려 빠지게 하는 경우란 결코 없습니다. 하나님은 오히려, 우리가 웅덩이에 빠지는 실수를 하게 되면, 당신이 직접 웅덩이에 들어가서 우리를 구출하시고 당신은 희생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부족한 우리를 나무라시기보다는, 잘 자라지 못한 식물을 가꾸듯이, 더 관심을 가지시고 돌보시는 분이심을 우리는 명심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우리가 어려움을 당하면 그 어려운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제자들이 풍랑을 두려워하자, 바다를 잔잔케 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답답하게 여기시는 것은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고 받아들이지 않는 인간들의 태도입니다. 어쩌다가 하나님께 구하여도 응답 받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확실히 믿고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한편은 세상을 의지하면서 시험삼아 하나님께 구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제일 싫어하십니다. 제자들이 예수를 믿는다고 따라 다니면서도 주님께 전폭을 맡겨 의지하지 않고, 여차하면 도망갈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같은 믿음 없는 행동을 했던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18절에 있는 말씀을 보면,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내세워 우리를 하나님과 화해케 하셨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화해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하나님과 하나되는 삶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3. 하나님에 함께 하심을 믿어, 안심하고 우리 인생을 맡겨 삶으로써 주를 기쁘시게 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별로 없음을 아시기 바랍니다. 단지 저와 여러분 곁에 하나님께서 계시다는 사실을 인정해 주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옆에 엄연히 계신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외면하고 사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하나님을 외면하고, 욕심 때문에 하나님을 외면하고, 자기 고집과 자존심 때문에 하나님을 외면하고 살 때가 많습니다. 이것을 하나님은 제일 섭섭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정말 하나님을 모시고 복되게 살기를 원한다면,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을 뿌리치지 마십시오. 그가 인도하는 대로 따라가 보십시오. 아주 좋은 곳으로 안내해 주실 것입니다. 자세히 설명해 주시면서 안전하게, 그리고 편안하게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 먹을 것과 먹지 말아야 할 것을 가르쳐 주시고, 가서 유익할 곳과 가서는 안될 곳을 말씀해 주실 것입니다. 안내자가 인도하는 대로 따라 가야지, 그렇지 않으면 많은 고생을 하게 되는 것은 물론이요, 잘못하면 죽음의 길로 빠지게 됩니다.
안내자를 기쁘게 하는 방법은 다른 것 없습니다. 설명하는 것을 열심히 듣고 인도하는 대로 잘 따르면 됩니다. 그러면 더 좋은 곳으로 인도해 주고 잘 가르쳐 줍니다. 그러나 안내자의 말을 안 들으면, 안내자를 기분 나쁘게 할뿐만 아니라, 좋은 곳으로 인도함 받지 못합니다.
사랑하는 영춘교회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선한 목자이신 하나님의 어린양 들 입니다. 목자의 음성을 듣고 잘 따르십시오. 그러면 틀림없이 편안히 쉴만한 곳으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그 음성 듣기를 거부하고 따르지 않을 때, 그 결과는 뻔합니다. 오늘 제 입술을 빌려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간절한 말씀을 귀담아 들으시고 복된 인생 길을 가시기 바랍니다.
아무쪼록, 여러분 곁에는 늘 하나님이 함께 계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고, 그분의 마음에 드는 생활을 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생활을 책임져 주실 것임을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하나님의 평화와 기쁨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
성서일과 ; 삼하5:1-12, 고후5:18-6:2, 막4:35-41.
제목 ; 주가 함께 계시니 평안하여라
어디를 갈 경우, 일반 버스가 아닌 교회 버스나 개인 승용차를 이용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차는 마음 편안히 타고 갈 수 있는가 하면, 또 어떤 차는 타고 가기가 심히 불안하고 걱정스럽습니다. 그것은 운전기사가 어떤 성격의 소유자인가, 그리고 나이의 많고 적음에 따라 좌우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격이 급하고 젊은 사람이 운전하는 경우는, 차를 심하게 몰기 때문에 사고가 날 것만 같아 불안합니다. 반면에, 성격이 침착하고 나이 드신 분이 운전을 하면, 천천히 차를 안전하게 몰기 때문에 편안히 차를 타고 갈 수가 있습니다.
또 이런 경우가 있습니다. 안내를 하는 사람이 가고자 하는 목적지에 대하여 아주 자세히 잘 알고 있으면, 아무 염려 없이 그를 따라갈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안내하는 사람이 그곳의 지리를 잘 모를 경우, 그것처럼 답답한 일이 없을 것입니다. 한참을 가다가 “어, 여기가 아닌데!” 하면서, 이리 끌로 갔다가 저리로 끌로 가는 둥, 갈팡질팡을 하면, 안내자는 물론이요 따라가는 사람 또한 심히 불안할 것입니다. 적어도 안내하는 사람은 목적지에 대해서 잘 알뿐만 아니라, 그와 관련된 정보까지 말해줄 수 있어야 합니다.
지난 해 가을, 김포지방 교역자들이 단체로 제주도 여행을 갔었습니다. 제주 관광을 아주 즐겁고도 유익하게 하고 왔습니다. 그런데 제주 관광을 즐겁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버스 기사 덕분이었습니다. 최집사라고 하는 분이었는데, 어찌나 친절하고 자세하게 관광지에 대한 해설을 해 주는지, 모든 교역자와 사모님들이 최집사에게 홀딱 반해버리고 말았습니다. 간간이 은혜스러운 찬송을 생음악으로 들려주는가 하면, 사 먹어서 유익한 것과 사 먹어서는 안되는 것을 잘 알려 주었습니다. 그분의 정보에 따라, 음식을 맛있게 하는 곳을 찾아갈 수도 있었고, 비싼 영지버섯과 꿀을 속아 사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더욱 고마운 것은, 차를 안전하게 천천히 운행함으로써 여행으로 인한 피로감을 덜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그 때, 저는 새삼 안내자의 중요성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가 신앙인 이었기 때문에, 관광 안내를 돈벌이로만 생각지를 않고 봉사한다는 마음 자세로 정성을 다하는 모습을 읽을 수 있었다는 것이, 여행의 즐거움 중 큰 몫을 차지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지금, 나그네 인생 길을 가고 있습니다. 찬송가에 있는 것처럼, 우리는 괴로운 인생 길을 가는 몸입니다. 걱정과 고생이 떠나지 않아, 편안할 날이 별로 없는 어려운 인생길입니다. 이 인생길을 누가 안내하느냐에 따라, 우리는 복된 길을 갈 수도 있고 불행과 슬픔의 길을 갈 수도 있습니다. 자칫 잘못된 이를 만나 따라 가게 되면, 되돌이킬 수 없는 불행의 늪에 빠지게 되어 일생을 망치게 됩니다. 어떤 경우에는, 몇 번이고 헛수고와 헛된 고생을 실컷 한 다음에야, 바른 길로 들어서는 사람도 있습니다.
인도자를 잘 선택해야 합니다. 스승을 잘 만나야 합니다. 우리를 정말 옳은 길로 인도할 뿐만 아니라, 인생길을 편안히 갈 수 있도록 인도하는 참된 안내자를 만나야 합니다. 인생의 목적지에 대하여 잘 알고 그 가는 지름길을 잘 알아서, 인생길을 즐겁고도 유익하게 갈 수 있도록 안내할 수 있는 좋은 스승을 우리는 필요로 합니다.
그런 면에서 저와 여러분은 정말 축복 받은 인생들입니다. 왜냐하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우리 인생의 스승이요 안내자로 모시고 살아가고 있으니 말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우리 주님 예수는 인생 길을 가는 도중,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그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는 능력의 주님이시기 때문에, 아무 염려나 걱정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정말, 주님이 함께 하시면 아무 염려할 것 없습니다. 아니 오히려, 주와 함께 있으면 큰 복이 됩니다. 뜨거운 태양볕을 쬐이면 더워서 저절로 땀이 흐르듯이, 주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면 저절로 축복이 됩니다. 주님이 복의 근원이 되기 때문입니다. 지식이 많은 사람과 늘 가까이 지내면 아는게 늘어나고, 예절 바른 사람을 가까이 하면 그 품행이 달라집니다. 하물며 스승 중의 스승인 예수님을 늘 가까이 모시고 살면, 어찌 그 생활이 달라지지 않을 것이며 축복이 안 되겠습니까?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주님이 함께 계시면 환난 시험 중에도 위로가 되고 힘이 되어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아무 일 없을 때에야, 누가 그리 쉽게 주님을 찾겠습니까? 흔히 사람들은 어려움을 겪어야, 찾지 않던 하나님을 찾는 것이 아닙니까? 하지만 우리 믿는 성도는 늘 주님을 모시고 살기 때문에, 새삼스럽게 주님을 찾아 부를 필요가 없습니다. 풍우대작을 하고 거센 풍랑이 일어도 하나 염려할 것 없습니다. 주님이 곁에 계시면 능히 그 모든 것을 해결해 주시리라는 것을 믿고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읽은 마가복음 4장의 말씀을 보면, 예수님의 제자들은 아직 그러한 믿음을 갖지 못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배를 타고 호수를 건너던 중에 풍랑을 만나 배에 물이 가득차게 되자, 제자들은 무서워서 주무시는 예수님을 불러 깨우는 등, 호들갑을 떨며 소동을 벌인 이야기가 35-41절에 실려 있습니다.
바로 조금 전, 예수님은 겨자씨의 비유를 들려주면서,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만 있어도 그 믿음이 자라면 아주 큰 나무가 되어 많은 이들에게 많은 유익을 주는 사람이 된다는 것을 가르치셨더랬습니다. 마태복음 17장에서는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으면 산을 옮길만한 능력이 생긴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들은 말씀을 금방 잊어버렸는지, 옆에 계신 주님을 바라보기 보다는 험한 바다 물결과 배 안에 들어차는 물을 바라보고 두려워했던 것입니다.
그동안 주님은 제자들에게 그토록 많은 능력의 역사와 기적을 행하셨건만, 제자들은 그러한 능력의 주님을 바라보지 못했습니다. 아니 제자들은 주님을 바라보고는 있었으되, 거친 파도까지 잔잔케 하실 수 있는 능력의 주님을 바라보지 못하고, 주무시고 있는 예수님만을 바라보았던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그들은 주님 곁에 있으면서도 진정 그들의 마음속에 까지 주님을 모셔들이지는 못했습니다. 오늘도 많은 사람들은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을 경외하며 섬긴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을 그들의 마음속에와 생활 속에 모셔들여 섬기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생각나면 주님을 찾을 정도지, 또는 시간이 나면 하나님을 찾아와 인사를 드릴뿐이지, 정말 그들의 생활 속에서 주님과 함께 하는 생활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1. 조그마한 풍랑에도 두려워하며 겁을 내고 있습니다
겁을 내고 두려워하면, 자기 맡은 일에 충실할 수가 없습니다. 곡예를 하는 사람이 떨어질까봐 두려워한다면 볼장 다 본 것입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시작하면 자기 능력을 다 발휘하지 못합니다. 어떤 분은 운전을 하다가 사고가 나면 어떡하냐고 미리 걱정을 한 나머지, 운전 배우기를 꺼려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무슨 일을 하게 되면 소문이 어떻게 날것이며 그 결과 어떤 피해가 오리라는 것까지 예측을 하고 상상을 해서, 아예 처음부터 일을 하지 않는 분들도 있습니다.
바다가 있으면 파도가 있게 마련입니다. 꽃이 있으면 별과 나비가 날아오는 법입니다. 인생살이를 하는데, 어디를 간들 파도가 없이 잔잔한 날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세월이 간다고 해서 바람 잘 날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어찌 상처가 없이 운동 연습을 할 수 있겠습니까? 작가가 파지(破紙)를 남기지 않고 어찌 훌륭한 작품을 쓸 수 있겠습니까? 하물며 세상을 사는데, 어찌 말이 없겠으며 욕을 먹지 않고 무슨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일부러 욕을 먹으려고 애 쓸 필요는 없겠습니다만, 뭔가 일을 새롭게 하려면 어쩔 수 없이 욕을 먹어야 합니다. 잘 했느니, 못 했느니 하면서 말을 들어야 합니다.
제자들이 파도가 있으리라는 것을 이미 예측을 했을 것입니다. 갈릴리 바다에 한 두 번 가본 것이 아니고, 그 곳에서 고기 잡는 일을 업으로 하던 사람들도 있었으니 말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파도를 그토록 두려워한 것은, 그들의 믿음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하고 책망을 하셨던 것입니다. 인생을 하나님께 맡겨 사는 것이 아니고 세상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못한 까닭에, 그처럼 호들갑을 떨었던 것입니다. “죽으면 어떠랴!” 하는 마음 자세로 주님을 의지했더라면, 풍랑 앞에서 좀더 의연했을 것입니다. “욕을 먹은들 어떠랴? 하나님이 아실 텐데!” 하는 마음 다짐을 한다면, 세상의 그 무엇도 두려울 것이 없을 것입니다.
다윗은 그동안 아비나답의 집에 있던 하나님의 법궤를 새로 건설한 다윗성으로 모셔 옮길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온갖 준비를 한 다음에, 법궤를 옮기는 도중에 웃사가 죽었습니다. 다윗은 운반하는 일을 중단했습니다. 불행히 자기에게 닥칠 것을 두려워 한 까닭입니다. 그래서 법궤를 오베데돔의 집에 모셨습니다. 그러자 오베데돔의 집에 하나님께서 복을 내리셨습니다. 석달동안 오베데돔의 집에 복을 내려 주셨다는 소식을 듣고 난 후에야, 다윗은 하나님의 법궤를 다윗성으로 옮겼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찌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되, 편안하고 아무 탈 없을 때에만 찾을 수 있겠습니까? 아니 반대로, 아무 탈없을 때에는 하나님을 찾지 않다고, 어려운 일이 생기면 그 때에서야 하나님을 찾으면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일이 잘 되었다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집안에 우환이 생겼다고 해서 하나님을 멀리하면 또 어떻게 되는 일입니까? 하나님이 우리의 노리개란 말입니까? 필요하면 꿰어차고 싫증이 나거나 귀찮아지면 떼어버리는 액세서리란 말입니까?
다윗은 어떤 어려움을 각오하고서라도, 하나님의 법궤를 모셔 오기로 했다면 모셔 왔어야 했습니다. 오베데돔의 집에 축복하는 것을 보고서야, 하나님의 법궤를 모셔오는 다윗을 간사함, 어쩌면 오늘 우리들의 마음이 그런 것은 아닌지요? 궂은 일, 욕먹는 일에는 뒷짐을 지고 구경만 하고 있다가, 칭찬 받고 상 받을 일이면 용감히 뛰어드는 우리가 아닌지요?
요컨데, 대부분 우리들의 삶은 자기 중심적인 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지 못하는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 중심, 자기 이익만을 생각하는 이기심을 극복해야 세상에 대한 두려움도 이겨낼 수 있습니다. 그래야 그 다음에, 우리 모두가 원하는 진정한 마음의 평화를 누릴 수가 있습니다. 제자들이 진정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시고 있었다면, 파도가 밀려오고 배 안에 물이 들어오더라도 두려워 떨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가 정말 예수님을 우리 주님으로 모시고 산다면, 그 예수님이 세상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시오, 지금도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섭리자 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그런 믿음만 가지고 있다면, 우리가 파도를 두려워하겠습니까?
우리는 선하시고 아름다우시며 참되신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 하나님께서
2. 우리와 함께 하셔서 튼튼한 믿음을 갖게 하시고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도록 도와주십니다.
악한 농부라면, 실하지 못한 작물을 보고 화가 나서 신경질을 내며 짓밟아 버리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착한 농부는 잘 된 작물을 보고 기뻐할 뿐만 아니라, 잘 자라지 못한 작물을 보면서 심히 안타까워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작물이 잘 자랄 수 있도록 거름을 다시 주고 물을 주어 정성 들여 가꿀 것입니다.
하나님은 착한 농부입니다.
실수와 허물 많은 우리를 야단치고 꾸짖기보다는, 불쌍히 여기시사 잘 보살펴 주시고 다독거려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멀리해서 스스로 엉겅퀴에 걸려 넘어지고 웅덩이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것이지, 하나님이 우리를 올무에 걸려 넘어지게 하시거나 웅덩이에 밀어 뜨려 빠지게 하는 경우란 결코 없습니다. 하나님은 오히려, 우리가 웅덩이에 빠지는 실수를 하게 되면, 당신이 직접 웅덩이에 들어가서 우리를 구출하시고 당신은 희생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부족한 우리를 나무라시기보다는, 잘 자라지 못한 식물을 가꾸듯이, 더 관심을 가지시고 돌보시는 분이심을 우리는 명심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우리가 어려움을 당하면 그 어려운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제자들이 풍랑을 두려워하자, 바다를 잔잔케 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답답하게 여기시는 것은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고 받아들이지 않는 인간들의 태도입니다. 어쩌다가 하나님께 구하여도 응답 받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확실히 믿고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한편은 세상을 의지하면서 시험삼아 하나님께 구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제일 싫어하십니다. 제자들이 예수를 믿는다고 따라 다니면서도 주님께 전폭을 맡겨 의지하지 않고, 여차하면 도망갈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같은 믿음 없는 행동을 했던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18절에 있는 말씀을 보면,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내세워 우리를 하나님과 화해케 하셨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화해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하나님과 하나되는 삶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3. 하나님에 함께 하심을 믿어, 안심하고 우리 인생을 맡겨 삶으로써 주를 기쁘시게 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별로 없음을 아시기 바랍니다. 단지 저와 여러분 곁에 하나님께서 계시다는 사실을 인정해 주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옆에 엄연히 계신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외면하고 사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하나님을 외면하고, 욕심 때문에 하나님을 외면하고, 자기 고집과 자존심 때문에 하나님을 외면하고 살 때가 많습니다. 이것을 하나님은 제일 섭섭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정말 하나님을 모시고 복되게 살기를 원한다면,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을 뿌리치지 마십시오. 그가 인도하는 대로 따라가 보십시오. 아주 좋은 곳으로 안내해 주실 것입니다. 자세히 설명해 주시면서 안전하게, 그리고 편안하게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 먹을 것과 먹지 말아야 할 것을 가르쳐 주시고, 가서 유익할 곳과 가서는 안될 곳을 말씀해 주실 것입니다. 안내자가 인도하는 대로 따라 가야지, 그렇지 않으면 많은 고생을 하게 되는 것은 물론이요, 잘못하면 죽음의 길로 빠지게 됩니다.
안내자를 기쁘게 하는 방법은 다른 것 없습니다. 설명하는 것을 열심히 듣고 인도하는 대로 잘 따르면 됩니다. 그러면 더 좋은 곳으로 인도해 주고 잘 가르쳐 줍니다. 그러나 안내자의 말을 안 들으면, 안내자를 기분 나쁘게 할뿐만 아니라, 좋은 곳으로 인도함 받지 못합니다.
사랑하는 영춘교회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선한 목자이신 하나님의 어린양 들 입니다. 목자의 음성을 듣고 잘 따르십시오. 그러면 틀림없이 편안히 쉴만한 곳으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그 음성 듣기를 거부하고 따르지 않을 때, 그 결과는 뻔합니다. 오늘 제 입술을 빌려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간절한 말씀을 귀담아 들으시고 복된 인생 길을 가시기 바랍니다.
아무쪼록, 여러분 곁에는 늘 하나님이 함께 계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고, 그분의 마음에 드는 생활을 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생활을 책임져 주실 것임을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하나님의 평화와 기쁨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