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토록 우리를 사랑하시는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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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토록 우리를 사랑하시는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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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양식 91-28호                                                    1991.07.14.

성서일과 ; 삼하7:18-29, 엡1:1-14, 막6:7-13.

제목 ; 그토록 우리를 사랑하시는 까닭은?




 지난 한 주가 동안, 저는 감기 몸살로 고생을 좀 했습니다. 아내가 신나 냄새 때문에 머리가 아파 못 견딜 정도라기에, 저는 아내를 조금이라도 생각한답시고 목욕탕 문을 닫아 놓고 천장 니스칠을 하면 나 자신이 신나 가스에 중독이 되리라는 것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일을 다 마치고 목욕탕에서 나오자, 어찔하며 현기증 나는 것이 좀 이상하다 싶더니 오한이 나기 시작하면서 밥맛도 잃어 저녁 식사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자리에 눕기 시작, 1주일을 지낸 것입니다.

 그동안 장로님을 비롯하여 여러 성도님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습니다. 전도사님은 오자마자 제 대신 설교를 하랴, 여름 성경 학교 준비를 하랴, 부임 인사 치레를 단단히 했습니다. 아무튼 고맙고 감사합니다. 여러분의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더욱 열심히 목회를 하여, 아름답고 복된 영춘교회를 이루어 가도록 힘쓰겠습니다.

 제가 꾀병을 부리고 있는 동안, 많은 분들이 병 문안을 와 주셨습니다. 엊그제 날에는 고순녀 집사님과 이농옥 권사님이 찾아오셨더랬습니다. 그런데 조금 후에, 개 한 마리가 주택 울 안으로 들어섰습니다. 낯선 집에 불쑥 들어서서 미안스럽다는 듯이 머뭇거리더니, ‘이 집에 분명 우리 주인이 온 듯 싶은데……’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 뒤뜰 쪽으로 갔습니다. ‘필시 두 할머니 중에 한 분의 집 개인 것이 틀림없구나!’ 하고 생각을 하면서, 개의 표정이 너무 재미있어서 계속 지켜보았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개는 다시 안 뜰로 돌아오더니, ‘우리 주인이 여기 계신 것이 분명해! 그런데 왜 내 눈에는 보이지 않지?’ 하는 눈빛과 몸짓을 하면서, 그러나 집 주인인 나한테는 ‘함부로 집 뜰을 왔다갔다 하게 되어 미안스럽다’는 듯, 부끄러운 표정을 하면서, 주인이 계신 마루까지 접근을 했습니다. 드디어 주인을 발견한 개의 좋아하는 모습이란,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그러나 주인은 무정하게도 “이 개야, 집으로 가!” 하고 소리치건만, 개는 주인을 여기서 만나 뵙게 되어 정말 반갑다고 계속 꼬리를 치면서 주인을 바라보았습니다. 저는 개의 눈빛을 보면서 개가 이렇게 말하는 것처럼 느꼈습니다. “주인님! 당신은 나의 주인이십니다. 당신이 어디를 가시든지 나는 좇아가오리다.”

 주인의 음성과 냄새, 그리고 발자국 소리까지도 기억하고 있다가, 주인에게 이상이 생기면 불원천리(不遠千里)하고 주인을 찾아 나서는 개의 충성스러움, 이런 개에게서 우리 인간은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으리라 봅니다.

 그런데 오늘 읽은 구약의 본문 중에서, 다윗은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올리던 중에, 다음과 같이 고백을 합니다. 『개만도 못한 이종을 돌보시어 이처럼 크신 일을 하심으로써 소인을 알려지도록 하셨습니다. 여호와 나의 주님은 진정 위대하십니다』라고 말입니다.

 생각해 보면 감회가 깊었을 것입니다. 한낱 목동에 불과했던 다윗이 한 나라의 왕이 될 줄이야 누가 알았겠습니까? 더군다나 통일된 조국의 왕이 되었으니, 그 기쁨이란 더욱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그 모든 공로를 하나님께 돌리고 있습니다. 개만도 못한 사람이라고 자기를 낮추는 다윗은, 그만큼 하나님의 은혜를 크게 깨달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어떻습니까? 세상의 많은 사람들 중에서, 어쩌면 가장 못나고 어리석은 우리들을 찾아 부르셔서 당신의 자녀를 삼으시고 온갖 은혜를 베풀어주시니, 우리가 이 은혜를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일주일 내내 일하고서도 창조주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안식일까지 미련스럽게 일하는데, 우리에게는 이와 같이 주님의 날을 기억하고 지킬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셨으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더욱 감사한 것은, 일하느라 바빠서 돌보지 못한 내 영혼을 위하여 필요한 말씀을 들려  주시고 있다는 점입니다.

 바울은 에베소서 1장에서 우리가 예수를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실에 대하여, 『영광스러운 은총』이라, 『풍성한 은총』, 또는 『하늘의 온갖 영적 축복』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예수를 믿게 된 것도 『모든 것을 뜻하신 대로 이루시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계획을 따라 우리를 미리 정하시고 택하셔서 그리스도를 믿게 했다』고, 에베소서 1장 11절에서 바울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무슨 할 말이 있겠습니까? 그저 우리는 찬송 부르기를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나고 노래할 수밖에 없습니다.

 삶의 의미를 모르고 목적 없이 죽어 살던 우리를 부르셔서, 삶의 의미와 인간의 존재 가치를 가르쳐 주시고,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 할지를 알려 주신 하나님의 은혜는, 만 입이 있은 들 다 감사할 수 없을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어쩔 수 없어서 죽기보다 싫은 일을 하던 인생이 하나님이 허락하신 일로 알고 즐겁게 일을 할 수 있게 되었고, 불평과 불만 다른 사람험담과 욕설로 더러워 졌던 주둥이가 하나님을 찬양하고 이웃을 칭찬하며 격려하는 아름다운 입술로 바뀌었습니다.

 술과 담배, 그리고 오락 잡기로 오염되고 부패되었던 육신은 건강한 몸으로 변화되어 건강한 정신과 맑은 영혼을 담고 있기에 알맞게 되었습니다.

 매사 부정적이고 소극적이며 패배의식으로 사로잡혀 있던 생각이 긍정적이고 적극적이며 소망스러운 생각을 지니고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가운데에는, 아직은 다 이런 상태로 변화되지 못한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또 어떤 분은, 전에는 그러한 믿음을 지니고 있었으나 지금은 많이 퇴보했다 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분은, 지금은 미약하지만 점점 많이 나아지고 있노라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어쨌든 하나님은 이 모든 사람들과 함께 하셔서 사랑을 베푸시며 돌보시기를 원하십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살아가도록 만들어진 존재임을 부정할래야 부정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분의 도움을 받아 살아가면 인생은 점점 풍성해지고 소망스러워지지만, 하나님의 뜻과 거리가 먼 삶을 살게 되면 점점 인생은 메말라 가고 모든 일이 짜증이 나며 힘들어 집니다.

 다윗이 왕위에 오르기까지, 그는 하나님과 동행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다윗을 눈동자 같이 돌보셨으며 사랑하셨습니다. 다윗을 시기하며 죽이려고 좇아다닌 사울을 다윗은 여러 차례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나,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고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다시 말하면, 개인의 감정보다는 항상 하나님의 뜻을 먼저 생각하며 산 다윗입니다.

 결국 다윗은 언제나 하나님의 뜻대로 살면 복이 되리라는 신념을 가지고 산 사람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사무엘상 7장 28절에서 『여호와 나의 주님, 주님이야말로 참 하나님이시며, 하시는 말씀이 거짓이 없으십니다』라고, 고백의 기도를 올리고 있습니다.

 앞서 (나단)선지자를 통해서 해 주신 약속의 말씀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평생을 통하여 다윗은 체험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진실하신 분이라는 것을, 그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자에게는 복을 주시는 분임을 다윗은 직접 경험했던 것입니다.


 1. 하나님께 온전히 돌아오지 아니하여 영광스러운 은총을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돌아오기는 했으되, 몸만 돌아오고 마음은 아직도 세상에 있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분은 몸과 마음이 다 주님께 돌아왔으나, 아직 세상의 습관을 다 버리지 못한 분도 있습니다. 이런 분들이 우리 교회에 있으면 속히 하나님께 온전하게 돌아오기를 축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을 한껏 받으시고 풍성한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개는 하루 밥 세끼만 제공해도 밤새 주인을 지켜주고 어디를 가면 주인을 좇아 다니며 자기는 주인의 종임을 눈으로 고백을 하는데, 하물며 인간으로서 인간이 누릴 모든 영적인 축복을 아끼지 않으시는 하나님께 우리 성도들이 어찌 찬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에베소서 1장 3절에서 바울은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통해 하늘의 온갖 영적 축복을 우리에게 베풀어 주셨습니다.』라고 쓰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믿는 성도들 중에서는 이러한 하나님의 축복을 다 누리지 못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다음 세 가지 사실을 모르고 있거나, 알아도 잊어버리고 살기 때문일 것입니다.

 첫째는, 예수 믿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확신치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누구든지 자녀에게만은 그 사랑이 지극합니다. 아무리 못된 부모일지라도 자녀에게 좋은 것으로 잘해 주려고 애씁니다. 자녀가 부모의 그 사랑을 몰라주어서 탈이지, 부모가 자녀를 사랑함은 당연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위대할 정도로 강력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이처럼 그 위대한 사랑을 자녀인 우리에게 베풀어주고 있습니다.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요? 아무튼 하나님은 우리를 낳아주신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손바닥으로 태양을 가릴 수 없듯이, 이 사실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결국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고 하나님은 그 자녀에게 한없는 사랑을 베풀어주신다는 사실도, 말씀대로 삶으로써 체험해야 알 수 있는 사실입니다. 에베소서 1장 5절에,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당신의 자녀 삼으시기로 미리 정하셨다』고 했습니다.

 둘째는, 우리가 죄의 용서를 받았다는 것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죄는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를 막아 놓았습니다. 죄는 불신에서 왔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 불신의 벽을 무너뜨리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이 사실을 바울은 에베소서 1장 7절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죄를 용서받고 죄에서 구출되었습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셋째는, 우리는 복음의 말씀을 듣고 믿어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사실을 믿지 못할 때,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지 못합니다.

 믿음의 시작은 복음의 말씀을 들음으로써 출발합니다. 인생의 근본을 밝혀 주고 어느 길로 가야 복이 되며 어느 길로 가면 안 되는지, 그 길을 알려 주고 있는 말씀을 듣고 배움으로써 하나님의 축복을 누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이러한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그러니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틀림없이 여러분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결코 사탄이 넘나볼 수 없는 거룩한 하나님나라 백성입니다.

 그러나 사탄의 자녀와 구별된 모습이란 무엇일까요? 하나님은 그것을 원하고 있습니다. 뭔가 당신의 백상은 거짓된 무리와는 다른 행동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그 기대에 부응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사랑하는 백성에게, 하나님의 백성 되었음을 확인하는 표로 성령을 주셨다고 에베소서 1장 13절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시간, 이 말씀이 기쁨으로 받아들여지는 분은 성령을 받은 분입니다. “아, 나도 이제부터는 예수 믿는 사람으로서 성실하게 살아보도록 힘써야겠다” 고 하는 결심이 생기는 분은 성령이 함께 하시는 증거입니다. 그런 결심이 서는 분은 기뻐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그분을 크게 사랑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내내 함께 하셔서 풍성한 은총을 내려 주실 것입니다.




 2.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늘의 온갖 영적 축복을 우리에게 베풀어 주셨습니다




 처음 이곳에 이사와서 주택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우선 교회와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이 못마땅했습니다. 그러나 살아볼수록 좋은 집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나 같은 촌닭이 대궐 같은 기와집에서 살 수 있게 된 영광은 둘째치고, 여러 가지로 살기 좋고 공부하기 좋은 곳이란 인상이 듭니다. 누가 주택을 새로 짓자고 하면 제가 앞장서서 반대할 것입니다.

 모든 것이 다 그런 것 같습니다. 그냥 무심코 지나쳐 버리면 아무 의미를 깨닫지 못하다가도 조금만 관심을 두고 생각을 하면 많은 교훈을 주고 의미를 가져다주는 일이 많습니다. 조금만 돌려 생각을 하게 되면, 전에 미쳐 깨닫지 못했던 새로운 진리와 사실을 알게 됩니다.

 기독교에 대하여, 믿음에 대하여 조금만 생각을 돌려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참으로 놀라운 진리가 감추어져 있습니다. 내가 믿고 있는 것이 전부라고 고집하지 말고, 눈을 넓혀 기독교의 진리를 좀더 가까이 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얼마나 깊이 사랑하시고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은혜를 베풀고 계신가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잔소리로만 들리던 하나님의 말씀이 사랑스러운 애인의 음성처럼 달콤하게 들릴 것이며, 아깝기만 하던 헌금이 없어서 못 드릴 정도로 적극적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환경의 변화를 통해서도 우리에게 은혜를 끼치시지만, 그보다는 우리의 마음과 생각의 변화를 통하여 더 큰 은혜를 끼친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눈먼 봉사에게 눈을 뜨게 해 주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이겠지만, 그 봉사의 마음의 눈을 뜨게 해 주면 오히려 육신의 눈이 뜨게 되는 것보다 더 복된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바울이 에베소서 1장을 통하여 우리에게 그토록 강조하여 말하고 있는 하나님의 풍성한 은총이란 무엇을 말합니까? 바울은 이 편지를 로마 감옥에서 썼습니다. 그런데 뭐가 하나님의 은혜라고 하나님의 풍성한 은총을 말한단 말입니까? 그 좋은 신분과 지위를 버리고 택한 예수가 바울에게 준 축복이란 고작 감옥 신세인데, 도대체 무엇이 축복이길래, 그리스도를 통한 하늘의 온갖 영적 축복을 우리에게 베풀어주었노라고 말한단 말입니까?

 오! 할렐루야, 찬양합시다. 옥중에 있는 바울의 마음을 평안케 하신 예수시니, 오늘 우리의 마음을 어찌 평안케 하지 못하리오. 그 큰 고통 중에서도 누린 하나님의 은혜라면, 오늘의 우리 형편이 어떻길래 바울이 누린 그 축복을 누리지 못하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3.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그의 영광을 찬양하며 삽시다




 거짓으로는 하나님을 찬양할 수가 없습니다. 더러운 입술로는 더더욱 하나님을 찬양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만끽한 사람만이 기쁨으로 하나님을 찬양할 수가 있습니다. 불평을 하고 큰소리치던 입술로 하나님을 찬양 할 수는 없습니다. 자신의 부족을 깨닫고, 부족한 것이 하나님 앞에 서게 된 것만 해도 너무 황송스럽고 고맙다고 말하면서 몸둘 바를 모르는 사람만이 겸손히 하나님을 찬양할 수가 있습니다.

 오늘의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 무엇일까요? 교회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며 직장이나 사회에서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엇일까요? 그보다 가장 중요한 가정에서 내가 할 일은 무엇일까요?

 예수님은 하늘로 가시기 전에도 부탁하셨지만, 그 전에도 제자들을 열둘을 둘씩, 짝일 지어 파송, 복음을 전하도록 하셨습니다.

 말씀대로 살며 복음을 외치는 일, 그보다 더 좋은 하나님 찬양은 없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예수님이 첫 번 외치신 복음이요, 오늘 우리가 외쳐야 할 복음의 핵심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그토록 사랑하시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다른 이유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모르는 이웃들에게 이 복음을 전할 사명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확실히 믿고 살면서 말입니다.

 할렐루야, 주의 은혜가 항상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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