넉넉하고 복된 삶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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넉넉하고 복된 삶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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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양식 91-31호                                                    1991.08.04.

성서일과 ; 출24:3-11, 엡4:1-7, 11-16, 요6:1-15.

제목 ; 넉넉하고 복된 삶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부평에 사는 어느 성도님의 이야기입니다. 이 분은 공부를 할 만큼 했고 직업도 세상에서 말하는 괜찮은 직장에 나가고 있습니다. 돈도 있을 만큼 있으며 자녀를 둘 둔 성도입니다. 그런데 이분은, 자가용도 살 수 있는 형편이고 집도 장만 할 만한 능력이 있건만 그러지를 아니하고, 생활하고 남는 돈을 전부 이름 없이 이웃을 돕는 데 사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사람이야말로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대로 사는 분이요, 이 세상에서 가장 큰 부자가 아닌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대개 있는 것과 아는 것을 자랑하고 싶어하는 강한 욕구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분은 있는 것을 가지고 사랑하는 대신 어려운 사람들을 남몰래 도와주고 있으니, 이 분은 자기를 이긴 사람입니다. 자기를 이긴 사람이기에, 아주 멋있고 넉넉하며 복된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이라 생각합니다.

 요한복음 6장에 나오는 오병이어(五餠二漁)의 기적은, 이름이 있고 넉넉한 부자가 내놓은 물질로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이름도 없는 어떤 어린아이가 내놓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인하여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5천명이 훨씬 넘는 사람이 배불리 먹고도 열두 바구니가 남는 기적이 일어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 나라의 식량 사정은 수치로 따져볼 때, 우리 국민이 충분히 먹고도 남을 양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는 아직도 식량 걱정을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것은 결코 계산을 못해서가 아닙니다.

 오늘 우리 나라의 식량 사정은 수치로 따져볼 때, 우리 국민이 충분히 먹고도 남을 양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는 아직도 식량 걱정을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것은 결코 계산을 못해서가 아닙니다.

 고급 음식점에서 음식을 먹게 되면 1인당 2만원이 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합니다. 그 돈이면 200원 짜리 라면 100개를 살 수 있습니다. 요즈음은 절대적인 빈곤보다는 상대적인 빈곤이 많은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습니다.

 만일 이러한 불균형이 교회 안에 상존하고 있다면, 그러한 교회는 결코 하나의 공동체를 이룰 수가 없을 것입니다. 교인 모두가 고르게 살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 균형을 이루어야 바울 선생이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는 『사랑 안에서 하나되는 삶』을 살 수가 있습니다.

 누구든지 전쟁이 아닌 평화를 원합니다. 잔잔한 바다를 보면 평화를 느낍니다. 그러나 바다에 바람이 불어 그 물의 높고 낮음이 생기면서 파도가 일어납니다. 파도가 거세어지면, 사람들은 불안해하고 위기를 느낍니다.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 국가에서의 바람은 돈입니다. 돈 바람이 세게 불면 큰 파도가 일어납니다. 이 큰 파도를 잔잔케 하려면, 있는 자와 가진 자가 소리를 내지 않고 없는 사람을 위해 내 놓아야 합니다.

 믿음 밖(外)에 있는 사람들은 물질을 소유하고 그것을 사람들 앞에 드러내어 사랑함으로써 기쁨을 얻지만, 믿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오히려 그 물질을 소리 없이 내어놓아 어려운 사람들을 도움으로써 기쁨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미신적인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어떠한 복을 받기 위하여 헌금을 하지만, 참 신앙의 사람들은 작은 것이라도 내어놓아 함께 나누는 기쁨과 복을 누립니다.

 에베소서 4장에서 바울이 말하고 있는 『부르심에 합당한 삶』이 바로 그와 같은 삶입니다. 이미 있는 것 위에 더 많은 것을 갖기 위하여 무엇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내 작은 것이지만 그 작은 것 중 일부(또는 전부)를 하나님께 드리고 이웃에게 베풂으로써, 사람이 짐승과 다른 영적 차원의 존재임을 깨닫게 되고, 그 깨달음을 얻는 순간 무한한 기쁨을 맛보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대가를 바라고 베푸는 행위가 아닙니다. 그 베풂 자체가 하나님 나라 백성된 특권이며 축복입니다. 세상 나라 재미가 더 좋아 보여서 시험에 들 때도 있지만, 그것을 극복하고 베푸는 노력을 끊임없이 하노라면 성숙한 인간이 됩니다. 그 성숙이 더욱 무르익게 되면, 에베소서 4장 13절에서 말하는 그리스도의 완전성에 도달하게 될 것입니다.




 1. 가나안을 바라보지 않고 애굽을 되돌아보는 삶




 그러나, 그리스도를 본받아 삶으로써 가나안에 이르기까지 뒤를 돌아다보지 않아야 할 텐데, 우리는 자꾸 옛날에 맛보았던 세상 재미를 그리워한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세상 재미라는 것도 그렇지요? 이스라엘 사람들은 노예 생활을 하면서 맛본 그 맛을 못 잊어하는 것입니다. 인간답지도 않고 인간다운 대접도 받지 못하는 그 애굽을 그리워할 까닭이 없는데도, 그들은 애굽을 말하며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하나님께서 구원하시는 구원의 역사를 생생히 보았습니다.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셔서 배불리 먹었습니다. 목이 말라 물을 달라고 할 때에는 물을 주었습니다. 그렇건만, 참으로 알 수 없는 것은 사람의 마음속입니다. 간사하기 짝이 없는 마음을 가진 인간들이 하나님을 멀리 하고 세상 재미에 푹 빠져버린 것입니다.

 그러니, 생활 방식도 하나님의 방법이 아닌 인간의 방법으로 살려고 합니다. 하나님을 기쁘게 하기보다는 인간이 좋아하는 것을 더 즐겨 행합니다. 하나님과의 약속도 까맣게 잊어버리고 자기 멋대로 살아갑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시고 무슨 일을 하시려는지를 헤아리지 아니하고 기분 내키는 대로 살아갑니다.

 그렇게 산 결과는 자기 비애와 자기 혐오입니다. 자기 자신에 대하여 슬픔을 느낍니다. 한참 즐길 때에는 그 즐거움에 자기를 잊어버리고 삽니다. 그란 조용히 생각할 기회가 주어지면, ‘왜 나는 이렇게 밖에 살 수 없는 것일까?’ 하고 반문을 하게 되고 자신을 미워하게 됩니다. 말씀에 어긋난 삶을 살게 되면 그 누구보다도 자신이 먼저 알고 괴로워합니다. 다른 사람이 손가락질 할 때에는 이미 중증(重症)에 걸렸을 때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떳떳하게 살지 못하면 괜스레 마음이 불안하고 모든 일이 만족스럽지 못하여 짜증이 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살게 되면, 자연히 영적으로 굶주리게 되어 영양 실조에 걸립니다. 알 수 없는 두통이 일어납니다.

 머리가 안 아플 수가 없습니다. 태초부터 우리의 머리는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의 법칙인 말씀을 기억하도록 되어 있는데, 그 머리 속에 하나님 나라가 아닌 세상 즐거움에 대한 관심으로 가득 차 있으니 말입니다. 마치 휘발유가 들어 있어야 할 자동차의 기름 탱크에 물이 가득 차 있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을 생각지 아니하고 세상의 즐거움을 얻으려는 사람은, 자연히 자기 위주의 삶을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이기적인 삶을 살게 됩니다. 다른 사람과 함께 나누는 삶을 살려는 마음이 거의 없습니다. 오로지 내 남편, 내 자식, 내 집밖에 모릅니다. 이웃을 생각한다는 것이 결국은 내 즐거움을 얻기 위한 수단이지,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웃과 함께 나눈다는 생각은 없었습니다. 머지 않아 그 이기주의가 자기의 뒤통수를 치게 된다는 것을 잊어버린 채, 자기만의 즐거움에 탐익하고 있습니다.




 2. 희생과 사랑의 방법을 통하여 하늘 양식을 공급하시고 생명의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끝까지 당신의 약속을 지키시는 분입니다. 인간은 그 약속을 저버렸어도, 하나님은 그 약속을 지키시기 위하여 당신의 외아들인 예수를 이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너그러움과 풍성하심으로 인간의 무지를 깨우쳐 주셨습니다.

 빌립은 척 계산을 해서 수많은 사람들을 먹이기에 엄청난 돈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돈이 없으므로 군중들에게 음식을 먹인다는 것은 불가능함을 역설했습니다.

 인간은 언제나 그러했습니다. 계산을 잘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그 계산과는 정반대로 나타났습니다. 경제 부흥이 되면 모든 사람이 다 잘 살 수 있으리라 했는데, 결과는 사람 사는 모양이 옛날보다 더 엉망이 되어 버렸습니다. 전에 없던 냉장고와 TV, 그리고 전기 제품과 가재 도구는 좀더 화려해지고 다채로워졌지만, 어쩐지 사람 사는 맛이 점점 시들해지고 사라져 가는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방법은 그것이 아닙니다. 결코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방법이 세상 사람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 대접을 받을 수 있는 복지 사회는 경제력, 곧 물질만으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빵만으로는 살 수 없고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을 먹어야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먹고 입고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먼저 하나님 나라와 그 의를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의(義)가 무엇입니까? 자기 희생입니다. 자기를 버리는 것입니다. 자신을 내놓는 것입니다. 내 것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므로 하나님께 돌려 드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윤리를 알고 도덕을 안다는 어른이 실천한 것이 아니라, 세상 물정을 모르는 한 어린아이가 행했습니다. 그랬더니 모든 사람이 먹고도 남음이 있었습니다.

 이웃과 함께 나누어 먹어 보십시오. 그러면 평소보다 자기 것 더 손해 보지 않고도 넉넉히 먹을 수 있으며, 그 위에 사람 사는 재미까지 맛볼 수 있습니다.

 이것을 사람들은 잊어버리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왜 잊었습니까?

 교회학교 어린이들에게 빵을 하나씩 나누어주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아이는 남아있는 빵이 욕심이 나서 자기 몫을 먹는 둥 마는 둥 재빨리 먹는 것이었습니다. 빨리 먹느라 빵 맛도 모르고 먹었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 어린이는 더 얻어먹을 수도 없었습니다.

 우리는 이 어린아이를 탓할 수 있겠습니까? 이 어린아이를 어리석다 말할 수 있겠습니까? 아닙니다. 우리 어른 자신이 이러한 어리석음을 아무 생각 없이 행하고 있습니다. 주어진 인생을 바로 살지도 못하면서, 더 오래 살려고 온갖 영양식과 건강식을 찾아 먹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이미 내게 주어진 축복도 제대로 누리지 못하면서 더 많은 축복을 얻으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3. 사랑 안에서 하나되어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삽시다




 서로가 내 것을 주장하다 보면, 서로 마음을 합할 수가 없습니다. 서로 내 것을 내 것이라 하지 않고 이웃에게 나누어 줄 수 있을 때, 마음은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마음이 하나되면 사랑을 할 수 있습니다. 마음이 서로 다르면 무슨 일이든지 같이 할 수가 없거니와, 상대를 의심하는 마음 때문에 내 마음이 불안하게 됩니다. 내 것을 지키다 보니 피곤하게 되고, 남의 것이 커 보이니 질투가 생깁니다.

 교회란 『하나』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누구입니까? 자신의 몸 전부를 이웃의 위해 드린 분입니다. 어떻게 드렸습니까? 자랑하지 않고 드러내지 않고 소리도 없이 욕을 먹으며 고통을 겪어가며 자신을 내 놓았습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교회는 교회가 될 수 없습니다. 시장터가 됩니다. 장사를 하게 됩니다. 도박을 하게 됩니다.

 교회가 왜 소란스럽습니까? 하나가 되지 못합니까?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그럽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아니라,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불평이고 싸웁니다.

 너도 나도 주님의 마음에 들도록 노력합시다. 우리 모두 주님의 뜻이 진정 무엇인가 살펴보는데 전력을 다 합시다. 그러면 하나가 될 것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겸손해야 한다고 합니다. 온유하고 오래 참으며 사랑으로 너그럽게 대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는 두 길이 있습니다. 내 고집대로 사는 세상의 길이 있고, 주님의 뜻대로 사는 하나님의 길이 있습니다. 세상의 길은 애굽으로 돌아가는 길이요, 하나님의 길은 가나안으로 가는 길입니다.

 애굽으로 가는 길은 종살이를 하는 길이요 죽음의 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길은 참 자유의 길이요,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길이요, 생명의 길입니다. 애굽 가는 길은 넓고 편한 길이요, 하나님의 길은 좁고 험한 길입니다.

 여러분은 어느 길로 가시렵니까?

 기분 내키는 대로 가시지요? 남들 가는 대로 가시지요? 재미나는 길로 가시지요? 인생을 즐길 수 있는 길로 가시지요? 눈치 보지 않고 편하게 살 수 있는 길로 가시지요? 고민하지 않고 갈 수 있는 길로 가시지요?

 안됩니다. 그러면 안됩니다.

 잠시 편하게 살려고 지옥의 길로 가지 말고, 지금은 힘들지만 조그만 참으면 영원히 복되고 아름다운 세상에 갈 수 있음을 믿고 하나님의 길을 택하십시오.

 하나님의 길을 택하셨습니까?

 잘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나의 소유, 내가 가지고 있는 재주,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을 주님을 위하여 사용해야 합니다. 양념으로만 쓰지 말고 주식(主食)으로 사용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복된 길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누구일까요? 그 사람은 내 시간과 재물을 정말 아낌없이 이웃에게 나누어 줄 수 있는 사람입니다. 시간과 소유의 많고 적음은 그 시간과 물질의 양(量)이 정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이 정합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복된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천국을 소유할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모두 하나님 나라 백성입니다. 천국 백성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행복한 사람임을 이제부터 세상 만민에게 보여줄 수 있기를 바라면서 이 말씀을 드렸습니다.

 하나님의 은총이 늘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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