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의를 무너뜨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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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의를 무너뜨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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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양식 91-39호                                            1991.09.29.

성서일과 ; 욥42:1-6, 약4:13-17, 5:7-11, 막9:38-50.

제목 ; 자기 의를 무너뜨려라




 『사람이 제가 마땅히 해야 할 착한 일을 하면서도 하지 않으면 그것이 곧 죄가 됩니다』라고, 야고보 선생은 야고보서 4장 17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할 착한 일이란 무엇일까요? 13-17절의 단락에서 그 문맥을 통하여 살펴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헛된 장담을 그만 두고 주님의 허락을 받아 모든 일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세상 허영에 들떠서 이런 일도 하고 저런 일도 해야겠노라고 자기 맘대로 결정하여 일을 하지 말고, 무슨 일이든지 과연 주님이 허락하시는 일인지를 먼저 살펴보고 하는 것이,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착한 일입니다.

 그렇지 않고, 세상 욕심에 휘말려서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지 아니면 어긋나는 지도 살펴보지 않고,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노라고 헛된 장담을 하는 것은 죄가 된다고, 야고보 선생은 밝히고 있습니다.

 저는 주일 학교 때에 배운 말씀이 생각납니다. 똑같은 크기와 두께의 종이 두 장이 있습니다. 그 중, 한 장을 위 아래로 붙잡고 서 있게 한 다음, 연필심이 있는 부분으로 찌릅니다. 그러면 그 종이는 여지없이 뚫리게 됩니다. 그러나 다른 한 종이는 시멘트벽에 대고 있게 합니다. 그리고 그 종이 한 가운데를 같은 연필로 힘껏 찌르면, 종이는 뚫리지 않고 연필심만 부러지고 맙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인생이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은 의타심 때문이 아닙니다. 인간은 연약하기 때문입니다. 내일 일을 모르는 미련한 인생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모든 일을 하려면 주님의 허락이 있어야 합니다. 주님의 허락이 없이 내 마음대로 하게 되면, 마치 한 장의 종이와 같이 쉽게 뚫리고 맙니다. 성경에 이르기를, 『우리는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져 버리는 안개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약4:14). 그러므로 우리 인생이 하나님의 뜻을 살피지 않고 하는 일은 성공 같으나 실패입니다.

 헛된 장담을 하지 말고 주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이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것이기 때문에 거의 온전하게 이룰 수가 있습니다. 사실 그런 일은 하나님이 직접 하십니다. 사실 그런 일은 하나님이 직접 하십니다. 우리는 다만 도구로 쓰일 뿐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먼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무슨 일을 하든지 그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봐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원치 않는 일이면 아무리 큰 이익이 생기더라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이라면 어떤 손해,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해야만 합니다.




 욥은 하나님이 인정하는 의인이었습니다. 아무 이유 없이 겪는 고난을 잘 참고 견디어 냈습니다. 우리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극한 시련을 잘 참아냈습니다. 부인조차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으라는 충고를 잊지 않았지만, 욥은 끝까지 하나님을 부인하지 않고 경배했습니다. 친구들은 찾아와서, 욥이 아무 까닭 없이 그런 고난을 당할 리가 없다고 하면서, 욥이 큰 죄를 지어서 그러니 그 죄를 회개하라고 촉구합니다.

 그러나 욥은 자기 자신을 믿었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이 하나님께 죄를 지었을지언정, 자기는 정말 하나님을 잘 섬기고 있노라고 자부했습니다. 그래서 차츰 욥은 자기가 당하는 고난이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음 한동안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 어련하랴!’ 라고 갑자기 당하는 고통을 달게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왜 내가 이런 어려움을 당해야 하는가?’ 하고 의문이 생기기 시작한 것입니다. 특히 친구들이 찾아와서 위로는 해주지 않고, 죄 때문에 당하는 고난이라고 하면서 질책을 하자, 강한 반발심을 가졌던 것입니다.

 욥은 30장 20-22절에서 하나님께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당신께 부르짖사오나 당신께서는 대답도 없으시고, 당신 앞에 섰사오나 보고만 계십니다. 당신은 이다지도 모진 분이십니까? 손을 들어 힘껏 나를 치시다니. 나를 번쩍 들어 바람에 실어 보내시고 폭풍에 휘말려 사라지게 하시다니』하고 말입니다. 다분히 원망과 한탄이 실려 있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죽을 이유가 없는데 죽게 되는 것이 억울하다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 중에 몇 분이나, 오늘 당장 죽게 되었다면, ‘아무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어련하랴!’ 하고 죽음을 고이 받아들일 분이 있을까요? 대부분의 경우, ‘왜, 내가 지금 죽어야 하느냐?’하고 하나님을 원망치 않을까요? 욥이 그러했습니다. 시련을 겪는 것이야 얼마든지 이겨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죽음이 임박한 것을 깨닫게 되자,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너무하다 싶은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하나님은 욥기 38장에서부터 대답해 주십니다. 4절에, 『나 이제 물을 터이니 알거든 대답해 보아라.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 너는 어디에 있었느냐? 그렇게 세상 물정을 잘 알거든 말해보아라. 누가 이 땅을 설계했느냐?』하시면서, 아침 안개와 같이 잠깐 동안 있다가 사라질 미약한 존재인 인간이 어찌 전능하신 하나님의 뜻을 다 알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어디서부터 왔다가 어디로 가는 지 잘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이,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대하여 무슨 잔말이 많으냐는 것입니다. 어두워지면 자야 하고 날이 밝으면 일어나서 일을 하도록 되어 있으며, 생명이 다하면 죽어야 하는 것이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이러한




 1. 인간의 한계를 깨닫지 못하고 헛된 장담을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욥기서 기자는 다시 한번 하나님의 이름으로 욥에게 묻습니다. 아니, 우리에게 묻습니다. 욥기 40장 1-2절에서 『전능하신 이와 변론하는 자야, 어찌 물러서려느냐? 하나님을 비난하는 자야, 대답하라』하면서, 8-9에 『네가 나의 판결을 뒤엎을 셈이냐? 너의 무죄함을 내세워 나를 죄인으로 몰 작정이냐? 네 팔이 하나님의 팔 만큼 힘이 있단 말이냐?』하고 추궁하고 있습니다.

 이에 욥은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결론을 내립니다. 42장 2-3절에, 『알았습니다. 당신께서는 못하실 일이 없으십니다. 계획하신 일은 무엇이든지 이루십니다. 부질없는 말로 당신의 뜻을 가리운 자, 그것은 바로 저였습니다. 이 머리로는 헤아릴 수 없는 신비한 일들을 영문도 모르면서 지껄였습니다』라고, 하나님께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욥은 티끌과 잿더미에 앉아 뉘우치고 있음을 42:6에서 알 수 있습니다.

 맞습니다. 인간은 그 한계를 생각지 못하고 잘못된 욕망을 품게 되어 죄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고 이 일 저 일을 해 보리라 헛된 장담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삶이 맘에 들지 않아서 불만을 갖고 있다가, 끝내는 하나님과 관계를 끊고 제멋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마치 배우가 자기에게 주어진 역할이 맘에 들지 않는다고 대본을 던져 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처음부터 큰 역을 맡아보겠다는 욕심이 앞선 것입니다. 작은 역부터 열심히 하면 주인공 역까지 맡을 수 있으련만, 자신의 주제를 파악하지 못한 채 연출자를 원망하면서 엉뚱한 길로 나서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오늘 나에게 주어진 환경과 맡겨진 임무를 하나님의 뜻 안에서 살펴볼 수 있어야 합니다. 맘에 들지 않더라도 하나님의 뜻이라면 순응해야 합니다. 다시 말씀드려서, 오늘의 내 형편이 어렵고 감당해야 할 일이 힘들더라도, 우선 내 힘껏 열심을 다해야 합니다. 분명히 하나님께서는 내게 맡겨진 작은 일에 충성을 다하면 큰 일을 맡기겠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비록 내게 맡겨진 사명이 지극히 감당하기 힘든 것일지라도, 우리는 두 말 할 것 없이 겸손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대부분의 경우, 무슨 일이 주어지면 ‘나는 그 일을 감당할 만한 능력이 없습니다’ 라고 겸손하게 사양하는 것은, 정말 겸손해서가 아니라, 자기 의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자기 능력과 지혜만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진정 겸손한 사람이라면, “나 같은 사람에게 그처럼 귀한 일을 맡겨 주시니, 감사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 안에서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라고 대답을 해야 합니다. 누구든지 자기 힘과 지혜만으로는 무슨 일이든지 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물질과 시간을 주시고 지혜와 능력을 주셔야 할 수 있습니다.

 욥이 착각을 한 것은, 자기 능력으로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살 수 있다라고 생각한 점입니다. 욥에게서 하나님의 것을 찾아가시면, 욥에게는 아무 것도 남지 않습니다. 그런데 욥은 하나님께 의심을 품었던 것입니다. 자기처럼 의롭게 사는 사람이 왜 죽어야만 하느냐고 원망을 했습니다.

 오늘 이러한 착각 속에서 사는 사람이 아주 많습니다. ‘나는 할만큼 했는데도, 왜 결과가 없는지 모르겠다’ 라고, ‘나는 신앙생활을 하느라고 열심히 했는데, 왜 자꾸 시련이 생기는지 알 수 없다’고 , ‘나는 기도도 열심히 하고 물질 봉사도 최선을 다하건만, 왠지 되는 일이 없이 마음이 괴로울 뿐’ 이라고, ‘나 같은 실력이면 어디 내 놓아도 알아 줄 실력인데, 이 시골에서 이렇게 썩고 있다’고 , 결국 난 잘못이 없는데, 내 실력은 이 정도인데, 나는 노력 할만큼 했는데, 하나님이 잘못 판단하셔서, 내가 지금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얼마나 시건방지고 못돼먹은 생각입니까?

 이런 사람은 발전이 없습니다. 문제를 자기 자신에게서 찾지 아니하고 다른 사람에게서 찾기 때문에, 그 문제점을 바로 찾아내지 못하여 고칠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지금 공부를 잘 해도 선생님을 우습게 여기기 시작하면, 그 학생은 머지않아 뒤떨어지고 맙니다. 불평이 많고 비판 잘 하는 집의 자녀들은 바로 성장할 수가 없습니다. 교회 비판 잘 하는 집의 자녀, 결코 신앙생활을 잘 할 수가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2.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회개하는 자에게 능력으로 함께 하십니다




 욥은 자기 잘못을 깨달았습니다. 욥기 42장 3절에서, 『부질없는 말로 하나님의 뜻을 가리운 자, 그것은 바로 저였습니다』라고, 그 죄를 회개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기를 향하여 사정없이 질책했던 친구들을 위하여 기도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는 욥의 소유를 회복해 주시되, 갑절로 돌려 주셨다고 42장 10절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한 여호와께서는 욥의 남은 생애 동안, 전 날보다 더한 복을 내려 주셨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자기 잘못을 끊임없이 깨닫고 회개하는 사람은 계속 발전합니다. 회계할 것이 없는 사람은 발전은 고사하고 뒤로 후퇴하는 신앙생활을 하다가, 끝내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마귀가 되고 맙니다. 그런 사람들은 자기 의를 드러내려고 애쓰다가 더 이상 내놓을 것이 없게 되면, 하나님의 의를 변질시키고 깎아 내리는 무서운 잘못을 행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뒷전이고 자기 생각과 의를 앞세우기에 급급합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하여 이런 사람들에게 마가복음 9장 42-50절의 말씀에서 다음과 같이 권고하고 있습니다. 『손이 죄를 지으면 그 손을 찍어버리고, 발이 죄를 지으면 그 발을 찍어버리며, 눈이 죄를 지으면 그 눈을 떼어버려라』하고 말입니다. 무서운 말씀입니다. 우리는 두려워 떨리는 마음으로 이 말씀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실제로 손과 발, 그리고 눈을 잘라버리거나 떼어버리기까지는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데 방해가 되는 것은 과감히 끊어버리라는 것입니다. 죄를 짓게 하는 친구가 있으면 과감히 버려야 합니다. 그러면 더 좋은 친구를 배로 허락하실 것입니다. 죄를 짓게 하는 직업이면 미련 없이 내쳐야 합니다. 더 좋은 일감을 갑절로 허락하십니다.

 ‘나는 죄가 없습니다’ 라고 하는 사람과는 하나님이 상관하지 않습니다. 그런 의인에게는 하나님이 필요치 않다고 했습니다. ‘나는 잘못이 없는데, 누구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다’ 라고 말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야고보 선생을 통하여 말씀하시기를, 『심판을 받지 않으려거든 서로 남을 탓하지 말라』고 이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연민과 자비가 참으로 풍성합니다』라고, 야고보서 5장 11절에서 말씀했습니다. 아무리 크고 많은 죄인일지라도, 하나님께 뉘우쳐 고백하면 용서하여 주십니다. 그러나 아무리 작은 죄일지라도 그 죄를 회개치 않으면, 그 죄 때문에 지옥에 갑니다.

 여러분! 잘못 생각지 마십시오. 하나님 나라는 자기 의로 가는 것이 아닙니다. 오로지 하나님의 긍휼하심 가운데서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갑니다. 그러니 어디서든지, 내가 옳다는 것을 그렇게 내세울 필요가 없습니다. 다만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오늘도 내 잘못을 깨닫게 되어 좀더 나은『나 자신』을 가꾸어 나갈 수 있게 된 것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니 오늘 우리는




 3. 잘못된 욕망과 헛된 장담을 버리고 겸손히 주님을 의지하며 삽시다




 똥파리는 똥이 있는 곳에 모여듭니다. 마귀는 욕심이 있는 사람에게 역사(役事)합니다. 그러므로 죄를 회개하면, 마귀는 물러갑니다. 욕심을 버리면 마귀가 찾아와도 제 힘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언제나 두 가지 마음을 갖기가 쉽습니다. 하나님과 세상을 동시에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어떤 분은 아예 신앙을 장신구(액세서리)로 생각하고 세상살이를 주(主)로 하는 분도 있습니다. 아무튼 하나님과 세상을 동시에 사랑하는 생활은 어렵습니다. 잘못된 욕심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세상이란, 세상 물질과 명예를 말합니다. 이 세상 물질과 명예를 귀중히 여기다 보면, 하나님은 점점 멀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과 세상을 동시에 사랑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는 것은 우리의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마음이 물질이나 명예에 치우쳐 있으면, 벌써 풍기는 냄새가 틀리기 때문에 그의 마음에 찾아오는 것은 성령이 아니라 사탄이 찾아온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둘 중에 하나를 택해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세상 중심이었음을 고백해야 합니다. 이제는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야 합니다. 이것을 가리켜 회개라고 합니다. 살아가던 방향을 바꾸는 것이 회개입니다. 세상 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말입니다. 잘못된 세상 친구를 계속 가까이 해 보십시오. 그러면 하나님 중심의 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자기 양심에 찔리는 생활을 계속해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야고보서 4장 17절에,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할 착한 일』이 뭐라고 했습니까? 내 의지대로 무슨 일을 해 보겠다는 헛된 장담을 버리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착한 일』이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씀드려서,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어 사는 것이 의로운 생활입니다.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것이 착한 일입니다. 그렇지 않고, 내 식대로 살겠다는 생각, 세상을 사랑하면서도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다는 생각, 세상 친구를 버리지 않아도 예수 잘 믿을 수 있다는 생각은 죄가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가 보십시오. 그 때에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좋은 친구, 아름다운 직장, 복된 가정을 베풀어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기에 부족하지 않는, 넉넉한 소유를 허락하시라 믿습니다.

 다시 한번 부탁하건데, 내 생각대로 이리저리 하면 되리라는 망상은 절대로 갖지 마십시오. 주님이 허락하시는 일이면 과감히 진행하되, 하나님이 원치 않는 일이면 보지도 말고 먹지도 말고 하지도 마십시오. 헛된 장담은 허영에 들써서 하는 것이라고, 야고보 선생은 야고보서 4장 16절에서 분명히 말씀했습니다.

 자기 의를 무너뜨려야, 하나님의 의가 되살아납니다.




 여러분 모두,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넉넉하고 여유로우며, 복되고 아름다운 생애를 가꾸어 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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