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뚤어진 사랑이 자녀를 망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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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10 18:41
영혼의 양식 91-18호 1991.05.05.
성서일과 ; 신6:4-9, 엡6:4, 눅18:15-17.
제목 ; 비뚤어진 사랑이 자녀를 망친다
여러분은 자녀를 얼마나 사랑하십니까? 그리고 그 사랑하는 자녀에게 무엇을 남겨 주기를 원하십니까? 아마 자녀를 두고 있는 거의 모든 부모들은 그 아들 딸들에게 가장 좋은 것을 되도록 많이 물려주기를 원할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은, 우리가 그 사랑하는 자녀에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신앙인의 모습을 유산으로 물려 줄 것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어저께 저는 민방위 교육을 받았습니다. 4시간의 교육 중, 맨 나중 시간에는 전(前) 통진 고등학교 교장이었던 조한승씨가 맡았습니다. 그분의 이야기 중에 이러한 내용이 있었습니다.
자신은 30년이 넘게 교직 생활을 하는 동안, 지각이나 결근을 거의 한 번도 한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아들이 입원을 하여 수술을 받게 되자, 수술을 하는 바로 그 날에는 아들에 대한 걱정 때문에 학교로 향하던 발걸음을 돌려 병원으로 가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그분 말씀이 “부모님께 그처럼 마음을 기울였다면 효자 소리를 들었을 것” 이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부모된 사람들은 자녀에 대한 사랑이 지극합니다. 하지만, 자녀에 대한 그 사랑이 정상적인가 하는 점에 대해서는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만일 그 사랑이 올바르지 못한 것이라면, 자녀는 물론이요 그 부모에게까지 많은 악영향을 끼치게 될 것입니다. 곧 자녀는 부모의 비뚤어진 사랑 때문에 올바른 사람이 되지 못하고 불행한 길을 걷게 될 것이며, 부모도 또한 자녀가 큰 근심거리가 되어 많은 고통을 겪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자녀에 대한 바른 사랑은 어떤 것일까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좋은 신앙을 통하여 그 사랑을 나타내어야 합니다. 부모의 사랑을 아무 생각 없이 자녀에게 직접 전해주게 되면 탈이 날 염려가 많습니다. 신앙이라고 하는 걸음 기관을 통하여 그 사랑이 정제(精製)가 되고 구분이 되어서 자녀에게 공급될 때에, 그 사랑은 자녀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녀는 부모의 사랑을 잘 소화시키지 못할 경우가 많아서, 부모의 사랑이 자녀에게 도움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해(害)가 될 때가 더 많을 것입니다.
신명기 6장의 말씀은 분명합니다. 먼저 부모된 우리가 바른 신앙심을 가져야 하며, 그 신앙을 가지고 자녀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잘 가르쳐야 함을 밝혀 주고 있습니다. 결국 성경이 우리에게 말씀해 주고 있는 것은, 인간의 근본 바탕을 바로 가질 수 있도록 자녀를 가르치고, 그리고 그 다음에 분별된 사랑을 베풀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자녀에게 밥을 먹도록 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식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식사예법과, 밥을 먹은 다음에는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그 밥 먹은 값을 똑바로 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대부분의 경우, 자녀에게 좋은 옷과 영양이 있는 음식을 많이 먹이는데만 정신이 팔려 있지, 요즈음 식사예법을 제대로 가르치고 있는 예란 흔치가 않습니다. 그리고 밥을 먹었으면, 그 밥 먹은 값을 꼭 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는 부모가 또 얼마나 될런지요? 그러니까 오늘 우리는 자녀를 가르치되, 인간의 근본 됨됨이에 대한 관심보다는, 그저 돈을 많이 투자하여 외형적으로 남에게 뒤지지 않는 자녀를 만들려고만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좀 심하게 말씀드리면, 자녀를 정말 사랑해서라기보다 부모가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방편으로 자녀를 이용하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부모가 이루지 못한 한(恨)을 자녀를 통해서 달성하려는 이기적인 마음이, 바로 오늘 말씀드리고 싶은 부모의 비뚤어진 사랑입니다. 이 그릇된 사랑이 많은 자녀들을 병들게 하고, 그들로 인해서 오늘의 이 사회가 이처럼 혼란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 나와 있는 여러분들은,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부모와 자녀의 관계를 점검해 볼 수 있게 된 것이 정말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혹 오늘의 말씀이 여러분의 기분을 언짢게 하는 일이 있더라도, 감정을 가라앉히시고 냉정하게 우리 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아무튼 오늘의 말씀은, 그 무엇보다도 먼저 부모 자신이 하나님을 바로 알고 섬겨야 한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의 뿌리가 되시는 분입니다. 그분을 바로 알고 섬겨야, 우리 인간은 바른 길을 갈 수가 있습니다.
결코, 하나님은 시간 날 때만 찾아 뵙는 분이 아닙니다. 바쁘고 힘들면 찾아 뵙지 않아도 되는 분이 아닙니다. 오늘 신명기의 말씀은, 『마음을 다 기울이고 정성을 다 바치고 힘을 다 쏟아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여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순서가 자녀를 사랑하기 이전에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고 부모를 받들어 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순서가 뒤바뀌거나 빠지게 되면, 우리 인생에 문제가 발생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습니까? 자녀보다 우선적으로 하나님을 기억하며 살고 있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독교 진리는 아주 분명하고 간단합니다. 그것은 기독교의 진리가 인간의 도리를 가르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생이 가야될 길을 말해주고 있어서, 조금만 정신을 차리고 생각을 하며 살게 되면 좋은 신앙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복이 됩니다. 단지, 그 복이 당장 눈앞에 실현되는 복이 아니기 때문에, 사람들이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예수를 믿고 기도하는 대로 척척 모든 일이 이루어져야 교회에 대하여 관심을 기울일 텐데, 아니면 거짓말이라도 예수를 믿으면 머지 않아 복 받고 잘 살수 있다고 자꾸만 떠들어 대야 그나마 교회 출석을 잘 할 수 있을 텐데,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별 매력을 못 느낄 하나님의 복입니다.
하지만, 기독교의 진리를 따르면 참된 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다만 이 복은 오랜 세월이 걸려야 맛볼 수 있는 복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농사를 짓더라도, 벼의 경우는 모를 낸지 적어도 4개월이 지나야 결과를 볼 수 있습니다. 가축을 기르게 되면 1년 내지 2년이 걸려야, 새끼를 내게 됩니다. 사과나무의 경우는 3년을 기다려야 열매를 거둘 수가 있습니다. 사람은 스무 살이 지나야 제 구실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기독교의 진리를 따름으로써 얻게 되는 복도 그리 쉽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복은 세상의 복과는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세상의 복은 순간적이지만, 하나님의 복은 영원한 복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러니 자녀들에게 이 복을 가르치십시오. 아니, 여러분이 먼저 이 복을 누려 살다가 자녀들에게 그 복을 물려주시기 바랍니다. 어떻게 말입니까? 성경은 네 가지로 말해 주고 있습니다.
첫째는, 자녀들에게 이 복된 말씀을 거듭 거듭 들려 주어야 합니다. 그것은 신명기 6장 4절의 말씀, 『마음을 다 기울이고 정성을 다 바치고 힘을 다 쏟아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둘째로는 이 말씀을 항상 말해 주어야 합니다. 집에서 쉴 때나 길을 갈 때, 또는 잠잘 때나 일어났을 때에 이 하나님의 말씀을 말해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세 번째로는 표를 해서 기호로 삼아야 하고, 마지막으로는 이 말씀을 집안 곳곳에 써 붙여야 한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삶, 이것이 우리가 자녀들에게 물려 주어야 할 가장 귀한 유산입니다. 하나님만 바로 공경할 줄 안다면, 그 자녀는 틀림이 없습니다. 아무 염려할 것이 없습니다. 온 가족이 하나님만을 사랑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며 산다면, 그 가정은 참으로 축복 받은 가정입니다. 시편 112편 1절-3절의 말씀에도, 『여호와를 경외하며 계명을 크게 즐거워 하는 자는 ---- 후대가 복이 있으리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실 예수를 믿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말씀을 믿습니다. 자녀들에게 신앙의 좋은 전통을 물려 주는 것이 가장 큰 복이 되리라는 것을 잘 압니다. 그러나 현실이 그 믿음을 후퇴시키고 있습니다. 그래서,
1. 비뚤어진 사랑을 가지고 자녀를 기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부모가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남이 없이 살면 자녀가 기뻐합니다. 자녀들은 그의 부모가 올바르게 살면 굉장히 큰 긍지를 갖게 됩니다. 그러나 자녀들의 눈에 부모가 하는 일이 그릇되게 비치면, 자녀들은 그 사실을 무척 부끄럽게 여깁니다. 반면에, 부모가 떳떳한 직업을 가지고 정직하게 살게 되면, 자녀들은 어깨를 펴고 다니게 됩니다.
여러분도 어릴 때를 생각하면, 이 말씀에 수긍이 갈 것입니다. 비록 부모가 배우지를 못했고 가난하게 사는 가정 형편이지만, 부모가 성실하며 양심껏 사는 모습을 보게 되면 크게 불만을 갖지 않습니다. 철이 나기 전에는 가정 형편이 어려운 것에 대하여 불평을 하게 되나, 철이 들게 되면 깨끗하게 양심껏 살아가고 있는 부모를 존경심을 가지고 대하게 됩니다. 부동산 투기를 하고 계집질이나 하며 술주정을 하는 부모를 보면서 자라게 되면, 나중에 장성했을 때 그 부모를 멸시하게 되고, 그런 부모를 둔 것에 대하여 수치스럽게 생각합니다.
특히 부모가 잘못된 사랑을 가지고 자식을 키워서 불행의 길로 빠지게 했을 때, 자녀는 그 부모를 크게 원망하게 됩니다.
예를 들면, 자식이 잘못된 줄 알면서도 바로 잡아줄 생각을 않고 그저 귀여워하고 사랑만 베풀어주다가 결국은 그 자녀를 불행의 길로 빠뜨렸을 때, 그 자녀는 그렇게 키워준 부모를 한없이 원망하게 될 것입니다. 또 어떤 경우는, 편애를 해서 자녀를 잘못된 길로 키워준 부모를 한없이 원망하게 될 것입니다. 또 어떤 경우는, 편애를 해서 자녀를 잘못된 길로 빠지게 하기도 합니다. 여자라고 해서, 다른 자녀보다 공부를 좀 못한다고 해서, 못생겼다고 해서, 차별 대우를 하고 편애를 하게 되면 자녀를 망치게 됩니다. 또는 자녀를 훌륭한 사람 만든다고 강제로 자녀의 진로를 결정해서 가게 했을 경우에도, 자녀는 그 부모를 원망하고 탓하게 됩니다. 자녀의 재능을 잘 발견해서 그 재능을 키워 주는 방향으로 이끌어 가야지, 부모의 취향대로 자녀의 앞날을 결정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 모든 일이, 에베소서 6장 4절의 말씀대로 『자녀를 노엽게 하는 일』입니다. 곧 자녀의 마음에 상처를 입히는 일입니다.
그리고 자녀의 마음에 상처를 입히게 되는 또 하나의 경우는, 어른들의 이중적인 생활일 것입니다. 자녀에게는 올바른 길이 어느 것인지 잘 말해 주면서도 어른들은 그와 반대의 생활을 할 때, 자녀들의 마음에 상처를 입히게 됩니다. 도둑놈이 도둑질을 해서 자녀를 공부시키면서 훌륭한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는 것, 이것처럼 우스운 일이 없을 것입니다. 자기 자신은 부모를 잘 모시기 못하면서, 그의 자녀가 부모의 말을 거역한다고 야단친다면 어찌 낯뜨거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이런 모습들은 자녀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2. 주님의 정신으로 교육하고 훈계하며 잘 기르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자식을 사랑하되, 주님의 정신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자식을 가르치고 기르는 일도 주님의 정신으로 해야 합니다. 주님의 정신은 오늘의 말씀인 누가복음 18장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어린이들이 부모들의 손에 이끌려 주님께 가까이 왔을 때에, 제자들이 그 부모들을 나무했습니다. 부모들은 예수님이 자기 자녀들에게 손을 얹고 축복해 주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어린이들이 주께 가까이 오는 것을 막지 말고 그대로 두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오히려 『누구든지 어린이와 같은 순진한 마음으로 하나님 나라를 맞아들이지 않으면 결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했습니다.
사실 어린이들이 순수한 것만은 아닙니다. 어떤 면에서 볼 때, 어린이들이 어른보다 더 욕심스러워 보일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천만의 말씀, 어린이들의 욕심은 단순하고 그리 크지 않지만, 어른들의 욕심은 복잡하고 대단히 큽니다. 어린이들은 군것질 할 수 있는 몇 푼의 돈이면 됩니다. 우리 한나 같으면, 예쁜 인형 몇 개가 더 생기면 엄청나게 기뻐할 것입니다. 그러나 어른들의 욕심은 한도 끝도 없습니다. 체면 때문에 억제할 뿐이지, 보는 사람 없으면 무슨 짓인들 못하겠습니까?
오늘 여기서 예수님이 말씀하시려는 것은, 제자들이나 세상 사람들처럼 다른 세상의 것을 구하지 않고, 단지 주님의 축복을 받으려는 어린이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주님께 나왔으면 하나님 나라 축복을 구해야지 세상 축복을 구해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교회에 나왔으면 기독교에서 말하고 있는 참된 축복을 찾고 배워야 하는데, 자꾸만 세상의 것을 구하기 때문에 문제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세상 나라 것은 먼저 하나님의 나라의 의(義)를 구하면 자연히 얻어지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필요하신 대로 채워주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자녀 양육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나라 진리를 가르치고 인간의 기본 도리를 열심히 가르치면, 다른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다 공급해 주실 줄로 믿어야 합니다. 그렇게 믿고 자녀를 길러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녀에게 얼마나 하나님의 진리를 가르치려고 열심을 다하고 있으며, 돈을 투자하고 있습니까? 늘 말하기를, 심성이 고와야 제일이라고 말하면서, 그 심성을 곱게 하는 일인 신앙 교육에 얼마나 신경을 쓰셨습니까?
3. 자녀의 마음에 상처가 되지 않도록, 신앙의 모범을 보여 참된 복을 후손에게 물려 줍시다.
자녀들에게 가장 좋은 교육은, 부모들 스스로 무엇이 가장 값진 것이며 무엇에다가 가장 정성을 많이 기울이는지 자녀들에게 직접 보여주는 일입니다.
양심을 지키기 위하여 많은 손해를 보는 것을 자녀가 알게 되면, 그 자녀는 양심이 그 만큼 중요한 줄로 깨닫게 될 것입니다. 정직하게 살려고 온갖 고난을 무릅쓰는 모습을 자녀가 보고 자라게 되면, 정직하게 사는 것을 몸으로 배워 익히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무엇보다도 신앙이 귀중함을 자녀들에게 가르쳐 모범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예배하는 일이 이 세상의 그 무엇보다도 먼저 해야 할 일이며, 인간이 마땅히 행할 일임을 가르쳐 보여 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영원하며 참된 축복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배우게 해 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저버리면, 인간이 아무리 수고해도 헛될 뿐이라는 것을 누누히 말해 주어야 합니다. 신앙 없이 살면 누룩이 들어가지 않은 빵과 같아서 부드럽지 못하고 딱딱하며 맛과 멋이 없는 인생을 살 수 밖에 없음을 알려 주고 깨우쳐 주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잘 압니다. 자녀에게 무엇을 물려 주어야 가장 현명한 길인지를! 여러분은 또 압니다. 어떻게 해야 자녀를 올바르게 키우고 가르칠 수 있는지를!
그렇다면, 믿음 생활하기를 게을리 하지 마십시오. 믿음만이 우리를 살리는 길이요, 자녀의 앞날을 보장하는 지름길임을 명심하시고, 밤낮없이 주님을 찾으며 주님의 말씀대로 살아감으로써 아름답고 축복된 인생들이 다 되시기를 빕니다.♥
성서일과 ; 신6:4-9, 엡6:4, 눅18:15-17.
제목 ; 비뚤어진 사랑이 자녀를 망친다
여러분은 자녀를 얼마나 사랑하십니까? 그리고 그 사랑하는 자녀에게 무엇을 남겨 주기를 원하십니까? 아마 자녀를 두고 있는 거의 모든 부모들은 그 아들 딸들에게 가장 좋은 것을 되도록 많이 물려주기를 원할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은, 우리가 그 사랑하는 자녀에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신앙인의 모습을 유산으로 물려 줄 것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어저께 저는 민방위 교육을 받았습니다. 4시간의 교육 중, 맨 나중 시간에는 전(前) 통진 고등학교 교장이었던 조한승씨가 맡았습니다. 그분의 이야기 중에 이러한 내용이 있었습니다.
자신은 30년이 넘게 교직 생활을 하는 동안, 지각이나 결근을 거의 한 번도 한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아들이 입원을 하여 수술을 받게 되자, 수술을 하는 바로 그 날에는 아들에 대한 걱정 때문에 학교로 향하던 발걸음을 돌려 병원으로 가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그분 말씀이 “부모님께 그처럼 마음을 기울였다면 효자 소리를 들었을 것” 이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부모된 사람들은 자녀에 대한 사랑이 지극합니다. 하지만, 자녀에 대한 그 사랑이 정상적인가 하는 점에 대해서는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만일 그 사랑이 올바르지 못한 것이라면, 자녀는 물론이요 그 부모에게까지 많은 악영향을 끼치게 될 것입니다. 곧 자녀는 부모의 비뚤어진 사랑 때문에 올바른 사람이 되지 못하고 불행한 길을 걷게 될 것이며, 부모도 또한 자녀가 큰 근심거리가 되어 많은 고통을 겪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자녀에 대한 바른 사랑은 어떤 것일까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좋은 신앙을 통하여 그 사랑을 나타내어야 합니다. 부모의 사랑을 아무 생각 없이 자녀에게 직접 전해주게 되면 탈이 날 염려가 많습니다. 신앙이라고 하는 걸음 기관을 통하여 그 사랑이 정제(精製)가 되고 구분이 되어서 자녀에게 공급될 때에, 그 사랑은 자녀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녀는 부모의 사랑을 잘 소화시키지 못할 경우가 많아서, 부모의 사랑이 자녀에게 도움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해(害)가 될 때가 더 많을 것입니다.
신명기 6장의 말씀은 분명합니다. 먼저 부모된 우리가 바른 신앙심을 가져야 하며, 그 신앙을 가지고 자녀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잘 가르쳐야 함을 밝혀 주고 있습니다. 결국 성경이 우리에게 말씀해 주고 있는 것은, 인간의 근본 바탕을 바로 가질 수 있도록 자녀를 가르치고, 그리고 그 다음에 분별된 사랑을 베풀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자녀에게 밥을 먹도록 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식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식사예법과, 밥을 먹은 다음에는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그 밥 먹은 값을 똑바로 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대부분의 경우, 자녀에게 좋은 옷과 영양이 있는 음식을 많이 먹이는데만 정신이 팔려 있지, 요즈음 식사예법을 제대로 가르치고 있는 예란 흔치가 않습니다. 그리고 밥을 먹었으면, 그 밥 먹은 값을 꼭 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는 부모가 또 얼마나 될런지요? 그러니까 오늘 우리는 자녀를 가르치되, 인간의 근본 됨됨이에 대한 관심보다는, 그저 돈을 많이 투자하여 외형적으로 남에게 뒤지지 않는 자녀를 만들려고만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좀 심하게 말씀드리면, 자녀를 정말 사랑해서라기보다 부모가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방편으로 자녀를 이용하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부모가 이루지 못한 한(恨)을 자녀를 통해서 달성하려는 이기적인 마음이, 바로 오늘 말씀드리고 싶은 부모의 비뚤어진 사랑입니다. 이 그릇된 사랑이 많은 자녀들을 병들게 하고, 그들로 인해서 오늘의 이 사회가 이처럼 혼란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 나와 있는 여러분들은,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부모와 자녀의 관계를 점검해 볼 수 있게 된 것이 정말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혹 오늘의 말씀이 여러분의 기분을 언짢게 하는 일이 있더라도, 감정을 가라앉히시고 냉정하게 우리 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아무튼 오늘의 말씀은, 그 무엇보다도 먼저 부모 자신이 하나님을 바로 알고 섬겨야 한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의 뿌리가 되시는 분입니다. 그분을 바로 알고 섬겨야, 우리 인간은 바른 길을 갈 수가 있습니다.
결코, 하나님은 시간 날 때만 찾아 뵙는 분이 아닙니다. 바쁘고 힘들면 찾아 뵙지 않아도 되는 분이 아닙니다. 오늘 신명기의 말씀은, 『마음을 다 기울이고 정성을 다 바치고 힘을 다 쏟아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여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순서가 자녀를 사랑하기 이전에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고 부모를 받들어 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순서가 뒤바뀌거나 빠지게 되면, 우리 인생에 문제가 발생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습니까? 자녀보다 우선적으로 하나님을 기억하며 살고 있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독교 진리는 아주 분명하고 간단합니다. 그것은 기독교의 진리가 인간의 도리를 가르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생이 가야될 길을 말해주고 있어서, 조금만 정신을 차리고 생각을 하며 살게 되면 좋은 신앙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복이 됩니다. 단지, 그 복이 당장 눈앞에 실현되는 복이 아니기 때문에, 사람들이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예수를 믿고 기도하는 대로 척척 모든 일이 이루어져야 교회에 대하여 관심을 기울일 텐데, 아니면 거짓말이라도 예수를 믿으면 머지 않아 복 받고 잘 살수 있다고 자꾸만 떠들어 대야 그나마 교회 출석을 잘 할 수 있을 텐데,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별 매력을 못 느낄 하나님의 복입니다.
하지만, 기독교의 진리를 따르면 참된 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다만 이 복은 오랜 세월이 걸려야 맛볼 수 있는 복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농사를 짓더라도, 벼의 경우는 모를 낸지 적어도 4개월이 지나야 결과를 볼 수 있습니다. 가축을 기르게 되면 1년 내지 2년이 걸려야, 새끼를 내게 됩니다. 사과나무의 경우는 3년을 기다려야 열매를 거둘 수가 있습니다. 사람은 스무 살이 지나야 제 구실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기독교의 진리를 따름으로써 얻게 되는 복도 그리 쉽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복은 세상의 복과는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세상의 복은 순간적이지만, 하나님의 복은 영원한 복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러니 자녀들에게 이 복을 가르치십시오. 아니, 여러분이 먼저 이 복을 누려 살다가 자녀들에게 그 복을 물려주시기 바랍니다. 어떻게 말입니까? 성경은 네 가지로 말해 주고 있습니다.
첫째는, 자녀들에게 이 복된 말씀을 거듭 거듭 들려 주어야 합니다. 그것은 신명기 6장 4절의 말씀, 『마음을 다 기울이고 정성을 다 바치고 힘을 다 쏟아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둘째로는 이 말씀을 항상 말해 주어야 합니다. 집에서 쉴 때나 길을 갈 때, 또는 잠잘 때나 일어났을 때에 이 하나님의 말씀을 말해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세 번째로는 표를 해서 기호로 삼아야 하고, 마지막으로는 이 말씀을 집안 곳곳에 써 붙여야 한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삶, 이것이 우리가 자녀들에게 물려 주어야 할 가장 귀한 유산입니다. 하나님만 바로 공경할 줄 안다면, 그 자녀는 틀림이 없습니다. 아무 염려할 것이 없습니다. 온 가족이 하나님만을 사랑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며 산다면, 그 가정은 참으로 축복 받은 가정입니다. 시편 112편 1절-3절의 말씀에도, 『여호와를 경외하며 계명을 크게 즐거워 하는 자는 ---- 후대가 복이 있으리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실 예수를 믿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말씀을 믿습니다. 자녀들에게 신앙의 좋은 전통을 물려 주는 것이 가장 큰 복이 되리라는 것을 잘 압니다. 그러나 현실이 그 믿음을 후퇴시키고 있습니다. 그래서,
1. 비뚤어진 사랑을 가지고 자녀를 기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부모가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남이 없이 살면 자녀가 기뻐합니다. 자녀들은 그의 부모가 올바르게 살면 굉장히 큰 긍지를 갖게 됩니다. 그러나 자녀들의 눈에 부모가 하는 일이 그릇되게 비치면, 자녀들은 그 사실을 무척 부끄럽게 여깁니다. 반면에, 부모가 떳떳한 직업을 가지고 정직하게 살게 되면, 자녀들은 어깨를 펴고 다니게 됩니다.
여러분도 어릴 때를 생각하면, 이 말씀에 수긍이 갈 것입니다. 비록 부모가 배우지를 못했고 가난하게 사는 가정 형편이지만, 부모가 성실하며 양심껏 사는 모습을 보게 되면 크게 불만을 갖지 않습니다. 철이 나기 전에는 가정 형편이 어려운 것에 대하여 불평을 하게 되나, 철이 들게 되면 깨끗하게 양심껏 살아가고 있는 부모를 존경심을 가지고 대하게 됩니다. 부동산 투기를 하고 계집질이나 하며 술주정을 하는 부모를 보면서 자라게 되면, 나중에 장성했을 때 그 부모를 멸시하게 되고, 그런 부모를 둔 것에 대하여 수치스럽게 생각합니다.
특히 부모가 잘못된 사랑을 가지고 자식을 키워서 불행의 길로 빠지게 했을 때, 자녀는 그 부모를 크게 원망하게 됩니다.
예를 들면, 자식이 잘못된 줄 알면서도 바로 잡아줄 생각을 않고 그저 귀여워하고 사랑만 베풀어주다가 결국은 그 자녀를 불행의 길로 빠뜨렸을 때, 그 자녀는 그렇게 키워준 부모를 한없이 원망하게 될 것입니다. 또 어떤 경우는, 편애를 해서 자녀를 잘못된 길로 키워준 부모를 한없이 원망하게 될 것입니다. 또 어떤 경우는, 편애를 해서 자녀를 잘못된 길로 빠지게 하기도 합니다. 여자라고 해서, 다른 자녀보다 공부를 좀 못한다고 해서, 못생겼다고 해서, 차별 대우를 하고 편애를 하게 되면 자녀를 망치게 됩니다. 또는 자녀를 훌륭한 사람 만든다고 강제로 자녀의 진로를 결정해서 가게 했을 경우에도, 자녀는 그 부모를 원망하고 탓하게 됩니다. 자녀의 재능을 잘 발견해서 그 재능을 키워 주는 방향으로 이끌어 가야지, 부모의 취향대로 자녀의 앞날을 결정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 모든 일이, 에베소서 6장 4절의 말씀대로 『자녀를 노엽게 하는 일』입니다. 곧 자녀의 마음에 상처를 입히는 일입니다.
그리고 자녀의 마음에 상처를 입히게 되는 또 하나의 경우는, 어른들의 이중적인 생활일 것입니다. 자녀에게는 올바른 길이 어느 것인지 잘 말해 주면서도 어른들은 그와 반대의 생활을 할 때, 자녀들의 마음에 상처를 입히게 됩니다. 도둑놈이 도둑질을 해서 자녀를 공부시키면서 훌륭한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는 것, 이것처럼 우스운 일이 없을 것입니다. 자기 자신은 부모를 잘 모시기 못하면서, 그의 자녀가 부모의 말을 거역한다고 야단친다면 어찌 낯뜨거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이런 모습들은 자녀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2. 주님의 정신으로 교육하고 훈계하며 잘 기르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자식을 사랑하되, 주님의 정신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자식을 가르치고 기르는 일도 주님의 정신으로 해야 합니다. 주님의 정신은 오늘의 말씀인 누가복음 18장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어린이들이 부모들의 손에 이끌려 주님께 가까이 왔을 때에, 제자들이 그 부모들을 나무했습니다. 부모들은 예수님이 자기 자녀들에게 손을 얹고 축복해 주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어린이들이 주께 가까이 오는 것을 막지 말고 그대로 두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오히려 『누구든지 어린이와 같은 순진한 마음으로 하나님 나라를 맞아들이지 않으면 결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했습니다.
사실 어린이들이 순수한 것만은 아닙니다. 어떤 면에서 볼 때, 어린이들이 어른보다 더 욕심스러워 보일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천만의 말씀, 어린이들의 욕심은 단순하고 그리 크지 않지만, 어른들의 욕심은 복잡하고 대단히 큽니다. 어린이들은 군것질 할 수 있는 몇 푼의 돈이면 됩니다. 우리 한나 같으면, 예쁜 인형 몇 개가 더 생기면 엄청나게 기뻐할 것입니다. 그러나 어른들의 욕심은 한도 끝도 없습니다. 체면 때문에 억제할 뿐이지, 보는 사람 없으면 무슨 짓인들 못하겠습니까?
오늘 여기서 예수님이 말씀하시려는 것은, 제자들이나 세상 사람들처럼 다른 세상의 것을 구하지 않고, 단지 주님의 축복을 받으려는 어린이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주님께 나왔으면 하나님 나라 축복을 구해야지 세상 축복을 구해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교회에 나왔으면 기독교에서 말하고 있는 참된 축복을 찾고 배워야 하는데, 자꾸만 세상의 것을 구하기 때문에 문제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세상 나라 것은 먼저 하나님의 나라의 의(義)를 구하면 자연히 얻어지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필요하신 대로 채워주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자녀 양육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나라 진리를 가르치고 인간의 기본 도리를 열심히 가르치면, 다른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다 공급해 주실 줄로 믿어야 합니다. 그렇게 믿고 자녀를 길러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녀에게 얼마나 하나님의 진리를 가르치려고 열심을 다하고 있으며, 돈을 투자하고 있습니까? 늘 말하기를, 심성이 고와야 제일이라고 말하면서, 그 심성을 곱게 하는 일인 신앙 교육에 얼마나 신경을 쓰셨습니까?
3. 자녀의 마음에 상처가 되지 않도록, 신앙의 모범을 보여 참된 복을 후손에게 물려 줍시다.
자녀들에게 가장 좋은 교육은, 부모들 스스로 무엇이 가장 값진 것이며 무엇에다가 가장 정성을 많이 기울이는지 자녀들에게 직접 보여주는 일입니다.
양심을 지키기 위하여 많은 손해를 보는 것을 자녀가 알게 되면, 그 자녀는 양심이 그 만큼 중요한 줄로 깨닫게 될 것입니다. 정직하게 살려고 온갖 고난을 무릅쓰는 모습을 자녀가 보고 자라게 되면, 정직하게 사는 것을 몸으로 배워 익히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무엇보다도 신앙이 귀중함을 자녀들에게 가르쳐 모범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예배하는 일이 이 세상의 그 무엇보다도 먼저 해야 할 일이며, 인간이 마땅히 행할 일임을 가르쳐 보여 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영원하며 참된 축복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배우게 해 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저버리면, 인간이 아무리 수고해도 헛될 뿐이라는 것을 누누히 말해 주어야 합니다. 신앙 없이 살면 누룩이 들어가지 않은 빵과 같아서 부드럽지 못하고 딱딱하며 맛과 멋이 없는 인생을 살 수 밖에 없음을 알려 주고 깨우쳐 주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잘 압니다. 자녀에게 무엇을 물려 주어야 가장 현명한 길인지를! 여러분은 또 압니다. 어떻게 해야 자녀를 올바르게 키우고 가르칠 수 있는지를!
그렇다면, 믿음 생활하기를 게을리 하지 마십시오. 믿음만이 우리를 살리는 길이요, 자녀의 앞날을 보장하는 지름길임을 명심하시고, 밤낮없이 주님을 찾으며 주님의 말씀대로 살아감으로써 아름답고 축복된 인생들이 다 되시기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