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하게 살아 부모를 기쁘게 하라
기독정보닷컴
1991
0
10
0
2021.09.10 18:41
영혼의 양식 91-19호 1991.05.12.
성서일과 ; 잠23:22-26, 엡6:1-3, 막7:1-23.
제목 ; 진실하게 살아 부모를 기쁘게 하라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개역성경).
『자녀된 사람들은 부모에게 순종하십시오. 이것이 주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공동번역)
『네 부모를 공경하라』(십계명 중 제5계명)
우리는 이 말씀에서 세 가지의 의미를 찾을 수가 있습니다. 첫째는 부모를 공경하며 순종해야 한다는 것이고, 둘째는 부모에게 순종을 하되 주 안에서 해야 한다는 것이며, 셋째는 부모에게 순종을 하고 공경하는 일은, 해도 좋고 안 해도 좋은 선택적인 것이 아니고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는 것입니다.
결국 부모님께 순종을 하고 공경해야 한다고 하는 것은 너무나 분명하고 당연한 일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부모님께 순종을 하되 주 안에서 해야 한다는데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주님의 말씀에 어긋나지 않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나지 않는 한도 내에서 부모를 잘 공경하게 되면 복을 받고 땅에서 오래 살리라는 것이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영국의 너무나 유명한 극작가인 세익스피어는, “부모의 공로를 모르는 자녀는 살무사의 날카로운 이빨보다 못하다” 고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막시무스’ 라는 사람은 말하기를, “어버이를 공경함은 으뜸가는 자연의 법칙이다” 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당연한 일이 부모를 공경하고 섬기는 일이지만, 늘 모든 일이 그러하듯이, 부모 공경도 상대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좋은 부모에게 좋은 자녀가 있고, 좋은 자녀에게 좋은 부모가 있는 법입니다. 때로는 부모의 한쪽만이 좋고 다른 한쪽은 그릇되어서, 그 자녀가 어느 쪽을 닮느냐에 따라 달라지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크리스챤은 부모의 유전을 이어 받아 사는 것이 아니라, 옛 사람은 죽어지고 그리스도를 닮는 새 사람으로 거듭 태어나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부모가 좋은 것을 물려주었으면 그것을 잘 이어받아 발전시켜 살아가야 하고, 혹 잘못된 것을 부모가 물려주었더라도 주님의 은혜 가운데서 그것을 뜯어 고쳐서 새롭게 살아가야만 하는 것이, 우리 믿는 성도가 가야 될 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부모를 잘 받들어 섬기지 못하는 이유나 조건이 많아서 우리를 괴롭힐 때가 많습니다. 누구든지 원하는 바는, 부모님을 잘 공경하여서 자식된 도리를 다하고 자기 자신도 떳떳하게 살기를 원할 것입니다. 그리나 모든 인간 관계가 내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부모님과의 관계도 그렇습니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고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에, 사람들 사이에 갈등이 생기고 문제가 발생하게 되어 있습니다.
특히 부모님과 자녀와의 관계는 그 골이 더 깊을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자라온 시대 배경이 다르고 배움과 취향의 차가 심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모는 부모대로 자녀를 이해하기가 힘들고, 자녀는 자녀대로 이해하기가 힘든 것이 현실입니다.
그렇다면, 부모를 공경해야 한다고 하는 대 원칙과 현실과의 거리를 어떻게 메울 것이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어떤 목사님의 이야기입니다. 이분이 부모님을 모시고 살면서 목회를 하는데, 그 부친께서 신앙생활을 하지 않고 비기독교적인 생활을 함으로 해서,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된 것입니다. 교회 주변의 동네 어른들과 함께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는 등, 목사뿐만 아니라 교인들에게도 고통의 문제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목회를 중단하려는 마음을 자주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부친과 심한 다툼을 하게 되어, 목회의 길이냐 자식의 길이냐로 고민을 하면서 철야기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밤새 자신의 처지와 환경을 원망하면서 자기 부친의 생활 태도를 변화시켜 달라고 기도를 했습니다. 새벽이 되어 동이 틀 즈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 왔습니다. “너의 아버님께 문제를 돌리지 말고, 그 문제의 모든 원인이 네게 있으니, 네가 결단하고 돌이키라” 는 말씀이었습니다. 그 목사님은 즉시 집으로 돌아와 부엌에서 식칼을 가지고 부친의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때마침 새벽 담배를 피우시려던 부친께서는 칼을 든 목사님의 모습을 보고 겁에 질려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습니다. 목사님은 넙죽 큰절을 올리고, “아버님, 용서하십시오. 제가 그동안 기도해오기를,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지 않도록 아버님을 변화시켜 달라고 늘 기도해왔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제 자신이 변화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이 불효자식을 용서해 주십시오” 라고 말씀드린 후, 가져온 식칼로 자신의 손가락 하나를 잘랐습니다. 이에, 겁에 질려 있던 부친은 자식의 손가락이 잘려서 떨어져 나가는 것을 보고, “이놈아, 내가 잘못했다. 내 손가락을 잘라야지, 하나님의 일을 해 보겠다고 하는 네놈이 손가락을 자르다니. 용서해 다오. 이제는 술 담배를 끊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는 일은 결코 하지 않겠다” 고 말하며 울부짖었습니다. 목사님과 그의 부친은 함께 울면서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문제는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그러면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이냐? 대답은 하나입니다. 문제를 인식하고 있는 나 자신부터 풀어나가야 합니다. 우리 성도님들 중에서는, 자식이면서 동시에 부모의 위치에 있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때가 되면 다 늙어 노인이 되어 남은 세월을 세어가며 살아야 합니다. 마냥 젊게 지낼 수 없는 것이고, 언제나 맑은 정신과 건강한 육신을 지니고 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언젠가는 우리도 내맘 대로 할 수 없는 몸 때문에 괴로워해야 할 것이며, 흐릿한 정신 때문에 많은 실수를 하면서 창피를 당할 때가 옵니다. 시어머니는 태어날 때부터 시어머니가 아니라, 며느리가 나이 들면 시어머니의 위치로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착각을 하며 살고 있습니다. 언제나 젊게 살 수 있으려니. 언제나 맑은 정신을 가지고 실수 없이 살 수 있으려니. 그래서,
1. 부모를 가볍게 여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잠언 23장 22절이 말씀을 보면, 『부모의 말에 청종하고 업신여기지 말아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결국, 우리들이 부모의 말에 거역을 잘하고 업신여기는 경우가 많다고 하는 사실을 암시해 주고 있습니다. 왜 그러면 부모의 말에 거역을 하게 되고, 부모를 업신여기게 되는가?
그것은 시대가 점점 발전해 가기 때문입니다. 하루가 다르게 세상이 변하기 때문에, 부모세대는 자식세대보다 여러 면에서 뒤지게 마련입니다. 경륜으로는 부모가 앞서지만, 지식으로서는 부모가 자식에게 당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자식이 볼 때에는 부모의 말씀에 수긍할 수 없을 때가 많을 것입니다. 거기에다가, 부모가 부모의 권위를 가지고 자식을 억누르려고 할 때, 자식은 반발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모된 사람들은 에베소서 6장 4절에 있는 말씀대로 『자녀의 마음에 상처를 입히지 말고 주님의 정신으로 교육을 하고 훈계하며 잘 길러야』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먼저 부모된 입장에서 바로 서 있어야 합니다. 혹 여러분의 웃 부모가 바람직한 모습을 보일지라도, 여러분만은 그 자녀에게 실망을 주지 않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부모가 실망을 끼치면 끼칠수록, 여러분과 저는 좋은 부모가 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에 아무리 옳은 길을 간다고 생각할지라도, 우리의 후손들은 꼭 그것을 옳다고 생각지만은 앓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이것이 바로 세대차요, 가치관의 차이라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부모들은 자녀가 하는 행동이 이해가 안 될 것은 뻔한 일입니다. 머리를 한쪽은 길게 한쪽은 아주 짧게 깍는다든지, 일부러 옷을 찢은 다음에 재봉질을 하여 입는다든지, 괴상한 소리를 꽥꽥 지르며 고함치는 음악을 즐겨 듣는다든지, 허벅지가 드러나는 짧은 치마를 입고서는 다리를 꼬고 앉는다든지, 이해를 못할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닐 것입니다. 그러니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맹자는 세상에서 말하는 불효가 다섯 가지가 있음을 말했습니다. 첫째는 몸을 게을리 놀려 부모를 돌보지 않는 것이요, 둘째는 노름과 술 마시기를 좋아하여 부모를 돌보지 않는 것이요, 셋째는 불효는 재물을 좋아하고 처자만을 사랑하여 부모를 돌보지 않음이요, 넷째는 귀와 눈의 욕구를 채우느라 부모를 욕되게 함이 불효요, 마지막 다섯째는 싸우기를 좋아하여 부모를 불안하게 하는 것이 불효라고 했습니다.
어쩌면 이 다섯 가지가 부모에게 효도하지 못하는 중요한 요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게으르고, 노름과 술 마시기를 좋아하며 돈과 처자만을 사랑할 줄 알고, 먹고 즐기고 싸우느라 부모의 마음을 편안케 해 드리지 못하는 것은, 오늘 우리 주변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일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믿는 부모를 모시고 사는 자녀가 범할 수 있는 가장 큰 불효는 신앙 생활을 않거나 더디하는 일입니다.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지 않고 뺀질거리는 것처럼 믿는 부모의 마음을 애타게 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성도들이 교회를 나오지 않으면 목사인 제가 심히 마음 아픈데, 자녀가 교회를 다니지 않을 때 부모들의 마음은 얼마나 괴롭겠습니까?
2. 부모를 받들어 섬기는 길은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약속있는 첫 계명입니다.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은 참 훌륭한 효자였습니다. 아버지인 아브라함이 좋은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이삭은 아버지의 말에 거의 절대적으로 순종했습니다. 아버지가 자기를 죽여 하나님께 제물로 드려야 하겠다고 칼을 들어 치려 했을 때에도 끽 소리 하지 않고 가만히 누워 있었던 이삭입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신뢰했던 것처럼, 이삭은 그 아버지를 그만큼 신뢰했던 것 같습니다.
마가복음 7장에서 예수님은, 부모를 공경하고 섬기는 일이 그 어떤 핑계를 댈 수가 없는 가장 중요한 일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께 바쳤습니다』는 뜻으로 『고르반』이라고 말하고, 부모에게는 아무 것도 해 드리지 않는 그들의 행동이 아주 잘못되었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사실 하나님께 무엇을 드리고 예배드리는 것보다는 그 부모에게 효도하고 공경하는 일이 하나님을 참으로 기쁘시게 해 드리는 것임을,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부모님께 무슨 맛있는 것을 해 드리고 돈을 많이 드리는 것보다는 형제간에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것이 부모님을 더욱 기쁘게 해 드리는 일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부모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일은 진실하게 바르게 사는 것임을, 하나님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잠언 23장 23절에, 『진실하고 바르게 살아 부모를 기쁘게 하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진실은 하나님의 본성입니다. 거짓은 사탄의 모습이고요. 진실하고 바르게 사는 일이 영적인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일이요, 육신의 부모를 바로 공경하는 일입니다.
여러분은 자녀에게 무슨 교훈을 남겨 주고 하늘 나라에 가겠습니까? 우리 아버지는 항상 술과 담배 속에서 사신 분이지, 우리 어머니는 항상 돈돈하면서 살다가 가신 분이야, 하는 인상을 남겨 주고 가겠습니까? 아니면, 우리 아버지 어머니는 비록 가난하게 살았지만 진실하게 살다가 가신 분이라는 교훈을 남겨 주고 가겠습니까? 바라기는 우리 믿는 성도들 만큼은 죽는 그 날까지 진실하신 하나님의 모습을 닮아가는 생활을 함으로써, 자녀들로 하여금 진실하고 바르게 살도록 가르쳐야 하겠습니다.
십계명 중, 1계명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규정하고 있고 5계명에서 10계명까지는 인간과의 관계를 규정하고 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인간과의 관계를 규정하고 있는 계명 중, 그 첫 번째가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약속이 붙어 있습니다. 그것은 땅에서 잘되고 장수하리라는 것입니다. 그 당시로서는 그것이 최고의 가치였습니다. 오늘의 말씀으로 바꿔 본다면, 영생의 축복일 것입니다. 하나님을 공경하고 섬기는 일이, 이 세상과 저 세상을 통틀어 지켜야 할 인간의 근본 도리라고 한다면, 부모를 공경하고 섬기는 일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 다음으로 인간이 마땅히 지켜야 할 기본적인 윤리요 신앙 지침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기를 낳아준 부모님을 이해할 수 없다면 그 누구를 이해하며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자식을 사랑하는 것은 짐승도 할 수 있는 본능이요,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는 길은 부모님을 이해하고 받을어 섬기는 일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3. 주 안에서 부모를 공경하며 마음으로 섬기는 생활을 게을리 하지 맙시다.
어느 유명한 의사가 하나 있었습니다. 그는 건강관리를 잘하여 오래 살았습니다. 죽을 자식들 앞으로 유언장을 700쪽이 넘게 남겼습니다. 장례가 끝난 뒤, 가족들이 모여 앉아 유언장을 살펴 보았습니다. 그러나 글자라곤 한자도 발견 할 수가 없었습니다. 재산에 관한 이야기가 나올 줄 알고 기대를 걸었는데, 실망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드디어 맨 마지막 쪽에, 죽은 의사의 친필이 보였습니다. 사람들이 기뻐 소리쳤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다시 한 번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글의 내용은 이러했습니다. “머리는 언제나 차갑게, 발은 따뜻하게, 그리고 배는 반드시 덮고 자야 한다” 라고 적혀 있었던 것입니다. 과연 의사다운 유언이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자녀들에게 남겨줄 수 있는 말은 어떤 것일까요? 입으로만 해서는 안됩니다. 몸으로 써 주어야 합니다. 어떻게 말입니까? 우리가 자식을 보는 앞에서 부모님을 잘 받을어 섬기는 일입니다. 우리가 자녀들 앞에서 신앙생활을 열심히 잘하고 부모를 잘 공경하면, 자녀보고 나쁜 길로 가라고 해도 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부모를 섬겨야 할까요? 대원칙은 하나님을 공경하면서 진실하게 사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부모님을 편안하게 해 드리는 일입니다. 부모도 자식의 마음을 아프게 해서는 안 되겠지만, 자녀 또한 부모님의 마음을 상하지 않게 해 드려야 합니다. 비록 내 생각에는 그릇되어 보여도 반대 의견을 제시하는 일은 삼가야 합니다. 혹 하나님 말씀에 위배되는 일이 있다면, 그 때에는 기회를 보아서 진언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또한 중요한 일은 부모의 입장이 되어 생각하는 일입니다. 저는 요즘 생각하기를, 우리 부모님이 얼마나 외로우실까 하는 것입니다. 자식들한테 마음껏 호령할 수 없고 자신의 몸을 마음대로 써볼 수 없는 그 마음이 얼마나 답답할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어디를 가도 환영해 주지 않는 요즈음의 우리 사회 풍토, 그저 반겨주는 곳이란 같이 늙어 가는 노인들이 있는 경로당이 있을 뿐입니다.
나도 언젠가는 우리 부모님처럼 늙어 갈텐데, 그 때 가면 지금보다 노인들의 값어치가 더 시세 없을 텐데… 자식이 여럿 있은들, 하나도 없은들 매한가지이고. 걱정스러워 아무리 옳은 말을 해도 망녕 떨지 말라고, 젊은이가 노인네를 야단치는 세상이 될텐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살아 계신 하나님을 믿읍시다. 누구를 탓하고 세상을 원망하는 일에 급급하지 말고, 우리만이라도 진실한 믿음 생활을 계속합시다. 하나님을 공경하고 부모를 섬기는 일을 열심히 합시다. 분명히 하나님은 살아 역사 하십니다. 진실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말입니다.
여러분 모두, 부모님을 잘 섬겨 받들고, 또한 존경받는 부모가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
성서일과 ; 잠23:22-26, 엡6:1-3, 막7:1-23.
제목 ; 진실하게 살아 부모를 기쁘게 하라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개역성경).
『자녀된 사람들은 부모에게 순종하십시오. 이것이 주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공동번역)
『네 부모를 공경하라』(십계명 중 제5계명)
우리는 이 말씀에서 세 가지의 의미를 찾을 수가 있습니다. 첫째는 부모를 공경하며 순종해야 한다는 것이고, 둘째는 부모에게 순종을 하되 주 안에서 해야 한다는 것이며, 셋째는 부모에게 순종을 하고 공경하는 일은, 해도 좋고 안 해도 좋은 선택적인 것이 아니고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는 것입니다.
결국 부모님께 순종을 하고 공경해야 한다고 하는 것은 너무나 분명하고 당연한 일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부모님께 순종을 하되 주 안에서 해야 한다는데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주님의 말씀에 어긋나지 않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나지 않는 한도 내에서 부모를 잘 공경하게 되면 복을 받고 땅에서 오래 살리라는 것이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영국의 너무나 유명한 극작가인 세익스피어는, “부모의 공로를 모르는 자녀는 살무사의 날카로운 이빨보다 못하다” 고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막시무스’ 라는 사람은 말하기를, “어버이를 공경함은 으뜸가는 자연의 법칙이다” 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당연한 일이 부모를 공경하고 섬기는 일이지만, 늘 모든 일이 그러하듯이, 부모 공경도 상대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좋은 부모에게 좋은 자녀가 있고, 좋은 자녀에게 좋은 부모가 있는 법입니다. 때로는 부모의 한쪽만이 좋고 다른 한쪽은 그릇되어서, 그 자녀가 어느 쪽을 닮느냐에 따라 달라지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크리스챤은 부모의 유전을 이어 받아 사는 것이 아니라, 옛 사람은 죽어지고 그리스도를 닮는 새 사람으로 거듭 태어나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부모가 좋은 것을 물려주었으면 그것을 잘 이어받아 발전시켜 살아가야 하고, 혹 잘못된 것을 부모가 물려주었더라도 주님의 은혜 가운데서 그것을 뜯어 고쳐서 새롭게 살아가야만 하는 것이, 우리 믿는 성도가 가야 될 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부모를 잘 받들어 섬기지 못하는 이유나 조건이 많아서 우리를 괴롭힐 때가 많습니다. 누구든지 원하는 바는, 부모님을 잘 공경하여서 자식된 도리를 다하고 자기 자신도 떳떳하게 살기를 원할 것입니다. 그리나 모든 인간 관계가 내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부모님과의 관계도 그렇습니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고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에, 사람들 사이에 갈등이 생기고 문제가 발생하게 되어 있습니다.
특히 부모님과 자녀와의 관계는 그 골이 더 깊을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자라온 시대 배경이 다르고 배움과 취향의 차가 심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모는 부모대로 자녀를 이해하기가 힘들고, 자녀는 자녀대로 이해하기가 힘든 것이 현실입니다.
그렇다면, 부모를 공경해야 한다고 하는 대 원칙과 현실과의 거리를 어떻게 메울 것이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어떤 목사님의 이야기입니다. 이분이 부모님을 모시고 살면서 목회를 하는데, 그 부친께서 신앙생활을 하지 않고 비기독교적인 생활을 함으로 해서,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된 것입니다. 교회 주변의 동네 어른들과 함께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는 등, 목사뿐만 아니라 교인들에게도 고통의 문제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목회를 중단하려는 마음을 자주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부친과 심한 다툼을 하게 되어, 목회의 길이냐 자식의 길이냐로 고민을 하면서 철야기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밤새 자신의 처지와 환경을 원망하면서 자기 부친의 생활 태도를 변화시켜 달라고 기도를 했습니다. 새벽이 되어 동이 틀 즈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 왔습니다. “너의 아버님께 문제를 돌리지 말고, 그 문제의 모든 원인이 네게 있으니, 네가 결단하고 돌이키라” 는 말씀이었습니다. 그 목사님은 즉시 집으로 돌아와 부엌에서 식칼을 가지고 부친의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때마침 새벽 담배를 피우시려던 부친께서는 칼을 든 목사님의 모습을 보고 겁에 질려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습니다. 목사님은 넙죽 큰절을 올리고, “아버님, 용서하십시오. 제가 그동안 기도해오기를,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지 않도록 아버님을 변화시켜 달라고 늘 기도해왔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제 자신이 변화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이 불효자식을 용서해 주십시오” 라고 말씀드린 후, 가져온 식칼로 자신의 손가락 하나를 잘랐습니다. 이에, 겁에 질려 있던 부친은 자식의 손가락이 잘려서 떨어져 나가는 것을 보고, “이놈아, 내가 잘못했다. 내 손가락을 잘라야지, 하나님의 일을 해 보겠다고 하는 네놈이 손가락을 자르다니. 용서해 다오. 이제는 술 담배를 끊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는 일은 결코 하지 않겠다” 고 말하며 울부짖었습니다. 목사님과 그의 부친은 함께 울면서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문제는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그러면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이냐? 대답은 하나입니다. 문제를 인식하고 있는 나 자신부터 풀어나가야 합니다. 우리 성도님들 중에서는, 자식이면서 동시에 부모의 위치에 있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때가 되면 다 늙어 노인이 되어 남은 세월을 세어가며 살아야 합니다. 마냥 젊게 지낼 수 없는 것이고, 언제나 맑은 정신과 건강한 육신을 지니고 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언젠가는 우리도 내맘 대로 할 수 없는 몸 때문에 괴로워해야 할 것이며, 흐릿한 정신 때문에 많은 실수를 하면서 창피를 당할 때가 옵니다. 시어머니는 태어날 때부터 시어머니가 아니라, 며느리가 나이 들면 시어머니의 위치로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착각을 하며 살고 있습니다. 언제나 젊게 살 수 있으려니. 언제나 맑은 정신을 가지고 실수 없이 살 수 있으려니. 그래서,
1. 부모를 가볍게 여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잠언 23장 22절이 말씀을 보면, 『부모의 말에 청종하고 업신여기지 말아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결국, 우리들이 부모의 말에 거역을 잘하고 업신여기는 경우가 많다고 하는 사실을 암시해 주고 있습니다. 왜 그러면 부모의 말에 거역을 하게 되고, 부모를 업신여기게 되는가?
그것은 시대가 점점 발전해 가기 때문입니다. 하루가 다르게 세상이 변하기 때문에, 부모세대는 자식세대보다 여러 면에서 뒤지게 마련입니다. 경륜으로는 부모가 앞서지만, 지식으로서는 부모가 자식에게 당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자식이 볼 때에는 부모의 말씀에 수긍할 수 없을 때가 많을 것입니다. 거기에다가, 부모가 부모의 권위를 가지고 자식을 억누르려고 할 때, 자식은 반발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모된 사람들은 에베소서 6장 4절에 있는 말씀대로 『자녀의 마음에 상처를 입히지 말고 주님의 정신으로 교육을 하고 훈계하며 잘 길러야』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먼저 부모된 입장에서 바로 서 있어야 합니다. 혹 여러분의 웃 부모가 바람직한 모습을 보일지라도, 여러분만은 그 자녀에게 실망을 주지 않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부모가 실망을 끼치면 끼칠수록, 여러분과 저는 좋은 부모가 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에 아무리 옳은 길을 간다고 생각할지라도, 우리의 후손들은 꼭 그것을 옳다고 생각지만은 앓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이것이 바로 세대차요, 가치관의 차이라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부모들은 자녀가 하는 행동이 이해가 안 될 것은 뻔한 일입니다. 머리를 한쪽은 길게 한쪽은 아주 짧게 깍는다든지, 일부러 옷을 찢은 다음에 재봉질을 하여 입는다든지, 괴상한 소리를 꽥꽥 지르며 고함치는 음악을 즐겨 듣는다든지, 허벅지가 드러나는 짧은 치마를 입고서는 다리를 꼬고 앉는다든지, 이해를 못할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닐 것입니다. 그러니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맹자는 세상에서 말하는 불효가 다섯 가지가 있음을 말했습니다. 첫째는 몸을 게을리 놀려 부모를 돌보지 않는 것이요, 둘째는 노름과 술 마시기를 좋아하여 부모를 돌보지 않는 것이요, 셋째는 불효는 재물을 좋아하고 처자만을 사랑하여 부모를 돌보지 않음이요, 넷째는 귀와 눈의 욕구를 채우느라 부모를 욕되게 함이 불효요, 마지막 다섯째는 싸우기를 좋아하여 부모를 불안하게 하는 것이 불효라고 했습니다.
어쩌면 이 다섯 가지가 부모에게 효도하지 못하는 중요한 요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게으르고, 노름과 술 마시기를 좋아하며 돈과 처자만을 사랑할 줄 알고, 먹고 즐기고 싸우느라 부모의 마음을 편안케 해 드리지 못하는 것은, 오늘 우리 주변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일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믿는 부모를 모시고 사는 자녀가 범할 수 있는 가장 큰 불효는 신앙 생활을 않거나 더디하는 일입니다.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지 않고 뺀질거리는 것처럼 믿는 부모의 마음을 애타게 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성도들이 교회를 나오지 않으면 목사인 제가 심히 마음 아픈데, 자녀가 교회를 다니지 않을 때 부모들의 마음은 얼마나 괴롭겠습니까?
2. 부모를 받들어 섬기는 길은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약속있는 첫 계명입니다.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은 참 훌륭한 효자였습니다. 아버지인 아브라함이 좋은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이삭은 아버지의 말에 거의 절대적으로 순종했습니다. 아버지가 자기를 죽여 하나님께 제물로 드려야 하겠다고 칼을 들어 치려 했을 때에도 끽 소리 하지 않고 가만히 누워 있었던 이삭입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신뢰했던 것처럼, 이삭은 그 아버지를 그만큼 신뢰했던 것 같습니다.
마가복음 7장에서 예수님은, 부모를 공경하고 섬기는 일이 그 어떤 핑계를 댈 수가 없는 가장 중요한 일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께 바쳤습니다』는 뜻으로 『고르반』이라고 말하고, 부모에게는 아무 것도 해 드리지 않는 그들의 행동이 아주 잘못되었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사실 하나님께 무엇을 드리고 예배드리는 것보다는 그 부모에게 효도하고 공경하는 일이 하나님을 참으로 기쁘시게 해 드리는 것임을,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부모님께 무슨 맛있는 것을 해 드리고 돈을 많이 드리는 것보다는 형제간에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것이 부모님을 더욱 기쁘게 해 드리는 일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부모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일은 진실하게 바르게 사는 것임을, 하나님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잠언 23장 23절에, 『진실하고 바르게 살아 부모를 기쁘게 하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진실은 하나님의 본성입니다. 거짓은 사탄의 모습이고요. 진실하고 바르게 사는 일이 영적인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일이요, 육신의 부모를 바로 공경하는 일입니다.
여러분은 자녀에게 무슨 교훈을 남겨 주고 하늘 나라에 가겠습니까? 우리 아버지는 항상 술과 담배 속에서 사신 분이지, 우리 어머니는 항상 돈돈하면서 살다가 가신 분이야, 하는 인상을 남겨 주고 가겠습니까? 아니면, 우리 아버지 어머니는 비록 가난하게 살았지만 진실하게 살다가 가신 분이라는 교훈을 남겨 주고 가겠습니까? 바라기는 우리 믿는 성도들 만큼은 죽는 그 날까지 진실하신 하나님의 모습을 닮아가는 생활을 함으로써, 자녀들로 하여금 진실하고 바르게 살도록 가르쳐야 하겠습니다.
십계명 중, 1계명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규정하고 있고 5계명에서 10계명까지는 인간과의 관계를 규정하고 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인간과의 관계를 규정하고 있는 계명 중, 그 첫 번째가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약속이 붙어 있습니다. 그것은 땅에서 잘되고 장수하리라는 것입니다. 그 당시로서는 그것이 최고의 가치였습니다. 오늘의 말씀으로 바꿔 본다면, 영생의 축복일 것입니다. 하나님을 공경하고 섬기는 일이, 이 세상과 저 세상을 통틀어 지켜야 할 인간의 근본 도리라고 한다면, 부모를 공경하고 섬기는 일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 다음으로 인간이 마땅히 지켜야 할 기본적인 윤리요 신앙 지침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기를 낳아준 부모님을 이해할 수 없다면 그 누구를 이해하며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자식을 사랑하는 것은 짐승도 할 수 있는 본능이요,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는 길은 부모님을 이해하고 받을어 섬기는 일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3. 주 안에서 부모를 공경하며 마음으로 섬기는 생활을 게을리 하지 맙시다.
어느 유명한 의사가 하나 있었습니다. 그는 건강관리를 잘하여 오래 살았습니다. 죽을 자식들 앞으로 유언장을 700쪽이 넘게 남겼습니다. 장례가 끝난 뒤, 가족들이 모여 앉아 유언장을 살펴 보았습니다. 그러나 글자라곤 한자도 발견 할 수가 없었습니다. 재산에 관한 이야기가 나올 줄 알고 기대를 걸었는데, 실망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드디어 맨 마지막 쪽에, 죽은 의사의 친필이 보였습니다. 사람들이 기뻐 소리쳤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다시 한 번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글의 내용은 이러했습니다. “머리는 언제나 차갑게, 발은 따뜻하게, 그리고 배는 반드시 덮고 자야 한다” 라고 적혀 있었던 것입니다. 과연 의사다운 유언이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자녀들에게 남겨줄 수 있는 말은 어떤 것일까요? 입으로만 해서는 안됩니다. 몸으로 써 주어야 합니다. 어떻게 말입니까? 우리가 자식을 보는 앞에서 부모님을 잘 받을어 섬기는 일입니다. 우리가 자녀들 앞에서 신앙생활을 열심히 잘하고 부모를 잘 공경하면, 자녀보고 나쁜 길로 가라고 해도 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부모를 섬겨야 할까요? 대원칙은 하나님을 공경하면서 진실하게 사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부모님을 편안하게 해 드리는 일입니다. 부모도 자식의 마음을 아프게 해서는 안 되겠지만, 자녀 또한 부모님의 마음을 상하지 않게 해 드려야 합니다. 비록 내 생각에는 그릇되어 보여도 반대 의견을 제시하는 일은 삼가야 합니다. 혹 하나님 말씀에 위배되는 일이 있다면, 그 때에는 기회를 보아서 진언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또한 중요한 일은 부모의 입장이 되어 생각하는 일입니다. 저는 요즘 생각하기를, 우리 부모님이 얼마나 외로우실까 하는 것입니다. 자식들한테 마음껏 호령할 수 없고 자신의 몸을 마음대로 써볼 수 없는 그 마음이 얼마나 답답할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어디를 가도 환영해 주지 않는 요즈음의 우리 사회 풍토, 그저 반겨주는 곳이란 같이 늙어 가는 노인들이 있는 경로당이 있을 뿐입니다.
나도 언젠가는 우리 부모님처럼 늙어 갈텐데, 그 때 가면 지금보다 노인들의 값어치가 더 시세 없을 텐데… 자식이 여럿 있은들, 하나도 없은들 매한가지이고. 걱정스러워 아무리 옳은 말을 해도 망녕 떨지 말라고, 젊은이가 노인네를 야단치는 세상이 될텐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살아 계신 하나님을 믿읍시다. 누구를 탓하고 세상을 원망하는 일에 급급하지 말고, 우리만이라도 진실한 믿음 생활을 계속합시다. 하나님을 공경하고 부모를 섬기는 일을 열심히 합시다. 분명히 하나님은 살아 역사 하십니다. 진실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말입니다.
여러분 모두, 부모님을 잘 섬겨 받들고, 또한 존경받는 부모가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