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새롭게 되어야 세상이 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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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10 18:36
영혼의 양식 91-02호 1991.01.13.
성서일과 ; 창1:1-5, 행19:1-7, 막1:4-11.
제목 ; 마음이 새롭게 되어야 세상이 변한다
제가 예비군 훈련을 받지 않게 된 것이 벌써 6년이 되었습니다. 예비군 훈련통지서가 날아오면 그처럼 짐스러운 것도 없었는데, 이제는 다시 그 훈련을 받아볼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훈련이 시작되어서 일정시간 훈련이 끝나면 약 10분간의 휴식이 있게 됩니다. 제각기 친분이 있는 사람들과 삼삼오오 모여서 이야기를 하거나 담배를 피웁니다. 앉아있는 사람과 서 있는 사람, 또는 누워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때 호루라기 소리가 나면 휴식끝을 알리는 훈련교관의 음성이 들리면, 아쉬운 휴식시간을 끝내고 모아야 합니다. “10열 종대로 모여!” 하면, 산만하게 흩어져 있던 예비군들이 질서있는 모습을 갖추게 됩니다.
교관의 말 한마디가 무질서하게 흩어져 있던 사람들을 모아서 질서를 갖추게 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도 혼돈과 무질서의 이 세상을 말씀한마디로 아름답게 창조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아름답다는 말은 질서가 있고 조화로운 모습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맨 처음 창조하신 것은 빛입니다. (창1:3)에, 하나님께서 “빛이 생겨라!” 하시자 빛이 생겨났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빛이 하나님보시기에 좋았다” 고 했습니다. “좋다” 는 말속에는, 아름답다 착하다 참되다라는 뜻을 다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말씀을 질서가 있고 조화로운 세상을 만드신 것은, 순전히 인간을 위해서였습니다. 그것은 세상의 모든 것을 만드시고 맨 나중에 인간을 만드신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더욱이 하나님은 인간으로 하여금 당신이 만드신 아름다운 세상을 관리하도록 맡기셨습니다. 마치 엄마가 그 사랑하는 자녀에게 예쁜 인형을 만들어 주듯이, 하나님은 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셔서 인간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만 인간이 심통이 나서 하나님께 대들었을 뿐만 아니라, 잘 관리하도록 맡기신 이 세상까지도 망가뜨리고 말았습니다.
여러 차례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더럽히고 망가뜨려 놓은 이 세상을 깨끗하게 고치셔서 사람들이 살수 있도록 하신 다음에, 사람들이 맘을 고쳐먹고 바르게 살도록 권면을 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처음에는 조금 말씀대로 행하는 척 하다가 나중에는 또다시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자기들 멋대로 살았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말을 잘 듣고 바르게 살게 하려고 매를 들기도 하고, 질병에 걸려 고통을 겪도록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아쉬울 때에는 하나님을 찾다가도, 평안해지면 하나님을 저버리고 잘못된 길로 빠져 버렸습니다.
말씀으로 세상만물을 창조하셨던 하나님, 이제는 말씀으로 인간을 새롭게 만드실 필요가 생겼습니다. 그 일을 하시려고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말하기를, “말씀이 사람이 되셔서 우리와 함께 계셨는데,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 고 (요1:14)에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말씀, 곧 생명의 참 빛으로 오신 예수님은 사람의 마음을 새롭게 창조하여 새 세상인 천국을 이루고자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태초에 사람들이 살 수 있는 세상을 말씀으로 창조하시고, 지금은 사람들이 바르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드시려고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말하기를, “말씀, 곧 생명의 참 빛으로 오신 예수님은 사람의 마음을 새롭게 창조하여 새 세상인 천국을 이루고자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태초에 사람들이 살 수 있는 세상을 말씀으로 창조하시고, 지금은 사람들이 바르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드시려고 말씀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새롭게 창조하고 계신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제 입술을 빌려서 말씀을 전하여 여러분과 제 심령을 새롭게 하고 있습니다. 아무쪼록 말씀을 듣고 심령이 새롭게 되어 새로운 세상에서 새롭게 사시는 여러분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고후5:17)에 있는 말씀입니다. (겔36:26)에는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 이라고 했습니다. 말씀을 인하여 새로운 피조물이 되고 부드러운 마음을 갖게 된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말씀으로 마음이 새롭게 되어 부드러워 지게 되면, 빛이 그 마음을 비취고 있기 때문에 어둠 속에서 헤매이듯이 방황하지 않고 삶의 방향감각이 뚜렷해지게 됩니다. 어느 것은 해야 되고 어느 것은 해서는 안되는 것인가를 알게 됩니다. 그러니 생활은 자연히 긍정적인 삶이 되고, 다른 사람에게도 본이 되는 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마음이 새롭게 변화가 되니까 생활에도 변화가 있게 되지 않습니까?
말씀을 듣고 생활에 변화가 오게되면, 그 생활 전체가 질서가 있게 되고 리듬이 생깁니다. 생활에 리듬이 있다는 말은 즐거움과 기쁨이 생기는 시초가 되는 것입니다. 무질서한 생활이 처음에는 자유스럽다가 얼마 안가서 많은 고통을 안겨 주는 반면에, 질서있는 생활은 처음에 좀 괴로움과 부담을 안겨주지만 머지 않아 생활에 리듬이 생기기 시작하면 그 생활이 자연스러워지고 즐겁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받아 들여 빛이신 주안에서 살게되면, 이와 같이 질서있는 생활 속에서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그런데 말씀을 받아들여 마음이 새롭게 되려면 창조의 아픔을 겪어야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잠시 겪는 이 아픔을 견디지 못하여, 말씀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고
1. 무질서와 혼돈 가운데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말씀을 받아들이게 되면, 첫째로 겪어야 하는 아픔의 회개입니다. 회개란 과거의 즐기고 좋아하던 모든 것을 버리고 하나님 품에 완전히 의지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이 보통 힘드는 일이 아닙니다. 잘못된 것이어서 버려야 한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젖어버린 습관을 버린다는 것은 참으로 힘드는 일입니다. 어떤 것은 버리기가 아까워서 버리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롯의 처는, 되돌아보면 죽는다고 하는 것을 귀가 아프도록 들었지만, 아까운 집과 재산을 못내 잊지 못하여 뒤돌아보다가 그만 소금기둥이 되고 말았지 않습니까? 세상을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온다는 것, 그래야 생명이 되는 줄 뻔히 알면서도 세상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여 죽음의 길을 가고 있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머리는 헝클어지고 옷은 형편없이 더럽고 지저분하여 얼굴과 손은 까맣게 하고 있는 거지가 하나 있다고 합시다. 그를 데려다가 입었던 옷들을 벗겨내고 이발을 시킨 다음 목욕을 시켜서 새옷을 입혀놓게 되면 전혀 새로운 모습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안에서 새롭게 되려면, 예수믿기 이전의 모든 것을 버려야 합니다. 자기 스스로는 옳다고 여기던 것까지도 말씀이 금하고 있으면 버려야 합니다.
말씀을 받아들이게 되면, 둘째로 겪어야 하는 아픔이 형식에서 벗어나는 일입니다. 세례요한은 죄를 고백한 사람에게 세례를 베풀면서도, 자기 뒤에 오는 예수를 믿고 성령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막1:8) 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해서 형식을 전혀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세상 사람들에 비하면 거의 버리다 싶이 해야 한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형식이란 형식주의를 말합니다. 쉬운 우리말로 하면 체면치레입니다. 마음은 없으면서 남들 눈이 무서워하는 거짓된 행위입니다. 헌금을 해도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남들 하니까 따라서 한다거나 경쟁심을 가지고 하는 경우를 말합니다.
예수를 믿게 되면, 그런 형식주의를 버리고 진실하게 행동을 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바리새인들을 그처럼 심하게 공격을 하신 것도, 그들이 이중적인 생활, 곧 내용과 형식이 다른 형식적인 행실을 못마땅히 여기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게되면, 얼마나 그가 훌륭한 생활을 하고 있느냐 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얼마나 성실한가 하는 점입니다.
형식주의에 빠져있던 사람이 예수를 믿게 되면, 그 형식주의 때문에 많은 아픔을 겪게 됩니다. 집사가 되고 장로가 되는 것도 형식주의에 빠져있는 사람은, 하나의 명예직으로 생각합니다. 그러한 직분은 봉사직이기 때문에 말없이 충성해야 되는 귀한 직책인데, 명예로 생각하는 사람은 실질적인 봉사는 없고 직분을 내세워 말만 많이 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보시는 분인데, 겉보기에 번지르하면 좋게 여기는 세상 적인 판단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잘못을 범하게 된 것입니다.
말씀을 받아들여 빛된 생활을 하게되면, 셋째로 겪어야 아픔은 어둠의 행실을 버려야 한다는 점입니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두 가지의 경우는, 내면적인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겪게 되는 아픔이지만, 이번의 경우는 좀더 구체적으로 버려야 되는 죄악 행위입니다. 도박이나 투기, 폭력과 사기등, 세상사회에서 조차 추방해야 되는 잘못된 행위입니다. 우리교회에서는 이런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혹 과거에 그런 경력이 있었다 할지라도 주님의 품을 벗어나지만 않으면, 그런 습성은 쉽게 고칠 수 있습니다.
2.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시고 지금도 새롭게 일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말씀으로 세상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지금은 그 말씀으로 인간을 새롭게 하시려고 성령으로 오셔서 일하고 계십니다. (사43:19)에,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거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고 했습니다. (엡4:24)에서도,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 입으라고 바울은 권면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아무리 깨끗이 해 놓아도 인간이 죄를 벗이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음을 하나님은 아시고, 인간의 마음을 새롭게 하시려는 계획을 갖게 되었습니다. 새벽기도회에 나오라고 전화벨을 아무리 눌러도 꿈쩍도 하지 않던 분들이, 은혜를 받게 되자 전화벨을 울리지 않아도 기도회에 잘 나오고 있습니다. 결국 모든 일은 사람 마음먹기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마음을 새롭게 하는 과정을 세단계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죄를 고백하고 예수를 믿는 일입니다. “내가 지금까지 잘못된 생활을 했구나!” 하고 죄를 뉘우치면서 예수를 믿어야 합니다. 예수를 믿는 믿음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셔야 예수를 믿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모두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를 믿게 되어 이 자리에 와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를 믿게 되면 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세례는 죽음을 상징합니다. 예수 믿기 이전의 잘못된 생활은 물로 씻든지 씻어버리든지, 아니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것처럼 우리 자신을 십자가에 못을 박아 죽여야 합니다. 그리고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세례는 바로 이러한 내용을 많은 성도들 앞에서 보여 주는 형식적인 의례행위입니다. 그러니까 세례를 받는 사람은 많은 사람 앞에서 세례를 받으면서, “나의 과거 잘못된 생활을 버리고 이제는 예수 말씀 따라 새롭게 살아가겠습니다” 라고 하는 다짐의 표시를 무엇으로 나타내게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의 과정은 성령 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잘못된 생활을 고쳐 살겠다는 다짐만 가지고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신 것을 직접 체험하면서, 자기 자신을 완전히 부정하는 뜨거운 경험을 가져야 합니다. 사울이 변하여 바울이 되듯이, 자신의 과거 생활이 아주 잘못되었음을 뼈저리게 깨닫고 그 잘못을 용서해 주는 하나님의 사랑을 눈물로 감사하는 은혜의 순간을 가져야 합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이 찬송을 입으로만 부를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도 부를 수 있어야 합니다.
세 번째의 과정은 복음 증거입니다. 성령 받은 증거는 복음전도로 나타납니다. 은혜 받은 것을 혼자서만 누리기가 아까워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게 됩니다. 전도를 하게 되면 내 믿음이 성장할뿐더러, 지금까지 체험하지 못한 전혀 새로운 은혜를 누리게 됩니다. 받은 바 은혜를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주지 않으면, 그 은혜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3. 예수그리스도를 진실하게 믿어 새롭게 되고, 성령을 받아 어둔 세상에 빛이 되어 삽시다.
(시 104:30)의 말씀에, “주의 영을 보내어 저희를 창조하사 지면을 새롭게 하시나이다” 라고 했습니다. 세상이 새로워지라면 우리가 새롭게 변화되어야 합니다. 우리를 새롭게 하는 것은 주의 성령입니다. 주의 영이 임해야 우리의 마음이 새로워지게 될 것입니다. (시51:10)에서도, “하나님이여 내 속에 깨끗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하고, 시편기자는 간구하고 있습니다. (겔18:31)의 말씀에도, “너희는 범한 모든 죄악을 버리고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할지어다” 라고 했습니다.
문제는 우리의 마음의 자세입니다. 사람다운 구실을 하면서 사람답게 살려는 마음만 있다면, 진실한 자세로 하나님 앞에 서야 합니다. 거짓된 태도를 버리고 솔직히 자기 죄를 털어 놓기만 한다면, 하나님은 그를 사랑하셔서 많은 은혜를 내려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마음을 부드럽게 해주고 생활을 리듬있게 해줍니다. 뒤틀리기만 하던 가정의 일들이 이상스럽게 풀려나가고 일이 잘 되어 나가도록 해 주는 것이 하나님 은혜입니다. 밉던 사람들이 예뻐지고, 지겹던 설교가 귀에 쏙쏙 들어옵니다. 이 모든 일들이 하나님 앞에서 진실한 마음을 가지고 죄를 고백하면서 시작됩니다. 죄를 뉘우치면 뉘우칠수록 하나님의 은혜는 더욱 풍성해집니다.
사업이 잘 안되는 분이 있습니까?
주님 앞에서 자기 죄를 진심으로 뉘우치며 간구해 보십시오. 이상할 정도로 사업 이 잘될 것입니다. 안 아픈데가 없이 병이 많은 분이 있습니까? 한 번 시험삼아 하나님 앞에 자기 죄를 털어 놓아보십시오. 깨끗하게 나음을 얻을 것입니다. 인생문제로 고민하는 분이 있습니까? 하나님께 눈물로 간구해 보십시오. 분명 해결해 주실 것입니다.
이렇게 몸과 마음이 새로워지면 생활에 변화가 오게 되고, 생활에 변화가 있게 되면 여러분은 이 사회에 많은 빛을 드러내는 참 성도가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아름다운 마음씨가 이 세상에 빛이 되어 기쁨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 여러분의 적극적이고 소망스러운 생활이 여러분의 가정을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고 이 사회를 변화시켜 밝게 할 것입니다.
축복된 여러분의 심령위에 하나님의 은혜가 더욱 넘치기를 빕니다. 여러분은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요. 아름다운 조국 대한민국의 국민입니다. ♥
성서일과 ; 창1:1-5, 행19:1-7, 막1:4-11.
제목 ; 마음이 새롭게 되어야 세상이 변한다
제가 예비군 훈련을 받지 않게 된 것이 벌써 6년이 되었습니다. 예비군 훈련통지서가 날아오면 그처럼 짐스러운 것도 없었는데, 이제는 다시 그 훈련을 받아볼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훈련이 시작되어서 일정시간 훈련이 끝나면 약 10분간의 휴식이 있게 됩니다. 제각기 친분이 있는 사람들과 삼삼오오 모여서 이야기를 하거나 담배를 피웁니다. 앉아있는 사람과 서 있는 사람, 또는 누워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때 호루라기 소리가 나면 휴식끝을 알리는 훈련교관의 음성이 들리면, 아쉬운 휴식시간을 끝내고 모아야 합니다. “10열 종대로 모여!” 하면, 산만하게 흩어져 있던 예비군들이 질서있는 모습을 갖추게 됩니다.
교관의 말 한마디가 무질서하게 흩어져 있던 사람들을 모아서 질서를 갖추게 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도 혼돈과 무질서의 이 세상을 말씀한마디로 아름답게 창조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아름답다는 말은 질서가 있고 조화로운 모습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맨 처음 창조하신 것은 빛입니다. (창1:3)에, 하나님께서 “빛이 생겨라!” 하시자 빛이 생겨났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빛이 하나님보시기에 좋았다” 고 했습니다. “좋다” 는 말속에는, 아름답다 착하다 참되다라는 뜻을 다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말씀을 질서가 있고 조화로운 세상을 만드신 것은, 순전히 인간을 위해서였습니다. 그것은 세상의 모든 것을 만드시고 맨 나중에 인간을 만드신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더욱이 하나님은 인간으로 하여금 당신이 만드신 아름다운 세상을 관리하도록 맡기셨습니다. 마치 엄마가 그 사랑하는 자녀에게 예쁜 인형을 만들어 주듯이, 하나님은 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셔서 인간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만 인간이 심통이 나서 하나님께 대들었을 뿐만 아니라, 잘 관리하도록 맡기신 이 세상까지도 망가뜨리고 말았습니다.
여러 차례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더럽히고 망가뜨려 놓은 이 세상을 깨끗하게 고치셔서 사람들이 살수 있도록 하신 다음에, 사람들이 맘을 고쳐먹고 바르게 살도록 권면을 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처음에는 조금 말씀대로 행하는 척 하다가 나중에는 또다시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자기들 멋대로 살았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말을 잘 듣고 바르게 살게 하려고 매를 들기도 하고, 질병에 걸려 고통을 겪도록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아쉬울 때에는 하나님을 찾다가도, 평안해지면 하나님을 저버리고 잘못된 길로 빠져 버렸습니다.
말씀으로 세상만물을 창조하셨던 하나님, 이제는 말씀으로 인간을 새롭게 만드실 필요가 생겼습니다. 그 일을 하시려고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말하기를, “말씀이 사람이 되셔서 우리와 함께 계셨는데,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 고 (요1:14)에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말씀, 곧 생명의 참 빛으로 오신 예수님은 사람의 마음을 새롭게 창조하여 새 세상인 천국을 이루고자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태초에 사람들이 살 수 있는 세상을 말씀으로 창조하시고, 지금은 사람들이 바르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드시려고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말하기를, “말씀, 곧 생명의 참 빛으로 오신 예수님은 사람의 마음을 새롭게 창조하여 새 세상인 천국을 이루고자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태초에 사람들이 살 수 있는 세상을 말씀으로 창조하시고, 지금은 사람들이 바르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드시려고 말씀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새롭게 창조하고 계신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제 입술을 빌려서 말씀을 전하여 여러분과 제 심령을 새롭게 하고 있습니다. 아무쪼록 말씀을 듣고 심령이 새롭게 되어 새로운 세상에서 새롭게 사시는 여러분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고후5:17)에 있는 말씀입니다. (겔36:26)에는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 이라고 했습니다. 말씀을 인하여 새로운 피조물이 되고 부드러운 마음을 갖게 된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말씀으로 마음이 새롭게 되어 부드러워 지게 되면, 빛이 그 마음을 비취고 있기 때문에 어둠 속에서 헤매이듯이 방황하지 않고 삶의 방향감각이 뚜렷해지게 됩니다. 어느 것은 해야 되고 어느 것은 해서는 안되는 것인가를 알게 됩니다. 그러니 생활은 자연히 긍정적인 삶이 되고, 다른 사람에게도 본이 되는 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마음이 새롭게 변화가 되니까 생활에도 변화가 있게 되지 않습니까?
말씀을 듣고 생활에 변화가 오게되면, 그 생활 전체가 질서가 있게 되고 리듬이 생깁니다. 생활에 리듬이 있다는 말은 즐거움과 기쁨이 생기는 시초가 되는 것입니다. 무질서한 생활이 처음에는 자유스럽다가 얼마 안가서 많은 고통을 안겨 주는 반면에, 질서있는 생활은 처음에 좀 괴로움과 부담을 안겨주지만 머지 않아 생활에 리듬이 생기기 시작하면 그 생활이 자연스러워지고 즐겁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받아 들여 빛이신 주안에서 살게되면, 이와 같이 질서있는 생활 속에서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그런데 말씀을 받아들여 마음이 새롭게 되려면 창조의 아픔을 겪어야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잠시 겪는 이 아픔을 견디지 못하여, 말씀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고
1. 무질서와 혼돈 가운데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말씀을 받아들이게 되면, 첫째로 겪어야 하는 아픔의 회개입니다. 회개란 과거의 즐기고 좋아하던 모든 것을 버리고 하나님 품에 완전히 의지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이 보통 힘드는 일이 아닙니다. 잘못된 것이어서 버려야 한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젖어버린 습관을 버린다는 것은 참으로 힘드는 일입니다. 어떤 것은 버리기가 아까워서 버리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롯의 처는, 되돌아보면 죽는다고 하는 것을 귀가 아프도록 들었지만, 아까운 집과 재산을 못내 잊지 못하여 뒤돌아보다가 그만 소금기둥이 되고 말았지 않습니까? 세상을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온다는 것, 그래야 생명이 되는 줄 뻔히 알면서도 세상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여 죽음의 길을 가고 있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머리는 헝클어지고 옷은 형편없이 더럽고 지저분하여 얼굴과 손은 까맣게 하고 있는 거지가 하나 있다고 합시다. 그를 데려다가 입었던 옷들을 벗겨내고 이발을 시킨 다음 목욕을 시켜서 새옷을 입혀놓게 되면 전혀 새로운 모습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안에서 새롭게 되려면, 예수믿기 이전의 모든 것을 버려야 합니다. 자기 스스로는 옳다고 여기던 것까지도 말씀이 금하고 있으면 버려야 합니다.
말씀을 받아들이게 되면, 둘째로 겪어야 하는 아픔이 형식에서 벗어나는 일입니다. 세례요한은 죄를 고백한 사람에게 세례를 베풀면서도, 자기 뒤에 오는 예수를 믿고 성령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막1:8) 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해서 형식을 전혀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세상 사람들에 비하면 거의 버리다 싶이 해야 한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형식이란 형식주의를 말합니다. 쉬운 우리말로 하면 체면치레입니다. 마음은 없으면서 남들 눈이 무서워하는 거짓된 행위입니다. 헌금을 해도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남들 하니까 따라서 한다거나 경쟁심을 가지고 하는 경우를 말합니다.
예수를 믿게 되면, 그런 형식주의를 버리고 진실하게 행동을 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바리새인들을 그처럼 심하게 공격을 하신 것도, 그들이 이중적인 생활, 곧 내용과 형식이 다른 형식적인 행실을 못마땅히 여기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게되면, 얼마나 그가 훌륭한 생활을 하고 있느냐 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얼마나 성실한가 하는 점입니다.
형식주의에 빠져있던 사람이 예수를 믿게 되면, 그 형식주의 때문에 많은 아픔을 겪게 됩니다. 집사가 되고 장로가 되는 것도 형식주의에 빠져있는 사람은, 하나의 명예직으로 생각합니다. 그러한 직분은 봉사직이기 때문에 말없이 충성해야 되는 귀한 직책인데, 명예로 생각하는 사람은 실질적인 봉사는 없고 직분을 내세워 말만 많이 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보시는 분인데, 겉보기에 번지르하면 좋게 여기는 세상 적인 판단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잘못을 범하게 된 것입니다.
말씀을 받아들여 빛된 생활을 하게되면, 셋째로 겪어야 아픔은 어둠의 행실을 버려야 한다는 점입니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두 가지의 경우는, 내면적인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겪게 되는 아픔이지만, 이번의 경우는 좀더 구체적으로 버려야 되는 죄악 행위입니다. 도박이나 투기, 폭력과 사기등, 세상사회에서 조차 추방해야 되는 잘못된 행위입니다. 우리교회에서는 이런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혹 과거에 그런 경력이 있었다 할지라도 주님의 품을 벗어나지만 않으면, 그런 습성은 쉽게 고칠 수 있습니다.
2.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시고 지금도 새롭게 일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말씀으로 세상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지금은 그 말씀으로 인간을 새롭게 하시려고 성령으로 오셔서 일하고 계십니다. (사43:19)에,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거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고 했습니다. (엡4:24)에서도,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 입으라고 바울은 권면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아무리 깨끗이 해 놓아도 인간이 죄를 벗이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음을 하나님은 아시고, 인간의 마음을 새롭게 하시려는 계획을 갖게 되었습니다. 새벽기도회에 나오라고 전화벨을 아무리 눌러도 꿈쩍도 하지 않던 분들이, 은혜를 받게 되자 전화벨을 울리지 않아도 기도회에 잘 나오고 있습니다. 결국 모든 일은 사람 마음먹기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마음을 새롭게 하는 과정을 세단계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죄를 고백하고 예수를 믿는 일입니다. “내가 지금까지 잘못된 생활을 했구나!” 하고 죄를 뉘우치면서 예수를 믿어야 합니다. 예수를 믿는 믿음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셔야 예수를 믿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모두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를 믿게 되어 이 자리에 와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를 믿게 되면 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세례는 죽음을 상징합니다. 예수 믿기 이전의 잘못된 생활은 물로 씻든지 씻어버리든지, 아니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것처럼 우리 자신을 십자가에 못을 박아 죽여야 합니다. 그리고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세례는 바로 이러한 내용을 많은 성도들 앞에서 보여 주는 형식적인 의례행위입니다. 그러니까 세례를 받는 사람은 많은 사람 앞에서 세례를 받으면서, “나의 과거 잘못된 생활을 버리고 이제는 예수 말씀 따라 새롭게 살아가겠습니다” 라고 하는 다짐의 표시를 무엇으로 나타내게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의 과정은 성령 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잘못된 생활을 고쳐 살겠다는 다짐만 가지고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신 것을 직접 체험하면서, 자기 자신을 완전히 부정하는 뜨거운 경험을 가져야 합니다. 사울이 변하여 바울이 되듯이, 자신의 과거 생활이 아주 잘못되었음을 뼈저리게 깨닫고 그 잘못을 용서해 주는 하나님의 사랑을 눈물로 감사하는 은혜의 순간을 가져야 합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이 찬송을 입으로만 부를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도 부를 수 있어야 합니다.
세 번째의 과정은 복음 증거입니다. 성령 받은 증거는 복음전도로 나타납니다. 은혜 받은 것을 혼자서만 누리기가 아까워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게 됩니다. 전도를 하게 되면 내 믿음이 성장할뿐더러, 지금까지 체험하지 못한 전혀 새로운 은혜를 누리게 됩니다. 받은 바 은혜를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주지 않으면, 그 은혜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3. 예수그리스도를 진실하게 믿어 새롭게 되고, 성령을 받아 어둔 세상에 빛이 되어 삽시다.
(시 104:30)의 말씀에, “주의 영을 보내어 저희를 창조하사 지면을 새롭게 하시나이다” 라고 했습니다. 세상이 새로워지라면 우리가 새롭게 변화되어야 합니다. 우리를 새롭게 하는 것은 주의 성령입니다. 주의 영이 임해야 우리의 마음이 새로워지게 될 것입니다. (시51:10)에서도, “하나님이여 내 속에 깨끗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하고, 시편기자는 간구하고 있습니다. (겔18:31)의 말씀에도, “너희는 범한 모든 죄악을 버리고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할지어다” 라고 했습니다.
문제는 우리의 마음의 자세입니다. 사람다운 구실을 하면서 사람답게 살려는 마음만 있다면, 진실한 자세로 하나님 앞에 서야 합니다. 거짓된 태도를 버리고 솔직히 자기 죄를 털어 놓기만 한다면, 하나님은 그를 사랑하셔서 많은 은혜를 내려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마음을 부드럽게 해주고 생활을 리듬있게 해줍니다. 뒤틀리기만 하던 가정의 일들이 이상스럽게 풀려나가고 일이 잘 되어 나가도록 해 주는 것이 하나님 은혜입니다. 밉던 사람들이 예뻐지고, 지겹던 설교가 귀에 쏙쏙 들어옵니다. 이 모든 일들이 하나님 앞에서 진실한 마음을 가지고 죄를 고백하면서 시작됩니다. 죄를 뉘우치면 뉘우칠수록 하나님의 은혜는 더욱 풍성해집니다.
사업이 잘 안되는 분이 있습니까?
주님 앞에서 자기 죄를 진심으로 뉘우치며 간구해 보십시오. 이상할 정도로 사업 이 잘될 것입니다. 안 아픈데가 없이 병이 많은 분이 있습니까? 한 번 시험삼아 하나님 앞에 자기 죄를 털어 놓아보십시오. 깨끗하게 나음을 얻을 것입니다. 인생문제로 고민하는 분이 있습니까? 하나님께 눈물로 간구해 보십시오. 분명 해결해 주실 것입니다.
이렇게 몸과 마음이 새로워지면 생활에 변화가 오게 되고, 생활에 변화가 있게 되면 여러분은 이 사회에 많은 빛을 드러내는 참 성도가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아름다운 마음씨가 이 세상에 빛이 되어 기쁨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 여러분의 적극적이고 소망스러운 생활이 여러분의 가정을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고 이 사회를 변화시켜 밝게 할 것입니다.
축복된 여러분의 심령위에 하나님의 은혜가 더욱 넘치기를 빕니다. 여러분은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요. 아름다운 조국 대한민국의 국민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