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으로 살아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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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10 18:42
영혼의 양식 91-20호 1991.05.19.
성서일과 ; 겔37:1-14, 행2:1-21, 요15:26-27, 16:4-15.
제목 ; 말씀으로 살아나리라
믿음을 가진 성도가 성령이 없이는 믿음 생활을 할 수가 없습니다. 교회도 성령이 함께 하지 않으면, 죽은 교회가 되어 교회의 모습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성령이 임해야 신앙생활에 활기가 넘치게 되고 믿는 재미를 맛볼 수 있게 됩니다. 성령이 우리의 마음과 생활을 지배해야 악한 생각과 잘못된 생활을 멀리하게 되고, 열심히 기도하면서 날마다 새로운 신앙생활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오늘은 성령 강림 주일입니다. 성령 강림 주일인 오늘, 제가 영춘교회에 부임하여 첫 주일 설교를 하게 된 것에 대하여 대단히 기쁘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영춘교회와 성도 여러분, 또한 저에게 있어서도 아주 큰 의미가 있는 일이라 생각됩니다.
모세가 80년의 준비 기간을 통하여 많은 훈련을 받아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이끌어내는 대역사를 이루었던 것처럼, 우리 영춘교회도 80년 가까이 갖가지 비바람을 겪으면서 발전과 쇠퇴를 거듭하다가, 이제 새로운 도약을 하게 하여 영광을 받으시려는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믿습니다.
어느 교회에, 세상 사람들이 부르기를 개집사라고 하는 분이 있다고 합니다. 교회에서는 신앙심이 돈독하여 교회 출석도 열심히 하고 온갖 일에 충성을 다하여 집사가 되었지만, 사회에서는 그의 생활이 엉망진창이어서 이름 붙이기를 개집사라고 부른다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비극입니다. 어찌 신앙 좋다는 사람이 사회에서는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느냐는 말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잘못되었기 때문일까요? 그럴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세상에도 윤리와 도독이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도 그 윤리와 도덕에 어긋나는 생활을 하면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합니다.
하물며 신앙인으로서랴! 신앙인이라면 윤리와 도덕을 지킨 다음에, 그보다 더 높은 차원인 신앙적인 교리를 지켜 행하는 것입니다. 하기사 신앙인이라고 해서 그 모든 것을 지켜 행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상식이하의 행동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개집사가 개집사 소리를 듣게 된 데에는, 원래 그 사람 자신의 인간성에서 문제가 있겠지만, 그보다 더 큰 원인은 신앙과 생활이 분리된 데 있습니다. 그가 교회에서 열심임 것처럼, 그 열심을 사회 생활에도 기울여 성실히 살려고 노력했더라면 그런 말을 듣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실생활에 적용시켜 살지 못하면, 그 신앙은 죽은 신앙입니다. 신앙인이라고 해서 세상 사람들이 요구하는 대로 완전하게 살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수 있을까 고민을 하면서 살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성령으로 하여금 그를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 신앙인들이 사회 생활을, 교회 생활을 하기 위한 수단으로 알고 있다는 점입니다. 사회 생활은 아무렇게나 해도 좋고 교회 생활만 열심히 하면 된다고 하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예수 잘 믿고 천당에 가면 된다는 사고 방식인 것입니다. 나 혼자 예수 잘 믿고 천국에 가겠다는 신앙은 기독교 신앙이 아니라 미신입니다.
오늘 읽은 성경 말씀을 보면, 사도행전 2장 1절에서 오순절에 신도들이 모두 한 곳에 모여 있을 때에 성령이 각 사람 위에 임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령은 이와 같이, 믿음의 사람들이 함께 하여 주의 말씀을 기다릴 때 임하는 것입니다. 성령 받은 예수의 제자들이 군중들에게 예수를 증거할 때에도 함께 일어서서 외쳐 증거한 것을 사도행전 2장 14절에서 또한 볼 수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 믿음 생활이란 혼자서는 할 수 없습니다. 영적인 힘을 얻는데도 여럿이 함께 함으로써 가능하지만, 또한 예수를 증거함에 있어서도 함께 해야 효과적입니다.
이기적인 신앙은 생활과 신앙을 분리시킵니다. 기독교 진리는 이기적인 것이 아니라 이타적인 신앙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나를 사랑함으로써 나를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너를 진심으로 사랑함으로써 너와 나를 동시에 구원하는 역사가 성령의 역사입니다. 그래서 사도행전을 보면, 성도들이 함께 모여 기도하고 있던 다락방에 성령은 임했던 것입니다. 자기 자신만이 잘되겠다는 욕심을 품고 있다가 예수를 배반한 적이 있는 베드로는, 부활하신 예수를 만나 뵌 후 자기 목숨을 내놓고 복음증거에 심혈을 기울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받은 사람은 남을 원망하거나 미워하지 않습니다. 성령받은 사람은 혼자서만 기쁨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이웃과 함께 기쁨을 나누려고 애씁니다. 성령받은 사람은 자신의 변화뿐만 아니라, 교회와 사회의 변화에도 관심을 기울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 주변에는
1. 성령을 받지 못하여 생명이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면 왜 성령을 받지 못하나? 그것은 예수를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어떤 경우에는 예수를 잘 안다고 하지만 바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성령을 받지 못했거나 오염된 성령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를 잘 알려면 회개를 해야 합니다. 지난 잘못을 뉘우칠 뿐만 아니라, 다시는 그 옛 생활을 반복하지 않고 회개를 온전히 하여 마음이 깨끗해져야 예수님을 만나 뵐 수 있습니다. 아직도 예수를 이용하여 명예를 탐내거나 물질만 구하고 있다면, 진정 예수를 만날 수도 없고 안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오히려 나의 모든 것을 부정하고 “나는 죽었습니다” 라고 고백을 할 때, 하나님은 우리 죄를 용서할 뿐만 아니라 성령을 선물로 주시는 것입니다. 거기에 대해서 사도행전 2장 38절은 분명히 말해 주고 있습니다. 『회개하시오. 그리고 여러분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여러분의 죄를 용서받으시오.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게 될 것입니다』
또한 성령을 받지 못하는 것은 목마름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세상 물질이나 향락에 마음의 눈이 어두워져서, 자기 자신이 목말라 죽게 되었다는 것을 모르고 지내는 사람이 수두룩한 것입니다. 완전히 탈진 상태에 빠져서 헤어 나오지 못할 지경에 이르러서야, 자신이 물을 필요로 했음을 알게 되지만, 때는 이미 늦은 것입니다.
갈증을 느끼는 사람이라야 물을 마실 수 있습니다. 성령은 성령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만 주어집니다. 자기 혼자 힘으로써도 얼마든지 살 수 있노라고 자신 만만해 하는 사람에게는 성령의 물이 필요 없습니다. 인색한 사람에게도 성령은 임하지 않습니다.
목말라 하는 사람은, 늘 어떻게 하면 진실하게 살 수 있을까 하고 고민하는 사람입니다. 남에게 조금 손해를 입히고서도 안타까워하고 괴로워하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허물을 알고 그 허물을 고치지 못하여 슬퍼하는 사람입니다.
이와 같이 목말라 하는 사람에게 성령은 임하십니다. 임하셔서 부족한 것을 채워주시고 오른 길로 갈 수 있도록 지도해 주십니다. 요한복음 7장 38절에 『목마른 사람은 다 나에게 와서 마셔라. 나를 믿는 사람은 성서의 말씀대로 그 속에서 샘솟는 물이 강물처럼 흘러나올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샘솟는 물은 마르지를 않습니다. 계속 솟아나와서 목마름을 해소시켜줄 뿐만 아니라, 그 물은 살아있는 물로써 생명을 자라게 해 줍니다.
성령을 받지 못하면 생명이 없는 삶을 살게 됩니다. 생명이 없는 삶이란, 다른 사람과 즐거움을 나누지 못하고 혼자서만 기뻐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생활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도박의 경우, 같이 즐거워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따는 사람만 기뻐하고 다른 사람은 괴로워해야 하는 나쁜 노름입니다. 만일 성령을 받았다고 하면서 자기 자신은 마냥 즐겁지만,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주고 있다면, 그 사람은 성령을 받은 것이 아니라 악령을 받은 것입니다. 성령을 받았다고 하면서 방언은 줄줄 하는데 기도가 끝나자 마자 남을 헐뜯거나 욕설을 퍼붓는다면 그 사람도 또한 성령이 아닌 악령을 받은 것입니다.
생명이 있는 성령을 받은 사람은 늘 얼굴이 밝습니다. 짜증을 그리 쉽게 내지 않습니다. 원망을 하지 않습니다. 항상 감사할 수 있는 일들을 많이 찾아냅니다. 기쁜 일들을 발견합니다.
그러나 성령을 받지 못하면, 늘 불평이요 남을 이해하려 하기보다는 오해를 잘 합니다. 왜냐하면 원래 성경은, 예수께서 제자들을 용서하고 제자들은 예수님의 사랑을 깊이 깊이 깨닫게 되었을 때에 임했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는 예수님만을 위하여 살아야 되겠다고 결심하고, 함께 모여 기도할 때에 성령은 임했던 것입니다.
그러니 성령 받지 못한 사람은 예수를 증거할 줄도 모릅니다. 성령이 함께 하시면, 예수 믿는 즐거움도 맛보고 과연 이 길이 가장 아름답고 복된 길이구나 하는 확신이 생기게 되어 남에게 예수를 증거하게 되는 것입니다.
2. 생명이신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역사하십니다.
성령을 받으면 죽은 신앙이 아닌 살아 있는 신앙이 되어서 하나님 나라 갈 것을 소망하고, 오늘도 힘차고 보람있게 살 수 있습니다.
에스겔서에서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도 잡혀가서 오랫동안 타향에서 종살이를 하다 보니 완전히 죽은 목숨처럼 살게 되었습니다. 처음 몇 년 동안은 생각하기를, 얼마 안 있으면 고향에 돌아갈 수 있으려니 했습니다. 그런데, 한 해 두 해, 10년 20년 지나고 보니까, 이제는 영 틀렸구나 하는 절망감에 사로잡히게 되었습니다.
에스겔이 본 환상은 바로 그와 같은 이스라엘 백성의 절망에 빠진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습니다. 마른 뼈들만이 잔뜩 널려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마른 뼈들에게 하나님의 말씀대로 『내가 너희 속에 숨을 불어넣어 너희를 살리리라』는 말씀을 전할 때에 뼈들이 움직이며 서로 붙고 하더니 사람의 형상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이때 생기를 명령하여 그 사람들 속에 들어가도록 하니 모두들 살아나서 굉장히 큰 무리를 이루었다는 내용입니다.
곧, 이스라엘 백성들은 절망 가운데서 죽어지내다가, 『고국에 돌아가 살 수 있으리라』는 희망의 소식을 듣고 다시 힘을 얻어 활기찬 삶을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를 사람답게 살지 못하게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자기만을 생각하는 이기심이 교회안에 까지 들어와서 이중적(二重的)인 삶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는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지만, 교회 밖에서는 욕심 많고 자기만 아는 위선자들이 있음을 우리는 부인 못합니다. 죽은 신앙입니다.
죽음이 두려워, 외톨이가 될까봐 두려워, 손해를 많이 볼까 두려워, 하나님의 말씀대로 진실하게 살지 못하는 신앙인들도 있습니다. 죽은 신앙입니다.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보면서, 교회 안의 비리를 너무 목도한 나머지 교회를 멀리하는, 자기 자신만이 의로운 척 하는 독선주의자들이 있습니다. 죽은 사람입니다.
오늘 하나님은 이런 사람들을 살리셔서, 먼저 자신들의 죄를 깨닫게 하고, 모든 것을 긍정적이면서 적극적으로 모든 일을 고쳐 살려고 노력하는 마음을 줍니다. 교회 안에서 잘못된 것이 비치면, 내가 먼저 열심히 노력을 하고 하나님의 도움을 힘입어서 고쳐 나가야겠다는 의지를 갖게 해 줍니다.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외톨이가 될까봐 세상 사람들과 타협을 하여 적당히 타락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깨우쳐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결코 혼자 내버려두지 아니하고 하나님이 성령으로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알게 해 주십니다.
사도행전에서, 사람들이 받은 성령은 고린도교회 교인들이 받은 성령과는 질적으로 다릅니다. 그렇게 많이 성령을 받았다고 주장하며 자랑하는 고린도교회는, 계속 싸움을 하고 나뉘고 서로 욕을 하는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사도행전에서는 제자들이 성령을 받고 용감하게 주님을 증거할 뿐만 아니라, 서로 네 것 내 것 구분하지를 않고 유무상통하는 진정한 공동체를 이루었던 것입니다. 에스겔 골짜기의 마른 뼈들이 생기를 얻어 많은 무리를 이룬 것처럼, 사도행전의 제자들도 성령을 받아, 살아 역사하는 주님의 용사가 된 것입니다.
3. 주의 이름을 부름으로 구원의 삶을 살아갑시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역사하십니다. 웨슬레 한 사람이 성령을 받고 변화를 얻어 전(全) 영국 사회를 건졌던 것처럼, 오늘도 나 한 사람이 성령을 바로 받으면, 가정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교회를 새롭게 할 수 있습니다. 사회를 깨끗하게 할 수 있습니다. 직장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어린 소녀 앞에서 예수를 부인했던 베드로였지만, 이제는 담대하게 예수님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빈정거리고 수군대며 죽이겠다고 위협을 해도 베드로는 열심히 주님을 증거했습니다.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한 베드로였지만, 성령을 받은 후에는 아주 훌륭한 설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무슨 일이든지 주의 이름으로 하십시오. 절대로 “나” 를 내세우지 말고 주께서 한 일이라고 주님만 자랑을 하고 “나” 는 숨기십시오. 그런 사람이 가는 곳에는 싸움이 일어날 리가 없습니다. 오직 기쁨과 평화만이 있을 뿐입니다.
성령을 받은 사람은 자기 주장만을 내세우지 않고,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일 줄 압니다. 자기 생각만 옳다고 주장을 하지 않습니다.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이면 기쁜 마음으로 그 일을 수행합니다. 매사 적극적이고 모든 일에 열심히 참여를 합니다. 기분 나쁜 일이 있어도 참을 줄을 압니다.
성령을 받은 사람은 교회 일에만 열심을 다하는 것이 아니라, 가정과 직장 일에도 헌신적으로 일을 열심히 합니다. 직장 동료들과 서로 화목 하려고 노력을 합니다.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은 내 힘이 아닙니다. 성령이 도와 주식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여러분도 이렇게 성령을 받아 여러분의 가정과 교회, 직장과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주역이 되시기 바랍니다. 할 수 있습니다. 가능합니다. 믿고 해 보십시오. 됩니다. 세상 욕심을 버리고 주께서 주시는 복이 가장 귀한 축복인 줄 알고 하나님께 구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성령을 가장 큰 선물로 허락하실 것입니다.
성령이 함께 하시면, 여러분 자신이 얼마나 귀한 하나님의 자녀인가를 알게 되고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려고 노력을 하게 됩니다.
오늘 여러분에게 이와 같은 하나님의 성령이 임하여 여러분의 삶을 변화시키고, 나아가 가정과 직장, 사회와 국가를 변화시키는 주역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성서일과 ; 겔37:1-14, 행2:1-21, 요15:26-27, 16:4-15.
제목 ; 말씀으로 살아나리라
믿음을 가진 성도가 성령이 없이는 믿음 생활을 할 수가 없습니다. 교회도 성령이 함께 하지 않으면, 죽은 교회가 되어 교회의 모습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성령이 임해야 신앙생활에 활기가 넘치게 되고 믿는 재미를 맛볼 수 있게 됩니다. 성령이 우리의 마음과 생활을 지배해야 악한 생각과 잘못된 생활을 멀리하게 되고, 열심히 기도하면서 날마다 새로운 신앙생활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오늘은 성령 강림 주일입니다. 성령 강림 주일인 오늘, 제가 영춘교회에 부임하여 첫 주일 설교를 하게 된 것에 대하여 대단히 기쁘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영춘교회와 성도 여러분, 또한 저에게 있어서도 아주 큰 의미가 있는 일이라 생각됩니다.
모세가 80년의 준비 기간을 통하여 많은 훈련을 받아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이끌어내는 대역사를 이루었던 것처럼, 우리 영춘교회도 80년 가까이 갖가지 비바람을 겪으면서 발전과 쇠퇴를 거듭하다가, 이제 새로운 도약을 하게 하여 영광을 받으시려는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믿습니다.
어느 교회에, 세상 사람들이 부르기를 개집사라고 하는 분이 있다고 합니다. 교회에서는 신앙심이 돈독하여 교회 출석도 열심히 하고 온갖 일에 충성을 다하여 집사가 되었지만, 사회에서는 그의 생활이 엉망진창이어서 이름 붙이기를 개집사라고 부른다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비극입니다. 어찌 신앙 좋다는 사람이 사회에서는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느냐는 말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잘못되었기 때문일까요? 그럴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세상에도 윤리와 도독이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도 그 윤리와 도덕에 어긋나는 생활을 하면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합니다.
하물며 신앙인으로서랴! 신앙인이라면 윤리와 도덕을 지킨 다음에, 그보다 더 높은 차원인 신앙적인 교리를 지켜 행하는 것입니다. 하기사 신앙인이라고 해서 그 모든 것을 지켜 행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상식이하의 행동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개집사가 개집사 소리를 듣게 된 데에는, 원래 그 사람 자신의 인간성에서 문제가 있겠지만, 그보다 더 큰 원인은 신앙과 생활이 분리된 데 있습니다. 그가 교회에서 열심임 것처럼, 그 열심을 사회 생활에도 기울여 성실히 살려고 노력했더라면 그런 말을 듣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실생활에 적용시켜 살지 못하면, 그 신앙은 죽은 신앙입니다. 신앙인이라고 해서 세상 사람들이 요구하는 대로 완전하게 살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수 있을까 고민을 하면서 살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성령으로 하여금 그를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 신앙인들이 사회 생활을, 교회 생활을 하기 위한 수단으로 알고 있다는 점입니다. 사회 생활은 아무렇게나 해도 좋고 교회 생활만 열심히 하면 된다고 하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예수 잘 믿고 천당에 가면 된다는 사고 방식인 것입니다. 나 혼자 예수 잘 믿고 천국에 가겠다는 신앙은 기독교 신앙이 아니라 미신입니다.
오늘 읽은 성경 말씀을 보면, 사도행전 2장 1절에서 오순절에 신도들이 모두 한 곳에 모여 있을 때에 성령이 각 사람 위에 임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령은 이와 같이, 믿음의 사람들이 함께 하여 주의 말씀을 기다릴 때 임하는 것입니다. 성령 받은 예수의 제자들이 군중들에게 예수를 증거할 때에도 함께 일어서서 외쳐 증거한 것을 사도행전 2장 14절에서 또한 볼 수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 믿음 생활이란 혼자서는 할 수 없습니다. 영적인 힘을 얻는데도 여럿이 함께 함으로써 가능하지만, 또한 예수를 증거함에 있어서도 함께 해야 효과적입니다.
이기적인 신앙은 생활과 신앙을 분리시킵니다. 기독교 진리는 이기적인 것이 아니라 이타적인 신앙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나를 사랑함으로써 나를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너를 진심으로 사랑함으로써 너와 나를 동시에 구원하는 역사가 성령의 역사입니다. 그래서 사도행전을 보면, 성도들이 함께 모여 기도하고 있던 다락방에 성령은 임했던 것입니다. 자기 자신만이 잘되겠다는 욕심을 품고 있다가 예수를 배반한 적이 있는 베드로는, 부활하신 예수를 만나 뵌 후 자기 목숨을 내놓고 복음증거에 심혈을 기울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받은 사람은 남을 원망하거나 미워하지 않습니다. 성령받은 사람은 혼자서만 기쁨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이웃과 함께 기쁨을 나누려고 애씁니다. 성령받은 사람은 자신의 변화뿐만 아니라, 교회와 사회의 변화에도 관심을 기울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 주변에는
1. 성령을 받지 못하여 생명이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면 왜 성령을 받지 못하나? 그것은 예수를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어떤 경우에는 예수를 잘 안다고 하지만 바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성령을 받지 못했거나 오염된 성령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를 잘 알려면 회개를 해야 합니다. 지난 잘못을 뉘우칠 뿐만 아니라, 다시는 그 옛 생활을 반복하지 않고 회개를 온전히 하여 마음이 깨끗해져야 예수님을 만나 뵐 수 있습니다. 아직도 예수를 이용하여 명예를 탐내거나 물질만 구하고 있다면, 진정 예수를 만날 수도 없고 안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오히려 나의 모든 것을 부정하고 “나는 죽었습니다” 라고 고백을 할 때, 하나님은 우리 죄를 용서할 뿐만 아니라 성령을 선물로 주시는 것입니다. 거기에 대해서 사도행전 2장 38절은 분명히 말해 주고 있습니다. 『회개하시오. 그리고 여러분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여러분의 죄를 용서받으시오.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게 될 것입니다』
또한 성령을 받지 못하는 것은 목마름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세상 물질이나 향락에 마음의 눈이 어두워져서, 자기 자신이 목말라 죽게 되었다는 것을 모르고 지내는 사람이 수두룩한 것입니다. 완전히 탈진 상태에 빠져서 헤어 나오지 못할 지경에 이르러서야, 자신이 물을 필요로 했음을 알게 되지만, 때는 이미 늦은 것입니다.
갈증을 느끼는 사람이라야 물을 마실 수 있습니다. 성령은 성령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만 주어집니다. 자기 혼자 힘으로써도 얼마든지 살 수 있노라고 자신 만만해 하는 사람에게는 성령의 물이 필요 없습니다. 인색한 사람에게도 성령은 임하지 않습니다.
목말라 하는 사람은, 늘 어떻게 하면 진실하게 살 수 있을까 하고 고민하는 사람입니다. 남에게 조금 손해를 입히고서도 안타까워하고 괴로워하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허물을 알고 그 허물을 고치지 못하여 슬퍼하는 사람입니다.
이와 같이 목말라 하는 사람에게 성령은 임하십니다. 임하셔서 부족한 것을 채워주시고 오른 길로 갈 수 있도록 지도해 주십니다. 요한복음 7장 38절에 『목마른 사람은 다 나에게 와서 마셔라. 나를 믿는 사람은 성서의 말씀대로 그 속에서 샘솟는 물이 강물처럼 흘러나올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샘솟는 물은 마르지를 않습니다. 계속 솟아나와서 목마름을 해소시켜줄 뿐만 아니라, 그 물은 살아있는 물로써 생명을 자라게 해 줍니다.
성령을 받지 못하면 생명이 없는 삶을 살게 됩니다. 생명이 없는 삶이란, 다른 사람과 즐거움을 나누지 못하고 혼자서만 기뻐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생활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도박의 경우, 같이 즐거워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따는 사람만 기뻐하고 다른 사람은 괴로워해야 하는 나쁜 노름입니다. 만일 성령을 받았다고 하면서 자기 자신은 마냥 즐겁지만,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주고 있다면, 그 사람은 성령을 받은 것이 아니라 악령을 받은 것입니다. 성령을 받았다고 하면서 방언은 줄줄 하는데 기도가 끝나자 마자 남을 헐뜯거나 욕설을 퍼붓는다면 그 사람도 또한 성령이 아닌 악령을 받은 것입니다.
생명이 있는 성령을 받은 사람은 늘 얼굴이 밝습니다. 짜증을 그리 쉽게 내지 않습니다. 원망을 하지 않습니다. 항상 감사할 수 있는 일들을 많이 찾아냅니다. 기쁜 일들을 발견합니다.
그러나 성령을 받지 못하면, 늘 불평이요 남을 이해하려 하기보다는 오해를 잘 합니다. 왜냐하면 원래 성경은, 예수께서 제자들을 용서하고 제자들은 예수님의 사랑을 깊이 깊이 깨닫게 되었을 때에 임했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는 예수님만을 위하여 살아야 되겠다고 결심하고, 함께 모여 기도할 때에 성령은 임했던 것입니다.
그러니 성령 받지 못한 사람은 예수를 증거할 줄도 모릅니다. 성령이 함께 하시면, 예수 믿는 즐거움도 맛보고 과연 이 길이 가장 아름답고 복된 길이구나 하는 확신이 생기게 되어 남에게 예수를 증거하게 되는 것입니다.
2. 생명이신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역사하십니다.
성령을 받으면 죽은 신앙이 아닌 살아 있는 신앙이 되어서 하나님 나라 갈 것을 소망하고, 오늘도 힘차고 보람있게 살 수 있습니다.
에스겔서에서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도 잡혀가서 오랫동안 타향에서 종살이를 하다 보니 완전히 죽은 목숨처럼 살게 되었습니다. 처음 몇 년 동안은 생각하기를, 얼마 안 있으면 고향에 돌아갈 수 있으려니 했습니다. 그런데, 한 해 두 해, 10년 20년 지나고 보니까, 이제는 영 틀렸구나 하는 절망감에 사로잡히게 되었습니다.
에스겔이 본 환상은 바로 그와 같은 이스라엘 백성의 절망에 빠진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습니다. 마른 뼈들만이 잔뜩 널려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마른 뼈들에게 하나님의 말씀대로 『내가 너희 속에 숨을 불어넣어 너희를 살리리라』는 말씀을 전할 때에 뼈들이 움직이며 서로 붙고 하더니 사람의 형상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이때 생기를 명령하여 그 사람들 속에 들어가도록 하니 모두들 살아나서 굉장히 큰 무리를 이루었다는 내용입니다.
곧, 이스라엘 백성들은 절망 가운데서 죽어지내다가, 『고국에 돌아가 살 수 있으리라』는 희망의 소식을 듣고 다시 힘을 얻어 활기찬 삶을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를 사람답게 살지 못하게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자기만을 생각하는 이기심이 교회안에 까지 들어와서 이중적(二重的)인 삶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는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지만, 교회 밖에서는 욕심 많고 자기만 아는 위선자들이 있음을 우리는 부인 못합니다. 죽은 신앙입니다.
죽음이 두려워, 외톨이가 될까봐 두려워, 손해를 많이 볼까 두려워, 하나님의 말씀대로 진실하게 살지 못하는 신앙인들도 있습니다. 죽은 신앙입니다.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보면서, 교회 안의 비리를 너무 목도한 나머지 교회를 멀리하는, 자기 자신만이 의로운 척 하는 독선주의자들이 있습니다. 죽은 사람입니다.
오늘 하나님은 이런 사람들을 살리셔서, 먼저 자신들의 죄를 깨닫게 하고, 모든 것을 긍정적이면서 적극적으로 모든 일을 고쳐 살려고 노력하는 마음을 줍니다. 교회 안에서 잘못된 것이 비치면, 내가 먼저 열심히 노력을 하고 하나님의 도움을 힘입어서 고쳐 나가야겠다는 의지를 갖게 해 줍니다.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외톨이가 될까봐 세상 사람들과 타협을 하여 적당히 타락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깨우쳐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결코 혼자 내버려두지 아니하고 하나님이 성령으로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알게 해 주십니다.
사도행전에서, 사람들이 받은 성령은 고린도교회 교인들이 받은 성령과는 질적으로 다릅니다. 그렇게 많이 성령을 받았다고 주장하며 자랑하는 고린도교회는, 계속 싸움을 하고 나뉘고 서로 욕을 하는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사도행전에서는 제자들이 성령을 받고 용감하게 주님을 증거할 뿐만 아니라, 서로 네 것 내 것 구분하지를 않고 유무상통하는 진정한 공동체를 이루었던 것입니다. 에스겔 골짜기의 마른 뼈들이 생기를 얻어 많은 무리를 이룬 것처럼, 사도행전의 제자들도 성령을 받아, 살아 역사하는 주님의 용사가 된 것입니다.
3. 주의 이름을 부름으로 구원의 삶을 살아갑시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역사하십니다. 웨슬레 한 사람이 성령을 받고 변화를 얻어 전(全) 영국 사회를 건졌던 것처럼, 오늘도 나 한 사람이 성령을 바로 받으면, 가정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교회를 새롭게 할 수 있습니다. 사회를 깨끗하게 할 수 있습니다. 직장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어린 소녀 앞에서 예수를 부인했던 베드로였지만, 이제는 담대하게 예수님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빈정거리고 수군대며 죽이겠다고 위협을 해도 베드로는 열심히 주님을 증거했습니다.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한 베드로였지만, 성령을 받은 후에는 아주 훌륭한 설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무슨 일이든지 주의 이름으로 하십시오. 절대로 “나” 를 내세우지 말고 주께서 한 일이라고 주님만 자랑을 하고 “나” 는 숨기십시오. 그런 사람이 가는 곳에는 싸움이 일어날 리가 없습니다. 오직 기쁨과 평화만이 있을 뿐입니다.
성령을 받은 사람은 자기 주장만을 내세우지 않고,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일 줄 압니다. 자기 생각만 옳다고 주장을 하지 않습니다.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이면 기쁜 마음으로 그 일을 수행합니다. 매사 적극적이고 모든 일에 열심히 참여를 합니다. 기분 나쁜 일이 있어도 참을 줄을 압니다.
성령을 받은 사람은 교회 일에만 열심을 다하는 것이 아니라, 가정과 직장 일에도 헌신적으로 일을 열심히 합니다. 직장 동료들과 서로 화목 하려고 노력을 합니다.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은 내 힘이 아닙니다. 성령이 도와 주식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여러분도 이렇게 성령을 받아 여러분의 가정과 교회, 직장과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주역이 되시기 바랍니다. 할 수 있습니다. 가능합니다. 믿고 해 보십시오. 됩니다. 세상 욕심을 버리고 주께서 주시는 복이 가장 귀한 축복인 줄 알고 하나님께 구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성령을 가장 큰 선물로 허락하실 것입니다.
성령이 함께 하시면, 여러분 자신이 얼마나 귀한 하나님의 자녀인가를 알게 되고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려고 노력을 하게 됩니다.
오늘 여러분에게 이와 같은 하나님의 성령이 임하여 여러분의 삶을 변화시키고, 나아가 가정과 직장, 사회와 국가를 변화시키는 주역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