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와 십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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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와 십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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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양식 91-07호                                            1991.02.17.

성서일과 ; 창9:8-17, 벧전3:18-22, 막1:9-15.

제목 ; 무지개와 십자가




  무지개에 대하여 나쁜 인상을 가지고 있는 분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지개에 대해서는 좋은 감정과 즐거운 추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무지개가 대개 비가 갠 오후 상쾌한 기분이 들 때, 아름다운 일곱가지 색깔로 나타나기 때문이지 않나 싶습니다. 정말 무지개는 기분 나쁠 필요가 없는, 반갑고 기분이 좋은 자연 현상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무지개를 보면 어떤 신비스러운 느낌마저 듭니다. 하나님의 손에 의한 기묘한 조화와 그 분의 따뜻하고 부드러운 자비로움 같은 것을 갖게 해 줍니다.

  사실 무지개는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의 상징입니다. 인간이 죄를 지으면 심판을 받아 멸망하게 끔 되어 있는 것이 하나님의 법칙이었습니다. 그것은 죄를 지은 인간에게 벌을 주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바르게 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삶의 터전을 마련해 주는데 있었습니다. 쉽게 말씀드리면, 깨끗한 사람들이 살아가는데 불편하지 않도록 더러운 사람들을 치워버리는 한 방법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노아 때에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심판 받을 대상에 포함되고 말았습니다. 오직 유일하게 노아만이 하나님의 마음에 들었다고 (창 6:8) 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창 6:5-6)의 말씀을 보면, “여호와께서는 세상이 사람의 죄악으로 가득차고 사람마다 못된 생각만 하는 것을 보시고, 왜 사람을 만들었던가 싶으시어 마음이 아프셨다” 고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노아의 가정 여덟 식구만 남겨 놓고 모든 사람을 홍수로 심판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마음은 심히 아팠습니다. 당신이 만든 법칙에 따라 사람들을 심판하기는 했으나, 하나님이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멸망시키신 것이 자비하신 하나님으로서는 아주 괴로웠던 것입니다. 그래서 죄 때문에 다시는 인간을 홍수로 멸하지 않기로 노아의 후손들과 언약을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의 죄를 다스리되, 심판이 아닌 용서와 사랑의 방법으로 하실 것임을 보여 주신 것이 바로 무지개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지개를 보면서 두 가지 생각을 해야 합니다. 하나는 우리의 죄와 심판을 생각해야 합니다. 무엇이든지 심으면 심은 대로 거두게 되어 있는 것이 세상의 이치이고, 그래서 죄를 뿌리면 그 열매인 사망을 거두게 되어 있는데, 우리는 그 죄를 짓고 살면서도 사망을 두려워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지개를 볼 때마다, 우리의 죄와 그 심판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나 두 번째로 생각해야 할 것은, 죄를 지었지만 그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면 용서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무지개를 볼 때마다 깨달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죄를 지을 때마다, 그 죄의 값은 누가 치르고 우리가 용서받을 수 있겠는가 하는 점입니다. 죄를 심으면 사망으로 거두게 되어 있는 것이 하나님의 법칙인데, 그 법칙을 어기고 용서만 해 준다면 하나님 당신 스스로가 모순에 빠지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새로운 법칙을 만드신 것이 십자가의 원리입니다. 죄를 지었으되, 그 잘못을 깨닫고 하나님께 돌아오면 그 죄 값을 대신 하나님께서 치러주시기로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지개가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을 뜻한다고 한다면, 십자가는 그 부족한 점을 보완한, 또 하나의 하나님의 사랑을 뜻합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 값을 치러주셨음을 믿고 그 죄를 하나님께 고백함으로써 하나님의 사랑을 덧입었습니다. 그러니 이 사실을 믿지 못하고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는 사람은 아직도 죄 중에서 헤매고 있습니다.

  (벧전 3:18)에 있는 말씀을 보면,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 때문에 죽으셨습니다. 죄 없으신 분이 죄인을 위해서 죽으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단 한 번 죽으심으로써 여러분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하나님께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대신해서 당신의 아들이 십자가에서 죽게 하심으로써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는 방법을 취하신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이 죽으셔야 할 이유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단지 거짓된 사람들이 진실을 말하는 예수님을 미워해서 모함을 해 가지고 예수를 십자가에 매달았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얼마든지 예수님을 살리실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으로 하여금 죽는 길을 택하도록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죽음의 길을 갔습니다. 아무 변명이나 불평도 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명령에 따랐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이 많으시고 능력도 있으신 분이므로, 예수님 당신 자신을 좋은 길로 인도해 주실 것을 이미 알고 믿었습니다. 과연 하나님은 예수님을 다시 살리셔서 하나님의 오른 편에 앉히셨습니다. 베드로는 (벧전 3:18) 에서 “그리스도께서 몸으로는 죽으셨지만 영적으로는 다시 사셨습니다” 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죽는 길이 사는 길임을 다시 설명하지 않더라도 여러분은 너무나 잘 알고 있으리라 믿습니다. 실생활에서 우리는 이 진리를, 아주 흔히 경험을 통해서 깨닫고 있는 사실입니다. 다만 우리가 여기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에 의해서 죄 가운데서 벗어나 은혜의 자리로 나아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지금까지 우리는 자기 자신조차 인정할 수 없는 부끄러운 생활을 했으나, 이제부터는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는 복된 생활, 곧 뭔가 삶의 보람을 느낄 수 있는 바람직한 일을 도모하면서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교회에서 배우는 것이 무엇입니까? 나쁜 짓 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까? 아니지요! 우리는 모일 때마다 성실하게 사는 법을 배우고 이웃 사랑을 배우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복 받은 분들입니다. 복이 될 수 있는 길을 가고 있으니 말입니다. 죄를 심으면 사망을 거두고, 하나님을 믿고 살면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고 바울은 로마서 6:23에서 말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하나님을 믿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을 믿으니 여러분에게 영생이 보장되어 있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거룩한 책으로 인정하는 성경이 이것을 보증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복된 길을 가고 있습니다. 단지 저와 여러분이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지개로 보여 주시는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을 믿고 십자가를 통하여 베풀어주시는 구원의 은총 가운데, 좀더 열심히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사는 일입니다. 혹여 누가 여러분을 보고 잘못된 사람이라, 죄인이라고 참소 하더라도 하나 염려할 것 없습니다. 이미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잘못을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런 잘못 때문에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이 막힐까봐,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인 예수로 하여금 십자가에 매달려 죽게 함으로써 죄를 용서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이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는 연약한 존재임을 잘 아십니다. 하나님께서 제일 걱정하시는 것은, 그런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힘없는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나는 잘못이 없다” 고 하거나, 또는 그 죄를 하나님께서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라고 미리 판단하고 하나님께 나아오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이 두 종류의 사람들은 구원받을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행히도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잘 소개받을 수 있는 기회를 얻어, 이와 같이 복된 길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우리 주변에는,




  1.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열려있음에도 불구하고, 죄의 자리에 머물러 사는 사람이 많습니다.


  1979년 4월, 서울에서 큰 살인사건이 터졌습니다. 종로구 인사동에 있는 골동품가게 금당상회의 주인 부부가 끔찍하게 살해된 사건입니다. 그 부부에게는 귀여운 자녀가 넷이나 있었습니다. 신문에서는, 그 살인방법이 너무 잔인해서 살인마의 표본이라고 그 범인을 묘사했습니다. 3개월 후 범인이 잡혔는데, 이름은 박철웅이었습니다. 그해 대법원에서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죽음을 기다리고 있던 그에게 목사님 한 분이 그를 만나보고 전도를 했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당신도 새로운 인간이 될 수 있습니다” 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지금이라도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실 것이며 당신은 구원받고 천국에 갈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물론 살인마 박철웅은 처음에 완강히 거부했습니다. 그러나 목사님의 끈질긴 권면과 설득에, 마침내 그는 예수를 받아들였고, “나 같은 죄인도 하나님 앞에서 새 인간이 될 수 있다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하는 고백을 하였다고 합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자신의 생애를 생각하면서, 그 하나님의 은혜를 갚기 위하여 교도소 안에서 전도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는 많은 사람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사형 당하기 전, 간수에게 자기의 안구와 신장을 필요한 사람에게 제공하라고 부탁하여 1982년 7월 21일 사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고 합니다. 사형현장에 참여했던 한국일보기자 한 분이, 신문에 이렇게 그의 마지막 죽은 모습을 기사로 남겼습니다. “사형집행 직전 목사님이 성경을 펴들고 기도를 드리는 동안, 박철웅은 무릎을 꿇고 기도 드렸으며, 이윽고 죽음의 공포를 초월한 듯 아무런 요구 사항이나 말이 없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비록 살인죄를 지은 죄인이었으나, 죽기 전에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회개함으로써 그는 영생의 길을 가게 되었고, 그래서 그는 아주 의연한 모습으로 죽음을 맞이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몸서리가 쳐지는 잔인한 방법으로 살인을 저질렀던 그가, 어떻게 그처럼 멋있게 인생을 정리할 수 있었을까요? 말할 것 없이 그는 하나님의 진리를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무지개와 십자가가 뜻하는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을 믿고 받아들 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만일 박철웅씨가 끝까지 예수를 몰랐었다고 합시다. 정말 그는 비참한 최후를 마치고 말았을 것입니다. 전도하는 일은 물론이요, 안구와 신장을 바치지도 않았을 것이고, 마지막 죽음에 발악을 하며 맞이했을 것입니다. 비록 아주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는 아름다운 삶을 살았습니다. 자기가 원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생애를 지냈습니다. 자기 자신도 만족하고 다른 사람에게도 기쁨을 주는 생활을 했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박철웅이 보다 슬픈 인생을 사는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아니 박철웅이는 죽기 전 얼마 동안은 아주 멋있는 생활을 했습니다. 하나님을 알기 이전 박철웅이 처럼, 세상을 미워하고 사람들을 원망하며 불평과 불만 속에서 사는 사람들이 아주 많을 것입니다. 죄를 지었으면서도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오히려 세상 탓을 하면서 더 큰 죄를 지을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사랑은 물론이요, 그의 존재까지도 믿지 않고 제 멋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의 죽으심을 우습게 여길 뿐만 아니라, 그가 왜 죽었는지 그 이유조차 알려고 하지 않을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무지개를 보고서도 아무런 느낌을 갖지 못하고, 교회의 십자가를 보고서도 무감각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무지개와 십자가의 의미를 압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믿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새로운 인생으로 가꾸어 주실 것을 믿습니다.




  2. 하나님은 용서와 사랑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시편 42:8) 에, “낮에는 여호와께서 그 사랑을 베푸시고, 밤에는 그 입술로 찬양을 하고 기도를 하겠습니다” 라고 시편기자는 노래했습니다. (고후 13:11)에도, “사랑과 평화의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계셔 주실 것입니다” 라고, 바울이 말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장로 요한도 (요일4:12) 에서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 고 했습니다. (요 16:27) 에서도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나를 사랑하고 또 나를 하나님께로부터 온 줄을 믿은 고로 아버지 하나님께서 친히 너희를 사랑하심이니라” 고 했습니다. 이쯤이면, 하나님께서 사랑의 하나님이심을 충분히 입증되었습니다. 이러한 사랑의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부르셨습니다. 왜냐하면, 저와 여러분은 지난 죄를 용서하시고 새로운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지나간 죄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살지 못함을 아시고, 그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이 땅에 예수님을 보내 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으로 하여금 복음을 전파케 하시고 그 말씀 따라 사셨는데, 바로 그 삶이 십자가의 길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전파하신 복음의 내용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가, 때가 다 되어 하나님나라가 다가왔다는 말씀이고, 둘째가 회개하고 이 복음을 믿으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당신의 백성들이 서로 사랑하며 사는 것입니다. 죄는 욕심에서 나오고, 욕심은 미워하는 마음을 갖게 합니다. 그러나 사랑은 자기희생에서 나옵니다. 십자가는 자기 희생과 사랑을 말합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자기 희생과 사랑을 통한 구원의 도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십자가 위에서




  3. 우리를 위하여 죽으신 예수그리스도의 은혜를 깨닫고, 그 은혜를 덧입어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살아갑시다.




  우리가 할 일은,

  첫째는 구원의 도리인 무지개와 십자가의 뜻을 바로 이해하고, 그 길을 열어 놓으신 예수의 은혜를 깨닫는 일입니다. 둘째는 예수님의 은혜로 누리게 된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깨끗한 양심을 지켜 사는 일입니다. 그리고 셋째는 십자가의 도리를 몸으로 실천함으로써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사는 일입니다.

  첫째로 할 일인 십자가의 뜻과 예수의 은혜를 깨닫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수밖에 없습니다. 자꾸 듣고 기도할 때에 주의 성령이 임하고, 주의 성령이 함께 하면 모든 진리가 조금씩 풀려 나갑니다. 어느 때는 어둠 속에 밝은빛이 비치듯이 환하게 진리를 깨닫게 되는 때도 있습니다. 말씀을 사모하고 가까이 하게되면, 누구든지 쉽게 깨달을 수 있는 것이 기독교진리 입니다.

  둘째로 할 일인, 깨끗한 양심을 지켜 사는 일은 하나님이 이 세상의 주관자이심을 믿어야 할 것입니다. 아무리 악이 번성하여도 최후의 승리는 하나님 편에 있음을 믿게 되면 양심을 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이 믿는 믿음으로 세례를 받게 되는데, 세례란 깨끗한 양심으로 살겠다고 하나님께 서약하는 것임을 (벧전 3:21) 에서 베드로가 말하고 있습니다.

  셋째로 우리는 십자가의 도리를 몸으로 실천하며 살아야 합니다. 자기 희생을 통한 사랑만이 허무한 삶을 극복하고 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입니다. 이기심은 자기를 패망의 길로 인도하고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게 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심으로써 하나님께 순종하고 또한 그의 뜻을 이루어 드렸습니다. 자기 혼자서만 잘 살겠다고 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하나님을 거역하고 자기도 망치는 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지금 사순절 첫 번째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의 고난의 의미를 생각하고 그 은혜를 깨닫는 절기입니다. 지금까지 저는 십자가를 통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그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복된 길을 가자고 말씀드렸습니다. 여러분 모두 하나님의 사랑을 듬뿍 받아 보람과 기쁨을 누리는 귀한 인생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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