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를 짊으로 구원을 이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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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를 짊으로 구원을 이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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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양식 91-11호                                                    1991.03.17.

성서일과 ; 렘31:31-34, 히5:7-10, 요12:20-33.

제목 ; 십자가를 짊으로 구원을 이루라




  “그 마음에 내 법을 새겨 주어,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예레미야 31장 33절에 있는 말씀입니다. 지금까지 번번히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굳게 하나님과 약속한 계약을 지키지 아니한 이스라엘 백성입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다시 새로운 계약을 제시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다”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알다가도 모를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그만큼 속았으면 됐지, 또 다시 하나님과의 약속을 저버리고 말 이스라엘 백성에게 기대를 걸고 있으니 말입니다. 34절의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마음을 모르는 사람이 없으리라”고 예언자 예레미야의 입을 빌려 말하고 있습니다.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고 알아줄 수만 있다면 사랑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이란, 서로 믿고 이해할 수 있을 때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반대로, 이해할 수 없을 때에는 불신이 생기고, 불신을 하게 되면 불순종을 낳게 됩니다. 그러니까 예레미야 31장 34절의 말씀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고 순종하리라는 기대를 갖고 하시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동안 수없이 하나님을 배신하고 속을 썩인 이스라엘 백성이건만, 하나님은 그들을 끝까지 버리지 않으시고 언젠가는 돌아오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계십니다. 차라리 고목에 꽃이 핏기를 기다리는 게 낫지, 그 못된 이스라엘 백성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하나님의 모습이 딱해 보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당신의 사랑을 알아주기를 원하셨습니다. 마침내 하나님은 당신의 사랑이 얼마나 지극한 가를 보여주기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것입니다. 당신의 몸을 던져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코자 함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그 하나님의 사랑을 거부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이러한 이스라엘 백성을 보고 뭐라고 하겠습니까? 어지간히도 고집이 센 사람들이라고 말할 수 있을런지요? 아니면, 앞뒤가 꽉 막힌 벽창호라고 말할 수 있겠는지요?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 보고만 욕할 수 없는 우리들입니다. 십자가의 이치가 너무나 분명하고 확실하건만, 이 진리를 외면하고 자꾸만 이상한 것을 붙들고 신음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십자가는 우리 인생의 근본 문제를 풀 수 있는 열쇠라고 했습니다. 십자가는 종래 사람을 죽이는 무서운 형틀이었지만, 예수님이 그 십자가를 짊으로써 사람을 살리는 구원의 열쇠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정치가들도 나라를 살리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겠다고 말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누구든지 지게 되면 자신도 살고 다른 사람도 살릴 수 있는 신비한 능력을 지니게 된 것입니다. 기독교가 분명히 이 세상을 살리고 일으키는 구원의 종교라고 한다면, 십자가는 바로 이 기독교의 핵심적인 진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십자가를 제외하면 기독교는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십자가가 무엇이란 말입니까? 십자가가 결코 자랑거리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십자가만을 자랑해야 합니다. 이 말은 십자가가 세상 사람들이 무슨 물건 자랑하듯이 내세울 것은 아니로되, 우리 크리스챤이 부득불 그 무엇을 잘아하려 한다면 십자가 뿐이라는 말입니다. 바꿔 말하면, 십자가는 뽐내기 위하여 자랑거리고 내 놓을 성질의 것이 아니라, “나 아무개는 죽고 십자가의 예수님만이 내 인생의 전부입니다” 라고 하는 고백으로 십자가를 드러낼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어떤 사람의 지위를 높여주고 기분을 우쭐하게 해주는 자랑거리가 아니라, 인류를 위해 돌아가신 예수님의 죽음을 의미하고 그 예수의 뒤를 따라 죽는 것이 구원의 길임을 보여주는 상징입니다.

  김익두 목사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가 예수를 믿기 이전에는 망나니로 소문이 났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고 새 사람이 된 것입니다. 하루는 “김익두, 몇 월 며칠 죽어서 장사 지냅니다” 라는 부고장을 돌렸습니다. 부고장을 받아든 많은 사람들은 “에이 그놈! 못된 짓만 골라서 하더니 잘 죽었다”고 좋아했습니다. 그러나 그 부고장은 사실상 김익두가 과거의 못된 자기는 죽고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서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났음을 보여주기 위하여 돌린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그 부고가 사실인 줄 알고 있다가, 어느 주일에 교회에 갔다가 돌아오는 김익두를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사람들은 말하기를, “아이구! 김익두가 죽었다더니 하두 모질어서 귀신이 살아왔나? 여보시오! 당신 도대체 어떻게 된 거요?” 하고 물었습니다. 김익두는 겸손히 대답했습니다. “옛날의 못된 깡패 김익두는 죽고, 저는 예수를 믿어 새롭게 변화된 김익두 입니다” 라고 말입니다.

  이 예화가 십자가의 의미를 분명히 말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망나니로 살아가던 김익두가 십자가에 죽어 다시 태어남으로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 그래서 세상 사람을 괴롭히는 존재가 아니라 세상을 이롭게 하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이처럼 십자가는 모질고 거친 심령을 변화시켜 겸손하고 온유한 마음을 지니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셨지만 십자가를 짊으로써 복종을 배우셨다고 (히5:8)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는 일은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아무 잘못이나 이유가 없이 예수님은 십자가를 져야 했습니다. “왜 내가 억울하게 죽어야만 합니까?” 하고 하나님께 대들만도 한데, 예수님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했습니다. 그동안 이스라엘 백성은 자기들이 잘못을 하고서도 하나님을 따르지 않는 이유가 많았습니다. 욕심 때문에 하나님을 배신하고서도,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핑계가 여러 가지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정말 억울하게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면서도 원망 한마디 없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은 좋으신 분이고, 그 분이 하시는 일은 언제나 올바르시다는 것을 예수님은 이해하고 믿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어떠합니까?

  예수님처럼 하나님을 믿고 의지합니까? 정말 하나님은 살아 계신 분이고,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좋은 일만 하신다라고 믿고 있습니까? (시편 89:34)에서 말하고 있는 “맺은 계약, 틀림없이 지키고 내 입으로 말한 것, 변경하지 않으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습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우리 곁에 계셔셔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고 우리에게 복 주시려고 힘쓰고 있는 분이심을 우리는 믿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는 아직도




  1. 십자가를 지려 하지 않음으로써 해서 구원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분들이 있습니다.




  찬송가 365장에, “내 주의 지신 십자가 우리는 안 질까? 뉘게나 있는 십자가 내게도 있도다. 내 몫에 태인 십자가 늘 지고 가리라. 그 면류관을 쓰려고 저 천국 가겠네” 라고 했습니다.

  이 찬송은 누구에게나 십자가는 있다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구레네 시몬처럼 억지로 지는 십자가도 있을 것입니다. 어떤 분은 아주 가벼운 십자가인데도 불구하고 그것조차 지기 싫어하는가 하면, 또 어떤 분은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은 무거운 십자가를 기쁜 마음으로 지고 가는 분도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생각하고자 하는 십자가는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입니다. 제일 먼저 생각할 수 있는 예수님의 십자가는 순종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성취하셨습니다. (히 5:9)에서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심으로써 그를 따르는 모든 사람도 구원을 얻는 근원이 되셨다”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곧,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 말씀대로 살면 손해만 보지 별 이익이 되지 않는다고 하면서 자기 생각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교회를 다녀도 적당히 믿어야지, 하나님 말씀대로 살면 굶어 죽기 십상이라고 말합니다. 이 말이 맞는 말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 잘 믿어서 굶어 죽은 사람은 결단코 없습니다. 오히려 예수 잘 믿으면 더욱 부지런해져서 인생을 승리를 이끈 사례가 아주 많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살면, 잠시는 손해를 보는 것 같으나 영원한 복을 누리게 된다는 사실일 믿어야 합니다.

  두 번째로 생각할 수 있는 예수님의 십자가는 희생입니다. (요 12:24)에,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아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말씀을 하시고,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누구든지 자기목숨을 아끼면 잃을 것이며, 자기 목숨을 아끼지 않으면 영원히 살게 된다는 것이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우리를 향하여, “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라 오너라”고 했습니다. 곧 예수를 믿고 따른다고 한다면, 예수님처럼 십자가를 져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죽는다고 하는 것은 세상을 포기한다는 말입니다. 세상에의 명예나 권력, 재물에 대한 욕심을 버리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야 자유를 얻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세상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세상에서 채우지 못한 욕심을 교회에서 성취하려고 교회를 다니는 분들도 있는 것 같습니다. 바울은 예수를 믿은 이후, 세상의 자랑거리를 다 버렸습니다. 그리고 예수를 전하다가 매를 맞고 온갖 고통을 다 겪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예수 때문에 욕먹는 것을 왜 그렇게 싫어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심지어는 예수 잘 믿도록 권면하는 말을 간섭이라고 말하면서 부담스러워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얻지 못하는 것을 교회에서 찾았습니다. 금 은 보화를 주고도 살 수 없는 참 평화를 예수를 믿음으로 누리게 되었습니다. 세상의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영생에 대한 소망을 십자가를 통하여 얻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이 귀한 것을 소홀히 하고 있는 것입니까? 십자가를 지기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그저 편하고 쉽게 살려는 생각으로 꽉 차 있습니다. 누구한테도 간섭받지 아니하고 자기 멋대로 살고 싶어 하는 현대판 히피족들이 교회 안에도 있으니,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십자가를 통한 거듭나는 고통이 없이는 기독교의 참 진리를 깨달을 수 없습니다. 내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 순종하는 아픔이 없이는 부활의 기쁨을 누릴 수 없습니다. 세상 재미와 욕심을 버리는 충격을 겪지 않으면 하나님의 아름다운 세계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오늘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부르시던 안타까워하는 그 음성으로 다시 한 번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2. 하나님의 법을 마음에 새겨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법은 십자가입니다. 613개 율법을 온전케 하는 것이 십자가의 사랑입니다. 아무리 좋은 법일지라도 내가 지키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 법을 잘 지키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법 정신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법을 주신 것은 우리를 괴롭히고 귀찮게 하려고 주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우리가 그 법을 지킴으로써 복되게 살게 하시려고 제정 하셨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이 법의 알맹이는 다 빼버리고 껍데기만 지키다보니, 사람을 이롭게 하는 법이 아니라 해롭게 하는 법이 되고 만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율법을 온전케 하는 예수의 십자가를 주셨습니다. 십자가가 예수를 안 믿는 사람들에게는 한갖 고통거리에 불과하지만, 예수를 믿는 우리에게는 구원이 됩니다. 그냥 쓸데없이 당하는 고통이 아니라, 모든 고통을 통하여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어쩌다 하나님은 편안한 잠자리에서도 말씀하시는 경우도 있기는 합니다만, 대부분의 경우는 십자가를 지는 고통 중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분명히 들을 수가 있습니다.

  이때 들을 수 있는 하나님의 음성은 무엇입니까? 첫째로, 여호와는 나의 하나님이 되시고 나는 그의 자녀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이상, 우리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보호와 지원을 받게 됩니다. 어떤 악의 세력도 우리를 넘어뜨리지 못합니다. 어떤 일이든지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 성취할 수 있습니다. 둘째로, 하나님은 우리의 잘못을 기억치 아니하고 그 죄를 용서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이제는 과거의 잘못에 사로잡혀 괴로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늘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열심히 하면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백성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만을 사랑하는 사람이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만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면, 마치 어린아이가 열심히 엄마 젖을 찾는 거와 같아서, 하나님의 사랑을 듬뿍 받게 될 것입니다.




  3. 예수를 따름으로써 영원한 생명의 길을 갑시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최고의 목적은 창조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려면, 우리가 구원받아 살아야 합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지으신 목적대로 인간다운 삶을 사는 것이 구원입니다. 이 구원을 이루려면 예수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를 따라야 합니다. 오늘 말씀 드린 예수의 십자가는 순종하고 희생이라고 말했습니다.

  결국 인간다운 삶을 살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면, 하나님의 진리를 따라 사는 길밖에 없습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살면 금방 소득이 되어 돌아오지를 않습니다. 오랫동안 기도하면서 기다려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루어지는 것이 십자가의 길입니다. 그 소득이라는 것이 눈에 보이는 것보다는 눈에 보이지 않는 복을 엄청나게 누리고 있으면서도 깨닫지 못하고 사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십자가를 지게 되면, 실상 세상적으로는 손해를 보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복을 누리게 된다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복을 귀중하게 여기기보다는, 눈에 보이는 세상의 이익을 더 열심히 찾는다는데, 오늘 우리 교회의 문제점입니다. 우리가 정말 교회를 찾게 된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결코 먹고 입는 것 때문이 아니었지 않습니까? 우리가 찾는 것은 우리의 마음을 시원케 해 주는 영생수입니다. 그렇다면 마음이 눈에 보이는 것입니까? 영생수가 손으로 쥘 수 있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왜 그런데 눈에 보이는 것을 더 귀중히 여기는 것입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십자가 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십자가가 세상 사람들에게는 아주 어리석은 것이지만, 우리 믿는 성도들에게는 인생을 새롭게 하고 의미가 있게 해 주는 구원의 십자가입니다. 나 하나가 십자가를 잘 지면 많은 사람을 구원케 하는 능력이 됩니다. 여러분 모두, 이 십자가를 달게 짊으로써 여러분 자신과 가정, 그리고 이 사회를 구원하는 십자가의 군사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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