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가운데 살고 있으면

홈 > 기독자료 > 영혼의양식
영혼의양식

빛 가운데 살고 있으면

기독정보닷컴 0 27 0
영혼의 양식 91-14호                                                    1991.04.07.

성서일과 ; 행4:32-35, 요일1:1-2:2, 요20:19-31.

제목 ; 빛 가운데 살고 있으면




  충북 음성에 있는 “꽃동네”라고 하는 공동체가 이루어진 것은, 거지생활을 하고 있던 최복동 할아버지로 인해서입니다. 이 할아버지가 집집마다 다니면서 구걸하여 얻어먹는 신세였지만, 활동이 자유하지 못하여 자기보다 더 어려운 형편에 있는 몇 사람을 먹여 살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연히 이 사실을 안 오웅진 신부가 감동이 되어서 만들게 된 것이 바로 오늘의 꽃동네인 것입니다. 구걸할 능력만 있어도 이웃을 도와가며 살아갈 수 있음을 보여준 최복동 할아버지로 인하여, 오늘에는 수많은 생활 무능력자들이 꽃동네에 모여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그들에게 용돈으로 지급된 돈을 일부 모아서 이라크 피난민들을 돕는데 써달라고 700만원이 넘는 돈을 적십자사에 기탁했다고 합니다. 멀쩡한 육신을 가지고 있는 우리로 하여금 한없는 부끄러움을 갖게 하는 이야기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뵙게 된 제자들이, 이제는 어떤 핍박과 어려움이 있더라도 꺾이지를 아니하고 담대함과 열심을 가지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사실 그들은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행 4:29)에, “주님, 지금 적들의 위협을 받고 있는 우리를 살피시고 우리로 하여금 조금도 굴하지 않고 주님의 말씀을 담대히 전할 수 있게 하여 주십시오” 하고 기도를 했던 것입니다. 열심히 기도하고 있던 그들에게 성령이 임했습니다.

  성령으로 충만하게 된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히 전했을 뿐만 아니라, 이때부터 그들은 공동체를 이루어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다시 정리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세상 욕심을 가지고 예수를 따르던 제자들이 예수님이 돌아가시자 비겁함과 두려움 속에서 살다가, 부활하신 주님을 뵈었을 때에 그들의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바로 깨닫게 된 제자들이 용기를 가지고 주님의 말씀을 전하며 열심히 기도를 하게 되었을 때에 성령 충만함을 받게 되었고, 나아가서 공동체를 이루어 살게 된 것입니다.

  공동체란 커다란 가정으로 이해를 하면 됩니다. 한 가정안에서는 네것 내것을 구분하지 않습니다. 혹 소유를 밝히더라도, 돈을 주고 거래를 하지 않습니다. 형이 쓰던 것을 동생에게 그냥 주지, 돈 받고 주는 경우란 없습니다. 또 어느 가정에서 돈을 받고 자녀들에게 밥을 줍니까? 한 식구끼리는 모든 것을 돈으로 따지지를 않고 필요에 따라 사용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가정을 확대한 것이 공동체입니다. 교회가 바로 하나의 공동체가 되는 것입니다. 주님의 피로 맺어진 한 형제 자매들이 모여 한마음 한뜻을 이루어 살아가는 단체가 교회입니다. (행 4:32-37)은 이러한 초대 공동체의 모습을 잘 그려놓고 있습니다. 32절의 말씀에, “그 많은 성도들이 다 한마음 한뜻이 되어 아무도 자기 소유를 자기것이라고 하지 않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사용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두 가지 사실을 밝혀주고 있습니다. 하나는 많은 성도들이 하나가 되었다는 사실이고, 그리고 또 하나는 그들이 모든 것을 공동소유 했다는 점입니다. 성령이 충만하게 되니 많은 사람들이 하나가 되었습니다. 성령이 충만하게 되었다는 말은, 개인적인 욕심이 없어 하나님의 뜻대로 살겠다는 마음으로 가득했다는 말입니다. 개인적인 욕심이 조금이라도 있게 되면 저마다 다른 생각을 갖게 되지만, 모두 하나님의 뜻을 가지게 되면 자연히 마음과 생각은 하나가 됩니다.

  성령이 충만하게 되면 힘이 생깁니다. 좋은 일을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왠지 모를 새 힘이 솟구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한 새 힘이 하나 둘이 아니고 많은 사람이 하나되니, 놀라운 기적을 일으키게 되었습니다. 그 위에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 하니, 초대 교회는 그야말로 천국을 이루어 살게 되었습니다. 그 안에는 가난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고, (행 4:34)은 말하고 있습니다. 결국 이렇게 성도들이 하나되어 공동체를 이루게 된 것은, 그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이기심과 물욕을 극복하고 이웃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가짐으로써 가능했던 것입니다.

  최복동 할아버지가 욕심을 부려보았자 부자는 될 수 없었겠지만, 그래도 그 정도의 부지런함이면 나름대로 돈을 모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 힘껏 구걸을 해서 몸을 움직이지 못하여 굶어 죽어가고 있는 사람들을 구제했습니다. 만일 최복동 할아버지의 마음속에 이웃을 생각하는 마음이 없었다고 한다면, 그는 죽을 때까지 불구인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면서 불행의 나날을 보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자기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마음에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이 되살아나게 하는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자신의 이익추구에만 정신이 없어서 자기의 젓을 많이 만들어 보려는 사람들에게는 예수님의 부활역사가 일어날 수가 없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님들이 비록 세상욕심 때문에 처음에는 예수님을 멀리 했었지만, 그들의 마음속에는 여호와 하나님 신앙이 있었기 때문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뵌 후 주님의 말씀을 쉽게 깨닫고 그처럼 열심히 공동체 생활에 참여하게 된 것입니다. 그들이 재산을 팔아 내놓을 수 있었던 것은 억지가 아니었습니다. 공산주의 국가에서 하는 것처럼 강제로 재산을 내놓은 것이 아닙니다. 성령의 감동을 받아 스스로 마음의 결정을 하고 그렇게 한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의 교회 모습은 어떠합니까? 그래도 많은 성도들이 주님의 말씀따라 자기의 것을 내놓아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어려운 형편 가운데서도 열심히 헌금을 하고 이웃을 돕는 일에 마음을 쓰고 있습니다. 어떤 분은 도움을 받아야 할 입장인데도, 자신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보면 참지를 못하고 있는 힘을 다하여 도와주는 것을 볼 때에 많은 감동을 받습니다. 어떤 집사님은 미친 딸과 단 둘이 살고 있는 할아버지가 너무 불쌍하다고 하면서 어떻게 해서든지 예수 믿게 하려고 애쓰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또 어떤 집사님은 그 바쁜 중에도, 믿는 식구들 중에서 어려운 형편에 있는 성도들을 도와주려고 이리저리 힘쓰는 것을 종종 봅니다. 또 어떤 성도님은 교회에 나온지 얼마 안되지만, 믿음대로 살아보려고 마음을 기울이던 중에 이웃에 있는 믿음의 식구를 이모저모로 보살펴 주고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 주변에서는 믿음을 가졌노라고 하면서도




  1.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뵙지 못하여 두려움과 의심에 사로잡힌 채, 기쁨이 없는 생활을 하고 있는 분들이 많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뵙게 되면, 아주 낮은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신 예수님의 참마음을 이해하게 됩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당신의 모든 것을 바쳐 우리를 사랑하신 그 사랑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주님을 뵙지 못하면, 세상 욕심이 마음에 가득해서 이웃을 사랑할 수가 없습니다. 예수를 믿어도 욕심이 많으면 믿음의 식구들과 참된 사귐을 나눌 수가 없습니다.

  믿음의 식구들과 마음까지 주고 받는 아름다운 교제를 하려면, 내 것에 대한 애착심을 버려야 합니다. 내 것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못하면 믿음의 교제를 할 수가 없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어떻게 하나님 나라에 세상 물건을 가지고 갈 수가 있겠습니까? 믿음은 우리에게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도록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지나 주에 말씀드렸듯이, 육체적인 것과 영적인 것 중에 하나를 택해야 합니다. 동시에 두 가지를 다 택할 수는 없습니다.

  성령을 모시고 사는 일이 복이 되는 줄을 확신한다면, 육체적인 것은 버려야 합니다. 육체적인 것을 지닌 채, 성령을 모셔들일 수는 없습니다. 성령과 함께 살려면, 마음에 있는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욕심을 그대로 지닌 채 살게 되면, 욕심은 부패하는 성질이 있기 때문에, 사람을 썩게하고 끝내는 사망길로 이끌어 들입니다. 그러나 성령은 생명을 지니고 있어서 성령과 함께 하면 새 힘이 솟아나고 영원한 생명의 길로 인도합니다. 믿습니까?

  세상욕심을 지니고 살면 죄를 짓게 되어있습니다. 말씀을 전하는 저 자신도 세상욕심을 완전히 버리지 못하여 종종 죄를 짓고 있음을 솔직히 고백합니다. 욕심은 죄를 낳습니다. 그리고 그 죄는 점점 커져서 죽음을 가져옵니다. 그러니까 그 죄가 더 커지기 전에 하나님 앞에 내놓아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 죄를 성령의 불로 태워 버립니다. 그런데 제가 말씀드리려고 하는 것은, 죄를 짓게 되면 어떤 상태에 빠지는가 하는 점입니다. 그것은 두려움과 근심걱정입니다.

  베드로가 세상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예수를 따라다니다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예수를 배반하는 죄를 짓고 말았습니다. 그리고서는 어떤 집에서 문을 모두 닫아 걸고 숨어있었습니다. (요 20:19)에 기록된 것을 보니, 무서워서 그렇게 했다고 했습니다. 욕심에 사로잡히면 근심걱정이 떠나지를 않습니다. 왜냐하면, 욕심은 한이 없어서 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하여 걱정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욕심은 죄를 짓게 하므로, 그 죄에 따라 걱정을 하게 됩니다.

  베드로를 비롯한 예수의 제자들이 십자가 이전에는 욕심 때문에 예수님과 참된 사귐을 나눌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마음을 알았지만, 제자들은 예수님의 마음을 잘 알지 못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뵙지 못하고 세상 욕심을 버리지 못하면, 하나님과 참된 교제를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성도들과도 진정한 사귐을 나눌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교회의 성도라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세상욕심을 지닌 채 예수를 따라다닌 제자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되자 그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을 뵌 다음부터는 핍박이 심하면 심할수록 그들은 더욱 똘똘 뭉쳤습니다.

  오늘 우리 성도님들이 하나님과 참된 교제가 없다고 한다면, 조그만 시련이 닥쳐도 뿔뿔이 흩어지고 말 것입니다. 성도들간에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사귀는 교제가 없었다고 한다면, 별스럽지 않은 일에도 쉽게 등지고 싸우게 될 것입니다. 참된 사귐이 있는 성도라면, 개인의 일에 얽매이기보다는 공동체적인 일을 우선으로 할 것입니다. 지난 부활절 한마음식탁을 열었을 때에는, 여선교회 회원들이 개인의 일보다는 공동체를 위하여 마음을 다쓴 결과, 여러 성도님들이 맛있고 즐겁게 식사를 하게 된 줄로 압니다.

  교회의 참된 의미는 바로 이런 데 있습니다. 우리 교회의 여러 성도님들이 이처럼 마음을 합하고 힘을 합하면, 무슨 일이든지 할 수가 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자기 것을 자기 것이라 하지 않고 공동으로 사용했을 때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던 것처럼, 오늘 우리교회도 성도님들이 개인적인 일보다는 우리모두의 일에 힘을 합하면 우리 자신도 놀라는 일이 생길 것입니다. 교회의 일이 잘되고 즐겁게 되면 가정의 일도 잘 풀리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여러 사람이 힘을 모아 하는 일을 잘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개인적인 일은 더 잘 할 수 있을 테니 말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좋은 일을 하자고 일껏 제한을 해놓고 막상 그 일을 하게 될 때에는 뒤로 쏙 빠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큰 소리 제일 많이 치던 베드로, 그래서 그런지 실수도 제일 많이 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실수가 많습니다. 의심도 많고 두려움도 많습니다. 주님 뜻대로 살기보다는 내 생각과 내 고집대로 살려다가 어려움도 많이 겪습니다. 이처럼 허물 많고 죄 많은 우리들에게 하나님은 오셔서




  2. 평화를 선포하시고 이웃과 화해를 이루어 살라는 새로운 사명을 주십니다.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충남 광천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교감 선생님댁에서 식사를 해결하고 있을 때입니다. 사모님이 식사를 정성껏 준비해서 여럿이 둘러 앉아 먹었습니다. 그런데 그만 제가 갑자기 재채기를 하는 바람에 입안에 있던 음식이 공중분해하여 밥상에 있던 모든 음식에 골고루 퍼졌습니다. 저는 너무나 당황하여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교감선생님과 사모님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식사를 계속하는 것이었습니다. 저 같으면 금방 얼굴색이 변하면서 수저를 놓고 말았을 터인데, 그들은 싫은 표정도 하지 않았습니다. 베드로를 비롯한 여러 제자들, 하나같이 그들은 모두 스승인 예수를 버리고 도망친 사람들입니다. 정말 부끄럽고 낯 뜨거운 잘못을 한 그들입니다. 연약한 여자들은 그래도 예수님 시신에 기름을 바르기 위하여 무덤을 찾았지만, 여러 다른 제자들은 무서워 문을 잠그고 떨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하신 말씀은 “안심하게!” 입니다. 그것도 두 번씩이나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같으면 어떠했을까요? 조금만 자신에게 기분 나쁘게 해도 화를 버럭 내거나 불평을 하는 우리가 아닙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자기를 모른다고 세 번씩이나 부인한 베드로를 비롯하여 의심하는 도마에게까지 결코 야단치지 않으시고 너그럽게 용서하시면서 평안을 빌고 있으니, 어찌 우리가 감히 예수님을 선생님이라 부를 자격이 있겠습니까?

  아무튼 우리는 자격이 있어서 예수의 제자가 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안에서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하는 길은, 단 하나 그의 말씀에 따르는 일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부탁하는 말씀은 무엇입니까? 성령을 받아, 서로의 잘못을 용서해 주고 하나되는 일입니다. (요 20:22-23)의 말씀을 보니, 평안을 두 번씩이나 빌어 주신 예수님께서는 “성령을 받아라. 누구의 죄든지 너희가 용서해 주면 그들의 죄는 용서받을 것이고 용서해 주지 않으면 용서받지 못한 채 남아 있을 것이다” 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도마에게 하신 말씀은,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 는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의 말씀은 성령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령을 받아야, 용서도 할 수도 있고 의심도 버릴 수 있으며, 나아가서 부활의 주님의 증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령을 받으려면 욕심을 버려야 한다고 앞서 말씀드렸습니다. 욕심 때문에, 서로 싸우고 다투게 되는 것이고 용서도 못하게 되는 것이며 의심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욕심을 버리고 성령을 받아야, 교회 안에서 하나가 되어 서로 참된 형제 자매로서 이웃에게까지 사랑의 관심을 나타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이후, 예수님이 하신 일은 별로 없습니다. 그저 제자들의 잘못을 용서해 주고 평안을 빌어 주었을 뿐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전에 한 일에 비교해 보면 너무나 미미했습니다. 무슨 기적이나 이적을 행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제자들은 담대히 부활의 주님을 증거하고 함께 모여 교회를 이루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필요한 것은 무슨 기적이 아닙니다. 많은 돈이 아닙니다. 그럴싸한 교회 건물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도 아닙니다.


  3. 서로 용서하고 사랑하며 이해할 수 있는 나눔의 공동체, 예수님의 부활을 몸으로 증거하는 성도들이 필요합니다.




  초대교회처럼 참된 교회를 이루어 가려면 우리의 신앙을 바로 가져야 합니다. 개인적이고 이기적인 마음을 버려야 합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주일을 지킨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여러분의 신앙도 살아남고 교회도 건전하게 발전할 수가 있습니다. 정말 이 사회에 빛을 드러낼 수 있는 교회가 되려면, 개인적인 욕심과 아집을 버려야 합니다. 베드로처럼 개인적인 욕망을 버려야, 죽음으로써 예수를 증거할 수가 있습니다.

  요한일서의 말씀을 보면,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랑을 가지고 서로 교제하며 살아가는 것을 “기독교적인 사귐” 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사귐을 가지려면 우리 자신이 빛 가운에 있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세상 욕심이 없이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깨끗하게 살아가려고 애 쓸 때, 주 안에서 우리 서로가 참된 사귐을 가질 수 있다는 말입니다.

  사귐을 갖기 위해서는 우선 서로 미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용서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서로의 인생 목적이 같다는 것을 확인해야 합니다. 인생 목적이 같으면 신앙 동지가 되는 것입니다. 신앙 동지가 되면 개인적인 행동을 되도록 삼가야 합니다. 여러분과 저는 그리스도 안에서 신앙 동지가 되었습니다. 다른 목적이 있어서 교회에 나온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보람있는 인생을 살수가 있을까 하고 궁리를 하던 중에, 교회에 나왔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인생의 최고 목적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살아야 참 행복을 누릴 수 있음을 믿습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만 살아야 우리의 모든 문제가 풀리고 영원한 생명의 길을 가게 된다는 것을 확실히 믿습니다. (요일 1:7)에, “우리가 빛 가운데 살고 있으면 우리는 서로 친교를 나누게 되고, 예수님의 피가 우리 죄를 씻어 줍니다”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빛 가운데 살아 부활의 주를 증거하는 복된 인생 길을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

0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