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참 모습을 뵙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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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참 모습을 뵙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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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양식 91-16호                                            1991.01.14.

성서일과 ; 행3:12-19, 요일3:1-7, 눅24:35-48.

제목 ; 하나님의 참 모습을 뵙기까지




오래 전에 눈이 한 번 말씀드린 적이 있는 이야기를 다시 한 번 소개해 드릴까 합니다.  저의 초등학교 1학년 담임선생님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 어릴적에 뵈었던 선생님의 모습은 아직도 뇌리에 선명합니다.  밝고 따뜻하며 다정한 선생님이었습니다.  한 번도 찡그린 적이 없어, 항상 웃는 모습으로 우리를 대하였습니다.  제일 앞자리 가운데 앉았던 저는 선생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았습니다.  별로 귀엽지도 않았을 텐데, 내 기억에는 선생님이 나를 때린다거나 야단친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선생님은 키가 크고 눈이 시원스럽게 생긴 여자분 이었습니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고등학교에 들어갈 때까지, 저는 선생님을 한 번 만나 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지냈습니다.  그래서 그 조그맣던 어린이가 이제는 자라서 의젓해진 나의 모습을 선생님에게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나 또한 선생님의 인자한 그 모습을 보고 싶었습니다.  어쩌면 선생님이 좋아서 공부에 대한 취미를 갖게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아, 그런데 그 선생님을 고등학교 1학년 때 길거리에서 우연히 뵙게 된 것입니다.  선생님은 물론 나를 알아볼 수 있었을 것입니다.  불행히 나 자신도 선생님을 분명하게 알아볼 수가 있었습니다.  서로 마주 보며 다가갔지만, 긴가민가하다가 지나쳐 버리고 말았습니다.  왜냐하면, 선생님의 모습이 너무나 변했기 때문입니다.  그 밝고 다정한 모습은 찾아 볼 수가 없었습니다.  두 여자아이를 양손에 붙잡고 가고 선생님의 얼굴에는 어둠이 짙은 그늘이 덮여 있었습니다.  옛날의 그 모습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었다고 한다면, 아무리 숫기 없는 나일지라도 달려가 “선생님!” 하고 불러 보았을 것입니다.  무엇이 선생님의 모습을 변하게, 더 밝고  했을까 하는 궁금증을 지닌 채, 그 후로 두 번 다시 뵐 수가 없었습니다.

오늘 여러분과 함께 읽은 요한일서 3장이라고 2절의 말씀을 보면, 「장차 우리는 주님의 참 모습을 뵙게 될 것」이라고 기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주님의 참 모습을 뵙게 되는 날, 그때 우리는 하나님과 같은 사람이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참 모습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을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지금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더 밝고 깨끗해져 빛나는 얼굴을 지내신 주이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에 “주님을 만나 뵐 소망을 가진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께서 순결하게 하신 것처럼 자기 자신도 순결하게 합니다.” 라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사람들처럼 그 모습이 변하는 분이 아닙니다.  주님은 언제나 변함이 없으신 분입니다.  단지 지금은 우리의 눈에 눈꼽이 끼여서 잘 못볼 뿐이지, 우리가 주님을 만나 뵐 소망을 가지고 깨끗해지려는 노력을 계속한다면, 주님을 좀 더 밝히 뵐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의 제자들에게도 주님 생전에는 눈꼽이 끼어 있어서, 주님의 참 모습을 볼 수 없었습니다.  부활하신 다음에야 주님의 참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그들의 눈에서 욕망의 눈꼽이 떨어져 나갔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떨어지면서 다시 보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눅24:45)의 말씀을 보면, 주님께서는 제자들의 마음을 열어 주시고 말씀을 들려주어 깨닫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마음을 열어 주셨다고 하는 말씀은, 마음의 문을 열어 주셨다고 할 수 있겠고 마음의 귀나 눈을 열어 주셨다 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아무튼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을 수 있으려면 닫혀진 마음이 열려야 합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주님의 참 모습을 뵈려할 때에는 의심과 두려움을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정말 복받을 수 있을까 하고 의심이나 두려움을 갖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존재를 깨닫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고전 13장에서 말하기를, 지금은 어쩔 수 없이 거울에 비추어 보는 것처럼 희미하게 볼 수 밖에 없다고 합니다.  요즈음은 아주 좋은 거울들이 많아서 분명하게 얼굴을 비추어 볼 수 있지만, 바울이 살던 때만 해도 희미하게 밖에 볼 수 없었던가 봅니다.

어쨌든 지금은 우리가 하나님의 진리를 바로 깨닫지 못하여 믿음의 확신이 있지만, 머지 않아 얼굴을 맞대고 보는 것처럼 하나님을 완전하게 알게 되어 분명하게 믿게 되리라는 것이 바울의 주장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지난날에 저지른 잘못에 대하여 깊이 그 죄를 뉘우치고 회개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은 우리가 죄를 지으면서도 부끄러운 줄 모르고 살지만, 그 때가 되면 자신이 지은 죄로 말미암아 고개를 들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와는 사랑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우리를 향하여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마음을 편안히 갖게나! 지난 일은 다 잊어버리기로 했다네,  아, 이렇게 나에게 돌아온 것만으로도 얼마나 훌륭하고 기특한 일인가!” 하고 말입니다.

그런데 아직 불행하게도,




1. 죄로 인하여 마음이 닫혀있어 주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니 오히려 주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는 일을 서슴없이 행하고 있습니다.  과연 주님을 몰라보게 된 것이 누구 때문일까요?  주님의 모습이 변했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우리의 마음이 닫혀있는 까닭입니다.  주님의 제자들이 주님께서 부활하신 다음에 주님의 참모습을 뵙게 된 것은, 주님의 모습이 달라져서가 아니라 제자들의 마음의 눈이 열렸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의 말씀을 보면, 하나의 틀을 발견하게 됩니다.  14-15절의 말씀에, 사람들은 거룩하고 죄 없으시며 성령의 주가 되시는 주님을 배척하고 죽이나, 하나님은 그를 죽은자들 가운데서 살리셨다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주님을 죽였으나, 사실 죽은 것은 주님이 아니고 사람들이었습니다.  그것은 아무 죄도 없으신 주님을 죽이는 잘못을 저질렀기 때문입니다.  왜 사람들이 주님을 죽였는고 하니, 그것은 그들의 무지한 탓이었다고 17절에서 베드로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생명의 주가 되시고 주님을 몰랐다고 하는 것은 그들의 영적 삶이 죽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무지는 죄를 낳고 말았습니다.  우리 인간이 욕심 때문에 진리를 멀리하게 되면 죄를 짓게 됩니다.  죄의 결과는 죽음입니다.  주님을 죽인 사람들은 욕심 때문에 주님을 멀리하고 배척하다가, 끝내는 주님을 죽이고 말았습니다.  오늘도 사람들은 욕심 때문에 교회를 멀리하고 주님을 배척하다가, 끝내는 주님을 저버리고 마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말씀대로 살면, 돈을 빨리 많이 벌 수 있기에 주일을 범하고 하나님의 진리를 거슬러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리를 어기는 행위, 주님을 십자가에 못박는 짓입니다.  신앙을 가졌다고는 하나 욕심을 버리지 못하면 앉은뱅이 신앙이 되고 맙니다.  자기 발로는 걸어가지 못하니까, 다른 사람이 떠메다 옮겨 주어야 겨우 얻어먹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욕심을 버리지 못하는 신앙인들은 자기가 원해서 스스로 하나님의 진리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권면하고 부탁을 하니까 마지 못해서 억지로 주님의 길을 가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빨리 주님의 이름으로 고침을 받아 온전한 성도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베드로는 결국 하나님의 진리를 깨닫지 못하여 주님을 죽이는 잘못을 저질렀으니,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올 것을 사람들에게 부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깨끗이 씻어주실 것이라고 19절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알지 못하여 결국 죽이는 것과 같은 거짓된 생활을 벗어 던지고, 주를 믿고 따름으로 진실하게 살아가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온다는 말은, 잘못된 생각과 생활을 고쳐살 뿐만 아니라 죄를 멀리하고 주님을 가까이 하고 사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주를 가까이 함으로써 욕심을 물리치고 진리를 떠나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주님을 가까이 하고 진리를 떠나 살아가려면 나 혼자만의 힘으로는 안됩니다.  악의 세력은 그만큼 강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자신 당장 별 소득이 없고 진실을 택하기 보다는, 현실적으로 도움이 되고 이익이 되는 세상의 방법을 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선한 세력에서 힘을 모아 살아가야 합니다.

어쩌다가 우리는 큰 규모의 집회에 참석하게 되면, 큰 힘과 용기를 갖게 됩니다.  믿는 성도들이 이렇게 많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 믿음을 가졌음에 대하여 자부심을 갖게 됩니다.  이와 같이 믿음의 성도들이 함께 모여 서로를 격려하고 힘을 북돋아 주면서, 함께 주님을 찬양하고 하나님께 예배하는 모임이 바로 교회인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이익단체가 아니기 때문에, 주안에서 참된 사귐이 없으면 교회는 그 빛을 잃어버리게 되고 죽은 교회가 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교회답게 성장하려면, 부활하신 주님의 모습을 뵌 성도들이 진실한 교제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진실한 교제는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말할 것 없이 이기심과 개인주의를 버려야 합니다.  자기 이익에 눈이 멀어 진실을 저버리고 거짓을 일삼게 되면, 교회라고 하는 공동체는 여지없이 깨어지고 맙니다.  세상에서는 혹 자기 이익을 열심히 찾았다 할지라도, 교회 안에서 만큼은 진실을 추구하되 내 것을 내놓아 교회 전체의 이익을 도모해야 합니다.  교회에서 자기 것을 내놓아 타인을 위하고 훈련을 계속해야 세상에 나가서도 이웃을 위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만 알고 진리를 거슬러 삶으로써 죄를 짓고 죽었던 우리를 하나님은 살려 주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2. 우리에게 크신 사랑을 베푸시어 죄에서 구원하여 살려 주셨을 뿐만 아니라, 당신의 자녀 삼으시고 소망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요일 3:1)에, “하나님은 그 크신 사랑으로 우리를 자녀 삼으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한일서 기자는 1-2절 사이에서 세 번씩이나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그 큰 사랑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과연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이처럼 추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거듭 밝히고 있는 것은, 우리 성도들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우리가 누구인가를 깨닫게 하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다시 한 번 우리 자신에게 물어봅시다.  우리가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요일 3:8)에서 기자는 말하기를, “죄를 짓고 악마에게 속해 있다”라고 했습니다.  곧 죄를 짓는 사람들은 악마의 자녀라고 말입니다.  그러면서 10절에서는 “옳은 일을 하지 않거나 자기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자기 형제를 사랑하지 않거나 옳은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을 악마의 자녀라는 것입니다.  10절 끝에서도 “하나님의 자녀와 악마의 자식은 분명히 구별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과 저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제멋대로 살면서 거짓말을 밥먹듯이 하며 죄를 지었건만, 오히려 우리를 용서하셔서 자녀 삼으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승리의 역사입니다.  사람 같으면 자기를 대적하는 자를 넘어뜨리거나 죽임으로써 승리했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은 반대로 원수를 용서하심으로써 승리하는 방법을 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말로써만 용서하신 것이 아니라, 아예 자녀 삼으심으로써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소명을 주셨습니다.  용서하고 사랑하시어 자녀 삼으신 후에, 이제는 소망의 기쁨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어떤 소망입니까?  하나님과 같이 되리라는 소망입니다.  3장 2절에 기록되기를, “하나님께서 나타나시면 우리도 그와 같은 사람이 되리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세상 사람 누구든지 훌륭한 사람이라고 칭찬을 듣기 원합니다.  그것은 사람의 깊은 내면에 하나님 닮기를 원하는 본성이 있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하나님과 같이 거룩한 사람이 되리라는 소망을 가지고 산다면, 그보다 더 큰 기쁨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닮아 가는 것, 주님의 제자가 되어 주님을 닮아가는 것,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얼마나 하나님의 자녀라는 인식을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그리고 또 얼마나 인류의 스승인 주님의 제자임을 긍지로 여기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자녀로써 주와 같이 되기를 바라는 사람은 이 세상을 사는 동안 순결하기를 거듭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같이 되기를 소망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순결하신 것처럼 자기 자신을 순결하게 해야 한다고 요일 3장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순결해야 한다는 말은 글자 그대로 깨끗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몸과 마음이 깨끗해야 주님의 참 모습을 뵐 수 있기 때문입니다.  거짓된 말은 입에 담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거짓없이 깨끗해야 하나님을 가까이 할 수 있고, 하나님을 가까이 해야 거짓없이 진실하게 살 수가 있습니다.  또한 순결한 생활은 올바른 삶을 말합니다.  (요일 3:7)에, “올바른 사람은 하나님과 마찬가지로 올바른 사람입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열어 말씀을 깨닫게 해주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살아감으로써 깨끗하고 올바른 생활, 충성하고 믿음의 생활 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3. 더욱 깨끗한 삶을 살도록 힘씀으로써 거룩한 주님의 참모습 뵙기를 소망하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산삼을 캐러 다니는 심마니들은 산삼을 캐러 산에 오르기 전에 꼭 목욕을 한다고 합니다.  그래야 산삼을 찾아낼 수 있다는 것이지요.  산삼을 찾아내기 위해서 목욕을 하고 산에 오르는데, 우리는 거룩한 주님을 찾아 뵙기 위하여 얼마나 마음과 몸을 깨끗이 했습니까?  혹시 교회를 오는데 입던 옷을 그대로 입고 오신 분은 안 계시겠지요?  머리는 기본적으로 감고 오셨으리라 생각합니다.  교회를 오는데 슬리퍼를 신고 오신 분은 안 계신줄로 믿습니다.  혹 부정한 방법으로 돈을 벌고서 하나님의 복까지 받겠다고 교회를 찾는 분은 우리 교회에 결코 없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정말 우리가 주님을 만나 뵙기를 원하는 것은, 그 분에게서 돈 버는 비결을 얻어내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우리가 주님을 사모하고 가까이 하기를 원하는 것은 주님의 모습을 본받기 원해서입니다.  주님을 가까이 하지 않으면 어쩔 수 없이 우리는 악마와 가까이 지낼 수 밖에 없습니다.  악마는 원치 않아도 찾아와서 우리를 자기의 종 삼으려 합니다.  베드로가 원해서 주님을 배반한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뒤를 따르려 하지 않으니까, 벌써 사탄이 그의 마음을 지배하여 그로 하여금 주님을 부인하도록 하게 한 것입니다.  죄를 짓는 사람들이 자기가 원해서 죄를 짓는 경우란 드뭅니다.  바르게 살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다 보니, 죄에 물들어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베드로가 말한 것처럼, 주님을 배반하고 죽이기 잘하는 죄된 생활을 청산하고, 주님과 함께 살도록 힘써야 합니다.  주님과 함께 산다는 말은 주님의 말씀이 늘 머리에 떠올라 그 말씀이 그의 생활을 지배하고 생활을 말합니다.  그러면 정말 살아 계신 주님께서 우리를 도우셔서 말씀대로 살도록 해 주시게 되는 것입니다.

(요일 3:6)에서도 “죄를 짓지 않는 사람이란 언제나 주님과 함께 사는 사람”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아무리 질긴 잔디일지라도 사람들이 자꾸 밟고 밟으면 자라지 못하고 끝내 죽어버리고 맙니다.  마찬가지로 아무리 질긴 죄일지라도 말씀을 가지고 자꾸 억누르면, 제 힘을 발휘하지 못하다가 항복하고 말 것입니다.

주님을 의심하고 믿지 않게 되면 불안한 생활을 하게 됩니다.  (눅 24:37-41)의 말씀을 보면, 주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는 제자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안절부절 못하고, 무서워 하고, 어리둥절해 하고 있다”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주님을 참되게 믿지 못하면 바로 이러한 생활을 하게 됩니다.

여러분의 마음은 지금 어떻습니까?  평안합니까?  아니면 안절부절 불안한 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바라기는 여러분 모두, 주님의 참 모습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려면 지금부터 말씀을 가까이하여 깨끗한 생활을 해야 합니다.  죄를 멀리하고, 바르게 사는 것을 즐거워하고 기뻐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가 있습니다.  그렇게 살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셔서 도와주실 것입니다.

아무쪼록 주님의 참 모습을 뵙고 영광의 그 날까지, 죄를 멀리하고 주님을 가까이 모시고 사는 복된 인생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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