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수 되는 모든 요소들을 없이 하라

홈 > 기독자료 > 영혼의양식
영혼의양식

원수 되는 모든 요소들을 없이 하라

기독정보닷컴 0 18 0
영혼의 양식 91-29호                                            1991.07.21.

성서일과 ; 삼하11:1-15, 엡2:11-22, 막6:30-34.

제목 ; 원수 되는 모든 요소들을 없이 하라




 서울의 몇몇 가정에서는 지난 달 전화 요금 통지서가 발급되던 날에 큰 소동이 벌어졌습니다. 전화 요금이 터무니없이 많이 나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전화국으로 항의 전화를 했습니다. 전화국은 전화국 나름대로 많은 항의 전화를 받게 되자 당황하였습니다. 전화국에서는 조사를 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그 원인은, 각 가정의 청소년들이 미국에 있는 섹스-폰(Sex-Phone) 서비스를 받았기 때문이더라는 것입니다.

 섹스-폰 서비스란, 나팔의 일종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전화로 음란한 소리를 제공받을 수 있게된 장치를 말합니다. 미국의 지역 번호를 돌리고 서비스 전화 번호를 돌리면 별 희한한 소리를 들을 수 있는가 봅니다. 그래, 청소년들이 어떻게 그 전화번호를 알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심심하면 부모 몰래 밤중에 그 번호를 돌렸겠지요. 그것도 모르고 부모들은 엄청나게 많이 나온 전화 요금에만 놀랬던 것입니다. 더 놀랄 일이 있다는 것도 모르고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자녀들을 위하여 기도 많이 하시기 바랍니다. “내 자식은 별 탈이 없겠지……” 하고 맘 푹 놓고 있지 말고, 자녀들을 신앙으로 잘 지도하십시오. 어떤 일이 있어도 주일은 지킬 수 있도록 하시고, 그 무엇보다도 하나님 중심으로 키우시기 바랍니다. 그렇지 않으면, 어느 때 어느 순간에 음란 마귀에 바로잡히게 하여 자식을 타락의 길로 빠뜨릴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오늘 읽은 구약의 말씀은, 그 훌륭한 다윗 임금으로서는 씻을 수 없는 최대의 부끄러운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차 하는 순간, 유대인 율법에서 아주 큰 죄로 여기는 간음죄와 살인죄를 다윗은 동시에 짓게 된 것입니다. 사람은 속일 수 있으되 하나님은 속일 수 없다고 하는 진리를 잠깐 잊어버린 사이에, 그런 엄청난 죄를 짓고 만 것입니다.

 때는 전쟁 중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동맹군인 아람과 암몬을 상대로 하여 싸움을 하게 되었습니다. 다윗은 요압장군에게 전권을 맡겨 전쟁을 지휘하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예루살렘에 남아 있었습니다.

 어느 날 저녁, 다윗은 궁전 옥상을 거닐다가 목욕을 하고 있는 한 여인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만 다윗은 벌거벗은 여인을 보게 되자 음심을 품게 되었습니다. 알아보니, 그 여인은 충성스러운 부하인 우리야의 아내였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백성들을 잘 다스리라고 주신 권력을 가지고 음욕을 채우는데 사용했습니다.

 얼마 후, 우리야의 아내인 밧세바는 자기 몸에 태기가 있음을 알려 왔습니다. 그러니까 밧세바도 보통은 넘는 여자였던 것입니다. 다윗은 자기 잘못을 감추어 볼려고 전쟁터에서 우리야를 데려다가 집에서 잠을 자도록 특혜를 베풉니다. 그러나 우리야는 충성스러운 부하인지라, 집으로 가지를 않고 대궐 문간에서 근위병들과 함께 잤습니다. 이유는, 동료들이 야전에서 고생을 하고 있는데, 자기만 어찌 집에서 편히 쉴 수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눈물겨운 이야기입니다. 이토록 충성스러운 부하를 다윗은 속이고 있습니다. 다윗은 다시 한번 우리야를 집에서 쉬도록 조치를 하지만, 우리야는 한사코 집으로 가지 않고 근위병들과 함께 잤습니다. 다윗은 결국 우리야를 전투가 가장 심한 곳에 앞세워 보내도록 해서 죽이고 맙니다.

 사람이 한번 악해지기 시작하자 끝간데가 없습니다. 눈 한번 잘못 뜨게 된 것이 간음을 하게 되었고, 급기야는 살인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자기를 죽이려고 좇아다닌 사울을 바로 눈앞에 두고서도 죽이지 아니라고 하나님의 뜻을 따랐던 다윗이 이렇게 까지 될 줄이야 누가 알았겠습니까?

 다윗이 죄를 짓게 된 것은 그 마음에서부터 출발했습니다. 마음에 성령으로 충만해 있지 않으면, 아무리 훌륭한 사람일지라도 죄의 유혹에 넘어가기가 쉽습니다. 저녁이라고 하지만 대낮에 벌거벗고 목욕을 하고 있던 밧세바 사탄의 심부름꾼 노릇을 한몫 단단히 했지만, 다윗도 그전 같으면 그런 광경을 보고서도 재빠른 속도로 고개를 돌리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이 음심을 품고 그 여자를 범하게 된 것은, 다윗의 영적인 상태가 그만큼 타락해 있었지 않나 싶습니다.

 그러나 죄를 지은 다음이 더 중요한 순간입니다. 누구든지 다윗과 같은 권력과 그 형편에 놓이게 되면, 죄를 범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다음이 문제입니다. 아담과 하와도 죄를 짓고 그 즉시로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빌었으면, 상황은 정반대로 바뀌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핑계를 대고 변명을 하며 죄를 숨기려 했던 것입니다. 다윗도 마찬가지입니다. 죄를 지었으면 하나님께 죄를 털어놓았어야 했는데, 그만 다윗은 그 죄를 감추려고 시도했다가 실패하자 사람을 죽이는 죄까지 범하고 만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에게 있어서 죄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만일 누군가가 죄 없다고 주장한다면, 그는 하나님을 속이고 자신을 속이며 이웃을 속이는, 3중(三重)의 거짓말을 하는 죄를 더 짓게 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런 어리석음에서 속히 벗어나서, 우리 자신의 모습을 바로 발견하고 하나님 앞에 자신의 잘못을 솔직하게 털어놓는 회개가 있어야 합니다. 회개가 없으면 발전이 없습니다. 신앙의 발전이 없게 되면 그 신앙은 굳어지게 되고, 그렇게 될 경우 자신은 몰론 이거니와 다른 사람에게도 많은 피해를 주게 됩니다.

 어떻습니까?

 저와 여러분의 신앙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이익을 끼치고 있습니까? 아니면 다른 사람에게 방해를 주고 손해를 끼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또한 신앙생활이 우리 자신에게 기쁨을 주고 우리 생활에 힘을 주는 원동력이 되고 있습니까? 아니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신앙생활이 거추장스럽고 괴로운 것은 아닙니까?

 영적으로 은혜가 넘치고 믿음이 충만해지면, 모든 죄의 유혹을 물리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에게는 기쁨이요, 많은 이웃에게도 덕을 끼치며 살수가 있습니다. 반면에, 영적으로 빈곤해지면, 죄의 늪에 쉽게 빠지게 되고 피곤하며 지친 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도 피해를 끼치는 일이 많아집니다.

 그래서 오늘은, 사무엘하 11장에 나오는 다윗을 경우를 살펴보면서, 어떤 경우에 죄에 빠지게 되는가, 죄를 지은 우리들에게 하나님은 어떻게 죄를 극복할 수 있도록 하셨는가, 하는 점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목자 없는 양 같아서, 희망도 하나님도 없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다윗이 죄를 짓게 된 것은 하나님을 멀리 했기 때문입니다. 권력이 커지고 사는 형편이 호화스러워지자, 점점 하나님을 찾는 기회가 줄어들게 되었습니다. 직접 자신이 앞장서서 지휘하던 전쟁도 요압에게 다 맡겨버리고, 자기는 한가롭게 옥상에서 쉬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람의 형편이 나아지면 두 가지 방향으로 흐릅니다.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면 영적인 갈급함을 느끼고 신앙을 찾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생활이 나아지면 오히려 하나님을 멀리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다윗을 경우는 후자입니다.

 오늘 우리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하나님을 점점 더 가까이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날이 갈수록 믿음이 식어져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믿음이 식어지면 여러 가지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우선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가 싫어집니다. 말씀에 대하여 의심이 자꾸 생기고, 하늘나라에 대한 소망보다는 새상 물질에 더욱 애착을 느끼게 됩니다. 하던 십일조도 않게 되고, 주일이 기다려지기보다는 너무 빨리 돌아오는 것처럼 생각됩니다.

 자연히 영적으로 빈곤에 빠지게 됩니다. 영혼이 메마르게 되면 판단이 흐려지고, 그래서 실수와 실패를 거듭하게 됩니다. 정신이 몽롱한 사람이 운전하듯이, 영혼이 메마른 사람이 사는 모습은 갈팡질팡합니다. 이래서는 안되지 하는 위기의식을 느끼면서도 자꾸만 죄악의 길로 빠지게 됩니다. 생활 중에 경고로 나타나는 하나님의 일을 목도하면서도, 설마 하면서 그 잘못된 생활에서 벗어나지를 못합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모습의 군중들을 바라보면서 『목자 없는 양과 같은 그들을 측은히 여기시었다』고 했습니다. 목자가 없어서 길을 잃어버리고 방황하고 있는 그들의 모습이 안타깝게 여겨졌든 것입니다.

 무슨 욕심이든지, 욕심이 그 마음을 사로잡게 되면 삶의 목표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어느 것이 옳고 그른지 판단이 흐려지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음욕을 품게 되자, 간음 행위가 하나님 앞에 얼마나 죄된 행위이며 그 결과 얼마나 큰 벌을 받게 도리 것인지, 판단력을 상실하게 된 것입니다. 물질에 대한 욕심도 마찬가지입니다. 한푼 두푼 모으는 재미에, 한마지기 두마지기 땅을 사는 즐거움에, 하나님께 대한 도리도 형제에 대한 의리도 잊어버리게 됩니다.

 아무튼 욕심이 그 마음을 지배하게 되면, 바른 판단력을 잃어버리게 되고 성령은 그 마음에서 떠나버리고 맙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세상은 정말 험합니다. 청소년들이 섹스-폰을 청취할 정도라면, 우리사회가 지금 얼마나 타락해 있는가를 짐작할 수가 있습니다. 매체를 통한 섹스의 범람은 물론이요, 교인들이 투기에 뛰어들어 불로소득을 노리리 정도가 된 이 땅의 물질 지상주의, 자식에 대한 과잉보호 내지 과잉투자로 인한 윤리의 파괴 등. 어느 것이 옳고 어느 것이 그른지 분간할 수가 없는 것이 우리가 사는 이 세상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 성도들까지 자신이 어떤 죄를 짓고 있는지조차 잘 모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일을 하면서도 하나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일을 당연히 하면서, 바르게 살아보려는 성도들을 비웃고 조롱합니다. 바울이 에베소서 2장에서 말 한대로, 마치 소망도 없고 하나님도 없는 이방 사람처럼 살아가고 있습니다.

 성도가 하나님을 찾고 그의 말씀대로 살아가기를 원하며 교회를 다니는 것은, 그렇게 하면 복이 도리 줄로 믿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복이 되는 길과 정반대의 길을 가는 사람이 많으니, 이를 어떻게 이해하면 좋단 말입니까? 말씀대로 살면 복이 도리 줄로 믿는다면, 말씀대로 살려는 시늉이라도 내야 하지 않을까요? 이방 사람들보다 한술 더 떠서 하나님의 뜻을 거르시고 있으니, 예수님이 지금 오셔도 무척이나 안타깝게 여기셨을 것입니다.




 2. 길 잃은 영혼을 불쌍히 여기사, 복음의 말씀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다음 주에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만, 하나님은 죄를 범한 다윗에게 나단 선지자를 보내시어 그 죄를 추궁하고 회개를 촉구하십니다.

 오늘 우리에게 이러한 말씀을 주시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고쳐 살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은 마가복음 6장에서 『백성들이 목자 없는 양 같아서 측은히 여기시고 여러 가지로 가르치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 편에서는 다윗을 당장 처단을 해도 마땅할 정도로, 다윗은 큰 죄를 지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윗을 옛 믿음을 생각하고 나단 선지자를 보내어 그의 잘못을 깨닫도록 타이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 여러분들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사실상 우리는 하나님 앞에 도저히 설 수 없는 죄인 아닙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우리를 부르셔서 말씀을 들려주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한없이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 2장의 말씀을 보면, 하나님은 소망 없이 사는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예수님으로 하여금 피를 흘리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서로가 적이 되어 살아가는 우리를 화해시켜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을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데 방해가 되는 모든 요소들을 없이 해 주셨다고, 바울은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나가 되어 주님의 거룩한 성전이 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모퉁이 돌인 예수님을 중심으로 서로 연결되고 점점 커져서 주님의 성전을 이룸으로써, 이 땅에 평화로운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려는 하나님의 섭리인 것입니다.

 이제 저와 여러분은 이방인도 아니고 나그네도 아닙니다. 거룩한 하나님 나라 시민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한 가족입니다. 아버지가 되시는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복된 길로 인도하시려고, 말씀을 누누이 들려주실 뿐만 아니라 성령을 보내 주셔서 힘을 주시고 이끌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3. 성령 무장을 단단히 하여 죄의 유혹을 물리치고,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주님의 교회를 이루어 갑시다




 이 세상을 사는 동안 수많은 죄의 장애물을 넘어가야 합니다. 죄를 무서워  해도 안되고 죄와 타협을 해도 안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죄를 미워한다고 해서 죄를 안 짓게 되는 것도 아닙니다. 죄의 성질을 바로 알고 죄와 싸워 이겨 나가야 합니다.

 다윗이 죄를 짓게 된 것은 하나님을 멀리한 까닭입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성령으로 무장이 되어 있었으면 밧세바가 눈에 띄지 않았을 것입니다. 혹 눈에 보였다 할지라도 아무렇지 않게 넘어가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권력과 가까워지면서 하나님과는 점점 멀어지는 생활을 했기 때문에, 그와 같은 죄를 짓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돈을 가까이 해도 성령은 우리를 떠납니다. 명예를 귀중히 여겨도 성령님은 우리 마음속에 있기를 꺼려합니다. 게을러서 책임을 소홀히 해도 성령님은 우리를 싫어합니다. 다윗이 앞장서서 국민을 이끌어갈 때에는 여자를 밝히지 않았을 텐데, 책임을 요압에게 떠맡기고 나자 그런 죄를 짓게 되었습니다.

 각자에게 주어진 일에만 최선을 다하면 죄가 틈탈 여지가 없습니다. 자기 할 일을 다하지 않고 게으름을 피우다 보면, 꼭 시험에 들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의 말씀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영적인 무장을 늘 튼튼히 해야겠다는 것입니다. 새벽기도회를 열심히 다니면 많은 죄의 유혹에서 벗어날 수가 있습니다. 새벽기도회가 어려우면 정규적인 집회라도 열심히 참석하면 죄와 싸워 이길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찾는 기회가 많으면 많을수록, 우리의 관심은 땅의 것보다는 하늘의 것에 더 두게 됩니다. 하나님을 멀리하면 육적인 쾌락으로 흐르게 됩니다.

 두 번째로는,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며, 모든 믿는 이들을 하나의 새 민족으로 만드시사 평화를 이루게 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이 평화를 깨뜨리는 것이 죄인데, 이 죄까지도 속히 하나님께 털어놓으면 하나님은 용서하시고 새 삶의 길로 인도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거짓은 죄를 더욱 깊이 빠뜨리나, 진실된 믿음은 우리의 영혼을 맑게 하십니다.

 세 번째로는, 선한 목자이신 주님의 뒤를 따름으로 우리 인생을 목표를 분명히 할 수가 있으며, 믿음의 식구들이 주안에서 하나되어 평화를 이루어 살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모든 불행의 원인은 죄인데, 그 죄를 이기고 승리하여, 평화롭고 복된 삶을 살 수 있는 길은,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길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을 진실하게 바로 믿는 길만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복되게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가는 길을 여호와 하나님께서 지켜 주십니다. 그 가는 길에 장애 되는 모든 원수들을 하나님께서 물리쳐 주실 것입니다. 좋으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함으로 복된 생애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

0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