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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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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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양식 91-32호                                            1991.08.11.

성서일과 ; 시126:1-6, 갈5:1, 요8:31-36.

제목 ;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요즈음은 그런 모습을 별로 볼 수 없습니다만, 전에는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었습니다. 머리에는 짐을 잔뜩 이고 등에는 아기를 업은 아주머니가 한 손에는 바구니를 든 채 한 손으로는 아이를 붙잡고 가면서, 입과 눈으로는 앞서 걸어가고 있는 또 다른 아이를 인도해 가는 모습 말입니다.

 누군가는 말하기를, 이러한 한국 여인의 모습을 보고 초인적인 능력의 소유자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한국의 어머니들이 능력이 많아서 그렇게 하고 다닌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아니 되도록 우리 한국 여인들에게 씌어진 굴레요 멍에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런 모양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 한국의 어머니들에게는 이중삼중(二重三重)으로 그러한 굴레가 씌어졌습니다. 처녀시절의 아름다운 추억을 가져볼 틈도 없이 열세 살 내지 열 일곱이라고 하는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해서 고추보다 맵다고 하는 시집살이를 해야만 했습니다. 거기에다가 남편이라도 잘못 만나면 남편의 등살에 시달려야 했고 시누이들의 구박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아이를 키우랴, 시부모 공경하랴, 농사며 길쌈을 해야만 했던 우리의 어머니들은 너무나 가련하고 불쌍한 세월을 지냈습니다.

 우리 어머니도 여느 어머니와 매한가지였습니다. 열 일곱 살에 시집 와서, 아홉 남매를 낳아 다섯을 잃어버리고 넷을 키웠습니다. 자식을 잃어버릴 때마다 그 아픔이란 오죽했겠습니까? 그러나 시집살이보다는 덜 고통스러웠으리라 생각됩니다. 그것은 우리 어머니가 아이를 낳으시고 스무 하루는 고사하고 이레도 채 안되어, 들녁에 밥을 해 나가라는 시어머니의 명을 따르다가 그만 밑이 빠지는 고초를 겪으셨다니 말입니다.

 그래도 우리 어머니는 아버지의 사랑을 받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습니다. 할머니의 처사가 너무 심하고 견디기 어려웠던지, 제가 다섯 살 되던 해에 아버지는 어머니를 할머니의 학대에서 보호하기 위하여 이사를 결행했습니다.

 이러한, 어머니들의 고생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요즈음 젊은 여자들이 대낮에 화투를 치고 춤추며 노래하는 것을 보면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아 오릅니다. 그 웃대 어른들이 겪은 고난을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그럴 수가 없을 텐데 말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근세에 있어서는 여자들뿐만 아니라, 민족 전체가 많은 수난을 당했습니다. 일제 35년의 압제는 물론이요, 6․25 사변과 4․19, 5․16과 10․26, 그리고 5․17에 이르기까지, 헤아릴 수 없는 변란의 와중 속에서 우리의 선대 어른들은 뼈를 깎는 아픔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일제 35년은 생각조차 하기 싫은 치욕의 기간이었습니다. 쪽발이 왜놈들의 간악한 압제는 우리 선조들의 피를 말리고 뼈를 녹이는 고통이었습니다. 남자들은 징용과 징병으로 끌어가고 여자들은 정신대로 끌어가서 총알받이와 정액받이로 삼는 등, 하나의 소모품으로 다루는 악독을 저질렀습니다.

 징용으로 끌려갔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 돌아온 당숙의 이야기를, 저는 어릴 적에 자주 들었습니다. 너무나 배고파서 장독대에 말려 놓은 단무지를 훔쳐먹다가 죽도록 얻어 터졌다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납니다.

 이렇게 일본놈 한테 당했으면 정신을 차려야 할텐데, 지금도 일제 물건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형편이니, 우리 민족은 언제쯤이나 민족 정기를 찾을 수 있을런지요?

 오늘은 광복 기념 주일입니다. 유대인들이 애굽 바로 왕의 손아귀에서 놓인 날을 기념하여 유월절을 지키듯이, 우리는 일본놈들의 쇠사슬에서 풀린 날을 기념하여 광복절을 지킵니다. 유대인들은 유월절을 지키되, 쓴 떡과 쓴 나물을 먹으면서 지킵니다. 선조들이 애굽에서 나올 때에 발효되지 않은 쓴 떡을 먹으며 고생한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해마다 유월절이 되면 일부러 쓴 떡을 해 먹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유대인들이건만, 유월절 의식이 퇴색해지고 여호와 하나님 공경을 게을리 하게 되자, 그들은 다시 바벨론에게 망하여 포로로 잡혀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광복절이 되면, 하루 쉬는 날쯤으로 알고 들로 산으로 놀러 갑니다. 이처럼 일본에 대한 경계 의식을 느슨하게 가지게 될 경우, 머지 않아 또 다시 일본놈들의 구속을 받게 될지 모른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광복 46주년을 맞이하여 진정한 해방의 의미를 바로 되새기고 우리가 지켜 나가야 할 해방의 삶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하겠습니다. 민족적인 해방의 의미, 신앙적인 해방의 의미, 그리고 나아가서 우리의 실제 생활에 있어서의 해방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먼저 바로 알고, 또 다시 종살이를 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를,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유대인들의 정신적으로 타락하게 되었을 때에 다른 민족의 침략을 받고 망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유대인들이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는 군사력이나 경제력을 더 믿고, 인간적인 방법으로 나라를 이끌어 가려고 할 때에 국민들의 정신 건강이 쇠약해질 수밖에 없었으며, 끝내는 군사력이 약해지거나 경제력이 약해서가 아니라 정신력이 약해서 나라가 망했던 것입니다.

 한 가정이 파괴되는 경우도 돈이 없어서거나 외부적인 시련 때문이 아닙니다. 대부분의 경우, 오히려 돈의 여유가 있을 때 어느 한 쪽이나 또는 양쪽이 타락하게 되어 가정 파탄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정이나 국가가 파괴되지 아니하고 튼튼하게 서려면 정신적인 기둥이 굳건해야 합니다. 곧 그 마음을 지켜 주는 신앙심이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가정에 있어서도 윤리와 종교의 기반이 튼튼한 집은 싸움이 일어날 리가 없고 환난을 당하여도 쓰러지지 않습니다. 국가에 있어서도 도덕적으로 기강이 서 있으면 다른 나라가 넘보지 않을뿐더러, 침략을 받아도 패하지 않습니다.

 우리 나라의 역사도 보면 도덕과 종교가 바로 잡혀 있을 때에는 나라가 발전하였고, 종교가 부패하고 도덕이 무너지면 나라도 망했습니다.

 그런고로 우리 나라가 일본에게 병탄되어 망국의 슬픔을 맛보게 된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고 봅니다. 일본에게 망하지 않았으면 다른 나라의 속국이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나라가 망한 것은 도덕의 근간이었던 유교가 부패한 점이 가장 큰 원인이었습니다. 유교의 근본 정신은 사라지고 껍데기만 남아서, 소수 양반 계층을 제외한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 갖가지 굴레와 멍에를 씌웠던 것입니다.

 양반님네 들이 공자왈 맹자왈만 찾았지 그 가르침대로 살려고는 하지 않고, 불쌍한 민중들에게만 여러 가지 모양의 쓰잘데 없는 규례를 지키도록 강요했던 것입니다. 그 결과, 가장 나약한 여인네들이 가장 무거운 짐을 져야 했습니다. 그러니, 이처럼 부조리하고 불평등한 세상이 계속될 리는 만무했습니다. 무엇이든지 한쪽으로만 쏠리면 넘어지거나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을 잘 귀담아 들어서, 그 말씀대로 지켜 살아감으로써 모처럼 우리에게 주어진 이 자유로운 세상을 잘 지켜 나가야 할 것입니다. 아직도 참된 자유 국가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만, 이 정도의 세상을 그나마 지켜 보조하려면 정신을 바짝 차리고 신앙 생활을 잘 해야 합니다.

 바울 선생은 갈라디아서 5장 1절에서 말하기를,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셔서 우리는 자유의 몸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마음을 굳게 먹고 다시는 종의 멍에를 매지 마십시오』라고, 우리에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이 정도의 자유를 얻기 위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렸으며, 그리고 또한 많은 목사님들과 성도님들이 눈물을 흘려 기도한 결과라는 것을 잊어서는 결코 안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현실을 바로 진단하고, 고쳐야 할 것은 한시바삐 시정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1. 자유를 지키기 위한 눈물의 수고가 없이 게으름을 피우다가, 다시 죄의 노예가 되어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시편 126편의 말씀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 생활에서 벗어나던 날의 그 기쁨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입에서는 함박 같은 웃음이 터지고 흥겨운 노래 소리가 흘러 나왔다』고 했습니다. 그 기쁨이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저 웃음이 넘치고 노래가 절로 나왔을 것입니다. 도저히 이루어지지 않을 것 같던 해방, 깜깜한 어둔밤이 계속되어서 절망과 탄식의 한숨 소리만이 백성들의 입에서 흘러 나왔더랬는데, 이제는 기쁨의 노래 소리를 크게 외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시인은 분명히 말합니다. 그 해방은 하나님의 은총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말입니다. 3절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놀라운 일을 하셨으니, 우리는 얼마나 기뻤던가!』하고, 시인은 밝히고 있습니다.

 우리의 해방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나라가 광복을 맞이하게 된 것도 순전히 하나님의 은총인 것을,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것입니다.

 역사의 주관자는 하나님이십니다. 모든 민족의 운명을 결정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이 사실을 믿고 따르면 나라의 앞날도 밝고 소망스럽겠지만, 하나님의 섭리를 부인하고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게 되면 미래는 소망스럽지 못한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시인은, 해방된 민족이 무엇을 해야 될지를 밝히고 있습니다. 5절에, 『눈물을 흘리며 씨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라』고 하면서, 눈물을 흘리며 씨뿌리는 수고가 있어야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자유를 계속 지켜나갈 수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독일 민족은 그렇게 했습니다. 자기 민족이 저지른 죄과를 철저히 뉘우치고 사과를 하면서 새로운 국가 건설에 힘썼습니다. 그리하여 통일 국가 건설에 힘썼습니다. 그리하여 통일 국가를 이루어 냈습니다. 지금은 부강한 국가가 되었지만 결코 흥청거리거나 낭비하는 일이 없이 부지런히 일하며 내핍 생활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떠합니까?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진 해방된 민족과 국가를 잘 보전하려고 얼마나 힘썼습니까? 지금에 와서 생활 형편이 좀 나아지자, 국민의 생활 태도는 어떻게 변화되었습니까? 과연 바람직한 자세를 지니고 있다라고 말할 수 있겠는지요? 정말 우리 민족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만한 민족이라는 생각이 드는지요?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도 하나 하나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는 자세가 되어 있는지요?

 불행히도 우리 민족은 하나님의 뜻을 기리기보다는 거슬렀습니다. 해방된 우리 나라에 초대 대통령으로 장로를 세워 주셨건만, 그는 하나님의 뜻을 거역했습니다. 다음에는 독실한 카톨릭 신자를 내각 책임제 하의 국무총리로 세워 주셨건만, 그도 또한 하나님의 은혜를 지키지 못했습니다.

 국민들 또한 하나님께서 여러 번 주신 좋은 기회를 박차 버리고 말았습니다. 지금도 어쩌면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에게 주신 좋은 기회라고 생각되는데, 그 기회를 잃어버리고 마는 것은 아닌지 상당히 염려가 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실 때에 과연 우리 나라가 건전한 국가라고 하시겠는지, 전반적으로 국민들이 하나님을 바로 공경하며 섬기고 있다라고 하시겠는지, 의심이 됩니다.

 저는 오늘의 말씀에 우리 현실을 비추어 볼 때, 우리 나라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자유를 지키기 위하여 눈물 흘리며 씨뿌리는 수고를 하기보다는, 너무 쉽게 살려는 풍조가 심화되어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정직하게 거짓없이 살면 잘 살기가 어렵다고 하는 뒤집어진 가치관이 국민들의 정신세계를 사로잡고 있습니다. 어떤 방법으로든지 돈을 많이 번 자가 승리할 수 있다는, 잘못된 의식 구조가 독버섯처럼 번져가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우리 국민이 하나님께서 주신 좋은 기회를 잃어버리고 군인들에게 나라를 맡긴 결과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나라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려면,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생각을 국민들이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온 국민이 성실하게 살려는 노력을 아끼지 않을때에, 하나님은 우리 민족을 사랑하셔서 세계 역사의 주역으로 삼으실 것입니다.

 우리들 하나 하나가 다른 사람을 억울하게 하거나 멍에를 지우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가진 자가 없는 사람을 업신여겨도 안됩니다. 힘센 사람은 약한 이웃을 멸시치 말고 잘 돌봐 주어야 합니다. 특히 힘있는 남자들은 약한 여성을 괴롭히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축복을 받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일본 놈들이 서양 고기를 먼저 먹게 되어 힘이 좀 세어졌다고 약한 우리 나라를 괴롭히고 끝내는 종으로 삼아 부려먹은 것이, 지금 생각해도 얼마나 억울하고 분통스러운 일입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 힘센 자랑을 하면서 세계 평화를 깨뜨린 일본을 응징하신 일도 기억해야 합니다.

 나라뿐만 아니라, 가정이나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힘을 다른 사람보다 더 가지고 있으면 괜스레 힘자랑 하지 말고 약한 사람 돌보는데 써야 합니다. 교회도 큰 교회가 약한 교회를 돌보아야 합니다. 이러한 세상을 하나님께서는 좋아하십니다.




 2. 하나님께서는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하여 눈물로 씨뿌리는 자에게 주시려고 기쁨의 단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금을 소중히 다루며 잘 보관하는 것은 그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값이 안 나가는 것을 잔뜩 계속 보관하고 있을 리 만무합니다. 하나님께서 보실 때에도, 지켜 보호해 주실만한 가치가 있는 민족을 축복해 주실 것입니다. 진리와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 국민들끼리 서로 위하고 아끼는 민족, 하나님의 말씀대로 어려운 이웃을 돌보는 백성들을, 하나님께서는 더욱 축복해 주시고 지켜 보호해 주실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 1절의 말씀에서, 자유는 하나님께서 주셨다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8장 32절에서, 하나님의 진리를 알게 될 때에 그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할 것이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소중한 자유를 잘 사용하고 보존하려고 애쓸 때에, 그 자유 안에서 참 기쁨을 맛볼 수 있도록 축복해 주실 것입니다.




 3. 마음을 굳게 먹고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맙시다




 요한복음 8장 34절에, 『죄를 짓는 사람은 죄의 노예』라고 했습니다. 죄는 하나님을 믿지 않고 세상을 의지하는 것을 말합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정직하고 바르게 살면 하나님께서 축복하신다는 진리를 믿지 아니하고, 권력이나 돈을 더 믿는 것이 죄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만 허락하신 고귀한 특권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유입니다. 그러나 그 자유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할 때에만 얻을 수 있는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진리 말씀 안에서만 누릴 수 있는 참 자유입니다. 만일 하나님을 부인하고 세상을 의지하게 되면, 그 자유를 잃어버릴 뿐만 아니라 의지하는 세상 것의 노예가 됩니다. 돈을 의지하면 돈의 노예가 됩니다. 자식을 의지하면 자식의 노예가 됩니다.

 노에 생활 속에서는 기쁨이 없습니다. 자신의 양심이 원하는 대로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살 수 있어야 즐거움이 있고 기쁨이 있습니다. 우리 속에는 하나님의 형상이 심겨져 있습니다. 예수를 안 믿는 사람도 그 뿌리가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우리 인간은 참 만족과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에게 주어진 자유, 그리고 물질과 시간을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원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바라던 소망을 이룰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인생이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 존재이며, 무엇을 위하여 존재하는가를 깨닫게 되어 하나님의 놀라운 세계를 바라보는 영광을 누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아무쪼록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더욱 기쁘고 복된 생애를 가꾸어 나가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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