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어진 기회 안에서 지혜롭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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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어진 기회 안에서 지혜롭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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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양식 91-33호                                                    1991.08.18.

성서일과 ; 삼하18:24-33, 엡5:15-21, 요6:51-58.

제목 ; 주어진 기회 안에서 지혜롭게 살자




 세상에 이런 비극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아버지와 아들이 싸우다니! 그래서 아들이 죽고 말았으니 말입니다. 아버지인 다윗과 아들 압살롬의 전쟁에 대하여, 성경은 사무엘상 15장에서 19장까지 5장에 걸쳐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이 부자지간의 싸움은 충격적인 일이었고 가슴 아픈 일이었을 것입니다.

 비극의 씨앗은 다윗이 뿌렸습니다. 그러니 그 결과를 다윗이 거두어야만 했습니다. 다윗이 아무 잘못도 없는 우리야를 죽이고 그 아내를 취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나단 선지자를 통하여 다음과 같이 예언하셨습니다. 『네가 이렇게 나를 얕보고 우리야의 아내를 네 아내로 삼았으니, 너의 집안에는 칼부림 가실 날이 없으리라』고 말입니다.

 다윗은 자신이 지은 죄의 결과가 이렇게 나타나리라고는 미쳐 생각지 못했을 것입니다. 온 국민이 보는 앞에서, 임금이 아들과 패를 갈라 전쟁을 했으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수치스러운 일을 다윗은 겪게 되었습니다.

 얼마 전, TV드라마를 보니, 한참 동안 소리치며 부부싸움을 하던 어느 가정에서 남자가 가방을 싸들고 집을 나가면서 하는 말이 “우리는 부부가 아니라, 원수다 원수!” 라고 외치는 것이었습니다. 얼마 후 다행히 그 가정은 다시 화평을 되찾았습니다만.

 그러나 다윗과 압살롬은 화평을 되찾을 길 없이 비극으로 끝나버리고 말았습니다. 압살롬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다윗은 골방으로 들어가 다음과 같이 외치며 통곡을 합니다. 『내 자식 압살롬아, 내 자식아, 내 자식 압살롬아, 차라리 내가 죽을 것을, 이게 웬일이냐? 내 자식아.』자식과의 싸움에서 승리를 했으나, 그 승리는 기쁨을 가져다 준 것이 아니라 슬픔을 안겨 주었습니다.

 이처럼 다윗이 큰 비극을 맛보게 된 것은 잠깐의 실수가 가져온 결과입니다. 아니 잠시 나쁜 생각을 가질 수는 있으나, 혹은 잠깐의 잘못을 저지를 수는 있으나, 그 나쁜 생각과 잘못을 뉘우치지 아니하고 계속 더 큰 죄를 지음으로 말미암아 그와 같은 비극을 초래했던 것입니다.

 새가 머리 위를 지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 새가 머리 위에다가 둥지를 트는 것은 막을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잠시 추악한 생각은 할 수 있습니다. 또는 나쁜 마음을 먹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경우는, 그런 생각과 마음에 따라 행동으로 옮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더 큰 잘못을 저지르기 전에, 하나님 앞에 그 죄를 털어놓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결과가 뻔히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기에 바울은 다음과 같이 우리에게 권면해 주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5장 15절에서, 『여러분은 어떻게 처신해야 할 지 깊이 생각해서 미련한 자처럼 살지 말고 지혜롭게 사십시오』라고 말입니다. 시대가 악하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다가는 주어진 기회를 잃어버리고 깊은 죄악의 길로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을 엔조이하려 하지 마십시오. 세상을 즐기면서 살려 하다가는 큰 죄를 짓게 되는 것은 물론이요, 패망에 이르게 됩니다. 하루하루를 조심스럽게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는 노력을 하지 않고, 되는대로 아무렇게나 살려고 하게 되면 틀림없이 사탄이 그의 친구가 되어 죄와 죽음의 길로 인도한다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세상 만물은 다 그 존재 이유가 있습니다. 하다 못해 길가의 돌멩이라도 거기 있어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하물며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인간인데, 어찌 그 존재 이유가 없을 수 있겠습니까? 온달성 주변의 소나무 한 그루 한 그루가 귀중한 가치가 있는 것처럼, 저와 여러분도 오늘 이곳에 있어야 할 이유와 가치가 분명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바울 선생이 에베소서 5장 17절에서 밝힌 바와 같이, 『세상을 어리석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잘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나를 부르신 이유와 그 존재 방식을 바로 파악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1. 하나님의 뜻과 그의 사랑을 깨닫지 못하여 어리석은 길을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우리가 한돌교회를 떠나올 때에 눈물을 가장 많이 흘린 조 아무개 집사가 있습니다. 그는 말이 집사이지, 한 달에 한 두 번 나올까 말까한, 그야말로 밥사였습니다. 그가 처음 한돌교회에 출석했을 때 심방을 가서 설교하기를, “조 집사님이 서울에서 이곳으로 이사 오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조 집사님을 약한 한돌교회를 도와 원미아파트 주민들에게 복음을 전하라 보낸 것입니다” 라고 그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복음 전도는 고사하고 오히려 전도에 방해가 되는 행실을 보여 주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집사 댁을 매일이다 시피 찾아갔습니다. 조금이라도 아프다는 소리를 들으면 심방을 가서 기도를 해 주는가 하면, 새벽마다 쪽지에 말씀을 적어 문틈에 꽂아 놓았습니다. 그 이튿날 찾아가 보면, 쪽지는 출입 계단에 굴러다니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의 발에 밟혀 더렵혀진 채로 말입니다. 속이 상했지만, 언젠가는 열심 있는 집사가 되겠지 하고, 위하여 기도하면서 쪽지를 계속 집어넣었습니다.

 이사 오던 전날부터 눈물 콧물 범벅을 한 채, 봉투를 들고 온다, 선물을 사 온다 하면서, 그 동안 제 정성을 거부하고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지 못한 것에 대하여 후회를 하면서 미안스러워 했습니다. “어떻게 하죠? 목사님께 죄송스러워서. 할 말 없습니다” 라고 말하면서. 울어서 벌개진 눈두덩 위로 다시 눈물을 흘리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말하기를, “괜찮습니다. 지금부터 열심히 하면 됩니다” 라고 하면서 격려했습니다.

 다윗을 하나님께서 부르셔서 이스라엘의 임금으로 삼으신 것은 백성들을 잘 다르리라고, 그래서 하나님의 선한 백성이 되도록 지도하라고 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그 소중한 기회를 그 동안 잘 살리는 듯 싶더니, 그만 아차 하는 순간 하나님의 뜻과 사랑을 크게 저버리는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오늘 우리는 과연 어떻습니까?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시간과 물질을 하나님의 뜻대로 바르게 사용하고 있는지요? 많은 사람들 중에서 특별히 우리를 택하사 하나님의 자녀 삼으시고 맡겨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고 있는지요? 영광스럽고도 복된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그 기회를 잘 활용하고 있는지요?

 에베소서 4장 17절에서 5장 20절까지는, 그리스도 안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 생활의 법칙을 밝히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 드리면, 예수를 믿는 우리가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를 어떻게 이용해야 할지, 말해 주고 있다는 말입니다. 한마디로 요약해서, 헛된 생각을 버린 후 올바르고 거룩한 진리의 생활을 해야 합니다. 곧,

 ①거짓말을 하지 말아야 하고

 ②화나는 일이 있어도 죄 짓지 말아야 하며

 ③도둑질하는 일없이 떳떳하게 살아야 하며

 ④남을 해치는 말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를 구원하여 하나님의 백성 삼으실 것을 보증하신 하나님의 성령을 슬프게 해 드리지 말아야 한다고, 에베소서 4장 30절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오늘 읽은 에베소서 5장 18절에서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잘 아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술 취하지 말아야 한다고, 바울 선생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슬프게 하는 방탕의 생활을 술 취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방탕’이라는 말은 ‘구원’ 이라는 말의 반대 개념입니다. 구원받은 사람의 삶이 건전하고 온전한 생활을 의미한다면, 방탕은 목적 없이 사는 파괴된 생활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구원의 삶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복된 삶이라고 한다면, 방탕은 마귀가 좋아하는 저주의 삶입니다. 그런데 마귀가 좋아하는 방탕의 생활이 술취함에서 시작됩니다.

 술을 먹는 것은 그 맛 때문이 아닙니다. 건강을 위해서는 더더욱 아닙니다. 취하기 위해서 먹습니다. 술에 취하면, 우선 모든 세상 근심 걱정을 잊을 수가 있고, 또한 즐길 수가 있습니다. 세상 걱정을 일부러 사서 할 필요는 없습니다만, 주어진 걱정거리에 대해서는 책임감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데 그 걱정을 잠시 잊어버리기 위해서 술에 취하는 것은 거짓된 행위에 지나지 않습니다. 술을 먹어서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 더욱 맑은 정신을 가지고 연구를 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즐기기 위해서 술을 먹는 것 또한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짓입니다. 주어진 시간에 일을 함으로써 즐거움을 느껴야지, 억지로 즐거움을 만들어 내기 위하여 술에 취하는 것은 멸망으로 빠지는 지름길입니다. 왜냐하면, 자연적이 즐거움은 생산 과정에서 생길 뿐만 아니라 재생산의 원동력이 되지만, 인위적인 즐거움은 소비 과정에서 생기는 것이며 또한 더 큰 즐거움을 만들어 내기 위하여 더 많은 시간과 물질을 허비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일을 통한 자연적인 즐거움은 가슴 뿌듯한 보람을 동반하여 가져오지만, 인위적인 즐거움은 뒤끝이 깨끗치 못할 뿐더러 허전한 마음이 들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 허전한 마음을 채우기 위하여 더 큰 즐거움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그 결과는 가정 파탄과 인생 파멸을 가져오게 됩니다.

 잠언 23장 20절에, 『술독에 빠진 사람과 고기를 탐내는 사람과는 어울리지 말아라, 고기와 술에 빠지면 거지가 되고 술에 골아 떨어지면 누더기를 걸치게 된다』고 했습니다. 이어서 31절에, 『잔에 따른 술 빛깔이 아무리 빨갛고 고와도 거들떠보지 말아라. 결국은 뱀처럼 물고 살무사처럼 쏠 것이다. 눈에는 이상한 것이 보이고 입에는 허튼 소리를 담게 된다』고 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술을 먹지 않고 무슨 맛으로 인생을 사느냐?” 고 합니다. 옳습니다. 인생의 맛을 진정 깨닫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에게는 술 맛으로라도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술은 맛만 보게 하지를 않습니다. 뱀처럼 물고 살무사처럼 쏩니다. 괴로움을 잊기 위하여 먹은 술이 더 큰 괴로움과 고통을 가져다줍니다.

 아무튼 술은 사람을 방탕한 생활로 빠뜨려서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를 잃어버리게 하고 잘못 사용하게 합니다. 술을 잘 먹어서 인생을 승리로 이끌었다는 말은 들을 수 없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술 대신에 성령을 가득히 받아야 합니다. 에베소서 5장 18절에서, 바울 선생은 술 취하지 말라는 말씀 다음에 성령을 가득히 받아야 한다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성령은 우리 인간에게 좋은 생각과 마음을 가져다주는 분이십니다. 뿐만 아니라, 좋은 생각과 마음을 생활에 적용하여 이룰 수 있도록 지혜와 힘을 주시는 분이기도 합니다.

 성령은, 예수님의 뒤를 이어 이 땅 위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는, 수많은 제자들과 함께 하시는 분입니다.




 2. 예수를 보내어 십자가 위에서 죽게 하심으로써 변함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확실히 보여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생의 의미를 모르고 죽어가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예수님을 보내 주셨습니다. 한번 밖에 주어지지 않은 인생을 아무 의미 없이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구원하시려고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이 땅 위에 내려 보내셨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 주신 의미 있는 삶이란 무엇입니까? 곧, 인생의 참된 길을 감으로써 누릴 수 있는 즐겁고 기쁜 삶을, 예수님은 어떻게 보여 주셨다는 말입니까? 예수님은 한마디로 말씀하시기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셔야 산다』(요6:56)고 했습니다. 진로 소주나 보드카가 아닌, 예수님의 피를 마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6장 68절의 말씀을 보면, 예수님의 살과 피란 바로 영원한 생명을 주는 말씀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은 그 즉시 생활로 나타납니다. 어떤 생활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결과인 십자가의 희생으로, 우리는 예수님의 피와 살을 먹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자기를 죽이는 고통을 견디어 냄으로써 하나님의 의(義)를 이루신 예수님이십니다. 우리는 그 예수님의 뒤를 이어 ‘나’를 이기어 내는 아픔을 겪게 됨으로써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확신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말씀을 따라 의롭게 살려면 나를 희생하는 아픔이 있어야 합니다. 그 아픔을 겪고 난 후에는 “아, 나도 정직하게 살았구나!” 하는 보람과 긍지, 그리고 기쁨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 순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나 방탕한 생활을 하게 되면 나를 희생하는 아픔은 없으나, 부정직하게 산 것에 대한 자괴감(自壞感)과 슬픔을 맛보게 됩니다. 그때 그는 ‘못난 자식’이라고 스스로를 미워하면서 사탄의 종노릇한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분명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잠깐의 실수와 잘못은 있었다 할지라도, 지금 이 순간 주님 앞에 나와 있는 것을 보면, 우리는 틀림없이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그렇다면,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오늘 주시는 말씀에 따라 주어지 기회 안에서 지혜롭게 살아갑시다.

 에베소서 5장 15절에 있는 말씀처럼, 우리는




 3. 어떻게 처신해야 할 지 깊이 생각해서 미련한 자처럼 살지 말고 지혜롭게 살아야 합니다




 진리가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야 인생을 멋있게 살 수 있는지를 생각지 않고 사는 어리석은 인생을 청산해야 합니다.

 육의 양식이나 음료를 먹음으로써 그 맛을 즐기고 사는 생활이 아니라, 영의 양식인 예수님의 말씀을 먹고 행함으로써 그 보람 가운데서 사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꾸만 우리 생활속에 파고드는 육적인 생각을 멀리하고 하나님의 뜻을 가까이 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온전히 예수님과 하나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적인 소망을 이루기 위해서 주님을 찾기보다는,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살 수 있을까? 어떻게 살아야 빛의 자녀다운 삶일까 하고, 관심을 항상 하늘에 두고 살아야 합니다.

 저는 이 곳에 온지 얼마 안되어서, 여러분의 생활을 잘 파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목회하면서 느낀 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성실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육적인 생활도 풍족해지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꼭, 육적인 생활이 풍족하면 하나님의 뜻대로 살았다 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말씀대로 주일을 지키며 십일조 생활하고 감사하며 사는 사람은, 그 생활도 하나님께서 보장해 주십니다. 그러나 돈 돈 하면서 세상을 더 가까이 하는 사람치고 잘 되는 것, 별로 볼 수 없었습니다.

 바라옵기는 영춘교회 성도 여러분은 에베소서 5장 19절의 말씀대로 『진정한 마음으로 노래를 불러 주님을 찬양하며 감사하는 삶』을 사십시오. 돈을 찬양하면 돈이 거짓된 삶과 슬픔을 제공하고, 주님을 찬양하며 살면 주님께서 보람있고 즐거운 생을 허락하시리라 믿습니다.

 여러분 모두, 하나님의 은총 안에서 주어진 기회를 잘 살려 지혜롭게 사는 복된 인생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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