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해와 빈들의 가시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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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10 19:00
영혼의 양식 91-34호 1991.08.25.
성서일과 ; 삼하23:1-7, 엡5:21-33, 요6:55-69.
제목 ; 아침 해와 빈들의 가시나무
오늘 이 아침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과 함께 나눌 말씀의 제목은 ‘아침 해와 빈들의 가시나무’ 입니다. 원래의 제목은 ‘구름이 걷힌 아침 해와 빈들의 가시나무’였습니다. 제목이 너무 긴 듯 싶어서 ‘구름이 걷힌’이라는 구절을 뺐습니다.
좀 특이한 제목인고로, 그에 대한 설명이 필요한 줄로 압니다. 오늘의 본문인 사무엘하 23장 1~7절의 말씀 중에서 택한 제목입니다. 3절 말씀에서, 『백성을 정의로 다스리시는 이는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아는 사람으로서, 그는 마치 구름이 걷힌 아침해와 같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슬을 머금은 푸성귀가 아침 햇빛을 받아 자라는 것처럼, 하나님을 경외할 줄 아는 사람이 백성을 다스리면 그 백성이 그 은덕을 입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두려워 할 줄 모르는 사람이 나라를 이끌어 가게 되면, 그는 마치 빈들의 가시나무 같아서 오히려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게 된다고, 6절에서 다윗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의 말씀은,
구름이 걷힌 아침 해와 같이 모든 사람들에게 은혜를 나누어주며 사는 의로운 사람과, 가시나무와 같은 존재로서 많은 사람을 괴롭히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에 대하여 밝혀 주면서, 우리가 살아갈 방향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특별히 오늘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은, 부부나 이웃 관계가 올바르게 되려면 먼저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르게 되어 있어야 한다는 점을 밝혀 주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 드리면, 부부나 이웃 관계가 서로 존중하며 아끼는 좋은 관계를 가질 수 있으려면 하나님을 공경하며 의지하는 바른 신앙이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저는 이러한 내용의 설교를 할 때마다 정일형 박사 부부의 예를 자주 듭니다. 감리교 목사이면서 외무부 장관과 신민당 부총재를 지낸 적이 있는 정일형 박사, 그리고 우리 나라 최초의 여자 사법고시 합격자로 지금도 변호사 활동을 하고 있으면서 가정법률상담소 소장으로 있는 이태영 박사, 이들 부부는 여러 면에서 본 받을 점이 많은 분들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고 아끼면서, 서로에게 있어서 더 이상 있을 수 없는 가장 귀한 존재임을 인정하고, 그 사실을 많은 사람들에게 자랑스럽게 말하고 있습니다. 불행히도 남편 정일형 박사는 여러 해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이 두 분들의 이야기는 세월이 갈수록 더욱 아름답게 전해지리라 믿습니다.
일제 시대에 정박사가 독립운동을 하다가 감옥에 갇히게 되자, 이변호사는 콩나물 장사와 누비이불 행상을 해서 옥바라지를 하고 살림을 꾸려 나갔다고 합니다. 모진 고생을 하면서도 남편을 원망하기보다는, 독립운동을 하는 남편 둔 것을 긍지로 여겼던 것입니다.
해방 후에는, 거꾸로 남자가 여자를 위하여 이바지했습니다. 자녀를 낳아서 다 키운 주부를 서울 법대에 입학을 시켜 공부를 시킨 것입니다. 그래서 드디어 사법고시에 합격할 수 있도록 뒷받침해 주었습니다. 그러니까, 이태영 여사가 없었다면 정일형 박사가 있을 수 없었고, 또한 정일형 박사가 없었다면 오늘의 이태영 여사도 있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저는 이분들이 그처럼 복된 가정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신앙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특히, 남편 되는 정일형 박사가 전통적인 남존여비(男尊女卑)사상을 버리고 기독교 정신에 따라 여자를 한 인간으로 존중함으로써, 그 재능에 따라 여자를 한 인간으로 존중함으로써, 그 재능에 따라 공부를 하게 하여 그처럼 훌륭한 일을 많이 하게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태영 여사 또한 신앙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남편의 옥바라지를 정성껏 했을 것이며 어려운 이웃을 생각하고 지금까지 숱한 여성들을 돌볼 수 있었으리라 봅니다. 신앙이 없었다면, 비록 고등 교육을 받고 변호사가 되었을지라도, 이웃을 섬기는 삶보다는 자기만의 행복 추구에 급급했으리라 생각합니다.
신앙이 없는 사람 중에서도 여자의 인격을 존중하고 이웃의 아픔을 돌보는 이가 없지 않아 있지만, 그래도 어쩌니 저쩌니 해도 기독교 신앙이 여성의 지위를 향상시킨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며, 이웃을 위한 봉사활동 또한 대부분의 경우가 기독교에서 출발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에베소서 5장 21절에서 바울은,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공경하는 정신으로 서로 복종하십시오』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는 이 세상의 기본 요소라고 할 수 있는 부부관계에 대하여 말해 주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바울은 에베소서를 통하여,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 삶이 무엇인지를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그 새 생활의 구체적인 법칙까지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 새 생활의 구체적인 법칙까지 말했습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바울은, 새 생활 속에서 이루어져야 할 인간관계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크리스챤이 살아가야 할 새로운 삶의 자세는 서로 복종하는 생활이어야 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하지만 복종하는 생활의 전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를 공경하는 정신입니다. 22절에서 아내 된 사람들은 남편에게 순종하되 주님께 순종하듯 하라고 했고, 남편 된 사람들은 주께서 교회를 사랑하듯이 자기 아내를 사랑해야 한다고 25절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주님의 정신이 요한복음에서 말하고 있는 생명의 양식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들 인간 관계를 바르게 연결해 주고 온전케 해 주는 것은 먹는 것이나 입는 것이 아닙니다. 부부가 서로 아껴 주고 존중하며 살도록 하는 것은 가정형편이 좋아짐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행복한 가정은 집을 잘 짓고 값진 가재 도구를 들여놓으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부부가 많이 배웠다고 해서 좋은 가정을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생명의 양식이 있어야 합니다.
생명의 양식은 주님의 말씀을 말합니다. 공자나 석가가 말한 윤리나 도덕이 아니라, 그 이상의 살아있는 말씀을 이야기합니다. 실제로 우리의 생활을 변화시켜 주고 새롭게 하는 능력이 있는 생명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고 그 말씀대로 조금만 성실하게 살려고 노력하면 그 생활이 바뀌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이 노력을 많이 해서가 아니라, 말씀에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노력을 전혀 하지 않으면 말씀의 능력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웬만큼 노력하면 그 생활에 변화가 오게 되어 있습니다.
현대건설 하면 정주영 명예회장 만큼이나 유명한 분이 있습니다. 이명박 회장입니다. 요즈음 KBS 1TV에서 방영되고 있는 ‘야망의 세월’의 실제 주인공입니다. 이분은 야간고등학교를 거쳐 고려대를 나와 현대건설에 입사하여 지금 현대건설의 회장으로 있습니다.
그러니까 20대에 입사하여 이사(理事)가 되고 30대에 사장, 40대에 회장이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처럼 창업주가 아닌 공채 사원으로서 초고속 승진으로 회장이 되게 된 원인을, 이 회장은 어머니에게서 찾고 있습니다.
월간조선 9월호 393쪽에 씌어 있는 글을 그대로 옮겨 보겠습니다. “내가 그토록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잘 사는 사람들에 대한 미움을 갖지 않게 된 것은 오직 부모님들의 살아가는 태도, 특히 어머니의 기도 때문이었지요.” 이어서 기자는 이 회장의 이야기를 이렇게 적었습니다. ‘이 회장의 어머니는 아무리 힘든 일을 했어도 새벽이면 아이들을 깨워 함께 기도를 올렸다. 기도는 항상 먼 이웃과 남을 위해 복을 비는 내용에서 시작, 맨 끝에 가서야 자식들을 위한 기도로 끝을 맺었다’ 라고 말입니다. 또한 396쪽에서는 ‘이 회장이 어머니에게서 배운 가장 값진 정신은 봉사였다. 그 어머니는 남의 잔치집에 일을 도와 주러 가도 먹을 것을 얻어 오는 일이 절대로 없었다. 봉사는 봉사로 그쳐야 한다. 대가를 기대하면 불만이 생기고 비굴해진다. 그 어머니는 자식들에게도 이 같은 정신을 몸에 배게 했다’ 고 적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사람들이 “성공의 비결이 무엇이냐?” 고 물으면, 그 대답은 “봉사의 정신” 이라고 말한답니다.
결국은 이 회장의 어머니가 받아들인 기독교 정신이 그 아들 이 회장에게 이어졌고, 그 기독교 정신이 이 회장을 그처럼 빨리 성공하게 한 것입니다. 411쪽에서 기자는 이 회장이 ‘기독교 정신을 삶의 뿌리로 생각하고 있다’ 라고 적고 있습니다. 이 회장은 지금 소망교회 집사입니다.
1. 하나님을 공경하는 마음이 없어 다른 사람들에게 괴로움을 주고 버림받는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어떠합니까? 이러한 기독교 정신을 투철하게 가지고 있습니까? 주님을 섬기듯 이웃을 섬기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까? 무슨 일을 하든지, 끝난 다음에는 불만을 가지지 않습니까? 혹시나 우리가 하는 일이 다른 사람들에게 괴로움을 주거나 부담을 주는 것은 아닙니까? 혹은 우리가 빈들의 가시나무 같아서, 사람들이 집었다가 곧 내버리는, 그런 쓸모 없는 존재는 아닌지요?
여러분과 저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께서 귀히 쓰시려고 부른, 부름 받은 백성입니다. 날마다 주시는 말씀으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이 주님의 정신으로 채워져 가고 있는 줄로 믿습니다. 주께서 우리에게 보여 주신 희생과 봉사의 삶을 본받아 살려고 애쓰는 하나님 나라 백성인 것을 압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에 자신을 비추어 보아야 합니다. 구름이 걷힌 아침해와 같아서 많은 사람에게 은혜와 기쁨을 주는 생활을 하고 있는지, 아니면 빈들의 가시나무 같아서 아무 쓸모도 없을 뿐더러 오히려 피해를 주는 존재가 아닌지를 살펴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윗은 삼하 23장에서, 다른 사람에게 은혜를 끼치며 사느냐, 아니면 괴로움을 주며 사느냐 하는 관건이, 하나님을 공경하고 안 하느냐에 따라 좌우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고 공경하며 살게 되면 범죄 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며 동시에 공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어긋난 삶을 살게 되면 어김없이 불행에 빠지게 된다는 것을,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잘 압니다. 그러니 누가 불행하게 되는 길을 굳이 가려 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자기 아내를 자기 몸같이 사랑하라 하셨는데, 그 말씀을 어겨 살 경우, 불행하게 된다는 것을 알면서 자기 아내를 괴롭히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아내된 사람은 자기 남편을 존경해야 한다고 바울 선생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는데, 하나님을 믿는 다고 하면서 누가 자기 남편 흉을 보겠습니까?
만일, 자기 아내를 슬프게 하고 남편 알기를 우습게 아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은 하나님을 무시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는 사람입니다. 교회를 다니면서 남편을 존경하지 않거나 아내의 인격을 무시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성경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사람입니다. 우리 교회에는 그런 사람이 하나도 없을 줄로 믿습니다.
가장 가까이 잇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고 존경하지 못하면서 어찌 높이 계신 하나님을 알고 공경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같은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만일 하나님을 공경하지 못하고 이웃에게 참된 봉사를 하지 못하고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생명 양식의 귀중성을 깨닫지 못하고 육신의 빵에만 관심을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말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은 육의 양식이 아니라 생명의 양식입니다. 이명박 회장으로 하여금 그처럼 성공할 수 있게 한 것은, 부모가 물려준 재물이 아니라 어머니가 보여 주고 물려주신 기독교 정신입니다. 이명박 회장을 온전케 하고 풍요롭게 하여 정주영 회장의 관계를 바르게 맺게 한 것입니다.
한번인 정회장 부인이 친척되는 이의 이력서를 가지고 이의 이력서를 가지고 이명박 회장을 찾아 왔더랍니다. 취직을 시켜달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이회장은 그 부인에게 정회장이 아는 일이냐고 묻고서는, 그 일이 정회장 모르게 암암리에 이루어지기를 바래서 가져온 이력서인 것을 알게 되자, 정회장 부인의 부탁을 거절했다는 것입니다. 정회장 부인이 잘못 말하면 밥줄이 끊어지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이회장은 기독교 정신으로 그 시련을 이겨낸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 일은 정회장의 신임을 더 많이 받게되는 요인이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3.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 흔들림이 없는 삶을 살게 해 주십니다
기독교 정신이 투철하면 흔들림이 없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환경에 따라 이렇게도 변하고 저렇게도 변하는 줏대 없는 삶이 아니라, 어떤 시련이나 유혹이 있을지라도 하나님만을 두려워하고 십자가를 지려는 각오가 있게 되면,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도 유익을 주게 됩니다.
요한복음의 말씀을 보면, 기적을 베풀고 빵을 나누어 줄 때에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따르다가, 생명의 말씀을 이야기하자, 무슨 이야기인지 이해할 수 없다고 하면서 다들 예수님 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분명 예수를 믿으면 육신의 생활도 풍요롭게 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속에서 이웃과 온전한 관계를 이루게 하는 생명의 양식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살과 피를 먹어야 산다고 했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처럼, 우리도 희생하고 봉사하는 정신이 있어야 진정한 삶을 살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더 쉽게 말씀드리자면, 희생하고 봉사하는 마음이었어야 대신(對紳) 대인(對人)관계를 바르게 가질 수 있습니다. 바른 관계를 맺지 못하고 살면 살아 있으나 죽은 존재입니다.
예를 들어, 부부 사이에 희생하고 봉사하는 마음이 없다고 합시다. 그렇게 되면 남편은 남편대로 불만이 쌓이게 되고 아내는 아내대로 불평을 갖게 됩니다. 내가 한만큼 상대가 대해 주지 않는다고 하면서 피해의식을 가지고 살아가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그 부부는 서로 미워하게 되어 부부가 아닌 원수가 되어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희생하고 봉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게 되면, 비록 내가 상대에게 잘 해 주소서도 욕을 먹는다고 할지라도 불만을 갖지 않게 됩니다. 봉사란 대가를 바라고 무슨 일을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시어머니와 알밤의 이야기를 잘 압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원수처럼 으르렁대면서 사는 꼴이 보기 싫어서 남자가 꾀를 냈습니다. 아무 장에 가면 할머니를 사가는 장수가 있는데, 살진 사람이라야 값을 더 쳐 준다더라고 귓속말로 부인에게 말했습니다. 그러자 며느리는 시어머니에게 매 끼니마다 알밤을 구워서 드렸습니다. 하루 이틀 사흘이 가고 한 달이 지나자, 시어머니는 며느리에 대한 미운 감정이 사라지고 좋아지게 되었습니다. 시어머니가 며느리 칭찬을 하면서 잘 대해주자, 며느리 또한 시어머니를 공경하게 되었습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가 좋아지게 된 것을 안 주인 남자는 아내에게 다시 한번 귓속말로 속삭였습니다. “이제 어머니가 당신 덕분에 살이 오른 것 같으니, 장애 내다 팝시다” 라고 말입니다. 그러자 아내가 펄쩍 뛰었습니다. “아니, 어머니를 팔아먹는 아들이 어디 있단 말이요?” 하면서 야단을 했습니다. 남자는 아내를 보고 빙긋이 웃기만 하고 아무 대꾸도 더 이상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회복했을 뿐만 아니라, 우리들 인간 사이의 관계도 바르게 하고 새롭게 하셨습니다. 오늘 이 세상에서는 수없이 많은 작은 예수를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3. 하나님을 공경하고 주를 따름으로 영생의 길을 갑시다
하나님 공경은 말씀 순종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복이 될 줄 알고, 믿고 따르는 삶이 순종의 생활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면 영생이 있습니다. 영원한 하나님과 연결이 되면, 그 관계가 끊어지지 않는 한 우리는 생명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관계가 끊어지면 우리는 죽습니다.
우리는 작은 예수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사람들 사이를 갈라놓고 사람들을 괴롭히는 가시나무로서가 아니라, 구름이 걷힌 아침 햇빛과 같이 세상을 새롭게 하고 풍요롭게 하는 은혜의 사람이 되도록,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를 부르셔서 말씀 주시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해 주고 있습니다. ♥
성서일과 ; 삼하23:1-7, 엡5:21-33, 요6:55-69.
제목 ; 아침 해와 빈들의 가시나무
오늘 이 아침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과 함께 나눌 말씀의 제목은 ‘아침 해와 빈들의 가시나무’ 입니다. 원래의 제목은 ‘구름이 걷힌 아침 해와 빈들의 가시나무’였습니다. 제목이 너무 긴 듯 싶어서 ‘구름이 걷힌’이라는 구절을 뺐습니다.
좀 특이한 제목인고로, 그에 대한 설명이 필요한 줄로 압니다. 오늘의 본문인 사무엘하 23장 1~7절의 말씀 중에서 택한 제목입니다. 3절 말씀에서, 『백성을 정의로 다스리시는 이는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아는 사람으로서, 그는 마치 구름이 걷힌 아침해와 같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슬을 머금은 푸성귀가 아침 햇빛을 받아 자라는 것처럼, 하나님을 경외할 줄 아는 사람이 백성을 다스리면 그 백성이 그 은덕을 입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두려워 할 줄 모르는 사람이 나라를 이끌어 가게 되면, 그는 마치 빈들의 가시나무 같아서 오히려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게 된다고, 6절에서 다윗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의 말씀은,
구름이 걷힌 아침 해와 같이 모든 사람들에게 은혜를 나누어주며 사는 의로운 사람과, 가시나무와 같은 존재로서 많은 사람을 괴롭히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에 대하여 밝혀 주면서, 우리가 살아갈 방향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특별히 오늘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은, 부부나 이웃 관계가 올바르게 되려면 먼저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르게 되어 있어야 한다는 점을 밝혀 주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 드리면, 부부나 이웃 관계가 서로 존중하며 아끼는 좋은 관계를 가질 수 있으려면 하나님을 공경하며 의지하는 바른 신앙이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저는 이러한 내용의 설교를 할 때마다 정일형 박사 부부의 예를 자주 듭니다. 감리교 목사이면서 외무부 장관과 신민당 부총재를 지낸 적이 있는 정일형 박사, 그리고 우리 나라 최초의 여자 사법고시 합격자로 지금도 변호사 활동을 하고 있으면서 가정법률상담소 소장으로 있는 이태영 박사, 이들 부부는 여러 면에서 본 받을 점이 많은 분들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고 아끼면서, 서로에게 있어서 더 이상 있을 수 없는 가장 귀한 존재임을 인정하고, 그 사실을 많은 사람들에게 자랑스럽게 말하고 있습니다. 불행히도 남편 정일형 박사는 여러 해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이 두 분들의 이야기는 세월이 갈수록 더욱 아름답게 전해지리라 믿습니다.
일제 시대에 정박사가 독립운동을 하다가 감옥에 갇히게 되자, 이변호사는 콩나물 장사와 누비이불 행상을 해서 옥바라지를 하고 살림을 꾸려 나갔다고 합니다. 모진 고생을 하면서도 남편을 원망하기보다는, 독립운동을 하는 남편 둔 것을 긍지로 여겼던 것입니다.
해방 후에는, 거꾸로 남자가 여자를 위하여 이바지했습니다. 자녀를 낳아서 다 키운 주부를 서울 법대에 입학을 시켜 공부를 시킨 것입니다. 그래서 드디어 사법고시에 합격할 수 있도록 뒷받침해 주었습니다. 그러니까, 이태영 여사가 없었다면 정일형 박사가 있을 수 없었고, 또한 정일형 박사가 없었다면 오늘의 이태영 여사도 있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저는 이분들이 그처럼 복된 가정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신앙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특히, 남편 되는 정일형 박사가 전통적인 남존여비(男尊女卑)사상을 버리고 기독교 정신에 따라 여자를 한 인간으로 존중함으로써, 그 재능에 따라 여자를 한 인간으로 존중함으로써, 그 재능에 따라 공부를 하게 하여 그처럼 훌륭한 일을 많이 하게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태영 여사 또한 신앙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남편의 옥바라지를 정성껏 했을 것이며 어려운 이웃을 생각하고 지금까지 숱한 여성들을 돌볼 수 있었으리라 봅니다. 신앙이 없었다면, 비록 고등 교육을 받고 변호사가 되었을지라도, 이웃을 섬기는 삶보다는 자기만의 행복 추구에 급급했으리라 생각합니다.
신앙이 없는 사람 중에서도 여자의 인격을 존중하고 이웃의 아픔을 돌보는 이가 없지 않아 있지만, 그래도 어쩌니 저쩌니 해도 기독교 신앙이 여성의 지위를 향상시킨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며, 이웃을 위한 봉사활동 또한 대부분의 경우가 기독교에서 출발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에베소서 5장 21절에서 바울은,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공경하는 정신으로 서로 복종하십시오』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는 이 세상의 기본 요소라고 할 수 있는 부부관계에 대하여 말해 주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바울은 에베소서를 통하여,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 삶이 무엇인지를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그 새 생활의 구체적인 법칙까지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 새 생활의 구체적인 법칙까지 말했습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바울은, 새 생활 속에서 이루어져야 할 인간관계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크리스챤이 살아가야 할 새로운 삶의 자세는 서로 복종하는 생활이어야 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하지만 복종하는 생활의 전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를 공경하는 정신입니다. 22절에서 아내 된 사람들은 남편에게 순종하되 주님께 순종하듯 하라고 했고, 남편 된 사람들은 주께서 교회를 사랑하듯이 자기 아내를 사랑해야 한다고 25절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주님의 정신이 요한복음에서 말하고 있는 생명의 양식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들 인간 관계를 바르게 연결해 주고 온전케 해 주는 것은 먹는 것이나 입는 것이 아닙니다. 부부가 서로 아껴 주고 존중하며 살도록 하는 것은 가정형편이 좋아짐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행복한 가정은 집을 잘 짓고 값진 가재 도구를 들여놓으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부부가 많이 배웠다고 해서 좋은 가정을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생명의 양식이 있어야 합니다.
생명의 양식은 주님의 말씀을 말합니다. 공자나 석가가 말한 윤리나 도덕이 아니라, 그 이상의 살아있는 말씀을 이야기합니다. 실제로 우리의 생활을 변화시켜 주고 새롭게 하는 능력이 있는 생명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고 그 말씀대로 조금만 성실하게 살려고 노력하면 그 생활이 바뀌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이 노력을 많이 해서가 아니라, 말씀에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노력을 전혀 하지 않으면 말씀의 능력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웬만큼 노력하면 그 생활에 변화가 오게 되어 있습니다.
현대건설 하면 정주영 명예회장 만큼이나 유명한 분이 있습니다. 이명박 회장입니다. 요즈음 KBS 1TV에서 방영되고 있는 ‘야망의 세월’의 실제 주인공입니다. 이분은 야간고등학교를 거쳐 고려대를 나와 현대건설에 입사하여 지금 현대건설의 회장으로 있습니다.
그러니까 20대에 입사하여 이사(理事)가 되고 30대에 사장, 40대에 회장이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처럼 창업주가 아닌 공채 사원으로서 초고속 승진으로 회장이 되게 된 원인을, 이 회장은 어머니에게서 찾고 있습니다.
월간조선 9월호 393쪽에 씌어 있는 글을 그대로 옮겨 보겠습니다. “내가 그토록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잘 사는 사람들에 대한 미움을 갖지 않게 된 것은 오직 부모님들의 살아가는 태도, 특히 어머니의 기도 때문이었지요.” 이어서 기자는 이 회장의 이야기를 이렇게 적었습니다. ‘이 회장의 어머니는 아무리 힘든 일을 했어도 새벽이면 아이들을 깨워 함께 기도를 올렸다. 기도는 항상 먼 이웃과 남을 위해 복을 비는 내용에서 시작, 맨 끝에 가서야 자식들을 위한 기도로 끝을 맺었다’ 라고 말입니다. 또한 396쪽에서는 ‘이 회장이 어머니에게서 배운 가장 값진 정신은 봉사였다. 그 어머니는 남의 잔치집에 일을 도와 주러 가도 먹을 것을 얻어 오는 일이 절대로 없었다. 봉사는 봉사로 그쳐야 한다. 대가를 기대하면 불만이 생기고 비굴해진다. 그 어머니는 자식들에게도 이 같은 정신을 몸에 배게 했다’ 고 적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사람들이 “성공의 비결이 무엇이냐?” 고 물으면, 그 대답은 “봉사의 정신” 이라고 말한답니다.
결국은 이 회장의 어머니가 받아들인 기독교 정신이 그 아들 이 회장에게 이어졌고, 그 기독교 정신이 이 회장을 그처럼 빨리 성공하게 한 것입니다. 411쪽에서 기자는 이 회장이 ‘기독교 정신을 삶의 뿌리로 생각하고 있다’ 라고 적고 있습니다. 이 회장은 지금 소망교회 집사입니다.
1. 하나님을 공경하는 마음이 없어 다른 사람들에게 괴로움을 주고 버림받는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어떠합니까? 이러한 기독교 정신을 투철하게 가지고 있습니까? 주님을 섬기듯 이웃을 섬기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까? 무슨 일을 하든지, 끝난 다음에는 불만을 가지지 않습니까? 혹시나 우리가 하는 일이 다른 사람들에게 괴로움을 주거나 부담을 주는 것은 아닙니까? 혹은 우리가 빈들의 가시나무 같아서, 사람들이 집었다가 곧 내버리는, 그런 쓸모 없는 존재는 아닌지요?
여러분과 저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께서 귀히 쓰시려고 부른, 부름 받은 백성입니다. 날마다 주시는 말씀으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이 주님의 정신으로 채워져 가고 있는 줄로 믿습니다. 주께서 우리에게 보여 주신 희생과 봉사의 삶을 본받아 살려고 애쓰는 하나님 나라 백성인 것을 압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에 자신을 비추어 보아야 합니다. 구름이 걷힌 아침해와 같아서 많은 사람에게 은혜와 기쁨을 주는 생활을 하고 있는지, 아니면 빈들의 가시나무 같아서 아무 쓸모도 없을 뿐더러 오히려 피해를 주는 존재가 아닌지를 살펴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윗은 삼하 23장에서, 다른 사람에게 은혜를 끼치며 사느냐, 아니면 괴로움을 주며 사느냐 하는 관건이, 하나님을 공경하고 안 하느냐에 따라 좌우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고 공경하며 살게 되면 범죄 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며 동시에 공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어긋난 삶을 살게 되면 어김없이 불행에 빠지게 된다는 것을,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잘 압니다. 그러니 누가 불행하게 되는 길을 굳이 가려 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자기 아내를 자기 몸같이 사랑하라 하셨는데, 그 말씀을 어겨 살 경우, 불행하게 된다는 것을 알면서 자기 아내를 괴롭히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아내된 사람은 자기 남편을 존경해야 한다고 바울 선생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는데, 하나님을 믿는 다고 하면서 누가 자기 남편 흉을 보겠습니까?
만일, 자기 아내를 슬프게 하고 남편 알기를 우습게 아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은 하나님을 무시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는 사람입니다. 교회를 다니면서 남편을 존경하지 않거나 아내의 인격을 무시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성경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사람입니다. 우리 교회에는 그런 사람이 하나도 없을 줄로 믿습니다.
가장 가까이 잇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고 존경하지 못하면서 어찌 높이 계신 하나님을 알고 공경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같은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만일 하나님을 공경하지 못하고 이웃에게 참된 봉사를 하지 못하고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생명 양식의 귀중성을 깨닫지 못하고 육신의 빵에만 관심을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말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은 육의 양식이 아니라 생명의 양식입니다. 이명박 회장으로 하여금 그처럼 성공할 수 있게 한 것은, 부모가 물려준 재물이 아니라 어머니가 보여 주고 물려주신 기독교 정신입니다. 이명박 회장을 온전케 하고 풍요롭게 하여 정주영 회장의 관계를 바르게 맺게 한 것입니다.
한번인 정회장 부인이 친척되는 이의 이력서를 가지고 이의 이력서를 가지고 이명박 회장을 찾아 왔더랍니다. 취직을 시켜달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이회장은 그 부인에게 정회장이 아는 일이냐고 묻고서는, 그 일이 정회장 모르게 암암리에 이루어지기를 바래서 가져온 이력서인 것을 알게 되자, 정회장 부인의 부탁을 거절했다는 것입니다. 정회장 부인이 잘못 말하면 밥줄이 끊어지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이회장은 기독교 정신으로 그 시련을 이겨낸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 일은 정회장의 신임을 더 많이 받게되는 요인이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3.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 흔들림이 없는 삶을 살게 해 주십니다
기독교 정신이 투철하면 흔들림이 없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환경에 따라 이렇게도 변하고 저렇게도 변하는 줏대 없는 삶이 아니라, 어떤 시련이나 유혹이 있을지라도 하나님만을 두려워하고 십자가를 지려는 각오가 있게 되면,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도 유익을 주게 됩니다.
요한복음의 말씀을 보면, 기적을 베풀고 빵을 나누어 줄 때에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따르다가, 생명의 말씀을 이야기하자, 무슨 이야기인지 이해할 수 없다고 하면서 다들 예수님 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분명 예수를 믿으면 육신의 생활도 풍요롭게 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속에서 이웃과 온전한 관계를 이루게 하는 생명의 양식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살과 피를 먹어야 산다고 했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처럼, 우리도 희생하고 봉사하는 정신이 있어야 진정한 삶을 살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더 쉽게 말씀드리자면, 희생하고 봉사하는 마음이었어야 대신(對紳) 대인(對人)관계를 바르게 가질 수 있습니다. 바른 관계를 맺지 못하고 살면 살아 있으나 죽은 존재입니다.
예를 들어, 부부 사이에 희생하고 봉사하는 마음이 없다고 합시다. 그렇게 되면 남편은 남편대로 불만이 쌓이게 되고 아내는 아내대로 불평을 갖게 됩니다. 내가 한만큼 상대가 대해 주지 않는다고 하면서 피해의식을 가지고 살아가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그 부부는 서로 미워하게 되어 부부가 아닌 원수가 되어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희생하고 봉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게 되면, 비록 내가 상대에게 잘 해 주소서도 욕을 먹는다고 할지라도 불만을 갖지 않게 됩니다. 봉사란 대가를 바라고 무슨 일을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시어머니와 알밤의 이야기를 잘 압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원수처럼 으르렁대면서 사는 꼴이 보기 싫어서 남자가 꾀를 냈습니다. 아무 장에 가면 할머니를 사가는 장수가 있는데, 살진 사람이라야 값을 더 쳐 준다더라고 귓속말로 부인에게 말했습니다. 그러자 며느리는 시어머니에게 매 끼니마다 알밤을 구워서 드렸습니다. 하루 이틀 사흘이 가고 한 달이 지나자, 시어머니는 며느리에 대한 미운 감정이 사라지고 좋아지게 되었습니다. 시어머니가 며느리 칭찬을 하면서 잘 대해주자, 며느리 또한 시어머니를 공경하게 되었습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가 좋아지게 된 것을 안 주인 남자는 아내에게 다시 한번 귓속말로 속삭였습니다. “이제 어머니가 당신 덕분에 살이 오른 것 같으니, 장애 내다 팝시다” 라고 말입니다. 그러자 아내가 펄쩍 뛰었습니다. “아니, 어머니를 팔아먹는 아들이 어디 있단 말이요?” 하면서 야단을 했습니다. 남자는 아내를 보고 빙긋이 웃기만 하고 아무 대꾸도 더 이상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회복했을 뿐만 아니라, 우리들 인간 사이의 관계도 바르게 하고 새롭게 하셨습니다. 오늘 이 세상에서는 수없이 많은 작은 예수를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3. 하나님을 공경하고 주를 따름으로 영생의 길을 갑시다
하나님 공경은 말씀 순종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복이 될 줄 알고, 믿고 따르는 삶이 순종의 생활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면 영생이 있습니다. 영원한 하나님과 연결이 되면, 그 관계가 끊어지지 않는 한 우리는 생명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관계가 끊어지면 우리는 죽습니다.
우리는 작은 예수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사람들 사이를 갈라놓고 사람들을 괴롭히는 가시나무로서가 아니라, 구름이 걷힌 아침 햇빛과 같이 세상을 새롭게 하고 풍요롭게 하는 은혜의 사람이 되도록,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를 부르셔서 말씀 주시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해 주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