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찌의 길을 걷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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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찌의 길을 걷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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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양식 91-37호                                            1991.09.15.

성서일과 ; 시54:1-6, 약3:16-4:3, 막9:30-37.

제목 ; 꼴찌의 길을 걷자




 조선 성종 때에 태어나 명종 때까지 살면서 15년 동안 정승을 지낸 [상진(尙震)]이라는 인물이 있습니다. 이 분이 젊어서 벼슬길에서 돌아오는 길에, 금천 이라는 곳에서 말에게 먹이를 먹이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때 어느 할아버지가 밭을 갈다가 소 두 마리를 몰고 와서 풀을 뜯기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상진이 다가가 그 노인에게 묻기를, “두 마리 소 중에서 어느 소가 일을 더 잘합니까?” 라고 말했습니다. 상진이 두 번 세 번 거듭 물었으나 대답을 않는 것이었습니다. 상진이 그 노인을 이상하게 여기면서 말에 올라앉자, 그 노인이 수십 보를 따라와 가만 가만히 아야기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아까 묻는 말에 즉시 대답하지 못한 것을 용서하시오. 실은 두 소를 부려서 농사를 지은 지 여러 해가 되었는데 차마 한 소를 가리켜서 낫고 못하다고 말할 수가 없어서였습니다. 낫기는 작은 소가 더 좋습니다.” 이 말을 들은 상진은 말에서 내려 그 노인에게 절을 했습니다. “노인께서는 참으로 숨어있는 군자이십니다. 저에게 처세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상진은 그 후, 노인의 말을 가슴에 새겨 두고 평생 동안 남의 단점을 말하거나 서로 비교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야고보서 3장 16절에서 『시기심과 이기적인 야심이 있는 곳에는 분란과 온갖 더러운 행실이 생기게 마련입니다』라고, 야고보서 기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시기심은 자신과 남을 비교했을 때, 남이 나보다 우월하게 여겨질 경우 생기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상대를 꺾어 누르고 내가 앞서겠다는 마음이 이기적인 야심인 것입니다. 이러한 시기심과 이기적인 야심이 있는 곳에서는 서로 다툼이 일어나고 더럽고 추악한 일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사울은 아무 이유없이 다윗을 시기했습니다. 단지 국민들의 여론이 사울보다는 다윗이 더 훌륭하다는 말을 많이 하게 되자 질투심이 생겨 시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쓸데없는 싸움을 해야 했고, 끝내는 자기 스스로가 파멸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시기심과 이기적인 야심을 버리고 『위에서 내려오는 지혜(약3:17)』를 얻어야 합니다. 곧 인간의 동물적인 욕정에서 비롯된 시기심을 버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를 얻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는 성결과 화평, 양순과 관용 등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지혜를 얻게 되면, 스스로를 자랑하지 않습니다. 자기 자신의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기 때문에 자랑할 건덕지가 없습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들이 시기심과 이기적인 야심을 품으며, 자기가 잘낫다고 뽐내고 자기 것이 훌륭하다고 자랑을 합니까? 하나님은 안중에도 없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 하나님을 믿는 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기 욕심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성실한 사람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이 시기심으로 몇번이고 죽이려 하나 결코 보복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여러 번 있었으나 죽이지 않았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힘이 자신을 원수들의 힘에서 지켜줄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내 앞에 불의한 자, 나를 억울하게 하는 자가 있어도 내가 앞장서서 그를 정죄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억울함을 풀어주실 것임을 믿습니다. 끝까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제멋대로 살아가는 사람은 제 꾀에 빠져 스스로가 멸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크리스챤이 걸어야 될 길은, 자기 힘을 믿고 남과 경쟁하여 앞서 가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를 낮추고 욕심을 억제하여 십자가를 지는 일입니다. 크리스챤이 성취해야 할 길은 최고의 기쁨과 최고의 평화입니다. 다시 말해서 으뜸가는 인생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꼴찌의 길을 가야 합니다.

 예수님은 죽었으나 살았습니다. 예수님은 가장 비참한 삶을 살았으나 가장 영광스러운 길을 걸으셨습니다. 크리스챤이 가는 길은 잠깐 사는 길이 아니고 영원히 사는 길을 가고 있습니다. 잠깐 사는 길은 욕심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영원히 사는 길은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영원히 사는 생명의 길은 십자가의 길을 통과해야만 얻을 수 있는 길입니다. 내 성질과 내 고집을 꺾는 길이 십자가의 길입니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싫지만 주님이 명하신 길을 가고자 끊임없이 노력하는 삶입니다.




 1. 끝없는 시기심이 스스로를 소외시키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스승인 예수의 가르치심을 잘 배우고, 그 가르침대로 사는 것이 제자의 본분이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스승인 예수께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헤아리지 아니하고, 자신들의 욕심을 드러내며 서로 다투고 있었습니다.

 사울 왕은 왕의 본분인 백성을 잘 다스리는 일에 신경을 쓰지 아니하고 쓸데없이 다윗을 시기하고 죽이려고 좇아 다녔습니다.

 모두가 자기 자신은 잃어버리고 남과 비교하기를 좋아합니다. 그래서 시기하고 질투하는 세상입니다. 자기 나름대로의 삶을 살아가면 될 것을, 꼭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서 살려고 하는 습성이 이러한 갈등과 분쟁을 일으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내들은 자기 남편이 최고인줄 알고 다른 남편과 비교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남편들은 자기 아내가 이 세상에서 최고인줄 알고 다른 여자와 비교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성도들은 자기 교회 담임자가 최고인줄 알고 다른 교회 목사와 비교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또한 목사들은 자기 교회 성도들이 최고인 줄 알고 다른 교회 교인들과 비교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비교하는 일이 필요할 때도 있지만, 대개의 경우 시기심과 질투심만을 일으키게 됩니다. 그 시기심과 질투는 분쟁을 낳고 분쟁은 파멸을 가져오게 됩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서 살게 될 경우, 남보다 낫다고 생각하면 쓸데없는 우월감과 교만심을 갖게 되고, 남보다 못하다고 여기게 되면 소외감을 느끼게 되어 스스로를 학대하게 됩니다.

 야고보서 4장 1절에 『무엇 때문에 여러분 사이에 싸움이나 분쟁이 일어납니까? 여러분의 지체 안에서 싸우고 있는 육욕에서 생겨나는 것이 아닙니까?』라고 반문하면서, 결국은 비교하고 시기하는 것은 욕심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2. 스스로가 꼴찌가 되셔서 섬기는 길을 보여주신 하나님이십니다




 가장 높은 곳에 거룩하게 계신 분이었지만, 가장 낮은 자가 되셔서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모범으로 보야 주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남과 비교하면서 조금 낫다고 여기는, 겉으로 나타나는 우월감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것을 사랑하고 자신의 일에 충실함으로써 자기 나름대로의 긍지를 느끼며 사는 길이 꼴찌의 길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말할 수 없는 온갖 수욕을 다 당하셨지만, 십자가의 죽음은 하나님이 원하시고 자신이 걸어야 할 길이었기에 부끄러움 없이 당당하게 십자가의 길을 가셨던 것입니다. 생전에, 사람들이 자리를 같이 하기를 싫어하는 죄인들이나 좀 부족한 사람들과 자리를 같이 하면서도 부끄럽게 여기시지 않았습니다.

 내면이 충실한 사람은 누가 뭐라고 해도 별스럽지 않게 여깁니다. 속은 비었으나 겉만 번지르한 사람이 조그마한 일에도 바르르 화를 내고 신경질을 부립니다. 거듭난 사람은 누가 욕을 해도 못들은 척하고, 억울한 말을 할지라도 그냥 지나쳐 버립니다. 따져본들 득 될 것은 없고 오히려 더 속상할 일만 생길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또한 참는 자에게 복을 주시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기 때문입니다.

 크리스챤은 꼴찌의 일을 감당할 수 있을 때, 첫째 가는 영광의 자리에 참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꼴찌의 길은 남들이 싫어하는 일을 감당하고 모든 욕심과 시기심을 억누르고 살아야 하는 종의 길입니다.




 3. 진실한 자를 도와주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꼴찌의 길을 갑시다




 아무리 세상이 거꾸로 돌아가는 것처럼 보여도, 진실한 사람을 도와주시는 하나님은 살아 계십니다. 진실한 사람이란 어떤 사람입니까?

 ①자신의 것을 진정으로 아끼는 사람입니다. 자기 자신의 특성, 자기 가정, 자기 자식과 동반자, 자기 교회와 성도들, 자기 민족과 국가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지금은 마음에 흡족하지 않지만 보다 나은 내일을 생각하고 오늘의 조금의 불편은 참아 냅니다. 다른 사람이 가진 것을 부러워하지 않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바로 잘 활용하기 위하여 신경과 마음을 쓰는 사람입니다.

 ②자기의 일에 충실한 사람입니다. 불평하는 사람은 대개 자신이 해야 될 일은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교회 안에서도 성도의 본분을 다하려고 애쓰는 사람은 교회를 탓하지 않습니다. 낫 하나 제대로 갈아 쓰지 못하는 농부가 한국 사람 낫 만드는 기술을 탓합니다. 예배 시간이 너무 길다고 불평하는 사람은 대부분 예배 시간에 지각하는 사람 중에서 그러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기의 일에 충실한 사람은 남의 일에 간섭을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일을 다 마쳐 놓고 부족한 사람을 돕고자 노력합니다.

 ③다른 사람을 좀더 아끼며 섬기는 사람입니다. 자기 자식 사랑하는 것의 반만큼이라도 시부모 공경하고 남의 자식 귀하게 여길 줄 안다면, 하나님의 큰 축복을 받은 사람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남이 보면 별스럽지 않은 것을 가지고 “우리 애는 어쩌면 그렇게 영특한지 모른다” 고 호들갑 떠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런 눈의 반만 뜨고 남의 자식을 바라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굳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출 필요 없습니다. 조금만 이웃에게 신경을 쓰게 되면, 지금보다 훨씬 아름다운 세상을 이루어 나갈 수가 있습니다. [여호와의 증인]은 비록 이단이라 하지만, 본받을 점도 있습니다. 성도들 가운데서 어떤 성도가 어려운 일을 당하게 되면, 온 교우가 힘을 합쳐 어려움을 당한 성도를 그 곤경에서 구출해 내는데 전력을 기울이게 된다는 것입니다.

 꼴찌가 되는 일은 으뜸 되는 것보다 더 힘들지 모릅니다. 그러나 가능합니다. 우리 크리스챤은 하나님이 도와주시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예수님은 마가복음 9장 36-37절에서 말씀하십니다. 『첫째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꼴찌가 되어 모든 사람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처럼 금방 금방 일을 처리하지 않으십니다. 잘못된 사람은 돌아오기를 꾸준히 기다리시고, 잘하는 사람은 좀더 잘하기를 바라고 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옳고 그른 것을 심판하시오 옳은 자는 들어 쓰시고 그른 자는 자기 갈 길로 가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누가 옳고 그르냐 따질 것이 아닙니다. 누가 더 나은가 못한가? 누가 더 잘하고 더 못하는가 비교할 것이 아닙니다.

 과연 하나님은 오늘 나를 어떻게 생각하실 지, 내가 하는 일을 옳다고 여기실지 생각을 해 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그릇된 것은 고쳐 가고 옳은 일은 더욱 힘써서, 자기에게 주어진 일, 곧 꼴찌의 일을 성실히 이루어 나가야 합니다.

 여러분은 모두 그렇게 하실 수 있습니다. 그것은 여러분 하나 하나가 하나님의 귀한 아들이요, 딸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서 축복 받는 생애를 이루어 나가시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이 말씀을 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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