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히 잘난 체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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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10 19:01
영혼의 양식 91-38호 1991.09.22.
성서일과 ; 욥28:20-28,약3:13-18, 막:9-30-37.
제목 ; 공연히 잘난 체하지 말라
북한산은 참 좋습니다. 서울 주변에서는 그래도 가장 아름다운 산이라 할 수 있지 않나 싶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아주 많은 사람들이 북한산을 찾습니다. 저도 몇 차례 오른 적이 있습니다만, 오를 때마다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북한산이 아름다우면서도 지저분한 구석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쓰레기를 많이 버리고 간다는 이야기일 것 같습니다.
북한산을 오르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북한산의 이모저모를 보고 “과연 아름다운 산이로다” 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도처에 쌓여 있는 쓰레기 더미와 곳곳에 널려 있는 휴지와 꽁초를 보면서 “지저분하다” 는 느낌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북한산의 아름다움을 지켜 보존해야 할 사람은 누구입니까?
어는 공부원 한 분이 휴일이면 북한산을 오르면서 오물을 줍기 시작했습니다. 휴지나 꽁초를 버리는 사람이 있으면 그 잘못을 지적하면서 버린 것을 다시 줍도록 했더니, 어떤 사람은 미안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줍는 이가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시비를 걸어오더라는 것입니다. “당신이 뭔데, 이래라 저래라 하는 거요?” 하고 말입니다. 그래서 공무원은 그 다음부터 말없이 휴지를 계속 줍기 시작했습니다.
담배꽁초를 버리는 이가 있으면, 그 사람이 보는 앞에서 그 꽁초를 주워 담는 것입니다. 휴지를 버리면 얼른 달려가서 그 휴지를 주웠습니다. 그랬더니, 지금은 북한산 등산로 주변이 아주 많이 깨끗해졌다는 것입니다. 휴일이면 하루 종일 북한산을 오르내리면서 휴지를 줍기 시작한 그 공무원의 수고의 결과인 것입니다.
어느 누가 이 공무원을 보고 미련한 사람이라 말하겠습니까? 휴일이면 하루 편안히 쉴 일이지, 돈도 생기지 않는 일을 욕을 먹어 가면서 그런 일을 하느냐고 말입니다. 남들은 휴일이 되면 가족과 함께 자가용을 타고 이곳 저곳 구경을 다니는데, 자기가 무슨 특별한 날 애국자라고 하루 종일 땀 흘리면서 그런 헛수고를 하는지 모르겠다고 하면서 타박할 사람이 없을른지요? 아니, 있습니다.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 우리 주변에는 많이 있을 것입니다.
자기 밖에 모르는 사람입니다. 자기 자식과 자기 가족만을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국토야 망가지든 말든 골프장을 잔뜩 만들어서 돈만 잔뜩 벌어 보겠다는 사람들입니다. 국가 경제가 흔들리면서 수지 적자가 80억 달러를 넘어섰다는 데도, 내 돈 내 맘대로 쓰는데 누가 뭐라고 하랴, 하면서 값비싼 외제만을 사 쓰는 사람들입니다. 특히 국산 얼굴에 맞지도 않는 외제 화장품을 사 바르는 골빈 여자분들, 자기들은 몸에 해롭다고 금연 운동을 더욱 열심히 일으키면서 우리에게 수입을 강요하는 미국 사람들의 양담배를 사서 피우는 골빈 남자분들 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아무 돈벌이도 되지 않는 북한산 휴지 줍기를 계속하는 그 공무원을 향하여 미련하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미련하다고 말하는 그들을 향하여 오히려 『공연히 잘난 체하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야고보서 3:14에, 『여러분은 마음속에 고약한 시기심과 이기적인 야심을 품고 있으니 공연히 잘난 체하지 마십시오. 진리를 거슬러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되겠습니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말씀을 좀더 알기 쉽게 하기 위하여 예화를 하나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딸만 둘 둔 어느 홀로된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가진 재산이 없는 남편이 갑작스레 죽는 바람에, 이 어머니는 살길이 막막했습니다. 그런데 우연찮게 부엌 바닥에서, 일평생 자식을 가르치며 먹고살아도 남을 만한 금 덩어리를 발견했습니다. 어머니는 정말 기뻤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앞날이 걱정되던 이 어머니에게는 금의 발견이 하나님의 보살피심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순간적으로 이 어머니는 그래서는 안된다는 생각에 그 금덩어리를 더 깊이 파묻었습니다.
이 어머니는 그 후로도 그 금덩어리를 꺼내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것은 그 금덩어리가 이 어머니와 자식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리라 생각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그 금덩어리는 불행의 씨앗이 되어 자식들을 망치리라 생각했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 어머니가 미련한 짓을 했다고 보십니까? 지혜로운 어머니였다고 보십니까? 그 어머니는 많은 고생을 하면서 두 딸을 키웠습니다. 그 결과 그 딸들은 그 어머니의 고생을 눈으로 보면서 컸기 때문에 어머니의 소원대로 바르게 자라서 어머니를 잘 뫼시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이 어머니는 당장 눈앞의 이익이나 편하게 사는 것을 생각지 않고 먼 앞날을 내다보아 그 황금을 땅에 다시 묻어버린 것입니다.
오늘날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한푼이라도 더 다른 사람보다 약삭빠르게 많이 챙겨서 자기 소유로 삼는 것을 지혜가 있고 똑똑한 일로 여기고 있습니다. 북한산의 공무원처럼 자기 일 돌아보지 아니하고 봉사하는 일은 미련한 짓으로 생각합니다. 더군다나 굴러 들어온 황금을 다시 파묻은 그 어머니의 행동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쑤군댈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야 손해를 보든 말든 땅 투기 아파트 투기로 한몫 잡으려는 사람들의 눈으로 볼 때에는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일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에서 가르치고 있는 지혜는 분명합니다. 눈으로 볼 수 있는 가시적인 세계에서 도저히 찾을 수가 없는 것이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인간이 최종적으로 웃을 수 있는 길을 가르쳐 줍니다. 당장 눈앞의 이익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라, 먼 훗날 마지막 순간에 승리의 기쁨을 맛볼 수 잇도록 해 주는 것이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지금은 모릅니다. 누가 정말 좋은 길을 가고 있는지 판다하기가 어렵습니다. 누가 더 복된 길을 택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과연 어떤 식으로 사는 것이 복이 될는지 지금은 잘 모릅니다. 야고보서에 있는 말씀대로 이기적인 야심을 가지고 남보란 듯이 떵떵거리며 사는 것이 좋은 일인지, 아니면 성경 말씀대로 미련스럽게 손해를 보면서 사는 것이 옳은 것인지 지금은 판단이 잘 안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우리는 잘 압니다. 욥기28:28에 있는 말씀대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을 떠나 사는 것』이 지혜요, 슬기로운 인생 길임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야고보서 3:13에 있는 말씀처럼, 지혜로운 사람이란 『온유한 마음을 가지고 착하게 사는 것』임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손해가 나는 것 같고 별 이익이 없는 일이지만 하나님의 뜻대로 정직하고 바르게 살면 하나님께서 복된 길로 인도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악한 자의 길은 멸망에 이르나,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보살피신다』는 시편1:6의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질 것을 믿습니다.
1. 공연히 잘난 체함으로써 지혜의 길을 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시편 73편의 기자는 어리석은 자들을 부러워하고 악한 자들이 잘 사는 것을 시샘했다고 했습니다. 고생이 무엇인지 조금도 모르고 거만과 횡포를 부리며 거들먹거리는 사람들이 세상에서 판치는 것을 보고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했다고 했습니다. 모든 악한 짓은 다 하는데 편안히 잘 살고 그들의 재산이 날이 갈수록 늘어만 가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뭣하러 정직하게 살며 착하게 살 것인가 하고 스스로 반문하기를 여러 번 했습니다.
그러나 시편 기자는 악인의 종말을 보고서야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의 전에 나아가서야, 하나님의 말씀이 옳았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세상사는 것으로 인생이 다 끝나는 것이라면 정직하게 사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하지만 사람이 죽는 모습을 보면 내세를 바라보고 가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에는 너무나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내세에 대한 소망이 있는 사람은 평온하게 눈을 감지만, 내세가 준비되어 있지 않은 사람은 죽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는 모습이 확연합니다. 갈곳이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많은 시신을 만져 보았지만, 믿다가 죽은 이의 시신은 부드러우나 불신자의 시신은 뻣뻣한 것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인생이 이 세상사는 것으로 끝이 아님을 분명히 인식해야 합니다. 살다가 죽으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죽는 순간부터 우리의 삶은 새롭게 시작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을 살되, 욕심대로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말씀대로 정직하게 살아야 합니다.
내세에 대한 소망이 없는 사람들은 세상 자랑에 여념이 없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절약을 하여 한푼 두푼 모으기에 열심이지만, 미련한 사람은 오늘 하루 벌어서 오늘 다 써버리고 맙니다. 마찬가지로 내세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대로 이웃을 돌아보며 살아갑니다. 내세 소망이 없는 사람들은 이웃에 대한 관심은 전혀 갖지 아니하고, 어떻게 해서든지 내것 만들어 가지고 뽐내며 살기를 원합니다. 혹 믿음이 없는 사람도 이웃을 돕기는 하지만, 그것도 실상은 “내가 이렇게 착한 사람이오” 라고 생색내기 위한 것이 대부분입니다.
욥기 28:23에 있는 말씀처럼, 지혜는 하나님께로 부터만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바로 깨달아야, 자랑하지 않고 생색내지 않는 참 이웃 사랑을 할 수가 있습니다.
마가복음 9장에 있는 말씀을 보면, 그 때까지도 예수의 제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잘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것은 제자들이 ‘우리 중에서 누가 가장 높은 사람이냐?’ 하는 문제로 다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조금 전에 예수님께서는 두 번째로 당신이 십자가에 달려 죽게 될 것임을 말씀했건만, 제자들은 자기들 자랑으로 여념이 없었던 것입니다.
‘나는 이만큼 공로가 있으니 내가 제일이다’, ‘나는 이런 저런 일을 했으니 내가 단연 으뜸 공로자다’ 하면서 서로가 제일이라고 싸움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보실 때에는 한심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스승인 예수님은 죽을 일을 걱정하고 있는데, 제자들은 자기들 자랑에 분분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아무튼 속에 든 것이 없는 사람이 자기 자랑을 잘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은 것이 있다면 결코 하나님 앞에서 자랑을 할 수가 없습니다. 무슨 일이든지 하나님이 능력을 주셔야만 할 수 있는 일인데, 자기가 한 줄로 알고 자랑을 한다면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는 불경(不敬)을 저지르게 되는 것입니다.
금덩어리를 땅에 다시 묻는 어머니도, 자식들이 고생을 모르고 자라면 어머니도 몰라보는 불효자식이 될까봐 그렇게 했을 것입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부모 덕을 많이 본 사람이 부모 원망은 더 많이 하는 법입니다. 어렵게 자란 사람이 부모의 은혜를 기억하고 삽니다.
오늘 우리 주변에서 평화를 깨뜨리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자기만이 잘났다고 뽐내며 자랑하는 사람입니다. 실상은 자기 할 도리 다하지 못하면서 자기가 제일 의롭게 사는 줄로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은 다 틀려먹었고 자신만이 가장 옳은 길로 가고 있노라고 긍지를 여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린아이까지라도 예수의 이름으로 용납할 수 있을 때에야 예수를 바로 믿게 되는 것이라고, 예수님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린아이가 뭘 압니까?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을 어거지로 떼 쓸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어른이 윽박지르니까 아무 소리 없지, 가만히 내버려두면 가관이 아닐 것입니다. 어른이 생각할 때에는 뻔히 실패할 일을 굳이 하겠노라고 고집부리는 사춘기의 자녀들, 무슨 수로 막겠습니까?
하지만 어른들은 자기들도 그런 과정을 겪었기 때문에 가당치도 않은 어린 사람들의 일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런 저런 경험을 많이 한 어른들은 이미 재고 저리 재느라 무슨 일을 제대로 못하지만, 나이 어린 사람들은 무조건 덤벼들고 일을 저질러 놓고 봅니다. 그러니, 어른들이 볼 때에는 답답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 인간들이 하는 짓이 얼마나 답답하겠습니까? 하지만 하나님은 인간들을 억압하지 않습니다. 너그럽게 용서하시며 참고 기다리십니다. 우리가 자녀들을 윽박지르듯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야단치신다면, 이 세상의 그 누가 남아 있을 수 있겠습니까?
2. 하나님은 우리에게 지혜를 주셔서 온유한 마음을 가지고 착한 생활을 하도록 해 주십니다
내 생각이 제일 옳다고 여기는 교만한 마음, 내가 제일 잘한다고 뽐내는 자세를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어린아이까지도 이해할 수 있는 너그러운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게 보통 힘든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입니다. 죽는 순간까지 우리의 마음을 넓히기 위하여 기도하고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야고보서 3장 17절의 말씀을 보니,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는 순결과 평화, 자비와 착한 행실, 그리고 점잖고 고분고분한 생활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지혜는, 억지로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순리에 순응해야 합니다. 거짓으로 해서는 안됩니다. 야고보서 3장 14절 말씀에, 『진리를 거슬러 거짓말을 해서는 안된다』고 했습니다. 특히 양심에 어긋나는 일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양심을 맑게 해 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달아야 양심이 깨끗해지게 됩니다. 거짓없이 깨끗한 양심대로 사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이 사회는 평화로운 세상이 됩니다. 욕을 먹으면서도 꾸준히 오물을 주은 공무원 하나가 북한산을 깨끗하게 한 것처럼, 오늘 우리가 사는 이 사회도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대로 살면 살기 좋은 세상이 됩니다.
3. 온유한 마음을 가지고 착한 생활을 함으로써 지혜의 삶을 삽시다
오늘의 말씀을 줄여서 말씀드리면, 강퍅한 마음을 버리고 온유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강퍅한 마음은 세상 욕심과 자랑에서 나오고, 그 세상 욕심과 자랑은 내세에 대한 소망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삶이란,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신대로 사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지금 뿐만 아니라 미래의 일까지도 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간은 현재는 알지만 미래는 모르므로, 잘못 선택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내가 어떻게 살아야 정말 지혜로운 삶인지 모른다는 말입니다. 금을 버려야 자식을 잘 키울 수 있을지, 금을 팔아 돈을 많이 가지고 있어야 자식을 잘 가르칠 수 있을지, 우리는 판단을 잘 할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미래까지 책임져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면 지혜로운 삶을 살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이 지금은 손해 같으나 나중에는 이익이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지금 온유한 마음을 가지고 살면 미련하다는 소리를 들을지 모르나, 나중에는 옳은 삶을 살았음을 저들도 알게 됩니다. 지금 하나님의 진리대로 이웃을 도와가며 살면, 생활도 쪼들리고 힘든 게 한 두 가지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열심히 진리에 순종하면, 그 기쁨의 열매를 거두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혜로운 삶이란 지금은 죽는 것입니다. 바보처럼 죽어지는 것입니다. 아무 불평이나 불만하지 않고, 이유나 핑계 없이 조용히 그리고 겸손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답답한 소리를 많이 하고 이해를 못해 주더라도, 우리는 저들을 야단치거나 원망하지 말고 이해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진리를 알고 저들은 진리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진리를 모르는 사람이 무슨 말인들 못하겠습니까? 설득시키려고 애쓸 필요도 없습니다. 알아듣지 못한다고 야단칠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는 하늘을 바라보고 저들은 땅을 보고 있기 때문에, 하늘의 이치를 깨우쳐 준다는 것이 그리 쉽지 않습니다.
문제는 오늘 우리가 하늘에 속한 사람처럼 살 수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온유하고 겸손하며, 편견과 위선이 없는 평화의 삶을 살 수 있어야 합니다. 고약한 시기심과 이기적인 야심을 가지고 공연히 잘난 체하지 말라는 야고보 선생의 말씀을 귀 흘려듣지 말고, 마음속에 담아 귀중한 교훈으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위로와 평강이 오늘 추석 명절을 맞이하여 주일 예배에 참석하신 여러분 모두에게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
성서일과 ; 욥28:20-28,약3:13-18, 막:9-30-37.
제목 ; 공연히 잘난 체하지 말라
북한산은 참 좋습니다. 서울 주변에서는 그래도 가장 아름다운 산이라 할 수 있지 않나 싶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아주 많은 사람들이 북한산을 찾습니다. 저도 몇 차례 오른 적이 있습니다만, 오를 때마다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북한산이 아름다우면서도 지저분한 구석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쓰레기를 많이 버리고 간다는 이야기일 것 같습니다.
북한산을 오르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북한산의 이모저모를 보고 “과연 아름다운 산이로다” 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도처에 쌓여 있는 쓰레기 더미와 곳곳에 널려 있는 휴지와 꽁초를 보면서 “지저분하다” 는 느낌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북한산의 아름다움을 지켜 보존해야 할 사람은 누구입니까?
어는 공부원 한 분이 휴일이면 북한산을 오르면서 오물을 줍기 시작했습니다. 휴지나 꽁초를 버리는 사람이 있으면 그 잘못을 지적하면서 버린 것을 다시 줍도록 했더니, 어떤 사람은 미안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줍는 이가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시비를 걸어오더라는 것입니다. “당신이 뭔데, 이래라 저래라 하는 거요?” 하고 말입니다. 그래서 공무원은 그 다음부터 말없이 휴지를 계속 줍기 시작했습니다.
담배꽁초를 버리는 이가 있으면, 그 사람이 보는 앞에서 그 꽁초를 주워 담는 것입니다. 휴지를 버리면 얼른 달려가서 그 휴지를 주웠습니다. 그랬더니, 지금은 북한산 등산로 주변이 아주 많이 깨끗해졌다는 것입니다. 휴일이면 하루 종일 북한산을 오르내리면서 휴지를 줍기 시작한 그 공무원의 수고의 결과인 것입니다.
어느 누가 이 공무원을 보고 미련한 사람이라 말하겠습니까? 휴일이면 하루 편안히 쉴 일이지, 돈도 생기지 않는 일을 욕을 먹어 가면서 그런 일을 하느냐고 말입니다. 남들은 휴일이 되면 가족과 함께 자가용을 타고 이곳 저곳 구경을 다니는데, 자기가 무슨 특별한 날 애국자라고 하루 종일 땀 흘리면서 그런 헛수고를 하는지 모르겠다고 하면서 타박할 사람이 없을른지요? 아니, 있습니다.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 우리 주변에는 많이 있을 것입니다.
자기 밖에 모르는 사람입니다. 자기 자식과 자기 가족만을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국토야 망가지든 말든 골프장을 잔뜩 만들어서 돈만 잔뜩 벌어 보겠다는 사람들입니다. 국가 경제가 흔들리면서 수지 적자가 80억 달러를 넘어섰다는 데도, 내 돈 내 맘대로 쓰는데 누가 뭐라고 하랴, 하면서 값비싼 외제만을 사 쓰는 사람들입니다. 특히 국산 얼굴에 맞지도 않는 외제 화장품을 사 바르는 골빈 여자분들, 자기들은 몸에 해롭다고 금연 운동을 더욱 열심히 일으키면서 우리에게 수입을 강요하는 미국 사람들의 양담배를 사서 피우는 골빈 남자분들 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아무 돈벌이도 되지 않는 북한산 휴지 줍기를 계속하는 그 공무원을 향하여 미련하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미련하다고 말하는 그들을 향하여 오히려 『공연히 잘난 체하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야고보서 3:14에, 『여러분은 마음속에 고약한 시기심과 이기적인 야심을 품고 있으니 공연히 잘난 체하지 마십시오. 진리를 거슬러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되겠습니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말씀을 좀더 알기 쉽게 하기 위하여 예화를 하나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딸만 둘 둔 어느 홀로된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가진 재산이 없는 남편이 갑작스레 죽는 바람에, 이 어머니는 살길이 막막했습니다. 그런데 우연찮게 부엌 바닥에서, 일평생 자식을 가르치며 먹고살아도 남을 만한 금 덩어리를 발견했습니다. 어머니는 정말 기뻤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앞날이 걱정되던 이 어머니에게는 금의 발견이 하나님의 보살피심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순간적으로 이 어머니는 그래서는 안된다는 생각에 그 금덩어리를 더 깊이 파묻었습니다.
이 어머니는 그 후로도 그 금덩어리를 꺼내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것은 그 금덩어리가 이 어머니와 자식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리라 생각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그 금덩어리는 불행의 씨앗이 되어 자식들을 망치리라 생각했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 어머니가 미련한 짓을 했다고 보십니까? 지혜로운 어머니였다고 보십니까? 그 어머니는 많은 고생을 하면서 두 딸을 키웠습니다. 그 결과 그 딸들은 그 어머니의 고생을 눈으로 보면서 컸기 때문에 어머니의 소원대로 바르게 자라서 어머니를 잘 뫼시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이 어머니는 당장 눈앞의 이익이나 편하게 사는 것을 생각지 않고 먼 앞날을 내다보아 그 황금을 땅에 다시 묻어버린 것입니다.
오늘날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한푼이라도 더 다른 사람보다 약삭빠르게 많이 챙겨서 자기 소유로 삼는 것을 지혜가 있고 똑똑한 일로 여기고 있습니다. 북한산의 공무원처럼 자기 일 돌아보지 아니하고 봉사하는 일은 미련한 짓으로 생각합니다. 더군다나 굴러 들어온 황금을 다시 파묻은 그 어머니의 행동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쑤군댈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야 손해를 보든 말든 땅 투기 아파트 투기로 한몫 잡으려는 사람들의 눈으로 볼 때에는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일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에서 가르치고 있는 지혜는 분명합니다. 눈으로 볼 수 있는 가시적인 세계에서 도저히 찾을 수가 없는 것이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인간이 최종적으로 웃을 수 있는 길을 가르쳐 줍니다. 당장 눈앞의 이익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라, 먼 훗날 마지막 순간에 승리의 기쁨을 맛볼 수 잇도록 해 주는 것이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지금은 모릅니다. 누가 정말 좋은 길을 가고 있는지 판다하기가 어렵습니다. 누가 더 복된 길을 택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과연 어떤 식으로 사는 것이 복이 될는지 지금은 잘 모릅니다. 야고보서에 있는 말씀대로 이기적인 야심을 가지고 남보란 듯이 떵떵거리며 사는 것이 좋은 일인지, 아니면 성경 말씀대로 미련스럽게 손해를 보면서 사는 것이 옳은 것인지 지금은 판단이 잘 안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우리는 잘 압니다. 욥기28:28에 있는 말씀대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을 떠나 사는 것』이 지혜요, 슬기로운 인생 길임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야고보서 3:13에 있는 말씀처럼, 지혜로운 사람이란 『온유한 마음을 가지고 착하게 사는 것』임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손해가 나는 것 같고 별 이익이 없는 일이지만 하나님의 뜻대로 정직하고 바르게 살면 하나님께서 복된 길로 인도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악한 자의 길은 멸망에 이르나,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보살피신다』는 시편1:6의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질 것을 믿습니다.
1. 공연히 잘난 체함으로써 지혜의 길을 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시편 73편의 기자는 어리석은 자들을 부러워하고 악한 자들이 잘 사는 것을 시샘했다고 했습니다. 고생이 무엇인지 조금도 모르고 거만과 횡포를 부리며 거들먹거리는 사람들이 세상에서 판치는 것을 보고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했다고 했습니다. 모든 악한 짓은 다 하는데 편안히 잘 살고 그들의 재산이 날이 갈수록 늘어만 가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뭣하러 정직하게 살며 착하게 살 것인가 하고 스스로 반문하기를 여러 번 했습니다.
그러나 시편 기자는 악인의 종말을 보고서야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의 전에 나아가서야, 하나님의 말씀이 옳았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세상사는 것으로 인생이 다 끝나는 것이라면 정직하게 사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하지만 사람이 죽는 모습을 보면 내세를 바라보고 가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에는 너무나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내세에 대한 소망이 있는 사람은 평온하게 눈을 감지만, 내세가 준비되어 있지 않은 사람은 죽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는 모습이 확연합니다. 갈곳이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많은 시신을 만져 보았지만, 믿다가 죽은 이의 시신은 부드러우나 불신자의 시신은 뻣뻣한 것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인생이 이 세상사는 것으로 끝이 아님을 분명히 인식해야 합니다. 살다가 죽으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죽는 순간부터 우리의 삶은 새롭게 시작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을 살되, 욕심대로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말씀대로 정직하게 살아야 합니다.
내세에 대한 소망이 없는 사람들은 세상 자랑에 여념이 없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절약을 하여 한푼 두푼 모으기에 열심이지만, 미련한 사람은 오늘 하루 벌어서 오늘 다 써버리고 맙니다. 마찬가지로 내세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대로 이웃을 돌아보며 살아갑니다. 내세 소망이 없는 사람들은 이웃에 대한 관심은 전혀 갖지 아니하고, 어떻게 해서든지 내것 만들어 가지고 뽐내며 살기를 원합니다. 혹 믿음이 없는 사람도 이웃을 돕기는 하지만, 그것도 실상은 “내가 이렇게 착한 사람이오” 라고 생색내기 위한 것이 대부분입니다.
욥기 28:23에 있는 말씀처럼, 지혜는 하나님께로 부터만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바로 깨달아야, 자랑하지 않고 생색내지 않는 참 이웃 사랑을 할 수가 있습니다.
마가복음 9장에 있는 말씀을 보면, 그 때까지도 예수의 제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잘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것은 제자들이 ‘우리 중에서 누가 가장 높은 사람이냐?’ 하는 문제로 다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조금 전에 예수님께서는 두 번째로 당신이 십자가에 달려 죽게 될 것임을 말씀했건만, 제자들은 자기들 자랑으로 여념이 없었던 것입니다.
‘나는 이만큼 공로가 있으니 내가 제일이다’, ‘나는 이런 저런 일을 했으니 내가 단연 으뜸 공로자다’ 하면서 서로가 제일이라고 싸움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보실 때에는 한심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스승인 예수님은 죽을 일을 걱정하고 있는데, 제자들은 자기들 자랑에 분분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아무튼 속에 든 것이 없는 사람이 자기 자랑을 잘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은 것이 있다면 결코 하나님 앞에서 자랑을 할 수가 없습니다. 무슨 일이든지 하나님이 능력을 주셔야만 할 수 있는 일인데, 자기가 한 줄로 알고 자랑을 한다면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는 불경(不敬)을 저지르게 되는 것입니다.
금덩어리를 땅에 다시 묻는 어머니도, 자식들이 고생을 모르고 자라면 어머니도 몰라보는 불효자식이 될까봐 그렇게 했을 것입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부모 덕을 많이 본 사람이 부모 원망은 더 많이 하는 법입니다. 어렵게 자란 사람이 부모의 은혜를 기억하고 삽니다.
오늘 우리 주변에서 평화를 깨뜨리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자기만이 잘났다고 뽐내며 자랑하는 사람입니다. 실상은 자기 할 도리 다하지 못하면서 자기가 제일 의롭게 사는 줄로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은 다 틀려먹었고 자신만이 가장 옳은 길로 가고 있노라고 긍지를 여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린아이까지라도 예수의 이름으로 용납할 수 있을 때에야 예수를 바로 믿게 되는 것이라고, 예수님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린아이가 뭘 압니까?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을 어거지로 떼 쓸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어른이 윽박지르니까 아무 소리 없지, 가만히 내버려두면 가관이 아닐 것입니다. 어른이 생각할 때에는 뻔히 실패할 일을 굳이 하겠노라고 고집부리는 사춘기의 자녀들, 무슨 수로 막겠습니까?
하지만 어른들은 자기들도 그런 과정을 겪었기 때문에 가당치도 않은 어린 사람들의 일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런 저런 경험을 많이 한 어른들은 이미 재고 저리 재느라 무슨 일을 제대로 못하지만, 나이 어린 사람들은 무조건 덤벼들고 일을 저질러 놓고 봅니다. 그러니, 어른들이 볼 때에는 답답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 인간들이 하는 짓이 얼마나 답답하겠습니까? 하지만 하나님은 인간들을 억압하지 않습니다. 너그럽게 용서하시며 참고 기다리십니다. 우리가 자녀들을 윽박지르듯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야단치신다면, 이 세상의 그 누가 남아 있을 수 있겠습니까?
2. 하나님은 우리에게 지혜를 주셔서 온유한 마음을 가지고 착한 생활을 하도록 해 주십니다
내 생각이 제일 옳다고 여기는 교만한 마음, 내가 제일 잘한다고 뽐내는 자세를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어린아이까지도 이해할 수 있는 너그러운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게 보통 힘든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입니다. 죽는 순간까지 우리의 마음을 넓히기 위하여 기도하고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야고보서 3장 17절의 말씀을 보니,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는 순결과 평화, 자비와 착한 행실, 그리고 점잖고 고분고분한 생활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지혜는, 억지로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순리에 순응해야 합니다. 거짓으로 해서는 안됩니다. 야고보서 3장 14절 말씀에, 『진리를 거슬러 거짓말을 해서는 안된다』고 했습니다. 특히 양심에 어긋나는 일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양심을 맑게 해 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달아야 양심이 깨끗해지게 됩니다. 거짓없이 깨끗한 양심대로 사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이 사회는 평화로운 세상이 됩니다. 욕을 먹으면서도 꾸준히 오물을 주은 공무원 하나가 북한산을 깨끗하게 한 것처럼, 오늘 우리가 사는 이 사회도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대로 살면 살기 좋은 세상이 됩니다.
3. 온유한 마음을 가지고 착한 생활을 함으로써 지혜의 삶을 삽시다
오늘의 말씀을 줄여서 말씀드리면, 강퍅한 마음을 버리고 온유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강퍅한 마음은 세상 욕심과 자랑에서 나오고, 그 세상 욕심과 자랑은 내세에 대한 소망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삶이란,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신대로 사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지금 뿐만 아니라 미래의 일까지도 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간은 현재는 알지만 미래는 모르므로, 잘못 선택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내가 어떻게 살아야 정말 지혜로운 삶인지 모른다는 말입니다. 금을 버려야 자식을 잘 키울 수 있을지, 금을 팔아 돈을 많이 가지고 있어야 자식을 잘 가르칠 수 있을지, 우리는 판단을 잘 할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미래까지 책임져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면 지혜로운 삶을 살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이 지금은 손해 같으나 나중에는 이익이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지금 온유한 마음을 가지고 살면 미련하다는 소리를 들을지 모르나, 나중에는 옳은 삶을 살았음을 저들도 알게 됩니다. 지금 하나님의 진리대로 이웃을 도와가며 살면, 생활도 쪼들리고 힘든 게 한 두 가지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열심히 진리에 순종하면, 그 기쁨의 열매를 거두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혜로운 삶이란 지금은 죽는 것입니다. 바보처럼 죽어지는 것입니다. 아무 불평이나 불만하지 않고, 이유나 핑계 없이 조용히 그리고 겸손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답답한 소리를 많이 하고 이해를 못해 주더라도, 우리는 저들을 야단치거나 원망하지 말고 이해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진리를 알고 저들은 진리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진리를 모르는 사람이 무슨 말인들 못하겠습니까? 설득시키려고 애쓸 필요도 없습니다. 알아듣지 못한다고 야단칠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는 하늘을 바라보고 저들은 땅을 보고 있기 때문에, 하늘의 이치를 깨우쳐 준다는 것이 그리 쉽지 않습니다.
문제는 오늘 우리가 하늘에 속한 사람처럼 살 수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온유하고 겸손하며, 편견과 위선이 없는 평화의 삶을 살 수 있어야 합니다. 고약한 시기심과 이기적인 야심을 가지고 공연히 잘난 체하지 말라는 야고보 선생의 말씀을 귀 흘려듣지 말고, 마음속에 담아 귀중한 교훈으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위로와 평강이 오늘 추석 명절을 맞이하여 주일 예배에 참석하신 여러분 모두에게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