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롭고 아름다우며 깊은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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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롭고 아름다우며 깊은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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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양식 91-40호                                            1991.10.06.

성서일과 ; 창2:18-24, 히1:1-4, 2:9-11, 막10:2-16.

제목 ; 신비롭고 아름다우며 깊은 관계




 가을입니다. 모든 곡식이 알차게 익어 가는 참, 좋은 가을입니다. 따뜻한 가을 햇살에 곡식들이 무르익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합니다. 삭막한 도시 주변에서 살다가 이곳에 와서 노랗게 익어 가는 벼와 감들을 바라보노라니, 가을 정취에 흠뻑 빠져 들어가는 듯 싶습니다.

 가을은 곡식만 익어 가는 계절이 아니라, 남녀간의 사랑도 무르익어 결실을 맺는 철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이곳 저곳에서 결혼식을 올린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도 몇 가정이 집안 내 결혼식에 참석하느라 빠진 가정이 있습니다.

 결혼을 해야 합니다. 남녀가 성장을 하여 나이가 차면 결혼을 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결혼을 해야 부모님을 기쁘게 해 드릴 수 있는 것이고 하나님께도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특별한 사명이 있어서 결혼을 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결혼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성경에서도 창세기 2장 24절의 말씀을 보면,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라고 했습니다.

 결혼은 단 한번만 하는 게 좋습니다. 영화배우 김지미 처럼 네 번씩이나 하는 것은 곤란합니다. 그리고 되도록 이혼은 하지 않아야 합니다. 결혼은 분명 단 둘이 하지만, 그 혼인으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관계를 맺어 살게 됩니다. 두 사람이 좋은 관계를 이루어 행복한 가정을 꾸리게 되면, 덩달아 그들과 관련된 많은 사람이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반면에, 두 사람의 관계가 나빠져서 이혼이라도 하게 되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피해를 보게 되는지 모릅니다. 두 사람은 물론이요, 자녀들에게는 치명적인 해독을 끼치게 되고 양가 친척들에게도 엄청난 정신적이며 물질적인 피해를 주게 됩니다.

 그러므로 결혼은 잘 해야 합니다. 기분 내키는 대로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기도를 많이 하는 중에 배우자를 택하고 신중하게 결혼을 결정해야 합니다. 좋은 사람 구하려고만 애쓰지 말고, 나 자신이 좋은 사람이 되려고 끊임없이 노력하면서 나에게 알맞는 상대를 골라 주시기를 하나님께 부탁을 드려야 합니다. 나눈 두 푼짜리 인격을 가지고 있으면서 닷 푼짜리 인격의 상대를 구하는 것은 죄악입니다. 더욱이 사람을 택하되, 물질이나 지위를 보고서 결혼하려 하는 것은 스스로가 무덤을 파는 행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을 영(靈)으로 창조하셨는데, 어찌 남녀가 하나되는 일을 물질로 결정한단 말입니까?

 아무튼 결혼은 인간에게 있어서 아주 소중한 과정이며, 신중하게 치뤄야 할 중대사입니다. 특히 우리 믿는 성도들은, 결혼이 한갖 쾌락이나 종족 보존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중요한 일이기 때문에 더욱 마음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창세기 2장의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아서 그의 일을 거들 짝을 만드시기로 하고, 아담의 갈빗대를 취하여 아들을 만들었다고 했습니다. 사실 처음에는 짐승들과 새들 중에서 아담의 일을 거들어줄 짝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그들 중에는 그의 일을 거들 짝이 없었다고 2장 20절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신 다음, 그의 갈빗대를 뽑아 여자를 만들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아담의 갈빗대를 뽑아 여자를 만들었을까요? 머리도 아니고 발도 아닌, 가슴 부분인 갈빗대를 가지고 만드셨다는 것은 남녀의 동등성과 깊은 관계성을 뜻한다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인간의 가장 중요한 심장을 보호해 주는 가슴 부분을 취하신 것은, 남자에게 있어서 여자의 보호가 없이는 살 수 없음을 뜻합니다. 여자 없이 사는 분들을 보십시오. 얼마나 초라하고 궁상맞으며 불쌍합니까? 평소에는 여자 없이는 살 수 있을 것처럼 큰소리 치지만, 막상 여자가 하루만 집을 비워도 당장 남자의 얼굴에서는 홀아비 티가 더덕더덕 붙어 있기 마련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여자는 혼자 살 수 있는 줄 아십니까? 워낙 한국의 여인들은 강하기 때문에 홀로 살아도 끄떡없이 사는 분들이 많습니다만, 못을 하나 박더라도 남자의 도움을 필요로 하며 조그마한 벌레 하나가 몸에 붙어 있어도 벼락치는 소리를 하며 기겁을 하는 것이 여자가 아닙니까?

 어떤 홀로된 여자 분에게 술 잘 먹는 남편을 둔 친구가 와서 하소연을 했습니다. 남편이 술을 잔뜩 먹고 밤늦게 들어오는 날이 하루 이틀이 아니라 허구 헌날 계속되니 지겨워 못 살겠다고 말입니다. 그러자 홀로된 여자 친구 하는 말이, ‘술이 아니라 그 보다 더한 것을 먹고 들어와서 밤낮 없이 술 주정을 해도 좋으니, 그 남편 날 주라!’ 고 했다는 것입니다.

 제가 국민학교 3학년 때에, 아직 시집을 가지 아니한 이모님이 서울에서 시골 우리 집에 왔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저녁엔가, 저를 데리고 이야기를 들려주던 이모가 저를 가슴에 꼭 껴안아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에 느꼈던 그 포근함과 아늑함이란,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이미 어머니의 가슴에 대한 기억이 사라진 상태에서 안겼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어떻게 표현할 수 없는 신비한 느낌이었습니다.

 저의 사촌 형 중에는 저보다 두 살 위인 형이 있습니다. 어느 날, 그 형과 잠자리를 같이 하게 되었습니다. 그 형이 잠결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저를 껴안으려고 했습니다. 저는 그 때, 그 형의 손길이 징그러워 송충이를 털어 내듯이 그 형의 손을 뿌리치고 달아난 적이 있습니다.

 남자는 여자를 그리워하고 여자가 남자를 사모하는 것은 하나님의 신비한 역사입니다. 어릴 때부터 여자아이는 인형을 좋아하고 남자아이는 칼과 총을 좋아하는 것은, 누가 가르쳐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그러니 남자와 여자가 서로 만나서 하나를 이루는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도 이르기를, 『남자는 어버이를 떠나 아내와 어울려 한 몸이 되게 되었다』(창2:24)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남녀가 어떠한 모습으로 어떻게 하나가 되느냐고 하는 것입니다. 남녀가 어울려 하나가 된다고 하는 것은 몸을 묶어서 하나로 만든다는 말은 아닐 것입니다. 인격이 하나된다는 말입니다. 서로 다른 인격체가 상호보완하고 화합을 해서 전혀 새로운 인격체를 구성하는 것입니다. 서로 부족한 것은 채우고 도와주는 협력의 관계일 뿐만 아니라, 그 이상의, 없어서는 아니 되는 너와 나의 관계,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은 것이 아니라 꼭 필요한 존재인 그대가 바로 부부관계입니다.

 그러나




 1. 강퍅한 마음 때문에 온전한 사람이 되지 못하고, 그래서 어울려 하나가 되어 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떤 미국 남자가 이혼을 했습니다. 결혼한지 몇 년이 지나자, 서로 의견 충돌이 생기고 성격 차이가 발견되자 서로 미워하게 되었고, 급기야는 헤어지기로 합의를 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 남자는 신문에 광고를 냈습니다. 새로운 아내가 될 후보자의 조건을 자세히 기록했습니다. 그러자 신문광고를 보고 많은 여자가 신청을 해 왔습니다. 이 남자는 할 수 없이 여자들의 신상명세서를 컴퓨터에 입력을 시켜 놓고, 가장 이상적인 여자를 택하기로 했습니다. 얼마 후, 결과가 나왔습니다. “당신에게 가장 이상적인 아내의 타입은 당신과 이혼한 전부인(前夫人)입니다” 라고.

 이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상대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은 하지 않고, 상대를 보고 내 맘에 들게 행동하지 않는다고 야단입니다. 그러니 서로 모든 것이 다를 수밖에 없는 남녀가 만나서 한 가정을 이루었으니, 이를 어쩌란 말입니까? 물질에 약한 여자와 명예에 약한 남자, 단견적인 여자와 긴 안목의 남자, 섬세한 여자와 대범하고 무뚝뚝한 남자가 서로 만났으니, 매사가 서로 불만이요 의견 충돌이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지금에 와서야 여자의 목소리가 좀 커졌지, 지금까지는 남자가 일방적으로 여자를 괴롭혀 왔습니다. 인격으로서가 아니라, 완력으로 말입니다. 남자가 존경스러워서 여자들이 남자들에게 굽실거린 것이 아니라, 남자들의 폭력이 무서워서 고분고분한 것입니다. 더군다나 우리나라는 해도 너무 했습니다. 도대체가 남자들은 여자들에게 사람 취급하기를 꺼려했습니다.

 율법에서도 여자들이 잘못한 경우에만 이혼할 수 있지, 남자들이 잘못한 경우에는 적용되는 법이 없었습니다. 여자들이 간음을 하면 내 쫓을 수 있어도, 남자들이 간음을 하면 남편을 버려도 좋다는 항목이 없었습니다. 여자들이 아이를 낳지 못하면 쫓겨나거나 남자가 재취를 해도 말못하지만, 남자가 아이를 가질 수 없는 형편인데도 여자는 끽소리 하지 못하고 계속 살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러한 불평등한 법을 깨뜨리시고, 다음과 같이 새로운 법을 세워 주고 있습니다. 마가복음 10장 11절에서, 『누구든지 자기 아내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결혼하면 그 여자와 간음하는 것이며, 또 아내가 자기 남편을 버리고 다른 남자와 결혼해도 간음하는 것이다』라고 말입니다.

 그런고로 남녀 똑같이 자기 짝을 버리고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으면 간음 행위가 된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십시오. 이제는 여자들이 살판났다고 여자들 스스로가 자식과 남편을 내 버리고 도망가는 예가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아침밥을 거른 채 꾀죄죄한 곳을 입고 학교에 가는 것을 저는 김포에서 너무나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 집 사람이 한 1년 동안 도시락을 싸서 준 일이 있는 한나네 반 아이도 잘 생기고 착한 아이였는데 엄마가 집을 나가서 몇 년 동안 점심을 거를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머리는 감지 못해서 덕지덕지 때가 끼어 있고 옷은 추운 겨울에도 내복 없이 얇은 것을 걸친 채 다녔습니다.

 문제의 원인은 대부분 남자들에게 있습니다. 하지만 여자들에게도 책임이 없다할 수 없습니다. 버리고 갈 생각이었다면 자녀를 낳지 말든지, 자녀를 낳았으면 그 자녀를 데리고 집을 나가든지 해야 할 것이 아닙니까?

 아무튼 남자 구실은 제대로 못하면서 그 행세는 다 갖춰서 하려는 사내들을 다 잡아다가 무슨 조치를 해야 할 것이고, 애만 낳아 놓고 도망친 여자들을 모조리 붙들어다가 무슨 수를 써야 합니다. 왜, 키우지 못할 애들은 자꾸 낳느냐 말입니다.

 다시 본래의 말씀으로 돌아갑시다. 사람들이 온전한 가정을 이루지 못하고 슬픈 일을 겪게 되는 것이 강퍅한 마음 때문이라고, 예수님은 마가복음 10장 5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까, 모세가 이혼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한 것은 사람들의 마음이 굳을 대로 굳어져서 그렇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악용되어서, 남자에게만 유리하게 적용되고 여자들에게는 너무나 불리한 법으로 사용되었으며, 하나님의 뜻을 거슬리는 법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굳어진 사람들의 마음을 변화시키고 그 인격을 온전케 해서 아름다운 가정을 이룰 수 이룰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 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하여금




 2.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의 고통을 겪게 하심으로써 사람을 거룩하게 하는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비극의 싹은 남녀의 온전치 못한 만남에서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알고 그 말씀 안에서 만나면 결코 그 가정은 불행해지지 않습니다. 문제는 남녀가 동물적인 욕정을 이기지 못하여 관계를 맺는다든지, 상대의 지위나 미모 또는 물질에 팔려서 결혼을 하게 되면, 불행한 결과를 낳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비인격적인 만남은 만나는 순간부터 불행의 씨를 배게 되어 있습니다.

 서로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왜 결혼하는지 그 이유나 목적부터 분명히 해야 합니다. 막연히 나이가 찾으니까 결혼해야 한다고 하는 것처럼, 위험한 일은 없습니다. 목적부터 분명히 해 놓아야, 목적을 같이하는 동반자를 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목사가 되려는 사람이 교회의 교자(敎)도 모르는 사람과, 단지 얼굴에 예쁘다는 것 때문에 결혼을 한다고 합시다. 그것처럼 불행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아담의 일을 거들어 줄 사람으로 하와를 만드셨습니다.

 그러므로 배우자는 하나님께서 짝을 지어 주셔야 하고, 그 짝은 인간이 결단코 나눌 수 없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나와 있는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짝일 지어 주셔서 가정일 이루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모저모를 살펴서 알맞게 짝을 지어 주셨습니다. 만일 아내에게서 허물을 발견하게 되면 남편에게도 그와 비슷한 허물이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또한 남편에게서 어떤 잘못을 발견하면 그의 아내인 자신에게도 그와 비례되는 잘못이 있음을 알 수 있어야 합니다. 난 잘못이나 허물이 없는데, 만나기를 너무 잘못 만났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바보 중의 바보입니다. 그것은 마치, 한 원숭이가 다른 원숭이를 보고 네 항문은 어찌 그렇게 빨갛지 하고 흉보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련히 잘 아셔서 알맞게 짝지어 주셨건만, 자기 형편은 생각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아내 탓하고 남편 탓하는 것입니다.

 이토록 어리석은 우리 이간들을 위하여 예수님은 죽으셨습니다. 스스로 의롭다고 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아무 죄 없으신 예수님은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정말 어리석고 미련한 인생들이 아무 죄 없으신 예수님을 죽인 것입니다. 자기들이 생각할 때에는 그렇게 하는 것이 지혜로운 방법이라 생각했겠지요, 그러나 그것은 어리석은 짓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죽일 수 없는 분이시라는 것을 그들이 몰랐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아무 말 없이 그 많은 고통을 당하심으로써,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거룩한 삶을 살 수 있는지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죽어짐으로써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셨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예수를 높이셔서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과 예수님은 하나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도




 3. 하나님의 은총 가운데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려고 죽으신 예수님의 뜻을 받들어, 남녀가 서로 어울려 하나되는 인격적인 가정을 이루어 삽시다




 여자가 남자를 위하여 죽어지면 남자는 영화롭게 되고, 그러면 남자는 아내를 들어올리게 되어 있습니다. 훌륭한 위인 뒤에는 훌륭한 아내가 있기 마련입니다. 돈타령만 하는 아내를 둔 남자가 어찌 사회의 훌륭한 지도자가 될 수 있겠습니까? 지난번에도 정일형씨 부부 이야기를 했습니다만, 이태영 여사가 독립 운동을 하는 남편을 타박이나 하고 그 뒷바라지를 하지 않았다면 어찌 정일형과 같은 훌륭한 지도자를 우리가 만날 수 있었겠습니까? 아내가 모진 고통을 군소리 없이 잘 견디면서 남편을 위하여 헌신하자, 남편 되는 정일형 박사는 해방이 되자마자 부인 이태영 여사를 공부시켜서 우리 나라 첫 여성 변호사가 되게 함으로써 영화롭게 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자 성도 여러분! 남편을 깎아 내려서 득이 될 것 하나 없음을 명심하십시오. 남편 지위가 오르면 여자는 덩달아 올라가지만, 남편 지위가 떨어지면 여자도 덩달아 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남편 흉을 계속 보시렵니까?

 사랑하는 남자 성도 여러분! 여자를 괴롭혀서 득이 될 것이 하나 없음을 철저히 깨달으십시오. 밤 가시가 찔린다고 주먹으로 쳐보십시오. 내 손에 가시가 무수히 박히게 됩니다. 여자가 말 안 듣는다고 주먹으로 쳐서는 안됩니다. 살살 다독거려서 구슬려야 알밤 같은 사랑을 받을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은 변함없는 진리입니다. 우리를 복된 길로 인도하는 생명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되, 서로 돕는 베필로 삼기 위해서이지, 서로 원수가 되어 으르렁대며 살라고 짝을 지어주신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며 여러분은 하나님의 뜻일 이루는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오늘 주신 말씀을 잘 깨달아 서로에게 없어서는 아니 되는 소중한 분신이 되어 사시는 여러분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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