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개할 기회를 놓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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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10 19:02
영혼의 양식 91-41호 1991.10.13.
성서일과 ; 창3:8-19, 히4:1-3, 9-13, 막10:17-30.
제목 ; 회개할 기회를 놓치지 말라
요즈음 MBC-TV에서 방영되고 있는 “여명의 눈동자” 라는 드라마 프로를 보신 분들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 프로를 보면서, 일본 제국이 저지른 죄악이 얼마나 크고 끔찍했던가를 느꼈을 것입니다. 무수한 조선의 부녀자들을 정신대로 끌어다가 저들 일본 군인들의 정액받이로 삼는가 하면, 심지어는 한국인들을 상대로 생체 실험까지 하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콜레라와 같은 균을 주사해서 얼마 동안이나 견디어내는지, 환경에 따라 어떻게 다른지, 사람을 실험 대상으로 삼았다는 말입니다.
지난 목요일(10월 10일) 프로를 보니, 맨몸인 사람과 평상복을 입은 사람, 그리고 방탄복을 입은 사람을 각기 일렬로 세워 놓고 총을 쏴서, 그 총알이 몇 사람이나 관통하는지를 실험하는 장면도 방영되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비통하고 억울하며 치가 떨리는 일입니다. 그처럼 인간 이하의 못된 짓을 어찌 행할 수 있단 말입니까? 그런 망할 짓을 한 일본 놈들이 좀 살게 되었다고 해서 또 다시 우리 민족을 깔보고 있으니, 이 분통스러운 마음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그래도 일본 제품이라면 정신없이 사 쓰는 골빈 사람들이 있으니 한심스러운 일입니다.
일본과 독일은 같은 패전국으로서 오늘날 경제 대국이 되었다는 점은 다음과 같습니다만, 피 지배국에 대한 태도는 전혀 다릅니다. 일본은 피 지배국에 대하여 잘못한 일을 조금치도 반성하는 빛이 없습니다. 오히려 식민지 통치가 그 시대 어쩔 수 없이 이루어졌던 일이요 당연한 일인 것처럼 말합니다. 그러나 독일은 나치 제국의 잘못을 철저히 회개를 하고 있습니다. 피해를 입은 나라에 대하여 손해 보상을 어김없이 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교과서까지도 같이 협의를 하여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국민들에게도 자기 민족의 잘못을 똑바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면, 그 잘못을 뉘우친 민족이나 개인은 용서를 해 줄 뿐만 아니라, 전날보다 더 큰복을 내려 주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 잘못을 깨닫지 못하는 민족이나 개인은 틀림없이 징벌하신다고 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돈 좀 벌었다고 오만 방자하게 굴고 있는 일본이 머지 않아 하나님의 심판을 먼저 못하리라 믿습니다.
창세기 3장의 말씀을 보면,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죄를 지었을 때에 동산 나무 사이에 숨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아담을 찾아 그 잘못을 추궁하자, 아담은 핑계를 대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짝지어 주신 여자가 그 나무에서 열매를 따 주기에 먹었을 따름입니다』라고 말입니다. 그러니까 아담은 무엄하게도 죄를 짓게 된 까닭을 하나님께 돌리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게 된 것은 자기 잘못이 아니라고 발뺌을 하고 있습니다. 아담은 자기 잘못을 인식하고 두려워 나무 사이에 숨어 있었으면서도, 입으로는 자기 잘못이 아니라고 앙탈을 부리고 있습니다.
여기서 잠깐 생각할 것은, 아담과 하와가 벌거벗어 알몸이 된 것을 알게 되자 부끄러워 한 것이 아니라 두려워했다는 점입니다. 그것은 인간 사이에서 있을 수 있는 잘못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잘못임을 밝히고 있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씀 드리면, 여기서 말하는 알몸의 상태는 육체적인 벌거숭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숨길 수 없는 인간의 모습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통일교에서 말하듯, 성(性)과 연관시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우스꽝스러운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네가 어디 있느냐?』고 아담을 찾으신 것은, 아담이 어디 있는지 몰라서가 아닙니다. 아담이 저지른 죄를 이미 아시고 그 죄에 따라 벌하심이 옳은 일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그 죄를 회개할 기회를 주시기 위하여 아담을 찾으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담은 자기 죄를 뉘우치기는커녕, 오히려 하나님께 그 죄를 돌리면서 원망을 하고 있습니다.
하와는 또 어떻습니까? 여호와께서 하와에게 『어쩌다가 이런 일을 했느냐?』고 물으셨을 때에, 하와는 『뱀에게 속아서 따먹었습니다』라고 핑계를 대었던 것입니다. 3장 6절의 말씀을 보면, 분명히 여자가 나무를 보고 『과연 먹음직하고 보기에 탐스러울뿐더러 사람을 영리하게 해 줄 것 같아서, 그 열매를 따먹고 같이 사는 남편에게도 따 주었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도 여자는 발뺌을 하고 있습니다.
이 아담과 하와의 이야기는 옛날 이야기가 아닙니다. 바로 오늘 우리의 이야기입니다. 우리의 죄된 모습을 그대로 밝혀 주고 있는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네가 어디 있느냐?』고 말입니다. 우리가 어디 있는지 몰라서 찾고 계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잘못을 깨닫고 그 죄를 회개할 기회를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요? 아담과 하와처럼 핑계만 대고 있으면 될까요? 그러면 안됩니다. 누구든지 죄인 아닌 사람은 없다는 것이 틀림없는 사실이므로, 그 죄를 뉘우쳐 고백함으로 회개해야 합니다. 죄를 감춘 결과는 두려움의 계속입니다. 그러나 그 죄를 고백하면, 그 죄와 두려움에서 해방됩니다.
선택은 자유입니다. 죄의 고백을 강요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선택에 따른 책임은 본인 스스로가 저야 합니다.
오늘 우리를 부르신 것은 우리가 훌륭해서가 아닙니다. 우리에게 복음의 말씀을 들려 주셔서 그 복음의 말씀에 순종함으로써 참 안식을 누리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말씀을 따르자면 과거를 청산해야 합니다. 곧 죄를 뉘우치고 회개를 해야 합니다. 지난 삶의 잘못된 관계를 끊어버리고 주 안에서 새로운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이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이 기회를 놓치고 있습니다.
1. 하나님께 불순종함으로 죄를 짓고 두려움 가운데서 안식과 만족이 없는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마가복음 10장에 나오는 부자 청년의 경우가 그 한 예입니다. 부자 청년이 평소 십계명을 잘 지키며 살았으면서도 『무엇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얻겠습니까?』하고 예수님께 물은 것을 보면, 그 부자 청년은 만족함이 없는 생활을 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 청년의 고민이 심상치 않았음을, 그가 예수님을 찾아 뵙는 모습을 살펴보면 알 수 있습니다. 본문 말씀을 보면, 그 청년은 예수님께 달려 왔다고 했습니다. 어떻게든지 예수님을 만나 뵈어야 하겠다는 마음이 간절했던 것 같습니다. 그 자세 또한 겸손하고 신중합니다. 심심해서 묻는 자세가 아니라, 아주 정중하면서도 경건한 자세입니다.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선하신 선생님! 제가 무엇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얻겠습니까?』하고 물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청년은 재산이 넉넉하여 경제적인 어려움이 없었고 율법을 잘 지켜서 종교적으로도 부족함이 없는 모범적이고 훌륭한 청년이었건만, 그 마음에는 기쁨이 없고 평화가 없는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왜 그럴까? 세상에서 나만큼 여유롭고 모범적인 생활을 하는 사람도 드물 텐데, 어째서 내 마음은 이렇게 불안하고 기쁨이 없을까? 모세가 일러준 계명을 하나도 빠짐없이 잘 지켜 생활하고 있는데, 내 마음에서 근심이 떠나지를 않으니 웬일일까? 아마 이 청년은 많은 번민과 괴로움 속에서 그 동안 생각을 많이 했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예수님 소식을 듣고 달려와 그러한 질문을 했으리라 봅니다.
예수님은 이 청년을 보고 대견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 청년에게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음을 지적하셨습니다. 그것은 재물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늘에서 보화를 얻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하늘의 보화가 무엇입니까? 바로 이 청년이 구하던 마음의 평화와 기쁨은 무소유(無所有)에서 오는 것입니다. 나는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노라고 할 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인 것입니다. 하지만 이 청년은 하늘의 보화와 땅의 보화를 동시에 갖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시키는 대로 하고 나서 나를 따라 오너라』고 하시자, 이 청년은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듣고 울상이 되어 근심하며 떠나갔다고, 마가복음 10장 22절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구원은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써만 가능함을 27절에서 예수님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사람의 능력으로 구원을 이룰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사람이 노력하면 행복해질 수 있으려니 생각합니다.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이 세상에 돈을 많이 벌어서, 또는 지식이 많아서, “나는 행복합니다” 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으면 이야기 해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마가복음 10장 29-30절에서 『나와 복음을 위하여 부모 형제와 집과 토지를 버린 사람은, 현세에서 박해도 받겠지만 그러나 부모 형제와 집과 토지의 축복도 백 배나 받을 것이며, 내세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이것은 잘못된 옛 관계를 청산하면 주 안에서 새로운 관계를 맺게 되어, 전에 누리지 못하던 새로운 축복을 받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부자 청년은 옛 관계를 청산하기가 어려워 울상을 하고 근심을 하며 떠나갔다고 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잘못된 관계 속에서 하나님께 죄를 지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고 따르기보다는 세상 욕심에 눈이 더 밝았던 것입니다.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하며 지혜롭게 할 것 같아서, 육신의 욕심과 생각에 따라 행함으로 하나님을 대적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고 욕심에 따라 행하면 죄를 짓게 됩니다.
그 결과는 무엇입니까? 두려움입니다. 우리 마음에 평화가 없고 기쁨이 없는 것은 죄를 짓고 두려워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두려움은 약을 먹는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으며, 쾌락을 즐긴다고 해서 해소되지 않습니다. 죄를 뉘우쳐 고백해야만 합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잘못된 옛 생활을 청산하고 말씀 중심 하나님 중심의 새로운 생활을 해야, 기쁨과 평화가 있는 영생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2. 하나님은 죄로 말미암아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 인간들에게 믿음으로 구원받을 수 있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말씀은 새로운 질서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무엇인가 소유함으로써 행복을 얻을 수 있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세상의 물질은 제한되어 있고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는데 말입니다. 결과적으로는, 서로 내것 삼으려고 경쟁을 할 수밖에 없으며, 경쟁의 결과는 행복이 아니라 비극으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행복은 무엇을 소유하고 누림으로써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든지 나누어 줄 때에 얻을 수 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부자 청년이 재물을 많이 가지고 있으되 영생을 얻지 못하고 있으므로, 예수님은 그것을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것을 청년에게 명령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부자 청년은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이 부자 청년에게 아주 좋은 기회가 주어졌건만, 그 기회를 놓쳐 버리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힘이 있습니다. 마음속에 품은 생각과 속셈까지도 드러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눈앞에서 우리는 누구를 막론하고 벌거숭이로 드러나게 마련입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우리의 있는 그대로 심판을 받게 됩니다. 세상에서는 사람들의 눈을 속여가며 위장을 할 수 있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어림도 없는 일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나중에 큰 창피를 당하기보다는, 지금 솔직히 털어놓는 것이 좋습니다. 응큼한 마음과 거짓된 생각을 숨김없이 드러내 놓는 것이 좋습니다. 핑계 댈 생각은 아예 하지 말고 잘못된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떠넘길 생각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왜 떨고 있는지 아십니다. 왜 두려워하며 근심하고 있는지 아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을 무시하고 자기 멋대로 산 결과가 어떠하며, 그 책임을 누가 져야 하는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괜스레 다른 사람이나 환경 탓으로 그 책임을 떠넘기려 하다가는 더 큰 벌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 이러한 기회를 주신 것은 큰 축복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한 번 잘못 빗나가면 다시 돌아오기가 얼마나 힘들다는 것을 여러분 주위의 낙심자들을 보면서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그러니 지금 주어진 기회를 놓치지 마시고,
3. 기쁜 소식을 듣고 순종함으로 영원한 생명의 길을 갑시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부르신 것은 여러분을 괴롭히려 함이 아니라, 여러분에게 축복을 주시고자 함입니다. 무슨 축복입니까? 영생의 축복입니다. 영생은 어떻게 주어집니까? 예수님을 믿음으로 주어집니다. 예수님을 어떻게 믿어야 합니까? 예수님의 말씀이 무엇입니까? 『주와 복음을 위하여 네 모든 것을 버리라』는 말씀입니다. 왜 입니까? 그것은 마가복음 10장 30절에 있는 말씀처럼, 『현세에서는 그 모든 것을 백 배나 받게 하고 내세에서는 영생을 얻게 하려는 것』입니다.
마가복음에 나오는 부자 청년은 버리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버릴 수가 잇습니다. 아니 버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소유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구원을 받아 영원한 안식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떠나서는 살수가 없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물질 중, 하나를 택해야 합니다. 물질과 하나님을 동시에 사랑할 수가 없습니다.
물질은 우리의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이고, 하나님의 말씀과 그 축복은 마음이 맑아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자칫 욕심으로 마음이 어두워지면 물질만이 최고인 줄로 착각을 하고 그것을 선택하게 됩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처럼 되려는 욕심을 갖게 되자, 하나님의 말씀은 사라지고 물질만 눈에 뚜렷하게 보였던 것입니다.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게 말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말씀 중심보다는 세상 중심으로 살아 왔습니다. 이제 그 잘못을 뉘우치고 회개할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아무개야, 너 지금 어디 있느냐?』고, 하나님께서 물으십니다. 지금 우리는 어디에 있습니까? 복 받을 준비를 하고 복 받을 자리에 있습니까?
여러분은 하나님의 축복을 이미 받았습니다. 받은 축복, 하나님의 뜻대로 잘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더 큰 축복을 하나님께서 허락하실 것입니다. 이러한 생활이 거듭될수록 우리의 믿음은 성숙되어 가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가 가까워질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더 큰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
성서일과 ; 창3:8-19, 히4:1-3, 9-13, 막10:17-30.
제목 ; 회개할 기회를 놓치지 말라
요즈음 MBC-TV에서 방영되고 있는 “여명의 눈동자” 라는 드라마 프로를 보신 분들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 프로를 보면서, 일본 제국이 저지른 죄악이 얼마나 크고 끔찍했던가를 느꼈을 것입니다. 무수한 조선의 부녀자들을 정신대로 끌어다가 저들 일본 군인들의 정액받이로 삼는가 하면, 심지어는 한국인들을 상대로 생체 실험까지 하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콜레라와 같은 균을 주사해서 얼마 동안이나 견디어내는지, 환경에 따라 어떻게 다른지, 사람을 실험 대상으로 삼았다는 말입니다.
지난 목요일(10월 10일) 프로를 보니, 맨몸인 사람과 평상복을 입은 사람, 그리고 방탄복을 입은 사람을 각기 일렬로 세워 놓고 총을 쏴서, 그 총알이 몇 사람이나 관통하는지를 실험하는 장면도 방영되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비통하고 억울하며 치가 떨리는 일입니다. 그처럼 인간 이하의 못된 짓을 어찌 행할 수 있단 말입니까? 그런 망할 짓을 한 일본 놈들이 좀 살게 되었다고 해서 또 다시 우리 민족을 깔보고 있으니, 이 분통스러운 마음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그래도 일본 제품이라면 정신없이 사 쓰는 골빈 사람들이 있으니 한심스러운 일입니다.
일본과 독일은 같은 패전국으로서 오늘날 경제 대국이 되었다는 점은 다음과 같습니다만, 피 지배국에 대한 태도는 전혀 다릅니다. 일본은 피 지배국에 대하여 잘못한 일을 조금치도 반성하는 빛이 없습니다. 오히려 식민지 통치가 그 시대 어쩔 수 없이 이루어졌던 일이요 당연한 일인 것처럼 말합니다. 그러나 독일은 나치 제국의 잘못을 철저히 회개를 하고 있습니다. 피해를 입은 나라에 대하여 손해 보상을 어김없이 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교과서까지도 같이 협의를 하여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국민들에게도 자기 민족의 잘못을 똑바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면, 그 잘못을 뉘우친 민족이나 개인은 용서를 해 줄 뿐만 아니라, 전날보다 더 큰복을 내려 주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 잘못을 깨닫지 못하는 민족이나 개인은 틀림없이 징벌하신다고 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돈 좀 벌었다고 오만 방자하게 굴고 있는 일본이 머지 않아 하나님의 심판을 먼저 못하리라 믿습니다.
창세기 3장의 말씀을 보면,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죄를 지었을 때에 동산 나무 사이에 숨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아담을 찾아 그 잘못을 추궁하자, 아담은 핑계를 대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짝지어 주신 여자가 그 나무에서 열매를 따 주기에 먹었을 따름입니다』라고 말입니다. 그러니까 아담은 무엄하게도 죄를 짓게 된 까닭을 하나님께 돌리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게 된 것은 자기 잘못이 아니라고 발뺌을 하고 있습니다. 아담은 자기 잘못을 인식하고 두려워 나무 사이에 숨어 있었으면서도, 입으로는 자기 잘못이 아니라고 앙탈을 부리고 있습니다.
여기서 잠깐 생각할 것은, 아담과 하와가 벌거벗어 알몸이 된 것을 알게 되자 부끄러워 한 것이 아니라 두려워했다는 점입니다. 그것은 인간 사이에서 있을 수 있는 잘못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잘못임을 밝히고 있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씀 드리면, 여기서 말하는 알몸의 상태는 육체적인 벌거숭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숨길 수 없는 인간의 모습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통일교에서 말하듯, 성(性)과 연관시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우스꽝스러운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네가 어디 있느냐?』고 아담을 찾으신 것은, 아담이 어디 있는지 몰라서가 아닙니다. 아담이 저지른 죄를 이미 아시고 그 죄에 따라 벌하심이 옳은 일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그 죄를 회개할 기회를 주시기 위하여 아담을 찾으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담은 자기 죄를 뉘우치기는커녕, 오히려 하나님께 그 죄를 돌리면서 원망을 하고 있습니다.
하와는 또 어떻습니까? 여호와께서 하와에게 『어쩌다가 이런 일을 했느냐?』고 물으셨을 때에, 하와는 『뱀에게 속아서 따먹었습니다』라고 핑계를 대었던 것입니다. 3장 6절의 말씀을 보면, 분명히 여자가 나무를 보고 『과연 먹음직하고 보기에 탐스러울뿐더러 사람을 영리하게 해 줄 것 같아서, 그 열매를 따먹고 같이 사는 남편에게도 따 주었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도 여자는 발뺌을 하고 있습니다.
이 아담과 하와의 이야기는 옛날 이야기가 아닙니다. 바로 오늘 우리의 이야기입니다. 우리의 죄된 모습을 그대로 밝혀 주고 있는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네가 어디 있느냐?』고 말입니다. 우리가 어디 있는지 몰라서 찾고 계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잘못을 깨닫고 그 죄를 회개할 기회를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요? 아담과 하와처럼 핑계만 대고 있으면 될까요? 그러면 안됩니다. 누구든지 죄인 아닌 사람은 없다는 것이 틀림없는 사실이므로, 그 죄를 뉘우쳐 고백함으로 회개해야 합니다. 죄를 감춘 결과는 두려움의 계속입니다. 그러나 그 죄를 고백하면, 그 죄와 두려움에서 해방됩니다.
선택은 자유입니다. 죄의 고백을 강요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선택에 따른 책임은 본인 스스로가 저야 합니다.
오늘 우리를 부르신 것은 우리가 훌륭해서가 아닙니다. 우리에게 복음의 말씀을 들려 주셔서 그 복음의 말씀에 순종함으로써 참 안식을 누리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말씀을 따르자면 과거를 청산해야 합니다. 곧 죄를 뉘우치고 회개를 해야 합니다. 지난 삶의 잘못된 관계를 끊어버리고 주 안에서 새로운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이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이 기회를 놓치고 있습니다.
1. 하나님께 불순종함으로 죄를 짓고 두려움 가운데서 안식과 만족이 없는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마가복음 10장에 나오는 부자 청년의 경우가 그 한 예입니다. 부자 청년이 평소 십계명을 잘 지키며 살았으면서도 『무엇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얻겠습니까?』하고 예수님께 물은 것을 보면, 그 부자 청년은 만족함이 없는 생활을 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 청년의 고민이 심상치 않았음을, 그가 예수님을 찾아 뵙는 모습을 살펴보면 알 수 있습니다. 본문 말씀을 보면, 그 청년은 예수님께 달려 왔다고 했습니다. 어떻게든지 예수님을 만나 뵈어야 하겠다는 마음이 간절했던 것 같습니다. 그 자세 또한 겸손하고 신중합니다. 심심해서 묻는 자세가 아니라, 아주 정중하면서도 경건한 자세입니다.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선하신 선생님! 제가 무엇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얻겠습니까?』하고 물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청년은 재산이 넉넉하여 경제적인 어려움이 없었고 율법을 잘 지켜서 종교적으로도 부족함이 없는 모범적이고 훌륭한 청년이었건만, 그 마음에는 기쁨이 없고 평화가 없는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왜 그럴까? 세상에서 나만큼 여유롭고 모범적인 생활을 하는 사람도 드물 텐데, 어째서 내 마음은 이렇게 불안하고 기쁨이 없을까? 모세가 일러준 계명을 하나도 빠짐없이 잘 지켜 생활하고 있는데, 내 마음에서 근심이 떠나지를 않으니 웬일일까? 아마 이 청년은 많은 번민과 괴로움 속에서 그 동안 생각을 많이 했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예수님 소식을 듣고 달려와 그러한 질문을 했으리라 봅니다.
예수님은 이 청년을 보고 대견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 청년에게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음을 지적하셨습니다. 그것은 재물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늘에서 보화를 얻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하늘의 보화가 무엇입니까? 바로 이 청년이 구하던 마음의 평화와 기쁨은 무소유(無所有)에서 오는 것입니다. 나는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노라고 할 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인 것입니다. 하지만 이 청년은 하늘의 보화와 땅의 보화를 동시에 갖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시키는 대로 하고 나서 나를 따라 오너라』고 하시자, 이 청년은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듣고 울상이 되어 근심하며 떠나갔다고, 마가복음 10장 22절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구원은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써만 가능함을 27절에서 예수님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사람의 능력으로 구원을 이룰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사람이 노력하면 행복해질 수 있으려니 생각합니다.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이 세상에 돈을 많이 벌어서, 또는 지식이 많아서, “나는 행복합니다” 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으면 이야기 해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마가복음 10장 29-30절에서 『나와 복음을 위하여 부모 형제와 집과 토지를 버린 사람은, 현세에서 박해도 받겠지만 그러나 부모 형제와 집과 토지의 축복도 백 배나 받을 것이며, 내세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이것은 잘못된 옛 관계를 청산하면 주 안에서 새로운 관계를 맺게 되어, 전에 누리지 못하던 새로운 축복을 받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부자 청년은 옛 관계를 청산하기가 어려워 울상을 하고 근심을 하며 떠나갔다고 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잘못된 관계 속에서 하나님께 죄를 지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고 따르기보다는 세상 욕심에 눈이 더 밝았던 것입니다.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하며 지혜롭게 할 것 같아서, 육신의 욕심과 생각에 따라 행함으로 하나님을 대적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고 욕심에 따라 행하면 죄를 짓게 됩니다.
그 결과는 무엇입니까? 두려움입니다. 우리 마음에 평화가 없고 기쁨이 없는 것은 죄를 짓고 두려워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두려움은 약을 먹는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으며, 쾌락을 즐긴다고 해서 해소되지 않습니다. 죄를 뉘우쳐 고백해야만 합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잘못된 옛 생활을 청산하고 말씀 중심 하나님 중심의 새로운 생활을 해야, 기쁨과 평화가 있는 영생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2. 하나님은 죄로 말미암아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 인간들에게 믿음으로 구원받을 수 있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말씀은 새로운 질서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무엇인가 소유함으로써 행복을 얻을 수 있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세상의 물질은 제한되어 있고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는데 말입니다. 결과적으로는, 서로 내것 삼으려고 경쟁을 할 수밖에 없으며, 경쟁의 결과는 행복이 아니라 비극으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행복은 무엇을 소유하고 누림으로써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든지 나누어 줄 때에 얻을 수 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부자 청년이 재물을 많이 가지고 있으되 영생을 얻지 못하고 있으므로, 예수님은 그것을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것을 청년에게 명령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부자 청년은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이 부자 청년에게 아주 좋은 기회가 주어졌건만, 그 기회를 놓쳐 버리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힘이 있습니다. 마음속에 품은 생각과 속셈까지도 드러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눈앞에서 우리는 누구를 막론하고 벌거숭이로 드러나게 마련입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우리의 있는 그대로 심판을 받게 됩니다. 세상에서는 사람들의 눈을 속여가며 위장을 할 수 있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어림도 없는 일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나중에 큰 창피를 당하기보다는, 지금 솔직히 털어놓는 것이 좋습니다. 응큼한 마음과 거짓된 생각을 숨김없이 드러내 놓는 것이 좋습니다. 핑계 댈 생각은 아예 하지 말고 잘못된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떠넘길 생각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왜 떨고 있는지 아십니다. 왜 두려워하며 근심하고 있는지 아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을 무시하고 자기 멋대로 산 결과가 어떠하며, 그 책임을 누가 져야 하는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괜스레 다른 사람이나 환경 탓으로 그 책임을 떠넘기려 하다가는 더 큰 벌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 이러한 기회를 주신 것은 큰 축복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한 번 잘못 빗나가면 다시 돌아오기가 얼마나 힘들다는 것을 여러분 주위의 낙심자들을 보면서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그러니 지금 주어진 기회를 놓치지 마시고,
3. 기쁜 소식을 듣고 순종함으로 영원한 생명의 길을 갑시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부르신 것은 여러분을 괴롭히려 함이 아니라, 여러분에게 축복을 주시고자 함입니다. 무슨 축복입니까? 영생의 축복입니다. 영생은 어떻게 주어집니까? 예수님을 믿음으로 주어집니다. 예수님을 어떻게 믿어야 합니까? 예수님의 말씀이 무엇입니까? 『주와 복음을 위하여 네 모든 것을 버리라』는 말씀입니다. 왜 입니까? 그것은 마가복음 10장 30절에 있는 말씀처럼, 『현세에서는 그 모든 것을 백 배나 받게 하고 내세에서는 영생을 얻게 하려는 것』입니다.
마가복음에 나오는 부자 청년은 버리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버릴 수가 잇습니다. 아니 버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소유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구원을 받아 영원한 안식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떠나서는 살수가 없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물질 중, 하나를 택해야 합니다. 물질과 하나님을 동시에 사랑할 수가 없습니다.
물질은 우리의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이고, 하나님의 말씀과 그 축복은 마음이 맑아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자칫 욕심으로 마음이 어두워지면 물질만이 최고인 줄로 착각을 하고 그것을 선택하게 됩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처럼 되려는 욕심을 갖게 되자, 하나님의 말씀은 사라지고 물질만 눈에 뚜렷하게 보였던 것입니다.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게 말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말씀 중심보다는 세상 중심으로 살아 왔습니다. 이제 그 잘못을 뉘우치고 회개할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아무개야, 너 지금 어디 있느냐?』고, 하나님께서 물으십니다. 지금 우리는 어디에 있습니까? 복 받을 준비를 하고 복 받을 자리에 있습니까?
여러분은 하나님의 축복을 이미 받았습니다. 받은 축복, 하나님의 뜻대로 잘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더 큰 축복을 하나님께서 허락하실 것입니다. 이러한 생활이 거듭될수록 우리의 믿음은 성숙되어 가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가 가까워질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더 큰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