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이웃을 위하여 손해를 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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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10 19:02
영혼의 양식 91-42호 1991.10.20.
성서일과 ; 사53:7-12, 히4:14-16, 막10:35-45.
제목 ; 누가 이웃을 위하여 손해를 볼 것인가?
최근에 발생한 이화여대 부정 입학 사건은 정말 충격적인 일입니다. 더군다나 감리교 계통의 대학에서 일어난 일이어서 남의 일 같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보도된 것만으로는 사건의 내용을 자세히 알 수가 없습니다. 대충 이야기를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사건의 발단은 고(故) 김선미 양이 소련에서 발레 연수를 받던 중, 교수의 심부름으로 아이스크림을 사러 갔다가 교통 사고를 당하여 죽게 되면서부터입니다. 만약 김선미 양이 죽지 않았다면 이화여대 부정 사건은 세상에 드러나지 않았을 것이고, 그 죄악은 영원히 감추어지고 말았을 것입니다. 김 양이 죽자, 김 양의 어머니 고씨는 부정 입학 사례금으로 준 돈을 돌려 줄 것을 요구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고씨는 그 돈 말고서도 2억 원을 더 요구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부정 입학 사실을 폭로하겠다고 위협하면서 말입니다. 그 돈을 받아서 무엇에 쓰려고 했느냐고 묻자, 시집도 못 가고 죽은 딸을 위하여 조그마한 절을 지어서 불공을 드리려고 했노라고, 고씨는 대답하더라는 것입니다.
더욱 가슴 아픈 이야기는, 이화여대 부정 입학 사건과 관련하여 두 번째로 구속된 육완순 교수가, 꼬리가 완전히 잡히기 전까지 말하기를 “하나님 앞에서 맹세코 부정한 짓을 하지 않았다” 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 최고의 무용 전문가요 신앙인으로 어찌 그처럼 부정을 행하고서도 시치미를 뗄 수 있다는 말입니까? 더욱이 하나님 앞에서 맹세까지 하면서 말입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우리 인간은 잘못을 하고서도 그 잘못이 완전히 드러나기까지는 자신의 잘못을 쉽게 시인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지난 주일에 살펴본 아담과 하와의 경우도, 하나님이 두려워 숨을 정도로 잘못을 행하고서도 그 죄를 뉘우치기는커녕, 오히려 그 잘못을 하나님께 뒤집어씌우려는 허튼 수작을 부렸습니다. 그리고 핑계를 대고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려 했습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잘못을 하게 되면 말이 많아집니다. 잘못이 없는 사람은 아무 소리하지 않는데, 말이 많은 사람은 틀림없이 잘못을 행한 사람입니다. 자신의 헛점을 감추어 보려고 말을 많이 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니면 잘못을 시인하는 경우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면서 다른 사람을 물고 들어가거나, 다른 사람보다는 덜하다는 식으로, 자기 잘못을 회피하려 합니다.
사람은 온전치 못한 존재입니다. 누구를 막론하고 잘못이 없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도 그것을 아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 인간이 실수를 하고 잘못을 저지른다고 해서 크게 나무라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고 능력을 힘입어 최선을 다하는 것이 인간의 바른 자세입니다만, 그러나 최선을 다할지라도, 우리는 많은 실수를 하고 잘못을 범하게 됩니다. 이 때, 우리는 변명이나 핑계를 대려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그 잘못을 솔직히 시인하고 죄의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결단코 그 잘못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기꺼이 용서하심은 물론이요 우리를 위로하시고 새로운 힘과 용기를 북돋아 주실 것입니다.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잘못을 행하고서도, 그 잘못을 고백하지 않는데 있습니다. 잘못이 완전히 드러나기까지는 할 수 있는 한 발뺌을 하고 그 죄를 감추어 보려고 합니다. 잘못이 드러나도 핑계를 대고 그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기에 바쁩니다. 혹 사람은 속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속일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을 상대로 거짓말을 한 아담이나, 그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맹세를 하면서 까지 잘못을 감추어 보려고 애쓴 육 완순 교수의 모습은, 우리에게 너무나 슬프게 느껴지는 현상입니다.
과연 우리는 어떠합니까? 하나님 앞에서나 이웃들 앞에서 솔직하게 살아가고 있습니까? 내 잘못은 어떻게 해서든지 감추어 보려고 애쓰면서도, 다른 사람의 잘못은 손톱만큼도 용서 못하는, 그런 이중적인 인격자는 아닌 지요? 내가 잘못한 것은 그럴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라고 생각하지만, 다른 사람의 실수는 그 형편과 사정을 이해하거나 눈감아 주지를 못하고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우리가 아닌 지요?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아담의 후손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로 말미암아 구원받았다고는 하나 아직은 더 거듭나야 할 존재이기 때문에, 우리 속에는 아담의 검은 피가 많이 흐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1. 잘못을 행하고서도 말이 많고 다른 사람을 위해서는 조금치도 손해를 보려 하지 않습니다
인간에게는 높아지고자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때문에, 명예에 손상이 간다든지 자존심이 깎이는 일은 하기를 싫어합니다. 그러니 비록 잘못은 했을지라도 그 잘못이 드러나게 되는 것을 심히 두려워합니다. 어쩔 수 없이 그 잘못을 밝혀야 할 경우에는 그 일이 조용하게 처리되기를 원합니다. 많은 사람 앞에서 공개되는 것은 죽기보다 싫어합니다. 우리 집의 한나도 자기가 무슨 잘못을 하게 되면 제발 한별이 있는 데서 야단치지 말고 조용히 따로 불러서 혼내 달라고 신신당부입니다.
사실 아담과 하와도 자존심이 상해서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했던 것입니다. 어째서 자기들에게 먹어서는 안 되는 과일과, 가서는 안 되는 금지 구역을 하나님께서 만들어 놓았는가 하고 하나님을 의심하게 되자, 주변에 먹을 것이 지천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먹지 말라고 한 과일을 굳이 따먹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위를 탐내어 그런 무모한 도전을 감행했습니다.
사람들이 무슨 일을 열심히 하다가도 누가 명령을 하게 되면, 하던 일도 중단하고 맙니다. 제 흥에 겨워 노래를 하던 사람에게 마이크를 대면 노래를 그치고 맙니다. 요는, 남의 지배를 받거나 간섭을 받기 싫어하는 사람의 속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마음대로 지배하고 다스릴 수 있으되, 하나님의 통제만은 받아야 한다는 계율을 어긴 아담의 피가 우리 속에 흐르고 있어서, 오늘도 우리 중에는 헛된 욕망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주 많습니다.
신문지상을 비롯한 여러 매스컴에서 웃음거리가 되고 있고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는 국회의원을, 그래도 해 보겠다고 나서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다만, 지역의원이라도 해 볼 셈으로 엄청난 돈을 쓰는 것을 보면, 인간의 명예심이란 어떻게 막아볼 도리가 없는가 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오늘의 본문을 보면,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께 요청하기를, 『예수님이 왕이 되면 우리 형제가 좌의정과 우의정이 되게 해 달라』고 부탁을 하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있던 다른 열 제자들은 야고보와 요한을 보고 화를 냈습니다. 왜일까요? 사실은 나머지 열 제자들도 그런 욕심을 품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에 예수님은 제자들의 속셈을 알아차리시고 말씀하시기를, 『백성들의 지도자가 되려면 사람들을 억누르거나 지배하려고만 해서는 안 된다. 권력행사나 하려 하고 섬김만 받으려 하는 것은 세상 사람이나 하는 짓이다. 너희 중에 지도자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다른 사람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라고, 따끔한 교훈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다른 사람보다 높은 위치에 있게 되면 그보다 못한 사람을 잘 보살펴 주고 이끌어 주어야지, 높은 지위에 있다고 해서 말만 앞세우고 권리 행사나 하려는 것은 잘못된 것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특히 다른 사람을 섬긴다는 것은 손해를 보아야 한다는 말과 같습니다. 다른 사람을 이끌어 가는 위치에 있으려면 욕도 먹고 손해도 입어야 합니다. 어떤 때는 억울한 누명과 모함까지도 뒤집어 써야 합니다. 무슨 일이든지 앞장서 이끌어 가려면 욕을 바가지로 얻어먹어야 합니다. 하다 못해, 동네 반장이나 이장을 보려해도 온갖 욕을 많이 얻어 잡수셔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욕을 먹거나 소해 보는 것은 고사하고, 자기가 분명 잘못한 것까지도 시인하기를 꺼려합니다. 주님과 함께 감옥까지라도 가겠노라고 장담했던 베드로, 어린 소녀 앞에서 예수님을 세 번씩이나 모른다고 부인했으니, 우리 인간은 큰 소리는 잘 쳐도 손해가 될 일에는 결코 앞장서려 하지 않습니다.
세상에서는 혹 큰소리치고 다른 사람을 다스리면서 손해 보지 않아도 될는지 모르나, 믿음을 가진 사람은 그래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이방인과 우리는 추구하는 목적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 세상의 명예가 최고입니다만, 우리는 하나님 나라 상급을 더 귀하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주님과 복음을 위해서라면 욕 얻어먹는 것 뿐 아니라 죽음까지도 각오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생을 이 세상의 그 무엇보다 귀중하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아담이 하나님과 같이 높아지려다가 잃어버린 영생을 예수님께서 당신의 몸을 바쳐 찾아 주셨습니다.
2. 인간으로 오셔서 많은 사람의 죄악을 짊어지심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떳떳한 시민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사야 53장의 말씀을 보면, 『예수님은 온갖 굴욕과 억울한 재판을 받으면서도 입 한번 열지 않고 참으셨다』고 했습니다. 아무 잘못도 없이 죄를 뒤집어썼으나, 예수님은 결코 변명을 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많은 거짓된 사람들의 잘못을 깨우치시려고 묵묵히 십자가의 고통을 참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악의 세력을 물리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어떻게 사는 것이 인간의 참된 모습이며, 어떻게 해야 최후의 승리를 할 수 있는지 보여 주셨습니다. 이사야 53장 11절의 중반절의 말씀에, 『예수님은 많은 사람의 죄악을 스스로 짊어짐으로써 그들이 떳떳한 시민으로 살게 될 줄을 알고 마음 흐뭇해하리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당신 자신을 위해서 사신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하여 사셨고, 당신 자신의 잘못 때문에 죽으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죄 때문에 죽으셨습니다.
우리는 정반대입니다. 우리는 우리를 위해서 예수님을 이용하는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이화여대 육 완순 교수는 자기의 죄를 감추어 보려고 하나님을 이용했습니다. 우리는 잘못을 하고서도 말이 많으나, 예수님은 잘못이 없으시면서도 말씀이 없었습니다. 우리는 한시라도 더 높은 지위에 오르려고, 더 많이 섬김을 받으려고, 더 많은 권력 행사를 하고 싶어서 안달입니다만, 예수님은 높은 곳에 있었으나 스스로 낮아져서 인간이 되셨습니다.
뿐만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많은 유혹을 받았을 때에 그 유혹을 물리쳐 승리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연약한 우리를 무시하거나 업신여기지 않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히브리서 4장 15절에서 『예수님은 연약한 우리의 사정을 알아주시는 분』이라고 했습니다. 무슨 목사가 그것도 모르느냐? 무슨 장로가 그것도 못하느냐? 권사가 되어 가지고 어째서 그러냐? 이렇게 타박을 하거나 나무라지 않습니다. 우리의 사정을 다 아시기 때문에, 사람들처럼 물정 모르고 문제 삼거나 야단치지 않습니다. 다만 예수님은 오늘도 성령을 보내 주셔서 말씀대로 순종하면서 살려는 사람에게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가르쳐 주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처럼 사랑과 자비가 많으시면서도 위선자들을 미워하셨습니다. 큰소리나 치지 실제적인 헌신과 봉사가 없는 바리새인들을 욕하셨습니다. 자기들이 사랑을 베풀지 못하면 다른 사람이 하는 것을 막지 말아야 했는데, 바리새인들은 자기들 체면 때문에 다른 사람의 헌신까지도 방해를 놓았습니다. 권리나 행사하고 대접만 받으려 할 뿐, 궂은 일 할 때에는 뒷전으로 빠져 버렸습니다.
결국 예수님은 이들에 의해서 억울한 죽임을 당합니다만,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은 이들을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저들이 모르고 하는 짓이니 용서해 달라고 말입니다.
저는 연약합니다. 심히 부족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처럼 살고 싶습니다. 감히 예수님 흉내조차 낼 수 없는 죄 많은 인생이지만, 그래도 예수님 닮기를 원합니다. 마땅히 할 일을 하고서도 욕을 먹으나 아무 변명도 하지 않기를 원합니다. 아니, 다른 사람을 위해서 수고했으나 그 결과가 칭찬이 아닌 야단을 맞을 지라도 억울해 하지 않는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내 공로를 다른 사람에게 다 빼앗기고 죄를 뒤집어쓸지라도 슬퍼하지 않기를 원합니다. 말없이 내 할 일 다 하면서도 공치사하지 않는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다른 사람이 내 잘못이나 허물을 물고 늘어져도 끝내 화를 내지 않는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되기를 원하리라 믿습니다. 여러분이 교회에 나온 것은 무슨 권력을 행사하고 이름을 내기 위해서가 아님을 알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하면 사람답게 살 수 있을까 하고 고민하던 나머지, 예수를 믿게 된 여러분이신 것을 저는 압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렇다면 우리 모두,
3. 말없이 주와 이웃을 섬기는 삶을 삽시다
한나가 가끔 고백하기를, 『저도 제 성격을 잘 모르겠어요』하고 말합니다. 아침결에 골을 내고 학교에 갔다가 돌아온 후, 조용히 붙잡고 대화를 하면 그렇게 고백을 합니다. 자신을 골을 내지 않고 명랑하게 학교에 가고 싶으나, 왠지 모르게 짜증이 날 때에는 자신이 미워진다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누구를 막론하고 정직하고 바르게살기를 원할 것입니다. 좋은 일을 많이 하여 칭찬 받고 살고 싶어하는 것은 너나 할 것 없이 원하는 바입니다. 그러나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인생입니다. 어느 날 조용히 자신을 돌아보면, 자기가 원하는 바와는 전혀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때가 있습니다. 쓸데없이 화를 내고서는 스스로 무안하여 더 큰 소리를 칠 때도 있습니다.
거짓을 버립시다. 그리고 자존심 상하는 것을 별스럽지 않게 여깁시다. 잘못한 것은 잘못 했노라고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들 앞에서 솔직히 털어놓읍시다. 또한 주님께서도 아무 잘못 없이 욕을 먹고 누명을 쓰셨으나, 제자인 우리도 욕먹는 것을 당연한 일로 여깁시다.
다른 사람을 지배하고 권리 행사함으로써 기쁨을 누리기보다는, 다른 사람을 받들고 섬김으로써 보람을 누리는 생활을 합시다. 다른 사람의 잘못을 지적하고 문제 삼기보다는, 그의 약함을 도와주고 허물을 덮어 주는 너그러움을 보여 줍시다. 만일 그 잘못을 지적해야 할 경우에는 말로써 할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 주어야 합니다.
아무튼 우리는 자기 위치에서 자기 할 일만 열심히 하면 됩니다. 더 낮아져서 섬기지는 못할망정 더 높은 곳에 올라설 생각은 아예 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살뿐이므로, 자랑할 것 하나 없습니다. 오! 하나님, 당신만이 홀로 영광을 받으시옵소서.
여러분과 저는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입니다. 참으로 귀한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무 죄가 없으나 희생 제물로 돌아가신 예수님의 제자입니다. 우리가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귀한 자녀가 되기 위해서는, 세상의 방법이 아닌 하나님의 방법, 곧 말없이 주와 이웃을 섬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 모두, 오늘 주신 말씀을 가슴에 바로 새기는 거룩한 길가는 복된 인생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
성서일과 ; 사53:7-12, 히4:14-16, 막10:35-45.
제목 ; 누가 이웃을 위하여 손해를 볼 것인가?
최근에 발생한 이화여대 부정 입학 사건은 정말 충격적인 일입니다. 더군다나 감리교 계통의 대학에서 일어난 일이어서 남의 일 같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보도된 것만으로는 사건의 내용을 자세히 알 수가 없습니다. 대충 이야기를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사건의 발단은 고(故) 김선미 양이 소련에서 발레 연수를 받던 중, 교수의 심부름으로 아이스크림을 사러 갔다가 교통 사고를 당하여 죽게 되면서부터입니다. 만약 김선미 양이 죽지 않았다면 이화여대 부정 사건은 세상에 드러나지 않았을 것이고, 그 죄악은 영원히 감추어지고 말았을 것입니다. 김 양이 죽자, 김 양의 어머니 고씨는 부정 입학 사례금으로 준 돈을 돌려 줄 것을 요구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고씨는 그 돈 말고서도 2억 원을 더 요구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부정 입학 사실을 폭로하겠다고 위협하면서 말입니다. 그 돈을 받아서 무엇에 쓰려고 했느냐고 묻자, 시집도 못 가고 죽은 딸을 위하여 조그마한 절을 지어서 불공을 드리려고 했노라고, 고씨는 대답하더라는 것입니다.
더욱 가슴 아픈 이야기는, 이화여대 부정 입학 사건과 관련하여 두 번째로 구속된 육완순 교수가, 꼬리가 완전히 잡히기 전까지 말하기를 “하나님 앞에서 맹세코 부정한 짓을 하지 않았다” 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 최고의 무용 전문가요 신앙인으로 어찌 그처럼 부정을 행하고서도 시치미를 뗄 수 있다는 말입니까? 더욱이 하나님 앞에서 맹세까지 하면서 말입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우리 인간은 잘못을 하고서도 그 잘못이 완전히 드러나기까지는 자신의 잘못을 쉽게 시인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지난 주일에 살펴본 아담과 하와의 경우도, 하나님이 두려워 숨을 정도로 잘못을 행하고서도 그 죄를 뉘우치기는커녕, 오히려 그 잘못을 하나님께 뒤집어씌우려는 허튼 수작을 부렸습니다. 그리고 핑계를 대고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려 했습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잘못을 하게 되면 말이 많아집니다. 잘못이 없는 사람은 아무 소리하지 않는데, 말이 많은 사람은 틀림없이 잘못을 행한 사람입니다. 자신의 헛점을 감추어 보려고 말을 많이 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니면 잘못을 시인하는 경우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면서 다른 사람을 물고 들어가거나, 다른 사람보다는 덜하다는 식으로, 자기 잘못을 회피하려 합니다.
사람은 온전치 못한 존재입니다. 누구를 막론하고 잘못이 없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도 그것을 아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 인간이 실수를 하고 잘못을 저지른다고 해서 크게 나무라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고 능력을 힘입어 최선을 다하는 것이 인간의 바른 자세입니다만, 그러나 최선을 다할지라도, 우리는 많은 실수를 하고 잘못을 범하게 됩니다. 이 때, 우리는 변명이나 핑계를 대려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그 잘못을 솔직히 시인하고 죄의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결단코 그 잘못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기꺼이 용서하심은 물론이요 우리를 위로하시고 새로운 힘과 용기를 북돋아 주실 것입니다.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잘못을 행하고서도, 그 잘못을 고백하지 않는데 있습니다. 잘못이 완전히 드러나기까지는 할 수 있는 한 발뺌을 하고 그 죄를 감추어 보려고 합니다. 잘못이 드러나도 핑계를 대고 그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기에 바쁩니다. 혹 사람은 속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속일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을 상대로 거짓말을 한 아담이나, 그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맹세를 하면서 까지 잘못을 감추어 보려고 애쓴 육 완순 교수의 모습은, 우리에게 너무나 슬프게 느껴지는 현상입니다.
과연 우리는 어떠합니까? 하나님 앞에서나 이웃들 앞에서 솔직하게 살아가고 있습니까? 내 잘못은 어떻게 해서든지 감추어 보려고 애쓰면서도, 다른 사람의 잘못은 손톱만큼도 용서 못하는, 그런 이중적인 인격자는 아닌 지요? 내가 잘못한 것은 그럴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라고 생각하지만, 다른 사람의 실수는 그 형편과 사정을 이해하거나 눈감아 주지를 못하고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우리가 아닌 지요?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아담의 후손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로 말미암아 구원받았다고는 하나 아직은 더 거듭나야 할 존재이기 때문에, 우리 속에는 아담의 검은 피가 많이 흐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1. 잘못을 행하고서도 말이 많고 다른 사람을 위해서는 조금치도 손해를 보려 하지 않습니다
인간에게는 높아지고자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때문에, 명예에 손상이 간다든지 자존심이 깎이는 일은 하기를 싫어합니다. 그러니 비록 잘못은 했을지라도 그 잘못이 드러나게 되는 것을 심히 두려워합니다. 어쩔 수 없이 그 잘못을 밝혀야 할 경우에는 그 일이 조용하게 처리되기를 원합니다. 많은 사람 앞에서 공개되는 것은 죽기보다 싫어합니다. 우리 집의 한나도 자기가 무슨 잘못을 하게 되면 제발 한별이 있는 데서 야단치지 말고 조용히 따로 불러서 혼내 달라고 신신당부입니다.
사실 아담과 하와도 자존심이 상해서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했던 것입니다. 어째서 자기들에게 먹어서는 안 되는 과일과, 가서는 안 되는 금지 구역을 하나님께서 만들어 놓았는가 하고 하나님을 의심하게 되자, 주변에 먹을 것이 지천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먹지 말라고 한 과일을 굳이 따먹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위를 탐내어 그런 무모한 도전을 감행했습니다.
사람들이 무슨 일을 열심히 하다가도 누가 명령을 하게 되면, 하던 일도 중단하고 맙니다. 제 흥에 겨워 노래를 하던 사람에게 마이크를 대면 노래를 그치고 맙니다. 요는, 남의 지배를 받거나 간섭을 받기 싫어하는 사람의 속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마음대로 지배하고 다스릴 수 있으되, 하나님의 통제만은 받아야 한다는 계율을 어긴 아담의 피가 우리 속에 흐르고 있어서, 오늘도 우리 중에는 헛된 욕망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주 많습니다.
신문지상을 비롯한 여러 매스컴에서 웃음거리가 되고 있고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는 국회의원을, 그래도 해 보겠다고 나서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다만, 지역의원이라도 해 볼 셈으로 엄청난 돈을 쓰는 것을 보면, 인간의 명예심이란 어떻게 막아볼 도리가 없는가 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오늘의 본문을 보면,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께 요청하기를, 『예수님이 왕이 되면 우리 형제가 좌의정과 우의정이 되게 해 달라』고 부탁을 하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있던 다른 열 제자들은 야고보와 요한을 보고 화를 냈습니다. 왜일까요? 사실은 나머지 열 제자들도 그런 욕심을 품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에 예수님은 제자들의 속셈을 알아차리시고 말씀하시기를, 『백성들의 지도자가 되려면 사람들을 억누르거나 지배하려고만 해서는 안 된다. 권력행사나 하려 하고 섬김만 받으려 하는 것은 세상 사람이나 하는 짓이다. 너희 중에 지도자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다른 사람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라고, 따끔한 교훈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다른 사람보다 높은 위치에 있게 되면 그보다 못한 사람을 잘 보살펴 주고 이끌어 주어야지, 높은 지위에 있다고 해서 말만 앞세우고 권리 행사나 하려는 것은 잘못된 것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특히 다른 사람을 섬긴다는 것은 손해를 보아야 한다는 말과 같습니다. 다른 사람을 이끌어 가는 위치에 있으려면 욕도 먹고 손해도 입어야 합니다. 어떤 때는 억울한 누명과 모함까지도 뒤집어 써야 합니다. 무슨 일이든지 앞장서 이끌어 가려면 욕을 바가지로 얻어먹어야 합니다. 하다 못해, 동네 반장이나 이장을 보려해도 온갖 욕을 많이 얻어 잡수셔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욕을 먹거나 소해 보는 것은 고사하고, 자기가 분명 잘못한 것까지도 시인하기를 꺼려합니다. 주님과 함께 감옥까지라도 가겠노라고 장담했던 베드로, 어린 소녀 앞에서 예수님을 세 번씩이나 모른다고 부인했으니, 우리 인간은 큰 소리는 잘 쳐도 손해가 될 일에는 결코 앞장서려 하지 않습니다.
세상에서는 혹 큰소리치고 다른 사람을 다스리면서 손해 보지 않아도 될는지 모르나, 믿음을 가진 사람은 그래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이방인과 우리는 추구하는 목적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 세상의 명예가 최고입니다만, 우리는 하나님 나라 상급을 더 귀하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주님과 복음을 위해서라면 욕 얻어먹는 것 뿐 아니라 죽음까지도 각오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생을 이 세상의 그 무엇보다 귀중하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아담이 하나님과 같이 높아지려다가 잃어버린 영생을 예수님께서 당신의 몸을 바쳐 찾아 주셨습니다.
2. 인간으로 오셔서 많은 사람의 죄악을 짊어지심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떳떳한 시민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사야 53장의 말씀을 보면, 『예수님은 온갖 굴욕과 억울한 재판을 받으면서도 입 한번 열지 않고 참으셨다』고 했습니다. 아무 잘못도 없이 죄를 뒤집어썼으나, 예수님은 결코 변명을 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많은 거짓된 사람들의 잘못을 깨우치시려고 묵묵히 십자가의 고통을 참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악의 세력을 물리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어떻게 사는 것이 인간의 참된 모습이며, 어떻게 해야 최후의 승리를 할 수 있는지 보여 주셨습니다. 이사야 53장 11절의 중반절의 말씀에, 『예수님은 많은 사람의 죄악을 스스로 짊어짐으로써 그들이 떳떳한 시민으로 살게 될 줄을 알고 마음 흐뭇해하리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당신 자신을 위해서 사신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하여 사셨고, 당신 자신의 잘못 때문에 죽으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죄 때문에 죽으셨습니다.
우리는 정반대입니다. 우리는 우리를 위해서 예수님을 이용하는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이화여대 육 완순 교수는 자기의 죄를 감추어 보려고 하나님을 이용했습니다. 우리는 잘못을 하고서도 말이 많으나, 예수님은 잘못이 없으시면서도 말씀이 없었습니다. 우리는 한시라도 더 높은 지위에 오르려고, 더 많이 섬김을 받으려고, 더 많은 권력 행사를 하고 싶어서 안달입니다만, 예수님은 높은 곳에 있었으나 스스로 낮아져서 인간이 되셨습니다.
뿐만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많은 유혹을 받았을 때에 그 유혹을 물리쳐 승리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연약한 우리를 무시하거나 업신여기지 않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히브리서 4장 15절에서 『예수님은 연약한 우리의 사정을 알아주시는 분』이라고 했습니다. 무슨 목사가 그것도 모르느냐? 무슨 장로가 그것도 못하느냐? 권사가 되어 가지고 어째서 그러냐? 이렇게 타박을 하거나 나무라지 않습니다. 우리의 사정을 다 아시기 때문에, 사람들처럼 물정 모르고 문제 삼거나 야단치지 않습니다. 다만 예수님은 오늘도 성령을 보내 주셔서 말씀대로 순종하면서 살려는 사람에게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가르쳐 주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처럼 사랑과 자비가 많으시면서도 위선자들을 미워하셨습니다. 큰소리나 치지 실제적인 헌신과 봉사가 없는 바리새인들을 욕하셨습니다. 자기들이 사랑을 베풀지 못하면 다른 사람이 하는 것을 막지 말아야 했는데, 바리새인들은 자기들 체면 때문에 다른 사람의 헌신까지도 방해를 놓았습니다. 권리나 행사하고 대접만 받으려 할 뿐, 궂은 일 할 때에는 뒷전으로 빠져 버렸습니다.
결국 예수님은 이들에 의해서 억울한 죽임을 당합니다만,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은 이들을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저들이 모르고 하는 짓이니 용서해 달라고 말입니다.
저는 연약합니다. 심히 부족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처럼 살고 싶습니다. 감히 예수님 흉내조차 낼 수 없는 죄 많은 인생이지만, 그래도 예수님 닮기를 원합니다. 마땅히 할 일을 하고서도 욕을 먹으나 아무 변명도 하지 않기를 원합니다. 아니, 다른 사람을 위해서 수고했으나 그 결과가 칭찬이 아닌 야단을 맞을 지라도 억울해 하지 않는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내 공로를 다른 사람에게 다 빼앗기고 죄를 뒤집어쓸지라도 슬퍼하지 않기를 원합니다. 말없이 내 할 일 다 하면서도 공치사하지 않는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다른 사람이 내 잘못이나 허물을 물고 늘어져도 끝내 화를 내지 않는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되기를 원하리라 믿습니다. 여러분이 교회에 나온 것은 무슨 권력을 행사하고 이름을 내기 위해서가 아님을 알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하면 사람답게 살 수 있을까 하고 고민하던 나머지, 예수를 믿게 된 여러분이신 것을 저는 압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렇다면 우리 모두,
3. 말없이 주와 이웃을 섬기는 삶을 삽시다
한나가 가끔 고백하기를, 『저도 제 성격을 잘 모르겠어요』하고 말합니다. 아침결에 골을 내고 학교에 갔다가 돌아온 후, 조용히 붙잡고 대화를 하면 그렇게 고백을 합니다. 자신을 골을 내지 않고 명랑하게 학교에 가고 싶으나, 왠지 모르게 짜증이 날 때에는 자신이 미워진다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누구를 막론하고 정직하고 바르게살기를 원할 것입니다. 좋은 일을 많이 하여 칭찬 받고 살고 싶어하는 것은 너나 할 것 없이 원하는 바입니다. 그러나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인생입니다. 어느 날 조용히 자신을 돌아보면, 자기가 원하는 바와는 전혀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때가 있습니다. 쓸데없이 화를 내고서는 스스로 무안하여 더 큰 소리를 칠 때도 있습니다.
거짓을 버립시다. 그리고 자존심 상하는 것을 별스럽지 않게 여깁시다. 잘못한 것은 잘못 했노라고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들 앞에서 솔직히 털어놓읍시다. 또한 주님께서도 아무 잘못 없이 욕을 먹고 누명을 쓰셨으나, 제자인 우리도 욕먹는 것을 당연한 일로 여깁시다.
다른 사람을 지배하고 권리 행사함으로써 기쁨을 누리기보다는, 다른 사람을 받들고 섬김으로써 보람을 누리는 생활을 합시다. 다른 사람의 잘못을 지적하고 문제 삼기보다는, 그의 약함을 도와주고 허물을 덮어 주는 너그러움을 보여 줍시다. 만일 그 잘못을 지적해야 할 경우에는 말로써 할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 주어야 합니다.
아무튼 우리는 자기 위치에서 자기 할 일만 열심히 하면 됩니다. 더 낮아져서 섬기지는 못할망정 더 높은 곳에 올라설 생각은 아예 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살뿐이므로, 자랑할 것 하나 없습니다. 오! 하나님, 당신만이 홀로 영광을 받으시옵소서.
여러분과 저는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입니다. 참으로 귀한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무 죄가 없으나 희생 제물로 돌아가신 예수님의 제자입니다. 우리가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귀한 자녀가 되기 위해서는, 세상의 방법이 아닌 하나님의 방법, 곧 말없이 주와 이웃을 섬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 모두, 오늘 주신 말씀을 가슴에 바로 새기는 거룩한 길가는 복된 인생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