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 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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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입성
마태복음 2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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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천에서 용이 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몰락하여 가난하게 된 집안에서도 그 간고함을 극복하기 위하여 이를 악물고 목표한 바를 이루려는 이들의 성공담을 간간이 들을 수 있었습니다. ‘형설의 공’은 이런 형편에 기원합니다. 개천에서 용이 난 이야기는 처지와 형편이 여의치 않은 젊은이들에게 큰 용기가 된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하지만 사회적 풍요와 편리함이 보편화된 오늘의 세상에서는 더 이상 개천에서 용이 나지 않습니다. 젊은이들 스스로 그런 의지를 접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은 이 세상 구조가 더 이상 수직적 신분 상승을 용납하지 않고 있다는 절망 의식의 발로입니다. 자유는 주어졌지만, 선택의 폭은 제한된 현실 앞에서 젊은이들은 좌절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에게서 무기력과 요행심과 무책임을 보는 일은 슬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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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보니 부와 권력의 대물림이 대세가 되고 있고 그 양극화는 더 첨예화될 것입니다. 이런 현상은 사회를 불안하게 합니다. 노력하고 애써도 자기 신분에 변화를 줄 수 없다는 절망감은 사회 발전 동력에 제동을 겁니다. 그렇게 하여 우리 사회는 서서히 정체되고 빨리 몰락해갈 것입니다. 소수의 특권층에게는 남의 일 같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가진 자의 ‘공생’ 정신이 절실한 시점입니다. 이미 우리 사회 곳곳에서 붉은 신호등이 켜지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을 신속하게 인지하고 정책을 마련하여 수습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일은 정치의 몫입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 정치에 이런 기대를 한다는 게 우물가에서 숭늉 달라는 격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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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드디어 예루살렘에 입성하십니다. 성 밖에서 성으로 들어가시는 주님을 따르는 사람들의 분위기와 성안 주민의 반응은 확연한 차이가 있습니다. 주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자신의 겉옷을 길에 깔고 나뭇가지를 길에 펴며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21:9) 소리칩니다. 그런데 예루살렘 주민들의 반응은 달랐습니다. “온 성이 소동하여 이르되 이는 누구냐 하거늘 무리가 이르되 갈릴리 나사렛에서 나온 선지자 예수라 하니라”(21:10~11) 성안 주민은 주님을 ‘다윗의 자손’으로 보지 않고 ‘나사렛 선지자’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다윗의 자손’으로 다윗성에 입성하는 예수님에 대한 오판입니다. 물론 ‘나사렛 선지자’가 틀린 말은 아닙니다만 그들은 ‘나사렛’에 방점을 찍고 있음이 틀림없습니다. 나사렛은 선한 것이 날 수 없는 땅(요 1:46)이라는 고정관념의 표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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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다 큰 어른이 새끼 나귀를 타고 입성하는 모습이 썩 어울리는 그림은 아닙니다. 9척 거구의 범상치 않은 외모의 풍채 당당한 이가 수백 필의 군마를 이끌고 입성한다면 모를까 거지 차림의 한 남자가 어린 나귀를 타고 땅바닥에 발이 질질 끌리며 입성하는 모습은 우스꽝스럽습니다. 로마 군인들은 비웃었고, 유대 엘리트들은 고소를 금치 못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진리가 있습니다. 주님은 왕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하고 계시지만 그것은 다윗 언약(삼하 7:12~16)의 성취자로서 구속사적 해석이 필요한 입성이지 세속적 왕의 입성은 아닙니다. 오늘 우리가 착각하고 오해하는 부분이 여기에 있습니다. 주님을 물리적 권력의 왕좌에 앉히므로 자기 욕망을 정당화, 또는 변명하고자 함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분명한 사실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1:21)하기 위하여 주님은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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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약속의 성취를 믿고 오롯이 왕의 길을 따라 살기를 애쓰는 하늘 백성에게 주님의 이끄심과 돌보심이 함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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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복음의 본질을 벗어나 진리를 왜곡하는 거짓을 분별하는 안목 주시기를 빕니다. 순전한 복음 가치를 따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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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 : 140 왕 되신 우리 주께
https://www.youtube.com/watch?v=Q2JdS9leYBg
2023. 3.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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