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노믹스17] 주 52시간 = 바벨탑 일꾼들

홈 > 커뮤니티 > 햇볕같은이야기
햇볕같은이야기

[바이블노믹스17] 주 52시간 = 바벨탑 일꾼들

기독정보닷컴

hb5624.jpg

[바이블노믹스17] 주 52시간 = 바벨탑 일꾼들

 

김민홍 2021.03.15

 

“환경열악 부당노동에 시달려

노동자는 하나님 소유의 품꾼”

 

노동은 행동하는 인간의 자랑이다. 생존과 생활의 원천이고 존재의 이유다. 심하게 말하면 인간은 일을 하기 위해서 세상에 태어났다. 인류는 그동안 피와 땀과 눈물을 흘린 노동 덕택에 찬란한 문명과 문화를 만들어냈다. 노동을 했기에 자연을 관리하고 아름답게 만들어왔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땀을 흘리고 땅을 파도록 명령했다. 먹고 살기 위해서다. 탈무드에서도 노동의 가치를 이렇게 강조했다. ‘자식에게 노동을 가르치지 않는 행위는 약탈이나 강도를 준비시키는 행위나 같다.’ 그렇다. 일은 우리들의 책임이자 쾌락과 기쁨이며 축복이다. 노동의 달콤함과 감미로움은 마약이며 행복이다.

 

그러나 우리는 하루 온 종일 일만 할 수 없다. 땀을 흘리지 않는 시간도 가져야 한다. 먹고 자고 즐기는 시간이 필요하다. 바로 휴식이다. 노동은 이 필요한 휴식의 시간을 만들어 준다. 노동은 의식주에 들어가는 금전을 제공하는 기능마저 있다. 이것이 노동의 보람이고 가치이다. 우리는 하루 24시간 중 노동에 쏟는 시간보다 휴식 시간을 더 많이 가져야 한다. 풍요롭고 행복한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또 휴식은 우리의 건강과 노동력을 충전시켜 미래 잠재 생산력을 향상시키는 장점도 지녔다. 휴식은 취미 등 각종 여가활동을 비롯해 일하지 않는 모든 시간을 말한다. 때문에 휴식은 우리의 권리이다. 그런데 노동 현장은 그리 만만치 않다. 일에 쫓기고 일에 짓눌리는 날이 허다하다. 농부는 여름철 해가 뜨면 들녘으로 나가서 해가 저물어서야 집으로 들어 온다. 회사도 그렇다. 프로젝트를 앞두고는 더러 밤을 꼬박 새우기도 한다. 공장도 일감이 몰려들면 야근도 마다하지 않는다. 현장 24시간 중 노동시간이 휴식 시간 보다 더 길다.

 

그렇다면 하루 노동은 몇 시간이 가장 적당할까. 한국은 압축성장 시대 하루 12시간 이상 장시간 노동은 예사였다. 이 바람에 근로자들은 건강을 해쳤다. 특히 부상 등 각종 안전사고 발생 등으로 산업재해가 큰 문제로 제기됐다. 그때 우리들은 초과근무 수당이나 철야 수당만 주면 일을 겁내지 않았다. 모두가 가난했던 시절이고 아픈 상처로 남아 있다. 우리만 그랬던 게 아니다. 선진국도 성장시대 때 그랬다. 영국이 성인 1일 근로시간 12시간으로 제한된 때가 1850년경이다. 그 이전엔 15시간 노동이 예사였다. 하루 노동 8시간이 정착된 시기도 1935년에 들어와서다. 이때 국제노동기구(ILO)가 주 40시간 근로시간을 지키도록 선언했다. 주 40시간제를 최저시간으로 적용 한 것도 2차 세계대전 이후이다. 바벨탑을 쌓던 일꾼들은 말이 통하지 않아서 뿔 뿔이 흩어졌다. 바벨탑의 미완성은 불통이 원인이다. 그런데 오늘의 시각에서 보면 말이 안 통해 공사중단은 설득력이 약하다. 토목 건설현장은 손짓 발짓만으로 공사가 착착 진행되어서다. 중동건설 현장에서 그랬고. 또 오늘날 전국 곳곳 대형건설 현장엔 방글라데시 등 외국에서 온 근로자들이 땀을 흘리고 있다. 소통엔 전혀 지장이 없다.

 

그렇다면 바벨탑의 미완성은 다른 원인도 있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바로 부당 노동 행위이다. 부당 노동 행위는 주로 근로자들의 혹사이다. 노동시간이 엄청나게 길어 근로자들이 육체적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는 경우도 있을 터이다. 실제로 이집트의 피라미드 공사와 비교해보면 잘 이해가 된다. 바벨탑은 가자지구의 피라미드보다 수 천 년 앞선 시기에 착공됐다. 피라미드 공사는 도르래 등 각종 건설 도구가 만들어지기 전인 지금부터 4,500 년 전에 착공됐다. 피라미드 돌 하나는 무게가 2톤이 조금 넘는다. 이 거대한 돌을 무려 230만 개나 쌓아서 만들었다. 10만 명의 노동자가 20년에 걸쳐서 지었다. 큰 돌덩어리를 깨고 운반해서 쌓는 과정에서 노동자들은 수없이 죽거나 다쳤다. 웬만하면 도망칠 만도 하다. 그러나 피라미드 노동자들은 그리 쉽사리 도망을 칠 수 없었다. 이들의 거처와 관리기술이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바벨탑을 올릴 때와는 달랐다. 바벨탑 노동자들의 행동은 그만치 자유로웠고 감독시스템이나 관리 수준이 엉성했다고 봐야 한다. 해서 바벨탑 근로자들은 집단 사보타주(태업)가 가능 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노동의 의무를 주었지만 휴식의 권리 또한 선사했다. 성경은 어떤 주인이라도 ‘일꾼 들을 고되게 부려서는 안 된다’고 엄명했다. 일꾼들은 고되게 부리지 말라가 아니다. 부려서는 안 된다는 매우 강한 톤으로 규정했다. 그리고 모름지기 너희는 하나님 두려운 줄 알아야 한다고 경고했다. 이는 만약 위반할 때 매우 엄하게 다스리겠다는 하나님의 강한 의지가 녹아있다. 그 까닭은 일꾼의 성격에 있다. 우리 인간은 어떤 주인의 품꾼이 아니다. 하나님의 품꾼이다. 때문에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이 사실을 기회 닿을 때 마다 거듭해서 말했다. 이스라엘 민족은 이집트 노예 생활을 잊지 말도록 강조했다. 우리도 국민소득 수준이 높아지면서 장시간 노동 현장의 문제가 제기됐다. 우리 근로기준법은 한국동란 중에 만들어졌다. 미국과 일본 노동 관련법을 빌려 다 제정했다. 당시 한국 노동 현장과 제조업은 열악했지만 제도 자체는 선진국의 기준에 손색이 없었다. 부당노동행위를 단속하고 하루 8시간 주 48시간 근로를 허용했다. 다만 노사 당사자간에 합의에 따라 주 60시간 근로를 허용했다. 그러나 실제 근로 현장은 중노동으로 허덕였다.

 

이제 우리의 노동자들은 일에서 해방되고 삶의 질 이 날로 높아지고 있다. 그것은 현장의 기계화 자동화와 로봇 AI 등 디지털화 등으로 노동의 종말이 가까워지고 있어서다. 또 정부도 소득수준 향상과 삶의 질 향상을 뒷받침하기 위해 노동법 등 근로조건을 지속적으로 손질했다. 이제는 주 52시간 근무제가 시행되고 있다. 그래도 일부 현장은 열악하고 부당노동행위도 더러 발생한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 동등하다. 노동자는 주인의 품꾼이 아니다. 하나님의 품꾼이다. 인간은 하나님의 소유이고 종이다. 이는 우리의 은총이고 축복이며 소중한 가치이다. 이 연장선에서 노사관계도 살펴야 한다. 경영자들은 노동자들의 노동이 의무이지만 휴식도 권리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그들에게 충분한 휴식을 주고 또 노동에 투입해야 하는 법이다. 이는 하나님의 명령이다. 품꾼을 대접하라는 게 하나님의 법이다. 노동자들도 그렇다. 품꾼으로서 의무를 다해야 한다. 주인의식을 갖고 주어진 시간에 최선을 다 해야 한다. J

 

 김민홍  cnews1970@naver.com

0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