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의 설교( Peter's sermon)
베드로의 설교 (Peter's sermon)
행10:34-43
2022.4.17. 부활주일
1.유대인 베드로와 이방인 고넬료가 동시에 환상을 보았다.
2.베드로는 최초로 이방인 고넬료 집에서 설교를 한다.(이방선교시작)
3.베드로는 ‘하나님께서는 누구든 다 받아 주신다’고 한다.(34-35절)
4.베드로는 예수에게서 일어난 케리그마를 설교한다.(36-37절)
5.베드로는 예수에게 성령이 임하여 능력 행하심을 설교한다.(38절)
6.베드로는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설교한다.(39-41절)
7.베드로는 예수님의 부활과 장차 심판주로 오심을 설교한다(42-43)
1.베드로와 고넬료
유대인 베드로와 이방인 고넬료가 동시에 환상을 보았다.
오래전에 어떤 분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우연히 ‘종교’ 이야기가 나와 저는 그분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저는 “일단 기독교인들이 믿는 ‘구원의 복음’을 설명해 볼 테니까 한번 들어보세요. 절대로 강요하는 것은 아닙니다. 믿든 안 믿든 그것은 알아서 판단하시면 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저의 설명을 들은 그분은 “아니, 그렇게 중요한 ‘구원’을 이 나이가 되도록 저에게 이야기해 준 사람이 왜 없었죠? 그런 내용은 ‘진화론’처럼 교과서에 실어서 모든 국민이 다 알아야 하는 중요한 것 아닌가요? 기독교인들이 ‘구원’을 너무 ‘종교적으로’ 접근하고 말하니까 일반 사람들이 어떤 편견이나 선입견을 가지고 받아들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승천하시고 성령강림 사건이 일어난 이후에 유대인 개종자들로 이루어진 초대 기독교인들은 20년이 넘는 세월이 흐르는 동안 유대인이 아닌 민족에게는 복음을 전할 생각 자체가 없었고, 그들은 이방인들이 구원받는다는 사실 자체를 납득하지 못했습니다.
‘고넬료’라 하는 이방인이 있으니 로마 군대의 백부장인데 로마에서 파송 받아 가이사랴에 왔다가 거기서 ‘복음’을 듣고 나름대로 열심히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그가 이방인이었기에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행10:1-2) 어느날 사도 베드로와 이방인 고넬료가 동시에 환상을 보았고 베드로는 고넬료의 집으로 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억지로 고넬료의 집으로 가게 됩니다.
2.이방인 선교
베드로는 최초로 이방인 고넬료 집에서 설교를 한다.(이방선교시작))
베드로는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20년만에 유대인으로서 최초로 이방인의 집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잘 아시다시피 유대인은 이방인과 어울리거나 찾아다니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관상(행10:10) 가운데 어떤 사람이라도 속되거나 불결하게 여기지 말라고 하셨습니다.”(행10:28) 유대기독교 최고 지도자인 베드로가 이방인 고넬료의 집에 들어가 설교를 한 사건은 이방인에게도 복음을 전해도 된다는 신호탄과도 같은 사건이었습니다. 오늘날로 비유를 하자면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장이 서울의 어떤 절에 가서 모여있는 스님들에게 설교를 한 것과 같은 엄청난 일입니다.
베드로의 설교에 가장 영향을 많이 받은 사람은 ‘사도 바울’이었습니다. 그는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베드로를 보면서 나도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해야겠다고 다짐합니다. 그리고 이방인 전도를 위해 세 번이나 ‘여행’을 떠납니다. 그러다가 이방인 전도를 철저하게 반대하는 ‘유대 근본주의 기독교 지도자들’에게 잡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집니다.
만약 사도 바울이 이방인 전도를 위해서 이방 지역에 세워진 여러 교회에 보낸 편지가 없었다면 오늘날 우리는 신약성경의 절반을 갖지 못했을 것입니다.
제가 스승님으로 모시는 아무개 목사님은 마치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에서 설교를 한 것처럼 지금 동네에 있는 작은 절에 모여서 주일예배를 드립니다. 교회 안(성)과 교회 밖(속)이 따로 없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베드로에게 환상으로(행10:10-11) 보여주신 것입니다.
3.선택적 만인구원론
베드로는 ‘하나님께서는 누구든 다 받아 주신다’고 한다.(34-35절)
베드로는 골수 ‘유대인’으로 살다가 예수님을 만나 기독교인이 된 ‘유대기독교인’입니다. 그래서 그는 아직 ‘유대교’의 물이 다 빠지지 않아 반은 유대교+반은 기독교인입니다. 마치 우리나라 유교문화권에서 기독교인이 되면 기독교도 유교처럼 생각하여 반 유교+반 기독교인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이는 바울과 자주 다투거나 의견충돌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그런 베드로가 환상 중에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변합니다. 베드로는 ‘하나님께서는 누구든 다 받아 주신다’고 설교합니다.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고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다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행10:34-35) 복음은 유대인뿐만 아니라 백인, 유색인, 지식인, 무식인, 어린이, 노인, 여자, 남자, 종교, 국적을 가지리 않고 모든 사람들과 누구에게나 다 문이 열려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다’라는 말은 누구는 사랑하고 누구는 사랑하지 않는 ‘차별적 사랑’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유대인들은 지금도 이스라엘 민족‘만’ 선택받았다는 독선적인 선민의식과 엘리트주의에 빠져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전도’같은 것을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베드로와 바울의 주장은 누구나 구원받을 수 있다는 ‘만인구원론’입니다. 다만 ‘하나님을 경외하고 의를 행해야’(베드로)‘예수님을 믿어야’(바울) 한다는 ‘선택적 만인구원론’입니다. 바울의 복음을 믿고 따르는 개신교는 누구나 구원을 받을 기회가 주어져 있다고 믿기에 열심히 만인에게 전도를 해서 구원을 받게 해야 합니다.
4.케리그마
베드로는 예수에게서 일어난 케리그마를 설교한다.(36-37절)
베드로는 예수에게서 일어난 일을 설교합니다.(행10:36-37) 예수 그리스도가 누군지를 설명합니다. 예수가 누군지를 알려면 예수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예수에게 일어난 일을 ‘복음’이라고 하며, 그것을 전하는 것을 ‘케리그마’라고 합니다. 케리그마를 우리나라 말로는 ‘설교’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복음’이 빠진 설교는 ‘케리그마’가 아닙니다.
한국 교회가 이렇게까지 망가진 것은 케리그마가 온전히 선포되지 않고 사람들이 듣기 좋아하는 인본주의적 기복강령과 긍정적 적극적 사고방식이나 심리학, 상담학이 교묘하게 복음으로 위장되어 선포되었기 때문입니다. 조금 급진적인 교회와 교단은 윤리실천과 사회참여 같은 인간 중심적인 메시지가 선포되었습니다. 케리그마의 선포가 없는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정체성 곧 표지를 상실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에서 케리그마가 선포되지 않은 결과 ‘회심’하는 신자들을 보기 어렵게 되었고 회심이 없으니 당연히 ‘성화’의 삶도 없습니다. 교회에 등록한 ‘교인’숫자는 많아도 진정으로 거듭난 ‘신자’나 ‘성도’는 없는 것입니다. 케리그마의 사명을 다하지 않는 교회와 교인, 신자, 성도는 무기력해지고 결과적으로 사회를 향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니 세상 사람들에게 밟히면서 조롱거리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케리그마의 내용을 요약하여 기도문으로 만든 것을 ‘사도신경’ 또는 ‘사도신조’라고 합니다. 사도신경을 앵무새처럼 입으로만 암송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사도신경은 삶으로 살아내야 하는 케리그마입니다.
5.성령의 능력
베드로는 예수에게 성령이 임하여 능력 행하심을 설교한다.(38절)
베드로는 예수에게 성령님이 임하여 능력을 행하신다고 설교합니다.(행10:38) 하나님은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의 능력을 가득 채워주셨습니다. 예수님은 갈릴리와 유대 땅을 다니면서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사람을’ 고치셨습니다.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행10:38)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드님이시니 특별히 성령님의 능력이 임하셔서 기적을 행하셨나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성령님이 없어도 얼마든지 능력을 행하실 수 있었지만 우리들에게 본보기가 되시기 위해서 성령님과 협력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늘로 승천하시면서 성령이 오시면 우리들도 예수님과 똑같은 능력을 행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오늘날도 마찬가지로 성령님이 계신 곳에는 그때와 똑같은 기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개도국을 중심으로 지금도 성장을 계속하고 있는 교파는 성령의 초자연적인 능력인 방언과 예언과 치유와 대적과 기적과 은사를 강조하는 오순절교회입니다.
정통 율법주의 유대인들이 ‘나사렛파 기독교’인들을 핍박하고 잡아 죽인 이유는 그들이 방언을 하고 예언과 치유와 서로 물건을 통용하는 ‘성령의 능력’이 나타난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오늘날 예수님을 믿으면서 성령의 능력은 부정하는 정통 교단들은 오순절 교회들이 ‘방언’을 하고 ‘축귀’를 하고 치유, 예언 사역을 통해서 성령의 능력이 나타난다’는 이유로 그들을 정죄하곤 합니다.
6.십자가 사건
베드로는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설교한다.(39-41절)
베드로는 예수의 십자가 사건을 설교합니다.(행10:39-41) 사람들이 나사렛 예수를 ‘나무에 달아’ 죽였습니다. 유대 종교권력과 로마 정치권력, 그리고 그런 권력을 추종하던 이들의 야합에 의해서 일어난 어처구니없는 사건이었습니다. 이것으로 예수의 역사가 끝장났다면 정의가 굴복당하고 불의가 승리한다는 논리가 성립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죽은 예수를 삼일만에 다시 살려버리셨습니다. 이것은 원수들을 깜짝 놀라게 하고 굴복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미리 택하신 증인’들 즉, 장차 예수님을 믿게 될 그리스도인들인 바로 우리들을 위해서입니다.(행10:41)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의 능력’이 나타나 그곳에 있는 사람들을 사로잡았지만 그들은 20년 동안이나 복음을 외부로 확산시킬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유대교의 신앙 전통을 따랐으며 유대인들도 그들을 ‘나사렛파’라고 부르며 유대교 분파의 한 이단으로 취급했습니다.
하나님은 예수 복음을 ‘유대인’에게서 빼앗아 전 세계로 확산시키기 위해 베드로와 사도 바울을 사용하셨습니다. 70년 예루살렘 멸망 이후 ‘바리새파 유대교 재건회의’가 ‘나사렛당 사람들을 저주하는 기도문’을 발표하면서 기독교는 유대교와 완전 분리되었고, 복음은 로마제국 내의 비유대인인 이방인들 사이에 급속도로 전파되어 기독교는 세계종교로 발달하게 됩니다.
예수 십자가 사건을 중심으로 세워진 교회가 물질과 권력이 생기고 배부르고 등따시면 꼭 ‘십자가’를 버리고 딴데로 눈을 돌립니다. 당연히 하나님께서는 그 그릇을 버리고 다른 그릇을 사용하시죠.
7.부활과 심판
베드로는 예수님의 부활과 장차 심판주로 오심을 설교한다(42-43)
베드로는 예수의 부활하심과 장차 심판주로 다시 오심을 설교합니다.(행10:42-43) ‘하나님이 사흘 만에 그를 다시 살리셨다.’ 십자가에 처형당한 나사렛 예수를 다시 살리신 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악을 굴복시키고 승리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을 특별한 사람들에게 생생한 생명으로 경험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어떤 사람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생생하게 생명으로 경험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이유가 사업이 잘되고, 자녀가 잘되고, 돈 많이 버는 직장에 취업하고, 건강이 좋아지고, 교회가 부흥하여 건물을 짓고... 이런 현세적이며 물질적이며 탐욕이 가득한 것이라면 그 사람은 하나님도 부활하신 예수님도 만나지 못합니다.
기독교가 잃어버린 신앙 개념이 있는데 지복직관(至福直觀)입니다. ‘하나님을 직접 뵈옵는 천국의 행복한 상태’를 말합니다. 하나님을 직접 뵙는 것은 하나님의 행복에 참여하는 것이고, 그 자체가 최고의 행복입니다. 사막의 은자들, 성인(聖人)들도 모두 지복직관의 복을 누린 사람들입니다.
베드로가 이 말을 할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받은 (유대인)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부어 주심으로 말미암아 놀라니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 이에 베드로가 이르되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능히 물로 세례 베풂을 금하리요” 하고 명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하니라.(행10:44-48) 드디어 이방인에게도 성령의 능력이 임하여 방언을 말하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가 베풀어졌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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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1.The Renovare Spiritual Formation Bible(두란노)
햇볕7584-7589 연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