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사복음서(4권의 복음서)를 주신 이유는 무엇인가?

하나님이 사복음서(4권의 복음서)를 주신 이유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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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하나가 아닌 네 권의 복음서를 주신 데는 다음과 같은 이유들이 있습니다.

1) 그리스도에 대한 보다 완전한 그림을 제공하기 위해서입니다. 성경 전체가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되었지만(딤후 3:16), 하나님은 그분의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 배경과 성격이 다른 인간 저자들의 글을 사용하셨습니다. 각 복음서의 저자들은 각각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 목적을 수행함에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사역을 다른 측면으로 강조했습니다.

마태는 히브리 청중에게 편지를 쓰고 있었는데, 그의 목적 중 하나는 예수님의 족보와 구약의 예언에 대한 성취를 보여 주면서 그들이 오랫동안 기대했던 메시아가 바로 예수님이신 것을 믿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마태의 강조점은 예수님이 약속된 왕, 곧 이스라엘의 왕좌에 영원히 앉으실 “다윗의 자손”이라는 사실입니다(마 9:27; 마 21:9).

바나바의 사촌인 마가(골 4:10)는 사도 베드로의 친구일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생애에 일어난 사건들을 목격한 자였습니다. 마가는 이방인 청중을 위해 복음서를 썼고 이에 유대인 독자들에게 중요한 것들은 포함되지 않았습니다(계보, 유대인 지도자와의 그리스도의 논쟁, 구약에 대한 잦은 언급 등이 빠져 있습니다). 마가는 그리스도를 고난 받는 종으로 강조하고 있으며 그분은 섬김을 받으러 오지 않고, 많은 사람을 섬기려 하고 그분의 삶을 대속물로 주시기 위해 오신 분(막 10:45)임을 강조합니다.

전도자이자 사도 바울의 동반자였던 “사랑 받는 의사” 누가는(골 4:14)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기록했습니다. 누가는 신약 성경의 저자들 가운데 유일한 이방인 저자입니다. 누가가 쓴 계보 및 역사적인 연구들을 사용해 온 사람들은 그를 부지런한 역사가로 받아들여 왔습니다. 그는 역사가로서 목격자들의 증언을 근거로 하여 그리스도의 생애를 차례대로 정돈하여 기록하는 것이 그의 의도라고 말합니다(눅 1:1-4). 그는 높은 지위를 지닌 이방인 데오빌로의 유익을 위해 그의 글을 썼기 때문에 그의 복음은 이방인 청중을 염두에 두고 작성되었으며, 그의 의도는 그리스도인의 믿음이 역사적으로 신뢰할 수 있고 검증 가능한 사건을 기반으로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데 있었습니다. 누가는 종종 그리스도를 “인자”라고 부르며 그분의 인성을 강조하고 있고, 또한 다른 복음서에는 없는 많은 세부 내용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이 쓴 요한 복음은 다른 세 복음서와 구별되며 그리스도에 관한 많은 신학적인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마태, 마가, 누가는 “공관복음”으로 불리는데 그 이유는 그리스도의 생애를 다같이 다루고 있고 또한 유사한 형식과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탄생이나 지상에서의 사역이 아니라 예수님이 사람이 되시기 전에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활동과 특성으로 시작됩니다(요 1:14). 요한복음은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요 1:​1), "세상의 구주"(요 4:42), "하나님의 아들”(반복적으로 사용됨), "주님이시요 하나님"(요 20:28)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예수님의 신성을 강조합니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은 또한 여러 차례에 걸쳐 "내가 그니라”(I am)라는 진술을 통해 자신의 신성을 확증합니다. 그 중에서 가장 주목할만한 것은 요한복음 8장 58절에서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는 예수님의 진술입니다(비교, 출 3:13-14). 그러나 요한은 또한 그리스도의 인성을 믿지 않던 그 시대의 종교 분파였던 영지주의의 오류를 드러내기 위해 예수님의 인성에 대한 사실을 강조합니다. 요한복음은 그 글의 전반적인 목적을 설명합니다.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 20:30-31).

따라서 그리스도에 대한 네 가지의 구별되지만 동등한 정확한 설명으로 인하여 그리스도와 그분의 사역의 다양한 측면들이 드러납니다. 각 기록은 사람의 묘사를 초월하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좀 더 완전한 그림을 형성할 수 있도록 함께 짜인 태피스트리와 같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하지만(요 20:30), 우리는 네 복음서를 통해 그분이 누구시며 그분이 우리를 위해 행하신 것이 어떤 의미인지 충분히 알게 됨으로 그분을 믿고 생명을 얻게 됩니다.

2) 우리가 그들의 기록의 진실성을 객관적으로 검증할 수 있도록 하려 함입니다. 성경은 처음부터 한 명의 목격자의 증언에 근거하지 않고 최소한 2-3명의 증언을 근거로 하여 법정 판결을 내려야 한다고 언급합니다(신 19:15). 이와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사역에 대한 서로 다른 기록들을 통해 우리는 그분에 관한 정보가 정확하다는 것을 평가할 수 있습니다.

법정에서 신뢰를 얻을 수 있는 증거를 구성하는 것에 대해 유명한 인정받는 권위자, 사이몬 그린리프(Simon Greenleaf)는 법적인 관점에서 네 복음서를 점검했습니다. 그는 네 복음서의 증인의 기록 유형을 보며 일치하는 구절들도 보고 또한 세부 내용에 있어서 각 저자가 다른 저자들과는 달리 어떤 세부 내용을 생략하거나 추가하는 것을 보고는 이러한 증거는 법정에서 강한 증거로 받아들일 수 있는 믿을만하고 독립적인 전형적인 자료라고 지적했습니다. 만일 모든 복음서가 똑같은 세부 내용으로 정확하게 동일한 정보를 똑같은 관점에서 담고 있었다면, 이는 결탁을 의미하였을 것입니다. 즉, 저자들이 그들의 글을 믿을 만하게 조작하기 위해 사전에 함께 모여 "이야기를 바로 잡는" 시간을 가졌을 것을 의미합니다. 복음서들 간의 차이, 심지어 당장 보아도 모순처럼 보이는 세부 내용들은 각 기록의 독립적인 속성을 말합니다. 따라서 정보에 있어서는 일치하지만 관점과 세부 내용의 기록 양과 기록된 사건에 있어서 다르다는 것은 복음서에서 제시하는 그리스도의 삶과 사역에 대한 기록들은 사실이며 신뢰할 만한 것임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3) 부지런한 사람들에게 보상하기 위해서입니다. 각 복음서에 대한 개별적인 연구를 통해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사역의 특정한 사건들에 대해 여러 기록들을 비교하고 대조함으로써 여전히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마태복음 14장에는 5천 명을 먹인 사건과 예수님이 물 위를 걷는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태복음 14장 22절은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를 타고 앞서 건너편으로 가게 하시고 무리를 보내신 후에”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왜 예수님이 그렇게 했습니까?”라고 물을 수 있습니다. 마태의 기록에는 그 이유가 명백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마가복음 6장의 기록을 보면, 예수님이 제자들을 둘씩 보내시면서 주신 권세를 가지고 마귀를 내쫓고 병을 치료한 후에 돌아오게 한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그들은 자기들의 위치를 망각하고 교만하여져서 예수님을 가르치려고 합니다(마 14:15). 이에 예수님은 그 날 저녁에 그들을 갈릴리 바다 건너편으로 보내시면서 두 가지를 깨닫게 해 주십니다. 그들은 다음 날 아침 이른 시간까지 자기들의 힘으로 바람과 파도와 싸우면서(막 6:48-50) 1) 자신들의 힘으로는 하나님을 위해 아무 것도 성취할 수 없다는 것과 2) 주를 부르며 그분의 능력을 의지하여 살 때는 불가능한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합니다. 부지런히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 사람들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성경을 비교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면 성경의 귀한 보물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습니다.

-Got Questions Minist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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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질문에 대한 답은 성경을 보는 우리의 관점과 삶에 대한 성경의 중요성, 그리고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영원한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성경이 정말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우리는 그것을 소중히 여기고, 알아가며, 순종하고, 온전히 신뢰해야 합니다. 성경을 묵살하는 것은 하나님 자체를 묵살하는 것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성경을 주셨다는 사실은 우리에 대한 그분의 사랑의 증거이자 예증입니다. “계시”라는 용어는 단순히 하나님께서 자신은 어떠한 분이시고 어떻게 우리가 그분과 올바른 관계를 가질 수 있는지를 인간에게 알려주셨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이를 거룩하게 드러내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그러한 것들을 알 수 없었을 것입니다. 성경 안에 하나님에 대한 계시가 약 1,500년 간에 걸쳐 점진적으로 주어졌을지라도,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갖기 위하여 인간이 알아야 하는 모든 것들은 항상 담겨 있었습니다. 성경이 정말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믿음, 종교적 활동, 그리고 도덕에 관한 모든 문제들의 최종적 권위가 됩니다.

우리 자신에게 물어야 할 질문은 ‘성경이 그저 하나의 좋은 책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인지를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입니다. 지금까지 기록된 다른 종교 서적들과 구별되는 성경의 독특한 특성은 무엇일까요? 성경이 정말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어떠한 증거가 있습니까? 성경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고 하나님의 영감을 받았으며, 믿음과 실천의 모든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있어 완전하고 충분하다는 성경 속 주장의 타당성을 우리가 밝히려면, 이런 유형의 질문들이 심각하게 검토되어야 합니다. 성경에서 성경 자체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있을 수 없습니다. 이것은 디모데에 대한 바울의 권면에서 분명히 보입니다: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서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디모데후서 3:15-17).

성경이 정말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내외적인 증거들은 모두 있습니다. 내부적 증거들은 성경 안에서 성경의 신성한 기원을 증거하는 것들입니다. 성경이 진정으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첫 번째 내부적 증거는 그것의 통일성에서 보여집니다. 성경은 실제로 각각의 책으로 구성된 66권의 책들의 모음이고, 세 개의 대륙에서, 세 개의 언어들로, 약 1500년에 걸쳐, 서로 다른 다양한 삶의 계층을 살아온 40명 이상의 저자들에 의해 쓰여졌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모순되지 않고 하나의 통일된 책으로 남았습니다. 이런 통일성이 다른 모든 책과 구별되는 고유한 점이며,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감동시켜 자신의 말씀을 기록하게 하셨음을 나타내는 증거입니다.

성경이 정말 하나님의 말씀임을 나타내는 내부적 증거의 또 다른 하나는 성경에 담긴 예언들입니다. 성경은 이스라엘을 포함한 각 나라, 특정 도시들, 그리고 인류의 미래와 관련된 수 백 개의 상세한 예언들을 담고 있습니다. 다른 예언들은 모든 믿는 사람들의 구세주, 메시아가 되실 분의 도래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다른 종교 서적이나 노스트라다무스와 같은 사람들에 의해 쓰여진 것들에서 발견되는 예언들과는 달리, 성경의 예언들은 매우 상세합니다. 구약 성경에는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300개가 넘는 예언들이 있습니다. 그분께서 태어날 장소 및 혈통뿐만 아니라, 어떻게 죽으실 것인지 그리고 부활할 것이라는 것 또한 예언되었습니다. 그저 성경이 하나님께로부터 기인했다는 신성한 기원 외에는, 성취된 성경의 예언들을 논리적으로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다른 어떤 종교적 문헌도 성경과 같은 형태나 비슷한 수준의 예언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

성경의 신성한 기원의 세 번째 내부적 증거는 성경만의 독특한 권위와 능력입니다. 이 증거는 앞의 두 가지 내부적 증거보다 더 주관적이지만, 성경이 하나님께로부터 기인했다는 강력한 증거로서 부족함이 없습니다. 성경의 권위는 이제까지 쓰여진 다른 서적과 다릅니다. 하나님 말씀의 초자연적인 능력에 의해 변화된 셀 수 없는 삶들이 이 권위와 능력을 제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성경에 의해 약물중독자들이 치유되고, 동성연애자들이 온전케 되고, 부랑자들과 사회의 낙오자들이 변화되고, 상습적 범죄자들이 개선되고, 죄인들이 책망받고, 미움이 사랑으로 변화됩니다. 성경은 오직 진정한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가능한, 역동적이고 변화시키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가리키는 외부적 증거들 또한 있습니다. 그 중 하나는 성경의 역사적 사실성입니다. 성경이 역사적 사건들을 상세히 말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의 진실성과 정확성은 다른 역사적 문헌처럼 검증될 수 있습니다. 고고학적 증거들 및 많은 글을 통해, 성경의 역사적 기술들은 정확한 사실임이 몇 번이고 계속해서 입증되어 왔습니다. 사실, 성경을 뒷받침 하는 모든 고고학적 증거와 고고학적 사본의 증거는 성경을 고대 시기로부터 가장 잘 문서화된 문헌으로 간주하고 있습니다. 성경이 역사적으로 검증 가능한 사건들을 정확하고 진실하게 기록하고 있다는 사실은 종교적인 주제들이나 교리들을 다룰 때 성경의 진실성을 크게 보여줄 뿐 아니라 성경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주장을 입증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또 다른 외부적 증거는 인간인 저자들의 진실함입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말씀들을 기록하기 위하여 각계각층의 사람들을 사용하셨습니다. 그들의 삶을 살펴볼 때, 우리는 그들이 정직하고 진실된 사람들임을 알게 됩니다. 그들이 믿는 것을 위해 때때로 몹시 고통스러운 죽음을 기꺼이 택했다는 사실은 이런 평범하지만 정직한 사람들이 진실로 그들이 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신약 성경을 썼던 사람들과 수백 명의 다른 믿는 자들은(고린도전서 15:6) 그들의 메시지가 진실하다는 것을 알았는데 이는 그들이 예수님께서 죽음에서 살아나신 후 예수 그리스도를 보았었고 함께 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본 것은 그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쳤습니다. 두려움에 숨던 자들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계시하신 메시지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버리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그들의 삶과 죽음은 성경이 진실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증거합니다.

성경이 진실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마지막 외부적 증거는 성경의 불멸성입니다. 성경의 중요성과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자체적 주장 때문에, 성경은 역사적으로 그 어떤 다른 책보다 더 악독한 공격들과 그것을 파괴하려는 시도들로부터 시달려 왔습니다. 디오클레티아누스와 같은 초기 로마 황제들로부터, 공산주의자 독재자들에 걸쳐 현대의 무신론자들과 불가지론자들에 이르기까지, 성경은 모든 공격을 견뎌내고 그 위치를 유지하여 왔으며 오늘날에도 여전히 세상에서 가장 널리 보급된 책이 되었습니다.

오랜 세월에 걸쳐, 회의론자들은 성경을 신화로 간주해 왔지만, 고고학은 성경을 역사적인 것으로 확인해 주어 왔습니다. 반대자들은 성경의 가르침을 원시적이고 낡은 것이라고 비난해 왔지만, 성경의 도덕적 그리고 법적 개념들과 가르침들은 전 세계를 통해 사회와 문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쳐 왔습니다. 성경은 사이비 과학, 심리학, 정치적 운동들에 의해 계속해서 공격 당하지만, 처음 기록되었을 때와 같이 참되고 적절한 것으로 남아 있습니다. 성경은 지난 이 천 년에 걸쳐 수 많은 삶과 문화들을 변화시켜 온 책입니다. 반대자들이 성경을 아무리 공격하고, 파괴하고, 평판을 손상시킬지라도, 성경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삶에 대한 성경의 진실성과 영향은 틀림없는 것입니다. 성경을 부패시키고, 공격하고, 파괴시키려는 모든 시도에도 불구하고 보존되어 온 성경의 정확성은 성경이 진실로 하나님의 말씀이고 그분에 의해서 초자연적으로 보호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분명한 증거입니다. 성경이 어떻게 공격을 받든, 항상 변함없고 아무 탈 없이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에 우리는 놀랄 필요가 없습니다. 결국,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마가복음 13:31). 이런 증거를 살피고 나면, 우리는 의심 할 여지없이, ‘그렇습니다, 성경은 정말 하나님의 말씀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Got Questions Ministries

  ‘정경(Canon)’이라는 용어는 하나님의 영감을 받은 책들을 묘사하는데 사용되고, 그러므로 성경에 속한다는 의미로 쓰였습니다. 성경적 canon을 결정하는데 있어 어려운 점은 성경이 성경에 속한 책들의 목록을 주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Canon을 결정하는 것은 하나의 과정이었는데, 처음에는 유대교의 지도자들에 의해, 나중에는 초대 기독교인들에 의해 수행되었습니다. 궁극적으로, 어떤 책들이 성경적 canon에 속하느냐를 정하셨던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성경의 각 책들은 하나님께서 그 글에 감동을 주신 순간부터 canon에 속하였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하나님께서 그분을 따르는 인간들에게 어떤 책들이 성경에 포함 되어야 하는 지를 확신시켜 주시는 일이었습니다.

신약 성경과 비교해서, 구약 성경의 canon에 대한 논란은 아주 적었습니다. 믿는 히브리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들을 알아 보았고 그들의 글들을 하나님의 감동을 받아 쓴 것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구약 성경의 canon에 대한 약간의 논쟁이 명백히 존재했지만, A.D. 250년까지 히브리 성경의 canon과 관련하여 거의 전 세계적인 동의가 있었습니다. 유일하게 남았던 문제는, 오늘날에도 계속되어 논쟁과 논의가 되고 있는 외경(Apocrypha)이었습니다. 거의 대부분의 히브리 학자들은 외경을 좋은 역사적, 종교적 문서로 고려하였지만, 히브리 성경만큼의 수준으로까지 보지는 않았습니다.

신약의 경우, 인지하고 수집하는 과정은 기독교 교회의 첫 세기에 시작되었습니다. 아주 초기에, 신약 성경의 일부는 인지되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누가복음의 글들을 구약 성경 만큼의 권위로 간주하였습니다(디모데전서 5:18; 신명기 25:4; 누가복음 10:7 역시 참조하십시오). 베드로는 바울의 서신서들을 성경으로 인정했습니다(베드로후서 3:15-16). 신약 성경의 일부는 교회들 사이에 유포되고 있었습니다(골로새서 4:16; 데살로니가전서 5:27). 로마의 클레멘트는 최소한 8권의 신약 성경 책들을 언급하였습니다 (A.D.95). 안디옥의 이그나시우스는 약 7권의 책들을 인정하였습니다. (A.D. 115), 사도 요한의 제자, 폴리카프는 15권의 책들을 인정하였고(A.D. 108), 그 후에, 이레니우스는 21권의 책들을 언급했습니다 (A.D. 185). 히폴리투스는 22권의 책들을 인정했습니다(A.D. 170-235). 가장 많은 논쟁을 불러 일으켰던 신약 성경의 책들은 히브리서, 야고보서, 베드로후서, 요한이서, 그리고 요한삼서입니다.

첫 “canon” 은 A.D. 170년에 편찬된 무라토리안 캐논이었습니다. 무라토리안 canon은 히브리서, 야고보서 그리고 요한삼서를 제외한 지금의 신약 성경 책들 모두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서기 363년, 라오디케아 종교 회의는 오직 구약 성경(외경과 함께)과 27권의 신약 성경만이 교회에서 읽혀져야 한다고 결정했습니다. 히포 종교 회의(393)와 칼티쥐 종교회의(397)에서도 동일한 27권의 책들의 권위를 지지했습니다.

종교 의회들은 신약 성경의 책이 진정으로 성령의 감동을 받았는를 결정하는데 있어 다음과 같은 원칙들과 비슷한 방향을 따랐습니다: 1) 저자는 사도였나 또는 사도들과 밀접한 관련성을 가지고 있었나? 2) 책이 그리스도의 몸(교회)에 전반적으로 받아들여졌는가? 3) 책이 교리의 일관성과 정통적 가르침을 담고 있는가? 4) 책이 성령의 사역을 반영하는 높은 도덕적 그리고 영적 가치의 증거를 담고 있는가? 다시 한번 말하지만, 교회가 canon을 결정하지 않았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어떤 초기 종교 회의도 canon을 결정짓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하나님 한 분께서만이 어떤 책들이 성경에 속한 것인지 결정하신 것입니다.하나님께서 이미 결정하셨던 것을 자신을 따르는 자들에게 그저 알려 주셨던 것뿐입니다. 성경의 책들을 모으는 인간적인 과정에서는 결함이 있었으나, 우리의 무지와 완고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주관 하에 자신이 감동을 주신 책들을 초기 교회가 알아보게끔 인도하셨습니다.

-Got Questions Ministries

성경의 의미를 밝히는 것은 이 삶에서 믿는 자들의 중요한 과제들 중의 하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성경을 그저 읽어야 한다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그것을 공부해야 하고 올바르게 다루어야 합니다(디모데후서 2:15). 성경을 공부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성경을 대충 또는 간략하게 훑어 보는 것은 때때로 매우 잘못된 결과들을 낳았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의 올바른 의미를 결정하기 위해 몇 가지 원칙들을 이해하는 것이 주요합니다.

첫째, 성경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기도해야 하고 성령께 이해시켜 주시라고 간구해야 하는데, 이것이 성령의 역할 중에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요한복음 16:13). 성령께서는 신약 성경이 쓰여질 때 사도들을 인도하셨던 것처럼, 또한 성경을 이해함에 있어서도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책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우리는 그것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그분께 물어보아야 합니다. 당신이 기독교인이라면, 성경의 저자이신 성령께서는 당신 안에 거하고 계시고, 그분 자신이 쓰셨던 책을 당신이 이해하기를 바라십니다.

둘째, 주위를 둘러싼 구절들과 동떨어지게, 성경 구절을 따로 빼내어 문맥에 어울리지 않게, 어떤 구절의 뜻을 정하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는 항상 본문을 파악하기 위해 주변 구절들과 장들을 읽어야 합니다. 모든 성경 말씀이 하나님께로부터 나왔지만(디모데후서 3:16; 베드로후서 2:1)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기록하도록 사람들을사용하셨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마음 속에 생각한 주제와, 글 쓴 목적, 그리고 말하고자 하는 특정한 이슈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누가 책을 썼는지. 누구에게 쓰여졌는지, 언제 쓰였는지, 그리고 왜 쓰였는지를 알기 위하여 우리가 공부하고 있는 성경 책의 배경을 읽어내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성경 자체가 말씀할 수 있게 주의해야 합니다. 때때로 사람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해석을 이끌어내기 위해, 말씀에 자기 자신들만의 의미를 부여하려 합니다.

셋째, 성경을 공부함에 있어 완전히 독자적으로 하려고만 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성경을 연구했던 다른 사람들이 평생에 걸친 노고를 통해 이룬 결과물을 가볍게 생각한다는 것은 교만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들이 오직 성령에만 의지하면 성경에 감추어진 모든 진리들을 발견 할 것이라는 잘못된 생각으로 성경에 접근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성령을 허락하시면서, 자신의 몸이 된 사람들에게 영적인 은사들을 주셨습니다. 이런 성령의 은사들 중의 하나가 가르치는 은사입니다(에베소서 4:11-12; 고린도전서 12:28). 이런 은사를 가진 교사들은 성경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순종할 수 있도록 우리를 도우라고 주님께 의해서 주어진 자들입니다. 하나님 말씀의 진리를 이해하고 적용하는데 있어 다른 믿는 자들과 서로 도우면서 성경을 공부하는 것이 항상 지혜로운 것입니다.

요약해서, 성경을 공부하는 올바른 방법은 무엇입니까? 첫째, 기도와 겸손함으로 이해시켜 주시는 성령께 의존해야 합니다. 둘째, 우리는 성경 자체가 스스로 성경을 우리에게 설명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항상 문맥에 맞게 성경을 공부해야 합니다. 셋째, 우리는 올바른 성경 공부를 똑같이 추구했던 과거 그리고 현재의 다른 믿는 자들의 노고를 존중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의 저자이시고, 우리가 그것을 이해하기를 바라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Got Questions Ministries

사람들이 성경을 감동 받은 것이라고 말 할 때, 그들은 하나님께서 인간 저자들이 쓴 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 되는 방식으로 그들에게 신성한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언급하는 것입니다. 성경의 맥락에서, “감동”이라는 말은 단순히 “하나님의 숨결이 깃든” 이라는 뜻입니다. “감동”은 성경이 진정으로 하나님의 말씀이며, 다른 모든 책들로부터 성경을 유일무이하게 만듭니다.

성경이 어느 정도까지 감동으로 쓰여졌는지에 대해 다른 의견들이 존재하지만, 성경의 모든 부분의 모든 말씀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왔다는 성경 자체의 주장은 의심의 여지가 있을 수 없습니다(고린도전서 2:12-13; 디모데후서 3:16-17). 성경에 대한 이러한 견해에서는 종종 “성경 안의 모든 기록의 한마디 한마디가 다(verbal plenary)” 감동되었다고 말해집니다. 이것은 감동이 각 단어들에 미치고(한 마디마다, verbal) – 그저 개념들이나 생각들이 아닌 – 이 감동은 성경의 모든 부분들과 모든 주제들에까지 전체적으로(plenary) 미친다는 의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성경의 일 부분들만 감동되었다거나 종교를 다루는 생각들이나 개념들만 감동되었다고 믿습니다만, 이런 감동에 대한 견해들은 성경에 대한 성경 자체의 주장에 미치지 못합니다. 성경 전체의 말씀의 한마디 한마디가 온전히 감동되었다는 사실이 하나님 말씀의 근본적인 특성입니다.

감동의 정도는 디모데후서 3:16절에서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이 구절은 모든 성경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되었고 유익하다고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저 종교적 교리들을 다루는 성경의 부분들만 감동 된 것이 아니라, 창세기부터 요한 계시록까지의 각각의 그리고 모든 말씀들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성경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되었기 때문에, 성경은 교리를 세우는데 있어 권위를 가지며, 사람에게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맺는 방법을 가르치기에 충분한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되었다고 주장할 뿐 아니라, 우리를 변화시키고 온전케 하는 신비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성경의 감동을 다룬 또 다른 구절은 베드로후서 1:21 입니다: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 이 구절은 하나님께서 비록 각자의 독특한 개성들과 쓰기 스타일들을 가진 인간들을 사용하셨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썼던 그 말씀들을 신성하게 감동시키셨다는 사실을 우리가 이해하는데 도움을 줍니다. 예수님께서도 친히 성경이 전체적으로 한마디 한마디가 감동되었다는 사실을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실 때에 확증하셨습니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거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마태복음 5:17-18). 이 구절들에서, 예수님께서는 가장 작은 세부사항 그리고 최소한의 부호에까지 미친 정확성에 대해 다시 한 번 강조하셨는데, 이는 성경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감동받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우리는 성경이 오류가 없고 권위를 지닌 것으로 결론 지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전능하시고, 모든 것을 아시며, 그리고 전적으로 완벽하시기 때문에, 그분의 말씀 또한 그 성격에 있어 똑 같은 특성들을 가질 것입니다. 성경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되었다는 사실을 수립한 이 같은 구절들은 성경이 오류가 없으며 권위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 역시 수립합니다. 의심의 여지없이, 성경은 성경 자체가 주장하듯이 부인할 수 없는, 권위를 가진,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Got Questions Ministries

성경은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우리는 읽고 공부해야 합니다. 성경은 문자 그대로 “하나님의 입김”입니다(디모데후서 3:16). 다른 말로 하면, 그것은 바로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철학자들이 던져 왔던 그렇게 많은 질문들을 우리를 위해 성경으로 하나님께서 답하십니다. 삶에 대한 목적은 무엇인가? 나는 어디서 왔는가? 죽음 후의 삶은 존재하는가? 나는 어떻게 천국에 갈 수 있나? 왜 세상은 악으로 가득 차 있을까? 왜 나는 선한 일을 하려고 노력하나? 이렇게 ‘거대한’ 질문들 외에도, 성경은 다음과 같은 영역에 있어 많은 현실적인 조언을 해 줍니다: 배우자로부터 내가 찾는 것은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 내가 성공적인 결혼생활을 이루어 나갈 수 있는지? 어떻게 해야 내가 좋은 친구가 되는지? 어떻게 해야 내가 좋은 부모가 되는지, 성공은 무엇이고 어떻게 해야 내가 그것을 달성할 수 있는지? 어떻게 내가 변할 수 있는지? 삶에서 정말 중요한 문제는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 내가 후회 없는 삶을 살 수 있는지? 어떻게 해야 내가 불공정한 상황들과 삶에 일어나는 나쁜 사건들을 성공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지?

성경은 전적으로 신뢰할 수 있고 오류가 없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읽고 공부해야 합니다. 성경은 소위 말하는 ‘성스러운’ 책들 가운데 유일무이하며 단순히 도덕적 가르침을 주거나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저를 믿으십시오.” 우리는 성경이 말씀하는 수백개의 상세한 예언들, 성경이 기록한 역사적 기술들, 성경과 관련된 과학적 사실들을 검토하여 성경을 검증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경에 오류가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진리에 자신들의 귀를 닫고 있습니다. 한번은 예수남께서 “네 죄가 사해졌노라 하는 것”과 일어나 네 자리를 거두고 걸어라”고 하는 것 중에 어느 것이 더 쉬운 것이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리고는 그분께서는 중풍병자를 고침으로써(그분의 주위에 있는 그들의 눈으로 검증할 수 있는 것) 자신이 죄를 사하는 능력(우리가 우리들의 눈으로 볼 수 없는 어떤 것)이 있으심을 입증하셨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역사적 정확성, 과학적 정확성, 예언의 정확성 과 같이 우리가 검증할 수 있는 영역들에서 성경 자체가 사실임을 보여줌으로써, 우리가 우리의 감각들을 통하여 검증할 수 없는 영적 영역들에 대해 논할 때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말씀은 사실이라는 확신을 갖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변하지 않으시고 인간의 본성도 변하지 않기 때문에 성경을 읽고 공부해야 합니다; 성경은 쓰여졌던 때 그랬던 것 같이 우리에게도 관련이 있습니다. 기술은 변하더라도, 인간의 본성과 욕구는 변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성경적 역사의 장들을 읽으면서, 개인간의 관계들을 말하든 사회를 말하든, “해 아래는 새 것이 없음”을 우리는 발견합니다(전도서 1:9). 그리고 인류 전체는 계속해서 잘못된 모든 곳들 안에서 사랑과 만족을 구하는 반면에, 하나님(우리의 선하고 은혜로우신 창조주)께서는 지속되는 기쁨을 가져다 줄 것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계시인 성경은 너무 중요하여 예수님께서도 이것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마태복음 4:4). 다시 말해서, 우리가,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대로, 삶을 완전하게 살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을 들어야 하고,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인생을 온전히 살고 싶다면, 하나님의 말씀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너무나도 많은 잘못된 가르침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성경을 읽고 공부해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가 오류로부터 진실을 구분해 낼 수 있는데 필요한 잣대를 우리에게 제공합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하나님께 대해 잘못된 인상을 갖는 것은 우상과 거짓된 신을 숭배하게 만듭니다. 하나님이 아닌 어떤 것을 숭배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어떻게 사람이 진실로 천국에 가는지를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고, 그것은 좋은 사람이 되거나 세례를 받거나 또는 그 외 우리가 해야하는 다른 것들에 의해 이루어 지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합니다(요한복음 14:6; 에베소서 2:1-10; 이사야 53:6; 로마서 3:10-18; 5:8; 6:23; 10:9-13). 이런 맥락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그저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보여줍니다(로마서 5:6-8; 요한복음 3:16). 그리고 이런 배움을 통해 우리는 보답으로 그분을 사랑하는 것에 마음이 끌리게 됩니다(요한일서 4:19).

성경은 하나님을 섬길 수 있도록 우리를 준비시킵니다(디모데후서 3:17; 에베소서 6:17; 히브리서 4:12). 성경은 우리가 우리의 죄로부터 어떻게 구원받는지에 대해, 그리고 죄의 궁극적 결과를 깨닫는 데에 있어 도움을 줍니다(디모데후서 3:15). 말씀을 묵상하고 그 가르침에 따라 순종하면 승리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여호수아 1:8; 야고보서 1:25).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삶 가운데 있는 죄를 보게 해주고 그것을 제거하도록 우리를 도와줍니다(시편 119:9,11). 성경은 우리를 스승들보다 더 지혜롭게 만들어 주면서, 삶에 있어 우리를 인도합니다(시편 32:8; 119:99; 잠언 1:6). 성경은 사소한 것이나 일시적인 것들에 우리의 인생을 낭비하지 않게 해줍니다(마태복음 7:24-27).

성경을 읽고 공부하는 것은 우리가 죄악된 유혹들이 “고통스러운 “낚시 바늘”로 유혹하는 “미끼” 너머를 볼 수 있도록 도와주며, 그래서 우리는 우리 자신들이 주인공이 되어 배우는 것보다는 다른 사람들의 실수들로부터 배울 수가 있습니다. 실제 경험은 우리에게 교훈을 주는 스승이지만, 죄를 통한 경험은 너무 끔찍하게 힘든 스승이 됩니다. 다른 사람들의 실수들로부터 배우는 것이 더 좋을 것입니다. 성경에는 배울 수 있는 아주 많은 인물들이 있습니다. 그들 중 일부는 그들의 삶의 다른 시점에 따라 긍정적 그리고 부정적 역할 모델이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골리앗을 물리친 다윗은 하나님께서는 자신께서 우리에게 직면하라고 요구하시는 어떤 것보다 더 크시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쳐줍니다(사무엘상 17). 그러나 밧세바와의 간음으로 향하는 유혹에 굴복한 다윗은 “한 순간의 죄악된 쾌락”이 얼마나 길고 끔찍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사무엘하 11장).

성경은 단지 읽기만을 위한 책이 아닙니다. 성경은 적용할 수 있도록 공부해야 할 책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음식을 씹지 않고 삼켰다가 그 음식을 다시 밖으로 뱉어내는 것과 같습니다. 이렇게 하면 아무 영양 성분도 얻지 못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따라서, 그것은 자연의 법칙들처럼 구속력이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무시할 수 있습니다만, 우리가 중력의 법칙을 무시한다면 우리 자신들이 손상을 입듯이 성경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이 우리의 삶들에 얼만큼 중요한 것인지는 그저 아무리 강하게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성경을 연구하는 것은 금을 캐는 것과 비교될 수 있습니다. 만약 당신이 적은 노력을 들여서 냇가에서 조약돌만 찾는다면, 적은 양의 금가루를 얻을 수 밖에 없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게을리하여 그저 “개울가의 자갈”들 속을 뒤지면, 우리는 오로지 약간의 사금만을 발견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진정으로 그것을 파헤치는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면, 우리의 노력에 대한 더 많은 보상을 얻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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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극적으로, 성경은 인간 저자들보다 하나님에 의해 쓰여졌습니다. 디모데후서 3장 16절은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성경의 인간 저자들을 감독하여 그들의 문체와 성격을 사용하면서도 하나님이 의도하신 것을 정확히 기록하도록 하셨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직접 받아 쓴 것은 아니지만 그분에 의해 완벽하게 인도되었고, 성경 전체가 영감을 받았습니다.

인간의 입장으로 보면, 성경은 1500년 동안 다양한 배경을 가진 약 40 명의 사람들에 의해 기록되었습니다. 이사야는 선지자였고, 에스라는 제사장이었고, 마태는 세리였고, 요한은 어부였으며, 바울은 장막을 짓는 자였고, 모세는 목자였고, 누가는 의사였습니다. 성경은 1500년 이상 다른 저자들이 기록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자체적으로 전혀 모순된 내용이 없으며 또한 어떠한 오류도 없습니다. 저자들은 모두 다른 관점을 제시하지만, 그들 모두 똑같은 한 분의 참된 하나님, 그리고 구원의 동일한 한 가지 방법, 즉 예수 그리스도(요 14:6; 행 4:12)를 선포합니다. 성경의 책들은 거의 저자의 이름을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다음은 성경의 학자들에 의해 성경의 각 책의 저자로 가장 추측되는 사람의 이름 및 대략적인 저작 날짜입니다.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 모세 - 주전 1400 년경
여호수아 = 여호수아 – 주전 1350 년
사사기, 룻기, 사무엘상, 사무엘하 = 사무엘 / 나단 / 갓 - 주전 1000 – 900 년경
열왕기상, 열왕기하 = 예레미야 - 주전 600 년경
역대상, 역대하, 에스라, 느헤미야 = 에스라 - 주전 450 년경
에스더 = 모르드개 - 주전 400 년경
욥기 = 모세 - 주전 1400 년경
시편 = 여러 명의 다른 저자들, 주로 다윗 - 주전 1000 - 400 년경
잠언, 전도서, 아가서 = 솔로몬 - 주전 900 년경
이사야 = 이사야 - 주전 700 년경
예레미야, 애가 = 예레미아 - 주전 600 년
에스겔 = 에스겔 - 기원전 550 년
다니엘 = 다니엘 - 주전 550 년경
호세아 = 호세아 - 주전 750 년경
요엘 = 요엘 - 주전 850 년경
아모스 = 아모스 - 주전 750 년경
오바댜 = 오바댜 - 주전 600 년경
요나 = 요나 - 주전 700 년경
미가 = 미가 - 주전 700 년경
나훔 = 나훔 - 기원전 650 년
하박국 = 하박국 - 주전 600 년경
스바냐 = 스바냐 - 기원전 650 년경
학개 = 학개 - 주전 520 년경
스가랴 = 스가랴 - 주전 500 년경
말라기 = 말라기 - 주전 430 년경
마태복음 = 마태 - 주후 55 년경
마가복음 = 마가 - 주후 50 년경
누가복음 = 누가 - 주후 60 년경
요한복음 = 요한 - 주후 90 년경
사도행전 = 누가 - 주후 65 년경
로마서, 고린도전서, 고린도후서, 갈라디아서,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데살로니가전서, 데살로니가후서, 디모데전서, 디모데후서, 디도서, 빌레몬서 = 바울 - 주후 50-70년경
히브리서 = 무명, 아마도 바울, 누가, 바나바 또는 아볼로 - 주후 65 년경
야고보서 = 야고보 - 주후 45 년경
베드로전서, 베드로후서 = 베드로 - 주후 60 년경
요한 1서, 요한 2서, 요한 3서 = 요한 - 주후 90 년경
유다서 = 유다 - 주후 60 년경
요한계시록 = 요한 - 주후 90 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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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성경은 대략 주전 1400년부터 주전 400년 사이에 기록되었습니다. 신약 성경은 대략 주후 40년부터 주후 90년 사이에 기록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의 각 권이 쓰여진 이래로 각각 3400년에서 1900년 사이의 기간이 지났습니다. 그 사이에 원본 원고는 소실되었습니다. 원본들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또한 이 기간 동안 성경의 책들은 여러 번 복사되었습니다. 사본의 사본이 끝없이 만들어졌습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우리는 여전히 성경을 신뢰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이 맨 처음에 사람들에게 그분의 말씀을 기록하도록 영감을 주셨을 때, 그 책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되면서 오류가 없었습니다(딤후 3:16-17; 요 17:17). 성경 어디에서도 이러한 사실을 원본의 사본들에게 적용하지는 않습니다. 꼼꼼한 서기관들이 성경을 손으로 복사하였을지라도 완벽할 수는 없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성경의 여러 사본에서 사소한 차이가 발생하였습니다. 주후 1500년경에 인쇄기가 발명될 때까지는 현존하는 수천 개의 헬라어 및 히브리어 사본들 중에는 완전하게 똑같은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하지만 편파적이지 않은 문서 학자라면 성경은 수세기 동안 탁월하게 잘 보존되었다는 것에 동의 할 것입니다. 주후 14 세기의 성경 사본으로 여겨지는 사본들이 서기 3세기의 성경 사본들과 거의 동일합니다. 사해 두루마리가 발견되었을 때 학자들은 그것이 이전에 발견된 사본들보다 수백 년이 더 오래되었지만 그 내용에 있어서 구약의 다른 고대 사본들과 대단히 유사한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수많은 성경 회의론자들과 비평가들조차도 성경이 수세기에 걸쳐 전달되면서도 다른 어떤 고대 문서보다 훨씬 정확하게 전달되었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성경이 어떤 체계적인 방식으로 수정, 편집, 또는 변조되었다는 증거는 전혀 없습니다. 방대한 양의 성경 사본들을 통해서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려는 시도는 쉽게 인식됩니다. 사본들 사이에 존재하는 사소한 차이의 결과 때문에 의심 받게 된 성경의 주요 교리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다시 질문합시다. 우리는 성경을 신뢰할 수 있습니까? 절대적으로 신뢰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의도하지 않은 실수 및 의도적인 인간들의 공격에도 불구하고 그분의 말씀을 보존해 오셨습니다. 우리는 오늘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경은 처음에 기록된 성경과 거의 동일하다는 것을 전적으로 확신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이에 우리는 성경을 신뢰할 수 있습니다(딤후 3:16; 마 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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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이 영감되어 있고 무오하다고 믿기 때문에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죄로부터 구원하시는 구세주로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받습니다(요 3:16; 엡 2:8-9; 롬 10:9-10). 그러하더라도 동시에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알게 되고 또한 그분의 죽음과 부활이 우리를 위한 것임을 배우게 됩니다(고후 5:21; 롬 5:8). 구원을 받기 위해 성경의 모든 것을 믿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성경에 의해 선포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합니다. 우리는 성경을 하나님의 무오한 말씀으로 분명하게 붙잡아야 합니다. 우리는 성경이 가르치는 모든 것을 절대적으로 믿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믿음은 때로는 구원 받기 이전이 아니라 구원 받은 이후에 생겨납니다.

사람들이 처음에 구원을 받으면 일반적으로 성경에 대해 거의 알지 못합니다. 구원은 성경의 무오성에 대한 이해가 아니라 우리의 죄악 된 상태에 대한 이해와 함께 시작하는 과정입니다. 우리의 양심은 우리 자신의 공로로는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서기에 충분할 정도로 의롭지 못하다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우리의 죄값을 치르기 위해 십자가에서 희생 당하신 하나님의 아들을 영접합니다. 우리는 그분을 온전히 신뢰합니다. 그 시점부터 죄에 더럽혀지지 않은 완전히 새롭고 순수한 본성을 갖게 됩니다. 하나님의 성령은 우리의 마음 속에 사시면서 영원히 우리를 인치십니다. 우리는 그 시점부터 앞으로 나아가며 날마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고 순종합니다. 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의 일부는 더욱 영적으로 자라나고 하나님과 온전히 동행하기 위해 날마다 그분의 말씀을 먹는 것입니다. 성경만이 우리의 삶에서 이러한 기적을 나타낼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성경에서 가르치는 대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을 믿고 신뢰한다면 우리는 구원을 받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신뢰할 때 성령님은 우리 마음과 생각에 역사하시면서 성경이 참되고 신뢰할만하다는 것을 확신시켜 주실 것입니다(딤후 3:16-17). 만일 우리 마음 속에 성경의 무오성에 대해 의구심이 있다면 그 문제를 다루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확신과 자신감을 달라고 주께 간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분은 온 마음을 다해 정직하게 주를 찾는 사람들에게 기꺼이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마 7: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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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잘못된 오류를 보면 ‘그럴 수도 있지!’라고 하며 대수롭게 지나가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포스트 모던 시대의 사람들은 빌라도처럼 "무엇이 진리인가?”라고 묻는 대신에 "진리는 없다”라고 말하거나 또는 “진리가 있더라도 우리는 그것을 알 수 없다”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거짓말에 익숙해져 있고, 많은 사람들은 성경에도 오류가 있다는 거짓된 개념에도 불편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진리는 중요하기 때문에 성경의 무오설 교리는 매우 중요합니다. 이 문제는 하나님의 속성을 반영하며 성경이 가르치는 모든 것에 대한 우리의 이해의 토대가 됩니다. 우리는 왜 우리가 성경의 무오를 절대적으로 믿어야 하는지 몇 가지 이유를 제시하고자 합니다.

1. 성경은 성경 자체에 대해 완전하다고 주장합니다. “여호와의 말씀은 순결함이여 흙 도가니에 일곱 번 단련한 은 같도다”(시 12:6).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며”(시 19:7). “하나님의 말씀은 다 순전하며”(잠 30:5). 성경의 순전함과 완전함에 대한 주장은 절대적인 진술입니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 ‘대부분’ 순수하거나 또는 ‘거의’ 완벽하다고 말하지 않는 점을 주목하십시오. 성경은 완전한 완벽함을 주장하기 때문에 "부분적인 완전성"과 같은 그러한 이론들을 위해 그 어떤 여지도 남기지 않습니다.

2. 성경은 전체적으로 함께 서거나 함께 무너집니다. 만일 주요 신문이 일상적으로 오류를 담고 있다는 것이 드러나면 사람들은 신속하게 그 신문을 불신할 것입니다. 신문사가 "모든 오류는 3쪽에 국한되어 있습니다."라고 말할지라도 그 신문은 사람들의 신뢰를 얻지 못할 것입니다. 신문이 어떤 부분에서든 신뢰를 얻으려면 신문 전체가 사실을 담아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성경이 지질학을 말할 때 부정확하다면 어떻게 신학을 믿을 수 있습니까? 그것은 신뢰할 수 있는 문서이거나 그렇지 않은 것입니다.

3. 성경은 저자를 반영합니다. 모든 책이 그러합니다. 하나님은 영감이라는 방법으로 인간 저자들을 통해 성경을 기록하셨습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딤후 3:16, 참조, 벧전 1:21; 렘 1:2).

우리는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책을 기록하실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완전하신 하나님은 완전한 책을 쓰실 수 있습니다. 이 문제는 단지 "성경에 오류가 있습니까?"가 아니라 "하나님이 실수를 할 수 있습니까?"라는 질문이 됩니다. 성경에 사실적인 오류가 포함되어 있다면, 하나님은 전지하지 않고 또한 잘못을 저지르실 수 있다는 뜻입니다. 성경에 잘못된 정보가 들어있다면 하나님은 진실하지 않고 그 대신 거짓말쟁이라는 뜻입니다. 성경에 모순이 있다면, 하나님은 혼동의 저자가 되십니다. 다시 말해, 성경의 무오성이 사실이 아니라면 하나님은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4. 성경이 우리를 판단하는 것이지 우리가 성경을 판단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히 4:12). ‘마음’과 ‘말씀’ 사이의 관계를 주목하십시오. 말씀은 판단하고, 마음은 판단을 받습니다. 어떠한 이유이든 말씀의 일부분을 무시하는 것은 이 관계를 역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가 시험관이 되고 말씀이 우리의 ‘뛰어난 통찰력’에 복종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사람아 네가 누구이기에 감히 하나님께 반문하느냐”(롬 9:20)고 질문하십니다.

5. 성경의 메시지는 전체적으로 받아들여져야 합니다. 그 메시지는 우리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여러 교리들의 혼합체가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그들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구절을 좋아하지만 하나님이 죄인을 심판하실 것이라고 말하는 구절은 싫어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단지 성경에서 우리가 좋아하는 것을 고르거나 택한 후에 나머지를 버릴 수는 없습니다. 예를 들어, 성경이 지옥에 대해 잘못된 언급을 하고 있다면 천국이나 다른 것에 대해서는 옳게 언급하고 있다고 누가 말할 수 있습니까? 성경이 창조에 관하여 올바른 설명을 할 수 없다면, 구원에 대한 설명 역시 신뢰 받을 수 없을 것입니다. 요나 이야기가 신화라면 예수님의 이야기도 마찬가지가 될 수 있습니다. 반대로 하나님이 진리를 말씀하셨다면 성경은 우리에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전체적인 그림을 제시합니다. “여호와여 주의 말씀은 영원히 하늘에 굳게 섰사오며”(시 119:90).

6. 성경은 믿음과 실천을 위한 우리의 유일한 규칙입니다. 만일 성경이 믿을만한 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우리의 신앙을 어디에 세워야 합니까? 예수님이 우리에게 믿음을 요구하실 때 그 믿음은 그분이 하신 말씀을 신뢰하는 것을 포함합니다. 요한복음 6장 67-69절은 아름다운 구절입니다. 예수님은 그를 따르던 많은 사람들이 떠나는 것을 목격하셨습니다. 그러자 주님은 열 두 사도들에게 "너희도 가려느냐?"고 물으십니다. 이때 베드로가 남은 자들을 대신하여 말합니다.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요 6:68). 우리도 베드로처럼 주님 및 그분의 영생의 말씀을 믿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여기서 제시한 것들 중에 그 어떤 것도 참된 학문을 거부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서는 안됩니다. 성경의 무오설은 우리가 지성을 사용하는 것을 멈추거나 성경이 말하는 것을 맹목적으로 받아들이라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말씀을 연구하라는 명령을 받았으며(딤후 2:15), 말씀을 확인하고 상고하는 자들은 칭찬을 받았습니다(행 17:11). 또한 우리는 성경에는 어려운 구절이 있고 해석에 있어서도 진지한 의견 차이가 있음을 인정합니다. 우리의 목표는 경건하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성경에 접근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발견하면, 우리는 더 열심히 기도하고, 더 많이 연구해야 할 것입니다. 만일 해답을 찾지 못하면 하나님의 완전한 말씀 앞에서 우리 자신의 한계를 겸손히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Got Questions Ministries

하나님이 그분의 말씀을 더하기 위해 또 다른 계시를 주실 것이라고 믿을만한 이유가 없습니다. 성경은 인류의 시작(창세기)부터 시작하여 인류의 종말(계시록)로 끝납니다. 그 사이에 있는 모든 것은 신자인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하나님의 진리로 능력을 얻을 수 있도록 유익을 주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는 디모데후서 3장 16-17절로부터 이 사실을 압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딤후 3:16-17).

성경에 더 많은 책이 추가되어야 한다면, 이는 오늘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경이 미완성된 것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으며, 지금 성경은 우리가 알 필요가 있는 모든 것을 다 알려주지 못한다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요한계시록 22장 18-20절은 오직 계시록에만 직접 적용되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추가하는 것에 대해서 중요한 진리를 가르쳐줍니다. “내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우리는 현재 66 권의 성경 안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갖고 있습니다. 인생 속의 그 어떤 상황이라도 성경에서 다루어질 수 없는 상황은 없습니다. 창세기에서 시작된 것은 계시록에서 결론을 찾습니다. 성경은 절대적으로 완전하고 충분합니다. 하나님이 성경에 더하실 수 있습니까? 물론, 하나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적으로 또는 신학적으로 볼 때 그분이 그렇게 하실 것이라고 믿을 이유가 없으며, 그분이 그렇게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믿을 근거가 전혀 없습니다.

-Got Questions Ministries

 "정경”(canon, 캐논)이라는 단어는 어떤 책이 기준에 부합되는지를 결정하는 법규에서 유래됩니다. 성경의 글들은 기록된 순간에 정경이 된다는 사실을 주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경은 펜이 양피지에 글을 쓸 때 성경이 되었습니다. 이 사실은 기독교가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 또는 구원을 정의함으로써 시작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매우 중요합니다. 기독교의 기초는 성경의 권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식별해 낼 수 없다면, 신학적인 진리와 오류도 제대로 구별할 수 없을 것입니다.

어떤 책이 성경으로 분류될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데 사용되는 척도 또는 기준은 무엇입니까? 성경으로 분류되는 과정과 목적, 그리고 아마도 성경을 주신 때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핵심 구절은 유다서 1장 3절, 곧 그리스도의 믿음은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것”이라는 말씀일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성경에 의해 정의되기 때문에 유다는 본질적으로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유익을 위해 성경이 단번에 주어졌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추가로 발견해야 할 숨겨진 사본이나 잃어버린 사본이 없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습니까? 성경은 오직 특수층의 몇 사람에게만 알려진 비밀 책이 아닙니다. 또한 깨달음을 받기 위해서는 히말라야 산에 올라가야 한다는 특별 계시를 받은 사람들도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증거를 남겨 두신 사실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성경을 제작하시기 위해 사용하셨던 초자연적인 능력은 또한 성경을 보존하는데도 사용되어 왔습니다.

시편 119장 160절은 하나님의 말씀 전체가 진리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이 전제에서 정경으로 받아들여진 것 외의 저서들을 정경으로 비교하여 점검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라고 주장합니다(사 9:6-7; 마 1:22-23; 요 1:1, 2, 14; 요 20:28; 행 16:31, 34; 빌 2:5-6; 골 2:9; 딛 2:13; 히 1:8; 벧후 1:1). 그러나 소위 성서로 주장되고 있는 성경 외적 문서들은 예수님은 하나님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이러한 명백한 모순이 존재할 때는 확정된 신뢰를 받는 성서는 정경으로 남고 다른 것들은 성경의 영역 밖에 남게 됩니다.

교회의 초기에 그리스도인들은 때때로 성경 사본을 소지한 사실 때문에 죽음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이 박해로 인해 "어떤 책들이 생명을 바칠 수 있는 것들인가?"라는 질문이 생겨났습니다. 어떤 책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담고 있었지만 과연 디모데후서 3장 16 절에 언급 된 것처럼 영감을 받았을까요? 교회 공의회가 공개적으로 정경을 인정하는 역할을 하였지만, 종종 개별 교회 또는 교회들의 연합 단체가 영감을 받은 책을 인정하기도 하였습니다(골 4:16; 살전 5:27). 교회의 초기 몇 세기 동안, 논란의 여지가 없는 책은 거의 없었고, 근본적인 정경의 목록은 주후 303년 정도에 정착되었습니다.

구약 성서와 관련해서는 세 가지 중요한 사실이 고려되었습니다. 1) 신약 성경은 두 책을 제외한 모든 구약 성경을 인용하거나 암시합니다. 2) 예수께서는 마태복음 23장 35절에서 그 시대의 성경의 처음 문장과 마지막 문장을 인용하시면서 히브리 정경을 실질적으로 인준하셨습니다. 3) 유대인들은 구약 성경을 보존하는데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기 때문에 어떤 부분이 성경에 속하는지 아닌지에 대해 거의 논란이 없었습니다. 로마 카톨릭의 외경은 성경의 정의에 맞지 않았고 또한 기준 미달이었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결코 외경을 승인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책이 성경에 속하여야 하는지에 대한 대부분의 질문은 그리스도의 시대부터 다루어졌습니다. 초대 교회는 어떤 책들이 신약 성경에 속하는지 판단하기 위해 매우 구체적인 기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기준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목격한 사람이 이 책을 썼는가? 그 책이 "진리 시험"을 통과했는가?(즉, 이미 승인된 다른 성경과 일치하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과거 그 때에 그들이 받아들인 신약에 속하는 책들은 시간의 시험을 견뎌왔고, 정통 기독교는 수세기 동안 거의 아무런 도전 없이 이 책들을 정경으로 유지하여 왔습니다.

특정 책들의 수용에 대한 확신은 그 책들의 신빙성을 직접 증언한 1 세기의 수령자에게 거슬러 올라갑니다. 더욱이 계시록의 마지막 때에 대한 주제 및 계시록 22장 18절에서 그 책의 말씀에 무엇을 더하는 것을 금한 사실은 계시록이 쓰일 당시에 정경이 마무리되었음을 강력하게 주장하는 것입니다(서기 95 년경).

놓쳐서는 안 되는 중요한 신학적인 요점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드러내시고 인류와 소통하기 위한 주된 목적을 위해 수천 년 동안 그분의 말씀을 사용하셨습니다. 궁극적으로, 교회 공의회가 어떤 책이 성경인지 결정한 것이 아닙니다. 성경이 결정되는 때는 하나님이 인간 저자를 사용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하는 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마무리하고 그 말씀을 수 세기 동안 보존하기 위해 하나님은 초대 교회의 공의회를 인도하셔서 정경을 인정하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참된 본성, 우주와 생명의 기원, 삶의 목적과 의미, 구원의 경이로움, (인류의 운명을 포함한) 미래의 사건들과 관련한 지식 습득은 자연 관찰과 인류의 과학적인 능력을 초월합니다. 이미 수세기 동안 귀하게 평가 받고 각 그리스도인들이 개인적으로 적용해 왔던 하나님의 정경은 우리가 그리스도에 관해 알아야 할 모든 것을 설명하기에 충분하며(요 5:18; 행 18:28; 갈 3:22; 딤후 3:15), 우리를 가르치고, 바르게 하고, 모든 의를 교훈하기에 충분합니다(딤후 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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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통일된 책이지만 구약과 신약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여러 면에서 신,구약은 서로 보완이 됩니다. 구약은 기초가 됩니다. 신약 성서는 그 기초 위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추가 계시를 세웁니다. 구약은 신약의 진리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원칙들을 세웁니다. 구약에는 신약에서 성취된 많은 예언들이 들어 있습니다. 구약은 한 백성의 역사를 제공합니다. 신약의 초점은 ‘한 분’에게 있습니다. 구약은 (하나님의 은혜를 살짝 보여주면서)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보여줍니다. 신약 성경은 (하나님의 진노를 살짝 보여주면서)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은혜를 보여줍니다.

구약은 메시아를 예언하고(사 53 장), 신약은 메시아가 누구인지를 알려줍니다(요 4:25-26). 구약은 하나님이 율법을 주신 사실을 기록하고 있으며, 신약은 메시아 예수께서 어떻게 그 율법을 성취하셨는지 보여줍니다(마 5:17; 히 10:9). 구약에서 하나님은 주로 택한 백성인 유대인들을 다룹니다. 신약 성경에서 하나님은 주로 그분의 교회를 다룹니다(마 16:18). 옛 언약 아래에서(신 29:9) 약속된 이 땅의 축복은 새 언약 아래에서는 영적인 축복으로 바뀝니다(엡 1:3).

그리스도의 오심과 관련된 구약의 예언들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상세하지만 상당히 모호한 부분들을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신약에서 그 모호한 부분들은 분명하여집니다. 예를 들어, 선지자 이사야는 메시야의 죽음(사 53 장)과 메시아의 왕국(사 26 장)의 설립에 대해 말하였지만 두 사건의 연대와 관련해서는 아무런 단서를 제시하지 않습니다. 즉, 메시아의 고통과 왕국의 설립 사이에는 수천년의 기간이 있다는 사실에 대해 아무런 힌트를 주지 않습니다. 신약 성경은 메시야가 두 번 출현하는 것을 분명하게 알려줍니다. 처음에 오셔서는 고난을 당하고 죽으셨고(그리고 부활하셨고), 두 번째로 오실 때는 왕국을 세우실 것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계시는 점진적이기 때문에 신약은 구약에서 소개된 원칙들에 대해 더욱 예리하게 밝혀줍니다. 히브리서는 예수님이 어떻게 참 대제사장이신지, 그리고 어떻게 그분의 단번의 희생이 과거의 모든 희생 제사를 대신하는지 설명합니다. 구약의 유월절 양(스 6:20)은 신약에서 하나님의 어린 양이 됩니다(요 1:29). 구약은 율법을 제시합니다. 신약은 율법은 사람들로 하여금 구원의 필요성을 보여주려는 것이지 결코 율법이 구원의 수단으로 의도되었던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합니다(롬 3:19).

구약은 아담 때문에 잃어버린 낙원을 보여줍니다. 신약은 두 번째 아담(그리스도)을 통해 어떻게 낙원이 회복되는지 보여줍니다. 구약은 사람이 죄로 인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된 사실을 선언하고(창 3장) 신약은 사람과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될 수 있다고 선언합니다(롬 3-6장). 구약은 메시아의 삶을 예언했습니다. 복음서는 예수님의 생애를 기록하고, 서신서는 그분의 생애를 해석하면서 우리가 어떻게 그분이 행하신 모든 일에 반응해야 하는지를 알려줍니다.

요약하면, 구약은 세상 죄를 위하여 자신을 희생시키실 메시아가 오실 수 있도록 토대를 놓습니다(요일 2: 2). 신약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기록한 다음 그분이 행하신 일을 되돌아 보며 어떻게 우리가 반응해야 하는지 알려줍니다. 이 두 언약은 죄를 정죄하면서도 속죄의 희생을 통해 죄인을 구원하고자 하는 거룩하고 자비롭고 의로우신 하나님을 계시합니다. 하나님은 신-구약 전체에서 자신을 우리에게 계시하시고 어떻게 우리가 믿음을 통해 그분께 나아가야 하는지를 보여줍니다(창 15:6; 엡 2:8).
 

-Got Questions Ministries

하나님이 하나가 아닌 네 권의 복음서를 주신 데는 다음과 같은 이유들이 있습니다.

1) 그리스도에 대한 보다 완전한 그림을 제공하기 위해서입니다. 성경 전체가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되었지만(딤후 3:16), 하나님은 그분의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 배경과 성격이 다른 인간 저자들의 글을 사용하셨습니다. 각 복음서의 저자들은 각각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 목적을 수행함에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사역을 다른 측면으로 강조했습니다.

마태는 히브리 청중에게 편지를 쓰고 있었는데, 그의 목적 중 하나는 예수님의 족보와 구약의 예언에 대한 성취를 보여 주면서 그들이 오랫동안 기대했던 메시아가 바로 예수님이신 것을 믿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마태의 강조점은 예수님이 약속된 왕, 곧 이스라엘의 왕좌에 영원히 앉으실 “다윗의 자손”이라는 사실입니다(마 9:27; 마 21:9).

바나바의 사촌인 마가(골 4:10)는 사도 베드로의 친구일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생애에 일어난 사건들을 목격한 자였습니다. 마가는 이방인 청중을 위해 복음서를 썼고 이에 유대인 독자들에게 중요한 것들은 포함되지 않았습니다(계보, 유대인 지도자와의 그리스도의 논쟁, 구약에 대한 잦은 언급 등이 빠져 있습니다). 마가는 그리스도를 고난 받는 종으로 강조하고 있으며 그분은 섬김을 받으러 오지 않고, 많은 사람을 섬기려 하고 그분의 삶을 대속물로 주시기 위해 오신 분(막 10:45)임을 강조합니다.

전도자이자 사도 바울의 동반자였던 “사랑 받는 의사” 누가는(골 4:14)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기록했습니다. 누가는 신약 성경의 저자들 가운데 유일한 이방인 저자입니다. 누가가 쓴 계보 및 역사적인 연구들을 사용해 온 사람들은 그를 부지런한 역사가로 받아들여 왔습니다. 그는 역사가로서 목격자들의 증언을 근거로 하여 그리스도의 생애를 차례대로 정돈하여 기록하는 것이 그의 의도라고 말합니다(눅 1:1-4). 그는 높은 지위를 지닌 이방인 데오빌로의 유익을 위해 그의 글을 썼기 때문에 그의 복음은 이방인 청중을 염두에 두고 작성되었으며, 그의 의도는 그리스도인의 믿음이 역사적으로 신뢰할 수 있고 검증 가능한 사건을 기반으로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데 있었습니다. 누가는 종종 그리스도를 “인자”라고 부르며 그분의 인성을 강조하고 있고, 또한 다른 복음서에는 없는 많은 세부 내용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이 쓴 요한 복음은 다른 세 복음서와 구별되며 그리스도에 관한 많은 신학적인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마태, 마가, 누가는 “공관복음”으로 불리는데 그 이유는 그리스도의 생애를 다같이 다루고 있고 또한 유사한 형식과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탄생이나 지상에서의 사역이 아니라 예수님이 사람이 되시기 전에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활동과 특성으로 시작됩니다(요 1:14). 요한복음은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요 1:​1), "세상의 구주"(요 4:42), "하나님의 아들”(반복적으로 사용됨), "주님이시요 하나님"(요 20:28)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예수님의 신성을 강조합니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은 또한 여러 차례에 걸쳐 "내가 그니라”(I am)라는 진술을 통해 자신의 신성을 확증합니다. 그 중에서 가장 주목할만한 것은 요한복음 8장 58절에서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는 예수님의 진술입니다(비교, 출 3:13-14). 그러나 요한은 또한 그리스도의 인성을 믿지 않던 그 시대의 종교 분파였던 영지주의의 오류를 드러내기 위해 예수님의 인성에 대한 사실을 강조합니다. 요한복음은 그 글의 전반적인 목적을 설명합니다.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 20:30-31).

따라서 그리스도에 대한 네 가지의 구별되지만 동등한 정확한 설명으로 인하여 그리스도와 그분의 사역의 다양한 측면들이 드러납니다. 각 기록은 사람의 묘사를 초월하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좀 더 완전한 그림을 형성할 수 있도록 함께 짜인 태피스트리와 같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하지만(요 20:30), 우리는 네 복음서를 통해 그분이 누구시며 그분이 우리를 위해 행하신 것이 어떤 의미인지 충분히 알게 됨으로 그분을 믿고 생명을 얻게 됩니다.

2) 우리가 그들의 기록의 진실성을 객관적으로 검증할 수 있도록 하려 함입니다. 성경은 처음부터 한 명의 목격자의 증언에 근거하지 않고 최소한 2-3명의 증언을 근거로 하여 법정 판결을 내려야 한다고 언급합니다(신 19:15). 이와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사역에 대한 서로 다른 기록들을 통해 우리는 그분에 관한 정보가 정확하다는 것을 평가할 수 있습니다.

법정에서 신뢰를 얻을 수 있는 증거를 구성하는 것에 대해 유명한 인정받는 권위자, 사이몬 그린리프(Simon Greenleaf)는 법적인 관점에서 네 복음서를 점검했습니다. 그는 네 복음서의 증인의 기록 유형을 보며 일치하는 구절들도 보고 또한 세부 내용에 있어서 각 저자가 다른 저자들과는 달리 어떤 세부 내용을 생략하거나 추가하는 것을 보고는 이러한 증거는 법정에서 강한 증거로 받아들일 수 있는 믿을만하고 독립적인 전형적인 자료라고 지적했습니다. 만일 모든 복음서가 똑같은 세부 내용으로 정확하게 동일한 정보를 똑같은 관점에서 담고 있었다면, 이는 결탁을 의미하였을 것입니다. 즉, 저자들이 그들의 글을 믿을 만하게 조작하기 위해 사전에 함께 모여 "이야기를 바로 잡는" 시간을 가졌을 것을 의미합니다. 복음서들 간의 차이, 심지어 당장 보아도 모순처럼 보이는 세부 내용들은 각 기록의 독립적인 속성을 말합니다. 따라서 정보에 있어서는 일치하지만 관점과 세부 내용의 기록 양과 기록된 사건에 있어서 다르다는 것은 복음서에서 제시하는 그리스도의 삶과 사역에 대한 기록들은 사실이며 신뢰할 만한 것임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3) 부지런한 사람들에게 보상하기 위해서입니다. 각 복음서에 대한 개별적인 연구를 통해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사역의 특정한 사건들에 대해 여러 기록들을 비교하고 대조함으로써 여전히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마태복음 14장에는 5천 명을 먹인 사건과 예수님이 물 위를 걷는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태복음 14장 22절은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를 타고 앞서 건너편으로 가게 하시고 무리를 보내신 후에”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왜 예수님이 그렇게 했습니까?”라고 물을 수 있습니다. 마태의 기록에는 그 이유가 명백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마가복음 6장의 기록을 보면, 예수님이 제자들을 둘씩 보내시면서 주신 권세를 가지고 마귀를 내쫓고 병을 치료한 후에 돌아오게 한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그들은 자기들의 위치를 망각하고 교만하여져서 예수님을 가르치려고 합니다(마 14:15). 이에 예수님은 그 날 저녁에 그들을 갈릴리 바다 건너편으로 보내시면서 두 가지를 깨닫게 해 주십니다. 그들은 다음 날 아침 이른 시간까지 자기들의 힘으로 바람과 파도와 싸우면서(막 6:48-50) 1) 자신들의 힘으로는 하나님을 위해 아무 것도 성취할 수 없다는 것과 2) 주를 부르며 그분의 능력을 의지하여 살 때는 불가능한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합니다. 부지런히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 사람들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성경을 비교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면 성경의 귀한 보물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습니다.

-Got Questions Ministries

성서의 "잃어버린 책"이나 성경에서 빼내거나 빠진 서적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의도하시고 영감을 넣으신 모든 책은 성경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잃어버린 책들에 대한 많은 전설들과 소문이 있지만, 그런 이야기들은 진실이 아닙니다. 실제로 수백 권의 종교 서적들이 성경의 책들이 기록되던 같은 기간에 쓰여졌습니다. 그 서적들의 일부는 실제로 발생한 사건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예, 마카베오상). 이 서적들의 일부는 훌륭한 영적인 교훈을 담고 있습니다(예를 들어, 솔로몬의 지혜). 그러나 이 책들은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된 것이 아닙니다. 만일 이 서적들 중 하나를 읽는다면, 예를 들어 외경을 읽는다면, 우리는 그 책들을 오류가 담긴 역사 책으로 대해야 하지, 무오한 영감 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대하여서는 안 됩니다(딤후 3:16-17).

예를 들어, 도마의 복음은 사도 도마에 의해 쓰인 것으로 주장되고 있으나 그 책은 3 - 4 세기에 꾸며진 거짓 복음입니다. 그것은 도마에 의해 쓰인 것이 아닙니다. 초대 교회의 교부들은 거의 보편적으로 도마의 복음을 이단으로 거부했습니다. 이 책에는 예수님이 말씀하시고 행하신 것으로 주장되는 거짓들과 이단적인 말들이 많이 담겨있습니다. 그 책의 그 어떤 것도 (또는 거의 대부분이) 사실이 아닙니다. 바나바의 서신은 성경의 진짜 바나바가 쓴 것이 아니라 사기꾼이 쓴 것입니다. 빌립의 복음, 베드로의 묵시록 등도 마찬가지입니다.

오직 한 분의 하나님이 계십니다. 성경은 한 분의 창조주를 계시합니다. 성경은 한 권의 책입니다. 성경은 하나의 은혜의 계획을 가지고 그 은혜의 시작부터 실행과 완성까지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예정에서 영화까지 하나님이 자기의 영광을 찬양하기 위해 친히 택하신 사람들을 구속하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의 구속적인 목적과 계획이 성경에서 펼쳐지듯이, 끊임없이 되풀이되며 강조되는 주제는 하나님의 성품, 죄와 불순종에 대한 심판, 믿음과 순종을 향한 축복, 구주이신 주님과 죄를 위한 희생, 다가오는 왕국과 영광입니다. 우리의 삶과 영원한 운명이 그러한 주제에 달려 있기 때문에 우리가 이 다섯 가지 주제를 알고 이해하는 것이 하나님의 의도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이 중대한 정보를 어떤 식으로든 ‘잃어 버리게’ 하시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습니다. 성경은 그것을 읽고 이해하는 사람이 “온전하게 되어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기 위해”(딤후 3:16-17) 완전합니다.

-Got Questions Ministries

  구약을 연구하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구약이 신약에서 발견되는 교훈들과 사건들의 토대가 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점진적인 계시입니다. 좋은 책의 앞의 반 정도를 건너 뛰고 마치려고 하면, 당신은 인물들과 줄거리와 결말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겪게 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신약 성경을 온전하게 이해하려면 구약의 사건들과 인물들과 율법과 희생 제도와 언약 및 약속들의 토대를 보아야만 합니다.

우리가 신약만 갖고 있다면, 우리는 복음서를 대할 때 왜 유대인들이 메시아(구주이신 왕)를 기다렸는지 알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왜 메시야가 와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할 것이며 (참조, 사 53 장), 그분에 관해 주어진 많은 상세한 예언을 가지고 나사렛 예수를 메시아로 식별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예를 들면, 그의 탄생지(미 5:2), 죽음의 방식(시 22:1, 7-8, 14-18; 시 69:21), 부활(시 16:10)과 사역에 대한 더 많은 세부 내용들입니다(사 9:2; 사 52:3).

구약에 대한 공부는 신약 성경에 언급된 유대인의 관습을 이해하는 데에도 중요합니다. 우리는 바리새인들이 자신들의 전통을 더함으로써 어떻게 하나님의 율법을 왜곡시켰는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며, 왜 예수께서 성전 안뜰을 정결하게 하실 때 그렇게 분노하셨는지, 또는 예수께서 원수들에게 수많은 답변을 하실 때 사용하셨던 말씀들을 어디에서 가져오셨는지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구약은 성경이 사람의 말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어야만 성취될 수 있는 수많은 상세한 예언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예, 다니엘서 7 장과 그 다음 장들). 다니엘의 예언은 국가의 흥망에 대하여 구체적인 내용을 제시합니다. 이 예언들은 매우 정확합니다. 사실, 회의론자들은 사건이 발생한 이후에 그 예언들이 쓰여진 것이라고 믿을 정도입니다.

우리는 구약이 우리를 위한 수많은 교훈을 담고 있기 때문에 구약을 공부해야 합니다. 우리는 구약의 인물들의 삶을 관찰함으로써 우리 자신의 삶을 위한 지침을 발견합니다. 우리는 어떤 일이든 하나님을 신뢰하라는 권면을 받습니다(단 3 장). 우리는 우리의 확신(단 1장)을 굳게 해야 하는 것과, 또한 충성의 보상을 기다리는 것을 배웁니다(단 6장). 우리는 변명보다는 가능한 빨리 죄를 고백하는 것이 최선책이라는 것을 배웁니다(삼상 15장). 우리는 죄가 우리를 찾으려고 하기 때문에 죄를 가지고 장난해서는 안 되는 것을 배웁니다(삿 13-16장). 우리는 죄가 우리 자신뿐만 아니라 우리의 사랑하는 자들에게도(창 3 장) 악한 결과를 가져오는 것을 배웁니다. 또한 그 반대로 우리의 선한 행동은 우리와 우리 주변의 사람들에게 보상을 준다는 사실을 배우게 됩니다(출 20:5-6).

구약에 대한 연구는 우리로 하여금 예언을 이해하는데에도 도움을 줍니다. 구약은 유대 민족을 위해 하나님이 성취할 많은 약속을 담고 있습니다. 구약은 대환난의 기간을 계시하여주며, 어떻게 그리스도의 장래의 일천 년의 통치가 유대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약속들을 성취하는지, 그리고 성경의 결론이 시간이 시작될 때 풀린 느슨해진 목표들을 어떻게 묶는지 등을 알려줍니다.

요약하면, 구약은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길 수 있는 방법을 배울 수 있게 하며, 하나님의 성품에 관해 더욱 많이 알려줍니다. 구약의 예언들이 반복적으로 성취된 사실이 드러나면서 성경이 왜 경건한 책들 중에서 유일한 것인지 알게 됩니다. 이 사실만으로도 성경 그 자체가 주장하는 것처럼 성경은 영감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이 입증될 수 있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만일 당신이 아직 구약 성경의 각 페이지를 과감하게 걸어 보지 않았다면, 당신은 하나님이 당신을 위해 준비한 많은 것들을 놓치고 있는 것입니다.

-Got Questions Ministries

처음 성경을 읽는 사람들은 성경이 책의 시작과 끝까지 수월하게 읽어 내려갈 수 있는 평범한 책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경은 사실 여러 저자가 1500 년 이상 걸쳐 여러 언어로 된 서적들의 모음집입니다. 마틴 루터는 모든 성경의 역사와 예언이 궁극적으로 예수님을 가리키기 때문에 성경은 "그리스도의 요람"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처음 읽는 것은 복음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마가복음은 신속하고 빠르게 진행되기 때문에 성경 읽기를 시작하는데 좋은 책입니다. 그 다음 책으로는 예수님이 자신에 대해 주장하신 것에 초점을 맞춘 요한복음을 읽으면 좋습니다. 마가는 예수님이 하신 일에 대해 말하는 반면, 요한은 예수님의 말씀과 예수님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요한복음에는 가장 간단하고 분명한 구절들이 있고 또한 가장 깊고 심오한 구절들도 있습니다. 복음서를(마태, 마가, 누가, 요한) 읽으면 그리스도의 생애와 사역에 익숙해질 것입니다.

그 후, 몇몇 서신서(로마서, 에베소서, 빌립보서)를 읽으십시오. 그 책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사는 법을 가르쳐줍니다. 구약을 읽기 시작할 때는 창세기부터 읽으십시오. 그것은 하나님이 세상을 어떻게 창조하셨는지, 어떻게 인류가 죄에 빠졌는지, 그리고 타락이 세상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알려줍니다.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는 하나님이 유대인들에게 요구하시는 모든 율법을 알려주기 때문에 읽기가 어려울 수 있습니다. 이 책들을 피해서는 안되지만 아마도 나중에 공부하는 것이 더 나을 것입니다. 아무튼 그 책들 때문에 교착 상태에 빠지지 않도록 노력하십시오. 이스라엘의 역사를 잘 알려면 여호수아부터 역대기까지 읽으십시오. 시편부터 솔로몬의 노래까지 읽으면 히브리 시와 지혜에 대해 좋은 느낌을 갖게 될 것입니다. 예언서들, 즉 이사야부터 말라기까지는 이해하기가 어려울 수 있습니다. 성경을 이해하는 열쇠는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는 것임을 잊지 마십시오(약 1:5). 하나님은 성경의 저자이시며, 당신이 그분의 말씀을 이해하기를 원하십니다.

모든 사람이 성공적으로 성경을 배우는 학생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말씀 공부에 필요한 ‘자격들’을 갖춘 자들만이 하나님의 복을 받아 성경을 배우는데 성공할 수 있습니다. 그 ‘자격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습니까?(고전 2:14-16)
당신은 하나님의 말씀에 갈급함을 느낍니까?(벧전 2:2)
당신은 부지런히 하나님의 말씀을 찾고 있습니까?(행 17:11)

만일 당신이 이 세 가지 질문에 "예"라고 대답하면, 당신이 어디서부터 성경을 읽기 시작하든, 그리고 어떤 방법으로 공부하든 상관없이 하나님이 그분과 그분의 말씀을 알기 위한 당신의 노력에 복을 베푸실 것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그리스도인이라는 확신이 없다면, 즉 당신이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 받았고 당신 안에 성령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을 확신하지 못한다면, 당신은 성경 말씀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성경의 진리는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숨겨져 있지만, 믿는 사람들에게는 생명 그 자체입니다(고전 2:13-14; 요 6:63).

-Got Questions Ministries

 "성경"이라는 단어는 라틴어와 헬라어로 "책"을 의미하며, 이에 성경은 언제나 모든 사람들을 위한 책이기 때문에 잘 맞는 이름입니다. 성경은 다른 그 어떤 책과도 비교할 수 없으며 또한 독특한 부류의 책입니다.

66 개의 서로 다른 책이 성경을 구성합니다. 성경은 레위기, 신명기와 같은 율법 책, 에스라와 사도행전과 같은 역사적인 책들, 시편과 전도서와 같은 시가서, 이사야와 계시록과 같은 예언서, 마태와 요한과 같은 전기서, 그리고 디도서와 히브리서와 같은 서신서들(공식 편지)을 포함합니다.

성경은 무엇인가? - 저자들

성경은 대략 40 명의 다른 저자들에 의해 약 1500 년 동안 쓰여졌습니다. 저자들로는 왕, 어부, 제사장, 공무원, 농부, 목자 및 의사들이 있습니다. 이 모든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공통된 주제가 섞여 있으면서 놀라운 통일성을 이룹니다.

성경의 통일성은 궁극적으로 한 분의 저자, 곧 하나님 자신으로 인하여 기인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되었습니다(딤후 3:16). 인간 저자들은 하나님이 기록하기를 원하셨던 것을 정확하게 기록했으며, 이에 완전하고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되었습니다(시 12:6, 벧후 1:21).

성경은 무엇인가? – 분류

성경은 구약과 신약의 두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간단히 말해, 구약은 ‘한 나라’의 이야기이며 신약은 ‘한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그 나라는 그 사람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데려 오는 하나님의 방법이었습니다.

구약은 이스라엘 나라에 대한 창립과 보존에 대해 묘사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사용하여 온 세상을 축복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창 12:2-3). 이스라엘이 나라로 세워지자, 하나님은 그 나라 내에서 한 가문을 일으키셨습니다. 바로 다윗의 가문입니다(시 89:3-4). 그 후 다윗의 가문으로부터 약속된 복을 가져올 그분이 약속되었습니다(사 11:1-10).

신약은 약속된 그 사람의 오심을 상세히 설명합니다. 그분의 이름은 예수입니다. 그분은 구약의 예언을 성취하셨습니다. 그분은 완전한 삶을 살았고, 구주가 되기 위해 죽으셨고,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셨습니다.

성경은 무엇인가? - 중심 인물

예수님은 성경의 핵심 인물입니다. 성경 전체가 사실 그분에 관한 것입니다. 구약은 그분의 오심을 예언하고 그분이 세상에 오실 수 있도록 무대를 마련합니다. 신약은 죄 많은 이 세상에 구원을 가져오기 위한 그분의 오심과 사역을 묘사합니다.

예수님은 역사적인 인물 그 이상입니다. 사실 그분은 사람 그 이상입니다. 그분은 육신에 거하시는 하나님이시며, 그분의 오심은 세상 역사 가운데 가장 중요한 사건이었습니다. 하나님 자신이 사람이 되신 것은 그분이 누구신지 우리가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는 그림을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그분은 예수님과 같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모양으로 계시는 하나님이십니다(요 1:14; 14:9).

성경은 무엇인가? - 요약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시고 그를 완벽한 환경에 두셨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하나님을 거역하고 하나님이 의도하신 뜻에서 벗어나 타락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죄로 인하여 세상을 저주 아래 두셨지만 즉각적으로 인류와 모든 피조물을 원래의 영광으로 회복시키는 계획을 추진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구속의 계획의 일환으로 아브라함을 바빌론에서 불러내시어 가나안으로 인도하셨습니다(주전 2000 년경).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그의 아들 이삭과 그의 손자인 야곱(이스라엘이라고도 불림)에게 그들의 한 후손을 통해 세상을 축복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의 가족은 가나안에서 애굽으로 이주하여 그곳에서 한 나라로 성장하였습니다.

주전 1400년경에 하나님은 이스라엘 자손들을 모세의 지시 아래 애굽에서 나오게 하신 후 그들이 소유하도록 약속의 땅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율법을 주셨고 그들과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만일 그들이 하나님께 충성하고 주변 국가의 우상 숭배를 따르지 않으면 그들은 번영할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따라간다면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멸망시키실 것입니다.

약 400 년 후, 다윗과 그의 아들 솔로몬의 통치 기간에 이스라엘은 크고 강력한 국가로 성장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다윗과 솔로몬에게 그들의 한 후손이 영원한 왕으로 통치할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솔로몬의 통치 후에 이스라엘 국가는 분열되었습니다. 북쪽에 있는 열 지파는 "이스라엘"이라고 불렸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우상 숭배로 인하여 그들을 심판하기 전까지 약 200 년 동안 지속되었습니다. 앗시리아는 주전 721 년에 이스라엘을 점령했습니다. 남쪽에 있는 두 지파는 "유다"라고 불렸습니다. 그들은 조금 더 오래 지속되었지만, 결국 그들 또한 하나님을 저버렸습니다. 바빌론은 주전 600 년경에 그들을 포로로 잡아갔습니다.

약 70년 후, 하나님은 포로들 가운데 남은 자들을 그들의 본래의 땅으로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수도 예루살렘은 기원전 444 년경에 재건되었으며, 이스라엘은 다시 한번 국가의 정체성을 확립하였습니다. 이렇게 하여 구약은 끝이 납니다.

그 후 약 400 년이 지난 뒤에 신약은 베들레헴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함께 시작됩니다. 예수님은 아브라함과 다윗에게 약속된 그 후손이었습니다. 그 후손은 인류를 구속하고 창조를 회복시키려는 하나님의 계획을 성취하기 위해 오신 분입니다. 예수께서는 충실하게 그분의 사역을 완성하셨습니다. 그분은 죄를 위해 죽으시고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온 세상과의 새 언약(유언)을 위한 바탕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은 죄에서 구원을 얻고 영원히 살게 될 것입니다.

부활하신 후에 예수님은 제자들을 내보내시며 그분의 삶과 구원의 권세를 온 세상에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사방으로 나아가 예수님과 구원의 좋은 소식을 전파하였습니다. 그들은 소아시아, 그리스 및 모든 로마 제국을 다녔습니다. 신약 성경은 믿지 않는 세상을 심판하고 모든 피조물을 저주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해 예수께서 다시 오실 것이라고 예언하며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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