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라성경사전 113 페이지 > 기독정보닷컴

성경에 나오는 메대와 페르시아의 여러 왕의 공통적인 호칭. I. 메대 사람 다리오의 아버지(단9:1). 대부분의사람들은 이 호칭이 고레스의 조부인 아스티아게스를 가리킨다고 생각한다. 고레스, 다리오 1세 참조.II. 고레스의 아들로서 그의 뒤를 이은 왕(스4:6).아마 이것은 주전 529년부터 7년 반 동안 통치한캄비세스를 가리킬 것이다.III. 에스더의 남편. 아마도 이 사람은 크세륵세스를 가리킬 것이다. 주석가들은 여러 의견을 내고 있으며 이 이름이 페르시아의 여러 왕을 가리킨다고믿고 있다. 그러나 성경에 나오는 페르시아 왕들은모두 그들의 이름으로 언급되고 있으며 단지 크세륵세스만 예외이다. 에스더 참조.
요담의 아들로 유다의 열두 번째 왕. 그는 20세에 왕위에 올라 16년 동안 통치하였다(왕하16:1-20). 그는우상숭배와 참 하나님을 경멸한 것으로 유명하며 이로 인해 하나님께서 그에게 많은 대언의 말씀을 주셨지만(사7:1-25) 그는 자기 자녀들로 하여금 불 속을 지나 우상들에게 이르게 했고 예루살렘에 시리아의 신들을 가져왔으며 시리아 식으로 성전을 바꾸고그것을 폐쇄시키기도 했다. 주님의 도움을 버린 그는 결국 베가와 르신과의 전쟁에서 고통을 당하였고에돔 사람들은 그를 버리고 반역했으며 블레셋 사람들은 그의 경계를 위협했다. 그는 고통 중에서 점점더 하나님을 멀리 했으며 아시리아의 불 왕에게 원조를 구했고 이 일로 인하여 불에게 그리고 그의 뒤를 이은 디그랏빌레셀에게 조공을 바쳤다. 이런 와중에서도 그는 점점 더 우상숭배를 강화하였고 36세에 아무 존경도 받지 못한 채 죽어서 자기 조상왕들의 무덤에 들어가는 것조차 거절당하는 수치를겪었다(대하28:1-27).
I. 이스라엘 왕 아합의 아들(왕상22:51;왕하1:1-18). 그는 자기 아버지와 함께 또 홀로 2년동안 통치했으며 자기 아버지의 불경건을 따라 바알과 아스다롯에게 경배했는데 이런 것은 다 그의 어머니 이세벨이 이스라엘에 들여온 것이다. 그의 통치 때에 모압 사람들이 반역을 일으켰다. 그는 여호사밧과 함께 홍해에서 사업을 하려 했으나 그의 경건치 못한 행위로 인해 모든 일이 수포로 돌아갔다.그는 자기 집의 다락방 격자창에서 떨어진 뒤에 사람을 보내어 블레셋 사람들의 신에게 자기가 회복될수 있을지 물었으며 이때에 엘리야는 그의 사자들에게 그가 속히 죽을 것이라고 말하고 그 뒤 그가 보낸50명의 부대가 두 번이나 죽은 뒤에 아하시야에게직접 그 사실을 통고하였다.II. 여호람과 아달랴의 아들인 유다 왕 여호아하스 혹은 아사랴. 그는 주전 881년경에 자기 아버지의 뒤를 이었다(왕하8:25; 대하21:17; 22:6). 왕위에오를 때에 그는 22세였으며 예루살렘에서 1년 동안통치하였다. 그는 자기의 어머니로 인해 아합의 집을 따라 악하게 행하였으며 아합의 아들 요람과 함께 있다가 예후의 손에 죽임을 당했다.
I. 주전918년경에 자기 아버지 오므리를 이어 왕이 된 이스라엘의 여섯 번째 왕. 그는 22년 동안 통치하였다.그의 아내는 두로의 엣바알의 딸 이세벨이었는데 그녀는 야망이 크고 열정적으로 우상을 숭배했으며 이로 인해 바알과 작은 숲 숭배가 이스라엘에 퍼지게되었다. 아합은 사마리아에 바알의 집을 세우고 바알의 형상들과 작은 숲을 세웠으며 그 결과 우상숭배와 사악함이 두려울 정도로 만연하게 되었다. 사실 아합은 그 전의 모든 왕보다 주의 분노를 더 일으켰다. 이러한 배도의 시기에 하나님께서는 3년의 기근과 가뭄으로 그 땅에 저주를 내렸고 갈멜 산에서하늘에서 불을 보냄으로 바알의 대언자 450명을 죽이셨다. 그 뒤 6년이 지나서 시리아의 벤하닷 왕이큰 군대와 함께 이스라엘을 침공했으나 크게 참패를당하였고 1년 뒤에 아합에게 포로가 되었으나 아합이 그를 살려 주었는데 이것은 하나님을 불쾌하게만들었다. 경고와 섭리에도 불구하고 아합은 계속해서 죄를 지었으며 무죄한 나봇을 살해한 후에도 죄악을 저지르고 가증한 우상숭배를 계속하자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를 보내어 그와 그의 씨에게 저주를선포하셨다. 그러나 그가 자신을 낮추자 이러한 심판은 잠시 연기되었다. 그 뒤 그는 유다의 여호사밧과 함께 라못길르앗으로 가서 시리아 사람들로부터그 도시를 회복하려 하였으나 오히려 싸움에서 패배하여 죽임을 당하였고 사마리아의 못에서 개들이 그의 피를 핥았다(왕상16-22).II. 바빌론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을 유혹한 거짓대언자. 그는 이 일로 인해 예레미야의 책망을 받았다(렘29:21-22).
에스겔 대언자가 선택한 두개의 상징적인 이름(겔23:4). 이것들은 유다와사마리아 왕국을 나타냈으며 이집트에서 나온 두 자매를 뜻했고 아홀라는 사마리아를, 아홀리바는 예루살렘을 상징했다. 이 비유는 유대인들의 역사를 보여 주었다.
배신한 예루살렘(유다)을 가리키는 상징적인 이름(겔23:4, 11). 배신한 사마리아(이스라엘)는 아홀라로 표현되었으며이 둘은 행음으로 인해 심판받았다(겔23:36-49).
성전에서 율법 책이 발견되었을 때 요시야 왕이여대언자 훌다에게 보내어 율법 책의 말씀들에 대하여 여쭈어 보게 한 사람(왕하22:12). 후에 그는 예레미야 대언자의 친구가 되었다(렘26:24; 39:14).
I. 아히마아스의 딸로서 사울의 아내(삼상14:50). II. 예스르엘 출신 여인으로 다윗의 아내. 그녀는암논의 어머니였고 시글락에서 아말렉 족속에게 포로로 끌려갔다가 후에 다윗에 의해 구출되어 그와함께 헤브론에 들어갔다(삼상30:5; 삼하2:2; 3:2).
길로의 원주민. 그는 원래 다윗의 가장 절친한친구였으나 압살롬의 반역 때에 그에게 동조하여 다윗을 괴롭게 만든 원수가 되었다. 그는 압살롬이 자기의 계략을 버리고 후새의 말을 듣자 반역의 끝이어떨지 미리 내다보고 고향으로 돌아가 목을 매어죽었다(삼하15:12; 17:1-29; 시55:12-14). 그는 또한밧세바의 조부인 것으로 보인다(삼하23:34; 비교 삼하11:3).
I. 엘리의 손자. 그는 비느하스의 아들이었으며 엘리가 죽자 전쟁에서 죽은 자기 아버지 비느하스를대신해서 대제사장이 되었다(삼상4:11).II. 아마랴의 아들, 사독의 아버지(삼하8:17; 대상6:8).
사독의 아들. 그는솔로몬 시대에 대제사장이 되었고 다윗의 통치 때에반역을 일으킨 압살롬과 그의 조언자들의 계략들을드러내었으며(삼하17:15-21) 압살롬이 멸망했다는소식을 다윗에게 전달했다(삼하18:1-33).
I. 아히둡의 아들이며 아히야의 형제. 그는 아히야의 뒤를 이어 대제사장 직분을 승계한 것으로알려져 있으나 어떤 사람들은 이 이름들이 동일한사람을 가리킨다고 생각한다. 그가 제사장 직무를수행할 때에 성막은 아히멜렉이 거하던 놉에 있었으며 거기서 여러 제사장이 섬기고 있었다. 여기서 그는 사울로부터 피신한 다윗에게 보여 주는 빵과 골리앗의 칼을 주었고 에돔 사람 도엑이 이 사실을 알리자 사울은 그것이 반역 행위라고 단정 짓고 도엑으로 하여금 아히멜렉과 그의 제사장 85명을 살해하게 하였다(삼상22:1-23). 이 범죄는 하나님께서그로부터 왕좌와 호의를 빼앗아 가기에 충분할 정도로 사악한 것이었다.II. 아비멜렉이라고도 불린 인물(대상18:16). 아마도 그는 아비아달이었을 것이다(대상24:3, 6, 31).아비아달 참조.
아히둡의 아들. 그는 사울의 통치 때 대제사장이었으며(삼상14:3) 사울이 죽인 아히멜렉 즉 그의뒤를 이은 대제사장의 형제였을 것이다(삼상22:9).
솔로몬과 여로보암시대의 대언자, 역사 기록자(왕상11:29; 대하9:29).그는 성전을 지을 때 하나님의 이름으로 솔로몬에게말을 전하고(왕상6:11) 또 그가 죄를 지었을 때 그에게 말을 전한 것으로 생각된다(왕상11:11). 그는 여로보암에게 이스라엘이 유다에서 떨어져나갈 것과그의 집이 세워질 것과 또 그가 몰락할 것에 대해예언을 했다(왕상14:1-14).
아비나답의 아들. 그는 하나님의 궤가 자기 아버지집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갈 때에 그 궤보다 앞에 감으로써 자기 형제 웃사가 당한 화를 면하였다(삼하6: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