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라성경사전 114 페이지 > 기독정보닷컴

아시리아 왕국의 창시자라할 수 있는 니므롯이 시날 평야에 세운 네 개의 도시중 하나(창10:10). 이곳의 유적들은 바그다드 서쪽9-15킬로미터 지역에서 발견되었다. 여기에는 니므롯의 언덕이라는 유적지가 있는데 그 둘레는 120미터, 높이는 40미터 정도 된다.
아셀 지파에 속한 도시(삿1:31). 신약성경에서 악고는 톨레마이(행21:7)라 불리는데 이는 톨레마이라는 사람이 이 도시를 확장시킨 데서 유래된 이름이다. 이곳은 두로에서 50킬로미터 남쪽에 위치한 지중해 연안의 도시이다. 악고와 그곳 북쪽의 해안 지역은 유대인들이 이교도들의땅으로 여긴 곳이다. 신약시대의 땅 지도 참조(39).
메대의 도시 엑바타나일 것으로 추정되는 도시(스6:2). 이곳은 동방에서 바빌론과 니느웨를 빼고는 가장 큰 도시였다.일곱 개의 성벽으로 둘러싸인 이곳은 고레스 왕 이후의 페르시아 왕들의 여름 거주지였다.
갈렙의 딸. 그녀는 갈렙의조카 옷니엘에게 시집가면서 많은 지참금을 받았는데 이는 옷니엘이 갈렙의 원대로 드빌을 점령하였기때문이다(수15:15-17; 삿1:12-13).
가나안족속들의 주요 도시(수11:1). 여호수아는 이곳을 정복하고 아셀 지파에게 주었다(수12:20; 19:25).
아셀의 도시. 히브리 사람들은 여기에서 가나안 족속들을 쫓아내지 아니하였다(삿1:31).
밤하늘에서 가장 밝은 다섯 개의 별 가운데 하나. 이것은 북반구별자리인 목자자리에서 가장 밝은 오렌지색 거성으로 지구에서 약 40광년 떨어져 있다. 이것은 큰곰자리의 꼬리 부분을 연장한 선에 놓여 있어서 그리스어 역시 ‘곰을 지키는 자’를 뜻한다. 한편 악투르스의 아들들은 이 별 근처의 작은 별들을 뜻하는 것같다(욥9:9; 38:32).
아셀 지파에 속한 바누엘의 딸. 그녀는 일찍 시집갔다가 7년 뒤에 과부가되어 그 이후부터는 하나님을 섬기는 삶을 살았다.그녀는 아침과 저녁에 희생물을 드리는 일에 참석했으며 아주 연로한 가운데 어린 구원자를 보는 복을받았고 예루살렘에서 구속을 기다리는 유대인들에게 메시아에 대해 이야기했다(눅2:36-38).
유대인들의대제사장(눅3:2; 요18:13, 24; 행4:6). 그는 누가복음에서 그의 사위 가야바와 함께 대제사장으로 언급되어 있다. 그는 주후 7-8년경에 시리아의 구레뇨 총독에 의해 처음으로 그 직책에 임명되었으나 나중에그것을 빼앗겼다. 그 뒤 몇 번의 변화를 거쳐 주후25년경에 그 직책은 가야바 혹은 요셉이라 불리는사람 즉 안나스의 사위에게 넘어갔으며 그는 주후35-36년까지 그 직책을 맡았다. 그러므로 누가복음기사에서 가야바가 진짜 대제사장이었지만 안나스가 그의 장인이며 전에 대제사장 직분을 맡았고 또막강한 권세를 가지고 있었으므로 대제사장이라 언급된 것 같다. 그리스도께서는 붙잡혀서 먼저 그에게로 갔다. 그는 또한 베드로와 요한을 심판한 산헤드린을 주도하는 역할을 했다(행4:6).
열두 사도 중 하나.그는 벳새다 출신으로 베드로의 형제였다(요1:40,44). 처음에 그는 침례자 요한의 제자였으며 그가그리스도를 가리켜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말한 것을 이해하고 그분을 따른 첫 번째 제자가 되어 메시아를 알게 되었다(요1:35-40). 후에 그는 갈릴리 해변에서 사도라 불리게 되었고(마4:18) 끝까지 그리스도를 따랐다(막13:3; 요6:8; 12:22).
유대인 그리스도인. 그는 사도 바울과 함께 감옥에 갇혔다(롬16:7).
I. 헤롯 안디바 참조.II. 버가모에 있던 신실한 순교자(계2:13).
팔레스타인의 도시. 이곳은 해안에서12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가이사랴와 예루살렘 사이의 비옥하고 관개가 잘된 평야에 위치했다. 이곳은 헤롯 대왕이 자기 아버지 안티파트리스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곳이며 사도 바울은 이곳을 방문했다(행23:31).
신약성경에 나오는두 도시의 이름. 하나는 시리아의 오론테스 강 근처에 위치한 대도시를 가리킨다. 사도 바울의 1, 2차선교 여행 지도 참조(42). 이곳은 자기 아버지 안티오쿠스를 기념하기 위해 셀레우코스 니카토르가 세운 도시로서 명성과 영화가 대단해서 한때는 로마제국에서 세 번째 큰 도시로 자리매김했다. 이곳은위치적으로 알렉산드리아와 콘스탄티노플 중간에있었고 수목이 많아 아름다웠으며 그래서 동서 교역의 중심지가 되었다. 이곳은 유대인들과 그리스도인들의 안식처가 되었고 니카토르는 그들이 오는 것을환영했다. 바로 이 도시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신자들이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는 호칭을 얻었다(행11:19, 26; 13:1; 갈2:11). 이 도시의 그리스도인들은 신약성경을 바르게 필사하여 후대에 넘겨주었고 그들의 사본은 안디옥 계열의 사본으로 불린다. 이곳은 그 어느 도시보다 지진의 피해를 많이입었으며 특히 1822년도의 지진으로 인구의 사분의일 이상이 죽기도 했다. 또 다른 안디옥 역시 니카토르가 세운 도시로 ‘비시디아의 안디옥’이라 불린다.그 이유는 이곳이 브루기아에 있었지만 비시디아 지방에 소속되어 있었기 때문이다(행13:14; 14:19, 21;딤후3: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