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라성경사전 128 페이지 > 기독정보닷컴

유다의 여호야김 왕의 아들. 그는 석 달 동안 통치하고 바빌론으로 끌려가 36년 동안 옥살이를 하다가 에빌므로닥 왕의 호의를 입어 풀려났다(왕하24:6-16; 25:27; 대하36:9-10). 그는 고니야 혹은 여고니야로 불리며(대상3:16; 렘27:20; 37:1) 렘22:30 말씀은 그의 아들 중 누구도 왕위에 오르지못함을 의미한다(대상3:17-18; 마1:12).
요시야 왕의 둘째 아들. 그는 엘리아김이라고도 불렸으며 이집트의 파라오에 의해 자기 형제여호아하스의 뒤를 이어 유다의 왕이 되었다. 그는11년 동안 왕으로서 사치와 방탕과 우상숭배로 점철된 나날을 보냈다. 그의 통치 제3년에 느부갓네살이 그의 통치자들과 재물 중에서 일부를 바빌론으로가져갔고 그 뒤 1년이 지나서 그와 연합한 이집트가유프라테스에서 패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예레미야 대언자의 경고를 멸시하고 그의 책을 불태웠으며 마침내 느부갓네살을 배반하고 싸움에서 패하여 죽임을 당하였다(왕하23:34; 24:6; 대하36:4-8;렘22:1-30; 26:1-24; 36:1-32).
대제사장. 그는 왕권을 찬탈한 아달랴로부터어린 왕자 요아스의 생명과 왕권을 보호했으며 그의지혜와 경건함으로 인해 그가 죽을 때까지 유다 왕국은 복을 받았다. 그는 130세에 죽어서 왕들이 받는 명예를 받고 무덤에 묻혔다(왕하11:1-21; 대하23:1-21; 24:1-27).
히브리 사람들이 감히 발음하지 못한 하나님의 신성한 이름. 이 이름의앞에는 결코 관사가 쓰이지 않았고 이것은 또한 복수의 형태로 쓰이지 않았다. 마소라들에 의하면 여호와를 뜻하는 4자음 문자 즉 YHWH는 여호와로발음된다. 마소라 참조. 이 이름의 뜻은 스스로 존재하는 자이며 따라서 이 이름은 스스로 독립적으로존재하며 불멸하고 무한한 존재를 가리킨다(출3:14;6:3). 하나님 참조.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전능자 하나님의 이름으로는 나타났으나 나의 이름 여호와로는 나를 그들에게 알리지 아니하였다.”(출6:3)는 말씀은 비록 그분께서 처음부터 사람들에게 알려지셨으나(창4:26) 모세와 이스라엘에게 자신을 드러내시는 그런 특별한 방식으로는 혹은 자신의이름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보여 주는 방식으로는 나타나지 않았음을 뜻한다.주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이 자신의 이름을 함부로 사용하는 것을 원치 않으셨기에 모세를 통해이스라엘 백성에게 십계명을 주시면서 “너는 주 네하나님의 이름을 헛되이 취하지 말라. 주가 자신의이름을 헛되이 취하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출20:7)고 말씀하셨다. 이 명령을 매우 두렵게생각한 이스라엘 사람들은 성경에서 그분의 이름YHWH를 대할 때마다 눈으로 이름을 확인하고 정작 읽을 때는 주(主)를 의미하는 아도나이로 읽었다.그러므로 이런 전통을 따라 전 세계의 대부분 성경이 여호와를 주로 번역하고 있다. 다만 기존의 우리말 성경은 주님의 거룩한 이름 여호와를 그대로 음역하여 많은 사람들이 무려 6,400회 이상이나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함부로 취하게 해 놓았고 그 결과 마땅히 경외하는 마음으로 대해야 할 그분의 거룩한 이름이 종종 아무 의미 없이 헛되이 취해지는사례가 발생하고 있다.하나님께서 여호와를 주로 번역하기 원하는 것은성경의 용례를 통해 명백히 드러난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에게 하나님 아버지께서 자신을가리켜 주(主)라고 하셨음을 보여 주신다. “주께서내 주께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을 네 발받침으로 삼을 때까지 너는 내 오른편에 앉아 있으라,하셨도다, 하느냐?(마22:44). 이 구절은 다윗이 기록한 시110:1을 마태가 인용한 것이며 성경에 여러 군데 나오는 중요한 구절로서 우리 주 예수님의 신성을 보여 준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말로 신약성경을주시면서 구약성경의 여호와를 주로 번역하라고 이런 용례를 남기셨다. 왜냐하면 성도 마태는 시편의말씀을 인용하면서 여호와를 분명히 주로 기록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신성한 이름이 더럽혀지는 것을 원치 않으심을 알 수 있다.사도 바울은 롬10:13에서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고 기록했는데 여기서 그가 언급한 주는 분명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다. 그런데 사실 이 구절은 구약의 대언자 요엘이기록한 말씀과 같다(욜2:32). 이를 통해 바울 사도는 신약의 주 예수 그리스도가 곧 구약의 주 하나님임을 보여 주고자 했던 것이다.
모세가 아말렉을 멸한 뒤 제단을쌓고 거기에 붙인 이름(출17:15).
에스겔이 미래에 도래할 거룩한 도시 예루살렘에게 붙인 이름(겔48:35).
주님의 천사가 나타나 “네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말한 곳에 기드온이 제단을 쌓고 거기에 붙인 이름(삿6:24).
아브라함이 자기 아들 이삭을죽여 번제 헌물로 바치려 했던 장소를 가리키는 말(창22:14). 그는 창22:8에 있는 이삭의 질문과 관련해서 하나님께서 친히 희생물을 예비하신다는 의미의 이런 이름을 그곳에 붙여 준 것 같다.
여호야김 왕의 치리자들이 예레미야가 쓴 두루마리를 가져오도록 바룩에게 보낸 사자. 후에 그가 그 두루마리를 낭독하는 것을 들은 왕은 펜 칼로 그것을 찢고화로에 던져 태워 버렸다(렘36:14, 21, 23).
구약성경에있는 두 개의 역사서. 이 책들의 기록자가 누구인지알 수는 없지만 그는 성경의 처음 나오는 책들뿐만아니라 여러 개의 공공 연대기 등을 사용하여 이것들을 기록하였다(대하9:29; 16:11; 20:32). 역대기상은 창조로부터 다윗에 이르기까지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고 역대기하는 솔로몬에서부터 시작해서 유다왕들의 역사와 바빌론 포로 생활에서 돌아오는 것까지를 기록한다. 다만 여기에는 이스라엘 왕들의 역사는 포함되지 않았으며 바로 이것이 열왕기상하와다른 점이다. 한편 같은 왕에 대한 역사 기록들은열왕기상의 내용과 거의 비슷하다. 이 두 책은 주로공적 예배에 대한 내용을 많이 포함하고 있으며 특히 성전을 짓기 위해 다윗이 예비한 것들과 솔로몬이 성전을 짓고 봉헌한 일을 상세히 기록하고 또한다른 왕들의 종교적 행적을 상세히 기록한다(대상13:8-11; 대하11:13; 19:8-11; 26:16-19 등). 역대기는 사무엘기와 열왕기와 함께 읽는 것이 좋은데 이책들은 한결같이 바른 신앙을 소유하는 것이 국가의흥망성쇠의 주요 원인임을 강조해서 보여 준다(잠14:34). 역대기는 특별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오심과 그분의 왕국과 관련해서 관심 있게 읽을 필요가 있다. 성경의 연대, 왕들의 연대 선도 참조(1-3,5-6).
이것은 누군가가 히브리어 구약본문이나 그리스어 신약 본문으로부터 자신의 언어로 번역한 성경을 의미한다. 서기 325년 니케아 종교회의가 열리기 전에 이미 시리아어와 라틴어로 번역된 성경들이 있었다. 성경은 아주 오래 전에 고딕,페르시아, 콥틱(이디오피아) 언어 등으로도 번역되었다. ‘역본’은 사실 ‘성경 기록’(Scripture)을 ‘옮긴것’(Translation)이며 현재 우리가 역본을 지칭하여사용하는 ‘Version’이란 단어는 원래의 언어로 기록된 성경을 ‘다시 내는 것’을 의미한다. 개역표준역(RSV)과 미국표준역(ASV) 등은 킹제임스 성경을개정한 영어 역본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것은 사실이아니다. 왜냐하면 ASV와 RSV는 킹제임스 성경의기초가 된 ‘다수 사본’이 아닌 다른 종류의 ‘소수 사본’으로부터 번역되었기 때문이다. 성경 본문, 킹제임스 성경 참조.
페스트 등과 같이 집단적으로생기는 악성 돌림병. 히브리말로 역병은 온갖 질병을 가리키며 이 말은 또한 plague로도 번역되었다.대언자들은 칼과 역병과 기근을 세 가지 주요 재앙으로 말하였으며 그것들은 대개 동시에 발생하였다(출9:15; 11:1; 왕상8:37 참조).
고대 사해 지역에 존재한 아스팔트같은 물질(창6:14; 11:3; 14:10; 출2:3). 원래 Pitch는 천연으로 나는 탄화수소 화합물. 고체의 아스팔트, 액체의 석유, 기체의 천연가스 따위로 길에 깔거나 물이 새지 않게 하거나 썩지 않게 하는 데에 쓰인다. 이것은 바빌론 근처에서도 많이 나며 연료로 사용되었다. 노아의 방주와 모세의 방주에는 이것이방수 작용을 하였고 바벨탑의 경우에는 시멘트 역할을 하였다. 보통 이것은 단단한 고체 상태로 있지만불을 가하면 녹아서 모르타르가 되고 굳으면 단단한바위처럼 된다. 지금도 사해 근방에서는 이것이 발견되고 있다.
연설이나 강연을 하는 사람이서는 단(대하6:13).
늙을 만큼 나이가 많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