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라성경사전 137 페이지 > 기독정보닷컴

욥의 거주지(욥1:1; 렘25:20; 애4:21). 이곳은 팔레스타인과 이두매아 그리고 유프라테스 사이의 한 지역으로 추정되며 이두매아의 북쪽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으로 생각된다.이곳의 거주민들이 아람의 아들인 우스에게서 나왔는지(창10:23) 혹은 나홀의 아들 후스에게서 나왔는지(창22:21) 혹은 호리 족속 우스에게서 나왔는지확실하지 않다(창36:28). 이곳 사람들은 참 하나님을 알고 있었고 덕과 신앙심이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담에서 자랄 정도로 수수하고향내를 내는 식물. 이것은 키가 1미터 안팎으로 백향목과 대조가 되었으며(왕상4:33) 유대인들의 삶에서 주로 뿌리는 일에 사용되었다(출12:22; 레14:4-6;시51:7; 히9:19; 참조 요19:29).
이교도들의 신화나 유대인들의 헛된 전통 같이 근거가 없고 값어치가 없는 이야기.우화는 종종 거짓이고 근거가 없으므로 악영향을 미쳤다(딤전4:7; 딛1:14; 벧후1:16).
쓴 맛과 독한 냄새를 가진 채소. 바리새인들은 운향을 비롯한 채소의 십일조를 드렸으나 공의와 하나님을 향한 사랑은 무시하였다(눅11:42).
페르시아의 수산 시 옆을흐르던 강. 이 강의 둑에서 다니엘은 유명한 환상을보았다(단8:2, 16).
아비나답의 아들. 그는 하나님의 언약궤를 기럇여아림에서 예루살렘으로 옮기다가 부주의로 죽었다(삼하6:1-23; 대상13:1-14).하나님은 소를 써서 궤를 옮김으로써 드러난 그들의부주의와 하나님을 존경하지 않는 마음을 보시고 웃사를 향해 진노하심으로 그들을 책망하셨다. 유대인들의 율법은 제사장들이 조심스레 궤를 덮고 레위사람들이 운반 막대를 껴서 어깨에 메고 나르도록규정하고 있으며 그 안을 보거나 만지는 자는 죽이라고 되어 있다(출25:14; 민4:5, 15, 19-20). 아마 웃사는 레위 사람도 아니었을 것이다(대상15:2, 13 참조). 막대 참조.
유다의 왕. 아사랴참조.
원자번호가 같은 원자만으로이루어져 그 이상 더 분해할 수 없는 물질(벧후3:10,12). 후에 이 땅의 원소들은 뜨거운 불로 녹을 것이다(벧후3:10, 12). 창조의 신비 선도 참조(69).
사람을 닮은 짐승. 솔로몬은 오빌에서 이것들을 데려왔다(왕상10:22; 대하9:21). 이집트에서는 이것들을 숭배하는 자들이 있었으며 지금도 인도 등지에서는 이것들을 숭배한다.
쌍떡잎식물로 녹나무과의 상록교목(시37:35). 이것은 감람수라고도 하며 높이는약 15미터이고 가지와 잎이 무성하며 껍질은 짙은잿빛이다. 이것은 지중해 연안이 원산지이며 고대올림픽에서 승자에게 이 나무의 잎이 달린 가지로만든 월계관을 주어 명예의 표시로 삼았다.
권한 밖의 일을 함.
새 달 즉 히브리 달력의 달들이 시작되는 때. 달 참조. 히브리 사람들은 특별히각 달의 첫째 날을 중히 여겼고 그래서 모세는 그날 특별한 희생을 드렸다(민28:11-15). 그러나 그는이 날을 거룩한 날로 여기라고 명령하지는 않았다.이 날은 단지 자발적으로 즐거운 날로 지킨 날이었다. 또한 사울 시대 이후에 그들은 이 날을 가족들이모이는 날로 정한 것 같다. 왜냐하면 다윗은 월삭에자신이 왕의 식탁에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으며 그래서 사울은 그가 없는 것을 나쁜 일로 여겼기때문이다(삼상20:5, 18). 각 달의 첫 날에는 나팔 소리를 내었으며(시81:3) 엄숙한 예물을 바쳤다. 그러나 월삭 중에서 가장 중요한 날은 민간력의 정월 초하루 즉 티쉬리 월(종교력의 7월)의 초하루였다(레23:24). 이 날은 아무 일도 해서는 안 되는 거룩한명절이었다(암8:5). 북 왕국 이스라엘에서는 사람들이 월삭에 대언자들을 찾아보고 예물을 드리며 그들의 교훈을 듣는 것이 관례였던 것으로 보인다(왕하4:23). 겔45:17은 월삭에 바치는 번제 헌물은 왕의경비로 마련해야 한다고 말한다(대상23:31; 대하8:13 참조). 기독교가 확립된 이후에 이 명절을 지키는 일은 더 이상 지속되지 않았지만(갈4:9-10; 골2:16) 유대인들은 지금까지도 이런 날을 지킨다.
이것은 의학적으로는 탈구(脫臼) 혹은 탈골(奪骨)로 쓰며 뼈가 제 위치를 벗어난 것을 뜻함(창32:25; 시22:14).
성령님의 호칭. 이에 해당하는 그리스말은 변호자, 스승, 안위자 등을 뜻하며이런 차원에서 우리 주 예수님께도 같은 그리스말이사용되었다. “우리에게 아버지와 함께 계신 변호자가 계시니 곧 의로우신 분 예수 그리스도라”(요일2:1). 그러나 성경에서 이 단어는 주로 성령님을 지칭하는 데 사용되었는데 그분은 그리스도의 뒤를 이은 또 다른 위로자이셨으며 교회에게 허락하신 ‘약속된 복’이었다(요14:16-17, 26; 15:1-27; 16:1-33;눅24:49; 행1:4). 위로자는 변호자로서 그리스도께서 하신 것처럼 우리를 위로하고 인도하는 분이시다. 그래서 제자들은 이 같은 위로자의 약속이 자기들에게 성취된 것을 알 수 있었다. 위로자 성령님은그들이 공회 앞에 서서 심판을 받을 때에 그들을 도왔고 구원에 관한 모든 진리로 그들을 인도했으며그리스도의 말과 일을 모두 기억하게 했고 앞으로다가올 일들을 계시해 주셨다. 그분의 임재는 은혜의 풍성함으로 증명되었고 그분은 예수님이 지상에없어도 모든 일이 하나님의 뜻대로 진행되어 차질이생기지 않게 하셨다. 교회는 지금도 성령님의 경륜하에 있으며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그리고 다가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꾸짖고 있다(요16:7-11).성령님 참조.
위선은 겉으로만 선하거나착한 체하는 것을 뜻하며 위선자는 극의 배우처럼자기가 아닌 다른 사람처럼 행동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성경에서 이 말은 특히 실제로 그렇지 않으면서도 겉으로 덕과 경건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에게 적용되었으며 특별히 우리 주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을 위선자라고 불렀다(눅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