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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그리스도 참조
세상에서는 법규를 어기면 죄인이라 하지만 성경은 사람이 본질적으로 죄성을 가지고 태어나기 때문에 죄인이라고 한다. 사과나무는사과나무이기 때문에 사과를 낸다. 사과가 열리기때문에 사과나무라고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성경이사람을 죄인이라 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그가 죄성을지녔기 때문이다. 즉 그가 죄를 짓는 것은 열매이지근본 뿌리가 아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은 - 심지어갓 태어난 아기들조차도 - 태어나면서부터 죄인이다(롬5:12-14; 시51:5; 욥15:14; 25:4-6). 죄 참조. 그러므로 이런 죄인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킬 수 없으며 이로 인해 사망이라는 형벌을 받을 수밖에 없다(창2:17; 롬6:23). 창조주 하나님이 공평하다는 것은 그분께서 죄를 그냥 두지 않고 벌하신다는 것을 뜻한다. 즉 사람이 어떤 것을 만들었는데그것이 제 기능을 못하면 폐기 처분하듯이 하나님도사람을 내시고 그 사람이 원래의 의도된 목적을 수행하지 못하면 폐기 처분하시며 성경은 이것을 둘째사망이라고 말한다(계20:11-15).죄인이 살 수 있는 길은 그를 지으신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준을 만족시키는 것인데 사람은 피조물이며 하나님은 창조주이시므로 사람이 스스로 노력해서 그분의 기준을 만족시킬 수 없다. 이것은 마치토기가 토기장이의 기준을 만족시킬 수 없음과 같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자신의 가장 선한 방법대로죄인이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길을 마련하셨으며 이것은 거룩하신 하나님 자신이 죄인 대신 죄의 형벌을 지고 지옥의 고통을 대신 맛보며 그를 의인으로선고하는 것이다. 속죄, 칭의 참조.“다른 사람 안에는 구원이 없나니 하늘 아래에서우리를 구원할 다른 이름을 사람들 가운데 주지 아니하셨느니라”(행4:12). 그러므로 죄인은 이 사실을믿고 하나님이 거저 주시는 은혜를 수용함으로써 자기의 행위와 상관없이 의인이 된다. 병자가 자신이병든 것을 알지 못하면 의원에게 올 수 없듯이 죄인도 자신이 태어나면서부터 죄인이며 그래서 필연적으로 죄를 지을 수밖에 없음을 인정하고 자기의 의지를 굽혀 하나님께 겸손히 나올 때 구원받을 수 있다. 자유 의지 참조.
기존 우리말 성경의 속죄제. 속죄, 희생물, 헌물 참조.
이것은 영어로 LORD 혹은 Lord이며성경에서 8,000여 번이나 나올 정도로 대단히 중요한 단어이다. 비록 권위자나 주인을 가리킬 때도 주(主)라는 호칭이 사용되었지만(창45:8; 룻2:13; 요15:20; 갈4:1) 구약성경은 거의 독점적으로 창조주하나님을 가리켜 피조물의 주라 부른다(창15:1-2;신3:3-24; 수7:8; 삿6:22; 삼하7:18; 시2:4; 8:1;69:6). 그러므로 엄격한 의미에서 피조물은 주라 불릴 수 없다. 영어 성경에서 대문자 주(LORD)는 언제나 여호와를 가리킨다. 여호와 참조. 한편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아버지와동일하시므로 믿음과 경배의 대상이기에 신약성경에서 주라 불리며 특히 사도 바울의 서신서에 그렇게 자주 언급된다(고전12:3).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이라고 고백하는 것은 그분께서 신자의 생명의 주인이 되심을 고백하는 것이며 이는 곧 주권 승인을 뜻한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님을 주로 부를 때에 그분이 하나님으로서 온 우주와 전 인류에 대한 유일한주권자요 세상의 창조주요 생사화복의 주관자임을고백하는 것이다(시2:4; 8:1; 114:7). 그래서 의심 많던 도마도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보고 “나의 주시며나의 하나님이십니다!”(요20:28)라고 고백하였다.기존의 우리말 성경은 미국표준역의 영향으로 구약의 LORD를 여호와로 표현하였으나 이 경우에는신약과 구약의 중요한 개념 특히 재림과 관련된 주의 날 개념이 변하게 된다. 즉 구약에서는 ‘여호와의날’로 하고 신약에서는 ‘주의 날’로 하면 그 둘이 같음을 알기 어렵다.주와 관련하여 주의 이름에 대해 언급할 필요가있다. 큰 글자로 표기된 LORD 즉 주는 결코 호칭이아니라 이름이며 성경 자체가 이를 확증해 주고 있다. “그리하면 내 이름이 주인 줄 그들이 알리라”(렘16:21). 따라서 구약성경에서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출을 받으리라.”(욜2:32) 등에 나오는 ‘주의 이름’(the name of the LORD)이라는 표현(총 88번 나옴)은 주의 이름이 따로 있어 그것을부르라는 것이 아니고 여기의 of가 동격의 of이므로주 즉 여호와라는 이름을 부르라는 것이다. 이는 마치 우리가 기도를 끝내면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고 할 때 이것이 예수님의 다른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을 뜻하지 않고 예수님이라는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을 뜻하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초대 교회 성도들은 황제가 아닌 예수님을 주로고백하였기에 많은 핍박을 받았으며 이로 인해 그리스도의 재림에 소망을 둔 마라나타 신앙이 확고하게자리를 잡았다(고전16:22; 계22:20). 마라나타 참조.
기둥들을 나란히 세운 복도 혹은그 기둥들 밑에 있는 방 즉 낭실. 이것은 라틴어로porticus로 번역되었는데 이 말은 곧 기둥이 있는현관이나 입구 등을 뜻한다(왕상6-7; 왕상7:7; 대상28:11; 겔40:7, 48; 욜2:17).
공기 중에서 잘 변하지 않으므로 철,강철, 구리 등의 표면을 도금하는 데 쓰이는 금속.이것은 초기부터 알려진 금속이며(민31:22) 두로와다시스 사람들이 이것을 가져왔다(겔27:12). 사1:25에서 이 말은 은을 제련할 때 생기는 납 합금 등을의미하였다.
자세히 살피려고 눈을 모아서봄.
이 개념은 특별히 구약성경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이 날은 하나님의 왕국이 완전히 서는 날이며 이 날부터는 다시 그분의 왕국을 공격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사2:12; 13:6, 9; 34:8; 겔13:5; 30:3; 욜1:15; 2:11;암5:18; 습1:14; 슥14:1). 이 날은 또한 징벌하는 날(사10:3)이고 주님의 진노의 날이며(겔7:19) 주님의큰 날이다(습1:14). 이 날은 구약에서 어둡고 무섭고두려운 것으로 표현되었지만 신약에서는 소망과 기쁨과 승리의 날로 묘사되곤 하였다. 예언의 날들 선도 참조(75).신약성경에서 이 날은 그리스도의 날 즉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아버지의 영광과 함께 오는 날을 뜻하며 사람의 아들이라는 개념이 바로 이 날을 가리킨다. “또 그가 사람의 아들이므로 (아버지께서) 그에게 또한 심판을 집행할 권위를 주셨느니라”(요5:27;비교 마24:27, 30; 눅12:8). 한편 신약성경은 밝은그림과 함께 어두운 배경을 제시하는데 그 이유는이 날이 여전히 진노의 날이요(롬2:5-6), 큰 날이며(유6; 계6:17), 하나님의 날이고(벧후3:12), 심판의날(마10:15; 롬2:16; 벧후3:7)이기 때문이다.어떤 경우 이 날은 단순히 ‘그 날’(that day 혹은the day)이라 불리기도 하는데 이런 표현은 마치 이날만이 역사에서 계수할 가치가 있는 유일한 날임을암시하는 것이다(마7:22; 살전5:4; 딤후4:8; 고전3:13). 이 날이 불신자에게는 공포의 날이지만 신자에게는 기쁨의 날이다. 이 날은 그리스도의 공중 강림에서부터 시작하여 7년 환난기와 천년왕국을 포함하는 긴 역사의 시간이다. 그래서 먼저 예수님 안에서 죽은 자들이 일어나고 그로부터 1000년이 지난 뒤에 구원받지 못한 불신자들이 일어난다(살전4:13-17; 계20:1-5). 이 날에 그분께서 자신의 소유물에게 오시므로(마16:27) 이 날은 우리 주 예수의날이며(고전1:8; 5:5) 예수 그리스도의 날이다(빌1:6, 10). 사도 바울의 서신에는 특히 그리스도가 영화롭게 나타나는 이 날에 대한 개념이 가득 배어 있다. 그러므로 이 날은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해서 그분의 영원한 왕국이 설립되는 날이며 그래서 이 날이후로는 더 이상 온 우주에 죄와 갈등이 존재하지않고 하늘들과 땅은 불로 정화되며 새 하늘과 새 땅이 이것들을 대체한다(사65:17-19; 66:22; 살후2:2;벧후3:13; 계21:1).
주의 만찬은 공관복음에 모두 기록되어 있다(마26:26-30; 막14:22-26;눅22:17-20). 이 규례는 우리 주님께서 배반당하던저녁에 친히 제정하신 것이며 고전11:23-26은 그것의 의미를 보여 준다. 그러므로 요한복음 6장의 생명의 빵에 대한 말씀을 주의 만찬에 적용하는 것은성경을 사사로이 해석하는 것이다.주의 만찬은 구약의 유월절에 뿌리를 두고 있다.유월절은 그리스도께서 하실 일을 미리 보여 주었고주의 만찬은 그리스도께서 이미 행하신 일을 되돌아보는 것이다(고전5:6-8). 그리스도께서 분명하게 주의 만찬을 행하라고 명령하셨기에 그리스도인들은이것을 규례로 삼아 지킨다(행20:7; 고전11:2, 26).대부분의 교회는 주의 만찬이라는 성경 용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성만찬이라는 천주교 용어를사용하는데 이것은 천주교의 일곱 가지 성례 중 하나인 ‘성체 성사’ 즉 미사를 가리키는 용어이므로 그리스도의 교회에서 사용해서는 안 된다. 미사 참조.이 규례의 이름이 주의 만찬이므로 누구든지 구원받았으면 주의 만찬에 참여할 수 있지만 구원받지 못한 아이들에게 빵과 포도주를 주는 것은 비성경적이다. 그 안에는 천주교의 미사에서처럼 무슨 신비적인 요소가 있지 않기 때문이다.주님의 승천 이후 첫 오순절이 지난 뒤에 예루살렘에서는 믿음을 고백하는 군중들을 위해 가정 예배나 모임이 있었으므로 매일 주의 만찬을 행했으며이것은 보통 ‘빵을 떼거나 빵을 나눈다’는 말로 표현되었다(행2:46). 초대 교회 초반기에는 빵을 떼는 일이 거의 매일 있었으며 이런 일이 가능했던 것은 행2:44에 있는 대로 그들이 모든 물건을 공통으로 소유했기 때문이다. 즉 처음에 초대 교회 성도들은100% 유대인이나 유대인 개종자였으며 - 이방인으로 처음 구원받은 고넬료는 오순절 사건 이후 10여년의 시간이 지난 뒤에 사도행전 10장에서 등장함- 그들은 말라기 대언자의 말씀에 따라 언제라도 자신들의 주님이 성전에 돌아오리라는 기대감에 차 있었으므로 물건을 공동으로 소유하고 성전에 모였다(말3:1).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께서 스데반 사건을통해 강권적으로 다른 곳으로 흩어버릴 때까지 성전에 머물렀으며 심지어 사도들은 그 이후에도 계속해서 성전에 머물렀다.그러나 이로부터 15-20년이 지나서는 매주 만찬을 행하는 것이 보인다(행20:7). 여기서도 그들은 단순히 주의 만찬만 행하지 않고 음식도 먹었다(11절참조). 이 이후에는 회수나 빈도에 대한 언급이 전혀없고 단지 고전11:26에 마지막으로 주의 만찬 자체에 대해 기록되어 있을 뿐이다. 이 모든 것을 종합해보면 의미 있게 주의 만찬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며회수가 중요한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 천주교회처럼 주의 만찬(혹은 미사)이 없으면 예배가 아니라는주장을 펴는 곳도 있지만 성경은 결코 이것을 지지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각 지역 교회가 자신들의 상황에 맞게 만찬의 빈도를 정하여 바르게 행하면 된다.우리 주님께서는 “이것이 내 몸이다.”라고 말씀하시면서 결코 자기의 진짜 살을 먹으라고 하지 않았다. 주의 만찬의 요소인 빵과 포도즙은 그분의 찢겨진 몸과 그분의 흘린 피를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다. 유대인들의 유월절 기간에는 반드시 일주일동안 모든 집에서 죄의 상징인 누룩을 제거해야만 했다(출12:15; 고전5:7-8). 누룩 참조. 그러므로 죄없는 그리스도를 정확하게 나타내기 위해서는 반드시 누룩이 들지 않은 빵을 사용해야 한다. 빵과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순수한 피를 상징하는 포도즙 역시누룩이 들지 않은 순수 포도 주스여야 한다. 포도주는 이미 누룩이 들어가서 포도즙이 발효된 것이므로순수한 그리스도의 피를 나타낼 수 없다. 전 세계적으로 성경대로 믿는 성도들이 이런 이유로 모두 포도 주스를 사용한다.주의 만찬에서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분과 맺은 언약과 또 은혜에서 은혜에 이르는 그리스도의 충만하심을 다시 되새기게 된다(고후1:21-22; 엡4:13-16).한편 주의하지 않고 여기에 참여하는 자들은 죄를지으며 따라서 징계를 받을 수 있다(고전11:20-34).주의 만찬은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만 행하는잠정적인 규례이며 그 이후에는 어린양의 혼인 만찬이 성도들을 기다리고 있다.끝으로 주의 만찬에서의 빵과 포도즙이 실제 예수님의 살과 피로 변한다는 로마 카톨릭 교회의 화체설 교리는 성경과 상식에서 벗어난 이단 교리이다.미사 참조.
이것은 여호와의 천사를 뜻하며 대부분의 성경 주석가들은 이 존재가 구약시대에 성육신 이전의 예수 그리스도를 뜻하는 것으로 본다(창16:7-13; 22:11-18; 31:11-13;32:24-30; 출3:2-6; 23:20; 삿2:1-23; 13:16-22; 행7:30-38 등 비교). 그리스도는 주의 천사로 즉 여호와로 구약과 신약시대 초반에 나타나서 사람들에게아버지 하나님을 계시하고 자신의 백성을 위한 구원의 큰 계획을 수행하였다(사63:9).
그리스도인들은 유대인들과달리 토요일을 안식일로 삼지 않고 대개 일요일에모여 예배를 드리는데 이 날은 결코 율법에서 말하는 안식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이 온 우주 만물을 엿새 만에 창조하시고 하루를 쉬셨으므로 몸과 정신의 건강을 위해 그리고 하나님께한 날을 거룩히 구별하여 경배 드린다는 안식일의원리를 살리기 위해 세상일을 접고 쉰다. 더욱이 이날은 우리 주님께서 인류를 구속하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날이므로 기독교 신앙의소망인 부활을 기념하고 기대하면서 세상일을 제쳐두고 이 날을 예배드리는 날로 구분하여 지키고 있다.쉬는 날이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바뀐 것은 주님의부활 이후에 즉각 실시되었으며 우리 주님의 인도하심이 있었음에 틀림이 없다. 바로 이 날 즉 주의 첫날에 그분께서는 모여 있던 제자들에게 나타나셨고또 한 주일이 지나서 같은 날에 도마를 포함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다. 고전11:20; 14:23, 40 등은 초대교회의 제자들이 주의 첫 날에 모여서 경배하고 주의 만찬을 기념한 것을 보여 준다(고전16:1-2). 또한행20:6-11은 드로아의 그리스도인들이 주의 첫 날에 모여 만찬을 기념하고 말씀을 들었음을 보여 준다. 요한은 아주 엄숙하게 이 날을 지켰으며 그 날을주의 날 즉 주일이라고 불렀다(계1:10). 요한의 계시록 이후부터 이 날은 주일이라고 불렸다.복음의 초기에 유대인 제자들은 유대인들의 안식일도 지켰지만 결코 유대인들의 안식일이나 명절을이방인이 지켜야 한다고 요구하지 않았다(골2:16).초기 기독교의 지도자들은 한결같이 주일을 경배 드리는 날로 따로 떼어 지켰다. 그리스도인들이 주일에 모여 경배하는 것은 너무나 확실하였으므로 그들을 박해하던 사람들은 “네가 오늘 주일을 지켰느냐?”고 물었으며 그리스도인들은 “내가 그리스도인이므로 이 날을 지키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하였다.안식, 안식일 참조.
이교도 그리스와 로마의 신. 그는 새턴과 오프스의 아들로 불리며 크레테에서 출생하였다고 한다. 이교도들의 신화에 나오는주피터는 악하고 추잡하며 짐승 같은 성격을 가지고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상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루스드라 사람들은 바나바를 가리켜 주피터라하였다(행14:12-13; 19:35).
고대 사람들이 귀중하게 여기던 색깔(출25:4; 26:1, 31, 36). 이것은 이스라엘의딸들에게 주홍색 옷을 입힌 사울의 은혜를 표현한색깔이었다(삼하1:24). 또한 부지런하고 덕이 많은여인은 자기 집안사람들에게 주홍색 옷을 입혔다(잠31:21).이 색깔의 강함과 깊이는 사1:18에 잘 나타나 있다. 주홍색은 또한 부유함의 상징이었다(계17:3-4). 이 색깔은 상수리나무의 한 종류에서 자라는 작은 곤충에서 얻었으며 고대 사람들은 이것으로진홍과 주홍색을 만들었다. 자주 참조.
에돔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