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라성경사전 58 페이지 > 기독정보닷컴

I. 유다의 서쪽에 있던 모레사 출신의 대언자. 그는열두 명의 소 대언자 중 일곱 번째 인물이며 유다왕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에 50년 동안 대언하였다. 그는 대언자 이사야와 동시대 사람이었으며 그래서 그의 표현과 비슷한 표현이 그의 글에서도 발견된다(사2:2와 미4:1, 사41:15와 미4:13 등 비교). 그가 담대하게 주님을 섬긴 것은 그로부터 1세기 후에 나타난 대언자 예레미야의 방패가 되었다(렘26:18-19; 미3:12). 그는 고상하게 또 격렬하게글을 기록하였으며 그의 글에는 여러 번의 장면 전환도 나온다. 그의 대언은 이스라엘과 유다의 죄악과 심판,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의 멸망, 유대인들이포로 생활에서 귀환하는 것, 그들의 원수들이 심판받는 것 등과 관련이 있다. 그는 메시아의 오심에대하여 “그의 나아감은 옛적부터 있었으며 영원부터있었다.”고 말하면서 그분의 오심이야말로 그가 묘사하는 영광스런 장래의 모든 소망의 기초임을 보여주었다. 그는 또한 예수님이 유다의 베들레헴에서한 여인의 아들로 태어날 것을 정확히 대언하였고(미5:2-3) 유대인들은 그것이 메시아 출생에 관한 것으로 이해했다(마2:6; 요7:41-42).II. 재판관 시대에 살던 에브라임 사람. 그는 여호수아가 죽은 이후의 재판관 시대에 자기 어머니에게서 1,100세겔을 훔쳤다가 그것을 되돌려 주었으며자기 어머니의 동의를 받아 그 돈으로 개인의 성스러운 장소를 만들고 주님을 경배하기 위하여 형상을세우며 또 복을 받기 위해 레위 사람을 자신의 제사장으로 고용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우상숭배를 멸시하시고 단 족속의 군대를 보내어 그의 제사장 요나단과 그의 우상숭배 기물을 강탈하게 하였다(삿17:13).
여호야김의 궁전에 있었던 젊은 통치자. 그는 왕의 조언자들에게예레미야의 엄중한 경고를 전달하였다(렘36:11-13).
I. 아합이 여호사밧과 함께 시리아 사람들을 치려 할 때에 여호사밧의 요구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자문을 구한대언자. 그는 충성스럽게 그리고 두려움 없이 아합에게 대언하였고 그 결과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후에 그는 감옥에서 나왔고 아합은 그의 예언대로 싸움터에서 죽었다(왕상22:8-38). 이 일에서 아합이드러낸 어리석음은 말씀의 빛을 거부하는 죄의 결과가 무엇인지 확연히 보여 준다.II. 유다의 통치자. 그는 유다의 백성을 개혁하고그들을 깨우치려는 여호사밧의 노력을 인정하고 동의하였다(대하17:7-9).
사울의 작은딸. 그녀는 다윗을 사랑하였으나 사울은 마지못해서 다윗을 함정에 빠뜨리려는 의도로 그녀를그에게 내주었다(삼상14:49; 18:20-29). 그녀는 자기 아버지가 보낸 암살자들의 손에서 자기 남편을구하고 그가 탈출할 수 있는 계략을 베풀었다(삼상19:14-15). 그 후에 그녀의 아버지 사울은 그녀를 발디에게 주었으나(삼상25:44) 다윗은 몇 년 뒤에 그녀를 되찾았다(삼하3:12-21). 다윗이 예루살렘으로 하나님의 언약궤를 가져올 때에 그녀는 그가 매우기쁘게 뛰노는 것을 보고 못마땅하게 여겼으며 그결과 왕은 그녀가 죽을 때까지 사랑을 베풀지 않았다(삼하6:16-23). 신앙심 측면에서 자기 눈에 멋지지 못하게 열심을 보인 것을 미워한 그녀의 감정은자기 남편과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보다 더 강했고그 결과 그녀는 화를 자초하여 자식 없이 죽었다.
아이와 기브아근처의 도시. 이곳은 믹마스 북쪽에 있었다(삼상14:2; 사10:28).
재판관 입다의 시절에 있었던 암몬 자손의 마을(삿11:33). 이곳은 헤스본에서 북동쪽으로 6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었으며 두로의 시장에 좋은 밀을 제공하였다(겔27:17).
레스보스라는 섬의 수도 및 항구. 이곳은 소아시아를 향하고 있었으며 바울은 그리스에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 거기 들렀다(행20:14).
아브라함과 그두라의 넷째 아들(창25:2).
미디안의 후손들. 그들은 아라비아에 거하던 유목민으로수가 많고 양과 소와 낙타를 많이 가지고 있었다(사60:6). 미디안 족속이 원래 거하던 곳은 홍해 남단이었으나(행7:29) 후에 그들은 세일 산의 동쪽 사막을따라 북쪽으로도 퍼져 나가 모압 족속의 경계에까지이르렀고 다른 쪽으로는 시내 산에 이르는 지역까지뻗어나갔다(출3:1; 18:1; 민22, 25, 31; 삿6-8). 창25:2-4와 창25:12-18을 비교해 보면 그들은 이스마엘 자손과 구분되지만 다른 곳에서는 이 두 민족이같이 나오면서 하나의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창37:25, 36 비교). 그들의 수도는 미디안이었으며 그곳은 아르 시의 남단에 있던 아르논에 있었다. 미디안 족속들은 우상 숭배자였으므로 종종 이스라엘을부추겨 우상을 숭배하게 하였다. 그들은 히브리 사람들에게 조공을 바치기도 하고 그들을 심히 학대하기도 하였다(민22:1-41; 25:1-18; 31:1-54). 이스라엘 사람들이 씨를 뿌려 수확할 때가 되면 미디안과아말렉 족속들 즉 동쪽의 사막에 거하는 사람들이메뚜기처럼 큰 떼를 이루고 와서 열매를 강탈하고사람들을 죽이곤 하였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믿음도 지도력도 기력도 없어서 산굴로 피신하곤 하였으며 바로 이때에 기드온이 나타나 그들을 구출하였다(삿6:7).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므로 창세 전에 이미 모든 것을 알고 계신다.성경의 모든 예언은 하나님의 ‘미리 아심’에 기반을두고 있지만 예언 자체가 사람의 행위나 사건을 미리 결정짓지 않는다. 사람이 어떻게 할지를 하나님이 미리 아신다는 사실이 사람으로 하여금 반드시그 일을 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하나님은 아담이 타락할 것과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배반할 것도 미리알고 계셨지만, 그들이 무엇을 할지 하나님이 미리아신다는 사실이 그들로 하여금 그들이 했던 일을반드시 하게 강요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스스로 원했기 때문에 그 일들을 했으며 하나님은 그들이 선택한 일들에 대해 그들이 책임을 지게 하셨다. 바로여기에 사람의 자유 의지가 작용한다. 그러므로 지옥에 가는 사람은 복음이 제시되었음에도 불구하고그것을 거부하는 사람이며 이것을 미리 아시는 하나님은 그를 지옥에 가게 정하실 뿐이다. 지옥에서도그는 하나님이 공평하지 못하다고 할 수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은혜를 그가 거부하였기 때문이다.선택, 자유 의지 참조.
모세와 아론의 누이. 그녀는 모세를 궤에 넣어 강에 보낼때에 앞뒤를 살펴보았고(출2:4-5; 민26:59; 미6:4)또 대언자로서 이스라엘의 여인들을 인도하여 그들이 이집트 사람들을 익사시킨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경배하게 하였다(출15:20-21). 그녀는 모세와 그의 이디오피아 아내를 질투하고 불평을 하다가 잠시나병에 걸렸으나(민12:1-16; 신24:9) 용서받고 몸이회복되어 40년 광야 유랑 생활이 끝날 즈음에 가데스에서 죽었다(민20:1).
로마 카톨릭 교회에서 사제가 빵과포도주에 기적을 일으켜서 실제의 그리스도의 살과피로 바꾸고 이를 천주에게 희생 예물로 드리는 예식. 로마 카톨릭 교회는 이에 대해 “거룩한 미사 의식에서 빵과 포도주는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바뀌며우리는 이것을 가리켜 화체설이라고 한다. 왜냐하면성체 성사에서 빵과 포도주의 실체는 그대로 남아있지 않고 빵의 전 실체는 그리스도의 몸으로, 포도주의 전 실체는 그리스도의 피로 바뀌기 때문이다.그러므로 단지 빵과 포도주의 외형만 남게 된다.”라고 주장한다.그들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미사 의식을 통해 빵과포도주에 어떤 변화가 일어났다는 증거는 전혀 없다. 그것들은 동일한 맛과 색과 냄새와 무게와 부피를 가지고 있다. 빵은 여전히 빵처럼 보이며 빵 같은맛을 가지고 있고 빵 같은 촉감도 그대로 가지고 있다. 그러나 로마 카톨릭 교회는 그것이 하나님의 살이라고 생각한다. 포도주 역시 포도주처럼 보이며포도주 같은 맛을 내고 포도주처럼 냄새가 나며 만일 누가 그것을 많이 마시면 포도주를 마신 것처럼취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로마 카톨릭 교회는 그것이 하나님의 피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카톨릭 신자들은 빵 조각이 그리스도가 되었으므로 그것을 바치는 것이 사제가 그리스도를 희생시키는 것이라고 믿고 있다. 트렌트 공회는 로마 카톨릭 교회의 이 같은가르침을 거부하고 달리 믿는 자에게 아나테마 저주를 선포했다.또 로마 카톨릭 주의는 미사 희생이 십자가 희생을 다시 새롭게 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이러한 의식이 수억 번 이상 행해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매번 미사를 드릴 때의 희생 제물이 예수 그리스도이시므로 매번 미사 때마다 자기들이 갈보리에서의 희생과 동일한 희생을 드린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그분 자체 즉 ‘그분의 살과 피, 몸과 혼,인성과 신성’을 십자가의 희생으로 매번 ‘다시 새롭게 하여 바치는 것’은 그분께서 십자가 위에서 “다이루었다.”(요19:30)고 말씀하신 것과 완전히 상치된다.구약시대에 사람들이 반복해서 희생물을 드린 것은 그 중 어떤 것도 완전한 희생물이 될 수 없었기때문이다. 그러나 신약시대에는 그렇지 않으며 히브리서 기자는 이것을 잘 말해 주고 있다. “바로 이뜻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단 한 번 영원히 드려짐을 통해 우리가 거룩히 구별되었노라.제사장마다 날마다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희생물(犧牲物)들을 드리되 그것들은 결코 죄들을 제거하지 못하거니와 오직 이 사람은 죄들로 인해 한 희생물을 영원히 드리신 뒤에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으사그 이후부터 자기 원수들이 자기 발받침이 될 때까지 기다리시느니라. 그분께서는 거룩히 구별된 자들을 단 한 번의 헌물로 영원토록 완전하게 하셨느니라”(히10:10-14).이처럼 명백한 성경 말씀에 비추어 볼 때 매일 같이 반복해서 예수님을 희생물로 드려야 한다는 천주교 교리는 이단 교리로서(히9:25-28) 하나님의 아들을 새로이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그분을 모욕하는 것이다(히6:6).
다니엘과 함께 바빌론에 끌려간 사람. 아벳느고 참조.
함의 아들. 그는 여러 아프리카 민족의 조상이며(창10:6) 특히 이집트 사람들의 조상이다. 실제로 성경은 이집트를히브리말로 미스라임이라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