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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라성경사전
물은 종종 눈물을 뜻하며(렘9:1) 그래서 고난(시66:12), 재난(애3:54; 시69:1; 124:4-5),핍박(시88:17), 적군(사8:7; 17:13) 등을 상징한다.또 물은 자식이나 후손(민24:7), 구름(시104:3), 성령님의 새롭게 하는 능력(사12:3; 55:1; 요7:37-38)을 뜻하고 물을 쏟아 붓는 것은 하나님의 진노와(호5:10) 두려움으로 인해 실신하는 것(시22:14)을 뜻한다. 깊은 물은 마음속의 권고나 조언(잠20:5), 지혜로운 자의 말(잠18:4)을 뜻한다. 땅에 쏟은 물은죽음의 상징이고(삼하14:14) 물의 불안정성은 흔들리는 성격을 뜻한다(창49:4). 사람이 물로 난다는 것은 모태에서 물속에 있다가 태어날 때 물과 함께 나오는 자연적인 출생을 뜻한다(요3:5-6). 우물과 샘참조.물을 퍼 올리는 작업
팔레스타인에는 도시나 시골에 물 저장고가 많았다. 여기에서는 1년 중 반은비가 오지 않았고 그래서 마르지 않는 강이나 샘이거의 없었으므로 우기의 비를 물 저장고에 담아 두는 일은 매우 중요했다. 이런 물 저장고들은 물탱크혹은 연못 등으로 불렸으며 관개용수가 필요한 밭에또 여행자를 위해 큰길의 여러 곳에 만들어졌다(시84:6). 그래서 큰 도시들은 돌로 큰 저수지를 만들어겨울의 비를 모아 두었다. 베데스다, 실로암 참조.
히브리 사람들은 물고기의 이름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아서 이름이 많지 않다. 모세는 강이나 호수나 바다의 물고기 중 비늘과 지느러미가 있는 것은 먹어도 되고 다른 것은 가증하다고말했다(레11:9-12; 신14:9-10). 나일 강에는 좋은 물고기가 많았으며(출7:18-21; 민11:5) 디베랴 바다에도 역시 물고기가 많았다(눅5:5; 요21:6-11). 유대인들은 물고기를 흔하게 먹었고(마7:10) 지중해와 요르단 강에서 물고기를 얻기도 하였다(느13:16). 그들은 낚시나 창이나 그물로 고기를 잡았다(욥41:7; 사19:8-10; 암4:2).원래 영어의 fish는 ‘물에 사는 생물’을 뜻했으며따라서 요나를 삼킨 고래 역시 이런 차원에서 큰 물고기였다(욘1:17). 성경에는 어부들도 자주 나오며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 상당수가 어부였고 그리스도께서는 친히 그들을 사람들을 낚는 어부로 만드셨다(마4:18-22).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박해를 당할 때믿음 고백의 표시로 메달이나 무덤 등에 물고기를새겼다. 왜냐하면 물고기에 해당하는 그리스어의 다섯 글자가 ‘하나님의 아들,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의미하는 다섯 단어의 첫 글자들과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물고기 상징은 이제 어느 정도 미신적인요소를 띠게 되었다.
이집트 탈출 뒤에 히브리 여인들이 내놓은 놋 거울을 주조하여 만든 원형의 큰 그릇. 이것은 성막의 문과 태우는 헌물을 드리는 제단사이에 있었으며 여기에 물을 담아서 제사장들이 몸을 씻을 수 있게 하였다(출30:18-21; 38:8; 40:7). 솔로몬 성전에서는 제사장들이 사용한 큰 물두멍 외에도 희생물을 씻기 위해 열 개의 물두멍이 마련되었다(대하4:6). 각각의 물두멍은 약 1,000리터 정도의물을 담을 수 있었고 아름다운 지지대 위에 놓였다(왕상7:27-39). 이것들은 성전 앞에 있는 제사장들의 뜰 안에 양쪽에 각각 다섯 개씩 놓였다(왕상7:39). 성전 참조.
므낫세 지파에게 속하고 잇사갈 지파의 경계에까지 이른 마을. 이곳은 예전에 가나안 족속들의 귀중한 도시였으며 그들은 오랫동안 여기를 점령하였다(수12:21; 17:11; 삿1:27). 이곳은 기손 근처 평야의 남서부 경계에 있었으며 그래서 드보라와 바락의 노래에서는 승리의 장소로 므깃도의 물가가 나온다(삿5:19, 21). 솔로몬의 통치 때에 이곳은 강화되었으며(왕상9:15) 바로 여기에서 아하시야가 죽었고 요시야 왕도 전쟁에서 패하여 죽임을 당하고 백성으로부터 큰 애도를 받았다(왕하9:27; 23:29; 슥12:11). 이곳은 므깃돈으로도 불린다(슥12:11).
신약성경에서 이것은 100드라크마와 같았다(눅19:13, 16).
키프러스 사람. 그는바울과 함께 예루살렘에 머물렀고 ‘오래된 제자’로불렸다(행21:16).
이스라엘의열여섯 번째 왕. 그는 전에 사가랴 왕의 군대 장관이었으나 디르사에 있을 때 살룸이 왕을 죽이고 사마리아로 몸을 숨겼다는 소식을 접하고 그를 대적하기위해 즉시 돌아와 그를 붙잡아 죽이고 왕위를 차지하였다. 그는 사마리아에서 10년 동안 통치하면서폭정을 행하고 우상을 숭배하였다. 그때에 아시리아의 왕 불이 이스라엘을 침공하자 그는 조공을 바치기로 하고 부유한 사람에게서 각각 오십 세겔을 취하여 1,000달란트를 바쳤다. 그는 정상적으로 죽었으며 그의 뒤를 이어 왕이 된 그의 아들 브가히야는2년 동안 통치하였다(왕하15:13-22).
I. 요셉의 장자. 그는 이집트에서 태어났으며 그의 후손들은 하나의 완전한 지파를 형성하고 후에 가나안 땅에서 둘로 나뉘었다. 그래서 일부는 바산 지방 즉 요르단 동쪽(북쪽)에 거하였고 다른일부는 에브라임과 잇사갈 사이에서 요르단에서 지중해에 이르는 지역에 거하였다. 이스라엘의 열두지파와 므낫세 지파 지도 참조(19, 23). 므낫세는 야곱의 예언에 따라 재물과 권세에서 에브라임보다 훨씬 못하였다(창41:50-51; 48:1-22; 수16, 17). 지파참조.II. 유다 왕 히스기야의 아들. 그는 12세에 왕이되어 55년 동안 치리하였다. 그의 우상숭배와 폭정과 잔인함으로 인하여 하나님은 그의 통치 제22년에 그가 바빌론에 죄수로 끌려가게 하셨다. 여기서그는 자신을 낮추었고 이에 하나님은 아시리아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서 그를 돌려보내 그가 다시 왕권을 유지하게 하셨고 그때부터 그는 자기가 행한악을 되돌리기 시작하였다. 그는 자기가 숭배하던우상들과 자기가 조언을 받던 점치는 자들을 제거하고 자기 왕국의 영적/물질적 번영을 위하여 많은 것을 개혁했다. 또한 그는 예루살렘 방어벽을 보수하고 유다의 견고한 도시들을 강화시켰다. 그는 유다의 왕 중에서 가장 오랫동안 통치하다가 평안히 죽어 예루살렘에 묻혔다(왕하21; 대하33).III. 단 지파의 제사장이 된 요나단의 할아버지(삿18:30). 요나단 참조.
아브라함과 그두라의아들(창25:2). 그는 자기 형제 미디안과 함께 아라비아에 정착한 것으로 보인다.
에녹의 아들. 그는 라멕의 아버지였으며 969세를 살아 성경에 기록된 인물 중 가장 오래 살았고홍수가 생기기 바로 전에 죽었다(창5:21-22, 27). 노아의 대홍수 이전에는 궁창 위의 물 층이 있어서 해로운 자외선을 차단하였으며 그 결과 사람의 수명이길고 또 짐승이나 사람의 크기도 컸다. 또한 온 세상이 온화해서 심지어 극지방도 열대성 기후를 나타내서 심지어 매머드 같은 짐승도 극지방에 살았다. 그러나 홍수 이후에 사람의 수명은 점차 줄어들기 시작하여 노아는 950세, 살라는 433세, 벨렉은 239세,아브라함은 175세, 모세는 120세, 다윗은 70세를살았고 그 이후로 평균 수명이 70-80세가 되었다(시90:10). 그리스도가 통치하는 천년왕국 때에는 다시수명이 증가하여 100세에 죽은 사람을 아이라고 부르는 일이 발생한다(사65:20). 천년왕국 참조.
가나안에서 태어난 레위의 세 아들 중 막내. 그는 레위 사람들 가족의 우두머리가 되었다(창46:11; 출6:16; 민3:17;대상6:1). 광야에서 생활할 때 므라리 가족은 성막의구조물을 맡아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지고 가서세우는 일을 했으며(민4:29-33; 7:8) 가나안 정복 이후에 그들에게는 요르단 너머에 열두 도시가 배정되었다(수21:7, 34-40).
고대 바빌론 사람들의 우상. 이것은 화성의 신으로 추정된다(렘50:2).바빌론 왕들의 이름에도 이 말이 첨가되어 에빌므로닥, 므로닥발라단 등의 이름이 생겼는데(왕하25:27;사39:1) 후자는 브로닥발라단이라고도 불린다(왕하20:12).
. I. 홍해와 시내 산 사이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진을 친 곳. 여기서 그들은 주님을 향해 불평하였는데 이때에 주님께서 그들을 위해 바위에서 샘이 나오게 하였다(출17:1-7). 이곳은 시험이라는 뜻을 가진 맛사라고도불렸는데 그 까닭은 그들이 거기서 하나님을 시험하였기 때문이다(신33:8; 히3:8).II. 가데스 근처의 신 광야에 있던 또 다른 기적의샘(민20:13-14). 이곳은 모세와 아론이 죄를 범한 곳이며 이 죄로 인하여 그들은 요르단을 건너 가나안땅에 들어가지 못하였다. 이곳은 므리바의 물이라불리기도 하며(신33:8; 시81:7; 106:32) 므리바가데스라 불리기도 한다(민27:14; 신32:51; 겔47:19).
요나단의 아들. 그는 므립바알이라고도 불렸다(대상8:34). 므비보셋은 그의 아버지가 길보아전투에서 죽을 때에 아주 어렸으며(삼하4:4) 이 놀라운 소식을 들은 그의 유모는 아이를 데리고 급히 떠나다가 아이를 떨어뜨려 그는 평생 동안 자리를 절었다. 다윗은 평화롭게 왕국을 다스릴 때에 자기와요나단 사이의 우정을 생각하고 사울의 집에서 남은자들을 찾아 친절을 베풀고자 하였다. 그래서 그는므비보셋에게 그의 할아버지 사울의 재산을 주었으나 후에 그는 그의 종 시바의 속임수로 인해 그 중일부를 잃게 되었다. 그는 압살롬의 반역 때에 다윗을 생각하며 충성스럽게 지냈으나 시바의 모함과 다윗의 성급한 결정으로 인해 재산의 일부를 잃게 되었다(삼하9:1-13; 16:1-4; 19:24-30). 그 뒤 다윗은기브온 사람들의 원수를 갚아 주기 위해 사울 집에속한 사람들을 내어줄 때에 그를 불쌍히 여겨 살려주었고(삼하21:1-14) 이로 인해 사울의 또 다른 아들인 므비보셋이 죽게 되었다(삼하21:8).
I. 유다의 서쪽에 있던 모레사 출신의 대언자. 그는열두 명의 소 대언자 중 일곱 번째 인물이며 유다왕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에 50년 동안 대언하였다. 그는 대언자 이사야와 동시대 사람이었으며 그래서 그의 표현과 비슷한 표현이 그의 글에서도 발견된다(사2:2와 미4:1, 사41:15와 미4:13 등 비교). 그가 담대하게 주님을 섬긴 것은 그로부터 1세기 후에 나타난 대언자 예레미야의 방패가 되었다(렘26:18-19; 미3:12). 그는 고상하게 또 격렬하게글을 기록하였으며 그의 글에는 여러 번의 장면 전환도 나온다. 그의 대언은 이스라엘과 유다의 죄악과 심판,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의 멸망, 유대인들이포로 생활에서 귀환하는 것, 그들의 원수들이 심판받는 것 등과 관련이 있다. 그는 메시아의 오심에대하여 “그의 나아감은 옛적부터 있었으며 영원부터있었다.”고 말하면서 그분의 오심이야말로 그가 묘사하는 영광스런 장래의 모든 소망의 기초임을 보여주었다. 그는 또한 예수님이 유다의 베들레헴에서한 여인의 아들로 태어날 것을 정확히 대언하였고(미5:2-3) 유대인들은 그것이 메시아 출생에 관한 것으로 이해했다(마2:6; 요7:41-42).II. 재판관 시대에 살던 에브라임 사람. 그는 여호수아가 죽은 이후의 재판관 시대에 자기 어머니에게서 1,100세겔을 훔쳤다가 그것을 되돌려 주었으며자기 어머니의 동의를 받아 그 돈으로 개인의 성스러운 장소를 만들고 주님을 경배하기 위하여 형상을세우며 또 복을 받기 위해 레위 사람을 자신의 제사장으로 고용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우상숭배를 멸시하시고 단 족속의 군대를 보내어 그의 제사장 요나단과 그의 우상숭배 기물을 강탈하게 하였다(삿17:13).
여호야김의 궁전에 있었던 젊은 통치자. 그는 왕의 조언자들에게예레미야의 엄중한 경고를 전달하였다(렘36:11-13).
I. 아합이 여호사밧과 함께 시리아 사람들을 치려 할 때에 여호사밧의 요구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자문을 구한대언자. 그는 충성스럽게 그리고 두려움 없이 아합에게 대언하였고 그 결과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후에 그는 감옥에서 나왔고 아합은 그의 예언대로 싸움터에서 죽었다(왕상22:8-38). 이 일에서 아합이드러낸 어리석음은 말씀의 빛을 거부하는 죄의 결과가 무엇인지 확연히 보여 준다.II. 유다의 통치자. 그는 유다의 백성을 개혁하고그들을 깨우치려는 여호사밧의 노력을 인정하고 동의하였다(대하17:7-9).
사울의 작은딸. 그녀는 다윗을 사랑하였으나 사울은 마지못해서 다윗을 함정에 빠뜨리려는 의도로 그녀를그에게 내주었다(삼상14:49; 18:20-29). 그녀는 자기 아버지가 보낸 암살자들의 손에서 자기 남편을구하고 그가 탈출할 수 있는 계략을 베풀었다(삼상19:14-15). 그 후에 그녀의 아버지 사울은 그녀를 발디에게 주었으나(삼상25:44) 다윗은 몇 년 뒤에 그녀를 되찾았다(삼하3:12-21). 다윗이 예루살렘으로 하나님의 언약궤를 가져올 때에 그녀는 그가 매우기쁘게 뛰노는 것을 보고 못마땅하게 여겼으며 그결과 왕은 그녀가 죽을 때까지 사랑을 베풀지 않았다(삼하6:16-23). 신앙심 측면에서 자기 눈에 멋지지 못하게 열심을 보인 것을 미워한 그녀의 감정은자기 남편과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보다 더 강했고그 결과 그녀는 화를 자초하여 자식 없이 죽었다.
아이와 기브아근처의 도시. 이곳은 믹마스 북쪽에 있었다(삼상14:2; 사10:28).
재판관 입다의 시절에 있었던 암몬 자손의 마을(삿11:33). 이곳은 헤스본에서 북동쪽으로 6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었으며 두로의 시장에 좋은 밀을 제공하였다(겔27:17).
레스보스라는 섬의 수도 및 항구. 이곳은 소아시아를 향하고 있었으며 바울은 그리스에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 거기 들렀다(행20:14).
아브라함과 그두라의 넷째 아들(창25:2).
미디안의 후손들. 그들은 아라비아에 거하던 유목민으로수가 많고 양과 소와 낙타를 많이 가지고 있었다(사60:6). 미디안 족속이 원래 거하던 곳은 홍해 남단이었으나(행7:29) 후에 그들은 세일 산의 동쪽 사막을따라 북쪽으로도 퍼져 나가 모압 족속의 경계에까지이르렀고 다른 쪽으로는 시내 산에 이르는 지역까지뻗어나갔다(출3:1; 18:1; 민22, 25, 31; 삿6-8). 창25:2-4와 창25:12-18을 비교해 보면 그들은 이스마엘 자손과 구분되지만 다른 곳에서는 이 두 민족이같이 나오면서 하나의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창37:25, 36 비교). 그들의 수도는 미디안이었으며 그곳은 아르 시의 남단에 있던 아르논에 있었다. 미디안 족속들은 우상 숭배자였으므로 종종 이스라엘을부추겨 우상을 숭배하게 하였다. 그들은 히브리 사람들에게 조공을 바치기도 하고 그들을 심히 학대하기도 하였다(민22:1-41; 25:1-18; 31:1-54). 이스라엘 사람들이 씨를 뿌려 수확할 때가 되면 미디안과아말렉 족속들 즉 동쪽의 사막에 거하는 사람들이메뚜기처럼 큰 떼를 이루고 와서 열매를 강탈하고사람들을 죽이곤 하였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믿음도 지도력도 기력도 없어서 산굴로 피신하곤 하였으며 바로 이때에 기드온이 나타나 그들을 구출하였다(삿6:7).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므로 창세 전에 이미 모든 것을 알고 계신다.성경의 모든 예언은 하나님의 ‘미리 아심’에 기반을두고 있지만 예언 자체가 사람의 행위나 사건을 미리 결정짓지 않는다. 사람이 어떻게 할지를 하나님이 미리 아신다는 사실이 사람으로 하여금 반드시그 일을 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하나님은 아담이 타락할 것과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배반할 것도 미리알고 계셨지만, 그들이 무엇을 할지 하나님이 미리아신다는 사실이 그들로 하여금 그들이 했던 일을반드시 하게 강요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스스로 원했기 때문에 그 일들을 했으며 하나님은 그들이 선택한 일들에 대해 그들이 책임을 지게 하셨다. 바로여기에 사람의 자유 의지가 작용한다. 그러므로 지옥에 가는 사람은 복음이 제시되었음에도 불구하고그것을 거부하는 사람이며 이것을 미리 아시는 하나님은 그를 지옥에 가게 정하실 뿐이다. 지옥에서도그는 하나님이 공평하지 못하다고 할 수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은혜를 그가 거부하였기 때문이다.선택, 자유 의지 참조.
모세와 아론의 누이. 그녀는 모세를 궤에 넣어 강에 보낼때에 앞뒤를 살펴보았고(출2:4-5; 민26:59; 미6:4)또 대언자로서 이스라엘의 여인들을 인도하여 그들이 이집트 사람들을 익사시킨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경배하게 하였다(출15:20-21). 그녀는 모세와 그의 이디오피아 아내를 질투하고 불평을 하다가 잠시나병에 걸렸으나(민12:1-16; 신24:9) 용서받고 몸이회복되어 40년 광야 유랑 생활이 끝날 즈음에 가데스에서 죽었다(민20:1).
로마 카톨릭 교회에서 사제가 빵과포도주에 기적을 일으켜서 실제의 그리스도의 살과피로 바꾸고 이를 천주에게 희생 예물로 드리는 예식. 로마 카톨릭 교회는 이에 대해 “거룩한 미사 의식에서 빵과 포도주는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바뀌며우리는 이것을 가리켜 화체설이라고 한다. 왜냐하면성체 성사에서 빵과 포도주의 실체는 그대로 남아있지 않고 빵의 전 실체는 그리스도의 몸으로, 포도주의 전 실체는 그리스도의 피로 바뀌기 때문이다.그러므로 단지 빵과 포도주의 외형만 남게 된다.”라고 주장한다.그들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미사 의식을 통해 빵과포도주에 어떤 변화가 일어났다는 증거는 전혀 없다. 그것들은 동일한 맛과 색과 냄새와 무게와 부피를 가지고 있다. 빵은 여전히 빵처럼 보이며 빵 같은맛을 가지고 있고 빵 같은 촉감도 그대로 가지고 있다. 그러나 로마 카톨릭 교회는 그것이 하나님의 살이라고 생각한다. 포도주 역시 포도주처럼 보이며포도주 같은 맛을 내고 포도주처럼 냄새가 나며 만일 누가 그것을 많이 마시면 포도주를 마신 것처럼취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로마 카톨릭 교회는 그것이 하나님의 피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카톨릭 신자들은 빵 조각이 그리스도가 되었으므로 그것을 바치는 것이 사제가 그리스도를 희생시키는 것이라고 믿고 있다. 트렌트 공회는 로마 카톨릭 교회의 이 같은가르침을 거부하고 달리 믿는 자에게 아나테마 저주를 선포했다.또 로마 카톨릭 주의는 미사 희생이 십자가 희생을 다시 새롭게 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이러한 의식이 수억 번 이상 행해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매번 미사를 드릴 때의 희생 제물이 예수 그리스도이시므로 매번 미사 때마다 자기들이 갈보리에서의 희생과 동일한 희생을 드린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그분 자체 즉 ‘그분의 살과 피, 몸과 혼,인성과 신성’을 십자가의 희생으로 매번 ‘다시 새롭게 하여 바치는 것’은 그분께서 십자가 위에서 “다이루었다.”(요19:30)고 말씀하신 것과 완전히 상치된다.구약시대에 사람들이 반복해서 희생물을 드린 것은 그 중 어떤 것도 완전한 희생물이 될 수 없었기때문이다. 그러나 신약시대에는 그렇지 않으며 히브리서 기자는 이것을 잘 말해 주고 있다. “바로 이뜻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단 한 번 영원히 드려짐을 통해 우리가 거룩히 구별되었노라.제사장마다 날마다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희생물(犧牲物)들을 드리되 그것들은 결코 죄들을 제거하지 못하거니와 오직 이 사람은 죄들로 인해 한 희생물을 영원히 드리신 뒤에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으사그 이후부터 자기 원수들이 자기 발받침이 될 때까지 기다리시느니라. 그분께서는 거룩히 구별된 자들을 단 한 번의 헌물로 영원토록 완전하게 하셨느니라”(히10:10-14).이처럼 명백한 성경 말씀에 비추어 볼 때 매일 같이 반복해서 예수님을 희생물로 드려야 한다는 천주교 교리는 이단 교리로서(히9:25-28) 하나님의 아들을 새로이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그분을 모욕하는 것이다(히6:6).
다니엘과 함께 바빌론에 끌려간 사람. 아벳느고 참조.
함의 아들. 그는 여러 아프리카 민족의 조상이며(창10:6) 특히 이집트 사람들의 조상이다. 실제로 성경은 이집트를히브리말로 미스라임이라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