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할
ejxousiva
선택의 자유, 권리, 통치력, 권력자.||#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엑수시아(Soph., Thu. 이래)는 엑세스티($1832: 그것은 가능한 일이다, 용인이나 허용되어 왔다)에서 유래한 단어이다.||(a) 이 단어는 기본적으로 어떤 행동을 행할 수 있는 '능력' ability을 의미한다.||(b) 그 다음 이 단어는 보다 높은 사법기관이 허락한 '권리' right, '권세' authority, '승인' permission.|① 정부가 허용해 준 가능성.|② 여러 가지 사회 관계에서의 권리를 의미한다.||(c) 엑수시아는 어떤 잠재적 힘이 타고난 육체적, 정신적, 혹은 자연적인 힘들에 의거하며, 무의식적 행동들, 강한 행위들 그리고 자연 현상들 안에서 드러나는 뒤나미스라는 말과는 대조적으로, 법률, 정치, 사회, 혹은 도덕적 사건들의 영역 안에서 발휘될 수 있는 힘을 의미한다(Plato, Definitiones 415b). 예를 들면 이 말은 늘 특별한 지위나 명령과 함께 사용되므로, 그 말은 마음대로 처분하는 왕권이나 부권 혹은 소작권(P. Qxy. 11, 273)이나, 관리들 혹은 사자들의 권한을 의미한다(Diod. Sic. 13, 36, 2; 14, 81, 6). 그 외에도 그 말은 사람들이 어떤 일을 받아들이거나 행하는데 필요한 도덕적 자유를 의미한다(Plato, Definitiones 412d). 따라서 그 말은 사람에게만 적용될 뿐이지, 자연적인 힘이라는 의미로는 사용될 수 없다.||(d) 또한 이 단어는 율법에 맞서는 주제넘은 자유나 변덕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 경우 그 문맥은 대개 법적인 명령이다.||(e) 이 단어는 파생된 의미들로 '권력있는 지위', 복수로 '집권자들이나 권력자들, 공무원, 찬미의 말, 군중' crowd, 그리고 '화려한 것' pomp을 뜻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엑수시아는 70인역본에서 약 80회 나오며, 메스샬라, 살레탄 등의 역어로 사용되었다.|엑수시아는 70인역본에서 법적인 의미에서 '권리, 권력'을 나타내며, 율법에서 하나님에 대해서도 사용되었다. 다니엘과 마카베오서에서 이 단어는 왕이나 하나님의 힘을 가리킨다. 70인역본은 하나님의 능력에 대해 엑수시아를 사용함으로써, 이 용어를 하나님의 무제한적인 주권의 개념과 바로 하나님의 말씀 자체가 능력인 하나님의 개념을 우수하게 표현해주는 용어로 소개하고 있다(참조: 단 4:14).||#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엑수시아는 신약성경에서 108회 나오며, 요한계시록, 누가복음, 고린도전서에서 자주 사용되었다.|엑수시아는 세속적인 의미에서는 '명령권' the power to give orders(마 8:9, 병행구 눅 7:8; 눅 19:17; 눅 20:20)을, 그리고 실제적인 의미에서는 '재판권' jurisdiction(눅 23:7)을, 그리고 복수로서는 '공직자' officials, '당국자' authorities(눅 12:11; 딛 3:1)를 의미한다. 롬 13:3의 "관원들(아르콘테스[archontes])"와 마찬가지로 1절의 "위에 있는 권세들(엑수시아이스 히페레쿠사이스)"은 (누군가 언급한 것처럼) 천사의 권세들이라는 의미로 이해되어서는 안되며 오히려 국가의 공직자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 외의 것은 블랙의 저술(M. Black)을 참조하라.|신약성경 기자들이 엑수시아와 뒤나미스($1411)를 모두 그리스도의 사역, 우주적인 힘의 구조에 따르는 새로운 질서, 그리고 신자들에게 부여된 권능이라는 의미로 사용한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눅 9:1에는 두 단어들이 함께 기록되어 있다. 엑수시아는 성령의 은사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반면에 예수님의 뒤나미스($1411)는 기름부음 받은 그의 본질에 기초하고 있으며 그의 엑수시아는 파송받은 그의 본질에 기초하는 것이다. (1) 하나님 자신에게; (2) 마지막 날의 위임자에게; (3) 종말론적인 삶을 사는 기독교인에게 속해있는 능력, 권세 그리고 행동의 자유가 바로 엑수시아이다.||(a) 하나님의 엑수시아.|① 하나님의 종말론적 권위는 세계사의 지배자이자 세계의 심판자로서의 그의 역할과 결부되어 있다. 그는 자신의 권위로 마지막 날과 때를 결정하며, 역사의 종말을 자신의 지배하에 두고 계신다: "가라사대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바 아니요"(행 1:7). 하나님은 인간들을 영원한 파멸로 이끌 권능을 가지고 계신다: "마땅히 두려워할 자를 내가 너희에게 보이리니 곧 죽인 후에 또한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 있는 그를 두려워하라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를 두려워하라"(눅 12:5). 우리는 하나님께서 절대적으로 자유한 분이심을 그의 예정 속에서 실존적으로 인식할 수 있다. 즉 바울은 하나님을 흙을 가지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만들 수 있는 토기장이에 비유한다(롬 9:1; 참조: 사 29:16; 사 45:9; 렘 18:6; 지혜서 15:7; 집회서 36[33]:12이하).|② 하나님은 종말론적 권세를 위임하실 수 있다. 예를 들어 천사들에게는 심판날에 처벌할 권세가 위임될 수 있고(계 6:8); 다른 피조물들도 하나님의 권세를 위임받을 수 있다(계 9:3, 계 9:10, 계 9:19). 이와는 대조적으로, 천상의 권세(엑수시아이)들은 이러한 종말론적 사건에서 거의 고려되지 않고 있다. 일반적으로 천상의 권능들이란 말은 아르카이라는 말과 함께 언급되었고, 그 말은 뒤나메이스라는 말과 유사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엡 1:21; 엡 3:10; 골 1:16; 골 2:10). 그리스도의 높아 지심은 그 권세들이 그에게 복종함을 의미한다(엡 1:21; 벧전 3:22). 그러나 아직 적대 세력이 완전히 파괴되지 않았다. 즉 이 말은 메시야의 통치가 당분간 계속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그 후에는 나중이니 저가 모든 정사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고전 15:24).쿰란 문서들에도 기록되어 있는 바와 같이 자연인은 흑암의 권세와 악마의 주권하에 있다(골 1:13; 참조: 행 16:18). 그 반대편에 빛의 영역과 성자의 왕국과 하나님 자신이 있다. 하나님과 마찬가지로 악마도 다른 사람들, 예를 들어 적그리스도에게 세상의 통치권을 위임할 수 있다(계 13:2, 계 13:4, 계 13:12). 심지어 악마는 세상 지배권을 주겠다는 말로 예수님을 유혹하였다: "가로되 이 모든 권세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준 것이므로 나의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눅 4:6). 그러나 이것을 이원론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악마의 권세도 하나님에 의해 부여된 것이며 그의 활동은 하나님의 섭리에 따른 것이며, 따라서 그의 활동 범위는 제한된다: "내가 날마다 너희와 함께 성전에 있을 때에 내게 손을 대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나 이제는 너희 때요 어두움의 권세로다 하시더라"(눅 22:53). 악마의 권세에 관한 언급은 세상에 관한 비관적인 견해에서 부여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구속 사업에 대한 기쁜 소식에서 부여된 것이다. 악마를 "이 세상의 임금"이라고 부른 바로 그 대목에서 예수님은 악마의 파멸을 선언하신다.||(b) 예수님의 엑수시아.|① 지상에서의 예수님의 사역은 악마와 귀신들이 그들이 권세를 박탈 당했다는 것을 선언한다.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그 분은 악마의 활동을 파괴하고 악마의 지배로부터 인간들을 구해낼 권세를 갖고 계신다. 따라서 귀신 축출은 예수님의 권능에 의거한 것이며(눅 4:36), 예수님의 파송을 받은 제자들도 그 권능을 행사할 수 있다(마 10:1, 병행구 막 3:15; 눅 9:1; 막 6:7; 눅 10:19). 예수님께서 치유의 기적으로 말미암아 인간의 죄를 사해주시고, 자신의 말씀에 권능이 있음을 확증하셨을 때에, 그는 하나님의 권위에 따라 행하신 것이다(마 9:2-8, 병행구 막 2:3-12; 눅 5:18-26; 참조: 시 103:3). 예수님은 자신의 종말론적 사명, 즉 하나님의 자녀들을 구원하려는 목적 때문에 결국 → 바리새인들 Pharisees이 이해한 것으로서의 → 율법 Law과 충돌하게 되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구원 의지를 주장하였던 랍비 할라카(Halachah)의 주장에 의거하여 율법의 축자적인 이해를 거부하였다(참조: 마 12:10, 마 12:12; 막 3:4; 눅 14;3; 요 5:10). 예수님의 권위는 뭇 사람들을 놀라게 했던 이 가르침에서 드러날 수 있었다(막 1:22, 막 1:27; 마 7:29; 눅 4:32). 왜냐하면 그의 가르침은 서기관들의 가르침과 달랐기 때문이다. 서기관들의 가르침은 그들의 전통에 따른 것이었는데 반해(마 7:29), 예수님, 즉 기름 부음을 받으신 분은 모세나 예언자들처럼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말씀으로 가르치셨을 뿐만 아니라 유일하게 → 아버지 Father를 아시고 그분을 드러내실 수 있는 아들의 유일한 권위를 가지고 말씀하셨다(마 28:18; 참조: 마 11:27; 눅 10:22; 요 3:35; 요 13:3; 요 10:15; 요 17:25). 성전 정화에도(참조: 마 21:12이하; 막 11:11-17; 눅 19:45이하; 요 2:13-17; 출 30:13; 레 1:14; 사 56:7; 렘 7:11) 메시야적 권위에 대한 의식이 전제되어 있다.|②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의 절대적인 권위는 예수님께서 아들이시며 보내심을 받은 자라는 사실에 근거하고 있다: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자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요 17:2). 그는 마지막 날의 심판권도 부여받았다: "또 인자됨을 인하여 심판하는 권세를 주셨느니라"(요 5:27). 그러나 공관복음에서과 마찬가지로 요한의 기록에서 예수님은 인간들을 심판하고자 하는 분이라기보다는 그들을 구원하고자 하는 분으로 묘사된다. 그의 능력은 강제적인 지배에 있지 않고 세상을 위해 종이 되신 절대적인 자유에 있다. 예수님은 목숨을 버릴 엑수시아도 갖고 계시며 그것을 다시 취할 권세도 갖고 계신다(요 10:18). 그를 영접하고 그의 이름을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엑수시아를 부여받았다(요 1:12).|③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의 권위의 표상은 부활 사건을 예시하고 있다. 왜냐하면 부활절 이후 들어 올리우심으로써 예수님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부여 받았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마 28:18). 예수님은 인자가 나라의 보좌에 오를 것이며 그에게 권능이 부여되리라는 다니엘의 환상을 성취하셨다(참조: 단 7:14). 그러나 지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성도들"과 함께 계신다. 게다가 하나님의 권능은 강압적으로 국가들을 정복함으로써 실현되는 것이 아니라 → 복음 Gospel 전파로, 즉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으로 세상을 정복함으로써 실현된다. 외견상 지상에서의 메시야 통치로 여겨지는 것은 교회이지, → 이스라엘 Israel의 주권적인 통치가 아니다(행 1:6-8). 왜냐하면 십자가와 그리스도의 높이 올리우심은 악한 자의 멸망과 심판과 시대의 전환점에 대한 전조가 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좋은 소식으로써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선포되어야 한다. 따라서 승귀하신 주님은 사자들을 파송하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파할 권세를 부여하신다(마 28:18-20). 지상에서 행해진 예수님의 사역과 비슷한 임무를 띠고 있으며, 부활절 메시지의 취지에 따라 활약하는 그리스도의 사도들은 성령을 수여할 권세를 부여 받았는데(행 8:19; 행 2:38; 행 19:6; 행 10:44-48), 그 권세는 인간을 파하는 권세가 아니라 오히려 세우는 권세이다(고후 10:8; 고후 13:10). 사도는 교회에서 종으로서의 영적인 사역을 행하기 때문에 교회로부터 육신의 양식을 구할 권리가 있다(고전 9:4-6; 살후 3:9). 이 성구들에서 엑수시아는 '권리'나 '특권'을 의미한다.|(참조: O. Betz; W. Foerster; Walter Bauer; J. H. Thay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