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해설 138 페이지 > 기독정보닷컴

눌리는 일
ejpisuvstasi"
함께 모임 gathering together.||#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에피쉬스타시스는 에피($1909)와 에피쉬니스타마이(%575: 모이다, 작당하다)에서 유래했으며, '함께 모임, ~에 대항하여 연합함'을 의미한다. 따라서 '적대적 단결이나 모임'(Sext., Emp., Eth. 등)을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에피쉬스타시스는 70인역본에서 3회 나오며, 민 17:5에서 에다(회중, 무리)의 역어로 '적대적인 무리나 회중'을 나타내며, 민 26:9에서 나차(5327: 싸우다)의 역어로 '반대하여 싸우는 것, 즉 패역하는 것'을 나타낸다.||#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에피쉬스타시스는 신약성경에서 2회 TR(스테펜)에 나온다.||(a) 행 24:12에서 '사람들의 적대적 모임'을 나타낸다: "저희는 내가 성전에서 아무와 변론하는 것이나 회당과 또는 성중에서 무리를 소동케 하는 것을 보지 못하였으니".||(b) 고후 11:28에서 '함께 모임'이 무엇인지 추측해야 한다: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오히려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교회에 대한 어떤 적대적인 연합 세력을 연상시킨다. 분명히 그를 반대하고 기독교 공동체를 대적하는 세력은 그의 염려의 원인이 된다. 한편 NEB에서와 같이 '그를 압박하는 책임'을 말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위태한
ejpisfalhv"
불안전한, 위험한.||#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형용사 에피스팔레스(Hippocr., Pla. 이래; Diod., POxy.)는 에피($1909)와 스팔로(%576: 떨어지게 하다 to cause to fall)에서 유래했으며, '떨어지기 쉬운, 불안전한, 위험한'을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형용사 에피스팔레스는 신약성경에서 행 27:9에 한번 나온다: "여러 날이 걸려 금식하는 절기가 이미 지났으므로 행선하기가 위태한지라 바울이 저희를 권하여".|여기서 에피스팔레스는 위험한, 즉 안전하지 못한 것을 의미한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더욱 굳세게(~)
ejpiscuvw
더욱 강해지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에피스퀴오(X. 이래)는 에피($1909)와 이스퀴오($2480: 강하다, 능력이 있다)에서 유래했으며,||(a) '더 강하게 하다, 강화하다'(X.),|(b) '더 큰 힘을 받다, 더 강해지다'(Theophr., Diod.).||#2. 70인역본의 용법.||동사 에피스퀴오는 70인역본 외경에 2회 나온다. 이 단어는 집회서 29:1에서 이웃의 손을 '강하게 하는' 자에 대하여, 마카베오일서 6:6에서 유대인들이 '강력하게 된' 것에 대하여 사용되었다.||#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에피스퀴오는 신약성경에서 눅 23:5에 한번 '더욱 강하게' 말한 것을 나타낸다: "무리가 더욱 굳세게 말하되 저가 온 유대에서 가르치고 갈릴리에서부터 시작하여 여기까지 와서 백성을 소동케 하나이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많이 두다
ejpiswreuvw
많이 모으다(두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에피소류오(Plut., Athen.)는 에피($1909: 위에, 에)와 소류오($4987: 쌓다)에서 유래했으며, '쌓아 올리다, 많이 모으다'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에피소류오는 신약성경에서 딤후 4:3에 한번 나온다: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권위
ejpitaghv
명령 Commandment.||#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에피타게(Polyb., Diod.)는 에피탓소($2004: 정리하다, 즉 명령하다)에서 유래했으며,||(a) '명령, 지령',|(b) '배열, 순서, 상(像)'을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에피타게는 70인역본에서 6회 나오며, 피트감(6600: 법령, 명령, 말, 일, 사건)의 역어로 사용되어 '일(사건)'을 나타낸다(단 3:16).|에피타게는 지혜서 18:15에서 하나님의 '명령'을, 지혜서 14:17에서 통치자의 '명령'을 의미한다.||#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에피타게는 신약성경에서 7회, 대개는 '명령으로, 명령에 따라'(카타 에피타겐)라는 문구로 나타난다.||(a) 고전 7:25, "처녀에 대하여는 내가 주께 받은 계명이 없으되 주의 자비하심을 받아서 충성된 자가 되어 의견을 고하노니". 주의 명령이 결정하며, 이와 대조적으로 바울의 권고는 명령이 아니다.|고전 7:6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내가 이 말을 함은 권도요 명령은 아니라".||(b) 고후 8:8, "내가 명령으로 하는 말이 아니요 오직 다른이들의 간절함을 가지고 너희의 사랑의 진실함을 증명코자 함이로라". "명령으로 하는 말이 아니요"는 바울이 칭찬하는 연보의 자발성을 강조한다.||(c) 롬 16:26, "이제는 나타내신바 되었으며 영원하신 하나님의 명을 좇아 선지자들의 글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으로 믿어 순종케 하시려고 알게 하신바 그 비밀의 계시를 좇아 된 것이니 이 복음으로 너희를 능히 견고케 하실". 여기에 비밀에 대한 선언은 하나님의 명령에 의한 것이며, 바울은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 말씀 선포를 위임받는다(딤전 1:1).||(d) 딛 2:5, "근신하며 순전하며 집안 일을 하며 선하며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게 하라 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훼방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니라". 여기서 요점은 목회자의 말의 권위이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G. Delling).
에피탓소
ejpitavssw
정리하다, 명령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에피탓소(trag., Hdt. 이래)는 에피($1909)와 탓소($5021: 순서있게 정렬하다, 배열하다, 정리하다)에서 유래했으며,||(a) '정리하다',|(b) '명령하다, 지시하다, 분부하다'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에피탓소는 신약성경에서 10회 나오며 '명령하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a) 세속적 의미로.|① 막 6:27에서 높은 지위에 있는 자(헤롯 안티바스왕)의 명령에 대하여 사용되었다: "왕이 곧 시위병 하나를 보내어 요한의 머리를 가져오라 명하니 그 사람이 나가 옥에서 요한을 목 베어".|② 행 23:2에서도 같은 의미를 지닌다(대제사장 아나니아의 명령):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바울 곁에 섰는 사람들에게 그 입을 치라 명하니".|③ 막 6:39에서 적절한 명령에 대하여 사용되었다: "제자들을 명하사 그 모든 사람으로 떼를 지어 푸른 잔디 위에 앉게 하시니". 예수님은 5,000명을 먹이실 때에 식사 준비를 명하셨다.|④ 눅 14:22에서 주인이 초대된 손님들에 대하여 종들에게 명령하는 것을 나타낸다: "종이 가로되 주인이여 명하신대로 하였으되 오히려 자리가 있나이다".||(b) 에피탓소는 사랑으로 하는 격려와 대조되는, 마치 부하에게 하는 것처럼 믿는 자에게 사도적 권위로 명령하는 것을 나타낸다: "이러므로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많은 담력을 가지고 네게 마땅한 일로 명할 수 있으나"(몬 1:8).||(c) 메시야의 명령. 귀신들(막 1:27, 누가복음 병행구 눅 4:36; 막 9:25; 눅 8:31) 또는 악마의 힘이라고 생각되어진 자연의 힘(눅 8:25; 참조: 시 106:29와 백성에 대하여, 시 65:8; 시 89:10)을 향한 예수님의 강력하고 능력있는 명령. 이 명령은 귀신들에게 아무런 행동의 자유를 남겨두지 않는다(막 1:27; 눅 8:25). 그 입의 말씀은 마치 창조의 말씀처럼 신속하고 정확한 효력이 있다(참조: 막 9:25이하; 눅 8:31이하; 창 1:3; 창 1:9).|(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EDNT).
마치다
ejpitelevw
성취하다, 실행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에피텔레오(Hdt. 이래)는 텔레오의 강의 형이다. 이 동사는||(a) '실행하다, 성취하다, 집행하다, 일어나다, 행하다',|(b) '지불하다',|(c) '거행하다(종교적 행사를), 제사장이 기도를, 그리고 제사를 하는 것'에 대해 사용되었다. '축하하다'(절기 등)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에피텔레오는 70인역본에서 약 17회 나오며, 행하다, 실행하다(민23:23; 단 11:16; 삿 21:10), 왕의 봉사(마카베오이서 15:5), 위임사항(마카베오이서14:29), 결심(마카베오이서 3:23), 명령(유딧 2:13), 서원(삿 11:39)를 이행하는 것에 대해 사용되었다. 그리고 이 단어는 '끝내다, 종결하다, 축하하다, 제물을 드리다, 거행하다' 등을 의미한다.||#3. 신약성경의 용법||에피텔레오는 신약성경에서 9회 나오며, 다음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a) '이행 성취하다, 세우다', 히 8:5에서 '세우는 것'을 나타낸다: "저희가 섬기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라 모세가 장막을 [지으려] 할 때에 지시하심을 얻음과 같으니 가라사대 삼가 모든 것을 산에서 네게 보이던 본을 좇아 지으라 하셨느니라".|벧전 5:9 '성취하는 것'을 의미한다: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니라".|고후 7:1에서 성도들에게 준 거룩은 그들이 몸과 영을 더럽히는 모든 것에서 자신을 깨끗게 함으로 말미암아 실현화하는 어떤 것이다.|롬 15:28에서 사상은 계획하거나 시작한 일을 실행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이 일을 [마치고] 이 열매를 저희에게 확증한 후에 너희에게를 지나 서바나로 가리라".|고후 8:11에서 '실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는 행하기를 [성취할지니] 마음에 원하던 것과 같이 [성취하되] 있는대로 하라".|빌 1:6에서 '이루는 것'을 의미한다: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b) 갈 3:3에서 에피텔레오는 '마치다'를 의미한다: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c) 히 9:6에서 성막에서 제사장의 기능들에 대해 언급한다: "이 모든 것을 이같이 예비하였으니 제사장들이 항상 첫 장막에 들어가 섬기는 예를 [행하고]".|(참조: Walter Bauer; J.H.Thayer; G.Delling).

ejpithvdeio"
적당한, 필요한.||#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형용사 에피테데이오스(Eur., Hdt. 이래)는 에피테데스(%784: 충분한)에서 유래했으며,||(a) '적당한, 알맞은, 편리한, 유익한',|(b) '필요한'을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형용사 에피테데이오스는 신약성경에서 약 2:16에 한번 나온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여기서 에피테데이오스는 '필요한'이란 의미를 지닌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두려 하다
ejpitivqhmi
두다, 놓다, 더하다, 주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에피티데미(Homer 이래)는 에피($1909: 위에, 에)와 티데미($5087: 놓다, 두다, 정하다, 고정하다)에서 유래했으며,||(a) '~위에 놓다, 두다, 내려 놓다',|(b) '더하다, 적용하다, 부과하다, 공급하다, 주다(어떤 이름을), 채택하다, 씌우다'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동사 에피티데미는 70인역본에서 약 270회 나오며, 히브리어 숨(7760: 두다, 놓다, 세우다, 배치하다), 나탄(5414: 주다, 놓다, 두다, 입다), 사마크(5564: 기대다, 의지하다, 놓다, 두다, 지탱하다) 등의 역어로 사용되었다.|에피티데미는 70인역본에서 여러가지의 의미로, 곧 회반죽을 '바르다', 병역의 의무나 세금을 '부과하다', 불을 '놓다', 피를 '바르다', 진설병을 '진열하다', 요제를 '흔들다', 음모를 '짜다', 무엇을 '의도하다'란 의미로 사용되었으며, 특히 성직에 대한 헌신(민 8:10), 제물의 봉헌(출 29:10), 복이나 영적 은사를 베풂(민 27:18; 창 48:17-18), 저주(레 24:14), 그리고 고침(고후 5:11)을 위해 "안수하다"란 표현으로 자주 사용되었다.||#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에피티데미는 신약성경에서 37회 나오며, 그 중 절반은 안수하는 것을 나타내고 그 나머지 용례에서 여러가지 의미를 나타낸다.||(a) 상세히 열거하면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① 양을 어깨에 '메는 것'(눅 15:5),|② 가시 면류관을 '씌우는 것'(마 27:29; 요 19:2),|③ 십자가에 패를 '붙이는 것'(마 27:37),|④ 타격을 '가하는 것'(눅 10:30; 행 16:23),|⑤ 이름을 '지어주는 것'(막 3:16 이하),|⑥ 멍에를 (즉 율법주의의 멍에) '지우는 것'(행 15:28; 참조: 행 15:10; 마 23:4),|⑦ 언어 유희로 계 22:18에서, 요한계시록의 말씀에 다른 것들을 "더하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형벌로서 '부과할'(더할) 것이라고 하였다.|⑧ 행 18:10에서 중간태로 이 단어는 어느 누구도 바울에게 해를 '가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의미한다.|⑨ 행 28:10에서 이 단어는 필요한 것을 "공급한다"를 의미한다.||(b) 안수 의식은 이 단어에 의해 20회 나타난다. 치료시에 안수하는 것-헬라 종교 세계에서도 이와 유사한 의식이 있었다-과 복을 빌 때 안수하는 것-특히 세례(침례)와 성례전에서 성령을 부어주기 위한 안수(특별히 구약성경과 유대교에서 전해 내려온 것)-사이에 구별을 해야 한다. 그러나 한편 두 의식은 하나님과 인간의 손이 치료와 축복의 능력을 전달하는 가장 중요한 도구라는 사실에서 다시 일치된다. 따라서 안수는 능력을 전달하는 여러가지 방식-손을 움직이거나, 만진다거나, 붙잡는다거나 기름을 붓는 방식-가운데 한 형태일 뿐이다.|① 특별히 마가복음에서, 그리고 정도는 덜하지만 누가복음에서 예수님의 안수를 통한 병고침에 대해 언급한다(막 5:23; 막 6:5; 막 7:32; 막 8:23; 막 8:25; 막 16:18; 눅 4:40; 눅 13:13). 하지만 마태복음에서는 단순히 아이를 만지시는 것(마가복음에서)이 축복의 안수가 된다(마 19:13; 마 19:15 및 병행구).|② 사도행전에서는 오직 단 한번 행 28:8에서 안수에 의한 병고침에 대해 말한다.|다른 한편 사도행전에서 안수례는 세례와 관련하여 혹은 세례의 확대와 관련하여 성령을 나누어주는 것으로 이해되거나(행 8:17-19; 행 9:12; 행 9:17; 행 19:6), 혹은 특별한 직무, 집사(행 6:6)나 선교적 사역(행 13:3)에 위임하는 것으로 이해되었다.|③ 목회 서신에서 안수는 임직식에 의해 성령의 은사를 나누어주는 것과 연관된다(딤전 5:22).|(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C. Maurer).
간하다
ejpitimavw
비난하다, 꾸짖다, 견책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에피티마오는 에피($1909: 위에 on, upon)와 티마오($5091: 가격을 정하다)에서 유래했으며, 헤로도투스 이래로, 다음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a) '존경하다, 경의를 표하다, 영예를 주다'(Hdt. 6. 39).|(b) '~의 값을 올리다'(Dem. 918, 22).|(c) '비난하다, 견책하다, 벌하다'(Thuc., Xen., Plato등).||#2. 70인역본의 용법||동사 에피티마오는 70인역본에서 11회 나오며, 히브리어 가알(비난하다, 꾸짖다)의 역어로 사용되었다. 이 단어는 강한 충고나 행동을 통해서 어떤 사람이나 사람들을 저지, 좌절시키는 것을 나타낸다.|이 단어는 특별히 하나님의 질책에 대해 사용되었다(시 9:5; 시 68:30; 시 106:9; 슥 3:2). 한정된 방식으로 이 단어는 인간의 질책에도 사용되었다(창 37:10; 룻 2:16).||#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에피티마오는 신약성경에서 30회 나오며, 70인역본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이 동사는 '불찬성', '불만', '비난'이란 의미로 세개의 공관복음서에 모두 자주 나온다. 그러나 구체적인 처벌에 대한 가혹한 요구의 의미로 쓰이지는 않는다. '비난하다, 견책하다, 꾸짖다'는 의미가 모든 예문들과 어울릴 것이나 보다 정확한 정의도 가능하다.||(a) 신약성경은 인간의 비난(견책)을 아주 경계한다. 예를 들어 제자들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만져 주심을 바라고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오는 것을 꾸짖었다(막 10:13). 군중들은 예수님을 구하는 소경을 꾸짖었다(막 10:48 병행구). 베드로는 예수님의 수난 예언에 대해 예수님을 비난했다(막 8:32 병행구). 그리고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 제자들을 꾸짖기를 청했다(눅 19:39). 그들은 성급하게 꾸짖는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비난을 옳지 않다고 보셨다.|용납될 수 있는 유일한 질책은 겸손의 질책이다. 예를 들어 십자가에 달린 강도들 중의 한 사람은 다른 강도를 질책한다(눅 23:41). 질책이 용서의 정신으로 행해질 때는, 한 신자는 다른 동료 신자를 꾸짖을 수 있다(눅 17:3). 질책은 특히 목회적 감독의 책임이다(딤후 4:2).||(b) 신약성경은 견책을 본질적으로 신적 주권의 특권으로 간주한다는 점에서 70인역본을 따른다. 하나님만이 올바르게 마귀를 꾸짖을 수 있다: "천사장 미가엘이 모세의 시체에 대하여 마귀와 다투어 변론할 때에 감히 훼방하는 판결을 쓰지 못하고 다만 말하되 주께서 너를 꾸짖으시기를 원하노라 하였거늘"(유 1:9).|예수님은 명백히 견책의 권리를 지닌다(막 8:33; 눅 9:55; 눅 19:39-눅 19:40). 막 8:30에서 에페티메센("경계하시고")은 이 시점에서 자기의 메시야이심을 나타내지 말라고 제자들에게 한 그의 명령이 얼마나 엄격한지를 나타내기 위해 사용되었다. 이 용어는 막 3:12에서 예수님께서 귀신들에게 잠잠하라고 명령할 때에 주권을 나타내는 용어이다. 예수님은 더러운 영을 꾸짖으시고 몰아낼 때(막 9:25), 시몬의 장모의 열병을 꾸짖을 때(눅 4:39), 그리고 심지어 자연의 기본적인 힘들(바람)을 꾸짖을 때(막 4:39)에도 비슷한 권능을 나타낸다. 그의 무조건적인 신적 권능과 특권은 분명히 그리고 강하게 그의 에피티메센에서 드러난다.|(참조: J.H.Thayer; E.Stauffer; G.T.D.Angel).
벌 받은 것
ejpitimiva
비난, 견책, 질책, 형벌||#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에피티미아는 에피티마오($2008: 견책하다, 질책하다)에서 유래했으며, '벌, 가치, 명예, 존경'을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에피티미아는 70인역본 외경 지혜서 3:10에만 나타난다. "그러나 악인들은 그들의 그릇된 생각 때문에 [벌]을 받을 것이다. 의인을 무시하고 주님을 배반하였기 때문이다."||#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에피티미아는 신약성경에서는 고후 2:6에 회중의 훈육에서 교회의 '징벌'이나 '책망'을 뜻하는 전문 용어로 한번 나타난다: "이러한 사람이 많은 사람에게서 벌받은 것이 족하도다".|(참조: E.Stauffer; J.H.Thayer).
허하다
ejpitrevpw
허락하다, 지시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에피트레포(Homer. 이래)는 에피($1909)와 트레포(%53: 돌다, 돌아서다)에서 유래했으며,||(a) '~로 돌리다, 맡기다, 위탁하다'|(b) '허락하다, 허용하다, 허가하다'|(c) '명령하다, 지시하다'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에피트레포는 신약성경에서 18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에피트레포의 주어는 보통 관직에 있는 사람들이다.|① 요 19:28에서 빌라도는 예수님의 몸을 십자가에서 가져가도록 허락한다.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예수의 제자나 유대인을 두려워하여 은휘하더니 이 일 후에 빌라도더러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기를 구하매 빌라도가 허락하는지라 이에 가서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니라".|② 막 10:4(병행구 마 19:8)에서 이혼에 대한 질문에서 아내와 이혼할 경우에 이혼 증서를 주는 모세의 율법의 규정은 허락으로 해석된다: 모세는 그것을 허락했다. "가로되 모세는 이혼 증서를 써주어 내어버리기를 허락하였나이다".|③ 막 5:13(병행구 눅8:32)에서 귀신들은 예수님께 돼지에게 들어가도록 허락하시기를 간청한다: "허락하신대 더러운 귀신들이 나와서 돼지에게로 들어가니 거의 이천 마리 되는 떼가 바다를 향하여 비탈로 내리 달아 바다에서 몰사하거늘".||(b) 사도행전에서 로마의 관헌들은 바울을 향하여 예의 바르게 행하고 그에게 변명하는 것(행 21:39; 행 21:40; 행 26:1)과 친구들을 찾아보는 것(행 27:3)과 그 자신이 전세 낸 지역에서 사는 것을 허락한다. 행 26:1에서 예의 바른 수동태의 문구 "그것이 너에게 허락된다"가 사용된다.||(c) "주께서 그것을 허락하신다면"(약 4:15: 퀴리오스 델레세)이라고 말하는 자의 겸손을 보여주기 위해 사용되는 잘 알려진 수사적인 어구이다. 그것은 고전 16:7; 히 6;3에서 에페트레포와 관련되어 나온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G. Bouwman).
위임
ejpitrophv
맡김, 위임.||#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에피트로페(Thu. 이래)는 에피트레포($2010: 돌아서다, 맡기다, 위임하다)에서 유래했으며, '허가, 권한, 위임'을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에피트로페는 70인역본 외경 마카베오이서 13:14에 한번 나오며, 결과를 창조주에게 '맡기는 것'을 나타낸다.||#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에피트로페는 신약성경에서 행 26:12에 한번 '위임'이란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 일로 대제사장들의 권세와 위임을 받고 다메섹으로 갔나이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청지기
ejpivtropo"
관리자, 청지기, 후견인.||#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에피트로포스(Pind., Hdt. 이래)는 에피트레포($2010: 돌아서다, 맡기다, 위임하다)에서 유래했으며, '어떤 것을 돌보거나 위탁받거나 그러한 권한을 가진 자, 관리자, 보호인'을 의미하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지배인, 책임자, 감독, 청지기'(Hdt. 이래).|(b) '총독, 행정장관'(Hdt. 이래).|(c) '보호인 quardian(Hdt., Thu., Doid.), 후견인(Pla., Plut.)을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에피트로포스는 70인역본에서 마카베오이서에만 3회, 왕이나 안티오커스의 '후견인' 러시아에 대하여 사용되었다(마카베오이서 11:1; 13:2; 14:2).||#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에피트로포스는 신약성경에서 3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마 20:8에서 에피트로포스는 포도원 '관리자나 감독'을 나타낸다: "저물매 포도원 주인이 청지기에게 이르되 품군들을 불러 나중 온 자로부터 시작하여 먼저 온자까지 삯을 주라 하니".||(b) 눅 8:3에서 에피트로포스는 헤롯의 '청지기'를 나타낸다: "또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 요안나와 또 수산나와 다른 여러 여자가 함께하여 자기들의 소유로 저희를 섬기더라".|아마도 이 청지기는 왕의 재산을 관리하는 청지기를 가리킨다.||(c) 갈 4:2에서 에피트로포스는 '후견인'을 의미한다: "그 아버지의 정한 때까지 후견인과 청지기 아래 있나니". 어린 아이는 그의 아버지가 미리 정한 시기까지 보호자인 청지기 밑에 있었다. 그런 상태에서는 그가 분명한 상속자이며, 모든 것의 주인, 즉 법적으로 그의 주인이었지만 종보다 더 자유를 가지고 있지 못했다.(R. E. Howard).|(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에피튕카노
ejpitugcavnw
얻다, 도달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에피튕가노(Pre-Soor., Hdt. 이래; Aristph., Thuc. 등)는 에피($1909)와 튕카노($5177: 마주치다, 우연히 발견하다, 우연히 일어나다)에서 유래했으며,||(a) '우연히 만나다, 마주치다, 발견하다'(사람이나 사물에 대하여).|(b) '~에 도달하다, 얻다(획득하다)'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에피튕카노는 신약성경에서 5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롬 11:7에서 에피튕카노는 '얻다, 도달하다'라는 의미를 나타낸다: "그런즉 어떠하뇨 이스라엘이 구하는 그것을 얻지 못하고 오직 택하심을 입은 자가 얻었고 그 남은 자들은 완악하여졌느니라". 이스라엘 사람의 대부분은 행위로 '의'를 추구했기 때문에 그 목적을 이루지 못했으나 이와 같은 경우 오직 믿음만으로 의에 도달할 수 있었던 이방인들은 그것을 성취했다(W. M. Greathouse).||(b) 히 6:15에서도 에피튕카노는 아브라함이 인내로 약속을 '얻었다'는 것을 묘사한다: "저가 이같이 오래 참아 약속을 받았느니라".||(c) 히 11:33에서 에피튕카노는 신앙 위인들이 믿음으로 약속을 '얻었다'는 것을 묘사한다: "저희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d) 약 4:2에서도 '얻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너희가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고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나니 너희가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