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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스론
!Esrwvm
헤스론 Hesron.||에스롬은 한글 개역 성경에서 '헤스론'으로 번역되었다.|헤스론은 신약성경에서 2회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있는 족보에서 그리스도의 조상 중 한 사람으로 나타난다.||(a) 마 1:3,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 베레스는 헤스론을 낳고 헤스론은 람을 낳고".||(b) 눅 3:33, "그 이상은 아미나답이요 그 이상은 아니요 그 이상은 헤스론이요 그 이상은 베레스요 그 이상은 유다요".|(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에스테
ejstev
너희는 ~이다.||동사 에스테는 에이미($1510)의 현재 직설법 2인칭 복수이며, '너희는 ~이다'를 의미한다.|에스테는 신약성경에서 약 90회 사용되었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에스티
ejstiv
그는(그녀, 그것은) ~이다.||동사 에스티는 에이미($1510)의 현재 직설법 3인칭 단수이며, '그는(그녀, 그것은) ~이다'를 의미한다.|에스티는 신약성경에서 약 906회 사용되었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에스토
e[stw
너는 ~이 되라.||동사 에스토는 에이미($1510)의 현재 명령법이며, '너는 ~이 되라'를 의미한다.|신약성경에서 16회 사용되었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나중
e[scato"
극도의, 맨끝의, 마지막의, 가장 가치없는, 가장 작은||**** %9 에스카톤|(명사) 끝, 마지막, (부사) 끝으로, 마침내||#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형용사 에스카토스(Homer. 이래)는 엑스(∼밖으로, ∼로부터)에서 유래한 최상급형이며,||(a) 원래는 가장 바깥쪽에 있는 사람이나 사물을 의미하였다.||(b) 공간적으로 에스카토스는 가장 멀리 떨어진 장소를 의미하였다(Hesiod, 지구의 맨 가장 자리).||(c) 시간적으로 에스카토스는 일련의 마지막 사건들을 의미한다(Hdt.).||(d) 물질적으로 '극단적인 것'을 의미하였으며, 계급 서열에서 가장 높은 곳을 의미하는 말로는 별로 사용되지 않고(가장 지혜로움) 대개는 가장 낮은 곳을 의미하였다(가장 비천한 자들).||(e) 실사적으로 토 에스카톤은 공간과 시간적인 면에서의 끝을 의미한다(Hdt.). 정관사 없이 에스카톤(eschaton)은 에스카토스(부사)와 똑같이 부사로 사용되기도 하는데 이 두 단어의 의미는 모두 '마침내'이다(Xen.).||「참고: 헬라어에서는 에스카토스는 계속해서 이어져왔다고 생각되는 상황들의 마지막 점에 대해 사용되었으며, 이것은 '맨 끝'(extreme)이 처음에 '땅 끝'으로 나타나는 헬라인의 자연주의적 사고와 일치한다(Dem. Ep. 4, 7; Xen., Vect. 1, 6; Theocritus, 15, 8). 질적인 면에서 에스카토스는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극도의 증대'를 의미하는데, 가장 고귀한 것들은 왕들에게서 그 절정에 이른다(Pindar). 극악한 부정(Plato.), 극도의 위험(Gorgias)이란 표현도 나타난다. 아리스토텔레스 작품에서 에스카토스는 사상의 논리적 진행의 결말을 나타내며, 따라서 이것은 사고의 과정들의 체계화에 기여한다(An. 3, 10, 433a, 16). 사람들 중의 계급 서열의 용어로서 에스카토스(eschatos)는 프로토스(첫째)의 반대를 의미한다. 즉, 가장 낮고 가장 가련한 자들(Dio Cass., Dio Chrys.)이다. 시간적인 차원은 특별히 마지막이라고 예상되는 때(마지막, 즉 결정적이며 최종적인 판결), 그리고 하나님을 "처음이요 나중"(프로토스 카이 에스카토스)이라고 부르는 포괄적인 명칭에서 표현된다(Ps. Arist., Mund. 401a, 28). 그러나 이것은 가장 발전되지 않은 의미이다. 헬라 사상에는 발전된 종말론적 시간의 이해, 즉 역사 과정의 미래적 목표, 또는 종말에 대한 이해가 없다」|(참조: H.-G.Link; G.Kittel).||#2. 70인역본의 용법||(a) 에스카토스는 70인역본에서 약 150회 나오며, 주로 아할(∼후의, 뒤에) 어군을 번역하고 있으며 그 의미는 '마지막, 마침내, 결과, 끝'이란 의미를 나타낸다(호 3:5; 사 2:2; 사 41:23; 미 4:1; 렘 23:20; 렘 30:24; 렘 40:39; 겔 38:16). 이것은 이스라엘의 자기 이해를 전혀 새로운 방향으로 제시한 선지자의 미래 지향적 사고를 나타내는 것이다. 이 문구가 대개 구원에 대한 말들에 나타나거나 또는 이 말들의 앞에 나온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 구원에 대한 모습들이 여러 선지자들에 의해 각기 다르게 제시된다 할지라도 여호와 자신이 말씀하신 "끝날에"라는 포괄적 구원 시대에 대한 기대는 그들 모두에게 있어서 공통적이다.||(b) 랍비 유대교에서 종말(케츠)에 대한 예측은 메시야의 도래에 집중된다(에스드라하12:32; 참조: SB Ⅲ 671; Ⅳ 1003, 1006).||#3. 신약성경의 용법||에스카토스는 신약성경에서 52회 나오며, 다음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a) 에스카토스는 공간적 의미로 사용되었다.|눅 14:9; 눅 14:10에서 말석(호 에스카토스 토포스)은 일련의 장소에서 맨 마지막이나 맨 뒤의 구석에 있는 자리로 여겨진다.|행 1:8; 행 13:47에서 "땅 끝까지"(헤오스 에스카투 테스 게스)는 우주적인 종말론적 의미를 지닌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주께서 이같이 우리를 명하시되 내가 너를 이방의 빛을 삼아 너로 땅끝까지 구원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니".||(b) 에스카토스는 서열과 순위에 관해 '마지막의, 가장 적은, 가장 하찮은, 비천한'이란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 의미는 먼저 된 자와 나중된 자에 대한 예수님의 선포에 나타난다: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막 10:31; 마 19:30; 마 20:16; 눅 13:30). 이 금언은 대조적인 병행구에서 정반대로 형성되었는데 아마도 원래 의미는 "인간의 운명은 하룻밤 사이에도 얼마나 빠르게 변하는가" 하는 것이었을 것이다(참조: J.Schniewind ). 예수님의 입에서 나온 이 금언은 제자 직분의 보상들에 대한 논의의 결론으로써 종말론적으로 철저화 되었다(막 10:28-막 10:31 병행구).|먼저 된 자와 나중 된 자의 이 대조는 사람들의 계급 계승이 관습적임을 제시해 준다. 먼저 된 자들은 사회에서 고귀한 자들, 곧 왕과 통치자들이요, 나중 된 자들은 가장 낮은 자들, 곧 종들과 버림 받은 자들이다. 예수님의 이 말씀의 요점은 장차 임할 시대에는 이런 우선 순위가 바뀔 것이라는 사실에 있다. 하나님 나라에서는 지상의 권력구조가 뒤바뀌어진다. 하나님께서는 땅에서 나중 되고 가장 낮은 자들의 편에 서실 것이다. 그들에게는 예수님의 가난한 추종자들과 같이 하나님의 나라가 약속된다.|반면에 스스로 하나님 나라의 첫 번째 후보자라고 간주하는 자들, 곧 귀족들과 부자들과 경건한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에서 제외된다(눅 13:28이하; 마 8:11이하).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은 지금 현재에 이런 모든 가치의 종말론적 전도를 예기하고 실현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예수님께서 선임권을 둘러싼 제자들의 분쟁에 대해 "아무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사람의 끝이 되며 뭇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하는 회상의 형식으로 답하신 것은 이런 의미에서이다(막 9:35).|고전 4:9에서 '가장 하찮은 비천한'을 의미한다: "내가 생각건대 하나님이 사도인 우리를 죽이기로 작정한 자같이 미말에 두셨으매 우리는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 그는 하나님께서 사도들을 죽음에 넘겨지고 세상의 웃음거리이자 찌꺼기인 것처럼 가장 하찮고 비천한 자들임을 자랑하셨다고 말씀하심으로써 고린도의 열성주의자들에게 응수한다. 그러나 영원토록 그렇게 하신 것이 아니라 "바로 이 시간까지" 그렇게 하신 것이다.|고전 15:8이하에서 "지극히 작은"이라는 말과 "맨 나중에"라는 말의 결합은 바울이 그 특성을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로 제시해주는 것이다.||(c) 에스카토스는 시간에 관해, '최소의(least), 최후의, 마지막의'를 나타낸다.|① 마 20:8; 마 20:12; 마 20:14에서 호이 에스카토이("나중 온 자")는 일하러 맨 나중에 온 자들이다. "먼저 온 자 나중 온 자"라는 이 격언의 의미가 항상 동일한 것은 아니다.|눅 13:30에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오도록 맨 나중에 초대받은 자들이 그 기회가 올 때 최초로 들어가는 자들이 될 것이다. 다시 말해 그들은 즉시 입장을 허락받을 것이지만 타인들과 또한 맨 먼저 초대받았던 자들은 그 때 너무 늦게 오게 되므로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마 10:30; 마 20:16에서 미래의 하나님의 나라에서 그의 선하심을 통해 맨 나중에 초대받은 자들에게도 맨 처음에 초대받은 자들과 동일한 몫이 할당된다. 그러나 후자는 자기들이 더 나은 것을 받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② 히 1:2에서 에프 에스카투 톤 헤메론은 "마지막 날에"를 의미한다. "마지막 날"이라는 문구로 표현된 종말에 대한 예언적 기대는 투톤 즉 "이"이라는 지시사가 추가되어 ("이 마지막 날에") 초대 기독교인들의 현재와 연관된다. 이것은 "하나님이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다"는 사실로 말미암아 드러났다. 예수께서 아들이자, 창조의 주로 즉위하심으로써 시대의 전환점이 왔다. 히브리서는 초대 기독교의 현재를 종말의 시작으로 이해한다.|베드로전서도 그리스도께서 "말세에 나타내신 바 되었다"고 말하며(벧전 1:20; 참조: 막12:6) 요한일서는 이 서신의 수령자들이 "마지막 때"에 살고 있음을 강하게 인식시켰다(요일 2:18).|신약성경 기자들에게 비추어진 이제 나타나기 시작한 종말의 특징들 중에는 성령을 부어주심과(행 2:17; 참조:욜 2:28-32), 도덕적 부패의 증대(딤후 3:1이하), 그리고 기롱하는 자들과(벧후 3:3; 유 18) 적그리스도들의 나타남(요일 2:18)이 포함된다.|그렇지만 마지막 날은 또한 기다려진다. 계 15:1의 마지막 재앙, 고전 15:26의 마지막 원수, 고전 15:52의 마지막 나팔, 그리고 요 6:39-요 6:40; 벧전 1:5의 마지막 때의 부활, 심판, 구원이다.||(d) ① 고전 15:45에서 바울은 아담 그리스도 유형론(typology )의 틀을 바탕으로 하여(참조: 롬 5:12-롬 5:21; 고전 15:21이하) 첫사람 아담을 "마지막 아담"(에스카토스 아담) 그리스도와 대조시킨다. 아담과 그리스도는 이곳에서 개인으로 생각되는 것이 아니라 각각 인류 전체의 대표자들로 생각되는 것이다. 따라서 "마지막 아담"은 숫자적으로나 연대적으로 마지막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형상 속에서 창조된 새 인류의 새로운, 즉 두 번째 대표자로서의 그리스도를 의미하는 것으로 아담 안에서 요약된 첫 번째 인류와는 대조된다(참조: C.Colpe). 따라서 바울은 부활하신 그리스도, 생명의 창조자를 하나님의 새로운 인류의 종말론적 원형(prototype)으로 이해한다. 예수님의 부활과 함께 종말은 이미 시작되었다.|② "처음이요 나중이라"(호 프로토스 카이 호 에스카토스)라는 문구는 높임 받으신 그리스도의 자신에 대한 칭호로만 발견된다(계 1:17; 계 2:8; 계 22:13; 참조 사 41:4; 사 44:6; 사 48:12). 이 신적 술어를 높임 받은 그리스도에게 적용시켰다는 것은 창조주이시며 완성자의 기능들을 지닌 하나님의 속성과 동등한 지위를 그에게 돌리는 것임을 의미한다.|(참조: Walter Bauer; G.Kittel; H.-G.Link).
죽게 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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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finally.||#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부사 에스카토스(Xen.,)는 '맨 끝에, 마지막으로, 마침내'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에스카토스는 신약성경에서 막 5:23에서 한번 나온다: "많이 간구하여 가로되 내 어린 딸이 [죽게 되었사오니] 오셔서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그로 구원을 얻어 살게 하소서 하거늘".|여기에서 문자적으로는 '마지막 날'를 뜻하지만, 죽음의 순간에 있는 것을 나타낸다.|(참조: J.H.Thay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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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에 within.||에소(Homer 이래)는 기본 전치사 에이스($1519: ~에로, ~을 향하여, ~안으로)에서 유래된 부사로서, '안에' within을 의미한다. 에소는 신약성경에서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고전 5:12에서 호이 에소는 공동체 안에 있는 자들, 즉 주변의 이교도들과 구별되는 기독교인들을 가리킨다(이것은 이러한 구별로부터 특별한 의미를 부여받는 표현이다. 이것은 엑클레시아를 다른 나머지 사람으로부터 분리된 새롭고 닫힌 교제로 지각하는 바울의 사상을 반영한다(참조: 고전 10:32).||(b) 롬 7:22의 인류학적 용어인 "속사람"은 사람의 영적인 면을 나타내거나, 생각하고 뜻하고 느끼는 것과 같이 사람이 자기 인식을 가진다는 점에서의 인간 자신을 나타낸다. 도덕적 판단력의 주체로서 인간은 하나님의 계시에 접근 가능하며 그것에 의하여 좌우되고 또 그것의 요구에 열려있다. 하지만 죄에 의해 결정되는 모순되는 실제적 행동은 인간의 존재의 이원성에서 인간의 곤궁한 처지를 낳는다.|이 용어는 고후 4:16에서 더 강한 종교적 의미를 지닌다. 여기에서 고난으로 말미암아 입증된 바울은 자기 자신을 겉사람과 속사람으로 구분한다. 전자는 피조된 죽어야할 운명의 지상적 존재(참조: 고후 4:10 이하)이고, 후자는 하나님에 의해, "그리스도인 안에 존재하러 들어오신 그리스도"(갈 2:20; 갈 4:19)에 의해 결정된 사람이요, "새로운 피조물"(고후 5:17)이요, "성령의 보증"으로 하나님의 은사의 덕택으로 매일 매일 새로움을 경험하는 자들이다. 엡 3:16의 기도("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 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에서 이 용어는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대상(목적물)으로서의 사람으로, 혹은 성령의 능력이 만나서 그를 결정짓는 사람 안에 있는 자리로 이해되어야 한다. 이 단어가 바울에 의해 사용될 때는 언제나 한가지 암시를 전달하는데, 벧전 3:4의 병행구 "마음에 숨은 사람"처럼 숨겨진 어떤 것, 사람의 가장 깊숙한 부분에서 숨겨진 채 역사하는 어떤 것이라는 암시를 전달한다.|실질적으로, 바울이 '속사람'이라 부르는 것은 구약성경의 레브(마음)와 일치하며, 막 7:21("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도 악한 생각")과 눅 11:39("너희 속인즉 탐욕과 악독이")에 형태가 유사한 병행구가 있다(참조: 마 23:28). "라바가 말하기를 속사람이 겉사람과 일치하지 않는 율법 선생은 율법 선생이 아니다"고 한다.|(참조: Belm).
밖(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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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에 within||#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부사 에소덴(Aeschyl., Hdt. 이래)은 에소($2080: 안에)에서 유래했으며,||(a) '안으로부터' from within,|(b) '안에' within을 의미하며, 장소의 부사로 사용되었다.||#2. 신약성경의 용법.||부사 에소덴은 신약성경에서 12회 나오며, 공관복음(9회), 고린도후서(2회), 요한계시록(3회)에 사용되었다..||(a) 거짓 선지자들의 속에 있는 것에 대하여, 마 7:15,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b) 서기관과 바리새인들 속에 있는 것에 대하여,|① 마 23:25; 마 23:27; 마 23:28, "25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27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28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② 눅 11:39,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 바리새인은 지금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나 너희 속인즉 탐욕과 악독이 가득하도다".||(c) 나쁜 것들이 속에서 나온다: 막 7:21; 막 7:23, "21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적질과 살인과 23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d) 고후 7:5에서 환란과 관련하여 사용되었다: "우리가 마게도냐에 이르렀을 때에도 우리 육체가 편치 못하고 사방으로 환난을 당하여 밖으로는 다툼이요 안으로는 두려움이라".||(e) 계 4:8에서 네 생물에 대해 사용되었다: "네 생물이 각각 여섯 날개가 있고 그 안과 주위에 눈이 가득하더라 그들이 밤낮 쉬지 않고 이르기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자라 하고".||(f) 계 5:1에서 책의 '안'에 대해 사용되었다: "내가 보매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책이 있으니 안팎으로 썼고 일곱 인으로 봉하였더라".||(g) 눅 11:40에서 하나님의 창조와 관련하여 사용되었다: "어리석은 자들아 밖을 만드신 이가 속도 만들지 아니하셨느냐".||(h) 눅 11:7에서 바깥과 대조적으로 사용되었으며, 방'안'을 나타낸다: "저가 안에서 대답하여 이르되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문이 이미 닫혔고 아이들이 나와 함께 침소에 누웠으니 일어나 네게 줄 수가 없노라 하겠느냐".|(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에소테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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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쪽의 inner.||토 에소테론|안쪽의 성소 the inner shrine.||#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형용사 에소테로스(pmagd. 20, 10; Mayser 14)는 에소($2080: 안에, 내부의)의 비교급이며, '보다 더 안쪽에 있는, 더 깊은' 혹은 '더 친밀한' 것을 묘사하기 위하여 사용되는, 비교 상태를 나타낸 형용사이다.||#2. 70인역본의 용법||에소테로스는 70인역본에서 약 33회 나오며, 3개의 히브리어들의 역어로 사용되었다.|에소테로스는 70인역본에서 성막의 안쪽 성소, '장안'(출 26:33; 레 16:2, 레 16:12, 레 16:15), 왕궁과 성전이 합해진 건물 안에 있는 문이나 출입구, 현관(대하 4:22; 겔 8:3), 가장 안쪽에 위치한 부분, 곧 다윗과 그의 부하들이 숨어 있던 동굴의 가장 깊숙한 곳(삼상 25:4)에 관해 사용되었다.||#3. 신약성경의 용법||에소테로스는 신약성경에서 2회, 사도행전과 히브리서에만 나온다.||(a) 히 6:19, "우리가 이 소망이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가나니". 여기에 관사를 수반한 실명사형 토 에소테론은 비유적으로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들어가셨던 하늘 나라의 지성소를 나타내는데 사용되었다. 이는 성막의 안쪽 성소, 즉 휘장 뒤에 있는 내부 공간인 지성소, 이스라엘 하나님의 불가시적인 현존의 장소에도 해당한다.||(b) 행 16:24에서 한정적 형용사인 에소테로스는 바울과 실라가 붙잡혀 있던 빌립보 감옥의 '깊은' 감방을 묘사하는데 쓰였다: "그가 이러한 영을 받아 저희를 [깊은] 옥에 가두고 그 발을 착고에 든든히 채웠더니".|(참조: Walter Bauer; D.H.Madving).
동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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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friend.||#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헤타이로스(Homer 이래)는 에테스(%365: 같은 문중의 사람, 사촌)에서 유래했으며, '다른 사람과 제휴한 자'에 대하여 사용되었다.||(a) '동료' companion(Philo., Plut.),|(b) '전우' fellow soldier(Homer.),|(c) '같은 파의 일원' member of the same party(Lys).|(d) '종교 단체의 일원'(Ditt.),|(e) '생도' pupil(Aristot.),|(f) 좋은 의미에서 '친구' friend(Plilo.), 그리고|(g) '동업자' colleague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헤타이로스는 70인역본에서 27회 나오며, 히브리어 레아(7453: 친구, 동료, 상대), 레에(7463b, 친구)의 역어로 사용되었으며, '친구, 동무, 이웃'을 나타낸다(삼하 13:3; 왕상 16:11; 욥 30:29; 욥 42:7; 전 4:4; 삼하 15:37; 왕상 4:5; 아 1:7 등).||#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헤타이로스는 신약성경에서 3회, 마태복음에만 사용되었다.||(a) 마 20:13에서 포도원 주인이 자기를 원망하는 자들에 대해 사용한다: "주인이 그 중의 한 사람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아니하였느냐".||(b) 마 22:12에서 임금이 결혼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을 부를 때 사용한다: "가로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저가 유구무언이어늘".||(c) 마 26:50에서 예수님께서 유다에게 문안할 때 사용한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친구여 네가 무엇을 하려고 왔는지 행하라 하신대 이에 저희가 나아와 예수께 손을 대어 잡는지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방언하는 자
eJterovglwsso"
다른 방언으로 말하는 speaking another tongue.||#1. 일반 헬라어의 용법||형용사 헤테로글롯소스(Polyb. Strobo. Philo.)는 헤테로스($2087: 다른)와 글롯사($1100: 혀, 언어, 말)에서 유래했으며, '다른 언어로 말하는', 즉 '외국어로 말하는'이란 의미를 가진다.||#2. 신약성경의 용법||헤테로글롯소스는 신약성경에서 고전 14:21에 한번 나온다: "율법에 기록된 바 주께서 가라사대 내가 다른 방언하는 자와 다른 입술로 이 백성에게 말할지라도 저희가 오히려 듣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여기서 바울은 아마도 아굴라(Aquila)도 알고 있었던 번역본 가운데에서 사 28:11이하를 인용하고 있는 것 같다(Origen Philocalia 9, 2).|이 예언을 보면 여호와께서는 자기 백성을 위협하고 계신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사야가 앗수르 침략자의 방언과 함께 자기 자신들의 말로 자기들에게 전해주었던 여호와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에게 그와 같은 일들이 가해진 것은 그 백성에게 내려진 심판이다. 이것은 다른 방언의 뜻을 파악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뚜렷이 보여주는 것이다.|이런식으로 말씀을 전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믿지 아니하는 자를 다루는 하나님의 표징이다(참조: 고전 14:22). 그와 같은 표징은 사 20:3에서 그 백성에게 닥칠 임박한 파멸과 노예 상태를 예시하는 벌거벗은 예언자의 예표와 비교될지도 모른다. 고린도전서 14장에서 바울은 이사야 시대의 사건과, 고린도 교회 내의 방언에 대한 열광 사이에 유사한 점을 이끌어내고 있다.|다른 방언으로 말하는 것은 교회를 성장시키며 신앙을 돈독히 하기에 비효과적이다. 참으로 그것은 공동체 위에 내려진 하나의 심판으로까지 간주되었을지도 모른다. 예언은 이해할 수가 있기 때문에 믿는 신자들의 덕을 함양할 수 있는 반면에 방언으로 말하는 것은 그렇지가 못하다. 왜냐하면 이해할 수 있는 것만이 남들을 교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껏해야 방언을 말하는 자만이 방언하는 경우에 유익을 얻게되는 것이다(참조: 고전 14:2-고전 14:19).|다른 방언으로 말함은 단지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완강하게 할 뿐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에게 전달되는 것이 아무 것도 없으며 하나님과 화해하는 법도 보여주지 않기 때문이다. 믿지 아니하는 자가 방언하는 자를 보게 되면 이들을 미쳤다고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불신자가 예언을 듣는다면 과오를 깨닫게 되는 것이 당연하다(고전 14:23 이하).|(참조: Walter Bauer; J.H.Thayer; F.Selter).
헤테로디다스칼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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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교리를 가르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헤테로디다스칼레오는 헤테로스($2087: 다른)와 디다스칼로스($1320: 교사)에서 유래했으며, '다른 교리를 가르치다', 즉 '이단적인 교리를 가르치다'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헤테로디다스칼레오는 신약성경에서 2회, 딤전 1:3과 딤전 6:3에만 사용되었다.|헤테로디다스칼레오는 주변 문제를 핵심 문제로 삼고(참조: 딤전 1: 4 이하), 율법을 유대교적으로 강조하면서(참조: 딤전 1:7) 다른 가르침을 퍼뜨리는 자들에 관하여 사용되었다(참조: K. H. Rengstorf). '디모데는 에베소에서 머물면서 "어떤 사람들을 명하여 다른 교훈을 가르치지 말게 하라"는 지시를 받았다(딤전 1:3). 이 사람들은 7절에 언급된, 노모디다스칼로이(율법 선생들)가 되기를 열망하는 사람들과 동일인임에 틀림 없었다. 딤전 6:3에 따르면, 이러한 교사를 가려내는 기준은 그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한 말씀과 경건에 부합하는 가르침"에 동의하느냐 동의하지 않느냐 하는 것이다. 그 다음 구절들에는 이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의 특색이 묘사되어 있다'(K. Wegenast).|(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멍에를 …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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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울리지 않는 멍에를 메다, 비유적으로, 짝을 잘못짓다, 어울리지 않는 결혼을 하다.||#1. 헬라어의 용법||동사 헤테로쥐게오는 '균형이 잡히지 않게(또는 어울리지 않게) 멍에를 메다, 짝을 잘못짓다'를 의미하며, 비유적으로 '동등하지 않는 자와 교제를 나누다'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헤테로쥐게오는 신약성경에서 고후 6:14에 한번 나오는데 짐을 끌기 위해 황소와 당나귀 같은 다른 종류의 동물들이 함께 멍에를 메는 행위에 대해 언급한다. 이러한 관습은 황소와 당나귀들이 함께 밭을 가는데 사용되는 것을 금하는 규례에 의해 금한 것이다(신 22:10; 참조: 레 19:19).|바울은 고후 6:14에서 이러한 개념을 믿는 자와 믿지 아니하는 자와의 관계에 적용하고 있다.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겠느뇨" 이러한 주장은 특별히 우상숭배에 대해 언급하는데까지 진척되며 하나님의 백성을 성전에 비유하여 이교도의 타락 행위로부터의 분리와 도덕적 순결을 강조하는데까지 이른다. 표준개역성경의 번역은 "짝을 맺게하지 말라"(Do not be mismated)로 되어 있는데 이것은 육축을 다른 종류와 교합시키지 말라는 레19:19의 계명을 반영하는 것이며 70인역본에서는 그에 상당하는 형용사를 사용하고 있다.|(참조: Watler Bauer; F.Selter; C.Brown).
달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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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other||#1. 고전헬라어 문헌의 용법||형용사 헤테로스(Homer 이래로)는 알로스($243)와 같이 `다른, 다른 것'을 의미한다. 원래 헤테로스는 이중 명사로서 집단 또는 죄인들의 짝을 전제로하고 있다. 그러므로 호이 헤테로이는 다른 집단을 의미할 수가 있게 된다. 그러나 현대 헬라어에서는 이러한 의미가 전적으로 결여되어 있다.||#2. 70인역본의 용법||헤테로스는 70인역본에서 약 250회 12개 이상의 히브리어의 역어로 사용되었는데, 주로 아헬(다른, 또 하나의, 또 다른)을 번역하고 있다. 그런데 헤테로스는 이쉬(사람), 레아(이웃), 아(형제)와 같은 말들의 역어로도 사용되었다.||#3. 신약성경의 용법||헤테로스는 신약성경에서 98회 나오며, 다음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a) 헤테로스는 눅 5:7; 눅 23:40 등에서 다른 사람이나 사물 또는 집단을 뜻한다. 그러므로 테 헤테라라는 말이 `그 다음날'(행 20:15; 행 27:3)을 의미한다. 복수형으로 쓰일 때도 그와 같은 용도로 쓰이고 있다(행 2:13; 눅 10:1).||(b) 헤테로스는 일일이 열거되는 세목에서나(마 13:5; 마 13:7 이하; 눅 8:6이하) 대조되는 것에서 알로스($243)와 자주 교대로 사용되었다. 세목들 속에서 heteros는 한정적인 수사가 되기도 한다. 예를 들면 눅 19:16; 마 19:18; 마 19:20에서 이 말은 "세번째"(개역: 또 한 사람)란 의미를 가진다.||(c) 명사로서 사용될 때 호 헤테로스는 하나님께서 독자적인 생활방식에 부가시켜주는 `이웃(남)'이란 의미를 가진다(고전10:24; 롬 2:1; 롬 13:8; 갈 6:4).||(d) 헤테로스는 내적으로 다소 질적인 차이를 표현할 때 신학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막 16:12에서 헤테로스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나타난 모양을 묘사한다: "그 후에 저희 중 두 사람이 걸어서 시골로 갈때에 예수께서 다른 모양으로 저희에게 나타나시니".|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다른 모양으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기 때문에 제자들은 주님을 거의 알아보지 못했다(참조: 눅 24:16; 요 20:15).|눅 9:29에 예수께서 변모하셨을 때에도 마찬가지로 변화된 적이 있다: "기도하실 때에 용모가 변화되고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나더라" 이와 같은 모습에서 예수는 인자라는 것이 계시되었다.|고전 15:40에서 이 새로운 모습은 부활을 부인하는 자들에 대한 답변 속에 나오는 부활하신 몸에 비교될 수 있다: "하늘에 속한 형체도 있고 땅에 속한 형체도 있으나 하늘에 속한 자의 영광이 따로 있고 땅에 속한 자의 영광이 따로 있으니".|마 11:3에는 메시야가 예수와는 다른 분인지 아닌지에 대한 질문이 나온다: "예수께 여짜오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이를 기다리오리이까"|행 2:4에서 헤테로스는 성령이 말하게 하는 방언을 묘사한다: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오순절(Pentecost)에 받은 방언의 은사가 황홀경 속에서 나오는 발언의 한 형태였는지 아니면 성령을 입은 제자들이 정말로 이전에 알지 못했던 다른 방언을 말하고 있었는지에 관한 의문이 제기된다. 이 방언은 제자들이 알아들을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말한 것이며, 들은 무리들은 그들이 각각 자기의 난 곳 방언으로 말하는 것을 들었다. 근본적으로는 사도들이 영감을 받아 설교를 한 것이다.|고전 14:21에서 헤테로스는 "다른 방언하는 자"와 병행하는 "다른 입술"을 묘사한다: "율법에 기록된바 주께서 가라사대 내가 다른 방언하는 자와 다른 입술로 이 백성에게 말할찌라도 저희가 오히려 듣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이 다른 방언하는 자는 역시 다른 입술로 표현될 수 있다. 본문은 침략자들의 생소한 언어들을 가리키거나 더욱 직접적으로 문자를 배우는 아이들의 다소 의미없는 지껄임을 가리킨다.|바울은 여기서 사 28:11에 있는 한 경고문을 풀이하고 있다. 빈센트는 `본 인용구의 요점은 외국말로 하는 연설은 하나님의 "옛 백성들의 불신앙으로 말미암은 한 형벌이었다. 그 형벌 까닭에 그 백성들은 외국 침략자들의 무정한 명령을 받는 중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끔 되어 있었다"고 해석했다. 바울이 이사양로부터 본절을 인용할 때에 고린도인들의 어린아이됨과 반역을 상기시켜 주고 있으며, 방언을 말하도록 그들을 권장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계시의 복음은 단순하고 알기 쉬운 것인데 그들이 적당한 방법으로 그것을 받지 못했다는 것을 상기시켜 주려고 했던 것이다. 바울은 경고하는 마음을 가지고 단언하여 방언은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는 표적이라고 했다. 그가 의미한 것은 믿지 아니하는 자가 하나님의 경고로 인해 깨닫을 수 있으며, 또한 유익을 받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일반 예언하는 일은 믿지 아니하는 자를 위하여 아니라 믿는 자를 위함이다. 예언은 하나님의 참된 메시지를 교회에 전해온다(D. S. Metz).|고후 11:4와 갈 1:6이하에서 바울은 자기가 전한 복음에 의한 구원의 유일무이함을 강조하고 있다. 다른 복음은 복음일리가 없으며, 다른 영들은 성령일 수가 없다(참조: J. B. Lightfoot; W. M. Ramsay). 다른 복음에 대해서는 갈라디아서에서 언급하고 있는데, 옛 언약의 요구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이방인 개종자들에게 할례를 강요하는 유대인들의 가르침은 사실 복음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한 요구가 구원의 근거에 관한 원칙적인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고 바울은 본다. 율법의 요구 조건을 이런 식으로 이행하도록 하는 것은 구원의 근거로서 사람들에게 의로운 행동을 하도록 조장하려는 소치일 것이다. 갈라디아서의 전체 주제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유스러운 은혜를 선텍하느냐 또는 인간의 노력에 의한 구원을 선택하느냐 하는 문제에 내포된 논점들을 다루고 있다. 바울은 양자택일의 문제에 있어서 이 후자의 성격을 지닌 "복음"을 배격한다(갈 1:8).|롬 7:23에는 죄의 법의 하나의 도구로서 육체의 이기적인 충동과 같은 다른 법이 마음에 있는 하나님의 선한 법과 맞서 싸운다. 여기서 하나님의 거룩한 법에 따르는 이성의 법과 구별되는 다른 법은 우리 지체 안에 거하면서 우리를 노예로 만드는 죄의 법이다.|(참조: F. Bachsel; F. Selter; C. Brown; Walter Bauer).
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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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르게 differently||#1. 고전헬라어 문헌의 용법||부사 헤테로스(Homer 이래로)는 `다르게, 달리, 다른 방식으로', `그렇지 않으면'을 의미한다. 70인역본에는 나오지 않는다.||#2. 신약성경의 용법||헤테로스는 신약성경에서 빌 3:15에만 나온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니 무슨 일에 너희가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 대체로 바울은 자기자신들이 온전하며 특별한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하는 열광주의자들을 공박했던 것이다. 바울은 온전함이란 표제를 채택하여 그것을 기독교인들에게 적용한다. 온전히 이룬 자(텔레이오이; 표준개역성경에는 `성숙한')는 사실 자기들이 불완전하다는 것으 알고,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쫓아갈 필요성을 느끼는 자이다(빌 3:12이하). 그들은 자기들의 푯대에 아직 다다르지 못했다는 것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빌 3:14)을 아직 받지 못했다는 것을 안다. 그들은 몸의 변모를 기다릴 것이다(빌 3:21). 이에 대한 실제적인 결론은 15절에 주어져 있다. 즉 "그러므로 누구든지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니 만일 무슨 일에 너희가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 여기서 마지막 요점은 분명히 특별한 계시에 대한 주장으로 모아지고 있다. 바울은 현실적으로 꾸준히 노력함에 따라 그들의 통찰력이 자라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참조: J. B. Lightfoot; Walter Bau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