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소식을 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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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소식을 전파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유앙겔리조/ 중간테 유앙겔리조마이는 유앙겔로스(%770: 사자)에서 파생되었으며, '사자로서 말하다, 사자와 같이 행동하다'를 의미한다.|이 동사는 주로 중간태로 사용되지만 능동태, 수동태로도 사용되었다. 인격의 여격이나 대격과 함께 사용되며, 메시지의 내용은 페리($4012)에 의해 소개되며, 때때로 전치사가 메시지의 수령자를 나타내기 위해 함께 사용되었다.||이 동사는 좋은 소식을 선포하는데 사용되었다. 사자는 소식, 특히 승리나 어떤 다른 기쁜 사건의 소식을 배로, 말을 타고 혹은 빨리 달려서 가져오는 자이다.||이 단어는 구원과 같은 단어들과 연결되어 사용되기도 하며, 또한 운명이나 행운의 개념을 지니는 단어들과 연결되어 사용되기도 하였다.||사자는 신탁을 가지고 올 수도 있는데 이로 인해 이 단어는 '약속하다, 위협하다'라는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이 동사는 또한 기쁜 소식을 가지고 오는 '신령한 사람'의 출현과 관련되어 사용될 때는 종교적 의미를 지니었다.||한편 이 동사는 종종 의미가 약화되어 앙겔로(알리다, 전하다)와 동의어가 되는 의미가 되기도 했다. 따라서 이 동사는||(a) '사자로서 말하다, 사자와 같이 행동하다',|(b) '좋은 소식을 가져오다',|(c) '좋은 소식을 선포하다',|(d) '약속하다, 위협하다',|(e) '알리다, 선포하다, 전하다'라는 의미로 요약할 수 있다.||#2. 70인역본의 용법.||(a) 유앙겔리조(마이)는 70인역본에서 약 20회 나오며, 오직 히브리어 바사르(1319: 좋은 소식을 전하다, 기쁜 소식을 전하다, 소식을 받고 기뻐하다)의 역어로 사용되었다. 따라서 유앙겔리조는 70인역본에서 아름다운 또는 좋은 '소식을 전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예: 왕상 1:42; 렘 20:15). 시 40:10; 시 68:12; 시 96:2 이하; 사 52:7에서 여호와의 세계에 대한 전반적인 승리와 왕적 통치를 전함에 사용되는 술어이다. 여호와의 즉위(즉위에 대한 시편들, 특히 시 96편을 참조)와 시온으로의 복귀(이사야서)로 새로운 시대가 시작된다.|실명사적 분사로 '좋은 소식을 가지고 오는' 전달자는 세계사의 이 신기원을 선포하고 그의 강력한 말로써 이 신기원을 개막시킨다. 평화와 구원이 이제 도래하고 여호와께서는 왕이 되셨으며(사 52:7; 사 40:9), 여호와의 통치는 전세계로 넓어졌다(시 96:2 이하). 이 "복음은 유력한 연설이요, 강한 말이요, 스스로 달성되는 언어이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전달자들의 입에서 스스로 말씀하신다. 곧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고 이루신다"(참조: 시 33:6).(G. Gloege). 선포의 행위는 그 자체로 이 신기원의 여명이다. 따라서 이 기쁜 소식들의 전달자의 특별한 의미를 이해하기는 용이하다. 현장에 그가 도착하여 자신의 전달 임무를 완수함으로써 구원과 구속과 화평은 현실이 된다(사 61:1; 이곳에서 전달문과 임무 사이의 관계가 특히 두드러진다).||(b) 필로의 유앙겔리조(마이)의 개념은 헬라의 개념과 같다. 그는 기쁜 소식을 알린다는 뜻으로 이 단어를 사용하는데, 예를 들면 아먼드 나무가 좋은 수확을 알리는 것 같이 시적으로 사용한다. 출 14:30에 대한 우의적 해석에서 이 동사를 '약속하다'는 의미로 사용하였다.|요세푸스도 필로와 마찬가지로 이 동사를 좋은 소식을 알리는 것에 대해 사용하며, 그의 저서 고대사(Ant. 5, 24. 277)에서 '약속하다'는 의미로도 사용했다. 그러나 필로나 요세푸스에게서는 이 동사의 구원사적 의미나 종말론적 의미를 찾아볼 수 없다. 그들은 이 동사에서 이사야서에 나오는 바와 같은 기쁜 소식의 전달자라는 개념을 사용치 않는다.||(c) 랍비 유대교(주의)는 유앙겔리조마이를 '좋은 소식을 선포하다'라는 의미로 사용했지만, 때때로 '나쁜 소식을 전한다'는 의미로도 사용했으며, 미래적 언급과 함께 '약속하다'라는 의미로도 사용했다.|그러나 메시야 시대가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이사야 40장 이하의 사자에 대한 개념을 발견할 수 있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는 다양하게 기대되었다. 곧 알려지지 않는 인물로, 또는 메시야의 선구자로, 또는 메시야 자신으로 기대되었던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통치의 위대한 시대에 대한 기대는 생생한 것이며, 비록 그 메시지가 먼저는 이스라엘을 위한 것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이방인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며, 산 자 뿐만 아니라 죽은 자를 위한 것이기도 한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또한 온 세상의 주님이기도 하기 때문이다.||#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유앙겔리조는 신약성경에서 53회 나오며, 마태복음에 한번, 누가복음에 10회, 사도행전에 15회, 바울 서신에 21회, 히브리서에 2회, 베드로전서에 3회, 그리고 요한계시록에 2회 나타난다. 이 동사는 마가복음, 요한복음, 에베소서, 야고보서, 베드로후서, 또는 유다서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동사도 실명사도 요한의 저술에서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은 특히 인상적이다. 그럴 만한 어떤 이유가 있음에 틀림없다. 유앙겔리조(마이)가 생략된 것은 전체 요한복음의 특성과 조화되는 것 같다. 구원의 때에 대한 극적이고 역동적인 선포가 유앙겔리제스타이(현재 부정사 중간)로 일어날 때 그것은 실현된 복음의 종말론에 알맞지 않다. 유앙겔리조(마이) 안에 메시야의 비밀이 감추어져 있다. 요한의 복음은 성취의 평온을 반영한다. 이 점에 대하여 우리는 세례(침례) 요한에 대한 논쟁을 언급할 수 있는데, 그것은 예수님의 말씀에 유앙겔리제스타이를 사용하는 것을 피하는 것이 타당해지는 것 같다.||(a) 예수|예수님은 기대되는 마지막 때의 좋은 소식을 가지고 오시는 분이시다. 세례(침례) 요한의 질문에 대해서 그는 마 11:5(= 눅 7:22)에 대답하신다: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그 전체 문장은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라는 말에서 그 문장의 절정을 이룬다. 그 메시지는 새 시대를 실현하며, 메시야 시대의 성취의 표징을 가능하게 한다. 그 말씀은 하나님의 법칙을 작용시킨다. 이것은 더 이상 어떤 사본(MSS) 속에서 이해되지 않는다. 예수님께서 세례(침례) 요한에게 주신 대답은 이제 때를 갈망하던 시대가 동트고 있으며 종말의 좋은 소식이 신명기의 날로부터 기대된다는 것이다. 이사야의 말씀이 이제 선포되고 있으며 그 말씀은 능력이 있고 말해진 것을 실행한다는 것이다. 말씀과 기적, 기쁜 소식과 죽은 자의 부활은 메시야 시대의 징조이다. 유앙겔리제스타이는 또한 눅 4:18; 눅 4:43과 눅 16:16의 예수님의 말씀에서 발견된다. 눅 4:18에 따르면 예수님께서는 나사렛에서의 그의 설교에서 사 61:1을 자신에게 적용시키셨다. 그와 더불어 하나님 나라의 좋은 소식이 전파된다(눅 16:16). 눅 8:1은 예수님을 천국의 고지자요 사자라고 부르는데, 이는 예수님의 전 사역을 요약한 것이다.|엡 2:17, "또 오셔서 먼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고 가까운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예수님의 땅으로 오심, 그의 생애와 죽음은 위대한 평화의 메시지, 위대한 평화의 선포이다. 그의 현시는 단지 그의 설교뿐만 아니라 그의 전 사역이 유앙겔리제스타이라는 말로 묘사된다. 문맥은 이것을 보여준다. 엡 2:16에서 언급한 것은 그의 죽음에 대한 것이다. 엡 2:14에서는 그는 화평이시며 그의 현시는 화평의 선포이다. 그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그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화평을 이루신다.|그는 죽은 자에게까지도 그 좋은 소식을 전한다(벧전 3:6; 참조: 벧전 3:19).||(b) 세례(침례) 요한.|이 단어는 눅 3:18에서 세례(침례) 요한의 활동에 대해서 쓰인다: "또 기타 여러가지로 권하여 백성에게 좋은 소식을 전하였으나". 엘리야인 그(눅 1:17; 마 11:14; 마 17:12)는 복음 전도자이다. 그는 하나님의 왕국이 임박하였음을 선포한다. 그는 메시야를 알리는 자인가 아니면 그 이상인가 ? 눅 16:16에 그는 옛 시대와 새 시대 사이의 경계이시다. 마 11:9에 따르면 그는 선지자보다 나은 자이지만 여전히 율법과 선지자들에 속한다. 그러므로 그의 탄생은 예수님의 탄생처럼 천사에 의해 전해진다(눅 1:19). 이것은 메시야적 구원의 암시이다. 눅 1:15-17; 눅 1:68-79에 따르면 그는 메시야를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서 그 길을 예비한다. 그는 기쁜 소식을 가져오는 자이며 그 결과 갈망하던 종말론적 구원을 가져오는 자이다. 그의 메시지는 그래서 좋은 소식이다. 메시아의 선구자로서 그는 복음 전도자이다. 그의 이야기는 복음의 시작이다(마 1:1; 행 10:36 이하).||(c) 증인의 무리들, 제자들, 사도들, 복음 전도자들.|롬10:15: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여기에서 사 52:7은 메시아에 관한 것이 아니라 복음의 사자들에 관한 것이다. 행 10:36과 엡 2:17 모두 사 52:7을 단수로 인용한다. 바울은 신명기, 이사야에서 성벽을 지키는 자, 여호와의 오심의 목격자가 복음 전도자가 된다는 팔레스타인의 유대교의 전통을 따르고 있다. 이미 예수님의 일생 동안 열 두 제자들이 그 땅을 두루 행하여 "복음을 전하며 병을 고치"었으며(눅 9:1-6), 하나님의 왕국을 선포하고 예수님 자신처럼 이적을 행한다. 사도들의 전도 활동은 오순절 이후에 시작된다.|행 5:42: "저희가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쉬지 아니하니라". 예루살렘에서의 박해의 결과로 복음은 보다 더 멀리까지 이르게 된다. 특히 '집사' 중 한 사람인 빌립은 말씀을 전한다(행 8:12; 행 8:35; 행 8:40).|그 메시지는 먼저 유대인에게 전파되고 다음으로 헬라인에게도 전파된다(행 11:20). 바울은 이방인들에게 복음 전도자가 된다(행 14:7; 행 14:15; 행 14:21; 행 16:10; 행 17:18; 롬 15:20; 고전 15:1; 고전 15:2; 고후 10:16; 고후 11:7; 갈 1:8; 갈 1:11; 갈 4:13).|그는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부르심을 받는다(갈 1:16). 이것은 그의 "은혜"이다(엡 3:8). 그는 사도로서의 그의 전 활동을 묘사하기 위해 유앙겔리제스타이를 사용할 수 있다(고전 1:17). 선지자처럼(렘 1장; 렘 20:9; 암 3:8; 겔 3:17 이하) 그는 하나님의 강제 아래 있어서 전도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이것이 그의 사명이다. 고전 9:16: "내가 복음을 전할찌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 유앙겔리조마이는 전도의 조건이다.|행 14:15: "가로되 여러분이여 어찌하여 이러한 일을 하느냐 우리도 너희와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너희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유를 지으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 오라 함이라". 그러나 그 메시지는 또한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전해진다(롬 1:15, 참조: 롬 11장; 고전 9:12-18; 갈 4:13; 딤후 4:5). 같은 복음이 전도와 회중적인 설교로 선포된다. 바울은 차별을 두지 않는다. 동일한 메시지가 기독교인들에게도 이교도에게도 퍼져 나간다(롬 1:15; 행 14:15). 왜냐하면 하나님 자신이 그 메시지를 통해서 모든 사람에게 말씀하시기 때문이다. 복음 전파의 내용은 예수님 자신(갈 1:16), 그의 수난과 부활(벧전 1:11 이하; 행 17:18), 천국(행 8:12), 그리스도를 증거해주는 구약성경(행 8:35), 말씀(행 15:35), 그리고 믿음(갈 1:23)이다. 병행되는 말로는 설교하는 것, 가르치는 것, 그리고 증거하는 것이 있다. 유앙겔리제스다이는 단순히 말만하는 것이 아니라 표징을 수반하는 능력을 가지고 선포하는 것이다. 따라서 유앙겔리제스다이는 하나님의 영의 능력 안에서 하나님 자신의 말씀처럼(벧전 1:12) 병고침(마 4:23), 기쁨(행 8:8), 구원(고전 15:1-2), 그리고 중생(벧전 1:23 이하)을 가져온다. 유앙겔리제스다이는 하나님의 좋은 소식을 전파하면서, 그와 아울러 구원의 제공과 구원의 능력을 지닌다. 두 가지 특별한 용법을 주목해보자. 살전 3:6에서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믿음과 사랑은 디모데가 가져온 기쁜 소식의 주제이며, 히 4:2; 히 4:6에서 구약성경의 선포는 약속이라는 그것의 요소에 포함된다.||(d) 하나님|신약성경의 절수들에서 하나님은 좋은 소식을 선포하시는 분이시다. 행 10:36에서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통해 평화가 선포되도록 하신다. 평화를 선포하는 말씀은 두루 전파된 말씀(레마)이다. 그것은 예수님에 대한, 그의 생애, 죽으심과 부활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리스도는 판톤퀴리오스("만유의 주")이시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는 먼저는 유대인들에게 다음은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화평과 기쁨의 좋은 소식이다. 계 10:7에서 하나님께서는 구약과 신약의 그의 종, 선지자들에게 그의 구원의 계획을 계시하셨다. 그것은 적그리스도의 지배를 정복한 후에 메시아의, 주의 나라의 도래를 선포하기 때문에 좋은 소식이다.||(e) 천사들.|가브리엘은 사가랴에게(눅 1:19) 세례(침례) 요한의 탄생을 선포한다. 한 천사는 목자들에게 구세주의 탄생에 대해 이야기한다(눅 2:10). 두 경우 모두 그 메시지는 복음이다. 왜냐하면 갈망하던 마지막 때, 메시아적 구원의 도래가 선포되기 때문이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G. Friendri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