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해설 151 페이지 > 기독정보닷컴

에크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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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yesterday||#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부사 에크데스(Soph. 이래)는|(a) '어제' yesterday를 의미하며,|(b) 더욱 일반적으로 '어제 막 지나가 버린 시간'을 의미한다(Soph.).||#2. 신약성경의 용법.||부사 에크데스는 신약성경에서 3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요 4:52; 행 7:28에서 에크데스는 '어제'를 의미한다.|(b) 히 13:8에서 에크데스는 '이제 막 지나가 버린 시간'에 대해 사용되었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에크드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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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의 있는 hostile||#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형용사 에크드로스는 에크도스(%1066: 미움, 증오)에서 유래했으며,|(a) 능동적으로 '적의 있는',|(b) 수동적으로 '증오 받는, 가증한, 미운'을 의미한다.||이 단어는 처음에 수동적으로 사용되었으나 후에 능동적으로 사용되었다. 미소스(%785)가 '적대적인 성향'을 나타내고 폴레모스(%4171)가 '전쟁' war을 나타내는데 반해, 에크드로스($2190)는 '적개심' 그 자체를 의미한다. 히브리 용법도 이와 비슷하다.||#2. 70인역본의 용법.||형용사 에크드로스는 70인역본에서 약 500회 나오며, 주로 히브리어 아야브(미워하다, 적대하다)의 역어로 사용되었다. 그렇지만 이 히브리어가 개인적인 원수나 국가적인 원수 모두를 나타내는데 반해, 에크드로스는|① 전쟁이나 일상 생활의 적들,|② 적국들, 이스라엘이나 이스라엘 왕의 반대자들,|③ 의인의 원수들, 그리고|④ 하나님의 원수들을 언급하여 보다 더 인격적인 의미를 지닌다.|이 단어의 용법의 뿌리는 이스라엘과 이방인간의 관계는 우호적이었다가 전쟁 상태로 바뀌거나, 그 반대가 되기도 하는 순전히 정치적인 관계가 아니며, 따라서 이방인은 전쟁시에만 폴레미오이(%786)이고 평화시에는 필로이(%787)인 것이 아니고, 그들의 관계는 항구적으로 적대적인 관계라는 사실에서 발견된다.|따라서 이스라엘의 적(원수)은 여호와의 적(원수)이다(출 23:22). 이스라엘의 패배는 하나님의 명예를 떨어뜨리는 것이다(수 7:8). 다윗의 간음은 여호와의 적대자들이 하나님을 모독할 거리를 얻게 만든다(삼하 12:14).|그 반대는 이스라엘 내의 적들이 문제가 되는 사 1:24에서 더욱 순수하게 종교적인 것이 된다. 원수들에게서 해방되는 것이 이스라엘의 소망이지만(사 62:8) 의인과 악인 사이의 계속되는 적대도 일반적인 주제이다(시 6:10 등).|랍비의 적대자들 중에는 우상 숭배자, 배교한 개종자, 배교자 그리고 악한 이스라엘인들도 포함된다. 정당하지 않은 증오는 금지되나 구약성경적 의미에서 언약 관계를 붕괴시키는 자들인 원수들에 대한 합법적인 증오도 있다. 요세푸스는 보다 일반적인 헬라의 견지에서 하나님에 대한 증오에 대해 언급하지만 위경은 종종 마귀를 에크드로스라고 부르고 랍비들은 잠 25:21-22의 원수를 악한 충동으로 간주한다.||#3. 신약성경의 용법.||형용사 에크드로스는 신약성경에서 32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에크드로스는 개인적인 원수들에 대해 사용되었다: "그런즉 내가 너희에게 참된 말을 하므로 원수가 되었느냐"(갈 4:16).||(b) 에크드로스는 하나님의 백성의 원수들에 대해 사용되었다.|① 눅 1:71에서 이스라엘의 원수: "우리 원수에게서와 우리를 미워하는 모든 자의 손에서 구원하시는 구원이라".|② 눅 19:43에서 예루살렘의 원수: "날이 이를찌라 네 원수들이 토성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③ 계 11:5에서 신약의 증인들의 원수: "만일 누구든지 저희를 해하고자 한즉 저희 입에서 불이 나서 그 원수를 소멸할찌니 누구든지 해하려 하면 반드시 이와 같이 죽임을 당하리라".|④ 마 10:36에서 가족 사이에 있는 신자들의 원수: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c) 에크드로스는 하나님과 그리스도에 대한 적의를 가리킨다(눅 19:27; 빌 3:18; 행 13:10; 막 12:36; 행 2:34-35; 고전 15:25; 히 1:13에 인용된 시 110:1; 고전 15:25에서 바울은 죽음을 포함하여 하나님께 적대적인 모든 세력들을 언급한다.).||(d) 마 5:43-44의 언급은 하나님과 그의 백성들의 원수들을 사랑하라는 것(이전의 미움과는 대조됨)이며, 살후 3:15에도 똑같은 견해가 반영되어 있는 것 같다.||(e) 본래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원수들이다(롬 5:10; 롬 11:28; 골 1:21; 약 4:4). 그 요지는 비록 롬 11:28에서 유대인들이 복음 때문에 미움을 받기도 하고(수동태) 조상 덕택에 사랑을 받기도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을 미워했다(능동태)는 것이다.||(f) 에크드로스는 마 13:24 이하와 눅 10:19의 비유에서 마귀를 가리키며, 이 마귀는 우리 및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의 절대적인 원수이다.|(참조: W. Foerster; Walter Bauer; J. H. Thayer).
에키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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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사 viper||#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에키드나(Hes.; Hdt. 이래)는 에키스(독사)에서 유래했으며, '독 있는 뱀', 곧 '살무사'나 '독사'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에키드나는 신약성경에서 5회 나온다.||(a) 요한은 유대인들, 특히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에 대해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책망했다.|① 마 3:7, "요한이 많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이 세례 베푸는데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② 마 12:34,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③ 마 23:33,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요한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자기 만족과 죄에서 살면서 지금 진실한 회개없이 세례(침례)에 단순한 형식적 참예로 임박한 진노를 예방하려고 나아오는 것을 보고 책망한 것이다. 그들은 마치 광야의 불길 앞에서 쫓기고 추수하는 자의 낫 앞에서 달아나는 독사나 작은 동물과 같았다.|독사의 독은 마태복음의 비유에서 본질이 되는 중요한 것이며 독사의 본성은 악하고 파괴적이기 때문에, 누가 장차 임할 진노에 대하여 경고했는가? 혹은 어떻게 선을 말할 수 있는가? 혹은 어떻게 지옥을 피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제기된다(마 3:7; 마 12:34; 마 23:33).||(b) 행 28:3에서 독사가 바울의 손을 물고 있었다: "바울이 한뭇 나무를 거두어 불에 넣으니 뜨거움을 인하여 독사가 나와 그 손을 물고 있는지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W. Foerster).
가지게 하려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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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다, 소유하다.||에코는 기본동사이며, '가지다, 지니다, 소유하다, 획득하다, 점유하다, 보유하다'를 의미한다.|에코는 신약성경에서 710회 사용되었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동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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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지 till, until.||헤오스(Homer. 이래)는 전치사, 부사, 접속사로 사용된 기본불변사이며, '~까지, ~동안에'를 의미한다. 헤오스는 신약성경에서 146회 사용되었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스블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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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불론 Zebulun.||#1. 구약성경.||자불론은 히브리어 제불론의 음역이며, '거주'를 의미한다. 한글 개역 성경에서 '스불론'으로 번역했다.||스불론은 야곱이 레아에게서 낳은 여섯번째 아들이다(창 30:19, 20; 창 46:14; 대상 2:1).||스불론의 자손은 이스라엘의 한 지파를 이루었다(민 2:7; 민 10:16). 첫번째 인구 조사에서 5만 7천 4백명이었고(민 1:30-31), 두번째 인구 조사에서 6만 5백명으로 증가되었다(민 26:26-27).||스불론 지파에 분배된 지역은 갈릴리 지역에 위치하는데, 서쪽에 아셀 지파, 동쪽에 납달리 지파, 남서쪽에 므낫세 지파, 남동쪽에 잇사갈 지파와 접해 있다. 따라서 스불론 지파는 육지로만 둘러싸인 내륙으로 산림 지역에 위치하여 있었으며, 종종 그들의 세력을 확장하여 지중해 해변으로 뻗어 나갔다(참조: Jos. Ant.). 이 지파는 그들의 지역 내의 가나안 원주민들을 쫓아내지 못했다(삿 1:30). 창 49:13에 이 지파에 대한 야곱의 예언과 신 33:18-19에 모세의 축복이 있다.||스불론 지파의 영토 내에 레위인의 성읍이 있었으며(수 21:34, 35; 대상 6:77), 바락과 드보라와 함께 가나안 원주민에 대항하여 싸웠으며(삿 4:6, 10; 5:14, 18), 기드온을 도와 미디안 사람들과 싸웠다(삿 6:33-35). 사사 엘론은 이 지파에 속한 사람이다(삿 12:11, 12).||스불론 지파의 많은 용사들이 다윗에게 충성을 다짐했으며(대상 12:33, 38, 40), 히스기야의 유월절 준수 명령을 많은 사람이 비웃었으며(대하 30:1, 10, 18), 히스기야의 개혁에 몇 사람이 참가했다(대하 30:10-12). 에스겔의 종말론적 환상에 이 지파에 관해 나타난다(겔 48:26, 27, 33).||스불론 지파에 대한 이사야의 예언이 신약에서 성취되고(사 9:1, 2; 마 4:13-16), 그리스도께서 스불론 지역을 방문하셨다.||#2. 신약성경.||스불론은 신약성경에서 3회 나온다.||(a) 마 4:13; 마 4:15에서 스불론은 예수님의 거주지에 관하여 사용되었다: "13 나사렛을 떠나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 해변에 있는 가버나움에 가서 사시니 14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15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예수님이 이곳에 사신 것은 스불론 땅에 대한 이사야의 예언의 성취인 것이다(사 9:1, 2).||(b) 계 7:8에서 스불론 지파의 일만 이천명의 인침을 받았다: "스불론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요셉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베냐민 지파 중에 인맞은 자가 일만 이천이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삭개오
Zakcai'o"
삭개오 zachaus(인)||작카이오스는 히브리어 자카이(2140)의 음역이며, '순전한' 또는 '의로운'을 뜻하며, 한글 개역 성경에서 '삭개오'로 음역했다.||삭개오는 신약성경에서 눅 19:2; 눅 19:5; 눅 19:8에만 나온다.|삭개오는 여리고의 부유한 유대인 세리이며, 키가 작다고 알려진 그는 나중에 아주 특이한 상황 하에서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던 사람이다(눅 19:1-10).|누가만이 감동적인 삭개오에 관한 이야기를 상세히 기술한 유일한 복음서 기자이다. 유대인들을 위하여 쓴 세리 마태의 마태복음에 이 삭개오에 대한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지 않은 것은 놀라운 일이지만, 이 삭개오의 이야기는 "이방인들을 위해 쓰여진 누가복음"의 주된 특징에 매우 잘 어울리며, 틀림없이 누가는 이 이야기를, 복음은 하나님과 멀어진 모든 자들을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 포함시켰을 것이다.||누가는 삭개오가 세리장이면서 또한 "부자였다"는 것에 특별히 시선을 집중시킨다. 의심할 바 없이 삭개오는 로마 정부나 또는 지방 정부로부터 여리고 지역의 세금 징수권을 사들였던 지방의 브로커였을 것이며, 그렇게 사들인 세금 징수권으로 그는 실제로 세금을 걷는 세금 징수 대행업자들에게 세금을 징수하도록 하였을 것이다. 그들 모두는 막대한 수수료를 벌어들여 가난한 자나 부자나 똑같이 부를 축적했을 것이다.|여리고는 종려나무 숲과 발삼으로 유명하였고(Jos. Antiq., xv, 4. 2.) 또한 욥바와 예루살렘 및 요단 동부 지역 사이의 무역이 행해지던 곳이다. 그 곳에서 부를 축적하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삭개오가 여리고에서 가장 미움을 받는 사람 중 하나였을 가능성이 있으며, 그 사건을 목격한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하여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라고 수군거린 것은 당연하였다.||예수님과 그의 제자들과 그들을 따르는 많은 무리들과 병자와 호기심 많은 사람들이 여리고를 지나 유월절을 지내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갈 때에 분명히 소동이 일어났었을 것이다. 삭개오는 예수님께서 여리고를 지나 가신다는 소문을 듣고 그를 만나기 위해 길가로 나갔다. 한 대낮에 그러한 군중들의 주의를 끌 수 있는 분이 누굴까 궁금했을 것이다. 삭개오가 "예수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알아보고자" 했다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그가 전에 개인적으로 예수님을 만났었다는 암시는 없다. 삭개오는 키가 작았기 때문에 군중들 너머로 바라다 볼 수가 없었다. 삭개오는 예수님께서 무리들과 함께 천천히 움직이사 자기가 있는 거리를 지나 가시리라 예상하여 앞으로 달려나가 요단 골짜기에 흔한 뽕나무(무화과 나무의 일종) 위로 기어 올라갔다. 예수께서 멈추어 서셔서 소란한 군중들 머리 위에 있는 그를 보시고 부르실 때에, 삭개오는 분명히 놀랐었을 것이고 모든 군중이 놀라움으로 나무위에 있는 여리고의 세리장을 올려다 볼 때 약간 무안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예수님께서 하신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라는 말씀은 신적인 인지 능력의 일면이며, 또한 이 이야기 전체에 스며있는 목적이다. 전지하신 주님께서는 나다나엘을 단번에 아심같이 삭개오의 마음을 아셨다(요 1:48).||뒤따르는 삭개오의 변화는 여리고 성읍을 꽤 동요시켰을 것임에 틀림없다. 증오의 대상이던 세리, 압제적인 로마의 협력자가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다. 예수님의 사역에 의해서 개심한 수많은 사람들이 기록되지 않았지만, 이 삭개오에 대한 아야기는 언제까지나 기억될 것이다. 여기 아주 정반대의 두 사람, 죄인들의 머리된 자와 사랑의 주 되시는 분이 서로 만났고 사랑이 승리한다. 이것은 복음의 의도하는 바이며 요점이다: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눅 19:10). 그 키작은 유대인의 개심은 모든 진실한 그리스도인들의 거듭남의 본보기이다.||그는 급히 나무에서 내려와 믿음으로 크게 기뻐하며 예수님 앞에 서서 곧바로 자신의 믿음과 회개의 실제적인 증거를 보여 주기 시작했다. 그의 삶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완전히 변화되었다. 자발적으로 그는 솔직하게 자신의 악한 생활의 죄들을 고백한다. "보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겠사오며"라는 삭개오의 말에는 그의 죄가 어떠한 것인지를 보여준다. 이제 그는 모든 믿는 자들은 가난한 자나 부요한 자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라는 것을 보여 주면서 이전에 행하였던 것과는 정반대로 행하고자 하였다.|그 당시 유대인의 관습은 남자의 연 수입 중 1/5를 구제하는 일을 위해 헌납하는 것이었으나 삭개오는 이를 훨씬 넘어섰다.|다음으로 그는 자신이 정당한 방법으로 부를 축적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그의 부하들도 얼마나 많이 허위와 압박과 착취를 통해 참으로 많은 재산을 사람들로부터 강탈했을 것이다)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 배나 갚겠나이다"라고 말했다. 성경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그가 "내가 죽을 때"가 아니라 지금 내가 그것을 주겠다 라고 말한 것에 주목할 것이다. 삭개오는 유대의 율법에서 도적질한 자가 배상해야 하는 액수의 두 배를 제의했다(출 22:1; 민 5:6).||"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도다"(눅 19:9)라는 예수님의 죄 용서하심의 선언은 단지 삭개오 자신만 아니라 그의 모든 가족을 포함하는 말씀이다. 이 표현은 옛 언약 아래에 있는 유대인의 가족 개념 속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이제 삭개오는 참된 아브라함의 후손, 약속의 자녀이며 아브라함의 축복이 용서하시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를 위해 성취되었다. 이러한 축복이 그들의 직업으로 인해 이방인과 같이 여겨지던 자들에게까지도 성취되는 것이다(마 18:17).|Clementine Homilies(3: 63)은 삭개오가 나중에 사도 베드로의 동역자가 되어 가이사랴 지방 교회의 감독이 되었다고 말하고 있으나 그 기록은 사실에 근거하고 있지는 않다.|(참조: L. M. Petersen).
세라
Zarav
세라 Zerah(인)||#1. 구약성경.||세라는 히브리어 제라(2226)에서 유래했으며, '비추다'는 어근에서 파생되어 '빛이 비춤, 여명'을 의미한다.|세라는 구약성경에서 6명이 이 이름을 가지고 나타난다.||1. 에돔의 한 족장|(에서와 이스마엘의 후손, 창 36:13, 17; 대상 1:37 등).||2. 에돔의 두 번째 왕 요밥의 아버지|(창 36:33; 대상 1:44).||3. 시므온의 지파의 세라 가족의 조상인 시므온의 아들|(민 26:13; 대상 4:24).||4. 레위 지파 게르손 자손 가족의 한 사람|(대상 6:21, 41).||5. 애굽인 혹은 구스인|(대하 14:9-13).||6. 유다와 다말 사이에 태어난 쌍둥이 중 하나|(창 38:30; 창 46:12; 대상 2:4).||세라라는 이름은 그의 출생의 이상한 성격 때문이다. 쌍둥이가 태어날 때 한 아이의 손이 나와 홍사를 그 손목에 매어 주자 정작 다른 아이가 먼저 태어났다. 그의 손이 먼저 밖에 나왔기 때문에 그의 이름을 세라라고 하였다. 후에 그는 세라 가족(민 26:20), 혹은 "세라 자손"(대상 9:6; 느 11:24)이라는 유다 지파의 한 분파를 이루었다. 그의 아들은 다섯이며, 시므리, 에단, 헤만, 갈골과 다라였다(대상 2:6). 그는 아간(대상 7:1, 18, 24; 대상 22:20)과 브다히야(느 11:24)의 조상이었다.||#2. 신약성경.||자라, 즉 세라는 신약성경에서 마 1:3에 한번 예수님의 계보에서 그의 조상으로 나타난다: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 베레스는 헤스론을 낳고 헤스론은 람을 낳고". 이 세라는 6번째의 세라이다.|(참조: J. A. Thompson).
사가랴
Zacariva"
사가랴 또는 스가랴||자카리아스는 히브리어 제카르야(2148)의 음역이며, '여호와께서 기억하셨다'를 의미한다. 사가랴라는 표기는 스가랴의 다른 표기이다.|성경에서 이 이름을 가진 자는 31명이다. 신약성경에서는 이들 중 2명이 언급되어 있다.||#1. 세례(침례) 요한의 아버지 사가랴.||(a) 사가랴는 아비야 반열의 의로운 제사장이었다: "5 유대 왕 헤롯 때에 아비야 반열에 제사장 하나가 있으니 이름은 사가랴요 그 아내는 아론의 자손이니 이름은 엘리사벳이라 6 이 두 사람이 하나님 앞에 의인이니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하더라"(눅 1:5; 눅 1:6).||(b) 사가랴는 그의 아내가 아들을 낳으리라는 천사의 고지를 받았다: "천사가 일러 가로되 사가랴여 무서워 말라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네게 아들을 낳아 주리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눅 1:13).||(c) 사가랴는 천사의 고지를 믿지 않았다: "사가랴가 천사에게 이르되 내가 이것을 어떻게 알리요 내가 늙고 아내도 나이 많으니이다"(눅 1:18).||(d) 사가랴는 그 불신으로 인하여 한동안 벙어리가 되었다: "보라 이 일의 되는 날까지 네가 벙어리가 되어 능히 말을 못하리니 이는 내 말을 네가 믿지 아니함이어니와 때가 이르면 내 말이 이루리라 하더라"(눅 1:20).||(e) 그의 아들이 난지 팔일 만에 서판에 그 이름을 요한이라 기록해 주었다(눅 1:59-눅 1:53).||(f) 사가랴의 예언(눅 1:67-눅 1:80).||#2. 바랴갸의 아들.||이 사가랴는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죽임을 당하였다: "곧 아벨의 피로부터 제단과 성전 사이에서 죽임을 당한 사가랴의 피까지 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과연 이 세대가 담당하리라"(눅 11:51; 병행구 마 23:35). 이 사가랴는 유다 왕 요아스 때에 대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들인 듯하다. 그는 하나님 중심의 사람으로서 자기 아버지가 죽은 후, 사람들이 하나님을 떠나 배교의 길을 가는 것을 비난했다. 요아스는 성전 뜰 안에서 그를 돌로 쳐죽이도록 명했다(대하 24:20-22). 예수님께서 눅 11:51에서 언급한 사람은 일반적으로 이 스가랴로 인정받고 있다. 성경에서는 이같이 죽임을 당한 사람을 달리 언급하고 있지 않다.|(참조: C. L. Feinberg).
살게 하다
zavw
살다 live.||#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자오(Homer 이래)는||(a) 물리적 생명으로는 '살다'를 의미하며, '사는 것', 병든 자가 '회복되는 것', 사람이 건강하게 '살아가는 것', 어떤 영역에서 '생을 보내는 것', 어떤 것에 근거하여 '살아가는 것',||(b) 초자연적 생명으로 '살다'를 의미한다.||(c) 생명의 행위로서 '살다'를 의미하며, 어떤 자나 어떤 것을 위하여 사는 것, 어떤 것과 관계하여 사는 것을 나타낸다.||#2. 70인역본의 용법||자오는 70인역본에서 500회 이상 나오며, 주로 하야(살다, 생명을 가지다, 영원히 살다)와 하이(살아있는)의 역어로 사용되었다.|자오는 70인역본 에서 '산(살아있는) 것들'(창 1:20; 창 2:7), 사람이 '다시 살아나는 것'(왕상 17:23), 병에서 회복되거나 낫는 것(왕하 1:2; 왕하 8:8), '살아계신' 하나님(왕하 19:16; 사 37:4 등), 내세의 영광에서 '사는 것'(집회서 48:11; 신 4:1; 신 8:1; 신 30:16), 생명의 행위로 '사는 것'(잠 20:16), 어떤 자나 어떤 자를 위해 '사는 것'(마카베오사서 7:19; 16:25), 어떤 것에 관하여 사는 것(창 26:19; 렘 2:13; 약 14:8 등)을 나타낸다.||#3. 신약성경의 용법||자오는 신약성경에서 140회 나오며, '살아있다, 살다'는 의미에서 삶을 나타낸다.||(a) 자오는 육체적 삶에 대하여 사용되었다.|① 일반적으로 사는 것, 롬 7:1; 롬 7:2; 롬 14:8; 고전 7:39; 살아있는 영, 고전 15:45; 살 소망, 일생동안, 히 2:15; 살아있을 동안, 마 27:63; 살아있는 우리들, 고후 4:11; 살전 4:15, 살전 4:17.|② 죽었다가 다시 사는 것에 대하여, 사람에 대해, 마 9:18; 행 9:41; 행 20:12; 계 20:4; 계 20:5; 예수님에 대해, 막 16:11; 눅 24:5; 눅 24:23; 행 1:3; 롬 14:9; 고후 13:4; 계 2:8.|③ 병든 자가 낫거나 회복되는 것에 대해, '낫다, 회복하다', 막 5:23; 요 4:50; 요 5:51; 요 4:53; 근심이 물러가는 것, 딤전 3:8.|④ 건강한 사람에 대해, '살아간다, 살아있다', 행 25:24; 행 28:4; 약 4:15.|⑤ 죽지 않을 존재들에 대하여, 멜기세덱, 히 7:8; 하나님, 마 16:14; 마 26:63; 행 14:15; 롬 9:26; 고후 3:3; 고후 6:16; 살전 1:9; 딤전 3:15; 딤전 4:10; 히 3:12; 히 9:14; 히 10:31; 히 12:22; 계 7:2 등.|⑥ 육신으로 산다(하늘의 생활과 반대되는 것), 빌 1:22; 갈 2:20; 세상에서 산다, 골 2:20; 하나님 안에서 산다, 행 17:28.|⑦ …에 생을 의지하는 경우에 떡으로 산다, 마 4:4; 눅 4:4; …에서 생활비를 얻는다, …으로 먹고 산다, 고전 9:14.||(b) 자오는 하나님의 자녀가 초자연적 생명으로 세상에서 사는 것을 나타낸다, 요 5:25; 요 6:57; 롬 7:9; 고후 13:4; 갈 2:19, 갈 2:20; 갈 5:25; 계 3:1.||(c) 자오는 하나님의 자녀가 내세의 영광 가운데서 사는 것을 나타낸다, 눅 10:28; 요 11:25; 롬 8:13; 히 12:9; 빌 1:21; 영생을 얻다, 요 6:51, 요 6:58; 그리스도와 함께 산다, 살전 5:10; 그를 통하여 살 것이다, 요일 4:9; 하나님처럼 영으로 산다, 벧전4:6;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운 자는 살 것이다, 롬 1:17; 갈 3:11; 히 10:38.||(d) 자오는 생의 행실로서 사는 것을 나타낸다.|① 부사나 그 밖의 수식어를 동반하는 경우, 방탕한 생활을 한다, 눅 15:13; 갈 2:14; 경건하게 산다, 딤후 3:12; 딛 2:12; 바리새인으로 산다, 행 26:5; 믿음 안에서 산다, 갈 2:20; 죄에서 살다, 롬 6:2; 그러한 것들 가운데 살다, 골 3:7; 롬 8:12, 롬 8:13, 남편과 같이 산다, 눅 2:36.|② …을 위해서 산다, 눅 20:38; 롬 6:10, 롬 6:11; 갈 2:19; 롬 14:8; 고후 5:15; 벧전 2:24; 자신을 위해 산다, 롬 14:7.||(e) 분사는 사물에 대하여 비유적으로 사용된다.|① 생물을 가리켜, 요 4:10, 요 4:11; 요 7:38.|②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생명을 가졌거나 또는 그것을 가져오는 모든 것에 대해서, 산 말씀, 행 7:38;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 벧전 1:23;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다, 히 10:20; 산 길, 히 10:20; 산 소망, 벧전 1:8; "산 떡",요 6:51; 산돌, 벧전 2:4; 산 제사, 롬 12:1.|(참조: Walter Bauer; R.Bultmann).
세베대
Zebedai'o"
세베대 Zebedee(인)||제베다이오스는 히브리어 즈밧야(2069)에서 유래했으며, '여호와께서 주셨다'를 의미한다.||(a) 세베대는 갈릴리의 어부로 야고보와 요한의 아버지이다(마 4:21; 마 4:22; 마 10:2; 마 26:37; 막 1:19; 막 1:20; 눅 5:10; 요 21:2).||(b) 세베대는 살로메의 남편이었다: "그 중에 막달라 마리아와 또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세베대의 아들들의 어머니도 있더라"(마 27:56; 참조: 막 15:40; 막 16:1).|(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더운
zestov"
'뜨거운' hot.||#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형용사 제스토스(Strab. )는 '끓는, 뜨거운'을 의미하며, '구운' 고기, '작열하는' 모래, '끓는' 물에 대해, 그리고 '미지근한' tepid, 또는 '차가운' cold의 반대인 '뜨거운'이란 의미로 사용되었다.||#2. 신약성경의 용법.||형용사 제스토스는 신약성경에서 3회 나오며, 계 3:15; 계 3:16에만 사용되었다: "15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16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라오디게아 교회에 대한 책망에 초기 기독교의 열심과 세상 사이에 사상 유례없는 충돌이 있었다는 증거가 있다. 히에리폴리의 뜨거운 샘(온천)이 오직 라오디게아에서만 미지근하다는 사실을 암시하는 것이라면 이것은 중요한 요점이 아니다. 또 신약성경에서의 제오($2204)의 사용이 성령에 의한 내적인 열심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우리를 정당화 시키지도 않는다. 정말로 문제가 되는 것은 지금 문 밖에서 두드리시는 주님께(계 3:20) 필요하다면 죽기까지라도 절대적으로 자신을 제물로 드리려는 열정이다. 그 책망은 "아직은 아니다"나 현재 "이제는 않다" 중의 하나가 아니다(계 2:4 이하; 계 3:19). 특색 없는 미지근함은 그리스도에 대한 완전한 소원함(alienation)이나 적대보다 더 나쁘고, 더 극복하기 어렵다. 심판자께서는 열성이 없는 자들을 미지근하고 맛없는 음료를 토하듯이 혐오스러워 하시면서 거절하신다. 이제 회개와 변화의 시간이다.(Opeke)|(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겨리
zeu'go"
한 쌍 a pair.||#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쥬고스(Homer 이래)는 쥬그뉘미(결합하다, 함께 멍에를 메다)에서 유래했으며, '두 짐승이 함께 메는 멍에, 한 쌍'을 의미한다. 토 쥬고스는 호 쥐고스, 즉 하나의 멍에 아래서 함께 묶여진 것이며, 한 쌍이 된 것이라는 말과 같은 의미를 가진다.||#2. 70인역본의 용법||쥬고스는 70인역본에서 약12회 나오며, 주로 히브리어 체메드(한 쌍, 짝)의 역어로 사용되었고, 한 쌍의 짐승들을 함께 메는 멍에(줄)를 의미하며 여기에서 한 쌍(a couple )이라는 의미도 되었다(삿 17:13, 10; 삼하 16:1; 왕상 19:19, 21; 왕하 5:17; 왕하 9:25; 욥 1:3; 욥 42:12; 사 5:10).||#3. 신약성경의 용법||쥬고스는 신약성경에서 누가복음에 2회 사용되었다.|눅 14:19에서 '두 마리 짐승의 멍에'를 나타낸다: "또 하나는 가로되 나는 소 다섯 겨리를 샀으매 시험하러 가니 청컨대 나를 용서하도록 하라 하고".|눅 2:24에서 '한 쌍의 멍에'를 나타낸다: "또 주의 율법에 말씀하신 대로 비둘기 한 쌍이나 혹 어린 반구 둘로 제사하려 함이더라".|(참조: Walter Bauer; H.-G.Link; C.Brown ).

zeukthvrio"
연결하거나 묶기에 적합한.||형용사 쥬크테리오스는 쥬그뉘미(%11: 멍에를 씌우다)에서 유래했으며, '함께 연결하거나 묶기에 적합한'을 의미한다.||%453 쥬크테리아||명사 쥬크테리아는 형용사 쥬크테리오스에서 유래했으며, '매는 것, 줄, 끈 띠'를 의미한다.|이 명사는 신약성경에서 행 27:40에 한번 킷 '줄'에 대하여 사용되었다: "닻을 끊어 바다에 버리는 동시에 킷줄을 늦추고 돛을 달고 바람을 맞추어 해안을 향하여 들어가다가".|(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쓰스
Zeuv"
쓰스, 제우스 Zeus.||#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쥬스(Homer 이래)는 그 어원은 불확실하며, '제우스' Zeus, 라틴어 Jupiter(A.V.)에 해당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쥬스는 신약성경에서 사도행전에 2회 나온다.||(a) 행 14:12에서 바나바를 쥬스라고 한다: "바나바는 쓰스라 하고 바울은 그 중에 말하는 자이므로 허메라 하더라".||(b) 행 14:13에서 성 앞에 있던 제우스신의 제사장에 대하여 언급한다: "성밖 쓰스 신당의 제사장이 소와 화관들을 가지고 대문 앞에 와서 무리와 함께 제사하고자 하니".|(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