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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에로뒤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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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에게 제물로 바쳐진 (고기)||#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형용사 히에로뒤토스는 히에로스($2413: 거룩한, 신에게 바쳐진)와 뒤오($2380: 바치다, 희생하다)에서 유래했으며,||(a) 형용사로는 '신에게 제물로 바쳐진'(Pind.),|(b) 실명사로는 '우상들에게 희생 제물로 바쳐진 고기'(ps. -Aristot., Plut.)를 의미한다. 이 단어는 주로 제의적 용법으로 사용되었다.||#2. 신약성경의 용법.||형용사 히에로뒤토스는 신약성경에서 고전 10:28에 한번 나온다: "누가 너희에게 이것이 제물이라 말하거든 알게 한 자와 및 양심을 위하여 먹지 말라". 여기서 히에로뒤토스는 이교도의 제사에서 바쳐진 제의적 고기'를 의미한다. 바울은 다른 곳에서(참조: 고전 8:1; 고전 8:4; 고전 8:10; 고전 10:19 등) 에이돌로뒤톤(우상들에게 바친 음식이나 고기)으로 표기한다.
성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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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 sanctury, 성전 temple||#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히에론은 히에로스($2413)의 중성이다. 토 히에론은 가장 흔히 '성소(sanctuary), 제사를 올리는 곳(cultic centre)'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 단어는 '성전의 건물'(temple building)을 의미하는 나오스($3485)나 '거룩한 영역'(sacred area)을 의미하는 테메노스(성전 Temple)와 대조적으로, 이것들 보다 더 일반적인 의미를 갖는 단어로 '성전의 건물, 신성한 영역', 그리고 지방에서 행해지는 제의의 장소로서의 '거룩한 숲' 등 두루 의미할 수가 있다.||#2. 70인역본 및 기타 용법||(a) 70인역본. 구약성경은 히에로스에 관한 결정에 일치하여 토 히에론을 실제적으로 유대인의 성전에 대하여 결코 사용하지 아니하였다. 하지만 제사장은 호 히에류스라고 하였다. 에스겔서가 보인 것과 같이(겔 27:6; 28:18; 히브리어 상당어 없음), 히에론은 이교 사당들에 대하여 사용하였다. 따라서 구약 70인역본은 우상숭배에 대한 반대를 표현한다.|예루살렘 성전에 대한 통상적인 용어로 토 히에론을 피하고 단순히 '하나님의'나 '주의' 오이코스, 오이코스 하기오스나, 또는 나오스, 나오스 하기오스를 즐겨 사용하였다. "하나님의 집"이라는 단순한 용어는 내적 고결(nobility)을 지니고 있다. 원래 히에론만이 종교적 용어이기 때문에, 나오스 역시 거짓된 연상을 일으키지 아니한다. 우리는 구약 70인역본에서 하나님의 집, 곧 성전이나 성소(대상 29:4; 대상 9:27; 대하 6:13), 제단 아래층(겔 45:19)에 대하여 히에로스의 속격으로 잘못 번역한다. 따라서 역대기만이 아주 드물게 기본 방식에서 벗어난다.||(b) 그러나 외경에서는 구약 70인역본과는 대조적으로 예루살렘 성전을 가리키는 말로 토 히에론을 빈번히 사용한다. 여기에서 성전을 토 히에론(에스델일서 1:8; 마카베오일서 15:9; 2:9; 3:16; 4:3 등)이나 토 히에론 투 데우(에스델일서 8:18; 참조: 마카베오일서 10:32; 에스델일서 5:43), 토 히에론 투 퀴리우(에스델일서 8:46 등)로 표현한다.|이 단어는 항상 전체에 대한 포괄적인 용어이다. 여기서는 앞뜰을 가리키는 것 같다(에스델일서 1:5; 마카베오이서 6:4). 이곳이 안티오커스가 폭력적인 신성모독을 자행한 곳이기 때문이다.||(c) 요세푸스와 필로의 용법 - 일반적으로 요세푸스는 헤롯 성전에 대하여 충분히 설명한다. 요세푸스와 필로는 성막, 솔로몬의 성전, 이교 신전들에 대해 토 히에론을 사용한다. 요세푸스의 글에서 히에론은 성전의 뜰 전체나 성전 언덕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한편 나오스는 토 하기온, 타 하기아와 마찬가지로 엄밀한 의미에서의 성전을 가리킨다. 하지만 토 하기온과 타 하기아는 장소의 거룩성을 특별히 강조한다.||#3. 신약성경의 용법||(a) 신약성경에서 토 히에론은 거의 모두 헤롯 성전을 가리키는 전문용어로 사용된다(고전 9:13에 나오는 "성전"과 행 19:27에 나오는 "아데미의 전 각"만이 예외이다). 이 단어와 나오스의 가장 중요한 차이점은 토 히에론은 절대로 정신적인 실체를 의미하는 적이 없다는 점이다. 이 단어는 언제나 담과 문과 현관과 뜰과 건물로 이루어진 구조물을 의미한다.||* 성전 언덕으로서의 토 히에론, - 이방인들도 들어갈 수 있는 성전 언덕이나 성전의 가장 바깥 뜰을 나타낸다. 여기에서 소경과 저는 자들이 예수님께 나아와서 고침을 받았고 아이들이 그에게 기뻐하며 환호하였다(마 21:14; 마 21:15). 여기에서 예수님께서 사고 파는 자들을 좇아내어 성전 정화하였다(마 21:12; 참조: 막 11:5; 눅 19:45; 요 2:14).||* 토 프테뤼기온 투 히에루, - 마귀가 예수님을 세운 곳은 문자적으로 성전 날개(부분)이다. 70인역본에서 프테뤽스와 지소사 프테뤼기온은 '날개'를 뜻하는 히브리어 카나프의 역어로 사용했다. 건축물에서 날개(익) 같은 것으로 '흉장, 작은 탑, 뾰족한 지붕'을 가리킨다. 이 성전 날개(프테뤼기온)와 마귀가 인용한 시편의 "네가 그 날개(프테뤽스) 아래 피하리로다"(시 91:4)라는 구절 사이에 말의 기교가 있는 것 같다. 시험 기사의 기자는 우리가 이 단어로 연상되는 것을 보기를 원한다. 무엇이 하나님이 보호하시리라는 약속을 잘못 사용하도록 그 아들을 유혹하는데 보다 적절한 무대 배경이 될 수 있겠는가? 성전은 하나님의 임재하심이 그곳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효과적으로 나타나기에 매우 좋은 장소이다(W.Schneider; C.Brown).||* 예수님과 사도들이 가르치셨던 토 히에론, - 우리는 히에론에서 예수님과 사도들이 가르치시고(막 14:49; 마 26:55; 눅 19:47; 눅 21:37; 눅 22:53; 요 17:14; 요 17:28; 요 18:20; 행 5:20), 예수님이 12세 때에 선생들 중에서 토론하시고(눅 2:46), 그곳의 솔로몬 행각에서 예수님이나 사도들이 가르친 것에 대해 읽는다(요 10:23; 행 3:11; 행 5:12). 그 장소는 성전 바깥 뜰에 있는 교육관이거나 기둥으로 받친 집회장이다.||* 미문(the Beautiful Gate), - 행 3:2 이하에서 병을 고친 장소는 여인의 뜰로 들어가는 동편 입구에 있는 청동으로 된 고린도식 문이다(Josephus Jewish War 2. 4lI).||* 여인들의 뜰로서의 토 히에론.- 이 곳은 눅 2:37에서 안나가 기도하던 곳이다. 예수님은 바로 이 곳에서 가난한 과부를 주시하셨으며(막 l2:4l 이하), 이 곳에서 가르침을 베푸셨고(요 8:20), 아마 요 8:2 이하에 기록된 사건의 장소도 이곳일 것이다. 어머니들이 정결의 제물을 가져온 곳도 바로 이곳이다(눅 2:24).||* 성전 안뜰.- 눅 18:11; 눅 24:53; 막 11:11 ; 요 7:37 - 요 7:38; 행 21:26에서 토 히에론은 성전 안뜰을 가리킨다.||* 진정한 의미의 성전.- 오직 제사장만이 이곳에 들어갈 수 있다. 휘장이 성소와 지성소로 들어가는 입구를 가리고 있다(마 27:51).||(b) 성전과 관련해서 다음 세 가지 사항이 신학적으로 중요하다.|* 예수님께서는 자주 성전에 가셨으며, 또 성전을 이용하는 신앙 생활의 방식을 비난하시지 않았다. 막 13:1 이하 및 그 병행구절인 마 24:1, 눅 21:5에서 주님은 성전의 파괴를 비통한 심정으로 선언하시었다.|또한 예수님께서 환전상들과 동물 파는 사람들을 이방인을 위한 뜰 밖으로 내쫓으셨을 때, 주님은 성전을 기도를 위하여 마련된 아버지의 집이니 강도의 소굴로 만들지 말라(참조: 사 56:7; 렘 7:11)는 말씀으로 자신의 행위의 정당성을 입증하셨다(마 22:12이하; 막 1l:15이하; 눅 19:45이하). 그런데 그것은 장사하는 집으로 되어 있었다(요 2:l6). 예수님께서는 성전을 통하여 유지된,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종교적 의무들을 탈피 하려고 하지 않으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만일 성전이 무너지면 삼일만에 진정한 나오스를 세울 수 있는 자의 권위로써 성전을 정화하셨다(요 2:19; 참조: 막 14:28; 행 6:14). 이로써 이제는 특별히 거룩한 어떤 장소가 따로 있다는 생각은 불필요한 것으로 되고 말았다.||* 최초의 유대인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을 따름에 있어서 성전을 기도의 장소로 사용하였다(눅 24:53; 행 2:46).||* 복음서 기자 누가는 성전에 대한 예수님의 헌신에 특별한 관심을 보여주며 (눅 2:46), 또한 초대 그리스도인들과 심지어 이방인의 사도인 바울의 성전에 대한 헌신에도 각별히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행 21:26이하; 행 22:17; 행 24:12; 행 24:18; 행 25:8). 그는 이렇게 함으로써 기독교인은 참된 하나님의 백성이며, 유대인들에 의하여 부당하게 취급받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한다.|(참조: G.Schrenk; H.Seebass).
거룩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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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할만한||#1. 고전 문헌 및 70인역본 용법.||형용사 히에로프레페스는 히에로스($2413)과 프레포($4241:어울리다, 적당하다)에서 유래했으며, 그 개념은 성도에 적합한 것이 아니라 성전 봉사, 신성한 행위, 신성(deity)과 같은 '히에론에 부합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단어는 신성하거나 존경할만한 것을 의미한다.|70인역본에서 히에로프레페스는 2회 해당 히브리어 없이 나타난다. 마카베오사서 9:25에서 `존경스러운' 청년에 대해, 마카베오사서 11:20에서 `경건이나 신앙'에 대해 사용되었다.|이 단어는 종교적인 것이나 제의적인 것을 가리킬 수 있으나 도덕적인 것도 가리킬 수 있다. 그러나 필로의 경우에 `숭고한, 엄숙한, 존경받을만한'란 번역으로는 충분하지 못하다. 그 관점은 항상 하나님에 부합하는 것이다. 이 단어의 기타 가능한 의미는 '존경할만한, 값비싼'이다.||#2. 신약성경의 용법.||히에로프레페스는 신약성경에서 딛 2:3에 한번만 나온다. 교회의 연로한 여자들은 행실에 있어서 히에로프레페이스(거룩하며)하라고 권면한다.|목회서신에서 보이는 `장엄하고 제의적인 문체를 좋아하는 경향'에도 잘 어울린다. 문맥으로 보아 이 구절에 근접하는 병행구는 아마도 플루다크(Plutarch)의 저서 (On the Edueation of Children)일 것이다. 여기에서 어린이를 진리로 길들이는 것이 히에로프레페스라톤이라는 말로써 표현되고 있다. 따라서 딛 2:3의 의미는 교인들 중의 늙은 여자는 그들의 행위에 있어서 예법에 일치하도록 훈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제의적인 배경을 지니고 있는 본문에서 히에로프레페이스의 요점은 그들이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으로 하나님께 속하였으므로 그들은 합당한 경외심을 가지고 행동하고 살아야한다는 것이다.*
히에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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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holy.||#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형용사 히에로스는 '거룩한'을 의미하며, 신적인 능력에 의하여 정해지거나 충만 또는 구별된 것을 의미한다. 하기오스($40: 거룩한). 호시오스($3741: 믿음이 깊은, 경건한, 거룩한) 등과 같은 용어들과 뚜렷한 의미의 차이가 없으나 윤리적인 요소가 부족하다.|이 단어는 한편으로는 신의 영역의 권세(능력 )을 나타내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연, 원시 법률, 혹은 관습에 의하여 신에게 속하는 것의 신성을 나타낸다. 이 단어는 헬라 세계에서 가장 통상적으로 쓰이는 성례적, 제의적 용어다. 하기오스, 호시오스 등은 윤리적 요소를 함축하고 있는데 반하여, 히에로스는 윤리적 판단과는 전혀 상관없이 그 자체로서 거룩한 것을 의미한다. 이 단어는 신 자체에 대해서는 사용되지 않고 신들의 행위에 대해서만 사용된다.|히에로스의 중요한 용법은, (1) 신들의 영역에 속한 것, (2) 신들에 의하여 신성하게 된 것, (3) 신들에게 바쳐진 것을 의미한다.||(a) 히에로스가 `거룩한 것'으로 사용되었을 때는 제우스의 머리(Homer, Il.l5,39)와 그의 침상(Hesiod, Theog. 57), 신들의 거주지 즉, 올림푸스의 눈 덮힌 지역(Aristoph., Nubes 270), 크로노스의 잣대(Homer,Il.,l6,658), 헤르쿨레스의 활(Soph., Phil.943), 그리고 크로노스의 아들로부터 신과 같은 힘을 지닌 말들을 선사받은 아킬레스의 병거(Homer, Il.17, 464) 등이다.||(b) 히에로스가 신들이 신성하게 한 사물로 사용되었을 때는 예를 들면, 빛(Hesiod, Works 337), 공기와 밤과 낮(Homer.Ⅱ.8,66), 땅(Soph., PhiI.706), 열매를 잘 맺는 땅(Aristoph., Nubes 282), 제우스가 홀러보낸 강과 시내들(Homer. Od.lO, 351), 데메테르(Demeter)에게 바쳐진 타작마당(Homer,Ⅱ.5,499), 포세이돈(Poseidon)에게 봉헌한 생선 (Homer,Ⅱ.16,407), 그리고 아테네와 같은 도시들과 유보에아(Euboea)나 심지어 헬레스폰트( Hellespont)와 같은 섬들이다.||(c) 사람들에 대하여 사용될 때는 히에로이로 나타난다. 예를 들면, ①영응이나 왕들처럼 신의 보호 아래 있는 자들, ②황제와 같이 신성불가침의 사람, 혹은 ③비전(mysteries)에서 비법을 전수한 사람들(참조: 또한 시인들, 철학자들, 제사장들)을 가리킨다. 특히 신비종교에 입교한 사람들을 지칭하는데 사용되었다.||(d) 타 히에라는 문자적으로는 `거룩한 것들'이라는 뜻이고 단수로는 거의 사용되지 않으며, 무엇보다도 `희생제물'이라는 의미로 가장 흔히 사용되고(Homer, Ⅱ. 1,l47) 가끔 '희생제물로 바쳐진 동물'을 의미하기도 한다(Homer, Ⅱ. 2,420). 호머의 시대로 부터, 이 단어는 자주 희생제사에 수반되는 징조들에 대해 사용되었다. 그러나 보다 통상적으로는 제사에 사용되는 사물(신상, 의복, 그릇 등), 제사 때에 행하는 행동, 그리고 제사 일반을 가리키는 말로서 사용되었다(Hdt.,1,172; 참조: 마카베오삼서 3:2l).||#2. 70인 역본 및 유대교의 용법||(a) 히에로스는 70인역본에서 120여회 중 11회만 구약성경에 나오고 나머지는 외경에 나온다. 70인역본은 이 단어의 이교적인 의미를 느꼈기 때문에 코데쉬를 하기오스($40: 거룩한)로 더 즐겨 번역하고 히에로스로는 단지 한번 겔 28:18에서 "성소"에 대하여 사용하였다.|다른 이유도 있다. 히에로스는 70인 역본이 번역되고 있을 당시에 유대인들 사이에 통용되었던 거룩함의 개념과는 맞지 않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이 단어는 어떤 윤리적 요소와는 상관없이 그 자체로서 거룩한 것을 의미하는데, 이와는 정반대로 포로 이후에는 오직 율법에 순종하는 것만이 거룩한 것으로 유대인들이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예루살렘 성전조차도 70인역본이라는 헬레니즘적 색채를 강하게 갖는 문서가 나올 때까지는 토 히에론이라고 불리워지는 경우가 별로 없을 정도였다. 이렇게 부르기 시작한 문헌으로 70인역본 외에도 필로와 요세푸스의 저작을 들 수 있다(단지 대상 29:4; 참조:대상 9:27과 대하 6:13은 예외이다). 하지만 이 단어군은 제사장 및 그들의 행위에 대해서는 사용될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율법에 따르면 어느 누구도 감히 집행을 가할 수 없는 본질적으로 제사에 관한 문제였기 때문이다.||(b) 헬레니즘 유대교에서 히에로스는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①일반적으로 요세푸스는 실명사의 용법에서 하기오스의 독특한 의미를(예를 들면 성전에 관해서) 알고 있었지만, 히에로스를 형용사로 사용하기를 좋아하여 아무런 거리낌없이 많이 사용하였다. 이것은 요세푸스와 70인역본의 번역자들 사이의 독특한 차이이다. 그것은 의식적인 진로 이탈이다. 따라서 유대 고대사 13,15에서 마카베오일서 10:31의 "거룩한 장소"을 뜻하는 하기아를 폴린 히에란(거룩한 도시)으로 의도적으로 수정하였다. 그는 일반적인 문학적 표현 형식을 많이 사용하였다.|② 필로는 히에로스를 요세푸스보다 더 자주 사용하는데, 그는 70인 역본을 히에론 그람마(거룩한 기록[성경]), 부모를 공경하는 계명은 히에로스라고 하였다. 그는 히에로스로서 신적 세계와 관계를 표현했으며, 구약성경의 영향을 받아 일반 헬라어 용법에서보다 더 강한 도덕적 의미로 사용하였다.|③ 요세푸스, 필로, 외경에서 히에로스는, (1) 성경과 율법, (2) 성막과 성전에 속해 있는 거룩한 물건들, (3) 거룩한 날들, 특히 안식일에 대하여 사용되었다.||#3. 신약성경의 용법.||히에로스는 신약성서에서 단지 2회만 사용되었다. 이 단어가 자주 사용되지 않는 것은 기독교가 이 이교적인 제의 용어를 기피한 70인역본을 따랐다는 점을 보여준다.|딤후 3:l5에서 구약 성경을 히에라 그람마타(거룩한 기록들)로 묘사한다. 이와 유사한 표현 양식은 필로와 요세푸스의 작품에도 흔히 나타난다. 이 단어는 다른 경우에는 그리 잘 사용되지 않는 단어임에도 불구하고, 아마 성경에 대해서는 좀더 수월하게 사용될 수 있었을 것 같다. 왜냐하면 성경은 그 자체로서 거룩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이와는 달리, 고전 9:13에서 바울은 타 히에라(%903)를 `거룩한 일'(개역: "성전의 일")이라는 통상적인 의미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참조: G.Schrenk; H.Seebass).
예루살렘
@Ierosovluma
예루살렘 Jerusalem (지)||히에로솔뤼마는 예루살렘을 뜻하며, 신약성경에서 이 명칭은 다른 곳에서 히에루살렘($2419: 마 23:37)으로 표기되어 있다. 분명히 후자는 히브리어 및 갈대아어 표기와 대단히 유사하다. 히브리어로는 예루살렘과 예루살라임, 갈대아어는 예루살렘이다. 이것은 예루쉬(소유)와 살렘(평화)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따라서 '평화의 소유, 평화의 거주'를 의미한다고 많은 이들은 생각한다.|다윗 시대 이후 팔레스타인의 수도가 되었으며, 베냐민 지파와 유다 지파의 경계에 위치하며, 또 고지대에 있으므로 '올라가다'라는 단어로 타 지역으로부터 예루살렘으로의 접근을 묘사하기에 적절하다.|이 이름은 신약성경에서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도시 그 자체나, 마 2:1; 막 3:8; 요 1:19, 기타; 또는 그 주민들을 의미하는 경우, 마 2:3; 마 3:5; 마 23:37; 눅 13:34.||(b) "지금 있는 예루살렘", 현재의 종교적 제도 즉 모세의 제도를 가진 예루살렘, 그곳의 일차적인 외적 위치로 인해 이와 같이 지칭되었다.|위와 문구와 대조되는 이름으로 "위에 있는 예루살렘", 즉 하늘에 있는 예루살렘, 이 예루살렘의 모형에 따라 지상의 예루살렘이 건설된다고 생각하였다(갈 4:25). 즉 은유적으로, '그리스도에 의해 건설된 하나님의 성', 지금은 '교회'의 형태를 입고 있으나 그리스도의 재림 후에는 완성된 메시야 왕국의 형태를 띠게 된다(갈 4:26).|"하늘의 예루살렘", 즉 하나님, 그리스도, 천사들, 지극한 행복 중에 있는 인간들(그리스도인들은 물론 구약의 성도들까지)의 하늘에 있는 거처, 그리고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아직 지상에 사는 동안에도 하늘의 예루살렘의 시민으로 간주된다(히 12:22).|"새 예루살렘", 계시자 요한의 환상 중에 나오며, '새 예루살렘', 세계의 갱신 이후에 하늘로부터 내려올 찬란히 빛나는 가시적 도시로서 은총 입은 자들의 미래 거처이다: 계 3:12; 계 21:2; 계 21:10.|(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예루살렘 사람
@Ierosolumivth"
예루살렘의 시민 또는 주민||히에로솔뤼미테스는 히에로솔뤼마($2414: 예루살렘)에서 유래했으며, '예루살렘의 시민 또 주민'을 의미한다.||히에로솔뤼미테스는 신약성경에서 2회 나오며, 마가복음과 요한복음에만 사용되었다.||(a) 막 1:5에서 세례(침례) 요한과 관련되어 사용되었다: "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이 다 나아가 자기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라".||(b) 요 7:25에서 예수님의 정체와 관련하여 사용되었다: "예루살렘 사람 중에서 혹이 말하되 이는 저희가 죽이고자 하는 그 사람이 아니냐". 분명히 예루살렘의 유대인 지도자들 중 몇 사람이 예수님께서 더불어 말씀하시고 있던 무리들 중에 끼어 있었다. 그들은 예수님을 죽이려는 음모를 알고 있었고, 그러므로 그가 담대하게 말씀하시는 것을 보고 놀랐다. 그 사람들에게 더욱 놀라운 것은 저희가 그에게 아무 말도 아니한다는 사실이었다. 이 역설적인 상황이 그들로 하여금 여러가지 질문을 하게 했다. 그들의 첫째 질문은 예수님을 저희가 죽이고자 하는 그 사람으로 확인하려는 것이었다.|둘째 질문은 당국자들이 그를 메시야로 알았기 때문에 그가 공개적으로 담대히 말할 수 있었던가 하는 것이다(요 7:26). 헬라어에서 질문 형식은 그 사람들이 부정적인 대답을 예상했다는 것을 나타낸다. 그것은 진지한 진리에 대한 추구이기 보다는 의심과 일시적 관심을 나타내는 질문이었다. 그들은 의심을 강화하기 위해 예수님의 탄생과 출신지를 알고 있다는 주장을 했다. 그러므로 그는 메시야가 아니라는 결론을 끌어낸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는 어디서 오시는지 아는 자가 없으리라"고 말했다. 메시야는 그 출신을 알 수 없다는 것과 메시야는 모르는데서부터 갑자기 등장할 것이라는 사상은 특정 집단들의 메시야 상에 속하는 것이었다. '전혀 예기치 않게 오는 것에 세 가지가 있으니, 그것은 메시야와 뜻밖의 행운과 전갈이다'는 유대인의 속담이 있다.|(참조: J. H. Mayfield).
신사 물건을 도적질하다
iJerosulevw
신전(성전)을 털다, 신전 물건을 약탈하다 rob a temple.||# 1. 고전 헬라어 및 70인역본||히에로쉴레오는 히에로쉴로스($2417)에서 유래했으며, `신전(성전)을 털다, 신전 물건을 약탈하다(rob a temple)', `신성모독를 저지르다(commit sacrilege)'를 의미한다.|이 단어는 신전 물건의 약탈에 대해 사용되었다. 헬라인과 로마인과 애굽인들은 신전 물건을 약탈하는 행위를 가장 중한 범죄로 보았으며, 반역 및 살인과 같은 정도의 범죄로 간주하여 극형에 처했다.|구약성경에서 신 7:25 이하는 백성들이 이교 신전에서 어떤 것을 취하는 것을 금하고 있다. 70인역본에서 히에로쉴레오는 마카베오이서 9:2에서만 나오는데,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가 페르세폴리스로 들어가 그곳 신전의 물건을 약탈하고 그 도시를 점령하려고 했으나 실패하고 패주하였다.|랍비들은 신전에서 도둑질하는 것을 살인 등과 같은 죄보다 너그럽게 보았으며, 덜 엄한 형벌을 부과하였다. 어떤 랍비들은 이방인들이 우상들을 봉헌할 경우에도 그 우상들을 소유해도 되며, 그 우상들에 딸린 금, 의복, 그릇들도 적극적으로 사용해도 된다고 하였다.||#2. 신약성경의 용법.||히에로쉴레오는 신약성경에서 롬 2:22에만 나오는데, 바울은 유대인들이 우상을 경멸하면서도 신전의 물건을 도적질한다고 비난한다: "우상을 가증히 여기는 네가 신사 물건을 도적질하느냐". 히에로쉴레오는 분명히 랍비들의 토론에서 자주 제기되었던 문제를 암시하고 있다. 즉, 이교의 전각에 있던 집기들과 재산은 제의적으로 볼 때 부정한 것인데, 그러한 것들에 관여하는 일이 어느 정도까지 용납될 수 있느냐는 문제이다. 그러한 행위는 그것이 이교의 제의를 타파하는데 도움이 되는 어떤 상황 아래서는 허용되었다. 하지만 바울은 그처럼 정도(正道)서 벗어난 행위들을 거부하고 있는 것같다.(참조: O.MicheI).|이 구절은 또한 사적인 이익을 얻기 위하여 금과 은으로 만든 우상들을 전각에서 빼돌리는 유대인들의 행위를 암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참조: Josephus, Ant. 4,8,10). 또한 여기에서 바울은 이교 신전에서 실제적으로 도적질을 하는 것이 아니라 바쳐진 제물에서 이득을 취하는 것을 문제삼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참조: G.Schrenk; H.Seebass).*
전각의 물건을 도적질하는
iJerovsulo"
성전을 터는 (자), 성전 물건을 훔치는 (자).||#1. 일반 헬라어 및 70인역본||히에로쉴로스는 히에로스($2413:거룩한, 신성한 물건, 성전)와 쉴라오($4813:약탈하다)에서 유래했으며, `성전을 터는 (자), 성전 물건을 훔치는 (자)'를 의미한다.|70인역본에서 히에로쉴로스는 마카베오이서4:42에만 나오며, 리시마쿠스가 성전에서 금 그릇들을 약탈한 것에 대해 사용되었다: "성전 기물을 도둑질한 그 장본인은 성전 금고 근처에서 살해당했다". 또한 아우구스투스의 칙령에 따라 유대인들로부터 거룩한 책들과 기금들을 강탈한 것에 대해 사용되었다.|이 명사는 일반적인 신성모독을 의미할 수도 있고, 이와 유사한 범죄에 적용되는 형벌의 범주(호스 히에로쉴로스)를 의미하기도 한다. 희극에서 이 용어는 매우 일반적으로 욕설(비열한 말)로 사용된다.|||#2. 신약성경의 용법.||히에로쉴로스는 신약성경에서 행 19:37에 한번만 나온다: "[전각의 물건을 도적질하지도] 아니하였고". 바울과 그의 일행이 이교의 성전에서 기물을 훔치고 신을 모독하였다는 혐의에 대하여 에베소의 서기장이 변론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바울은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은 신이 아니다"라고 가르쳤고 그리하여 아데미의 영업과 전각을 모두 침해하였다는 이유로 고소를 당하였던 것이다(행19:26 이하).*
제사장 직무를 하게 하다
iJerourgevw
거룩한 직무를 수행하다, 제사장으로 행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히에루르게오는 히에로스($2413:거룩한)와 에르고(%10:일하다)에서 유래했으며, '거룩한 직무를 수행하다, '희생제사의 직무를 수행하다'를 의미한다. 요세푸스와 필로는 이 단어를 항상 '제사를 드리다'라는 의미로 사용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히에루르게오는 신약성경에서 롬 15:16에서만 나온다:"제사장의 직무를 행하게 하사". 바울은 그의 복음에 대한 봉사를 제의적 사역이라고 한다. 그리스도의 일꾼으로 바울은 이방인을 드릴만한 제물로 하나님께 바친다. 바울은 성령으로 거룩하게 된 참된 제사는 순종으로 생명을 바치는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줌으로 말미암아 그의 비유를 제의적으로 그릇 이해하는 것을 막는다.(G.Schrenk).*
히에루살렘
@Ierousalhvm
예루살렘 Jerusalem (지)||히에로솔뤼마($2414)를 보라.
제사 직분
iJerwsuvnh
제사장직 priesthood||#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히에로쉬네는 히에로스($2413)에서 유래했으며, 그리 자주 사용되지 않으며, 제사장의 직분, 직무, 사역이라는 의미에서의 `제사장직'을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히에로쉬네는 70인역본 구약성경에서 제사장의 직무라는 의미로 단 한번 사용되지만(대상 29:22), 외경과 요세푸스과 필로의 저작에서는 `제사장직, 혹은 제사장의 직위'라는 의미로 흔히 사용되었다. 때때로 제사장의 활동이라는 의미로도 사용되었다.||#3. 신약성경의 용법.||(a) 히에로쉬네는 신약성경에서는 히 7:11-12; 히 7:24에서만 나온다. 이 구절들에서는 온전함을 가져올 수 없는 레위의 제사장직과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그리스도의 제사장직을 대조하고 있다. 레위의 제사장 직분으로는 온전함을 얻을 수 없다. 따라서 제사장 직분의 변역이 있다. 그리스도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이 되셨다. 그는 영원히 계시기 때문에 갈리지 아니하는 제사장 직분을 소유하고 계신다. 여기에서 논점은 특별한 지위보다는 제도의 성격이다.||(b) 교부들의 저작에서 이 단어는 레위 제사장직(클레멘트일서 43:2), 이교의 제사장직(Athenag. Suppl.,28,3), 그리스도의 제사장직(Orig.Comm., John,1,28), 그리스도인의 봉사(Chrysostom)에 대하여 사용된다.(참조: G.Schrenk; H.Seebass)*
이새
!Iessaiv
이새 Jesse(인)||#1. 구약성경.||(a) 이엣사이는 히브리어 이샤이(3448)의 음역이며, '여호와께서 살아계시다'를 의미하며, 한글 개역 성경은 '이새'로 음역했다.||(b) 이새는 베레스의 후손인 보아스와 룻의 손자이며, 오벳의 아들이며, 다윗의 할아버지이다(룻 4:21-22). 그는 아들 여덟 명과 딸 둘을 두었다.||(c) 이새는 베들레헴에 거주한 부유한 지주였다. 그는 다윗이 사울의 궁전으로부터 부름을 받았을 때 왕에게 선물을 보내었다(삼상 16:20).|후에 다윗이 사울로부터 피해 다니는 동안에 이새와 그의 가족은 다윗과 합류하여 보호를 받았다(삼상 22:1-4).||(d) 구약성경에서 다윗은 자주 '이새의 아들'이라고 불리웠는데 그 칭호가 사울의 입과 다윗의 다른 대적자들의 입에서는 조롱적이고 미워하는 용어였으나(삼상 20:27, 30, 31; 삼상 22:7; 삼상 22:9; 삼상 25:10; 삼하 20:1; 왕상 12:16; 대하 10:16), 때가 되었을 때, 그 칭호가 명예와 영광의 칭호가 되었고 이스라엘 백성이 크게 애용했다(삼하 23:1; 대상 10:14; 대상 29:26; 시 72:20; 행 13:22).||(e) 이사야의 예언에서 이새가 이스라엘의 미래의 메시야 왕의 조상으로 언급되어 있다. 이 예언에서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사 11:1)과 "이새의 뿌리"(사 11:10)는 그토록 오랫동안 대망하던 '종말'을 초래할 자였던 그 메시야적 인물을 가리키는 상징적 용어들이었다.||#2. 신약성경.||이엣사이는 신약성경에서 4회 나온다.||(a) 행 13:22,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거하여 가라사대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하시더니". 여기서 "이새의 아들"이라는 칭호는 영예와 영광의 칭호로 사용되었다. "내가 다윗을 만나니"는 시 89:20에서,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은 삼상 13:14에서,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는 사 44:28에서 인용한 것이다. "이 사람의 씨"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로 세우셨으니 곧 예수라"는 것이 바울이 전한 메시지의 중심이었는데, 앞에 역사를 소개한 것은 메시야가 어떻게 왔는지 그 길을 보이기 위한 것이다(R. Earle).||(b) 롬 15:12, "또 이사야가 가로되 이새의 뿌리 곧 열방을 다스리기 위하여 일어나시는 이가 있으리니 열방이 그에게 소망을 두리라 하였느니라". 바울은 구약성경의 메시야적 예언과 예수님을 동일시하기 위해 "이새의 뿌리"(사 11:1-10)라는 표현을 인용하였다.||(c) 위와 동일한 의미를 마태와 누가에도 적용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그러한 의미에서 예수님의 족보에 이새를 포함시켰던 것이다.|① 마 1:5,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② 눅 3:32, "그 이상은 이새요 그 이상은 오벳이요 그 이상은 보아스요 그 이상은 살몬이요 그 이상은 나손이요".|(참조: PED; NBD).
이에프다에
!Iefqave
입다 Jephtah.||#1. 구약성경.||(a) 이에프다에는 히브리어 이파타흐(3316: '그가 여신다'는 파타흐에서 유래함)의 음역이며, 한글 개역 성경에는 '입다'라고 음역했다.||(b) 입다는 이스라엘의 제 10대 사사이다. 그는 길르앗이 기생에게서 낳은 서자이다. 그의 이복 형제들이 그가 장성한 후에 상속권을 주장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그를 추방했다. 그는 톱 땅으로 도망가서 잡류의 지도자가 되었다(삿 11:1-3).||(c) 당시에는 블레셋 자손과 암몬 자손이 이스라엘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것은 우상 숭배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였다(삿 10:6-8). 이스라엘 자손은 18년 동안 억압을 참으며 살아왔다. 그러나 암몬 자손이 요단강을 건너 길르앗에 진을 치고 대치하므로, 위기가 절정에 이르렀다(삿 10:10). 그 때에 이스라엘은 우상 숭배에 대해 회개하고 하나님께 구원을 간구했다(삿 10:16).||(d) 암몬 자손의 침략 때 길르앗 장로들로부터 장관이 되어 달라는 청을 받았으나 그 청을 거절했다(삿 11:6-7).|입다는 암몬과 싸우면 머리로 삼겠다는 장로들의 조건을 수락하고 미스바에서 언약을 맺었다(삿 11:8-11). 그래서 암몬 왕과 담판했으나 실패했다(삿 11:12, 27, 28).||(e) 그 때 여호와의 신이 입다에게 임하고, 입다는 암몬 군대와 싸우려 나갈 때에 여호와께 경솔한 서원 곧 만일 그가 승리하면, 돌아올 때에 집문 앞에서 그를 영접하는 사람이 누구든지 여호와께 돌려 번제로 드리겠다고 했다(삿 11:30-32).|입다는 큰 승리를 하고 돌아온 때에(삿 11:33), 그의 무남독녀가 영접함으로 서원을 갚기 위해 딸을 제물로 바치었다(삿 11:34-39). 딸의 죽음은 이스라엘 여자들 사이에 호곡의 규례를 남기었다(삿 11:10).||(f) 입다는 에브라임 사람과 싸웠다.|① 싸움의 원인은 전쟁에 부르지 않았다는 에브라임의 비난(삿 12:1, 2)과 길르앗 사람들에 대한 에브라임의 모욕적인 언사이다(삿 12:4).|② 싸움의 결과는 사만 이천명의 에브라임 사람을 도륙했다(삿 12:6, 7).||(g) 입다는 사사가 된지 6년만에 죽었으며(삿 12:7), 베들레헴의 입산이 그의 뒤를 이어 사사가 되었다(삿 12:8).||(h) 입다의 성품은 성급했으나(삿 11:30-32), 믿음의 사람이었다(삿 11:35-37; 참조: 히 11:32).||#2. 신약성경.||이에프다에는 신약성경에서 히 11:32에 한번 나온다. '믿음의 사람'으로 묘사한다: "내가 무슨 말을 더 하리요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와 다윗과 사무엘과 및 선지자들의 일을 말하려면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로다".|(참조: PED; NDB).
여고냐
!Ieconiva"
여고냐 Jechonias.||#1. 구약성경.||(a) 이에코니아스는 히브리어 예콘야(3203)에서 유래했으며, '여호와께서 세우신다'라는 뜻이며, 한글 개역 성경에서 "여고냐"라고 번역했다.||(b) 여고냐라는 이름은 유다왕 여호야긴의 다른 이름이다(대상 3:16; 렘 24:1).|여고냐는 유다왕 여호야김의 아들이며 계승자이다(왕하 24:6-8; 대하 36:8, 9).|여고냐는 예루살렘에서 석달을 통치하였으며,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다(왕하 24:9; 대하 36:9).||(c) 여고냐의 왕국은 느부갓네살의 공격을 받아(왕하 24:10-11) 그는 백성들과 더불어 포로로 잡혀 바벨론으로 갔으며(왕하 24:12-16; 대하 36:10; 에 2:6; 렘 27:20; 렘 29:1, 2; 겔 1:2), 바벨론에서 삼십 칠년 동안 감금 생활을 하였고(왕하 25:27), 바벨론왕 에윌 모르닥에 의해 석방되었다(왕하 25:27). 그는 바벨론에 함께 있던 다른 왕들보다 높은 지위를 차지했다(왕하 25:27-30; 렘 52:31-34).||(d) 여고냐에 대한 예언.|① 예레미야의 예언(렘 22:24-27; 렘 22:24-30).|② 하나냐의 거짓 예언(렘 28:1, 4, 11).||#2. 신약성경.||이에코니아스는 신약성경에서 2회 나오며, 마 1:11; 마 1:12의 족보에서 그리스도의 조상으로 나타난다: "11 바벨론으로 이거할 때에 요시야는 여고냐와 그의 형제를 낳으니라 12 바벨론으로 이거한 후에 여고냐는 스알디엘을 낳고 스알디엘은 스룹바벨을 낳고".|(참조: PED; NBD).
예수
!Ihsou'"
예수 Jesus (인)||이에수스는 구약에 나오는 예수아라는 유대 이름의 헬라어형인데 히브리어를 헬라어로 음역한 다음 주격 변화를 위해 시그마(-s)를 붙인 것이다. 예수아는 바벨론 포로기 무렵부터 예호수아 대신 일반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 이름은 여호와라는 신성한 이름을 포함한 오래된 이름이며 '여호와는 도움이시다' 또는 '여호와는 구원이시다'라는 뜻이다(NTD).|예수스는 천사가 마리아에게 그의 아들의 이름으로 알려준 것으로, 아들의 사명을 나타낸다. -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마 1:21).||(a) 이에수스는 구약의 여호수아(출애굽기등에 나타나는 눈의 아들의 이름, 학개와 스가랴에 나타나는 대제사장의 이름, 삼상 6:14과 왕하 23:8의 두 사람 이름, 대하 31:15의 레위인의 이름)의 헬라어 형태이다.||(b) 이에수스는 주후 2세기 초기까지만 해도 통상적인 이름이었다. 신약은 행 7:45; 히 4:8에서 여호수아를 이에수스라고 표기한다(개역: "여호수아"); 참조: 눅 3:29의 이에수스, 마 27:16의 이에수스 바랍바스(개역: "바라바"), 행 13:6의 바리에수스(개역: "바예수"), 골 4:11의 이에수스(개역: "유스도라하는 예수"). 2세기 이후부터는 이에수스라는 이름이 사라졌다. 아마도 의식적으로 그 이름을 사용하기를 피했기 때문인 것 같다.||(c) 이에수스라는 이름은 그리스도의 인간성을 나타낸다. 그는 바로 이 이름으로 사셨고, 이 이름으로 선포되었고, 이 이름으로 거론되었다. 신약성경의 기자들은 예수라는 이름을 가진 기타 인물들과 예수님을 구별하기 위하여 "갈릴리 나사렛에서 나온"(마 21:11), "다윗의 자손"(막 10:47-48; 막 1:24; 막 27:37; 요 18:5 등) 같은 문구를 덧붙였다. 그리스도인 공동체는 이 이에수스를 "생명의 주"(행 3:15), 하나님의 그리스도, 주님, 구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였다. 그러나 이에수스와 호 퀴리오스(주님) 사이에는 아무런 구별이 없다. 왜냐하면 이에수스는 하나님께서 주님과 심판자(참조: 빌 2:7; 갈 3:1; 행 17:31)로 만드신 바로 그 사람이기 때문이다. 공관복음서와 사도행전에서는 간단하게 이에수스라는 이름이 일반적으로 사용되었으나, 우리는 또한 호 퀴리오스(누가복음) 및 이에수스 크리스토스(예수 그리스도), 호 퀴이오스 이에수스 크리스토스(주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고정된 표현을 찾아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외의 신약성경에는 간단히 이에수스만 사용되는 경우는 드물다. 바울은 살전 14:14; 고후 4:11이하; 빌 2:10과 같은 곳에서 그리스도의 생애와 죽음을 생각하면서 "예수"라는 이 단어를 주로 사용하였다. 히브리서와 요한계시록에서도 이에수스라는 이름은 예수의 역사가 신앙의 근거를 형성한다는 것을 암시한다(예: 히 2:9; 히 6:20; 히 10:19; 계 1:9; 계 14:12; 계 20:4; 계 22:16).||(d) 예수라는 이름은 역사적 실존의 견지에서 볼 때 중요하다. 마태와 누가는 예수라는 이름이 우연히 주어진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그의 백성을 그들의 죄 가운데서 구원하시려고 오셨기 때문에 그 이름이 주어진 것이라고 주장한다(마 1:21). 이 이름의 완전한 히브리어 형태는 하나의 문장을 이루는데, "야훼께서 구원하신다"이다. 몇몇 교부들은 이에수스와 헬라어 이아오마이(낫게 하다)를 관련 짓기도 하였고, 오늘날, 예수는 구원의 여신인 이아소의 남성형이라는 설도 있다. 그러나 유세비우스는 예수라는 이름의 히브리어적인 근거를 인정하였다. 그리고 이에수스라는 이름은 그리스도인들과 헬라 세계와의 접촉보다 더 이른 시기부터 사용되었다.||(e)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라는 인물의 역사적 실존을 의심하고 복음서를 신에 대한 역사적 신화로 이해하고자 하는 자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하나님에 대한 유대 신화가 있다는 사실을 보이고 개개의 기사들을 그 구체적인 형태와 연속적인 면에서 비역사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하는 도식(schema)을 만들어 그들의 주장을 뒷받침해야만 한다. 이와 관련하여 예수라는 이름은 신화적인 인물의 이름이라는 것도 증명되어야만 하며 기독교 이전의 예수 제의가 있었다는 증거도 제시해야 한다. 그러한 어떤 제의에 대한 직접적 혹은 명확한 증거가 없다(예수 제의는 아마도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관련이 있는 듯하나 이에 대한 논증은 이새 분파가 있었다고 하는 주장이나 테라퓨테가 예수라 하는 제의적 신을 숭배했다고 하는 주장들과 같이 순전히 사변론적인 것이다). 여호수아에 관해서 고찰해 볼 때, 후기 유대교에게 있어 출애굽은 극히 중요하지만, 여호수아의 지휘 하에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간 사실은 율법 수여에 비하면 이차적인 중요성만을 가질 뿐이며, 여호수아는 아무데서도 메시야의 원형으로 간주되지 않는다. 더 나아가서 신약에서 율법은 아브라함과 그리스도 사이에서 일시적인 중요성만을 가질 뿐이다. 여호수아가 언급된다 하더라도, 그것은 역사적 사건과 관련되어서만 언급될 뿐이며(히 11:30-31; 행 7:45), 출애굽 사건이 성취를 가져다 주지 못하였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언급될 뿐이다(히 3:7이하). 나세네 시편(Nassene Psalm)과 마술 파피루스들이 그리스도교 이전의 본문들이라면, 이 본문들은 그리스도교 이전의 예수 제의를 가리킬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본문들은 후기의 것이며, 단순히 역사적인 예수가 준 영향을 단순히 증거하는 것이다. 복음서와 사도행전에서 예수라는 이름의 단순한 용법은 예수의 역사적 실존에 대한 유력한(완전히 비의도적인) 증거가 된다.|(참조: W. Foers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