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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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단 Jardan.||#1. 구약성경.||(a) 이오르다네스는 히브리어 아르덴(3383)에서 유래했으며, 아르덴의 의미는 그 어원이 인도 아리아어인지 혹은 서부 셈족어인지에 달려 있다. 만일 전자라면 그것은(영구한) 강을 뜻하게 될 것이지만, 후자라면 '내려가다'라는 뜻의 어근 야라드에서 나온 내려가는 자라는 의미가 될 것이다. 두가지 의미가 다 언어학상으로 뒷받침될 수 있다. 요단은 팔레스타인에서 가장 크고 가장 유명한 강이다. 이 강은 안티레바논(Anti-Lebanon) 기슭의 수많은 급류와 작은 시내들에서 발원하여 처음에는 사모코니티스 호수(Lake Samochonitis, 소위 Merom; 현대는 el-Huleh)로 흘러 들어간 후 거기로부터 지상에서 가장 깊은 협곡을 따라 흘러내리는 강이며, 디베랴 호수(갈릴리 바다)로 유입된다. 이 호수를 떠난 후 흐르는 도중 보다 작은 다수의 물줄기에 의해 유량이 증대되며 마침내 이 강은 사해로 흘러 든다.||(b) 구약성경에 의하면 요단강은 봄철 및 추수기에는 불어난다(대상 12:15; 수 3:15; 렘 12:5).|롯이 요단 들 소돔 지역에 정착했고(창 13:10-12), 야곱이 건넜으며(창 32:10), 이스라엘이 요단강 모압 평지에 진을 쳤다(민 22:1; 민 26:3, 63). 모세는 백성들 앞에서 하나님의 거룩을 나타내지 못했기 때문에 요단을 건너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했다(신 3:27).|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을 인도하여 요단을 건너가 그곳의 돌 열 두개로 길갈에 기념비를 세웠다(수 1:2; 수 4:2, 3).|에훗이 요단 나루에서 모압을 제압하여 승리를 거두었다(삿 3:28, 29).||기드온이 요단 나루터를 점령하고 미디안을 공격하여 승리를 얻었으며(삿 7:24, 25), 기드온과 삼백명의 용사가 요단을 건넜다(삿 8:4). 입다가 요단 나루터에서 에브라임 사람들을 죽였다(삿 12:6, 7).||다윗이 아람을 물리치기 위해 요단을 건너 진을 쳤다(대상 19:17).||(c) 솔로몬이 요단 평지에 주물 공장을 세웠다(왕상 7:46; 대하 4:17).||(d) 요단강에 관계된 기적으로,|①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이 기적적으로 요단강을 육지 같이 건너갔다(수 3:14, 17; 시 114:3).|② 엘리야가 요단강을 갈라 엘리사와 함께 건너 갔다(왕하 2:8).|③ 엘리사가 요단강을 갈라지게 하여 건너갔다(왕하 2:14).|④ 나아만이 일곱번 목욕하고 문둥병을 고치었다(왕하 5:14).|⑤ 엘리사가 요단강에 빠진 도끼를 기적적으로 떠오르게 했다(왕하 6:4-6).||(e) 요단의 영적 의미로는|① 요단을 건너 천국으로 가는 것을 나타낸다(왕하 2:8, 11).|② 요단을 건너 복된 곳으로 가는 것을 나타낸다(신 3:35).|③ 요단을 건너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곳으로 가는 것을 나타낸다(신 11:31; 신 12:10).||#2. 신약성경.||(a) 이오르다네스는 신약성경에서 15회 나오며, 사복음서에만 사용되었다. 요단강은 주로 침례 요한의 사역이나 예수님의 사역과 관련되어 나타난다. 신약성경은 대체로 이 용어의 사용을 크게 자제한다. 외경의 복음서들에서도 역시 마찬가지다. 사도 교부들은 요단강을 한번도 언급하지 않는다. 그리고 변증가들 중에서도 저스틴만이 요단강에 대해 언급한다. 이는 요단강에 대해 기본적으로 관심이 없었음을 보여준다.||(b) 요단강과 세례(침례) 요한.|요단강에서의 세례(침례)는 세례(침례) 요한에 의해 시작된 것이다. 그는 강의 동쪽과 서쪽 모두에서 사역한 것으로 사료되지만, 그 정확한 위치를 제시해 주는 자료는 없다. 사실 마태와 마가만이 그가 요단강에서 세례(침례)를 주었다고 구체적으로 말하고 있다. 요한은 이를 문제 삼지 않았으며, 다만 세례(침례)는 특별히 요단강물로서가 아니라 물로써 이루어짐을 강조하고자 하였다.||(c) 예수님과 요단강.|예수님은 요단강에서 세례(침례) 받은 자들 가운데 하나지만, 요단강 그 자체가 의미를 지니지는 않는다. 누가복음에서 예수님의 세례(침례)는 세례(침례) 요한의 운동에 밀접히 융합되어 있다. 그러나 그의 기도는 자신의 사역을 시작하도록 부르시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순종적으로 기다리는 것을 표현한다. 요한복음 역시 예수님을 세례(침례) 요한의 운동의 핵심에 두고, 이 사건을 예수님의 선교 및 소명과 관련시킨다. 예수님의 후기의 사역에서 요단강은 특별한 역할을 하지 않는다. 단지 요단 지역으로부터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몰려 왔다는 것(마 4:25)과 예루살렘으로 가는 도중에 그곳에서 사역하셨다(마 19:1; 참조: 요 3:22 이하; 요 10:40) 기사만 나올 뿐이다. 비록 예수님의 사역을 요한의 사역과 구별하고자 함에서 기인한 것은 아니지만 눅 19:1 이하의 삭개오 기사에서 요단강은 언급조차 되지 않는다.|신약성경에서 요단강에 관한 침묵은 분명히 원리의 문제이다. 그러나 그것은 역시 우리를 보다 넓은 결론, 즉 요단에 관한 이 침묵은 복음서 전승 전체를 특징 짓고 예수님의 인격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이것은 문제의 원리가 '무엇이 기독교적인가'에 대한 특별한 이해에서 나온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렇지만 이 주제가 가능하거나 옳은지 어떤지는 이러한 조사의 자료가 허락하는 한에서는 초대 기독교와 요단강의 관계를 조사함으로서만 증명될 수 있다.||(d) 원시 기독교와 요단강.|사도행전은 초대 세례(침례) 관습을 요단강과 관련시키지 않는다. 행 2:37 이하; 행 8:9 이하; 행 8:26 이하나 행 10:47-행 10:48에서 요단강에서 세례(침례)에 대해 어떠한 문제도 없다. 세례자(침례자)에 대한 언급과 더불어 물과 회개를 언급하나 요단강은 언급하지 않는다.|다른 책들도 요한은 전혀 언급하지 않으며, 세례(침례)와 관련된 어떤 특정 강에 대해서도 아무 것도 말하지 않는다. 세례(침례)에 대한 유일한 요구 사항은 어떤 종류든 이용 가능한 물이 있으면 되는 것이다(행 8:36). 그러한 물은 결코 요단강물과 연관되지 않는다.||(e) 초대 교회에서 세례(침례)의 물과 요단 강물.|저스틴은 요단강을 언급하지만(Dialoque with Trypho) 단지 구원의 역사에서 하나님의 역사의 한 장소임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왕하 6:1 이하에서 엘리사의 기적은 물세례(침례)의 한 예표가 된다. 요단강에서 예수님의 세례(침례)는 그의 침잠에 의한 물의 성화라는 사상과 결합된다. 물은 중요하지만 특별히 요단강의 물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Did 7.1-2와 달리 저스틴은 흐르는 물의 사용을 주장하지 않는다. 어떤 집단의 사람들은 이것을 중요한 것으로 간주하는 것 같은데, 그들은 유대의 관습을 따르고 요한의 세례(침례)와 더 밀접한 연관성을 주장한다. 그러나 이들은 아마도 주변적인 집단들일 것이다. 터툴리안은(On Baptism 4) 예수님의 세례(침례)로 말미암아 모든 물이 세례(침례)에 사용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어떤 전례들은 모든 성화된 물을 요단강물로 묘사한다. 이것은 만대교(Mandaeans)에 영향을 주어, 그들은 흐르는 물의 사용을 고집하고 요단강에 대해 언급하게 된다. 그러나 예루살렘의 유대 기독교인들은 요단강에 의해 상징되는 흐르는 물이 기독교인의 세례(침례)에 더 적합한 물이라는 사상에 대해 아무런 책임이 없다. 아마도 마지막 문제는 교회가 요한의 세례(침례)의 연속선상에서 세례(침례)를 주는가 아니면 예수님이 세례(침례)를 받았기 때문에, 아니면 예수님이 그의 세례(침례)와 연관하여 사역을 시작하셨기 때문에 세례(침례)를 주는가 하는 것일 것이다. 흐르는 물이 중요시되는 곳에서는 요한과, 따라서 요단강과의 더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게 된다. 그러나 롬 6:3 이하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세례(침례)를 예수님의 세례(침례)와 마찬가지로 그의 죽음과 관련시키고, 사도행전은 성령을 받는 것과 연관시킨다(행 10:44 이하). 세례(침례)를 요단강과 분리시키는 것은 주의 만찬을 유월절로부터 분리시키는 것과 마찬가지로 교회를 단순히 다른 것이 아닌 새로운 어떤 것으로 이해하는 것을 반영한다. 주후 400년경 일부 신자들은 여전히 요단강에서 세례(침례)를 받았지만, 예루살렘에 예수님의 세례(침례) 장면 그림으로 장식된 세례(침례) 장소도 있다. 예수님의 세례(침례) 때에 일어난 것과 동일한 일이 그 때에도 일어난다. 세례(침례)가 요단강 혹은 흐르는 물에서 행해지든지 그렇지 않든지 간에 모두 예수님의 세례(침례)와 같은 것이다.|(참조: ZTB; K. H. Rengstorf; R. K. Harris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