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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생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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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물고기 little fish.||#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이크뒤디온(Arstph. 이래)은 이크뒤스($2486)의 지소어이며, '작은 물고기'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이크뒤디온은 신약성경에서 2회 나오며, 한글 개역에서 '작은 생선'으로 번역했다.|마 15:34에서 예수님의 이적의 요소가 되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떡이 몇 개나 있느냐 가로되 일곱 개와 작은 생선 두어 마리가 있나이다 하거늘".|막 8:7에서도 같은 것을 나타낸다: "또 작은 생선 두어 마리가 있는지라 이에 축복하시고 명하사 이것도 그 앞에 놓게 하시니".|(참조: Walter Bauer; J.H.Thayer).
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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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 fish.||#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이크뒤스(Homer 이래)는 '물고기'를 의미하며, 비유적으로 '어리석은 사람'에 대해 사용되었다(플루타르크).||#2. 70인역본의 용법||이크뒤스는 70인역본에서 약 18회 나오며, 히브리어 다그, 다가, 데가트 하이얌을 번역한 것으로 다시 말하면 호수나 바다에 사는 피조물에 대한 일반적인 구약성경의 지칭들이다.|이크뒤스는 민물(출 7:18; 겔 29:4)이든 혹은 바다물(호 4:3)이든 간에 물에서 서식하는 모든 생물을 묘사하고 있다(예: 왕상 4:29[33]; 욥 12:8).||#3. 신약성경의 용법||이크뒤스는 신약성경에서 20회 나오며, 용법을 거의 구약성경의 배경을 반영하고 있다.||(a) 이크뒤스는 마 7:10에서 기도와 관련하여 나타난다: "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병행구, 눅 11:11).||(b) 눅 24:42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은 생선을 잡수셨다: "이에 구운 생선 한 토막을 드리매".||(c) 고전 15:39는 신약성경에서 동물의 육체를 언급하는 중에 물고기의 육체를 다른 육체와 구별한다: "육체는 다 같은 육체가 아니니 하나는 사람의 육체요 하나는 짐승의 육체요 하나는 새의 육체요 하나는 물고기의 육체라". 여기서 신학적인 것이 명백하다.||(d) 생선에 관한 언급은 하나님의 뜻과 계획에 모든 창조물이 순응하고 있는 것을 보여준다. 이러한 것은 예수님의 이적 즉, 군중을 두 번 먹이심(마 14:17; 마 15:36 병행구와 함께), 세금(마 17:27), 이적으로 물고기를 잡음(눅 5:6; 요 21:6) 등 이적의 본질에서 생생하게 실증된 그러한 사실이다. 이러한 기사와 연결되어 있는 단 하나의 끈은 오직 창조자의 뜻을 이행함으로써 예수님께서 사람들의 복지를 위한 자애로운 일을 통하여 피조물을 창조자의 계획에 복종시키는 것이며, 따라서 이러한 것에서 성육신한 창조주로서 분명히 나타나셨다.|(참조: J.H.Thayer; J.A.Motyer).
보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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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취, 흔적.||#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이크노스(Homer 이래)는 '발자취, 흔적'을 의미한다. 이 단어는 생애나 행적으로 남아 다른 사람들이 주목하여 따를 수 있는 자취에 대해 비유적으로 사용되었다.||#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이크노스는 70인역본에서 34회 나오며, 히브리어 카프(3709: 손, 발바닥, 권세, 지배)를 번역하여 '발바닥'이나 '발'을 나타낸다(신 11:24; 신 28:35; 수 1:3; 삼하 14:25; 왕하 19:24; 단 10:10). 겔 43:7에서는 하나님의 '발'을, 욥 11:7에서는 하나님의 '흔적'을 나타낸다.|이크노스는 에르와(6172: 벌거벗음, 여성의 '외음부', 예절 없음, 추한 행위)를 번역하여 틈, 곧 '노출된 부분'을 나타낸다(창 42:9; 창 42:12).||#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이크노스는 신약성경에서 3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고후 12:18, "내가 디도를 권하고 함께 한 형제를 보내었으니 디도가 너희의 이를 취하더냐 우리가 동일한 성령으로 행하지 아니하더냐 동일한 보조로 하지 아니하더냐". 여기서 이크노스는 '보조'를 나타낸다. 바울과 디도는 부조금을 처리함에 있어서 책임있는 행동 노선을 따랐다.||(b) 롬 4:12, "또한 할례자의 조상이 되었나니 곧 할례 받을 자에게 뿐아니라 우리 조상 아브라함의 무할례시에 가졌던 믿음의 자취를 좇는 자들에게도니라". 여기서 이크노스는 '자취나 흔적'을 의미한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그 흔적(한글 개역, "자취")을 남겼는데, 이 흔적에 의하여 할례 받은 신자들은 그들 자신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고, 할례 받지 못한 자들까지도 믿음을 소유할 수 있게 된다. 여기에서 이 단어는 '특징'이라는 의미를 함축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번역한다면, 본문의 참된 요지는 모든 믿음이 아브라함의 발자취를 뒤따르는 것인데 반하여, 아브라함의 생애의 특별한 국면을 모방하는 것을 암시하게 될 것이다.||(c) 벧전 2:21,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 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여기서 이크노스는 '자취'라는 의미에서 '모범' example이라는 의미도 함축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본문의 개념은 모방하는 행위보다 그 이상의 따라야 하는 시련의 "자취"를 가리킨다. 그리스도의 "너희를 위하여" 받으신 고난은 여기에서 반복의 측면을 제거한다. 신자들은 고난의 길을 밟으신 예수님의 제자로서 고난을 당하면서 그와 교제를 나누고 그와 동일한 방향을 따르는 것이지, 세세한 부분까지 모방하면서 고난을 당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따른다는 의미는 철저하게 고난 당한다는 의미를 가지는가? 참된 제자직은 반드시 고난의 제자직인가(벧전 2:21-벧전 2:24)? 다른 일반적인 질문과 마찬가지로 이 질문도 상황을 무시한 질문임을 한 눈에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편지의 독자들이 당면한 상황이 고난의 상태일 때 그렇다고 답변할 수 있을 것이다. 제자들은 그들이 받아야 하는 고난에도 불구하고 또한 그리스도께로부터 사명과 권위를 받았다(참조: 마 10:1 이하). 그리고 바울은 고난만이 아니라 그와 함께 받을 영광도 언급하였다(참조: 롬 8:17; 요 13:15; 요 15:12; 약 5:10-약 5:11).|(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A. Stumpff).
요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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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담 Joatham||#1. 구약성경.||(a) 이오아담은 히브리어 요담(3147)에서 유래했으며, '여호와는 완전하시다'를 의미한다. 한글 개역 성경에서 '요담'으로 번역했다.||(b) 요담은 유다왕 웃시야(아사랴)의 아들이며 계승자이다. 그는 문둥병자가 된 부친을 대신하여 8년간 대리 통치를 하였고(왕하 15:5; 대하 26:21), 부친이 죽은 후에 왕위를 계승했다(왕하 15:7, 33; 대하 27:1).||(c) 요담은 정직한 통치를 하였으나 산당을 제거하지 못했다(왕하 15:34, 35; 대하 27:2, 6). 그는 여호와의 전 윗문과 오벨성 및 여러 성읍과 망대를 건축하고(대하 27:3, 4), 요담은 암몬족과 싸워 승리했다(대하 27:5).||(d) 요담은 이사야, 호세아, 미가와 동시대 사람이며(사 1:1; 호 1:1; 미 1:1), 그가 죽은 후 그의 아들 아하스가 왕위를 계승했다(대하 27:9).||#2. 신약성경.||이오아담은 신약성경에서 마 1:9에 나오는 예수님의 계보에서 그의 조상으로 나온다: "웃시야는 요담을 낳고 요담은 아하스를 낳고 아하스는 히스기야를 낳고".|(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ZTB).
요아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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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안나 Joanna(인)||요안나는 '여호와는 자비하시다'를 의미하며, 한글 개역 성경에서 '요안나'라고 음역했다.||신약성경에서 이오안나는 2회 누가복음에만 나온다.||(a) 요안나는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이며, 다른 여자들과 함께 예수님의 일행을 섬겼다: "또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 요안나와 또 수산나와 다른 여러 여자가 함께하여 자기들의 소유로 저희를 섬기더라"(눅 8:3).||(b) 요안나는 예수님의 시체에 바를 향품과 향유를 준비하는데 함께 했다(참조: 눅 23:55-눅 23:56).||(c) 요안나는 예수님의 부활을 사도들에게 전했다: "이 여자들은 막달라 마리아와 요안나와 야고보의 모친 마리아라 또 저희와 함께한 다른 여자들도 이것을 사도들에게 고하니라"(눅 24:10).|(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이오안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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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아난 Joanan.||요아난은 신약성경에서 한번 눅 3:27의 족보에서 그리스도의 조상 중 한 사람으로 나온다: "그 이상은 요아난이요 그 이상은 레사요 그 이상은 스룹바벨이요 그 이상은 스알디엘이요 그 이상은 네리요".
요한(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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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John.||이오안네스는 히브리 이름으로 요하난 또는 예호하난이며 그 의미는 '그에게 여호와는 은혜롭다'를 뜻하며, 혹자들은 '그를 여호와가 은혜롭게 주셨다'를 뜻한다고 한다.|신약성경에서 요한이란 이름을 가진 사람은 다음과 같다.||#1. 세례(침례)요한.|그는 제사장 사가랴와 엘리사벳의 아들이며, 그리스도의 선구자이다.|그는 헤롯 안디바의 명에 의해 투옥되었고, 후에 목베임 당하였다(마 3:1; 마 14:3).||#2. 사도 요한.|그는 요한복음의 기자이며 세베대와 살로메의 아들이며, 야고보의 동생이다(마 4:21; 마 10:2; 막 1:19; 막 9:2, 막 9:38; 눅 5:10; 눅 6:14; 행 1:13; 갈 2:9). 그는 요한복음서에서(이름으로 언급되지 않고) 특별히 예수님의 사랑하시는 자라고 일컬어지는(요 13:23; 요 19:26; 요 21:7, 요 21:20) 바로 그 제자이며, 전통적 견해에 따르면 요한계시록의 저자이다(계 1:1, 계 1:4, 계 1:9; 계 22:8).|생애의 후기에 그는 소아시아에 있는 교회들을 맡았으며 거기에서 매우 연로한 나이로 죽었다. 그가 결코 소아시아로 들어 오지 않고 팔레스타인에서 어느 정도 나이가 들어 죽었다는 것을 여러 저술가들이 입증하고자 시도했다. 하지만 이 고찰은 결코 만족스럽지 못했다.||#3. 사도 베드로의 부친.|요 1:42과 요 21:15이하.||#4. "대제사장의 문중"의 어떤 사람.|그는 산헤드린의 회원이다(행 4:6).||#5. 마가 요한.|그는 바나바와 바울의 동료이다(행 12:12, 행 12:25; 행 13:5, 행 13:13; 행 15:37).||#6. 어떤 요한.|유세비우스의 교회사에 있는 파피아스(Papias)의 증거에 따르면 그리스도의 제자였으며 후에 소아시아에서 기독교의 "장로"가 되었다. 오늘날 적지 않은 사람들이 알렉산드리아의 디오니시우스(Dionysius of Alexandria)의 견해를 따라 그를 요한계시록의 저자로 간주한다. 따라서 또한 그를 초대 교회의 그리스도인들 중 저명한 한 선지자로, 그리고 계 1:1, 계 1:4, 계 1:9; 계 21:2 Rec; 계 22:8에 언급된 그 사람으로 생각한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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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 Job||이옵은 히브리어 이욥(괴롭힘을 받는, 고통 당하는)에서 유래했으며, 욥 Job을 가리킨다.|이옵/욥은 구약성경의 정경 중 그의 이름을 지니고 있는 그 교훈시에서, 그의 신앙 및 시련 속에서 변함없이 굳세게 견딘 인내로 인하여 기림을 받는 사람이다(참조: 겔 14:14, 겔 14:20).||신약성경에서 이 이름은 약 5:11에 한번 나오다: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는 자시니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이오베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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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벳 Obed (인)||오벳은 히브리어 오베드(5744: 오벳. 예배자, 숭배자)에서 유래했으며, 다윗왕의 조부이며 예수님의 조상이다(마 1:5; 눅 3:32).|(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요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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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엘 Joel(인)||#1. 구약성경.||이오엘은 히브리어 요엘(그의 '하나님은 여호와이시다' 또는 '여호와는 하나님이시다')의 음역이며, 한글 개역 성경에서 '요엘'로 번역했다. 요엘은 브두엘의 아들이며, 예언자이며, 요엘서를 기록했다(욜 1:1).||#2. 신약성경.||이오엘은 신약성경에서 행 2:16에 한번 나온다: "이는 곧 선지자 요엘로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베드로가 요엘이 예언한 말씀을 인용하여 전하였다(참조: 행 2:16-행 2:21).|(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이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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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다 Joda (인)||요다는 이스라엘 사람이며, 예수님의 조상중 한 사람이다(눅 3:26).|⇒ 이우다($2448), 이우다스($2455)를 보라.
요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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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난 Jonan(인)||요난은 신약성경에서 한 번 나오며, 누가복음의 족보에서 그리스도의 조상 중 한 사람으로 등장한다: "그 이상은 시므온이요 그 이상은 유다요 그 이상은 요셉이요 그 이상은 요남이요 그 이상은 엘리아김이요"(눅 3:30).|(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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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 Jonah(인).||#1. 구약성경.||요나는 히브리어 요나(3124: 비둘기)의 음역이며, '비둘기'를 의미하며, 한글 개역 성경에서도 '요나'로 음역했다.||(a) 요나는 아밋대의 아들이며, 갈릴리 북부 스불론 지파의 출신이며, 선지자이다(요 1:1). 요나는 이스라엘 왕, 여로보암 2세 치하에서 살았으며, '여로보암 2세가 하맛 어귀에서부터 아라바 바다까지' 이스라엘 지경을 회복할 것이라고 예언했다(왕하 14:25).||(b) 요나는 사역 초기에는 북 이스라엘에서 활동하였으나 사역 후기에는 니느웨로 보냄을 받았다. 요나서는 니느웨 사역에 대한 기록이다.|간단히 열거하면|① 요나는 니느웨 성읍의 멸망을 선포하도록 보냄을 받았으나(요 1:2),|② 여호와의 명령을 어기고 다시스행 배를 탔다(욘 1:3).|③ 그의 잘못된 행위가 폭풍의 원인으로 지목되어 바다에 던져졌다(욘 1:11-15).|④ 그는 사흘동안 큰 물고기 뱃 속에 있으면서 회개의 기도를 드렸고(욘 1:17; 욘 2:1; 7-9), 구원을 받았다(욘 2:10).|⑤ 요나는 동일한 명령을 다시 받고(욘 3:1-2), 니느웨로 가서 멸망을 선포했다(욘 3:4).|⑥ 니느웨 백성들이 회개하고(욘 3:5-8), 하나님께서 재앙을 내릴 뜻을 돌이키시고 용서해 주셨다(욘 3:10).|⑦ 요나는 하나님의 니느웨에 대한 용서와 관련하여 하나님의 자비에 노를 품고(요 4:1-3), 성읍이 어떻게 되는지 고대하며 지켜보았다.|⑧ 하나님은 박넝쿨로 니느웨에 대한 자신의 자비를 요나에게 가르쳐 주었다(욘 4:6-11).|⑨ 요나의 표적은 그리스도의 모형으로 본다(마 12:39 이하; 마 16:4; 눅 11:29; 눅 11:30).||(c) J. A. Motyer의 연구에 따르면 요나의 이야기에서 네가지 문제가 간단한 의문을 일으킨다.|① 첫째, 그의 투쟁의 동기가 무엇인가(욘 1:3 이하)? 대부분의 견해는 그가 종교적인 배타주의자여서, 이스라엘의 특권을 이방인들과 공유하는 것을 보기 싫어 도피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유대인의 견해는 요나서를 속죄일에 통독하도록 정한 바벨로니아 탈무드에 나타난 것과 같이, 니느웨 백성의 회개를, 하나님 백성이 따라야 할 모범으로 강조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Meg. 31a; 참조: M. D. Goulder).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강조하려던 점이다. 요나는 그렇게 해서 그의 백성을 위험하게 만들기 보다는, 그 자신의 목숨을 걸고 그들을 위해 기꺼이 죽으려 했다. 출 34:6, 7(욘 4:2)을 인용하면서, 그가 하나님의 심판의 엄격함에 대한 언급을 빠뜨렸다는 것은 주목할만 하다.|② 둘째, 요나서는 그의 놀랄만한 경험에 그 자신의 주석을 기록했다. 그의 기도에서 물고기의 뱃속은 "스올의 뱃속"(욘 2:2; 지옥 Hell)이 된다. 스올이 흔히 어둡고 위협적이고 죽음으로 끝나는 것 같은 것에 대한 은유이다는 점을 인식해볼 때, 여기에서의 은유의 사용은 "구덩이"(욘 2:6)의 언급과 더불어 예수님의 이 사건 인용에 대한 구약성경 배경의 일부를 이루고 있음을 보여준다.|③ 셋째, 우리는 요나가 니느웨 사람들에게 무슨 주제들에 관해 전했는지 물어보아야 한다. 기록된 바로는 다가올 심판의 선포가 전부였다(욘 3:4). 회개를 하도록 만든 것은 이 말의 힘이며, 그 말의 배후에 깃든 하나님의 권위에 대한 인식이었다. 기록에 나타나 있는한,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의 경험에 대해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고 있다.|④ 넷째, 회개의 요구는 인정되었고 하나님은 이에 완전한 만족을 표하셨다(욘 3:10 이하). 이것은 그가 원하신 바이며, 따라서 실제로 용서를 하였다.||#2. 신약성경.||요나는 신약성경에서 9회 사복음서에만 나오며, 선지자 요나에 관해 사용되었다. 요나의 이름은 신약성경에서 "요나의 표적"에 관한 조망에서만 나타난다(마 12:38-마 12:40; 병행구 눅 11:29 이하; 눅 11:32; 마 16:4). 요나의 생애 중 일어난 두 사건, 물고기 배 속에서 사흘간 지낸 일과 니느웨에서 회개를 전한 일이 언급된다.|예수님은 그 시대 사람들을 "악하고 음란한 세대"라고 하셨는데, 이는 분명히 그들을 니느웨와 대비시키려고 의도한 것이다. 그들은 마음과 생활이 "사악하고", 육적, 영적으로 "음란하다"는 것이다. 그들이 구한 표적을 주님께서 거절하신 것은 그들의 영적인 우둔함을 분명히 강조하고 있다.|마 16:1에는 그들이 "하늘로서 오는 표적", 추측컨대 하나님으로부터 분명히 오는 어떤 것, 예수님 자신이 그 일에 아무런 연루도 없었기 때문에 예수님을 확증하는 어떤 것-즉 사 7:10에 주어진 것같은 표적을 원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예수님에 대해(참조: 마 11:4) 이것은 그들 눈 앞에서 그 자신의 일을 계속 행하는 데도 알지 못하는 지독한 맹목이었다.|이 문맥에서 그는 삼중의 비교를 제시한다.||(a) 첫째, 예수님은 그 자신과 요나를 공공연히 비교시킨다: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여 줄 표적이 없느니라 하시고 저희를 떠나 가시다" "요나가 니느웨 사람들에게 표적이 됨과 같이 인자도 이 세대에 그러하리라"(마 16:4; 눅 11:30). 특히 전자에서 그는 듣는 이로 하여금 스스로 해석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후자에서 시제의 중요한 변화가 있다: "요나가...됨과(에게네토) 같이 인자도...그러하리라(에스타이)". 말하자면, 요나의 이야기를 다시 검토해 보면, 그는 하늘이 보내신 설득자(persuader)였고(앞에 언급한 첫째 범주의 표적) 분수령(watershed), 즉 한번 오고 다시 돌아오지 않는 하늘이 주신 기회였음을 그들은 잘 알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인자에 관해서도(두번째 범주의 표적), 나중에 언젠가는 그들로 하여금 인자도 역시 하나님께서 보내셨으며, 그 안에서 역시 좋든 나쁘든 그들은 돌이킬 수 없는 지점에 이르렀다는 것을 깨닫게 만드는 무엇이 있을 것이다.||(b) 둘째로, 예수님은 물고기 뱃속에서 사흘간 머문 요나의 경험과, 앞으로 그 자신 "땅속에" 머물게 되는 것(밤 낮 사흘)을 비교한다: "요나가 밤낮 사흘을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것 같이 인자도 밤 낮 사흘을 땅속에 있으리라"(마 12:40). 여기서 문제는 예수님이 요나 표상의 표적으로서 예수님의 지위가 명백해지는 그런 빛에 비추어서 다가오는 사건을 예언했을 때, 무엇을 기대하고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그의 명백한 죽음의 경험으로부터의 부활은 바로 그들이 한때 불신앙에서 구하고, 그것이 일어났을 때조차도 알아볼 수 없었던-예수님이 완전히 예견했듯이- "하늘로서 오는 표적"이 될 것이다(참조: 눅 16:31). 마태가 묘사한, 지옥같은 상황에 있는 요나와 실제로 "땅속에" 있는 예수님과의 비교는 특별히 적절한 것이다.||(c) 예수님이 비교한 표적에서 세번째 요소는 요나의 설교와 그 결과, 그리고 그 자신의 설교와 그 결과 사이에 있는 것이다: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어니와 요나보다 더 큰이가 여기 있으며"(마 12:41; 병행구 눅 11:32). 여기서 비교는 유력한 이유가 된다. 회개를 요구하는 자가 더 위대하기 때문에 회개하지 않는 것에 대해 따르는 심판은 더욱 중대할 것이다. 선지자의 지위에 대한 구약성경의 증거에 비추어볼 때, 예수님은 여기서 마 23:34에 나오는 그대로 그의 신성에 적합한 명예를 주장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참조: J. A. Motyer; A. Sand).
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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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람 Joram(인)||이오람은 히브리어 예호람(3141)의 음역이며, '여호와께서 그를 높이셨다'를 의미하며, 한글 개역 성경에서 '요람'으로 번역했다.||#1. 구약성경.||요람은 구약성경에서 요람이라는 이름으로||1. 아합의 아들 이스라엘의 왕(왕하 8:6; 왕하 8:29).||2. 하맛 왕 도이의 아들(삼하 8:9, 10).||3. 유다왕 여호사밧 때에 백성들을 가르치러 파견된 제사장(대하 17:8).||4. 레위 사람으로 모세의 아들인 엘리에셀의 후손(대상 26:26).||5. 여호사밧의 아들 유다왕이 나타난다.|(a) 유다왕 요람은 여호사밧의 아들이며, 왕위를 계승했다(왕하 8:16; 대하 21:5). 그는 왕위에 올라 세력을 얻은 후 형제들을 살해했다(대하 21:4). 아합의 딸인 그의 아내가 그를 잘못 인도했다(왕하 8:18; 대하 21:6). 그가 여호와 보기에 악하였으나 여호와께서 다윗과의 언약을 생각하여 멸하지 않으셨다(대하 21:7).|에돔과 림나가 요람을 반역하였다(대하 8:20-22; 대하 21:8, 10).||(b) 엘리야가 요람의 죄악 및 우상 숭배에 대하여 심판을 예언했으며(대하 21:12-15), 예언대로 블레셋과 아라비아 사람들이 요람을 치므로 그는 죽음을 당했다(대하 21:16-17; 왕하 8:24; 대하 21:20). 요람은 여호람이라고도 불렸다(대하 21:1).||#2. 신약성경.||이오람은 신약성경에서 2회 나오며, 마 1:8에서 예수님의 계보에 그의 조상 중 한 사람으로 나온다: "아사는 여호사밧을 낳고 여호사밧은 요람을 낳고 요람은 웃시야를 낳고". 본문의 이오람은 5번의 여호사밧의 아들 유다왕 요람을 가리킨다.|(참조: ZTB).
요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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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림 Jorim(인)||이오레임은 신약성경에서 한번 눅 3:29에 나오며, 예수님의 족보에서 그의 조상 중 한 사람으로 나타난다: "이상은 예수요 그 이상은 엘리에서요 그 이상은 요림이요 그 이상은 맛닷이요 그 이상은 레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