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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건
kavlumma
수건, 베일 veil, 덮개 covering.||#1. 고전 헬라어 문헌||명사 칼륌마는 고전 헬라어 문헌에서 칼륍토($2572:덮다, 감추다)에서 유래했으며, '덮어씌우는 것, 덮개'를 의미한다. 이 단어는 호머 이후부터 나타나며, 시적 용법으로 사용되었다. 한 가지 중요한 의미는 '머리를 덮는 것, 두건'이나 '베일'이라는 의미이다. 베일을 쓰는 것은 슬픔, 재앙의 방지, (신부의) 다산(多産), 정령의 존재(가면을 씀) 등과 관련된다.||#2. 70인 역본의 용법||명사 칼륌마는 70인 역본에서 20회 사용되었다. 이 단어는 출 34:34 - 35에서 모세가 자신의 얼굴을 가린 수건에 대해 사용되었다. 수건이 사람들을 하나님의 영광으로부터 보호해 주었는지, 아니면 신성모독으로부터 하나님의 영광을 보호해 주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되고 있다. 아마 두 가지 요소가 모두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 자신이 원할 때만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다.|민 4:6,8,12 등에서 이 단어는(카타칼륌마와 함께) 언약궤, 향단, 향단의 기명들 등과 같은 거룩한 물건들이 만져지거나 보이거나 하는 것을 싸거나 막는 덮개에 대해 사용되었다. 이러한 것들을 보거나 건드리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했다(민 4:15,20).||#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칼륌마는 신약성경에서 4회 발견되는데, 모두 고후 3:13 - 고후 3:16에 나온다. 여기에서 바울은 출 34:33 - 35을 언급한다. 출 34:33 - 35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의 얼굴에서 발산되는 광체를 두려워하였기 때문에 모세가 얼굴을 수건으로 가렸다고 기록되어 있다(출 34:30; 참조: 민 4:l5,20). 바울은 이 두려움의 동기에 주의하지 않고, 이 구절을 이스라엘 백성이 이 일시적인 광채의 마지막을 보지 못하게 하기 위해 모세가 수건을 썼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한다.|바울은 모세의 이야기를 사용하여 구약성경의 계시와 복음을 비교한다. 구약의 없어질 영광은 새롭고 영원한 영광과 대조된다(고후 3:1l).||(a) 수건(혹은 베일)은 없어질 광채를 가리운다. 그 없어질 광채도 영광스러운 것이다. 만일 일시적인 광채가 그렇게 영광스럽다면 복음의 영원한 광채는 얼마나 더 영광스럽겠는가?(고후 3:7).||(b) 수건(혹은 베일)은 완고한 이스라엘 백성이 구약성경을 읽을 때 그들의 마음에 가리워져 있는 덮개를 상징한다. 고후 3:14 이하를 읽어보면, "구약"이 읽혀지는 오늘날까지도 이 수건은 여전히 걷혀지지 않은 채로 남아 있다고 언급되어 있다. 이 구약성경에서 그들이 보아야만 할 것은 그리스도의 영광이다. 그런데 이 수건은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구약성경의 참된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는 유대인들의 마음을 가리고 있다. 모세가 하나님께로 나아갈 때 수건을 벗은 것과 같이(출 34:34), 이스라엘이 주님께로 돌아갈 때, 그래서 그들이 기꺼이 성령에 의해 지배 받을 때 그 수건은 이스라엘에게서 벗겨질 것이다(출 34:16; 참조: l7절).|이렇게 될 때 그들은 주님의 영광을 보게 될 뿐만 아니라 그들 자신이 주님과 닮은 모습으로 변할 것이다.|(참조: Walter Bauer; A.Oepke; W.Mundle).
가리우다
kaluvptw
덮다, 가리다 cover, 감추다 hide, 숨기다 conceal.||#1. 고전 헬라어 문헌||동사 칼륍토는 칼륍(%43: 오두막)에서 유래했으며, 본래 의미는 '파묻다'를 뜻하는 것으로 보이며, 이러한 의미에서 '감추다, 숨기다, 덮다'라는 의미가 나왔다. 고전 헬라어에서는 호머로부터 나타나나 아데네 산문에는 매우 드물게 나타난다. 후기 헬라어에서 문자적인 의미와 비유적인 의미가 모두 발견된다.||#2. 70인 역본의 용법||동사 칼륍토는 70인 역본에서 90여회 나오며, 주로 히브리어 카사의 역어로 사용되었다. 이 단어는 구름이 시내 산을 덮은 것과 흑암이 땅을 덮은 것에 대해 사용되었다(출 24:15; 사 60:2). 시 32:5에서 이 단어는 죄를 숨기는 것에 대해, 시 85:2에서는 하나님께서 용서로 죄를 덮으심에 대해 사용되었다. 이 단어는 시편(3l:5; 43:l5; 84:2 등)과 에스겔서(겔 7:18; 16:8, 24:7 이하 등)에 빈번하게 나타난다.||#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칼륍토는 신약성경에서 7회 나오며, 문자적 의미와 비유적 의미로 사용되었다.||(a) 문자적인 의미로 칼륍토는 마 8:24에서 배가 물결에 의하여 덮힘에 대해, 눅 8:I6에서 사람이 그릇으로 등불을 덮는 것에 대해 사용되었다. 그리고 눅 23:30에서 사람들이 "작은 산들에 대하여 우리를 덮으라 하리라"한 말이 나타난다.||(b) 비유적 의미로 칼륍토는 마 10:26에 나타난다: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이 말씀은 다양한 적용의 여지가 있으나 이 문맥에서는 예수님에 의해 제자들에게 주어진 임무를 언급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메시지를 억압하려는 여러 가지 시도에도 불구하고 결국 그 메시지가 선포하는 것을 보일 것이다. 그들에게 은밀하게 말해진 말씀이 지붕에서 공공연하게 선포될 것이다(마 1O:27).|고후 4:3:"만일 우리 복음이 가리웠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운 것이라". 반대자들은 바울의 복음이 가리워져 있다고 이의를 제기했다. 즉 메시지가 진실한 신적 계시의 명백한 힘이 없고(참조: 고후 3:12 이하), 또 그것을 선포하는 자는 참 신적 사자(使者)의 단순한 진실성도 없다는 것이다(고후 3:10 이하; 고후 4:2). 바울은 얄궃게도 이것을 수용하여 해학적인 적용을 하였다. 이 세상의 신, 사탄이 그들의 눈을 멀게 하므로, 그들은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빛을 볼 수 없다. 칼륍토는 운명을 뜻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그것은 인간의 자유 의지 및 선택의 자유를 포함한다. 이 사상은 고후 3:15 이하에 칼륌마($2571)와 고후 3:18에 아나케카륌메노 프로소와 관련되어 있다.|약 5:20과 벧 4:8에서 칼륍토는 사랑의 행위로 말미암아 죄를 덮는 것에 대해 말할 때 잠 10:12에 근거하고 있다. 사랑은 하나님의 용서에 이르는 것을 보증한다. 교부들은 일반적으로 사랑은 사랑을 실천하는 자들의 죄를 덮는다는 것에 동의한다(참조: 클레멘트일서 50:5; 클레멘트이서 15:1). 이와 유사한 사상은 아마도 가리워진 죄가 사랑하는 자의 죄이라면, 오직 용서하는 자만이 용서받는다는 것이다(마 6:15).(참조: Walter Bauer; A.Oepke; W.Mundle).
낫는
kalw'"
훌륭하게, 잘, 올바르게.||부사 칼로스(Homer 이래)는 '아름답게, 훌륭하게, 잘'을 의미하며, 다음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a) '알맞게, 적당하게, 바로, 잘, 훌륭하게',||(b) 도덕적 의미에서 '칭찬할만하게, 흠없이',||(c) '선하게, 좋게, 받을만하게', 마 12:12; 눅 6:27; 눅 6:26; 막 16:18.||(d) '올바르게, 정확하게, 정당하게, 적절하게',|① '행하다'라는 동사와 함께, 고전 7:37; 고전 7:38; 약 2:8; 약 2:19; 행 10:33; 빌 4:14; 요삼 1:6; 벧후 1:19.|② '말하다, 듣다' 등의 동사와 함께, 마 12:28; 눅 20:39; 요 4:17; 행 28:25; 요 8:48; 요 13:13; 요 18:23; 마 15:7; 막 7:6.|③ 감탄사로 '옳다, 옳은 말이다', 막 12:32; 롬 11:20.||(e) 빈정대는 말로 '잘도', 고후 11:4; 마 7:9.|(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약대
kavmhlo"
낙타 camel||#1. 고전 및 70인역본||명사 카멜로스(Aeschyl., Hdt. 이래)는 '낙타, 약대' camel를 의미한다. 낙타는 근동 전역에 흔히 볼 수 있는 것이며, 구약성경에서는 족장들이 이용했으며(창 24:10 이하), 베두인족들이 애용했다(참조: 삿 6:5; 삿 7:12).||카멜로스는 70인역본에서 62회 나오며, 가말(1581: 낙타)의 역어로 사용되었다(창 12:16; 창 24:35; 출 9:3; 슥 14:15 등).||#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카멜로스는 신약성경에서 6회 나온다.||(a) 마 3:4(병행구, 막 1:6), "이 요한은 약대 털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띠를 띠고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이었더라". 세례(침례) 요한은 낙타털로 만든 옷을 입었다. 낙타털은 값이 싸고, 질기며, 특색이 있는 것이다(참조: 마 11:8). 믿음의 사람들은 그러한 거친 외모 배후에 선지자를 볼 것이다(참조: 슥 13:4). 광야의 주제가 나타난다(참조: 음식). 하나님은 옛 시대에서처럼 광야에서 그의 백성들에게 말씀하시고 계신다(호 2:14-15). 아마도 엘리야와 약간의 유사성이 있는 것 같다(왕하 1:8; 털옷과 가죽띠).||(b) 마 19:24(병행구, 막 10:27; 눅 18:25),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신대". 예수님은 부자 청년 관원과 면담을 한 후에 일반적으로 부자들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 전형적인 근동 지역의 비유를 사용한다.||(c) 마 23:24, "소경된 인도자여 하루살이는 걸러 내고 약대는 삼키는도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 대한 비난에도 위에서 말한 것과 유사한 비유가 포함되어 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염려스런 율법주의로 그들의 음료수에서 죽은 곤충(하루살이)은 걸러낼 것이나 의와 자비에 무관심하고 착취와 탐욕의 죄로 낙타를 삼킬 것이다(마 23:23; 마 23:25). 그들은 율법에 대한 모든 균형 감각을 상실하였으며, 이러한 상실로 인해 심판을 받을 것이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O. Michel).
풀무
kavmino"
아궁이, 화덕, 풀무.||#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카미노스(Aeschyl. Hdt. 이래)는 카이오($2545: 불을 붙이다, 타다, 태우다)에서 유래했으며, '아궁이, 화덕, 풀무'를 의미하며, 도공의 '가마' 재련공의 '풀무'(X., Diod.)에 대해 사용되었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카미노스는 신약성경에서 4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마태복음에서 카미노스는 지옥불에 대해 비유적 의미로 사용되었다.|① 마 13:42,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② 마 13:50,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b) 요한계시록에서 카미노스는 상징들로 사용되었다.|① 계 1:15에서 그리스도의 발과 관련하여 사용되었다: "그의 발은 풀무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 소리와 같으며",|② 계 9:2에서 무저갱에서 올라오는 것에 대해 사용되었다: "저가 무저갱을 여니 그 구멍에서 큰 풀무의 연기 같은 연기가 올라오매 해와 공기가 그 구멍의 연기로 인하여 어두워지며".|(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감다
kammuvw
눈을 감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캄뮈오(Homer, Apoll.)는 '눈을 감다'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캄뮈오는 신약성경에서 2회 나오며, 마태복음과 사도행전에만 사용되었다.|마 13:15; 병행구 행 28:27에서 캄뮈오는 복음에 대한 적대적 태도에 대해 사용되었다: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였느니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게으르다
kavmnw
일하다, 수고하다, 지치다, 기운을 잃다, 병들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캄노는 호머 이래로 자주 사용되었으며,||(a) '일하다, 노력하다, 수고하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 의미에서부터|(b) '지치게 되다, 피곤해지다, 매우 애쓰다'를 의미하게 되었다.|(c) 그리고 이 단어는 '병들다'를 의미한다(Hippocrates, Acut. 1. 1, 32 등).||#2. 70인역본의 용법.||70인역본에서 캄노는 6회 나오며, 욥 10:1에서만 히브리어 쿠트(몹시 싫어하다)를 번역하였다. 그리고 외경에서 지혜서 4:16; 15:9; 마카베오사서 3:8; 7:13에 사용되었다.|욥의 영혼이 살기를 '몹시 싫어했다'(욥 10:1). 엘리에살은 육체의 힘이 다 소진되고 근육의 기력이 빠지고 체력이 ['약해졌지'만] 다시 청년이 되었으며(마카베오사서 7:13), 다윗은 저녁이 되었을 때 땀에 흠뻑 젖고 완전히 '기진맥진하였다'(마카베오사서 3:8). 영혼이 몹시 쇠약해진 포위 당한 백성들이 새로운 용기를 얻는다(Diodorus Siculus 20.96). 매우 자주 이 동사는 부정어와 함께 사용된다. 하나님께서는 '나는 천국으로 인도하는 길을 정하시며 모든 간청하는 영혼들을 위하여 오솔길을 대로처럼 밝히시어 그들이 길을 갈 때에 피곤치 않게 하는 자이다'고 말씀하셨다(Philo, Post. Cain 31). 처음 시도할 때에 찾던 것을 얻지 못할지라도 지치지 말고 인내하라'(Philo, Migr. Abr. 220). 열심히 진리를 구하지 않는 자들은 육체적으로 병들어 의사의 치료를 구하는 자들을 모델로 삼아야 한다(Philo, Good Man Free 12). 모세는 자신을 바로의 위협에 약해지지 않도록 했다(Josephus, Ant. 2, 290).||#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캄노는 신약성경에서 2회 나오며, 히브리서와 야고보서에만 사용되었다.||(a) 히 12:13, '피곤하거나 지치다'를 의미한다: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 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b) 약 5:15에서 '병들다'를 의미한다: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찌라도 사하심을 얻으리라". 이 의미는 고전 문헌에서 발견되며, 첫 세기에도 통용된 의미이다. "하나님께서 병자를 구원하시기 위해 영혼의 상처에 향유를 바르심으로 치료를 베푸신다"|(참조: TLN; Walter Bauer; J. H. Thayer).
캄프토
kavmptw
구부리다, 절하다, 무릎을 꿇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캄프토(Homer 이래)는 '구부리다, 절하다', 고뉘($1119: 무릎)와 함께 '앉거나 쉬기 위해 무릎을 꿇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Homer). 기도의 형식으로 무릎을 꿇다는 언급은 아직 발견되지 않는다.||#2. 70인역본의 용법.||동사 캄프토는 70인역본에서 20회 나오며, 주로 히브리어 카라(3766: 숙이다, 구부리다)의 역어로 사용되었으며, '구부리다'(삿 5:27), '꿇다'(삿 5:27; 삿 7:6)라는 의미를 나타낸다. 외경에도 나타난다.||#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캄프토는 신약성경에서 4회 나오며, 바울 서신에만 사용되었다. 이 단어는 고뉘(무릎)와 함께 사용되어 '복종과 경배로 무릎을 꿇는 것'을 의미한다.||(a) 캄프토는 롬 14:11에서 하나님께 대한 우주적인 인정(고백)과 관련되어 있다: "기록되었으되 주께서 가라사대 내가 살았노니 모든 무릎이 내게 꿇을 것이요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하리라 하였느니라".||빌 2:10에서도 같은 의미를 나타낸다: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b) 캄프토는 롬 11:4에서 바알 숭배에 넘어가지 않는 것을 가리킨다: "저에게 하신 대답이 무엇이뇨 내가 나를 위하여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사람 칠천을 남겨 두었다 하셨으니".||(c) 캄프토는 엡 3:14; 엡 3:15에서 기도의 자세를 나타낸다: "14 이러하므로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 바울은 70인역본에서 이 표현을 받아들인다(참조: 사 45:23; 대상 29:20).|(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H. Schlier).
만일(~) 더라도
ka[n
그리고 만일 ~이라면, 오직 ~하기만 하면, 비록 ~일지라도.||부사 칸(Hes. 이래)은 카이($2532)와 에안($1437: 만일 ~이라면)에서 유래했으며,||(a) '그리고 만일 ~이라면'(마 10:23; 막 16:18; 눅 12:38; 요 8:55; 고전 13:2; 약 5:15; 눅 13:9).||(b) '오직(적어도, 최고한) ~하기만 하면'(막 5:28; 막 6:56; 행 5:15).||(c) '비록 ~일지라도'(마 21:21; 마 26:35; 요 8:14; 요 10:38; 요 11:25; 히 12:20).|(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가나
Kana'
가나 Cana(지)||카나는 갈릴리에 있었던 한 동네이며, '갈릴리 가나'라고 불렸다. 고대 및 중세의 전통에 의하면 가나는 나사렛 북동쪽 약 6㎞ 지점에 위치한 게프르켄나와 동일시한다. 어떤 학자들은 이곳에 나다나엘의 집이 있었다고 한다.|그러나 현대 학자들은 나사렛 북쪽 약 13-14㎞ 지점에 위치한 '길벳 가나'라고 생각한다.||가나는 신약성경에서 요한복음에서만 4회 나온다.||(a) 예수님은 가나에서 그의 첫번째 이적, 물로 포도주를 만든 이적을 행하셨다: "1 사흘 되던 날에 갈릴리 가나에 혼인이 있어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11 예수께서 이 처음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요 2:1; 요 2:11).||(b) 예수님은 가나에서 관헌의 아들의 병을 고치신 이적을 행하셨다: "예수께서 다시 갈릴리 가나에 이르시니 전에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곳이라 왕의 신하가 있어 그 아들이 가버나움에서 병들었더니"(요 4:46).||(c) 가나는 예수님의 제자 중 한 사람 나다나엘의 출신지였다: "시몬 베드로와 디두모라 하는 도마와 갈릴리 가나 사람 나다나엘과 세베대의 아들들과 또 다른 제자 둘이 함께 있더니"(요 21:2).|(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가나안인
Kananai'o"
가나안인 Canaanite.||카나나이오스는 아람어 칸안에서 유래했으며, 호 젤로테스와 같은 뜻으로 '열심당, 열심 있는'을 의미한다. 한글 개역 성경에서 이 단어는 '가나안인'으로 음역했다.||카나나이오스는 신약성경에서 2회 나오며, 마 10:4과 병행구 막 3:18에만 사용되었다. 그는 예수님의 열 두 제자 중 하나로 가나안인 시몬이다. 그가 가나안인이라는 것은 가나안 태생이나 가나(Cana) 출신이라서가 아니라 셀롯당(젤로테스) '열심당'인 점에 있다.|눅 6:15과 행 1:13에 보면, 그는 셀롯당이었다. 이들은 민족주의자들로 팔레스틴 지방을 다스리던 로마 정권에 반대하여 싸웠다. 그러나 이 시몬은 진짜 열심당원이 아니라 그의 성품으로 인하여 예수님이나 그의 동료들로부터 이 별명을 받았는지도 모른다.|(참조: PEB; NBD).
간다게
Kandavkh
간다게 Candace.||칸다케는 에디오피아 여왕의 칭호이다. 이 에디오피아는 수도가 메로에(Meroe)인 북 수단의 누비아(Nubia) 왕국을 말한다. 고전 학자들은 B.C. 1세기 및 A.D. 1세기에 메로에에서 이 칭호를 갖고 있었던 여성 통치자들을 언급하고 있다. 이 공통적인 이름은 마치 고유 명사 프톨레미(Ptolemy)가 애굽의 왕들에게, 헨리(Henry)가 루스(Reuss) 군주들에게 공통적인 칭호인 것과 같다.||칸다케는 신약성경에서 행 8:27에 한번 나온다: "일어나 가서 보니 에디오피아 사람 곧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모든 국고를 맡은 큰 권세가 있는 내시가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여기서 간다게는 아마도 A.D. 25-41년 경에 통치한 아만티데레(Amantitere)였을 것이다. 그녀와 그녀의 남편은 여러 채의 누비아 사원을 건축하고 중건했으며, 그녀의 피라미드와 무덤이 메로에에서 발견되었다.|이 간다게의 내시는 예루살렘과 가사 사이의 노상에서 빌립에게 복음을 듣고 세례(침례)를 받았다.|(참조: PEB; NBD).
한계
kanwvn
규칙 rule, 표준 standard, 척도 norm.||#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카논은 셈족어에서 유래한 외래어이며, 그 기본 의미는 '갈대'(reed)이다.|세속 헬라어에서 카논은 '갈대'라는 셈족어의 기본 의미에서 '곧은 막대나 지팡이'라는 비유적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a) 문자적으로, '방패의 테를 두르는 가지들, 베짜는 자의 말코, 저울대, 또는 건축할 때 재는 막대나 자',||(b) 비유적 의미로, '규범과 완전하고 조화롭고 균형잡힌 것', 즉 이상,||(c) 음악에서 '음향조율기',||(d) 문법에서 '모범적인 작가들의 정본',||(e) 법률에서 '구속력을 가지는 법률'과 '특별한 이상들',||(f) 철학에서 카논은 에피큐러스에 의해 참된 것이나 거짓된 것, 추구해야 할 것이나 피해야 할 것을 아는데 필요한 기초를 가리킨다. 카노네스(%85)는 진리와 가치의 기준 또는 자유 의지의 올바른 사용을 위한 척도이다. 요약하면 판단의 기준이다.||(g) 수학, 천문학, 역사에서 카논은 '일람표', 또는 목록을 의미하고 미술에서는 윤곽선을 의미한다. 그리고 폴리클리투스(Polyclitus)의 '창을 든 자'는 그의 동시대 사람들에 의해 카논으로 불리웠다(Pliny, Natural History 34, 35).||#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카논은 70인역본에서 3회 나오며, 히브리어 동의어 없이 사용되었다. 거의 이해할 수 없는 미 7:4에서 카논은 히브리어 동의어 없이 사용되었는데, 아마도 고정된 '규칙'을 나타내는 듯하다.|유딧 13:6에서 카논은 '침대의 다리'를 가리킨다. 마카베오사서 7:21에도 나온다.|70인역본에는 카논으로 표현된 생각들에 대한 술어도 없고 이해도 없으며, 측량 막대를 나타내는 히브리어의 역어로도 사용되지 않았다.||#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카논은 신약성경에서 4회 나오며, 바울 서신에서만 사용되었다.||(a) 바울은 카논을 '규범', 또는 '표준'이란 의미로 사용한다.|갈 6:16에서 카논은 개인적인 그리스도인의 생활의 규범과 다른 것들을 판단하는 표준인 것이다: "무릇 이 [규례를] 행하는 자에게와 하나님의 이스라엘에게 평강과 긍휼이 있을찌어다". "이 규례로"라는 구절로 바울은 앞에서 자신이 말한 모든 것을 요약한다. 카논은 생활의 규례이며, 그 내용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상의 죽으심이다. 이것은 하나님과의 새로운 관계를 주며 이것으로 존재를 위한 새로운 근거를 부여하는 것이다. 카논은 행하여야 할 바, 거부되어져야 할 것과 받아들여져야 할 것을 결정하며, 새로운 가치의 등급을 수립한다. 새로운 가치란 그리스도께서 주신 구원 밖에서 발견되는 모든 것으로부터 구별되는 것이다. 카논은 매일의 생활 경영에서 적용되는 규범이다. "새로 지으심을 받은 자"(참조: 갈 6:15)는 이것과 조화된다. "이 규례를 행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구원의 역사로 말미암아 형성된 새로운 인간이 사고와 행동의 과정에서 그 자체를 나타낸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의 규례로 생활하는 자는 누구나 "하나님의 이스라엘"에 속한다.|빌 3:16에서 카논도 유사한 의미를 나타낸다: "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 GLTTrA 헬라어 성경에는 '카논'이 추가되어 있어 "그 대로가" '바로 그 규범(규례)대로'로 번역할 수 있다. 바울은 이곳에서 그리스도에게 잡힘, 곧 그로 하여금 하늘의 부르심의 목표를 향하여 나아갈 수 있게 하는 경험에 대하여 말한다. 이러한 해석들은 카논을 갈 3:16에 나온 것과 같은 의미로 소개한다. 이것은 모두가 공통적인 마음가짐으로 따랐던 행동 규범이다.||(b) 카논은 고린도후서 10장에서 3회 나타난다. 고린도후서 10장에서 카논은 사람의 능력이나 영향력이 한정된 범위 내의 확실하게 결정된 공간, 누군가에게 할당된 구역 또는 어떤 사람의 활동 범위 등을 나타낸다(Robertson).|고후 10:13, "그러나 우리는 분량밖의 자랑을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이 우리에게 분량으로 나눠 주신 그 분량의 [한계]를 따라 하노니 곧 너희에게까지 이른 것이라".|고후 10:15, "우리는 남의 수고를 가지고 분량밖에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 믿음이 더 할수록 우리의 [한계]를 따라 너희 가운데서 더욱 위대하여지기를 바라노라".|고후 10:16, "이는 남의 [한계] 안에 예비한 것으로 자랑하지 아니하고 너희 지경을 넘어 복음을 전하려 함이라".|(참조: H.W.Beyer; J.Guhrt; H.G.Link).
가버나움
Kapernaouvm
가버나움 Capernaum.||#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카페르나움/ 가버나움은 '나훔(위로)의 마을'이란 뜻이다. 그러므로 '위로의 마을'이다.||(a) 가버나움의 위치와 유적.|가버나움은 갈릴리의 번창한 도시이며(마 11:23; 눅 10:15), 갈릴리 바다, 즉 게네사렛 호수의 북서쪽 연안에 위치하며(요 6:17; 요 6:24), 요단강이 이 호수로 유입되는 곳에서 가깝다.|구약성경에서는 이 도시가 전혀 언급되지 않은 이상 이 곳은 포로기 이후에 건설된 듯하다.|가버나움의 정확한 위치에 대해서 상당한 논란이 있어 왔다. 요세푸스는 그의 저서(wars. Ⅲ)에서 가버나움이라는 이름을 가진 많은 샘들의 위치에 대해 언급하는데 그 샘들은 아인 에트-틴(Ain et-Tin)과 아인 에트-타브가(Ain et-Tabgha)에 있으며, 이 두 지명의 위치는 칸 미니아(Khan Minya)와 텔 훔(Tell Hurm) 사이에 있다. 이 사실을 보아서 가버나움의 위치가 어느 지점과 같다는 것을 알 수 있다.|지금은 일반적으로 '텔 훔'을 가버나움 지역의 최적지로 생각한다. 미드라쉬 랍바(Midrash Rabbah, Shir. Ⅲ. 10)와 예루살렘 탈무드에는 탄훔(Tanhum)이란 말이 나훔(Nahum)의 변형으로 나타나 있으며, 따라서 텔 훔(Tell hum)은 나훔이란 말을 정정한 것으로 생각된다. 데오도시우스(Theodosius, AD 530)와 다른 그리스도교 저술가들은 이러한 동일성을 인정하고 있다. 유세비우스의 오노마스티콘(Onomasticon)에는 가버나움이 고라신에서 3.2km 지점에 위치했을 것으로 되어 있으며, 이것 역시 가버나움이 '텔 훔'과 같은 지역임을 입증해 준다. 그러나 가버나움과 텔훔이 동일 지역이라는 사실은 텔 훔에서 발굴한 유적이 증거해 준다.|고고학적인 답사를 통하여 '텔 훔' 지역에서 여러 가지 유적들을 찾아 내었다. 이 도시가 번창하고 있었던 것은 여기가 요단강을 가버나움의 북쪽에서 가로 질러 동서로 뻗는 중요한 상업 도로였다는 것으로부터 분명히 알 수 있다. '텔 훔'의 유적 중에는 팔각형 모양의 건물이 하나 있으며, 이 건물이 베드로의 가정집으로서 이 곳에 세워진 교회의 유적일 것이라 생각된다(참조: 마 8:14; 마 8:15; 막 1:29-31; 눅 4:38; 눅 4:39).|그러나 '텔 훔'의 유적 중 가장 인상 깊은 것은 팔레스틴에서 가장 잘 보존되어 있는 회당의 유적이다. 윌슨(charles Wilson)이 1865-1866년에 발굴했을 때 그것이 복음서에 기록된 건물(눅 7:5)인 줄 생각했으나 1905년 콜(H. Khol)과 왓칭거(C. Watzinger)에 의한 발굴 연구에 의해 확인된 것은 그것이 예수님 당시에 회당 장소일 수 있으나 건물 자체는 3세기의 것이었다. 물론 이 회당은 눅 7:5에 기록된 대로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에 가셔서 전도하실 때 사용하셨던 회당 바로 그 자리에 세운 것으로 생각된다. A.D 385년에 실비아(Sylvia)가 쓴 '우리 주님께서 회당에 가까이 가시다'에 나오는 상세한 묘사의 기록이 놀랍게도 지금 이곳 '텔 훔'에서 발굴된 회당으로 올라가는 거리의 과정과 잘 조화된다.|회당은 흰 석회석으로 지어졌으며, 2층 높이의 훌륭한 건물이었다. 회당 내부는 원주(圓柱)의 열(烈)에 의해 길이 20m, 폭 8.2m의 중앙 골마루(central aisle)와 동북서 세 방향에 있는 측면 본당(Lateral naves)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북서쪽 모퉁이의 부속으로 2층 계단이 있었고 예루살렘을 향해 남쪽 끝에는 돌로 만든 법궤가 있었다. 그리고 뜰에는 의식용 물항아리가 있었고, 주랑 아래는 학교와 빈민을 위한 숙박소가 있었다.|이 회당의 장식은 유대 율법을 엄격히 따르지 않는 것이 특색이다. 여러 가지 동물들의 모습으로 신화적, 기하학적 모습이며, 특히 기하학적인 모습의 것은 마술적 상징으로 보인다. 이러한 장식은 당시 유대교 성격을 반영하고 있다. 랍비 문학은 가버나움을 미님(바리새파가 이단으로 한 전승을 고수하는 학파)의 좌(座) 또는 분파의 무리라고 불렀다. 한 기둥에서 다음과 같이 아람어로 새긴 흥미로운 글귀가 발견되었다. '요한의 아들, 세베대의 아들 알패오가 이 기둥을 만들었다. 그에게 축복이 있으라'. 아마도 요한과 야고보와 세베대의 가족은 이 도시에서 널리 알려진 사람들이었던 것 같다(참조: 마 4:21; 막 1:19; 눅 5:10).||#2. 신약성경.||복음서에 의하면 가버나움은 매우 중요한 성읍이었다.|가버나움은 당시에 번창한 도시로 세관이 있었다(마 9:9).|가버나움에는 왕의 신하의 집이 있었다(요 4:46).|또한 가버나움에는 유대인을 위해 회당을 지어준 백부장도 자기 부대와 함께 주재하였다(마 8:5-13; 눅 7:1-10).|베드로와 안드레는 부르심을 받기 전부터 가버나움에 살았으며, 예수님을 만나 영접했다(막 1:16-21; 요 1:4).|예수님은 나사렛에서 배척을 당하신 후에(마 4:13; 요 2:12) 가버나움을 갈릴리 전도의 본부로 삼으셨다. 그리하여 가버나움은 예수님의 둘째 고향이 되었다(막 2:1).|예수님께서는 이 가버나움에서 어부들을 제자로 부르셨고(마 4:18; 막 1:16; 눅 5:1), 마태가 세관에 앉아 있을 것을 보시고 제자로 부르셨다(마 9:9 이하; 막 2:13 이하; 눅 5:27 이하).|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여기 있는 회당에서 가르치셨으며(막 1:21; 눅 4:31; 요 6:59), 성전세 반 세겔을 내게 하셨다(마 17:24).|예수님께서는 가버나움에서 많은 이적들을 행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여기서 중풍병 걸린 백부장의 하인(마 8:5-13; 눅 7:1-10), 왕의 신하의 아들의 병(요 4:46-54), 베드로의 장모의 열병(마 8:14-17; 막 1:29-31), 네 사람이 메고 온 중풍병자(마 9:2-8; 막 2:1-12; 눅 5:17-26), 더러운 귀신들린 사람(막 1:21-26; 눅 4:31-37), 그 밖의 많은 병자(마 8:16; 마 8:17; 막 1:32 이하; 눅 4:23; 눅 4:40 이하)를 고치셨다.|예수님께서는 예수님의 가르침과 행사에도 불구하고 이 성읍 사람들이 회개하지 않았으므로 이 성읍이 완전히 멸망될 것을 예언하셨다.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네게서 행한 모든 권능을 소돔에서 행하였더면 그 성이 오늘날까지 있었으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날에 소돔 땅이 너보다 견디기 쉬우리라"(마 11:23; 마 11:24; 눅 10:15).|이와 같이 주님께서 이 성읍에 대해 예언하신 말씀은 문자 그대로 이루어져서 가버나움 본래의 모습은 찾아보기가 어려우며,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다만 지금 고고학적으로 발굴된 '텔 훔' 지역이 이 가버나움과 동일시 될 뿐이다.|(참조: PEB; PBD; ISBE).
혼잡하게 하다
kaphleuvw
소매상을 하다, 행상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카펠류오(Aeschyl., Hdt. 이래)는 카펠로스(%: 도매업자에게서 산 물품을 시장에서 파는 '소매상인')에서 유래하며, 따라서||(a) 이 단어는 '소매상인이다, 소매상을 하다, 행상하다'를 의미한다.||(b) 이 단어는 속임수와 탐욕의 뉘앙스를 지닌다. 따라서 어떤 것을 '속여서 부당한 이득을 남기고 팔다, 어떤 장사를 하여 더러운 이득을 얻다'나 '어떤 물건 즉 상품을 거짓 설명하다'를 의미한다.||(c) 이 단어는 지적인 의미에서, '돈을 위해 가르침을 팔다'는 의미를 지닌다. 따라서 이 단어는 돈을 위해 가르침을 파는 거짓 소피스트나 철학자들을 비평하는 철학자들의 논쟁에서 사용되었다.||#2. 70인역본의 용법.||동사 카펠류오는 70인역본에서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사 1:22에 나오는 형용사 카펠로스(소매상인)는 일반적인 경멸적 어조를 띤다: "너는 찌끼가 되었고 너의 포도주에는 물이 섞였도다".||#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카펠류오는 신약성경에서 고후 2:17에 한번 나온다: "우리는 수다한 사람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 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 이 말씀은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팔고 사는 많은 설교자들에게 속하지 아니하고 신실함(정직, 비이기심, 객관성)으로 하나님에 의해(능력을 부여 받고 영감 받아)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에 대해 말하노라'고 의역할 수 있다.|이 말씀은 바울의 성실성에 대한 단언이며(참조: 행 20:33), 중상모략적인 비난에 대한 변명이며, 모든 거짓된 자기 본위의 사역자들과 선지자들로부터 구분 짓는 것이다. 그들은 바울을 곤란에 빠뜨리거나 바울을 거짓으로 그들과 연관시키는 자들이다(참조: 살전 2:3-5; 고후 11:1 이하). 유사한 표현이 고후 4:2에 나오는 해명적이고 논쟁적인 문맥에서 발견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케 아니하고".|바울이 반대자들 및 경쟁자들, 즉 유대 기독교인, 영지주의자들, 유대와 헬라 사이를 방황하는 설교자들과 맞서 싸울 때, 이와 같이 소피스트들과의 논쟁에서 헬라 철학자들에 의해 그 큰 의미를 부여 받은 한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다. 바울은 이 표현의 기원을 알고 있었다고 충분히 사료된다. 왜냐하면 그는 자주 헬라 세계에서 소피스트들과 마주쳤음에 틀림없고, 그의 시대에 철학자들 자신들이 종종 '말들의 행상인들'(peddlers of words)이 되었기 때문이다.|행 17:18("이 말장이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느뇨?")에 따르면 바울 자신이 전문 자격을 갖춘 자들에 의해 그런 부류의 철학자라는 비난을 받는다. "말장이"라고 번역된 스케르몰로고스는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케 하는 것'(카펠류오나 돌로오[$1389])을 뜻하는 모욕적인 유사 용어이다.|바울이 카펠류온테스 톤 로고스 투 데우("하나님의 말씀을 혼잡케 하지")라고 말했을 때,||(1) 첫째로 그것은 선교를 위해 위탁받는 하나님에 관한 말씀을 돈을 위해 제공하고, 그러므로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전 9:14)는 주님의 유명한 말씀에 의해 지지 받는 정당한 관례까지도 비난 받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2) 둘째 그것은 (소매 상인이 순수한 포도주를 구입한 다음 그것에 물을 섞는 것과 같이) 다른 것들을 덧붙여 말함으로(참조: 고후 4:2) 말미암아 말씀을 왜곡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유대주의화한 자들의 거짓 복음을 가리킨다(고후 11:4).|그렇다면 이 점에서 예수님께서 친히 선교 사역을 위해 지시하신 규칙(마 10:10; 눅 10:7)은 바울에게서 최고의 철학자들이 받아들인 기본적인 원칙, 즉 철학은 돈을 위해 가르쳐서는 안된다는 것과 상충되는 것같아 보인다. 바울은 주님의 말씀을 알고 있지만(고전 9:14; 딤전 5:18), 그는 소크라테스의 태도를 따라 그 말씀을 지킨다고 우리가 표현할 수 있다면 그렇다고 할 수 있다.|바울은 사적으로 공동체의 지원을 받지 않으며, 말씀 전파의 대가를 요구하는 자들을 비난한다. 그 이유 가운데 하나는 의심할 여지 없이 플라톤이 몹시 꾸짖은 탐욕이다. 그는 방랑하는 철학자들과 소피스트들을 가끔 만났음에 틀림없으며, 비호의적인 비평가들이 바울을 그들과 같은 부류로 취급했을 가능성이 크다. 간단히 말하면 '바울은 그가 마 10:10에서 주님의 하신 명령을 받아들이고 있기는 하나 그 자신은 그가 탐욕스럽다거나 거짓된 행상을 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지 않기 위해 생활비를 지원 받을 권리를 포기했다'고 한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케 하는 것"은 거룩한 말씀의 무서운 남용을 가리키는 충격적인 어구이다. 이리하여 바울은 이것과 올바른 태도, 자기 자신의 태도, 즉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비이기적인 헌신의 태도, 하나님을 향한 책임감, 그리고 그리스도께 충성을 대조한다.|(참조: H. Windisch; Walter Bauer; J. H. Thay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