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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
kapnov"
연기 smoke.||#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카프노스(Homer 이래)는 기본어이며, '연기'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카프노스는 70인역본에서 약 30회 나오며, 히브리어 아샨(연기를 내는)의 역어로 사용되었으며, 그런 의미로 사용되었다(출 19:18 등).|카프노스는 사 6:4에서 하나님의 현현, 사 34:10에서 하나님의 복수, 사 51:6에서 세계의 종말에 대해 사용되었다.||#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카프노스는 신약성경에서 13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행 2:19에서 카프노스는 욜 3:3을 인용하여 사용되었다: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와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b) 카프노스는 요한계시록에서 12회 나온다(계 8:4; 계 9:2; 계 9:3; 계 9:17; 계 9:18; 계 14:11; 계 15:8; 계 18:9; 계 18:18; 계 19:3).|(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갑바도기아
Kappadokiva
갑바도기아 Cappadocia||갑바도기아는 한 때 할리스(Halys) 강의 경계선으로부터 유프라테스강의 상류에 이르기까지, 흑해로부터 남쪽 길리기아(Cilicia)에 이르기까지 소아시아의 전역을 포함하였다. B.C.195년 경에는 앗수르 상인들의 식민지가 갑바도기아 지역의 카네쉬(Kanesh, 오늘의 '퀼테페')에 세워져서 앗수르와 아나톨리를 연결하는 중요한 교역 거점으로 발전하였다. BC. 190년 셀류키코오스의 왕 안티오커스 3세가 로마 제국에 패함으로 인하여 갑바도기아는 로마 제국에 예속되었다. 갑바도기아는 B.C. 17년에 마지막 왕 아켈라오가 죽자 디베료(티베리우스 황제)에 의해 로마의 속령으로 정해졌다. B.C. 70년에 베스피시안 황제는 이곳을 소아르메니아와 합병하여 제국 국경의 대보류들 중의 하나로 삼았다.|마카베오일서 15:22에 언급된 아리아테스 5세(B.C. 163-130)의 편지에 의하면, 유대인 공동체가 B.C. 2세기 경에 갑바도기아에 있었다.||갑바도기아는 신약성경에서 2회 나오며, 사도행전과 베드로전서에만 나타난다.||(a) 행 2:9, "우리는 바대인과 메대인과 엘림인과 또 메소보다미아, 유대와 가바도기아, 본도와 아시아,". 오순절에 예루살렘을 방문했던 유대인 순례자들 중에 갑바도기아에 사는 유대인들이 있었다.||(b) 벧전 1:1,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 베드로는 그의 서신의 서두에서 갑바도기아에 거주하는 그리스도인들을 언급한다. 이 지방의 수도는 가이사랴(현대는 카이세리)로서 그리스도교 발전에 주도적 역할을 한 도시였다. 초대 교회의 여러 중요한 인물들, 예를 들면 바실(Basil The Great), 그레고리(Gregory of Nyssa), 또 다른 그레고리(Gregory of Nazianzus) 등이 이 지방의 가이사랴에서 배출되었다. 이들은 삼위일체 교리 형성에 큰 기여를 했다.|(참조: PEB; NBD).
심비
kardiva
마음 heart.||#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카르디아(Homer 이래로)는 '마음'을 의미하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본래 생리학적으로, 사람이나 짐승의 신체의 중심기관으로서의 마음에 대하여 사용되었다(Homer, Aesch., Plat., Aristoph. 등)||(b) 비유적으로 도덕적, 지적 생명의 자리로서의 마음, 즉|① 감정과 열정의 자리(분노, 용기나 비겁, 기쁨이나 슬픔, 사랑과 미움 같은 것을 나타낸다),|② 생각이나 상상력의 자리,|③ 의지와 결심의 자리를 의미한다.||(c) 또 다른 비유적 용법으로, 자연에 관한 특별한 의미로 사용될 때 '나무의 심'과 '식물의 종자' the seed of plants 였다. 또한 카르디아는 핵심 즉(인간, 동물, 식물의) 가장 깊숙한 부분이라는 일반적인 의미도 지녔다.|이 단어는 더 이상 단순히 신체의 중심부를 지칭하는 말로만 사용된 것이 아니라 인간 전체의 지적, 영적 중심부를 지칭하는 말로도 사용되었다.||#2. 70인역본의 용법||카르디아는 70인역본에서 약 800회 이상 나오며, 주로 마음을 뜻하는 레브와 레밥의 역어로 사용되었다. 70인역본에서 카르디아는 감정적인 생활, 지적인 생활, 의지적인 생활 및 종교적 생활을 포괄한 인간 생활의 중심이다.||#3. 신약성경의 용법||카르디아는 신약성경에서 148회 나오며, 공관복음서에 47회, 요한복음에 6회, 사도행전에 17회, 바울서신에 52회, 공동서신에 13회, 히브리서에 10회, 계시록에 3회 사용되었다.||(a) 카르디아가 신체의 중심기관이며, 육체적 활력의 자리라는 사상은 눅 21:34("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 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행 14:17의 시적 표현("그러나 자기를 증거하지 아니하신 것이 아니니 곧 너희에게 하늘로서 비를 내리시며 결실기를 주시는 선한 일을 하사 음식과 기쁨으로 너희 마음에 만족케 하셨느니라 하고")과 약 5:5에만 나타난다:"너희가 땅에서 사치하고 연락하여 도살의 날에 너희 마음을 살지게 하였도다"(참조: 삼상 21:7; 시 101:5; 시 103:15).||(b) 카르디아는 인간의 내부 생명과 영혼의 모든 힘과 기능의 근원과 자리이다.|① 카르디아는 느낌과 감정, 욕망, 정욕의 자리이다. 기쁨(행 2:26; 요 16:22; 행 14:17), 고통과 슬픔(요 16:6; 요 14:1; 요 14:27; 롬 9:2; 고후 2:4; 행 2:27; 행 7:54; 행 21:13; 눅 4:18), 사랑(고후 7:3; 고후 6:11; 빌 1:7), 욕망(롬 10:1; 눅 24:32), 정욕(약 3:14; 마 5:28; 마 6:21 등).|② 카르디아는 이해와 사고와 반성의 자리이다.|마 12:34(과 병행구),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마 13:15,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였느라"|막 7:21(과 병행구),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적질과 살인과"|눅 1:51, "그의 팔로 힘을 보이사 마음의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고"|눅 2:35, "또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라 이는 여러 사람의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려 함이니라 하더라"|눅 9:47, "예수께서 그 마음에 변론하는 것을 아시고 어린아이 하나를 데려다가 자기 곁에 세우시고"|행 8:22, "그러므로 너의 이 악함을 회개하고 주께 기도하라 혹 마음에 품은 것을 사하여 주시리라"|히 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죄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고전 2:9,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눅 2:19; 눅 2:51, "마리아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지키어 생각하니라 ,예수께서 한가지로 내려가사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드시더라 그 모친은 이 모든 말을 마음에 두니라"|마 9:4, "예수께서 그 생각을 아시고 가라사대 너희가 어찌하여 마음에 악한 생각을 하느냐"|막 11:23,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룰 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마 24:48(과 병행구), "만일 그 악한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롬 10:6,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이같이 말하되 네 마음에 누가 하늘에 올라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올라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모셔 내리려는 것이요"|계 18:7, "그가 어떻게 자기를 영화롭게 하였으며 사치하였든지 그만큼 고난과 애통으로 갚아 주라 그가 마음에 말하기를 나는 여황으로 앉은 자요 과부가 아니라 결단코 애통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롬 1: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눅 24:25, "가라사대 미련하고 선지자들의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③ 카르디아는 의지와 결정의 자리이다.|고후 9:7,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행 11:23,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전 4:5,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것도 판단치 말라 그가 어두움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께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고전 7:37, " 그러나 그 마음을 굳게 하고 또 부득이한 일도 없고 자기 뜻대로할 권리가 있어서 그 처녀 딸을 머물러 두기로 마음에 작정하여도 잘하는 것이니라"|눅 21:14, "그러므로 너희는 변명할 것을 미리 연구치 않기로 결심하라"|행 5:4,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임의로 할 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 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요 13:2,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니"|계 17:17, "하나님이 자기 뜻대로 할 마음을 저희에게 주사 한 뜻을 이루게 하시고 저희 나라를 그 짐승에게 주게 하시되 하나님 말씀이 응하기까지 하심이니라"|행 5:3, "베드로가 가로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단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골 4:8, "내가 저를 특별히 너희에게 보낸 것은 너희로 우리 사정을 알게 하고 너희 마음을 위로하게 하려 함이라"|엡 6:22, "우리 사정을 알게 하고 또 너희 마음을 위로하게 하기 위하여 내가 특별히 저를 너희에게 보내었노라"|따라서 카르디아는 인간의 외부와 대조하여 인간의 내부 전체를 대표한다.|살전 2:17, "형제들아 우리가 잠시 너희를 떠난 것은 얼굴이요 마음은 아니니 너희 얼굴 보기를 열정으로 더욱 힘썼노라"|고후 5:12, "우리가 다시 너희에게 자천하는 것이 아니요 오직 우리를 인하여 자랑할 기회를 너희에게 주어 마음으로 하지 않고 외모로 자랑하는 자들을 대하게 하려 하는 것이라"|막 7:6(과 병행구), "가라사대 이사야가 너희 외식하는 자에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기록하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마 15:18,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롬 10:8, " 그러면 무엇을 말하느뇨 말씀이 네게 가까와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고후 6:11, "고린도인들이여 너희를 향하여 우리의 입이 열리고 우리의 마음이 넓었으니"|롬 2:29,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신령에 있고 의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행 7:51,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가 항상 성령을 거스려 너희 조상과 같이 너희도 하는도다"|행 4:32,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가 항상 성령을 거스려 너희 조상과 같이 너희도 하는도다"|골 2:2, "이는 저희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원만한 이해의 모든 부요에 이르러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라"|요일 3:19, "이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한 줄을 알고 또 우리 마음을 주 앞에서 굳세게 하리로다"|벧전 3:4, "이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한 줄을 알고 또 우리 마음을 주 앞에서 굳세게 하리로다"|④ 카르디아는 하나님을 향하여 가는 종교적 중심지이며, 종교적 생활의 뿌리이며 도덕적 행위를 결정하는 곳이다(예: 눅 16:15; 롬 5:5; 롬 8:27; 엡 3:17; 히 8:10; 벧후 1:19; 죄인의 마음, 막 7:21; 요 12:40; 엡 4:18; 약 1:26; 구속받은 자의 마음, 마 11:29; 딤전 1:5; 살전 3:13; 골 3:22; 벧전 3:15; 약 4:8, 등).||(c) "땅의 내부"라는 의미는 마 12:40에서 나온다: "요나가 밤낮 사흘을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을 땅 속에 있으리라"|(참조: Walter Bauer ; T.Sorg ; J.Behm).
마음을 아시는(이)
kardiognwvsth"
마음을 아시는 이 knower of hearts.||명사 카르디오그노스테스는 일반 헬라어와 70인역본에는 알려져 있지 않고 신약성경에서는 오직 사도행전에 2회 나오며 후기의 교부 문서들에 나온다.|사도행전에서 이 단어는 하나님을 마음을 아시는 이로 표현할 때 사용되었다: "저희가 기도하여 가로되 뭇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여 이 두 사람 중에 누가 주의 택하신 바 되어"(행1:24), "즉 예로부터 이것을 알게 하시는 주의 말씀이라 함과 같으니라"(행 15:18).|이 단어는 하나님(또는 그리스도)께서 자신에 대한 결단을 내리는 가장 깊숙한 존재를 감찰할 수 있다는 잘 알려진 사상을 표현한다(참조: 눅 16:15; 롬 8:27; 살전 2:4; 계 2:23, 그리고 구약성경에서 삼상 16:7; 왕상 8:39 등).|(참조: J.H.Thayer; T.Sorg; J.Behm).
과실
karpov"
열매 fruit.||#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칼포스(Homer이래)는 일반 헬라어에서,||(a) 땅의 '열매'(Homer), 동물들의 '새끼'(Xenophon),|(b) 산물, 이익,|(c) 좋든 나쁘든 간에 착수한 일의 결과를 뜻하는 확대된 의미로, '성과', '결과'(Philo, Marcus Aurelius)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칼포스는 70인역본에서 약 130회 나오며, 주로 페리(과일, 열매, 자손, 결과)의 역어로 사용되었다. 따라서 칼포스는 식물의 열매(신 1:25; 말 3:11), 몸의 결실이나 후손(창 30:2; 신 7:13; 미 6:7; 시 21:11), 비유적 의미로 행동의 열매(호 10;13; 렘 6:19; 렘 17:10)이며, 후기 유대교에서 의인은 선한 열매를 맺고 악인은 나쁜 열매를 맺는다. 상업적 용어로 이익의 의미로 사용되었다.||#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칼포스는 신약성경에서 66회 나오며, 대부분 복음서에 사용되었다.||1. 칼포스의 본래의 의미.||(a) 칼포스는 식물들의 열매(마 21:19; 마 13:8; 막 11:14; 눅 12:17 등)나 땅의 소산물(약 5:17, 약 5:18; 눅 20:10)을 의미한다. 야고보서 5장 같은 구절들은 사람이 수고함으로 인하여 열매의 성장을 돕고 촉진할 수 있으나 그 열매를 단지 선물로 기대하고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한다. 씨와 수확은 사람에게 맡겨져 있다. 어느 정도까지 열매의 성장이 인간의 의지력과 별개의 것인지는 그 열매가 정해진 시기 곧 카이로스에 익는다는 사실로 분명히 보여준다(마 21:34). 열매의 형태는 임의적인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그 씨앗으로 결정지워지므로(참조: 고전 15:35이하), 그 열매를 보고 그 식물을 판단할 수 있다: "나무도 좋고 실과도 좋다 하든지 나무도 좋지 않고 실과도 좋지 않다 하든지 하라 그 실과로 나무를 아느니라"(마 12:33; 마 7:16, 마 7:20). 이 사실은 종(種)에 만이 아니라 질(質)에도 적용된다.|마태복음은 선한 열매와 악한 열매(마 3:10; 마 7:17-마 7:19)나 썩은 열매(마 12:33; 눅 6:43)를 특히 대조시키고 있다. 기대에 부응하지 않는 열매는 쓸모가 없고 그러한 열매를 맺는 것('나무' 마 7:19; 눅 3:9; 마 13:6이하)은 유용성이 없는 것으로 불린다는 사실을 보여주는데 그 의도가 있다.||(b) 눅 1:42에서 칼포스는 몸의 열매 즉 후손이란 의미로 나타난다: "큰 소리로 불러 가로되 여자 중에 네가 복이 있으며 네 태중의 [아이]도 복이 있도다".|행 2:30에서도 같은 의미를 지닌다: "그는 선지자라 하나님이 이미 맹세하사 그 [자손] 중에서 한 사람을 그 위에 앉게 하리라 하심을 알고".||2. 칼포스의 비유적 의미. 칼포스는 비유적으로부터 생기거나 나오는 것, '효과, 성과, 결과'를 나타낸다.||(a) 칼포스는 '일, 행동, 행위'를 나타낸다.|① 마 3:8(병행구, 눅 3:8)에서 칼포스는 '행위(선행)'를 나타낸다: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회개에 합당한 열매는 문자적으로 '회개에 대등한 행위'라고 번역할 수 있다.|마 21:43에서 "그 나라의 [열매]를 맺는 백성이 받으라"고 한다. 여기서 칼포스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구원의 획득에 요구되는 행위들, 곧 참회, 신앙, 신앙의 행위들을 카리킨다.|② 빌 1:11에서 선행을 의의 열매로 인정한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약 3:18에서도 같은 의미를 나타낸다: "화평케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엡 5:9에서 "빛의 열매"도 선행을 나타낸다: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갈 5:22에서 "성령의 열매"는 성령이 가져오는 여러가지 선행이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골 1:10에서 "주께 합당히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라고 언급한다. 바울은 그러한 선행을 구원을 이루려는 인간의 열심과 현저하게 구별짓고 있다. 전문 기술계와 공예계에서 나온 용어 에르곤($2041, 일하다)은 사람이 자신의 노력으로 생산한 것을 암시하며 긍정적 의미로는 비교적 드물게 사용된다. 반면에 자연적인 성장의 영역에서 따온 칼포스는 당연한 일로 성장하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그 나무나 토양의 생명 공급력에 의존한 결과이다.|이러한 성장은 막 4:27이하가 지적하여 준다: "저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나서 자라되 그 어떻게 된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 그러나 생명의 증거인 이 성장은 사람의 임의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다. 이 용어를 사용함에 있어서 바울은, 그리스도의 영이 역사하시는 그리스도의 몸에 접붙혀져서 이 살아있는 교제의 은사에 동참하는 사람들에게 있어 성취-열매-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데 이는 그 열매가 손으로 만든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고자 한다. 따라서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은 그들의 열매를 하나님께 가져오고 하나님을 위하여 살지만 죄지으려는 욕망의 힘은 죽음을 위한 열매를 맺을 수 있을 뿐이다(참조: 롬 7:4이하).||(b) 칼포스는 사역의 '결과나 성과'를 나타낸다.|① 롬 1:13; 빌 1:22에서 이 의미를 나타낸다.|② 롬 15:28에서 이러한 의미에서 예루살렘 공동체를 위한 연보는 하나의 열매이다: "그러므로 내가 이 일을 마치고 이 열매를 저희에게 확증한 후에 너희에게를 지나 서바나로 가리라". 이 열매를 저희에게 확증한 후에는 문자적으로 '이 열매를 저희에게 인친 후에'라고 번역할 수 있다. 바울은 예루살렘으로 그 연보를 가지고 가서 그곳의 교회에 그것을 넘겨 줌으로서 그 연보 위에 인을 치는 것으로 말하고 있다. 그리하여 그는 이 연보가 이방인 중에서 자기의 사역의 열매, 곧 성과임을 보여주고자 했다. 이 경우에 칼포스는 또한 '수입이나 수익'이란 의미도 포함한다.||(c) 칼포스는 '유익, 이익, 수익, 유용'을 나타낸다.|① 이 단어는 자신들의 수고로 교회를 세우고 있는 사도들과 특히 복음 전파자들이 "그들이 맺은 열매에 의하여 산다"는 의미에서까지 이해할 수 있다. 이 사람들은 교회에 의한 생계 부양의 요구를 할 수 있다: "누가 자비량하고 병정을 다니겠느냐 누가 포도를 심고 그 실과를 먹지 않겠느냐 누가 양 떼를 기르고 그 양 떼의 젖을 먹지 않겠느냐"(고전 9:7).|딤후 2:6에서도 같은 의미를 나타낸다: "수고하는 농부가 곡식을 먼저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② 빌 4:17에서 바울에 대한 지원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유익이 될 것이다: "내가 선물을 구함이 아니요 오직 너희에게 유익하도록 과실이 번성하기를 구함이라".|히 12:11에서 "의의 열매"는 의로부터 발생하는 유익이다: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달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나니".|③ 약 3:18에서 "의의 열매"는 의 속에 존재하는 '유익'을 가리킨다: "화평케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d) 히 13:15에서 "입술의 열매"는 하나님께 감사제물로 드리는 찬양을 가리킨다: "이러므로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니라"(참조: 호 14:2; 잠 12:14; 잠 29:49).||(e) 칼포스는 예수님과 관련하여 '열매 곧 수확'을 나타낸다: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 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요 15:2이하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이 주님과 갖는 친밀한 교제는 열매를 맺는 능력의 비결로 보여진다.|요 12:24에서 예수님께서 죽으심은 풍성한 열매가 거기에서 성장하는 토양인 것이다. 십자가 상에서 예수님이 죽으심은 사람들에게 구속을 가져온다. 예수님은 포도나무(즉 여기서는 생명나무)로서 그의 가지들을 통하여 믿음의 필수 조건이자 믿음의 방편인 생명을 주는 힘을 보낸다. 사람은 참으로 그의 천부적 재질을 통해서 도덕적, 전문적 업적을 달성할 수 있다. 그러나 "복음의 열매"-하나님이 사람에게 기대하시는 것-는 순종의 땅에서만 성장할 수 있으며 그 순종은 본질적으로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확립된 창조주와 피조물 간의 유대를 인정함에 있는 것이다. 인간은 더 이상 자기 자신의 업적을 고려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실패의 불안에서 해방된 인간은 최상의 노력을 경주할 수 있다("보다 많은 과실"; 요 15:2, 요 15:58). 열매를 맺는 인간 능력의 근원은 그 자신 밖에 있으므로 수확은 확실하다. 이 열매는 영생 부여의 가치가 있으며 영원토록 남아있는다(요 15:16).||(f) 요 4:36에서 영생에 이르는 열매는 '구원받은 사람'을 가리킨다: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 이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니라".||(g) 칼포스는 계 22:2에서 2회 나온다: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실과를 맺히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히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더라". 매월 열매를 맺는 생명나무의 묘사는 새로운 세상에 하나님의 널리 임재하심의 충만함을 상징한다. 이 신세계에는 수치와 죄악이 극복되며 하나님의 영의 활동하심의 모든 장애물들은 제거되어 진다.|(참조: Walter Bauer; R.Hensel; J.H.Thayer; F.Hauck).
가보
Kavrpo"
가보 Carpus(인)||카르포스는 '과일'을 뜻하며, 한글 개역 성경에서 '가보'라고 번역했다.|가보는 신약성경에서 딤후 4:13에 한번 나온다: "네가 올 때에 내가 드로아 가보의 집에 둔 겉옷을 가지고 오고 또 책은 특별히 가죽 종이에 쓴 것을 가져오라". 가보는 바울의 그리스도인 친구인듯 하며, 드로아에 그의 집이 있었다. 바울은 이곳을 방문하여 가보의 집에 머문적이 있었다. 바울은 겉옷과 양피지에 쓴 책들을 가보에게 보관시켰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자기의 겉옷과 책을 가지고 로마로 오라고 한 것은 바울 자신이 로마의 감옥에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히폴리투스(Hippolytus)에 의하면 가보는 나중에 베리투스(Berytus)나 혹은 드라케 지방 베뢰아의 감독이 되었다고 한다.|(참조: PEB; NBD).
결실을 하다
karpoforewv
열매를 맺다 bear fruit.||#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칼포포레오(Xen., Aristot.)는 칼포포로스($2593)에서 유래했으며,||(a) '열매를 맺다'를 의미하며,|(b) 비유적 의미로 행위에 대해 사용되었다.||#2. 70인역본의 용법||동사 칼포포로스는 70인역본에서 2회 나오며, 히브리어 파라흐(싹이 나다)의 역어로 사용되었으며(합 3:17), 열매 맺는 것을 나타낸다. 그리고 외경 지혜서 10:7에서도 나무가 열매 맺는 것을 나타낸다.||#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칼포포레오는 신약성경에서 8회 나오며, 문자적 의미와 비유적 의미로 사용되었다.||(a) 막 4:28에서 문자적 의미로 사용되었다: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b) 나머지 구절에서는 비유적 의미로 사용되었다.|막 4:20에서 말씀을 받아들이는 자들은 열매를 맺는다: "좋은 땅에 뿌리웠다는 것은 곧 말씀을 듣고 받아 삼십 배와 육십 배와 백 배의 결실을 하는 자니라"(병행구 마 13:23; 눅 8:15).||(c) 롬 7:4, 롬 7:5에서 칼포포레오는 행위를 나타낸다: "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다른 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로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히게 하려 함이니라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는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여 우리로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였더니".|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은 그들의 열매를 하나님께 가져오고 하나님을 위하여 살지만 죄지으려는 욕망의 힘은 죽음을 위한 열매를 맺을 수 있을 뿐이다.|골 1:10에서 선행은 의인의 열매이다: "주께 합당히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골 1:6에서 복음 진리의 말씀은 골로새 교인들과 온 세상에서 그 열매를 맺는다.|(참조: Walter Bauer; J.H.Thayer; F.Hauck; R.Hensel).
결실기
karpofovro"
열매맺는, 결실하는, 생산의||#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형용사 칼포포로스(Pind., Hdt. 이래)는 칼포스($2590: 열매)와 페로($5342: 낳다)에서 유래했으며, '열매를 맺는, 결실하는 , 생산의'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형용사 칼포포로스는 신약성경에서 행 14:17에 한번 나오며, '결실의' 때를 묘사한다: "그러나 자기를 증거하지 아니하신 것이 아니니 곧 너희에게 하늘로서 비를 내리시며 결실기를 주시는 선한 일을 하사 음식과 기쁨으로 너희 마음에 만족케 하셨느니라 하고".|(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카르테레오
karterevw
강하다, 견디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카르테레오(Soph., Thu. 이래)는 크라토스($2904: 힘, 세력, 권력)의 파생어에서 유래했으며,||(a) '강하다',|(b) '확고부동하다, 확고부동하게 견디다'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동사 카르테레오는 70인역본에서 욥 2:9; 사 42:14(히브리어에서는 '큰소리로 부르다', '소리치다')에서 "견디다"를, 순교와 관련하여 마카베오사서 9:9; 9:28; 10:1 등에서도 이러한 의미로 사용된다. 이 단어는 마카베오이서 7:17에서 '버티다'를 의미한다.||#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카르테레오는 신약성경에서 히 11:27에서만 나온다: "믿음으로 애굽을 떠나 임금의 노함을 무서워 아니하고 곧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것 같이 하여 참았으며". 여기에서 모세는 애굽을 떠난 후 눈에 보이지 않으나 효과가 있는 그에게 이르는 믿음으로 견딘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에 대한 이러한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 자신을 계시하고 내어주신 하나님에 대한 신역성경의 믿음의 전제 조건이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W. Grundmann).

kavrfo"
마른 줄기나 잔가지, 짚.||#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카르포스(Aeschyl., Hdt. 이래)는 카르포(%470: 마르다, 수축하다, 줄다)에서 유래했으며, '마른 줄기 또는 잔가지, 짚, 왕겨, 여물'을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카르포스는 신약성경에서 6회 나오며,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만 사용되었다.|마 7:3이하; 병행구 눅 6:41이하에서 칼포스는 비유적으로 보다 적은 결점을 의미한다: "어찌하여 형제의 눈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카타
katav
아래로, ~에 대하여||(a) 속격과 함께|① '~으로부터, 아래로'|② '~위로 내려'(속으로 내려)|③ '~통하여, ~의 도처에, ~에 두루'|④ '~에 대항(대적)하여, ~위에 내려'||(b) 대격과 함께|① '~으로 두루 내려'|② '~을 따라, ~을 끼고'|③ '~으로'|④ '~을 향하여, ~에 대하여, ~와 마주 대하여, ~의 맞은 편에, 정면으로'|⑤ 시간에 대하여, '~동안, ~경에, ~때쯤'|⑥ '~에 비례하여, ~의 분량에 따라'|⑦ '~의 이유로, ~때문에, ~으로 인하여'|(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강림하다
katabaivnw
내려오다, 내려가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카타바이노(Homer. 이래)는 전치사 카타($2596: 아래로)와 바이노(%761: 걷다, 가다)에서 유래했으며, '내려오다, 내려가다, 혹은 기어내리다'의 의미를 지닌다. 두 단어의 뉘앙스의 뚜렷한 차이점을 구별할 수 있다.||#2. 70인역본의 용법.||동사 카타바이노는 70인역본에서 약 330회 나오며, 거의 대부분 히브리어 야라드(3381: 내려가다, 내려오다, 떨어지다, 강림하다, 창 11:5; 창 42:2; 수 2:23; 삿 3:27; 삼하 18:44; 겔 27:29 등)의 역어로 사용되었다.||#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카타바이노는 신약성경에서 81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공관복음과 사도행전에서 어떤 특별한 종교적 성격을 지니지 않은 지리적·공간적 의미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49회 가운데 37회).|① 예루살렘과 성전은 높은 고도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그곳으로부터 '내려가거나 내려온다'고 표현되었다(예: 막 3:22; 눅 2:51; 눅 10:30; 눅 10:31; 눅 18:14; 행 8:15; 행 8:26; 눅 24:1; 눅 24:22; 눅 25:6; 눅 25:7)|② 마찬가지로 행 18:22에서 ("가이사랴에서 상륙하여 올라가 교회의 안부를 물은 후에 안디옥으로 '내려가서'") 이 단어는 바울이 예루살렘을 방문했음을 암시한다(참조: E. Haenchen, Acts [Eng. tr., 1971] 544).|③ 눅 6:17에 따르면 예수께서 열 둘을 택하여 사도로 삼으신 후에 산에서 내려와(참조: 마 5:1) 평지에서, 아마도 산 기슭에서 사람들을 가르치셨다. 그 서술 양식은 이 장면에서 시내산 사건을 연상시킨다(출 32-34장; H. Schurmann, Luke [HTKNT] I, 311,320).|④ 눅 22:44에서 "땀이 땅에 떨어지는 피방울 같이 되더라"는 비교문은 기도의 간절함을 나타내는 것이지 아고니아(즉 헤모하이드로시스) 같은 이상 현상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다.|⑤ 폭풍(눅 8:23), 비(마 7:25; 마 7:27), 불(눅 9:54; 계 13:11; 계 20:9), 우박(계 16:21) 같은 자연적 사건들의 하강 시에 카타바이노로 묘사되는데, 이때 종교적 성격도 고려되어야만 한다.||(b) 공관복음과 사도행전 밖에서는 카타바이노의 특수한 종교적 의미가 두드러진다(32회 가운데 26회). 이 단어의 이러한 용법은 세계는 수직 방향으로 나뉘어있다는 고대 근동의 우주론에 기초한다. (평평한)지구 위로는 창공(firmament)과 물과 마지막으로 하늘이 있으며, 하늘에는 하나님과 천상의 존재들이 계시고, 땅 아래에는 죽은 자의 세계가 있다. 70인역본에서 이미 카타바이노는 하나님이나 천상적 존재의 내려 오심에 대해 자주 사용된다(F. Mussner).|① 스데반은 행 7:34에서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시려고 내려오셨다고 말한다(출 3:8, 70인역본 참조).|② 약 1:17은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온다"고 한다.|③ 천사들이 하나님의 사자로서 내려온다(마 28:2; 계 10:1; 계 18:1; 계 20:1).|④ 예수님의 침례(세례)기사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성령이 그 위에 비둘기같이 내려오는 것을 보신다(막 1:10, 병행구 마 3:16). 눅 3:22에서는 이 사건이 모든 사람에게 보이고, 요 1:32; 요 1:33에서는 세례(침례)요한이 이를 증거한다.|⑤ 요한복음에서는 본래 하늘로부터 내려오신 이는 인자 자신이며 따라서 그만이 하늘로 오르실 수 있다고 한다(요 3:13).|여기서 복음서 기자의 표현 방식은 영지주의와 뚜렷이 대조된다(Blank 79, Contra R. Bultmann, John [Eng. tr., 1971] 149); 구속의 전제로서의 성육신에 대해 사용되는 카타바이노는 요 6:22-59의 "떡에 관한 설교"에서 거듭하여 강조된다. 여기서 예수님은 자신을 직접적으로 (요 6:38; 요 6:42)나 생명의 떡이라는 이미지를 사용하여 (요 6:33; 요 6:41; 요 6:50; 요 6:51; 요 6:58) 하늘로서 내려온 자로 언급하신다. 이 살아있는 떡은 만나와 같지 않게 영생을 가져다주고, 또 이스라엘에게만 제한되는 것이 아니라, 온 세상에게 제공되는 것이다(요 6:33).|⑥ 엡 4:9-10에서는 시 68:19에 기독론적 해석을 부여한다: 오르신 자만이 "땅 아랫곳으로 내리셨던" 자일 수 있다. 여기서도 카타바이노는 선재하신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지적한다.|⑦ 살전 4:6에서 카타바이노는 재림에서 퀴리오스의 내려오심에 대해 사용되었다.|⑧ 계 3:12; 계 21:2; 계 21:10에서는 종말론적 사건들을 가리킨다: 새 예루살렘이 하늘로부터 내려온다(H. Fendrich).|(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C. Brown).
거꾸러뜨림을 당하다
katabavllw
내리던지다, 쓰러 뜨리다, 기초를 놓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카타발로(Homer 이래)는 카타($2596: 아래로)와 발로($906: 던지다)에서 유래되었으며,||(a) '내(리)던지다' throw down, '땅으로 쓰러뜨리다' fell to ground, '죽이다' kill, '멀리 던지다' throw away,||(b) 비유적인 의미로 '제지하다' put down, '업신여기다' disparage, 거부하다' reject, '또한 보증금을 치루다' pay down.||(c) '기초를 놓다' lay a foundation, '창건하다' found, '시작하다' originate를 의미한다.|이 단어는 고대의 건축 기술에서 유래된 것으로, 돌을 홈 속으로 던지는 것(또는 쌓아 올리는 것)을 의미하며, 또는 바위의 기초 위에 건물의 중요한 초석들을 굴리고 미어 평평하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의미는 오늘날 단순히 상징적으로 말하는 초석을 놓음이란 의미 이상의 것이었다.||#2. 70인역본의 용법.||동사 카타발로는 70인역본에서 약 50회 나오며, 주로 히브리어 나팔의 역어로 사용되었으며, 주로 군사 용어로 칼로 쓰러뜨리거나 성벽을 무너뜨리는 것을 나타낸다(삼하 20:15; 왕하 3:19; 잠 7:26 등). 마카베오이서 2:13에서만 카타발로가 '기초를 놓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카타발로는 신약성경에서 3히 나오며, 고린도후서, 히브리서, 요한계시록에 각각 1회 사용되었다.||(a) 고후 4:9, "핍박을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여기서 카타발로는 '쓰러뜨림을 당하다'를 의미하며, 갑자기 습격을 당한 상태를 나타낸다.||(b) 히 6:1-히 6:2, "1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 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2 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데 나아갈찌니라". 데멜리온 카타발로메노이는 '건물의 기초를 놓다'는 뜻으로 사용한 일상적인 관용어이다. 이 터, 곧 기초는 삼중적이며, 그 셋의 각각은 이중적이다.|① 첫째로, 개인 구원은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이다. 어떤 사람들은 매일 죄를 짓고 매일 회개하는 생활, 즉 의심과 어둠으로 날마다 갈등하는 상황에서 결코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② 둘째, 교회의 의식은 세례와 안수의 교훈이다.|③ 셋째, 종말론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의 교훈이다.(R.S. Taylor).|(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H. -H. Esser).
짐을 지우다
katabarevw
내리 누르다, 짐을 지우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카타바레오(Polyb., Diod. 등)는 카타($2596)와 바레오($916: 내리 누르다)에서 유래했으며,||(a) '내리 누르다, 압박하다',|(b) 비유적으로 '짐을 지우다'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카타바레오는 신약성경에서 고후 12:16에 한번 '짐을 지우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하여간 어떤이의 말이 내가 너희에게 짐을 지우지는 아니하였을지라도 공교한 자가 되어 궤계로 너희를 취하였다 하니".|(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카타바뤼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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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리 누르다, 압박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카타바뤼노(Theophr.)는 카타바레오($2599)의 연장형이여, '내리 누르다, 압박하다'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카타바뤼노는 신약성경에서 막 14:40에 한번 나오며, 눈이 피곤으로 인하여 '내리 감기는 것'을 표현한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